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는 영혼을 다한 당신의 봉사를 소중히 여기신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여호와께 하듯 영혼을 다하여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골로새 3:23.
1, 2. (ㄱ)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은 무엇입니까? (ㄴ)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때때로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다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본지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에게 봉사의 직무에 열중하도록 권해 왔고, 가능할 때는 언제나 “더욱 온전히” 섬기도록 권하기까지 해 왔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4:1) 그렇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우리의 마음이 몹시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항상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의 40년 전에 침례를 받은 한 독신 자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형편이 어려워서 전 시간 일을 해야 합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아주 근사한 옷들을 갖기 위해서나 유람선을 타고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한 데 쓰기 위해서입니다. 거기에는 의료비와 치과 치료비도 포함되지요. 나는 쓰고 남은 것만을 여호와께 드리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2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전파 활동에서 할 수 있는 한 많이 일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종종 생활 환경 때문에 제한됩니다. 가족 의무를 포함하여 그 밖의 성경적 책임들을 돌보려면, 우리의 시간과 활력을 많이 바쳐야 할지 모릅니다. (디모데 첫째 5:4, 8) 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에,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집니다. (디모데 둘째 3:1) 우리가 봉사의 직무에서 하고 싶은 일을 다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마음에 어느 정도 괴로움을 느낄지 모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숭배를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영혼을 다한 봉사의 아름다움
3.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3 시편 103:14에서, 성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따뜻하게 보증해 줍니다. 그분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의 한계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생활 처지에 관계없이 무엇인가를 바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그 일을 여호와께 하듯 영혼을 다하여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 3:2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우리 모두가—영혼을 다하여 그분을 섬길 것을 기대하십니다.
4.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4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혼을 다하여”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영혼으로부터”라는 의미입니다. “영혼”이란 그 사람의 모든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을 포함하여, 그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영혼을 다하여 섬긴다는 것은,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에서 우리의 모든 재능을 사용하고 우리의 활력을 가능한 한 최대로 사용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우리의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마가 12:29, 30.
5. 사도들의 예는 모든 사람이 봉사의 직무에서 동일한 양의 봉사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5 영혼을 다한다는 것은 우리가 모두 봉사의 직무에서 동일한 양의 봉사를 수행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텐데, 환경과 능력이 영혼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충실한 사도들의 경우를 고려해 보십시오. 그들이 모두 동일한 양의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부 사도들, 이를테면 가나내 사람 시몬과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매우 적습니다. 사도로서의 그들의 활동은 아마 다소 제한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마태 10:2-4) 그와는 반대로, 베드로는 중대한 책임들을 많이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왕국의 열쇠들”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마태 16:19) 하지만 베드로는 다른 사도들 위에 높여지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계시의 책에서 새 예루살렘의 환상을 받았을 때(기원 96년경), 열두 기초석과 그 위에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a (계시 21:14) 일부 사도들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모든 사도의 봉사를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6. 씨 뿌리는 사람에 관한 예수의 예에서 “좋은 흙”에 뿌려진 씨는 어떻게 되며,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6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한 양의 전파 활동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이 점을 씨 뿌리는 사람에 관한 예에서 알려 주셨는데, 그 예에서는 전파 활동이 씨 뿌리는 일에 비유되었습니다. 씨는 여러 유형의 흙에 떨어졌는데, 이것은 소식을 듣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타내는 여러 유형의 마음 상태를 예시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좋은 흙에 뿌려진 사람, 이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는 참으로 열매를 맺어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를 산출합니다.” (마태 13:3-8, 18-23) 이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이 산출되는 양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뿌려지는 씨의 열매는 무엇이며, 그것이 산출되는 양이 다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7 뿌려지는 씨는 “왕국의 말씀”이므로, 열매를 맺는 것은 그 말씀을 널리 알리는 것 즉 다른 사람들에게 거리낌없이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태 13:19) 능력과 생활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산출되는 열매의 양은—삼십 배에서 백 배에 이르기까지—다양합니다. 건강과 체력이 좋은 사람은, 만성적으로 좋지 않은 건강 상태나 노령 때문에 힘이 약해진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파 활동에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 책임에서 벗어나 있는 젊은 독신 형제나 자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전 시간 일해야 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비교 잠언 20:29.
