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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레 제3장 」 32-4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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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이 말을 그들에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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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
예레 제3장 」 32-42면

제3장

“너는 이 말을 그들에게 해야 한다”

1. (ㄱ) 예수와 예레미야는 어떤 면에서 유사합니까? (ㄴ) 우리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예레미야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좋은 소식을 전할 때 따라야 할 최상의 모범이십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1세기에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지켜보면서 예언자 예레미야를 떠올렸습니다. (마태 16:13, 14) 예수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도 하느님에게서 전파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일례로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는 이 말을 그들에게 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하느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예레미야 13:12, 13; 요한 12:49) 또한 예레미야는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예수께서 나타내신 것과 비슷한 특성들을 나타냈습니다.

2.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사람들처럼 어떻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2 하지만 일부 증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전파 활동은 예레미야 시대와는 차이가 많아요. 그는 하느님께 헌신한 민족을 상대로 그분의 대변자로 일했지만, 우리가 전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호와를 모르잖아요.’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시대에 대다수의 유다 사람들은 “지혜롭지 못했고” 참하느님을 버렸습니다. (예레미야 5:20-22 낭독) 그들이 여호와께서 받아들이실 만한 숭배를 드리려면 변화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참숭배를 추구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어떻게 예레미야를 본받아 참하느님을 섬기고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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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손을 나의 입에 대셨다’

3. 예레미야가 활동을 시작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어떤 의미 있는 행동을 하셨으며, 그로 인해 그는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3 기억하겠지만 예레미야는 예언자로 봉사를 시작했을 때 이러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야 하며, 내가 너에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해야 한다. 그들의 얼굴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이다.” (예레미야 1:7, 8)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는 뜻밖의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손을 내밀어 나의 입에 대셨다. 그런 다음 여호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자, 내가 내 말을 너의 입에 넣어 주었다. 보라, 내가 오늘 너를 ··· 임명하였다.’” (예레미야 1:9, 10) 그때부터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능한 하느님의 대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a 그분의 전적인 지원을 받는 가운데, 예레미야는 신성한 봉사에 대해 점점 더 열정을 갖게 되었습니다.—이사야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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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파 활동에서 열심을 다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보십시오.

4 오늘날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에게 실제로 손을 대시는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자신의 영을 통해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려는 강한 열망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분의 많은 종들은 열심으로 불타오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스페인에 사는 마루하가 있습니다. 그 자매는 40년 이상 팔다리가 마비된 채 살아왔습니다. 그는 호별 방문 봉사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봉사에 참여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편지 봉사입니다. 마루하는 딸에게 편지에 쓸 내용을 불러 줍니다. 한번은 봉투마다 전도지를 동봉해서 한 달 동안 15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근처의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가정에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루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보낸 편지 중에 하나라도 올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여호와의 축복으로 성서 연구를 시작하게 될 거야.” 그 지역의 장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마루하 같은 자매들은 사람들이 참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도록 가르칩니다. 그런 자매들이 있는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합니다.”

5. (ㄱ) 예레미야는 무관심 속에서도 어떻게 열심을 유지했습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서 열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5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 주민들은 대부분 하느님의 진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전하는 소식에 무관심한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전파 활동을 그만두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여호와의 격노로 가득 차게 되어 억제하느라고 지쳤습니다.” (예레미야 6:10, 11)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열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방법은 참하느님을 대표하는 비할 데 없는 특권에 대해 숙고해 보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세상의 탁월한 사람들은 참하느님의 이름에 치욕을 돌려 왔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시대의 제사장들처럼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이 우리 구역에 사는 사람들을 속여 왔다는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레미야 2:8, 26, 27 낭독) 그와는 대조적으로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은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수단입니다. (애가 3:31, 32) 이러한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은 좋은 소식을 전하고 양 같은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열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6. 예레미야는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일들을 겪었습니까?

6 아마 당신도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에서 열심을 유지하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정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도 여호와를 섬기면서 거짓 예언자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그 한 가지 사례를 예레미야 28장에서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의 소식을 듣지 않았으며, 그는 종종 자신이 외톨이라고 느꼈습니다. (예레미야 6:16, 17; 15:17)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는 적들과 맞서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예레미야 26:11.

