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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94 10/15 16-21면
  •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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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치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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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파94 10/15 16-21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처럼 가르치는가?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랐다. 그분은 권위 있는 사람처럼 가르치시고, 그들의 서기관들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다.”—마태 7:28, 29.

1.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가르치셨을 때 누가 그분을 따랐으며, 예수께서 보이신 반응은 어떠하였습니까?

예수께서 어디를 가시든 무리가 그분에게 몰려 들었습니다. “그분은 갈릴리 전역을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며 사람들 가운데서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분의 활동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자, “갈릴리와 데카폴리스와 예루살렘과 유대로부터 그리고 요르단 건너편으로부터 큰 무리가 와서 그분을 따랐”습니다. (마태 4:23, 25) 예수께서는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가르치실 때, 그들은 그분이 자기들에 대해 느끼시는 연민이나 부드러운 애정을 감지할 수 있었으며, 그것은 상처에 바르는 치유력이 있는 연고와 같아서 그들을 그분에게로 가까이 이끌었습니다.—마태 9:35, 36.

2. 예수의 기적 외에도, 무엇이 많은 무리의 주의를 이끌었습니까?

2 예수께서는 참으로 놀라운 병 고침의 기적을 행하셨는데—나병 환자를 깨끗해지게 하고, 귀 먹은 사람을 듣게 하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고, 저는 사람을 걷게 하고, 죽은 사람을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확실히 예수를 통해 작용하는 여호와의 능력의 이러한 인상적인 현시는 많은 수의 무리의 주의를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의를 이끈 것은 기적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무리는 또한 예수께서 가르치면서 베푸시는 영적 치료를 받기 위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의 유명한 산상 수훈을 들은 후에 무리가 나타낸 이러한 반응에 유의하십시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셨을 때에,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랐다. 그분은 권위 있는 사람처럼 가르치시고, 그들의 서기관들 같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마태 7:28, 29) 그들의 라비들은 자기들의 전거로서 고대 라비들의 구전을 인용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받은 권위로 무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내게 알려 주신 그대로 말하는 것입니다.”—요한 12:50.

그분의 가르침은 마음을 감동시켰다

3. 예수께서 소식을 전하시는 방법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소식을 전하는 방법과 어떻게 달랐습니까?

3 예수의 가르침과 서기관들 및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의 차이는 내용—인간들의 짐스러운 구전과 대조가 되는 하느님의 진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을 전하는 방법에도 있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거만하고 거칠었으며, 오만하게도 높여 부르는 칭호를 요구하였고 무리를 “저주받은 사람들”로 경멸하는 투로 무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온유하고 온화하고 친절하고 동정심이 많으셨고 종종 양보하셨으며, 무리에 대해 불쌍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움직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올바른 말로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소력 있는 말로 가르치셨으며, 그분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직접 와 닿았습니다. 기쁨을 주는 그분의 소식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에게로 이끌렸고,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일찍 성전에 왔고, 그분을 가까이 따랐으며, 기꺼이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였습니다. 많은 수의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왔으며,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단언하였습니다.—요한 7:46-49; 마가 12:37; 누가 4:22; 19:48; 21:38.

4. 많은 사람은 예수의 전파 활동의 어떤 점에 특히 매력을 느꼈습니까?

4 확실히, 사람들이 그분의 가르침에 매력을 느낀 이유 한 가지는 그분이 예를 사용하신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본 것을 보셨지만, 사람들이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들에서 자라는 백합, 둥지를 트는 새, 낟알을 뿌리는 사람, 잃은 양을 찾아오는 목자, 낡은 옷에 헝겊 조각을 꿰매어 붙이는 여인, 장터에서 노는 아이들, 그물을 끌어당기는 어부—누구나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가 예수의 눈에는 결코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어디를 보든지 하느님과 그분의 왕국을 예시하거나 그분 주위의 인간 사회에 관한 생각을 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점을 보셨습니다.