8. 여호와께서는 자기들의 영혼이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드리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십니까?
8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영혼을 다한 사람 가운데 삼십 배를 산출한 사람은 백 배를 산출한 사람보다 덜 충실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열매의 양은 다양할 수 있지만, 드려진 봉사가 우리의 영혼이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이기만 하다면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다양한 양의 열매들 모두가 “좋은 흙”인 마음에서 나오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좋은”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표현(칼로스)은 “아름다운” 그리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에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을 묘사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의 눈에 아름답게 보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참으로 위로가 됩니다!
서로 비교하지 말라
9, 10. (ㄱ) 우리의 마음은 어떤 형태의 부정적인 추리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습니까? (ㄴ) 고린도 첫째 12:14-26에 나오는 예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수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9 그렇지만 우리의 불완전한 마음은 사물을 다른 방식으로 평가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드리는 봉사를 다른 사람이 드리는 봉사와 비교할지 모릅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추리할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봉사의 직무에서 내가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내가 드리는 봉사를 도대체 어떻게 기뻐하실 수 있겠는가?’—비교 요한 첫째 3:19, 20.
10 여호와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생각과 길보다 훨씬 더 높습니다. (이사야 55:9) 우리는 고린도 첫째 12:14-26에서, 여호와께서 우리의 개인적인 노력을 보시는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통찰력을 얻게 되는데, 그 구절에서는 회중을 많은 지체—눈, 손, 발, 귀 등—를 가지고 있는 몸에 비유합니다. 잠시 실제 몸을 고려해 보십시오. 당신의 눈을 손과 비교하거나 당신의 발을 귀와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 될 것입니다! 지체마다 다른 기능을 수행하지만, 모든 지체는 유용하며 가치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봉사를 더 많이 하든 더 적게 하든, 여호와께서는 영혼을 다한 당신의 봉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갈라디아 6:4.
11, 12. (ㄱ) 왜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약하’거나 “덜 귀하다”고 느낄지 모릅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봉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11 좋지 않은 건강이나 노령 혹은 그 밖의 상황들로 인한 한계 때문에, 때때로 우리 가운데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더 약하’거나 ‘덜 귀한’ 지체라는 느낌이 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물을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으십니다.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더 약해 보이는 몸의 지체들이 ··· 필요하고, 우리가 덜 귀하다고 생각하는 ··· 부분들, 이것들을 우리가 더욱 풍부한 영예로 감싸 줍니다. ···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몸을 구성하실 때에 부족함이 있는 부분에 더욱 풍부한 영예를 주셨습니다.” (고린도 첫째 12:22-24) 그러므로 개개인들 모두가 여호와께 소중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한계의 테두리 내에서 우리의 봉사를 귀중하게 여기십니다. 당신의 마음은 그토록 이해심과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싶어지게 만들지 않습니까?
12 그러므로 여호와께 중요한 것은, 당신이 다른 어떤 사람이 하는 만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당신의 영혼—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개인적인 노력을 높이 평가하신다는 사실이, 예수께서 자신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날들 중에 매우 다른 환경에 있는 두 여자를 대하신 일을 통해 매우 감동적인 방법으로 예시되었습니다.
인식 깊은 여자의 “매우 비싼” 선물
13. (ㄱ) 마리아가 예수의 머리와 발에 향유를 부은 일을 둘러싼 전후 상황은 어떠하였습니까? (ㄴ) 마리아의 기름의 물질적인 가치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13 금요일 저녁 즉 니산월 8일에, 예수께서는 베다니에 도착하셨는데, 베다니는 올리브 산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예루살렘에서 3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예수의 사랑하는 친구들—마리아와 마르다와 그들의 오라비 나사로—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집에 손님으로 가셨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자주 가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토요일 저녁에는, 예수와 그분의 친구들이, 이전에 나병 환자였다가 필시 예수께 치료를 받았을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식탁에 기대앉아 계실 때, 마리아는 자기의 오라비를 부활시켜 준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겸손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매우 비싼”향유가 들어 있는 병을 깨뜨려 열었습니다. 정말 비싼 것이었습니다! 그것의 가치는 300데나리온으로서, 약 일 년 치 삯에 해당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향기로운 기름을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었습니다. 마리아는 심지어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닦기까지 하였습니다.—마가 14:3; 누가 10:38-42; 요한 11:38-44; 12:1-3.
