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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실제적인 방법
    파수대—2001 | 12월 15일
    • 멍에를 메고

      9, 10. 고대에 멍에는 무엇을 상징하였으며,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멍에를 메라고 초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9 마태 11:28, 29에서 인용된 말 가운데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라는 예수의 말씀에 유의하였습니까?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은 마치 멍에를 메고 일을 하는 것처럼 느꼈을지 모릅니다. 고대로부터 멍에는 노예 상태나 예속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세 27:40; 레위 26:13; 신명 28:48) 예수께서 만나셨던 많은 일용 노동자들은 실제로 어깨에 멍에를 메고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하였습니다. 멍에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목과 어깨에 멘 멍에가 편안할 수도 있었고 살갗이 벗겨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목수이셨던 예수께서는 멍에를 만드신 적이 있었을 것이며, 그분은 ‘친절한’ 멍에가 되도록 만드는 법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아마 그분은 피부가 닿는 부분에 가죽이나 천을 대어 가능한 한 편안한 멍에를 만드셨을 것입니다.

      10 예수께서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자신을, 일꾼의 목과 어깨에 ‘친절하게’ 느껴지도록 잘 만들어진 멍에를 제공하는 사람에 비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나의 짐은 가볍습니다”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멍에대가 사용하기 불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 역시 가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물론, 예수께서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멍에를 받아들이라고 초대하셨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당시 존재했던 압박감을 주는 모든 상황에서 즉시 벗어나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분이 알려 주신 대로 관점을 바꾸었다면, 상당히 많은 새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생활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조정하는 것 역시 사람들에게서 고통을 덜어 주었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점으로, 명백하고 확실한 희망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신도 새 힘을 얻을 수 있다

      11. 예수께서 단지 멍에를 바꾸어 멜 것을 제안하신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어떤 멍에를 다른 멍에로 바꾸어 메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랍니다. 로마는 계속 그 지역을 지배할 것이었는데, 그것은 오늘날 정부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세기에 로마의 과세 제도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건강과 경제 문제도 여전히 있을 것이었습니다. 불완전성과 죄가 지속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임으로 새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12, 13. 예수께서는 새 힘을 줄 수 있는 무슨 일을 강조하셨으며, 일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2 멍에에 관한 예수의 예가 적용되는 것은 주로 제자를 삼는 일과 관련이 있음이 분명히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주된 활동이 하느님의 왕국을 강조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마태 4:23) 그러므로 그분이 “나의 멍에를 메”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은 틀림없이 그분의 뒤를 따라 그분이 하신 동일한 활동을 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진실한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게 하셨습니다. 직업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인데도 말입니다. 그분이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 (마가 1:16-20) 그분은 그 어부들에게, 그분이 자신의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고 계셨던 그 일을 그분의 인도 아래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서 수행한다면 그들이 얼마나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13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 중 일부 사람들은 요점을 이해하고 적용하였습니다. 누가 5:1-11에서 읽게 되는 해변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십시오. 네 명의 어부는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의 그물이 가득 찼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개입하신 덕분이었습니다. 그들이 해변 쪽을 보자, 예수의 가르침에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그 네 사람에게 “이제부터 당신은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들은 배를 육지로 돌려 대었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습니다.

      14. (ㄱ)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새 힘을 주는 무슨 좋은 소식을 선포하셨습니까?

      14 기본적으로, 당신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가르치는 일은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 전역에 있는 약 600만 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나의 멍에를 메”라는 예수의 초대를 받아들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마태 4:19) 이 일에 전 시간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고, 전 시간 봉사는 못하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바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이 일이 새 힘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 일에는 그들이 즐기는 일을 하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왕국의 좋은 소식”—을 말해 주는 것이 포함됩니다. (마태 4:23) 좋은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기쁜 일이지만, 특히 이 좋은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더욱 그러합니다. 성서에는, 스트레스를 덜 받는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이 들어 있습니다.—디모데 둘째 3:16, 17.

      15. 당신은 생활과 관련된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15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으로부터 어느 정도 유익을 얻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가르침이 자신에게 새 힘을 주었고 자신의 생활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생애와 봉사의 직무에 관한 기록들, 특히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 쓴 복음서에 나오는 생활 원칙들 가운데 일부를 당신이 직접 검토해 봄으로 당신도 그 점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새 힘을 얻는 방법

      16, 17. (ㄱ) 예수께서 베푸신 주요 가르침 가운데 일부를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까? (ㄴ) 예수께서 베푸신 가르침을 적용함으로 새 힘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16 예수께서는 기원 31년 봄에,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가르침을 베푸셨습니다. 그 가르침은 일반적으로 산상 수훈이라고 불립니다. 산상 수훈은 마태 5장부터 7장 그리고 누가 6장에 기록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예수께서 베푸신 많은 가르침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예수께서 베푸신 그 밖의 가르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신 것 중 많은 것은 설명이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그에 따라 실천하는 것은 도전이 되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 장들을 주의 깊이 읽으면서 심사 숙고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분의 사상에 들어 있는 힘이 당신의 생각과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해 보십시오.