5. 예수께서는 무엇에 근거한 예를 드셨으며, 그분의 비유가 효과를 거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5 예수의 예는 사람들이 수없이 보아온 일상적인 일들에 근거한 것이며, 진리는 이러한 잘 아는 일들과 관련이 있을 때 귀기울여 듣는 사람들의 정신에 속히 그리고 깊이 새겨집니다. 그러한 진리는 단지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눈으로 보게 되며, 따라서 후에 쉽게 생각납니다. 예수의 비유의 특징은, 진리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고 걸림이 될 수 있는,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에 의해 산만해지지 않는 간결성입니다. 예를 들어 이웃다운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를 고려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선한 이웃인지 누구나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 10:29-37) 이 외에도, 예수께서는 두 아들—포도원에서 일하겠다고 말했으나 하지 않은 한 아들과 일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나 일한 다른 한 아들에 관한 예를 드셨습니다. 진정한 순종의 핵심이 무엇인지, 즉 임명된 일을 수행하는 것임을 즉시 알 수 있습니다. (마태 21:28-31) 예수께서 생기 넘치는 가르침을 베푸시는 동안 아무도 졸거나 정신이 방황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정신은 귀기울여 듣고 깨닫는 일로 매우 바빴습니다.

사랑을 나타내야 할 때 예수께서는 양보하셨다

6. 합리적이 되는 것, 즉 양보하는 것은 특히 언제 도움이 됩니까?

6 「신세계역 성경—참조주」에서는 합리적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여러 번, 각주에서 그것이 양보하는 것을 의미함을 알려 줍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정상을 참작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양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합리적이어야, 즉 양보해야 합니다. 장로들은 사랑을 나타내야 할 때 그리고 회개가 받아들여질 만할 때 기꺼이 양보해야 합니다. (디모데 첫째 3:3; 야고보 3:17) 예수께서는 자비나 동정심을 나타내야 할 때 일반적인 규칙에 예외를 두심으로, 양보의 뛰어난 모범을 남기셨습니다.

7. 예수께서 양보하시는 분임을 알려 주는 무슨 예들이 있습니까?

7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를 세 번 부인하였는데도 베드로를 배척하지 않으셨습니다. 정상을 참작할 만한 일이 있었으며, 예수께서는 분명히 그 점을 고려하셨습니다. (마태 10:33; 누가 22:54-62) 또한 혈루증을 앓는 더러운 여자가 무리 속으로 들어옴으로 모세의 율법을 범하였을 때에도 정상을 참작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 역시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가 처한 절망적인 상태를 이해하셨습니다. (마가 1:40-42; 5:25-34; 또한 누가 5:12, 13 참조)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자기가 메시아임을 밝히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자기가 메시아임을 밝히실 때 그 규칙에 엄격히 고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마태 16:20; 요한 4:25, 26) 이 모든 경우에, 사랑과 자비와 동정심이 이러한 양보를 합당한 것이 되게 하였습니다.—야고보 2:13.

8.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어떤 경우에 규칙을 구부렸으며 어떤 경우에는 구부리지 않았습니까?

8 양보할 줄 모르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관련된 일에서는 안식일의 전통을 어기고 황소를 물가로 데려갔습니다. 혹은 황소나 그 새끼가 우물에 빠졌을 경우, 안식일을 어기고 끄집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민과 관련된 일에서는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도 [요구 조건]들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태 23:4; 누가 14:5) 예수에게는 대부분의 규칙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였지만, 바리새인들에게는 사람보다도 규칙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계명의 아들”이 됨

9, 10. 예수의 부모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어디에서 예수를 발견하였으며, 예수가 질문하였다는 말에는 무슨 뜻이 내포되어 있었습니까?

