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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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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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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2
파92 4/1 16-19면

엘리야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날의 인간 사회는 믿음을 서서히 약화시킨다. 지식인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비웃는다. 위선적인 종교인들은 하나님을 조롱한다. 그리고 일반 세상은 점점 더 하나님과 전연 상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태도로 인해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든, 낙심하든, 냉담해지든, 아무튼 그 결과는 동일하다. 즉 개인의 믿음이 침식된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결핍을 “얽매이기 쉬운 죄”라고 말한 것도 당연하다!—히브리 12:1.

아마 그러한 이유로 바울은 강한 믿음을 가진 남녀의 생활에 각별히 우리의 주의를 끌고자 했을 것이다. (히브리 11장) 그러한 본들은 우리를 고무시켜 주고 믿음을 강화시켜 준다. 예로서, 예언자 엘리야를 고려해 보자. 장기간 전적으로 예언자로 활동한 그의 행적의 초기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자. 그는 아합 왕과 이교도 아내인 왕비 이세벨이 다스리던 기간에 살았다. 그 시기는 지금처럼 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쇠퇴한 때였다.

타락한 열 지파 왕국

그들은 참으로 걸맞은 부부였다! 아합은 이스라엘 열 지파 왕국의 일곱째 왕이었다. 앞의 여섯 왕들이 악했다지만, 아합은 더욱 악했다. 그는 그 땅의 타락한 송아지 숭배를 지속시켰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여, 그 나라 역사상 거짓 신 바알의 가장 강력한 숭배 형태를 도입하였다.—열왕 상 16:30-33.

이세벨은 어려서부터 바알 숭배에 빠져 있었다. 아스다롯(바알의 아내)의 제사장인 그의 아버지 엣바알은 이스라엘의 바로 북쪽에 있는 왕국인 시돈의 왕이 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해했었다. 이세벨은 도덕적으로 약한 남편에게 영향을 주어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확립하였다. 얼마 안 있어, 이스라엘에는 거짓 신의 예언자 450명과 여신 아세라의 제사장 400명이 있게 되었으며, 이들 모두가 왕의 식탁에서 식사하였다. 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그들의 숭배 형태는 참으로 가증하였다! 남근 숭배 상징물, 다산 의식, 성전 매춘부(남녀 모두), 심지어 자녀 희생—이러한 부면들이 혐오감을 자아내는 그 종교의 특징이었다. 아합의 지원으로, 그 종교는 장애 없이 이스라엘 왕국 전역에 널리 퍼졌다.

수백만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과 물 순환계의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잊어버렸다. 그들에게는, 건기가 끝날 때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려 주는 신이 바알이었다. 해마다 그들은 건기가 끝나기를 기대하면서 소위 다산과 우기의 신인 그 ‘구름을 탄 자’를 바라보았다. 해마다 비가 왔다. 그 때마다 바알이 그 영예를 받았다.

엘리야가 가뭄을 선포하다

엘리야가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아마 비가 오지 않는 긴 여름철이 끝날 때—바알이 생명을 주는 비를 내려 주기를 사람들이 기다리기 시작할 바로 그 때—였을 것이다.a 그는 성서 기록 가운데 우레 소리와도 같이 갑자기 나타난다. 그의 배경에 관하여 거의 알려진 바 없으며, 그의 가계에 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하지만 우레와는 달리, 엘리야는 폭우를 알리는 자가 아니었다. 그는 아합에게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열왕 상 17:1.

수수한 털옷을 입은 사람 엘리야를 상상해 보라. 그는 바위가 많은 언덕 지대인 길르앗 태생이며, 양 떼를 치는 평범한 목자들 사이에서 자란 것 같다. 그는 이름 난 상아궁과 호화롭고 특이한 장식품과 위압적인 우상들이 있는 거대한 궁전에서 세력 있는 왕 아합 앞에 서 있었을 것이다. 여호와에 대한 숭배가 거의 잊혀진 곳, 사람들로 붐비는 요새화된 도시 사마리아에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그의 신 바알이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제부터 수년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엘리야는 선포한다.

