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인내와 위로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여러분이 ··· 갖게 하[시기를 빕니다].”—로마 15:5.
1. 그리스도교국의 많은 그림들은 예수를 어떻게 묘사하며, 그러한 묘사가 예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은 웃는 모습을 보이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고대 로마의 관리가 썼다는 허위 주장이 들어 있는 한 문서에서는 예수를 그렇게 묘사합니다. 11세기경부터 지금의 형태로 알려져 있던 그 문서는 많은 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a 많은 그림들을 보면, 예수는 웃는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 근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그러한 묘사는 결코 예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일 수 없습니다. 복음서에서는 그분을 따뜻하고 마음이 친절하며 감정이 풍부한 사람으로 묘사합니다.
2.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발전시킬 수 있으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입니까?
2 진정으로 예수를 알게 되려면, 분명히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실제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로 가득 채워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생각”—다시 말해서, 그분의 감정과 지각력과 사고 방식과 추리력—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 주는 얼마의 복음서 기록들을 검토해 보도록 합시다. (고린도 첫째 2:16) 그렇게 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겠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로마 15:5)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생활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세워 놓으신 본을 따를 준비를 더 잘 갖출 수 있을 것입니다.—요한 13:15.
접근하기 쉬움
3, 4. (ㄱ) 마가 10:13-16에 나오는 기록의 배경은 어떠합니까? (ㄴ) 어린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으려고 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3 사람들은 예수께 마음이 끌렸습니다. 갖가지 상황에서, 나이와 배경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담 없이 그분에게 접근하였습니다. 마가 10:13-16에 기록되어 있는 일을 고려해 봅시다. 그 일은 그분의 봉사의 직무가 끝나 갈 무렵, 그분이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실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으로 가고 계실 때 있었던 일입니다.—마가 10:32-34.
4 그때의 상황을 머리 속에 그려 보십시오. 사람들은 유아들을 포함하여 아이들을 데려오기 시작하는데, 예수께서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렇게 합니다.b 하지만 제자들은 아이들이 예수께 오는 것을 막으려고 합니다. 어쩌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틀림없이 그 중대한 몇 주 동안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귀찮게 여기실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잘못 생각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아시자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이들을 자신에게로 부르십니다.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고 그들을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마가 10:14) 그리고 나서 그분은 참으로 부드럽고 사랑 넘친 태도를 보여 주는 행동을 하십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아이들을 팔로 안으시고 ··· 축복하셨다.” (마가 10:16) 예수께서 부드럽게 팔로 안아 주시자 분명히 아이들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5. 마가 10:13-16의 기록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5 이 간단한 기록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셨는지에 관해 많은 점을 알려 줍니다. 그분이 접근하기 쉬운 분이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하늘에 계셨을 때 높은 지위에 있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불완전한 인간들에게 위압감을 주지도 그들을 업신여기지도 않으셨습니다. (요한 17:5) 아이들조차도 그분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는 사실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한 번도 미소를 짓거나 웃지 않는 냉정하고 재미없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렸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온갖 연령층의 사람들이 예수께 접근하였는데, 그것은 그분이 많은 관심을 나타내는 따뜻한 사람임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분이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6. 장로들은 어떻게 좀더 접근하기 쉬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6 이 기록을 숙고해 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접근하기 쉬운 사람인가?’ 이 위급한 때에, 하느님의 양들에게는 접근하기 쉬운 목자들, “바람을 피하는 피신처”와 같은 남자들이 필요합니다. (이사야 32:1, 2; 디모데 둘째 3:1) 장로 여러분, 여러분이 형제들에 대해 진지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관심을 발전시키고 형제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주려고 한다면, 형제들은 여러분이 자기들에게 관심이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형제들은 여러분의 얼굴 표정을 보고 여러분의 말소리를 듣고 여러분의 친절한 태도를 관찰함으로 그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따뜻함과 관심은 신뢰감이 생기게 해 줄 수 있으며, 그리하여 아이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한 그리스도인 여자는 자기가 한 장로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형제는 부드럽고 동정심 있는 태도로 나에게 말하였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더군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음
7. (ㄱ)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려 깊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ㄴ) 예수께서 한 눈먼 사람의 시력을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신 이유는 무엇일 수 있습니까?
7 예수는 사려 깊은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깊은 동정심을 느끼셨으며, 그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셨습니다. (마태 14:14) 그분은 또한 다른 사람들의 한계와 필요에도 사려 깊으셨습니다. (요한 16:12)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께 눈먼 사람을 데려와서는 그를 고쳐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셨는데, 점진적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처음에 그 사람은 단지 흐릿하게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나무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이 걸어다”닌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그의 시력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이 그 사람을 점진적으로 고쳐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도 어둠 속에서만 살던 사람이 햇빛과 복잡한 세상을 갑자기 보고 받게 될 충격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마가 8:22-26.
