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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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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통찰, 제2권
통-2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Hebrews, letter to the)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한 편지. 증거로 볼 때, 이 편지는 기원 61년경 사도 바울이 유대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것이다. 이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는 매우 시기적절한 것이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되신 지 28년쯤 지난 때였다. 이 기간의 초기에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루살렘과 유대 지역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박해하여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예루살렘을 떠나 흩어지는 일이 있었다. (행 8:1)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은 가는 곳마다 좋은 소식을 널리 전하는 일에서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였다. (행 8:4)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곳에 남아 있는 회중을 결속시켰는데, 거센 반대를 당하면서도 회중은 성장하였다. (행 8:14) 그러다가 회중은 한동안 평화의 시기에 들어갔다. (행 9:31) 후에 헤롯 아그리파 1세는 요한의 형제인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회중의 다른 성원들을 학대하였다. (행 12:1-5) 그로부터 얼마 뒤에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물질적으로 궁핍해지자 아카이아와 마케도니아의 그리스도인들이 (기원 55년경에) 구호 선물을 보내어 사랑과 연합을 나타낼 기회가 있었다. (고첫 16:1-3; 고둘 9:1-5) 이처럼 예루살렘 회중은 갖가지 고난을 당하였다.

이 편지의 목적 예루살렘 회중은 거의 전적으로 유대인과 유대교 개종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 중 다수는 아주 혹독한 박해의 시기가 지난 뒤에 진리를 알게 되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기록될 당시 회중은 비교적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여러분은 아직 피 흘리기까지 대항한 일은 전혀 없’다고 한 것을 볼 때 그 점을 알 수 있다. (히 12:4) 그렇지만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심한 신체적 박해가 누그러졌다고 해서 유대교 지도자들이 강한 반대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다. 회중의 새로운 성원들은 나머지 성원들과 마찬가지로 반대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으로 볼 때 장성을 향해 진보했어야 할 성원들 중에 장성하지 않은 성원들도 있었다. (5:12) 그들은 날마다 유대인들에게서 반대를 겪으면서 믿음의 시험을 당하였다. 그들은 인내라는 특성을 세워 나가야 하였다.—12:1, 2.

예루살렘에 남은 시간은 끝나 가고 있었다. 예언된 황폐시키는 일이 언제 닥칠지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 회중 성원들도 몰랐으나, 하느님은 알고 계셨다. (누 21:20-24; 단 9:24, 27) 이런 상황으로 볼 때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볼 때 그 도시에서 도피할 수 있도록 깨어 있고 믿음을 나타내야 하였다. 회중 성원 모두는 그런 중대한 사태에 대비하여 자신을 강화해야 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이 편지가 기록된 지 단지 5년쯤 뒤에 케스티우스 갈루스의 군대가 그 도시를 공격한 다음 퇴각하였다. 그로부터 4년 뒤 예루살렘과 그 성전은 티투스 장군 휘하의 로마인들에게 무너졌다. 그러나 그 두 가지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필요한 영감받은 교훈을 베푸셨다.

유대인의 반대 유대교 지도자들은 거짓 선전을 통해,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하였다. 그들이 가능한 무기를 다 동원하여 그리스도교와 싸우려고 작심했다는 것을 사도행전 22:22과 23:12-15, 23, 24 및 24:1-4과 25:1-3에 기록된 그들의 행위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그리스도인을 끊임없이 괴롭혔는데,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깨뜨리려는 목적으로 여러 가지 논증을 내세웠을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데 사용한 논리는 유대인이 보기에 강력하고 논박하기 어려운 논리 같았을 것이다.

당시 유대교는 겉모양으로 드러나는 물질적인 면에서는 내세울 만한 것이 많았다. 그런 것들로 말미암아 유대교가 우월하고 그리스도교는 어리석은 것임이 뻔하다고 유대인들이 말했을지 모른다. 사실 그들은 예수께 말하기를, 유대 민족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약속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다. (요 8:33, 39) 하느님이 “대면하여” 말씀하신 모세는 하느님의 위대한 종이자 예언자였다. (민 12:7, 8) 유대인에게는 시초부터 율법과 예언자들의 말이 있었다. ‘바로 이런 유구한 특징으로 볼 때 유대교가 참 종교임이 분명하지 않은가?’라고 그들은 말했을지 모른다. 율법 계약이 체결될 때 하느님은 천사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사실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중개자 모세의 손을 거쳐 전해진 것이다. (행 7:53; 갈 3:19) 그때 하느님은 시나이 산을 흔들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능력을 보여 주셨다. 또한 그 영광스러운 광경과 더불어 크게 울리는 뿔나팔 소리, 연기, 천둥, 번개도 있었다.—출 19:16-19; 20:18; 히 12:18-21.