      17 예수께서 베푸신 가르침들은 분명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 가르침들을 생활에 적용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주요 가르침들을 분류하여 한 달 동안 매일 한 가지씩 실천해 보도록 합시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먼저, 그 가르침들을 너무 빨리 읽고 지나쳐 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겠습니까?”라고 물었던 부유한 통치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하느님의 율법에 나오는 매우 중요한 요구 조건들을 열거하시자, 그 사람은 자기가 이미 그러한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하느님의 원칙들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적용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서 그분의 활동적인 제자가 되라고 권하셨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그 정도까지 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누가 18:18-23) 그러므로 오늘날 예수의 가르침을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분의 가르침에 공감하는 것과 그 가르침을 실제로 받아들여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것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18. 이 기사에 실린 네모 안의 내용을 어떻게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설명해 보십시오.

      18 예수의 가르침을 검토하고 적용하기 위해, 먼저 이 기사에 실린 네모 안에 나오는 첫 번째 요점을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거기에서는 마태 5:3-9을 참조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 구절들에 나오는 훌륭한 교훈을 묵상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을 보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가르침 전체를 살펴보게 되면, 당신은 태도와 관련하여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됩니까? 지나치게 많은 스트레스가 당신의 생활에 주는 영향을 극복하기를 진실로 원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습니까? 영적인 일에 주의를 더 많이 기울여서 당신의 생각을 영적인 일로 더 많이 채운다면, 어떤 면으로 더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영적인 문제들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당신의 생활에서 덜 중요하게 여겨야 할 얼마의 일들이 있습니까? 그러한 조정을 한다면 당신은 현재 더 많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9. 통찰력과 이해력을 더 얻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19 이제 당신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도록 하십시오. 다른 하느님의 종과, 이를테면 당신의 배우자나 가까운 친족이나 친한 벗과 그 구절들에 대해 토의해 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잠언 18:24; 20:5) 부유한 통치자가 다른 누군가에게—예수께—관련된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가 들은 대답은 그가 행복하고 지속적인 삶을 누릴 전망을 더 밝아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구절들을 당신과 함께 토의하는 동료 숭배자들이 예수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대화는 당신은 물론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그렇게 하려고 시도해 보십시오.

      20, 21. 예수의 가르침들에 대해 배워 알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따를 수 있으며, 당신은 어떻게 자신의 진보를 평가할 수 있습니까?

      20 이 기사에 실린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들”이라는 네모 안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 가르침들은 당신이 하루에 적어도 한 가지 가르침을 고려해 볼 수 있도록 분류되어 있습니다. 먼저, 참조된 구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말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 말씀을 당신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숙고해 보십시오. 당신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기 위해 어떤 일을 더 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십시오. 그날 하루 내내 그 가르침을 적용하십시오. 그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혹은 그 가르침을 적용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하루를 더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하지만 그 가르침에 완전히 익숙해져야만 다음 가르침으로 넘어가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다음날에는 또 다른 가르침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이 끝나면,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네다섯 가지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 면에서 당신이 얼마만큼 성과를 거두었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주에도 계속해서 날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당신이 일부 가르침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어떤 그리스도인이든 그런 경험을 하게 됩니다. (역대 둘째 6:36; 시 130:3; 전도 7:20; 야고보 3:8) 셋째 주와 넷째 주에도 계속 그 가르침들을 적용하도록 하십시오.

      21 한 달 남짓 지나면 아마 당신은 서른한 가지 가르침을 모두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살펴보았든, 그로 인해 당신은 어떻게 느끼게 되겠습니까? 좀 더 행복하고, 어쩌면 좀 더 편안해져 있지 않겠습니까? 아주 조금밖에 발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신은 필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느끼거나 적어도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며, 가르침을 계속 살펴보는 방법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는 이 목록에 나오지 않은 다른 훌륭한 요점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한 가르침들 중 얼마를 알기 위해 조사해 보거나 그러한 가르침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보지 않겠습니까?—빌립보 3:16.

      22. 예수의 가르침을 따를 때 어떤 결과를 거둘 수 있으며, 우리가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또 다른 부면은 무엇입니까?