8, 9. (ㄱ)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이 데카폴리스 지역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ㄴ) 예수께서 한 귀먹은 남자를 고쳐 주신 일을 설명해 보십시오.
8 또한 기원 32년 유월절 후에 있었던 일을 고려해 보십시오.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 동쪽에 있는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들어갔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 그곳에서 큰 무리가 예수 일행을 발견하고는, 병들고 장애가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왔고, 그분은 그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마태 15:29, 30) 흥미롭게도 예수께서는 특히 한 남자에게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 이 일에 관해 기록한 유일한 사람인 복음서 필자 마가는 그때 있었던 일을 알려 줍니다.—마가 7:31-35.
9 그 남자는 귀먹고 거의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특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잘 탄다는 것을 감지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다소 이례적인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사람을 무리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몇 가지 몸짓을 사용하여 그분이 무엇을 하려는지를 그 사람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그분은 “손가락을 그 사람의 두 귀에 넣고 침을 뱉으신 다음 그의 혀를 만지셨”습니다. (마가 7:33)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기도하는 듯 한숨을 쉬셨습니다. 이러한 묘사하는 행동은 그 사람에게 ‘내가 당신에게 하려는 일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입니다’라는 취지를 전달하였을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께서는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 7:34) 그러자 그 사람은 청력이 회복되어,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 11. 회중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0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 참으로 사려 깊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민감하셨으며, 또한 그러한 동정심 있는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훈계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동료감을 보이며, 형제 애정을 가지고,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며, 겸손한 정신을 가지십시오.” (베드로 첫째 3:8) 이 말씀은 분명히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할 것을 요구합니다.
11 회중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함으로, 우리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을 대접함으로 그들의 감정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마태 7:12) 그렇게 하는 데는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그리고 우리가 말하는 방법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포함될 것입니다. (골로새 4:6) ‘생각 없이 하는 말은 칼로 찌르는 것과 같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잠언 12:18) 가족 내에서는 어떠합니까? 서로 진실로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합니다. (에베소 5:33) 그러한 남편과 아내는 거친 말이나 가혹한 비평이나 신랄하게 빈정대는 말을 피하는데, 그러한 것들은 모두 쉽게 치료되지 않는 감정적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자녀들 역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랑이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감정도 사려 깊게 고려합니다. 시정이 필요할 경우, 그러한 부모들은 자녀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방법으로 그리고 불필요하게 창피를 주지 않는 방법으로 시정을 베풉니다.c (골로새 3:21) 우리가 그처럼 다른 사람을 사려 깊게 고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기꺼이 신뢰하는 태도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어떤 균형 잡힌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까?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 대해 균형 잡힌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읽으실 수 있었습니다. (요한 2:24, 25) 그런데도 그분은 제자들의 불완전성만이 아니라 그들의 좋은 특성들도 보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여호와께서 이끄신 그 사람들의 잠재력을 보셨습니다. (요한 6:44)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긍정적인 견해는 그분이 그들을 대하신 방법에서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그분은 그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태도를 나타내셨습니다.
13. 예수께서는 자신이 제자들을 신뢰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3 예수께서는 그러한 신뢰하는 태도를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그분은 이 땅을 떠나시면서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에게 막중한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손에 전세계의 왕국 권익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마태 25:14, 15; 누가 12:42-44) 그분은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면서, 사소한 일에서까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이 제자들을 신뢰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은 기적으로 음식의 양을 늘려서 무리를 먹이셨을 때,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책임을 위임하셨습니다.—마태 14:15-21; 15:32-37.
14. 마가 4:35-41에 나오는 기록을 어떻게 요약할 수 있습니까?
14 또한 마가 4:35-41에 나오는 기록도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때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동쪽으로 건너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들이 해변을 떠난 직후에 예수께서는 배 뒤편에 누우셔서 깊은 잠이 드셨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에 ‘크고 격렬한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러한 폭풍이 이는 일은 갈릴리 바다에서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저지대(해수면보다 약 200미터 낮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주위 지역보다 공기가 훨씬 더 따뜻하며, 그로 인해 대기가 불안정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그에 더하여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에서 요르단 골짜기 쪽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칩니다. 잠잠하다가도 한순간 갑자기 맹렬한 폭풍이 불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자라셨으므로, 흔히 있는 그러한 폭풍에 대해 틀림없이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자들의 기술을 신뢰하고 편히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 가운데는 어부도 있었습니다.—마태 4:18, 19.
15. 우리는 제자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예수의 태도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15 우리는 제자들을 기꺼이 신뢰하는 예수의 태도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항상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이 제대로 되게 하려면, 내가 직접 해야 돼!’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치게 될 위험이 있으며 어쩌면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을 불필요하게 빼앗길 수도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적절한 일과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경험을 쌓고 훈련을 받을 기회를 빼앗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지혜로울 것입니다. 정직하게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것임을 신뢰하고 그들에게 얼마의 일을 기꺼이 위임하는가?’