14. (ㄱ) 마리아의 행동에 대하여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마리아를 두둔하셨습니까?
14 제자들은 분개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낭비하는 일을 하였소?’ 하고 그들은 물었습니다. 유다는 도둑질하려는 자신의 동기를 감추려고, 빈궁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더라면 하는 의견을 내세우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소?” 마리아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자를 그냥 두십시오. 왜 그를 괴롭히려고 합니까? 그는 나에게 훌륭한[칼로스의 변화형] 일을 하였습니다. ···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장사지낼 것을 내다보고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입니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온 세상 어디든지 좋은 소식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알려져 그를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따뜻한 말씀은 틀림없이 마리아의 마음을 참으로 안심시켜 주었을 것입니다!—마가 14:4-9; 요한 12:4-8.
15. 예수께서 마리아가 한 일로 그토록 감동받으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영혼을 다한 봉사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15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한 일로 깊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의 평가로 볼 때, 마리아는 칭송할 만한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중요하였던 것은 선물의 물질적 가치가 아니라, 마리아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기회를 포착하였으며 자신이 드릴 수 있었던 것을 드렸습니다. 다른 번역판들은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다하였습니다.” 또는 “그는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였습니다.” (「미국역」[An American Translation]; 「예루살렘 성서」[The Jerusalem Bible]) 마리아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을 드렸기 때문에 그가 드린 것은 영혼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영혼을 다한 봉사란 바로 그런 것을 의미합니다.
과부의 “작은 주화 두 닢”
16.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셨습니까? (ㄴ) 과부의 주화의 가치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16 그로부터 며칠 후인 니산월 11일에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긴 하루를 보내셨는데, 그 곳에서 그분의 권위에 대한 질문을 받으셨고 세금과 부활과 그 밖의 문제들에 대한 까다로운 질문들을 재치 있게 처리하셨습니다. 그분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는데, 특히 “과부들의 집을 삼키”는 일 때문에 책망하셨습니다. (마가 12:40)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앉으셨는데, 분명히 그 곳은 여인의 뜰이었을 것이며,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그 곳에는 보고의 헌금통이 13개 있었습니다. 그분은 잠시 앉아서, 사람들이 헌금을 넣는 동안 주의 깊이 지켜 보셨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왔는데, 아마 어떤 사람들은 의로운 체하는 태도를 보였거나 심지어는 허세를 부리기까지 하였을 것입니다. (비교 마태 6:2) 예수께서는 어떤 여자를 주시하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여자나 그 여자가 예물로 드린 돈에 대하여 두드러진 점을 아무 것도 관찰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으셨던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가난한 과부”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그 여자가 예물로 드린 돈의 정확한 액수—‘가치가 아주 적은, 작은 주화 두 닢’—도 아셨습니다.b—마가 12:41, 42.
17. 예수께서는 과부의 헌금을 어떻게 평가하셨으며, 따라서 우리는 하느님께 드리는 일에 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1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는데, 자신이 가르치려고 하는 교훈을 그들이 직접 보고 배우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과부가 “보고의 헌금통에 돈을 넣는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평가로 볼 때, 그 과부는 다른 사람들이 넣은 것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이 넣었습니다. 그 과부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마지막 남은 적은 돈—을 드린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과부는 자신을 여호와의 돌보시는 손길에 맡겼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 드리는 일의 모범으로 특별히 언급된 사람은, 물질적으로는 가치가 거의 없는 예물을 바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것이 매우 귀중하였습니다!—마가 12:43, 44; 야고보 1:27.
