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로부터의 질문
◼ 요한 복음 6:53에 언급된 예수의 말씀 곧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가?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기 위해 하늘로 옮겨질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국한시켜 설명했었읍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한층더 연구한 결과 요한 복음 6:53을 확대 적용시킬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여러 해 동안 우리는 이 귀절을, 유사한 표현을 사용한 다른 귀절들에 비추어 생각했었읍니다. 이를테면 “너희 속에 생명”을 갖고 있다는 표현은 요한 복음 5:26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과 흡사한데, 그 내용은 전적으로 여호와와 예수에게만 적용되었읍니다. 그런데, 「파수대」 1986년 2월 15일호 13면에서 설명된 것처럼, 요한 복음 5:26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 귀절 내의 “자기 속에 생명이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 복음 6:53은 일년 뒤에 언급된 말로서, 문맥이 다릅니다.
요한 복음 6:53에 대해 우리가 가졌던 견해에 영향을 주었던 또 다른 것은 예수께서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하신 말씀과 유사점이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만찬을 제정하시면서 그분의 살과 피에 관해 말씀하셨고, 이러한 표상물(누룩이 들지 않은 떡과 포도주)은 새 언약과 왕국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그분의 추종자들이 취할 것을 지시하셨읍니다. (누가 22:14-22, 28-30, 신세 참조)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도, 요한 복음 6:53의 문맥을 이해할 필요가 있읍니다.
요한 복음 6:53에 언급된 예수의 말씀은, 그분이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기 일년 전에 하신 것이었읍니다. 예수의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실제 표상물을 갖고 연례적인 기념식을 가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읍니다. 오히려 요한 복음 6장에서의 예수의 주제 즉 논지는 만나와 비교되는 그분의 살과 관련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었읍니다. 그분의 살이 세상의 생명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분의 살(그리고 그분이 덧붙여 말씀하신 그분의 피)은 문자적인 만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이었읍니다.—요한 6:48-51.
따라서, 최근에 있은 가일층의 연구로 인해, 요한 복음 5:26과 요한 복음 6장에 있는 예수의 말씀과는 일년간의 차이가 있다는 점과 아울러 요한 복음 6장은 예수께서 주의 만찬을 제정하시기 이전의 해에 있었던 일이라는 점이 분명해졌읍니다. 더욱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는 내용이 요한 복음 6:53의 이어지는 문맥에도 나와 있읍니다. 그러므로 「파수대」 1986년 2월 15일호 17-21면의 기사는 요한 복음 6:53을 확대 적용시켜, 하늘 생명을 위해 새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람들과 지상 낙원에서 끝없는 생명의 전망을 가진 사람들 모두를 포함시키고 있읍니다.
◼ ‘여호와의 증인’은 해로운 담배 습관에 대해 단호함을 나타내는 것처럼, 그들 가운데서 폭식에 대하여도 단호한가?
성서에 근거하여 ‘여호와의 증인’은 담배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며, 같은 입장으로 폭식을 정죄하는 성경적 이유를 받아들입니다.
‘증인’은 흡연이 성서 원칙들을 범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흡연에는 니코틴 중독이 포함됩니다. 게다가 연기를 들이마신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행위입니다. 육체를 더럽히고, 건강 문제를 일으키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데 사용했어야 마땅할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바로 흡연인 것입니다. 또한 흡연은 다른 사람이 호흡하는 공기를 위험하게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확실히, 흡연은 이웃 사랑이 아닙니다.—고린도 후 7:1; 로마 12:1; 마가 12:33.
하지만 폭식에 가까울 정도의 과식은 어떠합니까? 솔직히 말해서, 성서는 폭식을 정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폭식이란 먹는 일에 과도하게 탐욕적인 행위, 즉 게걸스럽게 과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인의 한 아들은 회개하지 않고 “방탕하고 [탐식가이며, 신세] 술에 잠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신명 21:18-21) 잠언은 “탐식자를 사귀”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잠언 28:7; 23:20, 21) 또한 폭식이 잘못된 이유는, “탐욕이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6:9, 10, 현대인의 성경; 비교 베드로 전 4:3; 빌립보 3:18, 19)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은 “자제력이 있”어야 하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탐식가들,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디도 1:8, 신세, 12) 자제하지 않고 먹는 일로 인해 해임된 감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이 문제는 심각한 일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점은, 폭식하는 경향이 있는지를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것과는 달리) 먹는 일은 자연스러우며 당연한 일입니다. 뚱뚱하다는 것이 폭식의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매우 마른 사람도 폭식하는 사람일 수 있읍니다. 성서가 비난하는 것은 과잉 체중이 아닙니다. 그것은, 비만을 초래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과식인 것입니다.