이 모든 유구한 특징 외에도 웅장한 성전과 여호와께서 제정하신 성전과 관련된 제사직이 있었다.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였고 날마다 수많은 희생 제물을 다루었다. 이뿐 아니라 값비싼 제사장 의복도 있었고 화려한 예배 의식도 성전에서 거행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주장했을지 모른다. ‘속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신성한 곳으로 가져오라고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않았는가? 모세의 친형 아론의 후손인 대제사장이 속죄일에 민족 전체의 속죄를 위해 희생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지 않는가? 이 일이 있을 때 그는 상징적으로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다가가지 않는가?’ (레 16장) ‘더군다나 통치하기 위해 예루살렘의 왕좌에 앉으실 분(그들이 후에 오실 분이라고 말하는 메시아)이 있는 왕국은 유대인의 소유가 아닌가?’ 하고 주장했을지도 모른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실제로 제기한 이의에 답변할 준비를 갖추도록 쓰여진 것이라면, 그리스도교의 적들의 주장은 이런 식이었을 것이다. ‘이 새로운 “이단”은 자기네가 참되고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증거로 내세울 만한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의 신전이나 제사직은 어디 있는가? 사실상 그들의 지도자는 어디 있는가? 목수의 아들로서 랍비 교육이라고는 받아 보지도 못한 그 갈릴리 사람 예수가 생애 중에 민족의 지도자들 가운데 낄 만한 주요 인물이라도 되었는가? 더구나 그는 수치스럽게 죽지 않았는가? 그의 왕국은 어디 있는가? 그의 사도들과 추종자들은 누구인가? 어부나 세금 징수원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리스도교는 대개 어떤 사람을 끌어들이는가? 땅에 속한 가난하고 천한 사람들, 특히 아브라함의 씨도 아닌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을 받아들인다. 신성모독자이자 선동자로 죽임을 당한 그 예수를 신뢰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인 그의 제자들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행 4:13.

그리스도인 제도의 우월성 일부 장성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등한히 여겼던 것 같다. (히 2:1-4) 또는 주변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 때문에 흔들렸을지 모른다. 그들을 도우려고 사도는 유대인들이 의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히브리어 성경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 사물의 제도의 우월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직과 왕권의 우월성을 반론의 여지 없이 능란하게 논증한다. 그는 성경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천사들보다 크며(1:4-6) 아브라함보다 크고(7:1-7) 모세보다 크며(3:1-6) 예언자들보다 크다(1:1, 2)고 설명한다. 사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해진 분, 영광과 영예로 면류관을 쓴 분, 여호와의 손으로 이루신 것을 다스리도록 임명된 분이다.—1:2; 2:7-9.

제사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레위 지파 아론계 제사직보다 훨씬 우월하다. 그리스도의 제사직은 죄 많은 육체를 통해 상속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맹세로 된 것이다. (히 6:13-20; 7:5-17, 20-28) 하지만 그분이 그런 고난을 인내하고 고통의 죽음을 당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인류의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이고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의 자격을 갖추는 데 그리고 하느님에 의해 모든 것의 복종을 받도록 정해진 자의 자격을 갖추는 데 꼭 필요한 것으로 예언된 것이기 때문이다. (2:8-10; 9:27, 28. 사 53:12 비교)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살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을 모두 해방시키기 위하여 그리스도는 피와 살이 된 다음 죽어야 하였다. 그분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마귀를 없애실 수 있는데, 이 일은 어떤 인간 제사장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히 2:14-16) 그토록 고통을 당하여 모든 점에서 시험을 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우리의 약함을 동정하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대제사장이시다.—2:17, 18; 4:15.