그분은 제자들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셨다
16, 17.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에, 사도들이 그분을 버리게 될 것임을 알고 계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어떤 말씀을 해 주셨습니까?
16 예수께서는 또 다른 중요한 면으로 제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그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실은 그분이 자신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에 사도들에게 하신 확신을 주는 말씀 가운데서 명백히 볼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17 그 저녁은 예수께 매우 분주한 저녁이었습니다. 그분은 사도들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써 실례를 통해 겸손에 관한 교훈을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될 만찬식을 제정하셨습니다. 그 후 사도들은 자기들 중 누가 가장 크냐 하는 문제를 두고 다시 한 번 격렬한 논쟁에 휘말렸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몹시 꾸짖으신 것이 아니라 계속 참을성을 나타내시면서 그들과 함께 추리하셨습니다. 그분은 무슨 일이 눈앞에 다가와 있는지를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밤에 나와 관련하여 걸려 넘어질 것입니다. ‘내가 목자를 치겠다. 그러면 양 떼는 흩어질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 26:31; 스가랴 13:7) 그분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벗들이 그분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그분을 버릴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들을 질책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일으킴을 받은 후에, 여러분에 앞서 갈릴리로 가겠습니다.” (마태 26:32)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을 버리더라도 그분이 그들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러한 혹독한 시련이 지나간 후에 그분은 그들을 다시 만나실 것이었습니다.
18. 갈릴리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중대한 사명을 맡기셨으며, 사도들은 어떻게 그 사명을 철저히 이행하였습니까?
18 예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후에 갈릴리에서,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11명의 충실한 사도에게 나타나셨는데, 아마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28:16, 17; 고린도 첫째 15:6) 그곳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중대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마태 28:19, 20) 사도행전에서는 사도들이 그 사명을 철저히 이행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합니다. 1세기에 사도들은 앞장서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활동을 충실하게 수행하였습니다.—사도 2:41, 42; 4:33; 5:27-32.
19. 예수께서 부활되신 후에 하신 행동들은 그리스도의 생각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19 이러한 의미 깊은 기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생각에 관해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서 가장 나쁜 점들까지 보셨지만,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한 13:1) 사도들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자신이 그들을 믿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의 확신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분이 사도들에게 표현하신 확신과 믿음은 틀림없이 그들을 강화시켜 주어 그분이 그들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수행하려고 결심하게 해 주었을 것입니다.
20, 21. 우리는 동료 신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20 우리는 이 면에서 그리스도의 생각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동료 신자들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도록 하십시오. 가장 나쁜 점만 생각한다면, 아마 당신의 말과 행동에 그것이 반영될 것입니다. (누가 6:45) 하지만 성서는 우리에게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알려 줍니다. (고린도 첫째 13:7) 사랑은 긍정적이지 부정적이 아닙니다. 사랑은 허물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세워 줍니다. 사람들은 위압감을 줄 때보다는 사랑과 격려에 더 쉽게 반응을 보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확신을 표현함으로 그들을 세워 주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1)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형제들에 대해 긍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형제들을 세워 주는 방식으로 대할 것이며 형제들에게서 최상의 것을 이끌어 낼 것입니다.
21 그리스도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분명히 나타내는 데는 단지 예수께서 하신 특정한 일을 본받는 것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점들이 관련됩니다. 앞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가 진실로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행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분이 보신 것처럼 사물을 보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우리는 그분의 성품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즉 임명받은 일에 대해 그분이 가지셨던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그 위조 문서를 만든 사람은 그 문서에서 예수의 머리카락, 수염, 눈의 색깔을 비롯하여 그분의 외모를 상상한 모습을 묘사한다. 성서 번역자 에드거 J. 굿스피드는 그 위조 문서가 “예수의 외모에 관해 묘사한 화가용 지침서에 들어 있는 내용을 널리 유포시키기 위해 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b 아이들의 연령층이 다양했던 것 같다. 여기에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에게도 사용되고 있다. (마가 5:39, 42; 10:13) 하지만 그와 평행하는 기록에서 누가는 유아들에게도 사용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누가 1:41; 2:12; 18:15.
c 「파수대」 1998년 4월 1일호 “당신은 타인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가?” 기사 참조.
설명할 수 있습니까?
● 예수께서는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제자들이 막으려고 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려 깊음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 우리는 제자들을 기꺼이 신뢰하셨던 예수의 태도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표현하셨던 확신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16면 삽화]
아이들은 예수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다
[17면 삽화]
예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동정심 있게 대하셨다
[18면 삽화]
접근하기 쉬운 장로들은 축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