영혼을 다한 봉사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로부터 배움
18. 우리는 예수께서 두 여자를 대하신 일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18 예수께서 이 두 여자를 대하신 일로부터, 우리는 여호와께서 영혼을 다한 봉사를 보시는 방식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요한 5:19) 예수께서는 그 과부와 마리아를 비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그 과부의 주화 두 닢을 마리아의 “매우 비싼” 기름만큼이나 가치 있게 여기셨습니다. 두 여자가 각각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을 드렸으므로, 하느님의 눈에는 그들의 예물이 둘 다 가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다할 수 없어서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이 속에서 솟아오르더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드릴 수 있는 최상의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중심[“마음”]을 보”시므로, 당신이 마음속으로 갈망하는 것을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사무엘 상 16:7, 「신세」 참조.
19. 우리는 왜 다른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수행하고 있는 일을 판단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까?
19 영혼을 다한 봉사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는 우리가 서로를 보는 방식과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노력을 비평하거나 어떤 사람의 봉사를 다른 사람의 봉사와 비교하는 것은 참으로 사랑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때때로 어떤 사람들은 파이오니아가 아니면 아무 가치가 없다는 식의 느낌을 갖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 ‘단지’ 정기적인 왕국 전도인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사람들도 감사히 여겨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동료 그리스도인의 경우에 무엇을 해야 영혼을 다한 봉사인지를 판단할 권한이 없음을 기억합시다. (로마 14:10-12) 여호와께서는 수백만 명의 충실한 왕국 전도인 각자의 영혼을 다한 봉사를 소중히 여기시므로, 우리도 그렇게 여겨야 합니다.
20. 우리의 동료 숭배자들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대개 제일 좋습니까?
20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봉사의 직무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동료인 믿는 사람의 활동이 줄어드는 것은, 도움이나 격려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염려를 나타내는 장로들에게 알려 주는 좋은 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영혼을 다한 봉사가 마리아의 비싼 기름보다는 과부의 작은 주화들과 훨씬 더 비슷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형제 자매들이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그리고 그러한 사랑이 그들로 하여금—할 수 있는 한 적게가 아니라—할 수 있는 한 많이 일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대개 제일 좋습니다. 분명히 여호와의 양심적인 어떤 종도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적게 봉사하는 편을 택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고린도 첫째 13:4, 7.
21. 많은 사람들은 무슨 보람 있는 천직을 추구하고 있으며, 무슨 질문들이 생깁니까?
21 그렇지만 하느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에게는, 영혼을 다한 봉사가 대단히 보람 있는 천직—파이오니아 봉사—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해 왔습니다. 그들은 무슨 축복들을 받습니까? 그리고 우리 가운데 아직 파이오니아를 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합니까?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떻게 파이오니아 영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논의할 것입니다.
[각주]
a 맛디아가 유다의 사도직을 대치하였기 때문에, 맛디아의 이름이—바울의 이름이 아니라—12기초석 위에 있는 이름들 가운데 나와 있었을 것이다. 바울도 사도였지만, 그는 12사도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다.
b 이 주화들은 둘 다 렙돈이었는데, 그 당시에 유통되던 유대인의 주화 가운데 가장 작은 주화였다. 두 렙돈은 하루 삯의 64분의 1에 해당하였다. 마태 10:29에 의하면, 앗사리온 주화 한 닢(렙돈 여덟 닢에 해당함)으로, 참새 두 마리를 살 수 있었는데, 참새는 가난한 사람들이 식품으로 사용하던 가장 값이 싼 새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이 과부는 정말 가난하였는데, 그에게는 단 한 끼니의 식사에도 결코 충분하지 않을 단 한 마리의 참새를 사는 데 필요한 금액의 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고린도 첫째 12:14-26에 나오는 예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 예수께서 마리아의 비싼 기름과 과부의 작은 주화 두 닢에 대하여 하신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영혼을 다하여 드리는 일에 관하여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 영혼을 다한 봉사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는, 우리가 서로를 보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15면 삽화]
마리아는 “매우 비싼” 향유를 예수의 몸에 부음으로써,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상의 것을 드렸다
[16면 삽화]
과부의 주화 두 닢—물질적으로는 가치가 거의 없었지만 여호와의 눈에는 매우 귀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