우리가 좋은 소식을 전할 때 여호와께서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오 여호와여, 당신이 저를 꾀셨습니다”

7, 8.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꾀신’ 것이 어떻게 그에게 유익이 되었습니까?

7 예레미야는 매일같이 조롱과 모욕을 당하던 때에 하느님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20:7, 8에 나오는 표현 즉 여호와께서 충실한 예레미야를 “꾀셨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까?—낭독.

8 여호와께서 교활하고 음흉한 계략을 써서 예레미야를 속이셨을 리는 만무합니다.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긍정적이고 유익한 의미로 예레미야를 “꾀셨습니다.” 예레미야는 반대가 너무 심해서 더 이상 하느님이 주신 임명을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능한 분의 지원과 도움 덕분에 그 임명을 완수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그를 압도하시어 그분이 예레미야와 그의 인간적 성향보다 훨씬 더 강함을 나타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사람이 한계에 이르러서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힘을 주셨다는 면에서 그분은 예레미야를 속이셨습니다. 그 예언자는 자신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 때문에 무관심과 반대와 폭력에 직면해서도 계속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9. 예레미야 20:11의 말씀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여호와께서는 “무시무시한 용사”와도 같이 예레미야 곁에서 그를 지원해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20:11)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도 힘을 주시어 참숭배에 대한 열심을 유지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어도 계속 인내하게 해 주실 수 있습니다.

10. 당신은 반대에 직면할 때 어떻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10 사도 바울은 반대에 직면한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면서 이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에 합당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리하여 ··· 여러분이 한 영으로 굳건히 서 있고 한 영혼으로 좋은 소식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나란히 힘써 싸우고 있고, 어떠한 점에서도 여러분의 반대자들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내가 들을 수 있게 하십시오.” (빌립보 1:27, 28) 예레미야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처럼 당신도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전능한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조롱이나 공격을 당한다면, 여호와께서 당신 곁에 계시며 힘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예레미야에게 그렇게 하셨고 우리의 많은 형제들에게도 그렇게 해 오셨으며 따라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에게 도와 달라고 간구하고 그분이 기도에 응답하실 것임을 확신하십시오. 당신이 난관에 직면했을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잘 대처하게 된다면, 당신도 말하자면 “꾐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사도 4:29-31 낭독.

11, 12. (ㄱ) 봉사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어떤 조정을 할 수 있습니까? (ㄴ) 39면에 있는 사진에서처럼 자신의 구역에서 증거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있습니까?

11 예레미야의 봉사에 대한 성서 기록은 좋은 소식을 더 효과적으로 전하는 봉사자가 되는 데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자로 20년 넘게 봉사한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계속 말하였습니다. 일찍 일어나 말하였으나, 여러분은 듣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 25:3) 그는 하루의 활동을 느지막하게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찍부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본으로부터 어떤 실용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많은 회중의 전도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버스 정류장이나 기차역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시골 지역의 많은 증인은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서 일찍부터 일을 하는 농부들과 그 밖의 사람들을 방문합니다. 예레미야의 충실한 봉사를 통해 배우게 된 이러한 교훈을 어떻게 개인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까? 야외 봉사를 위한 모임에 제시간에 참석하기 위해 충분한 여유를 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12 그에 더해, 여러 지역에서는 오후나 저녁에 호별 방문 봉사를 하여 종종 훌륭한 결과를 거둡니다. 일부 전도인들은 밤에도 주유소나 식당이나 24시간 문을 여는 사업장을 방문하여 전파합니다. 사람들이 집에 있든 다른 곳에 있든 그들을 만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간에 전파하기 위해 생활을 조정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여호와의 소식을 선포할 때 그분의 지원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14. (ㄱ) 예레미야의 본은 재방문에 어떻게 적용됩니까? (ㄴ) 어떤 예를 보면 재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13 때때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성전의 문이나 예루살렘의 성문에 서서 예언의 소식을 선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레미야 7:2; 17:19, 20) 예레미야는 그처럼 문에서 소식을 선포함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많은 사람에게 전했습니다. 도시의 탁월한 사람과 상인과 사업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수시로 같은 문으로 출입했기 때문에, 그는 얼마의 사람들에게 반복적으로 소식을 전하면서 그들이 이전에 들은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우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이 점은 관심을 나타낸 사람들을 재방문하는 것과 관련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14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느님의 예언자로 수행하는 활동이 사람들의 생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람들에게 말하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수행할 수 없는 입장이 되자 자신의 벗인 바룩을 대신 보냈습니다. (예레미야 36:5-8 낭독) 우리는 이 면에서 어떻게 예레미야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집주인에게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하면 반드시 약속을 지킵니까? 재방문이나 가정 성서 연구를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킬 수 없을 경우 다른 사람이 대신 방문하도록 마련합니까?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예’라는 말은 ‘예’를 ··· 의미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5:37) 우리는 진리와 질서의 하느님을 대표하기 때문에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고린도 첫째 14:33, 40.