또한 이 대제사장이 “하늘들을 통해 올라가”시어 하느님이 계신 바로 그곳에 나타나신 것이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에 불과한 지상의 천막이나 어느 건물에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고 사도는 논증한다. (히 4:14; 8:1; 9:9, 10, 24) 그리스도는 자신의 완전하고 죄 없는 희생을 가지고 단 한 번만 나타나면 되었고 거듭거듭 나타날 필요가 없었다. (7:26-28; 9:25-28) 아론계 제사장들과는 달리 그리스도는 후임자를 두지 않으며 자신이 섬기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기 위하여 영원히 살아 계신다. (7:15-17, 23-25) 그리스도는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된 더 나은 계약의 중개자이다. 이 계약 아래서 죄가 실제로 용서받을 수 있고 양심이 깨끗해질 수 있는데, 이런 일은 율법이 결코 달성할 수 없던 일이다. 율법 계약의 기본법인 ‘열 가지 말씀’은 돌에 기록되었으나, 새 계약의 법은 마음에 기록되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이 예언으로 말미암아 때가 되면 율법 계약은 낡아지고 사라질 것이었다.—8:6-13; 렘 31:31-34; 신 4:13; 10:4.

히브리서의 필자는 논증을 계속한다. 시나이에서 외경스럽게 전시된 능력으로 하느님이 율법 계약을 승인하셨음이 분명히 드러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새 계약이 발효될 때, 모인 회중 성원 모두에게 성령을 나누어 주는 일과 더불어 표징들과 전조들과 강력한 일들로 훨씬 힘 있게 증언하셨다. (히 2:2-4. 행 2:1-4 비교) 그리고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 말하자면, 그분의 왕좌는 하늘에 있으므로 지상의 예루살렘의 왕좌에 앉은 다윗 가계의 왕들의 왕좌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다. (히 1:9)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왕좌의 기초이며, 그의 왕국은 흔들릴 수 없는 것인 반면, 예루살렘의 왕국은 기원전 607년에 흔들렸다. (1:8; 12:28) 또한 하느님은 시나이 산에서 있었던 기적의 광경보다 훨씬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 앞에 자신의 백성을 모으셨다. 하느님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의 시온 산에 가까이 가게 하셨고,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드실 것이다.—12:18-27.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루 헤아릴 수 없이 값진 편지이다. 이 편지가 없었다면 율법이 예표한 그리스도와 관련된 실체 중 많은 것이 불분명하였을 것이다. 예를 들면, 유대인은 대제사장이 그들을 위하여 신성한 곳의 지성소 칸에 들어갈 때 여호와 앞에서 그들을 대표하는 것임을 히브리어 성경을 통하여 줄곧 알고 있었으나, 이것의 실체 즉 언젠가 대제사장의 실체인 분이 바로 여호와께서 계신 하늘에 실제로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은 결코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 편지가 없었다면 우리도 히브리어 성경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을 만난 일에 관한 기록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를 또는 왕 겸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무엇을 상징하였는지를 어떻게 분명히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물론 이런 예는 우리가 이 편지를 읽으면서 그려 볼 수 있는 수많은 실체 중 단지 두 가지를 언급한 것일 뿐이다.

이 편지에서 북돋워 주는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이 “보이지 않는 실체에 대한 명백한 실증”을 통하여 자신들의 희망을 굳게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히 11:1) 많은 사람이 유구한 특징이나, 조직의 재물과 세력, 화려한 전례 의식에 의존하고 하느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지혜에 의존하는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이 편지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온전히 유능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완전히 갖추게” 하는 데 감탄스러울 정도로 도움이 된다.—디둘 3:16, 17.

필자, 기록 시기 및 장소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필자는 사도 바울인 것으로 널리 인정된다. 초기 저술가들도 이것을 바울의 편지로 받아들였다.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2호(P46)(기원 200년경)에는 히브리서가 바울의 편지 아홉 통 가운데 나오며, 기원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 정경”에는 “사도 바울의 열네 통의 편지” 가운데 히브리서가 나온다.

히브리서의 필자는 자신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는다. 그의 다른 편지에는 모두 그의 이름이 나오는데 이 편지에는 필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바울이 쓴 편지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편지의 내적 증거가 바울이 필자임을 강력히 지적하며, 기록 장소는 이탈리아, 아마도 로마임을 지적한다. (히 13:24) 바울은 기원 59년에서 61년 사이에 처음 투옥된 상태로 로마에 있었을 것이다. 디모데도 로마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기에 바울이 그 투옥 기간에 로마에서 쓴 편지들인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 디모데가 언급되어 있다. (빌 1:1; 2:19; 골 1:1, 2; 몬 1) 이런 상황은 히브리 13:23에 나오는 표현 즉 디모데가 수감되었다 놓였고 필자가 예루살렘을 곧 방문하고 싶다는 말과 어울린다.

