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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7
깨97 8/8 8-11면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도우라

많은 부모들은 자녀 양육과 관련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온갖 곳을 뒤지지만, 그 답은 사실상 그들 자신의 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가정에 성서가 있지만, 그 성서가 자녀 양육에 활용되지 않고 책꽂이에 꽂힌 채 먼지만 쌓여 있습니다.

사실상,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가정 생활에서 성서를 지침으로 사용하는 일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은 성서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책 혹은 너무 엄격한 표준이 들어 있는 책이라고 하여 멀리합니다. 그러나 정직히 검토해 보면, 성서가 가정 생활에도 실용적인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한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올바른 환경

성서에서는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자기] 상에 둘린 ·⁠·⁠· 어린 감람나무”처럼 여기라고 말합니다. (시 128:3, 4) 여린 묘목은 주의 깊이 가꾸어 적절한 자양분과 토양과 습도를 공급해 주지 않으면 열매 맺는 나무로 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를 성공적으로 양육하는 데에도 노력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녀들이 원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첫째로 필요한 요소는 사랑입니다. 부부 사이에 그리고 부모와 자녀 사이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 5:33; 디도 2:4) 많은 가족 성원들은 서로 사랑하기는 하는데, 그러한 사랑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친구에게 편지를 쓰기는 했는데, 주소를 적고 우표를 붙여 편지를 부친 적이 한 번도 없다면 당신이 참으로 친구와 의사 소통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서에서는 참 사랑이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감정 이상의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참 사랑은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비교 요한 14:15과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말로 표현하심으로 모범을 세우셨습니다. “이는 내 아들, 사랑하는 자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마태 3:17.

칭찬

부모는 어떻게 그러한 사랑을 자녀에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우선, 자녀에게서 좋은 점을 찾아보십시오. 자녀의 흠을 찾기란 쉬운 일입니다. 자녀의 미숙함, 경험 부족, 이기적인 태도 등은 매일매일 수없이 표출될 것입니다. (잠언 22:15) 그러나 자녀들은 좋은 일도 매일 많이 할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추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한 일을 오래 생각하시지 않고 우리가 하는 좋은 일을 기억하십니다. (시 130:3; 히브리 6:10) 우리도 자녀들을 같은 방법으로 대해야 합니다.

한 청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집에서 어떤 형태로든—집에서나 학교에서 한 일로—칭찬받은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부모 여러분, 자녀에게 칭찬이 꼭 필요하다는 이 사실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자녀라면 누구나 자기들이 잘한 일로 정기적으로 칭찬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단정지은 채 “낙담”하며 자라는 위험이 줄어들 것입니다.—골로새 3:21.

의사 소통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은 야고보 1:19의 교훈을 따르는 것입니다. “듣기는 신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고, 노하기도 더디[하십시오].” 당신은 자녀가 마음을 털어놓도록 격려한 다음 자녀가 말할 때 정말 귀기울여 듣습니까? 자녀가 알고 있기론,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신이 훈계할 것이 뻔하거나, 자녀가 실제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 화를 낼 것이 뻔하다면, 자녀는 자기의 감정을 털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 귀기울여 들을 것임을 자녀가 알고 있다면, 당신에게 자기의 마음의 문을 열기가 훨씬 쉬울 것입니다.—비교 잠언 20:5.

하지만 자녀가 감정을 털어놓았는데 그 감정이 그릇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화가 난 반응을 보이거나 훈계를 하거나 어느 정도 징계를 베풀어야 합니까? 물론, 자녀가 어린아이와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불쑥 이야기하면 “말하기는 더디하고, 노하기도 더디”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자기의 자녀들을 대하시는 모범을 다시 한 번 고려해 보십시오. 그분은 병적인 두려움을 갖게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여 자녀들이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히 말하기를 두려워하게 만드십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62:8은 이렇게 말합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두 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로 한 하느님의 결정에 대해 염려가 되었을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심은] ·⁠·⁠· 불가하오며 ·⁠·⁠·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브라함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신 다음 그의 염려를 달래어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창세 18:20-33) 하느님께서는 자기 자녀들이 몹시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감정을 토로할 때에도 놀라울 정도로 참을성을 나타내시며 부드럽게 대해 주십니다.—요나 3:10-4:11.