그는 어디에서 그러한 믿음을 얻었는가? 거만하고 배도한 왕 앞에 서 있을 때 그는 두려운 느낌이 들지 않았겠는가? 아마 그랬을 것이다. 천여 년 후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는 엘리야가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고 확언한다. (야고보 5:17) 하지만 엘리야의 말에 유의하자. “나의 섬기는[‘그분 앞에 내가 실제로 서 있는’, 「신세」]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사체로는 본지에서) 엘리야는 자신이 여호와의 종으로서 아합의 보좌보다 훨씬 더 높은 보좌—우주의 주권자이신 주의 보좌—앞에 서 있음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바로 그 보좌의 대표자이자 특사였다. 그러한 인식을 가진 그가 여호와의 축복을 상실한 미약한 인간 군주인 아합 앞에서 무엇을 두려워했겠는가?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그토록 실제적인 분이 되신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예언자 엘리야는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대하신 기록을 연구했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만일 그들이 돌이켜 거짓 신들을 숭배하면 가뭄과 기근으로 벌하겠다고 경고하신 바 있다. (신명 11:16, 17) 엘리야는 여호와께서 항상 자신의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분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야고보 5:17.

지시에 따름으로써 나타낸 믿음

하지만 그 때, 엘리야는 자신의 선포로 인하여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또 다른 부면의 믿음이 요구되는 때였다. 살아 남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여호와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열왕 상 17:3, 4.

엘리야는 즉시 순종하였다. 그는 자기 나라에 임한 가뭄과 기근을 생존하기 원한다면, 여호와께서 무슨 마련을 베푸시든 그 마련에 의지해야 하였다. 그렇게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숨어서, 계속 여러 달 동안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해야 하였다. 또한 까마귀—모세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된, 동물의 시체를 먹는 새—가 가져다 주는 고기와 떡을 먹어야 하였고, 여호와를 신뢰하여 그러한 고기는 죽은 동물의 고기가 아니라 법에 따라 적절히 피를 빼낸 고기임을 믿어야 하였다. 일부 성서 주석자들은 그러한 장기간에 걸친 기적이 있을 법한 일이 아닌 것 같기 때문에 거기에 언급된 원래의 단어가 “아라비아인”을 의미하지, 결코 “까마귀”를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까마귀는 꼭 알맞게 선정된 것이었다. 이 볼품없고 부정한 새가 음식 조각을 물고 광야로 날아가서, 아합과 이세벨이 주위의 여러 왕국에서 샅샅이 뒤지고 있는 인물인 엘리야를 실제로 먹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열왕 상 18:3, 4, 10.

가뭄이 계속되었을 때, 엘리야는 당연히 그릿 시냇물 공급을 염려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시냇물은 대부분 가뭄 때에 말랐으며, 그릿 시냇물도 “얼마 후에” 말랐다. 물이 서서히 줄어들어 고인 물의 수위가 날마다 떨어짐에 따라 엘리야의 심정이 어떠했겠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틀림없이 그는 물이 다 마르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엘리야는 충실하게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시냇물이 마른 다음에야 비로소 그에게 다음 번 지시를 내리셨다. 예언자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가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는 그곳에 있는 한 과부의 집에서 음식물을 발견하게 될 것이었다.—열왕 상 17:7-9.

사르밧이라고! 그곳은, 이세벨의 출신지이자 이세벨의 아버지가 왕으로서 다스린 도시인 시돈에 속해 있었다! 그곳이 안전할 것인가? 엘리야는 의아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일어나서 갔다.’—열왕 상 17:10.

