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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9 11/1 28-30면
  • 우리는 외모만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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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외모만을 보는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 소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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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9
파89 11/1 28-30면

우리는 외모만을 보는가?

하인츠는 십대 시절에 증오심에 못 이겨서 의붓아버지를 죽이려고 계획하였다. 다행히도, 그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여러 해 후에 그는 자살을 하려고 결심했지만, 그 역시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다. 그는 도둑질과 마약 밀매에 관련을 맺게 되었고, 그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결혼 생활에 실패하였다.

오늘날 하인츠는 더 이상 마약에 중독되어 있지 않다. 그는 정직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의붓아버지와 좋은 관계를 누리고 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가져왔는가? 그는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점차, 그의 인생관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옛날의 하인츠를 알았던 많은 사람은 그를 전혀 쓸모 없는 사람으로 보아 넘겼을 것이다. 하인츠와 같은 많은 사람에게는 감사할 만하게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제 불능한 사람으로 포기하지 않으셨다. 왜 포기하지 않으셨는가? 이유는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마음, 신세]을 보”기 때문이다.—사무엘 상 16:7.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커다란 차이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외모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심지어 “첫인상은 끝까지 남는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처음에 나타내는 반응에 근거해서 그들을 분류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읽으실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편파적이 아니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게 하려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상에 보내셨다. (디모데 전 2:4, 신세) 이와 관련하여,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모든 인류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함으로써 “하나님의 동역자들”이 되는 특권을 누린다. (고린도 전 3:9)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능력의 한계—사람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는 제약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편파적이 되지 말아야 하며, 외모로 인해 편견을 갖는 일이 없어야 한다.

예수의 의붓동생 야고보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그러한 위험성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형제들이여,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느니만큼 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하지 마시오.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면] ·⁠·⁠· 여러분 사이에서 차별을 두고 나쁜 생각으로 [그릇된 표준으로, 신영어 성서] 사람을 판단하는 자가 된 것이 아닙니까?” 그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왕국회관에 처음 온 사람들을 때때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있는가?—야고보 2:1-4, 새번역.

예수께서 본을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구제 불능한 죄인으로 보신 것이 아니라, 필요한 도움과 적절한 자극이 주어지면 기꺼이 변화하려고 하는 진실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셨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분은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주셨”다. (디모데 전 2:6, 신세) 전파 활동을 하시면서, 그분은 선한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을, 만지기도 싫고 주의를 기울일 만한 가치도 없는 존재로 간주하신 적이 전혀 없었다.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견해는 결코 독선적인 교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누가 5:12, 13.

그분은 바리새인들과 매우 다르셨는데, 우리는 그들에 관하여 이런 기록을 읽을 수 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가 2:16, 17.

이러한 일은 물론, 예수께서 그 죄인과 세리들이 저지르는 부정직하고 그릇된 행실을 눈감아 주셨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사람들이, 필시 모르는 사이에 혹은 제어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에 그릇된 생활 방식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해심을 나타내셔서,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다. (마가 6:34) 그분은 인자하게도 그들의 나쁜 행동과 선할 수도 있는 마음을 구별하셨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을 대하실 때에도 외모 이상의 것을 보셨다. 그들은 종종 잘못을 범하는 죄인들이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이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끊임없이 질책하는 비합리적인 완벽주의자가 결코 아니셨다. 그분은 그들의 의도가 선하다는 것을, 혹은 요즈음 말로 하자면, 그들의 본심이 착하다는 것을 아셨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움과 격려였으며, 예수께서는 그런 것을 베푸는 면에서 결코 인색하지 않으셨다. 의심할 바 없이,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보셨다. 우리는 그분의 놀라운 본을 따르려고 노력하는가?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는가?

예수께서는 한번 그분이 안식일에 병고치는 일을 했다고 분노한, 독선적이고 불평 많은 일단의 사람들과 마주치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고 교훈하셨다. 그들은 왜 예수를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해준 기적을 행하는 분으로 환영하고 기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노여워”하여 그분을 안식일 법을 어기는 사람으로 생각하였는가? 외모로 판단함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나쁜 동기를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은 자기들의 판단이 독선적이고 불의한 것임을 나타냈다.—요한 7:23, 24.