마찬가지로, 부모들도 자녀들이 가장 깊은 감정을 토로할 때 아무리 당혹스러운 말이라도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녀가 북받치는 감정을 토로할 때 귀기울여 들으십시오. 꾸짖지 말고 자녀의 감정을 인정해 주고 그러한 감정을 갖게 된 이유를 알아내십시오. 예를 들면, ‘아무개 때문에 네가 화가 난 것 같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니?’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분노를 잘 다스림

물론, 여호와처럼 참을성을 나타낼 수 있는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확실히 부모의 참을성의 한계에 시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따금 자녀로 인해 화가 난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나쁜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니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떤 때는 당신이 분노를 느끼는 것이 극히 정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자기 자녀들에게, 심지어 그분이 매우 소중히 여기시는 자녀들에게 정당하게 화를 내십니다. (출애굽 4:14; 신명 34:10) 하지만 그분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노를 제어하라고 가르칩니다.—에베소 4:26.

어떻게 제어할 수 있습니까?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잠언 17:14) 그리고 당신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자녀가 어른과 같은 행동을 하거나 장성한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 마십시오. (고린도 첫째 13:11) 자녀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를 이해하면 분노가 가라앉을 것입니다. (잠언 19:11) 어떤 나쁜 일을 하는 것과 나쁜 사람인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나쁜 아이라고 소리치게 되면 자녀는 ‘굳이 좋은 아이가 되려고 애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를 사랑스럽게 시정해 주면 자녀가 다음에는 더 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질서와 존중심을 유지함

자녀에게 질서 의식과 존중심을 가르치는 것은 부모들이 직면하는 매우 어려운 일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방임적인 세상에서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제한을 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채찍[“매”]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 (잠언 29:15, 「공동번역」 참조) 어떤 사람들은 “매”라는 말을 들으면 움찔합니다. 그 말이 어느 정도 자녀 학대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목자가 양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도하기 위해서 사용하던 것과 같은 막대기를 가리킵니다.a 따라서 매는 징계를 상징합니다.

성서에서 징계는 주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잠언서에서는 네 번이나 ‘징계를 들으라’고 말합니다. (잠언 1:8; 4:1; 8:33; 19:27, 「신세」 참조) 자녀들은 옳은 일을 하면 상을 받고 그릇된 일을 하면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칭찬과 같은 상이 훌륭한 행동을 하도록 강화시켜 주는 것처럼, 벌은 그릇된 행동을 할 때 꾸중을 들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비교 신명 11:26-28) 부모들은 벌을 줄 때 하느님의 모범을 본받는 것이 좋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공도로[“적절한 정도로”]” 징책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46:28, 「신세」 참조) 어떤 자녀들은 시정을 촉구하는 몇 마디 엄한 말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어떤 자녀들에게는 좀더 단호한 조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적절한 정도로” 징책하는 일에는, 자녀에게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정말 해를 입힐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포함되지 않을 것입니다.

균형 잡힌 징계에는 자녀에게 경계와 한계에 대해 가르쳐 주는 일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많은 경계와 한계가 명확히 규정되어 있습니다. 성서는 사유지를 표시해 놓은 경계표를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신명 19:14) 성서는 신체와 관련된 경계도 정해 놓음으로, 폭력을 좋아하거나 고의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그릇된 것임을 알려 줍니다. (시 11:5; 마태 7:12) 성서는 성과 관련된 경계도 분명히 정해 놓아 근친 상간을 정죄합니다. (레위 18:6-18) 성서는 심지어 개인의 인격이나 감정과 관련된 경계도 인정하여, 다른 사람에게 욕을 한다거나 그 밖의 형태로 말로 학대하는 것을 금합니다. (마태 5:22) 자녀에게 이러한 한계와 경계에 대해—말과 모범으로—가르치는 것이 건전한 가정 환경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가정에서 질서와 존중심을 유지하는 또 다른 비결은 가족 성원들이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에서는 그러한 역할이 모호하거나 혼동되어 있습니다. 일부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신의 힘겨운 문젯거리들을 자녀에게 털어놓습니다. 자녀는 그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도 못하는 데 말입니다. 또 다른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꼬마 독재자 역할을 하도록 허락되어 가족 전체에 관한 문제를 결정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해롭기까지 합니다. 신체적인 필요이든 감정적인 필요이든 영적인 필요이든, 부모가 어린 자녀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 둘째 12:14; 디모데 첫째 5:8) 야곱의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어린 자녀들에게 너무 힘겨운 일이 되지 않도록 자기 가족 전체와 수종하는 사람들의 행보를 조정하였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한계를 이해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던 것입니다.—창세 33:13, 14.