9 예수의 소년 시절에 있은 사건이 단 한 가지만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그 사건의 중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누가 2:46, 47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흘 뒤에 그를 성전에서 발견하였는데, 그는 교사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이해력과 대답에 한결같이 크게 놀라고 있었다.” 키텔의 「신약 신학 사전」(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은 여기에 나오는 ‘질문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소년의 호기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을 제시합니다. 이 단어는 사법적인 조사 때 사용되는 질문과 그리고 조사, 역질문을 가리킬 수 있으며, 심지어 마가 10:2과 12:18-23에 언급된 것과 같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파고드는 간교한 질문”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10 동 사전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단어의 용법으로 볼 때 그것은 ·⁠·⁠· 여부를 질문한 것일 수 있다. [누가] 2:46은 소년의 캐묻는 호기심을 암시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소년의 성공적인 논파를 암시하는 것이다. 47[절]은 후자의 견해에 잘 들어맞는다.”a 로더럼의 번역판은 47절을 이렇게 극적인 대결로 제시합니다. “이제 그의 말을 들은 사람은 모두 그의 이해력과 대답 때문에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로버트슨의 「신약 단어 도해」(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는 그들이 한결같이 크게 놀랐다는 말은 “마치 그들의 눈이 튀어나오는 것같이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는 의미라고 말합니다.

11. 마리아와 요셉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한 신학 사전은 무슨 암시를 합니까?

11 예수의 부모는 마침내 성전에 왔을 때,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2:48) 로버트슨은 이 표현의 그리스어 단어의 의미가 “일격을 가하여 쓰러뜨리다, 급습하여 쫓아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요셉과 마리아가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에 놀라 “쓰러졌다”고 부언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는 이미 깜짝 놀랄 만한 선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있은 이 일을 고려해 볼 때, 키텔의 「신약 신학 사전」은 “예수는 반대자들이 마침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을 충돌을 소년 시절에 이미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12. 예수께서 후에 종교 지도자들과 가진 토론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12 그리고 예수의 반대자들은 실제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러 해 후 예수께서 그런 식의 질문을 하여 바리새인들을 패배시키시자 마침내 그들은 “그 날부터는 ·⁠·⁠· 그분에게 감히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태 22:41-46) 사두개인들도 부활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게 되었으며, “그들은 더 이상 그분에게 단 하나의 질문도 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누가 20:27-40) 서기관들도 더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와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에, “아무도 그분에게 더 이상 질문할 용기가 없었”습니다.—마가 12:28-34.

13. 무엇 때문에 성전에서 있은 일이 예수의 생애에서 의미 심장한 것이 되었으며, 그것은 예수가 무엇을 더 알고 있었음을 시사합니까?

13 예수와 성전 교사들이 관련된 이 일이 예수의 소년 시절을 이야기하기 위해 특별히 선택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일이 예수의 생애의 전환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약 12세였을 때, 예수는 유대인들이 모든 규정을 지킬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부르는 “계명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자기와 요셉에게 일으킨 정신적 고통에 관해 예수에게 불평하였을 때, 아들의 대답은 그가 자기의 탄생이 기적에 의한 것이며 미래에 메시아가 될 것을 깨달은 것이 분명함을 암시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자기 아버지임을 매우 직접적인 방법으로 지적한 예수의 이러한 말이 그 점을 시사합니다. “왜 저를 찾아다니셨습니까?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것은 성서에 기록된 것으로서 예수가 한 최초의 말이며, 이 말은 예수가 여호와께서 자기를 땅으로 보내신 목적을 잘 알고 있었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 전체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누가 2:48, 49.

예수께서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이해하신다

14. 성전에서의 어린 예수에 관한 기록은 청소년들에게 무슨 흥미 있는 점을 명확히 이해하게 해줍니까?

14 이 기록은 특히 청소년들에게 감동적입니다. 이 기록은 예수가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얼마나 부지런히 연구했는가를 알려 줍니다. 성전의 라비들은 12세 된 이 “계명의 아들”의 지혜에 외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목공소에서 여전히 요셉과 함께 일하였고, 요셉과 마리아에게 “계속 복종”하였으며,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받는 은혜”가 더 많아졌습니다.—누가 2:51, 52.