분비선의 이상 혹은 병으로 인해 과잉 체중인 사람들도 있읍니다. 하지만, 쥬디스 로딩 교수는 “모든 비만증 환자 가운데 의학적 문제가 주 원인인 사람들은 전체의 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땅딸막한 사람은 유전 형질이 원인일 수 있읍니다. 의사 윌리엄 베네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살찐 많은 사람들은 보통 체중의 사람이 먹는 만큼 먹어도 자신의 체중을 유지한다. ··· 그들은 신진 대사면에서 다르다.” 뚱뚱한 사람이 적게 먹을 경우 그의 몸은 칼로리를 더욱 천천히 소모시키기 위하여 신진 대사율을 낮춘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들까지 있읍니다. 그러나 살찐 사람이 게걸스럽게 많이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폭식가는 아닐지라도, 그는 하나님의 교훈을 더욱 심각히 적용할 필요가 있을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배양해야 할 자제는 먹는 일에도 적용이 됩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베드로 후 1:5-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일에 절제[자제, 신세]”하는 경주자처럼 행할 것을 촉구하였읍니다. 바울은 ‘자신의 몸을 쳐 복종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고린도 전 9:24-27) 뚱뚱한 사람은 먹는 일에 있어서 양, 종류, 때, 방법 면에서 ‘자신의 몸을 칠’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읍니다.a
뚱뚱하다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읍니다. 보고에 의하면, 비만은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더 높일 수 있으며, 성인이 되면 걸리기 시작하는 당뇨병, 여러 가지 암, 심장병, 담낭염, 관절염, 호흡기 질환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읍니다. “몸무게가 평균 보다 20퍼센트 더 나가는 사람은 평균 체중의 사람보다도 사망률이 삼분의 일 더 높고, 평균보다 30퍼센트와 50퍼센트 더 나가는 사람은 사망률이 각각 50퍼센트와 100퍼센트 더 높다.”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1985년 2월 27일자) 건강 문제에 관한 이와 비슷한 보고들이 영국, 독일, 이탈리아에서도 들어옵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즉 생명]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를 사랑’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마가 12:30) 그리스도교를 연구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건강과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흡연을 중지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과잉 체중이 되는 일을 염려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읍니까? 왜냐하면 과잉 체중은 여호와께 바쳐진 그리스도인의 건강과 생명을 해칠 수 있는 탐닉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슬플 때나 좌절을 느낄 때, 외롭거나 화날 때, 유달리 더 먹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그러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불필요하게 먹는 일에서 위안을 찾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 동료 형제들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읍니다. 이 점에 관하여 빌립보서 4:6, 7, 11-13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에게는 선천적 경향이 특정한 수준의 체중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조차도 그러한 선천적 경향이 변할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고지방 식품류를 줄이고 육체 활동을 증가시킬 것을 강조합니다. 많은 지역에서 호별 방문 봉사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건강에 대단히 유익한 걷기와 오르기를 하는 셈이라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바울도 그 봉사에서 ‘수고하며 애썼읍니다.’—고린도 후 11:26, 27.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이 폭식을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성서에서 말하는 점 때문입니다. 체중이 얼마나 되든지 간에, 먹는 일을 포함한 “모든 일에 자제”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주된 이유는 유행에 대한 문화적 판단 때문이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 원칙에 따라 살고 하나님의 승인을 받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각주]
a 양: 꾸준히 끼니 때마다 약간씩 덜 먹음. 종류: 영양가 낮은 전분 식품, 소다수, 당분류 및 버터와 기름등의 지방분을 끊고, 건강에 좋고 균형있는 제한식. 때: 끼니 중간에 혹은 몰래 간식을 하지 않음. 방법: 좀더 천천히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