영적 필요를 돌봄

건전한 가정 환경을 조성하는 데 영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마태 5:3) 자녀들은 영성을 배양할 수 있는 커다란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질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땅과 동물과 나무와 바다는 누가 만들었는가? 사람들은 왜 죽는가?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쪽은 흔히 부모들입니다.b

성서는 부모들에게 시간을 내서 자녀들에게 영적인 훈련을 베풀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성서는 그러한 훈련을 부드러운 표현으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 오가는 대화처럼 묘사합니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걸어갈 때나 집에 함께 앉아 있을 때나 자녀가 잠자리에 들 때—가능한 때는 언제든지—하느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신명 6:6, 7; 에베소 6:4.

성서는 그러한 영적인 계획을 실천하도록 권장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성서는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자료도 공급해 줍니다. 요컨대, 앞서 언급한 자녀들이 하는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해 줄 것입니까? 성서에는 그 답이 들어 있습니다. 성서의 답은 명백하고, 마음을 끌며, 이 절망적인 세상에서도 많은 희망을 제시합니다. 한층 더 고무적인 사실로서, 성서의 지혜를 터득하면 당신의 자녀들은 오늘날과 같이 혼란스러운 시대에서도 가장 굳건한 닻, 가장 확실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자녀들에게 바로 그러한 지혜를 공급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들은—현재와 미래에—정말로 훌륭하게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각주]

a 「깨어라!」 1992년 9월 15일 호 26-7면 참조.

b 「가정의 행복—그 비결」이라는 책은 가족 연구를 위해 마련된 것으로서, 결혼과 자녀 양육에 관한 실용적인 성서의 지침이 많이 들어 있다. 사단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것이다.

[11면 삽입]

자녀에게 정기적으로 구체적인 칭찬을 해줄 방법을 찾아보라

[9면 네모]

자녀가 훌륭하게 성장하도록 도우려면

• 자녀가 사랑받고 있는 필요한 존재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 정기적으로 자녀에게 칭찬을 해주되 구체적으로 해주어야 한다

•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분노가 일 때는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

• 분명하고도 일관성 있는 경계와 한계를 정해 주어야 한다

• 자녀 각자의 필요에 맞는 징계를 해야 한다

• 자녀에게 합리적인 정도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 하느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연구함으로 영적인 필요를 돌보아야 한다

[10면 네모]

시대에 앞선 교훈

성서의 교훈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변 나라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가정 생활을 누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역사가인 앨프레드 에더샤임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국경 밖에 사는 민족들에게는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가정 생활, 혹은 심지어 가족이라고 적절하게 일컬을 만한 것이 없다시피 하였다.” 예를 들면, 고대 로마인들의 경우, 법은 아버지에게 가족 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버지는 자녀를 노예로 팔아 버릴 수도 있었고, 노동자처럼 일하게 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자녀를 처형하고서도 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일부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이 자녀를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사실, 1세기의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에 대해 증오에 찬 표현까지 하였는데, 유대인들의 관습이 “괴상하며 혐오스럽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은 인정하였다. “유대인에게는 갓난아기를 죽이는 것이 범죄에 속한다.”

성서는 높은 표준을 제시한다. 성서는 유대인들에게 자녀가 소중한 존재이므로—사실상 하느님께서 친히 주신 유산으로 간주해야 하므로—그에 알맞게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시 127:3) 분명히, 많은 유대인들은 그러한 교훈에 따라 살았다. 심지어 그들의 언어도 이러한 점을 반영하였다. 에더샤임이 기술하는 바에 따르면, 고대 히브리어에는 아들과 딸에 해당하는 말 외에도 자녀에 해당하는 단어가 아홉 개나 있었는데, 각 단어는 생애의 서로 다른 단계에 적용되었다. 예를 들면, 아직 젖을 먹고 있는 자녀에게 적용되는 단어가 있는가 하면, 젖을 뗀 자녀에게 적용되는 단어도 있었다.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자녀에게는 그 자녀들이 굳건하고 강해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다. 그리고 더 나이 든 청소년에게는 문자적으로 ‘자유롭게 되다’를 의미하는 단어가 있었다. 에더샤임은 이렇게 말한다. “확실히, 자녀가 성장해 가는 각 단계에 따라 구체적인 명칭을 부여해 줄 정도로 자녀의 생활을 예리하게 관찰한 사람들이라면 자녀에 대한 애착도 대단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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