여호와께서 부양하시고 생명을 주시다

얼마 안 있어 그의 순종에는 상이 따랐다. 예고된 대로, 그는 과부를 만났으며, 자기 동족에게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믿음을 그 여자에게서 발견하였다. 이 가난한 과부에게는 자신과 어린 아들의 마지막 끼니를 지을 밀가루와 기름밖에 없었다. 하지만 극히 빈곤하면서도 과부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여호와께서 병의 기름과 통의 가루를 계속 공급하실 것이라는 엘리야의 약속을 믿고, 먼저 엘리야를 위한 떡을 기꺼이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대의 믿음 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그 과부의 충실한 본을 상기시키신 것도 당연하다!—열왕 상 17:13-16; 누가 4:25, 26.

하지만 그러한 기적에도 불구하고, 얼마 후 과부와 엘리야의 믿음이 심각한 시험을 받게 되었다. 과부의 아들이 갑자기 죽은 것이다. 슬픔에 압도된 과부로서는 그러한 비극이 닥친 것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과부는 과거의 죄 때문에 벌받고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엘리야는 과부의 팔에서 죽은 아들을 받아, 다락으로 데려갔다. 그는 여호와께서 음식물을 마련하시는 일보다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아이의 생명이 돌아오게 해주실 것을 간절히 거듭 기도하였다.

엘리야가 부활에 대해 그런 믿음을 가진 최초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성서의 기록에서 그는 부활의 기적을 행하는 데 사용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 소년이 ‘살아났다!’ 엘리야가 과부에게 아들을 주면서 간단하게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하고 말하였을 때, 그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은 볼 만했을 것이다. 과부는 틀림없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줄 아노라” 하고 말했을 것이다.—열왕 상 17:17-24.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엘리야의 이름의 의미가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것은 참으로 공감할 만하며 매우 적절하다! 가뭄과 기근의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음식물을 주셨다. 도덕적으로 혼란한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건전한 지침을 주셨다. 사망이 있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사용하시어 생명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일이 요구될 때마다—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을 신뢰함으로써, 그분의 지시에 따름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것을 믿음으로써—여호와께 믿음을 두어야 할 이유를 한층 더 알게 되는 보람을 거두었다. 이런 방식으로 보람을 얻는 일은, 엘리야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오는 힘들고 두려움을 자아내기까지 하는 임명을 계속 받아들임에 따라 거듭되었다. 사실 그는 그 후에도 매우 극적인 기적 중 얼마를 행하였다.—참조 열왕 상 18장.

오늘날의 여호와의 종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기적에 의해 먹을 것을 받거나, 부활의 기적을 행하는 데 사용되지는 않는다. 오늘날은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는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엘리야 시대 이래로 조금도 달라지지 않으셨다.—고린도 전 13:8; 야고보 1:17.

우리 역시 감당하기 벅찬 임명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께서 주신 소식을 가지고 봉사해야 할 구역이 힘들면서도 두려움을 자아내는 지역일 수 있다. 아마 박해를 당할 것이다. 심지어 굶주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충실한 개개인과 조직 전체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여전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거듭 증명해 오셨다. 그분은 여전히 자신의 종들에게 무슨 임명을 하시든 그 임명을 수행할 능력을 주신다. 그리고 그분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신의 종들에게 무슨 시련이 닥칠지라도 그 시련을 인내하도록 여전히 도움을 주신다.—시 55:22.

[각주]

a 예수와 야고보는 모두 “세 해 여섯 달” 곧 “삼년 육개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알려 준다. 하지만 엘리야는 “제 삼년에” 가뭄이 끝나도록 하기 위하여 아합 앞에 나타났다고 되어 있다. 틀림없이 이 기간은 엘리야가 가뭄을 선포한 날부터 계산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엘리야가 아합 앞에 처음 나타난 때는 비가 오지 않는 장기간의 건기가 지난 때였음이 분명하다.—누가 4:25; 야고보 5:17; 열왕 상 18:1.

[18면 삽화]

엘리야처럼,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의 필요를 돌보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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