      22 당신은 예수의 멍에가, 전혀 무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으로 친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과 제자로서의 신분이 주는 짐은 가볍습니다. 예수의 절친한 벗이었던 사도 요한은 60년 넘게 직접 체험한 후에 이렇게 인정하였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의미하는 것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계명들은 짐스럽지 않습니다.” (요한 첫째 5:3) 당신도 그와 같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더 오래 적용하면 할수록 당신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매우 심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이 당신에게는 그 정도로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더욱더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상당히 많은 위안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 34:8) 그런데 예수의 친절한 멍에에는 당신이 고려해 볼 필요가 있는 또 다른 부면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점은 우리가 예수로부터 배우고 그분을 본받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러한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마태 11:29.

  • “내게서 배우십시오”
    파수대—2001 | 12월 15일
    •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마태 11:29.

      1. 예수에게서 배우는 것이 즐거운 일이며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합당하게 생각하고 가르치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셨던 기간은 짧았지만, 그분은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셨으며, 늘 행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하느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 16:33)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셨으며, “좋은 소식을 통하여 생명과 부패하지 않음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디모데 둘째 1:10) 당신이 자신을 그분의 제자로 여기고 있다면, 당신은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와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고려해 봄으로,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그분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관련되어 있습니다.—마태 10:24, 25; 누가 14:26, 27; 요한 8:31, 32; 13:35; 15:8.

      2, 3. (ㄱ) 예수의 제자란 무엇입니까? (ㄴ) ‘나는 누구의 제자인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제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어떤 것에 기울이는 사람 혹은 배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와 관련이 있는 단어가 이 기사의 주제 성구인 마태 11:29에 나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란 배우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제자”라는 단어를 대개 예수의 친밀한 추종자들에게 사용하는데, 그들은 그분이 전파하실 때 함께 여행하면서 그분에게서 교훈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단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하였을 수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매우 은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가 6:17; 요한 19:38) 복음서 필자들은 또한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마가 2:18)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 가르침을 주의하라”는 경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누구의 제자인가?’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마태 16:12.

      3 우리가 예수의 제자이고 그분에게서 배워 왔다면,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영적으로 새 힘을 얻는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보다 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되었음을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거나 부모이거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양치는 임무를 맡고 있다면, 우리의 돌봄 아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대하는 방식이 예수께서 그분의 돌봄 아래 있던 사람들을 대하던 방식과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

      4, 5. (ㄱ) 예수께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던 중에 어떤 일을 경험하셨습니까?

      4 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특히,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사람들과 만나신 기록이 많이 들어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그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도 유의해 보도록 합시다.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기원 31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전파 여행을 하시는 중에, “바리새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식사하자고 계속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 초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탁에 기대앉으셨다. 보라! 그 도시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그분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기대앉아 식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담긴 설화석고 용기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분의 뒤로 발치에 자리를 잡고 울면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여 머리털로 닦고 있었다. 또한 그분의 발에 부드럽게 입맞추며 향유를 발랐다.”—누가 7:36-38.

      6. “죄인”인 여자가 바리새인의 집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 수 있습니까?

      6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겠습니까?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37절)는, 궁핍한 사람들이 그러한 연회에 가서 남은 음식 얼마를 얻을 수 있게 허용한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집에는, 식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을 거두어 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여자의 행동은 특이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한쪽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불미스러운 평판을 받고 있는 여자였으며 잘 알려진 “죄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 여자의 죄가 많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음을 언급하셨습니다.—누가 7:47.

      7, 8. (ㄱ) 우리가 누가 7:36-38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수 있습니까? (ㄴ) 시몬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7 당신이 그 당시에 살았고 예수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그 여자가 당신에게 다가올 때 거북하게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까? (누가 7:45) 몹시 당황하였을 것입니까?

      8 당신이 다른 손님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면, 바리새인 시몬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까? “그것을 보고,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은 속으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만일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곧 그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터인데.’” (누가 7:39)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는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셨으며 그 여자가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 여자가 어떻게 하다가 죄를 짓는 생활에 빠지게 되었는지 성서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실제로 매춘부였다면, 그 성읍 사람들 즉 독실한 유대인들은 그 여자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9.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9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도와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에게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7:48-50) 그 기록은 여기서 끝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그 여자를 많이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불만스럽게 느낄지 모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그분은 그 여자를 축복하시고 보내셨습니다. 당신은 그 여자가 한탄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어지는 누가의 기록에 유의해 보십시오. 누가는 예수께서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선포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누가는 “여자들”이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자기 소유로 그들을 섬겼’다고 기술하였습니다. 회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그 여자가 이제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깨끗한 양심과 새로운 목적 의식과 하느님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사랑을 가지고 경건한 생활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누가 8:1-3.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차이점