15.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중에 청소년들을 어떻게 지지하셨으며, 이것은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15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중에 청소년들을 적극 지지하셨습니다.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분이 행하신 경이로운 일들과 또 성전에서 ‘우리가 기도하니, 구원해 주십시오. 다윗의 아들을!’ 하고 외치는 소년들을 보고 분개하여 그분에게 말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린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신 이 말씀을 여러분은 읽어 보지 못하였습니까?’” (마태 21:15, 16; 시 8:2) 그분은 충절을 고수하고 찬양을 드리는 수십만 명에 달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도 그에 못지 않게 지지하시는데, 이들 중에는 그러한 일을 하면서 생명을 희생하기까지 한 청소년들도 있습니다!

16. (ㄱ)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를 사도들 가운데 세우고서 그들에게 무슨 교훈을 하셨습니까? (ㄴ) 예수의 생애 중 매우 중대한 어떤 시기에 그분은 여전히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습니까?

16 사도들이 누가 가장 큰 자인가에 대해 논쟁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마지막이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팔로 안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을 근거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가 9:35-37) 더욱이, 예수께서는 끔찍한 시련과 죽음에 직면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마지막 여행을 하고 계시던 중에,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고 그들을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은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아이들을 팔로 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마가 10:13-16.

17. 예수께서는 왜 아이들과 친해지기가 쉬웠으며, 어린이들은 그분에 관해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17 예수께서는 어른의 세계에서 아이라는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다. 그분은 어른들과 함께 사셨고 그들과 함께 일하셨고 그들에게 복종하는 경험도 하셨으며, 또한 그들의 사랑을 받는 따뜻하고 안전한 느낌도 맛보셨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바로 이 예수께서 여러분의 친구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고, 여러분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한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요한 15:13, 14.

18. 우리는 특히 스트레스를 받거나 위험한 때에 무슨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생각을 기억해야 합니까?

18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는 것은 생각처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청소년 여러분, 그분은 여러분을 위해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해 계십니다. 마태 11:28-30에서 이러한 말씀을 읽어 볼 수 있는 바와 같습니다.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혹은 “나와 함께 나의 멍에 아래 들어와서”, 「신세—참조주」 각주]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기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나의 멍에는 친절하고 나의 짐은 가볍습니다.”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여호와를 섬기는 생애를 걸을 때, 예수께서 여러분 곁에서 걸으면서 멍에를 친절하게 하고 짐을 가볍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생각입니다!

19. 때때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에 대한 무슨 질문들을 검토할 수 있습니까?

19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들 중 몇 가지만 검토해 본 결과, 우리는 그분이 가르치신 대로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까? 우리는 신체적으로 병들거나 영적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들을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칩니까, 아니면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자신의 생각을 가르칩니까? 우리는 영적 진리에 대한 이해를 명백히 하고 머리 속으로 그려보고 구체화하고 깊게 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을 살펴보는 데 깨어 있습니까? 우리는 환경상 특정한 규칙의 적용을 양보함으로 사랑과 자비가 더 적절히 표현될 필요가 있을 때 그러한 규칙에 엄격히 고착하는 일을 피합니까? 그리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아이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내신 것과 동일한 부드러운 염려와 사랑의 친절을 나타냅니까? 예수가 소년 시절에 했던 대로 연구하도록 자녀들을 격려합니까?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확고하게 행동하면서도 암탉이 병아리들을 날개 아래 모으는 것같이 회개한 사람들을 기꺼이 따뜻하게 받아들입니까?—마태 23:37.

20. 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면서 무슨 고무적인 생각으로 마음을 위로할 수 있습니까?

20 우리가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로 가르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확실히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분의 멍에 아래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마태 11:28-30.

[각주]

a 물론 우리에게는 예수가 자기보다 연로한 사람들, 특히 백발의 노인과 제사장들에 대해 합당한 존경을 나타냈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비교 레위 19:32; 사도 23:2-5.

기억하십니까?

◻ 왜 무리가 예수에게 몰려들었습니까?

◻ 예수께서는 왜 때때로 일부 규칙들과 관련하여 양보하셨습니까?

◻ 우리는 예수가 성전 교사들에게 질문한 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예수께서 아이들을 대하신 일로부터 무슨 교훈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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