우리가 어떻게 할 때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게 될 수 있는가? 회개한 사람이 회중으로 돌아올 때 혹은 매우 세상적인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영적인 병 고침으로부터 유익을 얻기 시작할 때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때때로 우리는 별난 옷차림이나 몸단장을 보고 판단하여, 그들을 증인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보아 넘길지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히피와 별난 생활 방식을 따랐던 그 밖의 사람들이 마침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 된 경우가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조정을 하면서 변화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외모로 판단”하여 그들의 선한 마음 상태를 못 보게 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그리스도인 장성에 이르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베푸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일이고 또한 예수의 훌륭한 본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기뻐할 만한 이유를 발견하기가 어렵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면, 우리가 누구이기에 자기의 편협한 기준에 근거해서 그들을 배척하겠는가? (요한 6:44) 마음 상태나 환경을 알지도 못하면서 누군가를 독선적으로 판단한다면, 우리는 불리한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비교 마태 7:1-5.

그처럼 새로운 사람들을 가혹하게 판단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고, 격려하고, 본을 통해서 훈계해야 한다. 하지만, 친절을 나타내되, 세상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우상화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일종의 편파적인 처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또한 우리가 장성되지 못했다는 표시일 것이다. 그 사람 자신에게도, 우리의 아첨이 그가 겸손해지는 데 도움이 되겠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 사람을 거북하게 만들겠는가?—레위 19:15.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 이상을 기대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마음을 읽으시는 여호와의 시각과 비교할 때 매우 제한되어 있다. (역대 상 28:9) 이러한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현대판 독선적 바리새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즉 옳은 것에 대한 자신의 개념에 사람들을 맞추기 위해서 자기가 만든 인위적인 의의 틀에 사람들을 억지로 밀어 넣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고린도 전 4:6) 이것은 특히 그리스도인 장로들이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할 중요한 점이다.—베드로 전 5:2, 3.

옷차림의 문제를 예로 들 수 있다. 성서의 요구 조건—하나님의 요구 조건—은 그리스도인의 옷차림이 단정하고 깨끗하고 아담하며 “정숙하고 신중”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다. (I 디모데 2:9, 새번역; 3:2) 그러므로 몇해 전에 어느 회중의 장로들이 한 일은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간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옅은 색의 셔츠는 그 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회중의 모든 공개 연사에게 흰 셔츠를 입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색깔 있는 셔츠를 입고 온 초청 연사에게는, 그와 같은 비상시에 대비해서 왕국회관에 마련해 놓은 여러 흰 셔츠 중의 하나로 갈아 입도록 요청하였다.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 기호를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하지 않도록 매우 주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합리성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십시오”라는 바울의 교훈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다!—빌립보 4:5, 신세.

외모 이상의 것을 볼 때 오는 좋은 결과

우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 주위의 사람들, 그리스도인 회중 안팎에 있는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동기를 의심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였기 때문이다. (디도 3:3) 이러한 점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누구에게나, 외모로 보아서는 무가치한 듯한 사람들에게까지 기꺼이 전파하려고 할 것이다. 여하튼, 진리를 받아들일 것인지 배척할 것인지는 그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다. 우리에게는 누구에게든지 진리를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인츠와 같은 많은 여호와의 증인은, 외모 이상의 것을 보고 첫인상으로 판단하지 않은 형제 자매들로부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환영받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어느 일요일, 독일 남부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에 나타났던 프랑크의 경우를 고려해 보자. 참석자들은 어떤 모습을 보았는가? 턱수염에 어깨까지 머리를 기르고, 더러운 옷을 입었으며, 동네 술집에 자주 드나들고 담배를 몹시 많이 피우는 사람으로 잘 알려진 단정치 못한 젊은이—여자 친구와 쌍둥이 아기를 돌보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도, 그는 집회에서 따뜻하게 환영을 받았다. 그는 깊은 감명을 받고 일주일 후에 다시 집회에 참석하였다. 그때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단정하게 몸단장을 하고 깨끗한 옷을 입은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삼주째에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젊은이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여자 친구와 두 자녀를 데리고 왔다. 사주째 일요일에는, 방금 두 사람 관계의 법적 결혼 등록을 마친 젊은 남녀가 되어 있었다. 오주째 일요일에는, 거짓 종교와의 모든 관계를 끊은 젊은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약 4년이 지난 오늘날, 어느 여호와의 증인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그들은 “아주 인상이 좋아서 형제가 된 지 아주 여러 해가 지난 사람들처럼 생각되는 가족”이 되어 있다.

책의 질이 반드시 제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집의 앞면만 보고는 집의 질을 알 수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참된 특성이 반드시 외모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을 보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은 첫인상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숨은 사람”에 주의를 기울이시며,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다.—베드로 전 3: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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