39면 삽화

더 많은 사람에게 증거하기 위해 개인 생활과 전파하는 방법을 조정해 보았습니까?

15, 16. (ㄱ) 많은 사람이 예레미야의 본을 따라 어떻게 봉사의 직무를 확장했습니까? (ㄴ) 40면에 나오는 칠레의 경험담에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습니까?

15 예레미야는 바빌론에 있는 유다 사람들에게 회복에 관한 여호와의 “선한 말”을 편지로 써서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예레미야 29:1-4, 10)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 조만간 하실 일에 관한 “선한 말”을 편지나 전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습니다. 당신도 그러한 방법으로 친척이나 먼 곳에 사는 사람이나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

16 오늘날 왕국 전도인들도 봉사의 직무를 완수한 예레미야의 본을 따를 때 흔히 좋은 결과를 거두게 됩니다. 칠레의 한 증인은 지하철역에서 나오는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여자는 성서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으며 집에서 성서 토의를 할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증인 자매는 그 여자의 주소를 받아 적지 않았습니다. 후에 자매는 그 여자가 진리에 더 관심을 갖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는 여호와께 도와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음 날 자매는 같은 시간에 다시 그 지하철역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주소를 받아 적었으며 나중에 그 여자의 집에 찾아가 성경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머지않아 하느님께서는 사탄의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하고 좋은 소식에 믿음을 두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애가 3:31-33 낭독) 따라서 이 사실을 잊지 말고 구역을 성실히 돌봐야 하겠습니다.

40면 삽화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빠짐없이 돌보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혹시 그들이 듣고서 각자 돌아설지 모른다’

17. 어떻게 우리의 구역에서 예레미야의 태도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17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약 10년 전에 그분은 예레미야를 통해 바빌론에 유배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시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이러합니다. “내가 내 눈을 그들 위에 좋게 두어, 틀림없이 그들을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내가 그들을 세우겠고, 허물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심겠고, 뽑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는 그 사람들에게 “너의 미래에는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24:6; 26:3; 31:17) 예레미야는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면서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권고를 전달했습니다. “아무쪼록, 각자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너희의 행위를 선하게 하여라.” (예레미야 35:15) 당신도 구역 내의 사람들에게 깊은 개인적 관심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더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18, 19. (ㄱ) 우리는 좋은 소식을 전할 때 어떤 견해를 배척해야 합니까? (ㄴ) 우리는 예레미야의 어떤 태도를 본받아야 합니까?

18 동족에 대한 예레미야의 깊은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되었을 때에도 그는 그들에게 계속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애가 2:11 낭독) 유다 사람들이 그러한 재난을 당한 것은 자신들의 책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했잖소’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닥친 일을 크게 슬퍼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봉사도 그저 의무감으로 하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증거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에는 위대한 하느님과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나타나 있어야 합니다.

42면 삽화

사람들에게 그들의 복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까?

19 이 세상의 어떤 특권이나 지위도 참하느님을 대표하여 증거하는 것보다 더 영예로울 수는 없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당신의 말씀이 발견되어, 제가 그것을 먹기 시작하였습니다. 당신의 말씀은 저에게 마음의 환희와 기쁨이 됩니다. 오 ··· 여호와여,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불려졌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5:16) 우리가 좋은 소식을 전하면 더 많은 사람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알고 사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본을 따라 사랑에서 우러나와 열심히 봉사한다면, 그 일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본을 따라 여호와의 “선한 말”을 널리 전하기 위해 앞으로 어떤 방법을 더 시도해 볼 수 있습니까?

a 이 경우처럼 종종 여호와께서는 소식을 전하는 천사들이 마치 그분이 직접 말씀하시는 것처럼 행동하게 하셨다.—재판관 13:15, 22; 갈라디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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