기록 시기는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이었다. 이 편지의 논증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예루살렘 성전이 여전히 있고, 그곳에서 예배 의식이 행해진 것을 볼 때 그러하다. 그리고 디모데가 놓였다고 바울이 말한 것을 보면 기록 시기는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9년 전쯤인 기원 61년일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적이다. 이해는 바울 자신도 첫 번째 투옥에서 풀려난 해인 것으로 여겨진다.—히 13:23.

[1226면 네모]

「히브리」의 주요점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을 강화시키고 유대인 제도의 마지막 몇 해 동안 그들이 진실한 동포들을 도울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논문 형태의 글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거의 10년 전쯤에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을 것임

하느님의 아들이 차지한 우월한 위치 (1:1–3:6)

그는 독특한 아들, 정해진 상속자, 아버지의 존재 자체의 정확한 표상이며, 만들어진 모든 것이 이 아들을 통하여 지탱된다

이 아들과 비교할 때 천사들은 종에 불과하다. 아버지가 “내 아들”이라고 부르시는 아들은 이 맏아들뿐인데, 이 아들에게 천사들도 경배한다. 천사들이 아니라 바로 이 맏아들에 대해, 그의 왕정이 그의 왕좌이신 하느님 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는 자기를 통해 만들어진 하늘과 땅보다 더 영속할 것이며, 그의 위치는 아버지의 오른편이다

천사들을 통해 전달된 율법을 무시해도 처벌을 면할 수 없었다면, 천사들보다 높은 이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이 하신 말씀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서 천사들보다 낮추어지셨으나 그 후 천사들보다 높여지셨고 사람이 거주하는, 오게 될 땅을 지배할 권한을 받으셨다

모세는 하느님의 집에서 시중드는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집 전체를 다스린다

하느님의 쉼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있다 (3:7–4:13)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순종과 믿음의 부족으로 하느님의 쉼에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이스라엘이 범한 불순종을 피하고 충실한 행로에서 힘쓴다면 하느님의 쉼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느님의 쉼에 들어갈 것을 약속해 주는 살아 있는 말씀은 칼보다 더 날카로워 (그 말씀에 대한 개인의 반응에 따라) 영혼으로서의 그의 겉모습과 그 자신의 영과 관련된 참모습 사이를 분리한다

그리스도의 제사직과 새 계약의 우월성 (4:14–10:31)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 없는 상태를 유지하셨으므로 죄 많은 인간을 동정하며 또 동정심 깊게 대하실 수 있다

그분은 멜기세덱의 방식을 따라 하느님이 임명하신 제사장으로서 그 제사직은 레위 제사직보다 더 위대하다

아론 가계의 레위 사람 제사장들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는 멸할 수 없는 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구원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후임자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죄가 없으므로 자신을 위해 희생 제물을 바치실 필요가 없다. 그분은 동물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바쳤고, 자신이 흘린 피의 가치를 가지고 지상의 신성한 곳이 아니라 실제 하늘에 들어감으로 새 계약을 유효하게 하셨다

예수를 중개자로 둔 새 계약이 율법 계약보다 우월한 것은 새 계약 안에 있는 자들이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두고 참으로 죄를 용서받기 때문이다

이런 유익을 인식하는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감동되어 희망에 대해 공개적 선언을 하고 정기적으로 모일 것이다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이 꼭 필요하다 (10:32–12:29)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없이 그분에게서 뒤로 물러나는 자들을 그분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아벨 이후로 충절을 고수한 자들의 본이 되는 믿음을 살펴보고 고통 아래서도 흠 없는 행로를 유지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행로를 면밀히 고려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경주에서 인내하게 하는 격려가 된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겪도록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고통은 평화로운 열매인 의를 산출할 목적으로 그분에게서 주어지는 징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충실한 행로를 추구하라는 권고 (13:1-25)

형제 사랑을 나타내라. 후대하라. 고통당하는 신자들을 기억하라. 결혼을 존중히 유지하라. 현재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여호와의 도움을 확신하라

인도하는 자들의 믿음을 본받고, 이상한 가르침에 넘어가지 말라

그리스도처럼 기꺼이 치욕을 당하라. 그를 통하여 항상 하느님께 찬양의 희생을 바치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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