      10. 시몬의 집에 있었던 예수와 그 여자에 대한 기록을 고려해 보는 것이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이 생생한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이 기록을 읽으면 마음이 감동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시몬의 집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느꼈을 것입니까? 당신은 예수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과 다소 비슷하게 느꼈을 것입니까?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이 하신 것과 똑같이 느끼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1.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우리가 성서적인 증거와 세속적인 증거를 연구해 보면, 바리새인들은 공익과 민족 복지의 수호자로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이 근본적으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사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율법이 구체적이 아니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언제나 적용 방법을 규정하여 율법의 틈새를 모두 메워 버림으로, 양심이 전혀 필요 없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문제들, 심지어 아주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까지도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a

      12.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12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친절하고 온화하고 공정하며 자신들의 일에 매우 적합한 사람들로 여겼다고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알려 줍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바리새인 가운데는 그러한 수준에 상당히 근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니고데모가 생각날지 모릅니다. (요한 3:1, 2; 7:50, 51) 때가 되자, 바리새인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15:5)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일부 유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로마 10:2) 복음서들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비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알려 주는데, 그들은 교만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책잡기를 좋아하고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알려 줍니다.

      예수의 견해

      13.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3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위선적인 사람들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지만, 그들 자신은 손가락으로도 그것들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짐은 무거웠으며, 그들이 사람들에게 지운 멍에는 가혹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회에서 골칫거리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이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해 왔”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태 23:1-4, 16, 17, 23.

      14, 15. (ㄱ) 예수께서 마태 레위를 대하신 방식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ㄴ) 우리는 이 기록으로부터 무슨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14 복음서 기록을 읽게 되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대다수의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주요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금 징수원인 마태 레위에게 제자가 되라고 초대하신 후에, 레위는 그분을 위하여 큰 환영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하여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금 징수원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습니다.’”—누가 5:27-32.

      15 레위 자신은 예수께서 그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도 올바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마태 9:13)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히브리 예언자들의 글을 믿는다고 주장하였지만, 호세아 6:6에 나오는 그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설사 잘못된 일이라 하더라도, 전통만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특정한 규칙들, 이를테면 어떤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나 일반적인 상식을 반영하는 규칙들을 엄격히 고수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은 내가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가?’

      16.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은 어떠하였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16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또 잡는 것.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실재하는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모든 결점을 찾아내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계속 방어적이 되게 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잘못을 자꾸 상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과 같은 아주 작은 향료 식물에 대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옷차림으로 자기들의 신앙심을 과시하였으며 그 민족을 인도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예수께서 보이신 모범과 일치시키려고 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항상 찾고 들추어내려는 경향을 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셨는가?

      17-19. (ㄱ)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예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설명하십시오. (ㄴ) 무엇 때문에 그 상황은 매우 긴장되고 불유쾌한 것이 되었습니까? (ㄷ)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갈 때 당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까?

      17 예수께서 문제를 다루신 방식은 바리새인들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매우 심각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예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자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누가 8:42-48에서 그 기록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18 마가의 기록은 그 여자가 “무서워하여 떨”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마가 5:33)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의문의 여지 없이,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위기 15:25-28에 의하면, 비정상적인 피의 유출이 있는 여자는 그러한 유출이 지속되는 기간은 물론 유출이 그친 후 일주일 동안도 부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만지는 모든 물건뿐만 아니라 그 여자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까지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께 다가가기 위해 군중을 헤치고 나가야 하였습니다. 2000년이나 지난 후인 지금 그 기록을 읽어 보아도, 불안에 떠는 그 여자가 몹시 안쓰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19 당신이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보았을 것입니까?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을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친절하고 사려 깊게 사랑으로 대하셨으며, 그 여자가 일으켰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마가 5:34.

      20. 레위기 15:25-28이 오늘날 요구된다면, 우리는 어떤 난처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습니까?

      20 이 일로부터 교훈을 얻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당신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레위기 15:25-28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요구된다고 가정하고, 한 그리스도인 여자가 그 법을 범하여 심한 혼란과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엄하게 충고하면서 공개적으로 그 여자에게 창피를 줄 것입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아니,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의 모범을 따라 친절하고 생각 깊고 사려 깊게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본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1. 율법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1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로부터 새 힘을 얻었다고 느꼈으며, 정신이 고무되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이 명확한 경우, 그것은 꼭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이 개괄적인 것만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사람들의 양심이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살면서 숨을 돌릴 수 있을 만한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마가 2:27, 28)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셨으며, 그들이 실수를 할 때에도 기꺼이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러하셨습니다.—요한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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