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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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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만족할 줄 모르는, 은을 사랑하는 사람들
  • 행복에 이를 수 있다—어떻게?
  • 영적 필요를 인정함
  • 여호와를 신뢰함
  •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임
  • 청결하고 평화를 사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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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파93 6/1 19-22면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은 자기를 뽑아 준 국민을 행복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어찌 되었든, 정치인은 그렇게 해야 직업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한 시사 잡지는 폴란드의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리는 유권자”에 대해 말한다. 한 언론인은 미국이 “틀에 박힌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사회라고 설명한다. 다른 필자는 “프랑스에서 갈수록 늘어가는 정치에 대한 냉담”에 대해 이야기한다. 결코 이들 세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널리 퍼져 있는 그런 냉담과 불만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려는 정치인들의 노력이 실패하고 있다는 표시다.

종교 지도자들도 현세가 아니라 적어도 미래일지언정 행복을 약속한다. 종교 지도자들은 인간에게 불멸의 영혼 혹은 환생하는 영혼이 있다는 사상을 근거로 그런 약속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런 사상을 배격하며, 성서 역시 그런 사상이 틀렸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교회들이 텅텅 비고 신도 수가 줄어드는 것은, 많은 사람이 더는 종교를 행복에 꼭 필요한 요소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다.—비교 창세 2:7, 17; 에스겔 18:4, 20.

만족할 줄 모르는, 은을 사랑하는 사람들

정치나 종교에서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 행복을 찾을 것인가? 혹시 상업계에서 찾을 수 있는가? 상업계 역시 행복을 주겠다고 장담한다. 상업계는 광고 매체를 통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온갖 물품과 편의 시설을 가질 때 행복이 온다고 귀가 따갑게 떠들어 댄다.

이런 식으로 행복을 구하는 사람들의 수가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독일의 전체 가정 중 절반이 빚더미에 앉아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손꼽는 신문 「디 차이트」에서 “[이 가정들 중] 다수가 빚을 갚을 가능성이 조금도 없음”을 예견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신문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고객은 은행에서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의 한계를 넘기가 아주 쉬우며, 또 그런 함정에 빠진 뒤 헤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대단히 산업화된 다른 나라들의 형편도 엇비슷하다. 뉴욕 시립 대학교 사회학자 데이비드 캐플로비츠는 몇 해 전에, 미국의 2000만에서 2500만 가정이 빚더미에 앉아 있다고 어림잡았다.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빚을 져서 삶을 망치고 있다”고 그는 말하였다.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그런데도 다른 두 요소(정치와 종교)가 이룩할 수 없음이 분명한 것을 상업계가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야 하는가? 부유한 왕 솔로몬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전도 5:10.

물질적 소유물에서 행복을 구하는 것은 공중 누각을 짓는 것과 같다. 공중 누각을 짓는 것이 즐거운 일일지 모르나 그 안에 들어가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행복에 이를 수 있다—어떻게?

사도 바울은 여호와를 “행복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디모데 전 1:11, 「신세」) 행복하신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사람에게도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창세 1:26) 그러나 사람의 행복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달려 있었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행복’, 「신세」]이 있”다고 시편 필자가 알려 준 바와 같다.(시 144:15ㄴ) 「신세계역」 성서에서 “행복한”(happy)과 “행복”(happiness)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110군데 중 몇몇 곳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 무엇이 포함되는지 그리고 그분을 섬길 때 어떻게 참으로 행복해지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

영적 필요를 인정함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명한 산상 수훈에서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마태 5:3, 「신세」) 상업계는 사람들이 사치품을 사면 마음껏 행복해질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게 부추긴다. 컴퓨터, 비디오 카메라, 전화, 승용차, 최신 스포츠 용품, 유행하는 옷을 가지면 행복해진다고 상업계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이 없어도 그리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수천만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생활을 좀더 안락하고 편리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행복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바울처럼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고 말한다. (디모데 전 6:8)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영적 필요를 채우면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때문이다.—요한 17:3.

돈이 있어서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즐기는 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 잘못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온갖 유행을 따르지 않는 법 혹은 여유가 있더라도 사고 싶은 것을 사지 않는 법을 배워 익히면 영성이 튼튼해진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만족하는 법을 배워 알게 되고 행복을 유지하게 된다. 예수께서도 세상 표준으로 볼 때는 경제 형편이 그리 좋지 않으셨지만, 만족과 행복을 유지하셨다. (마태 8:20) 그리고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쓴 것도 불행을 표현한 말이 아니다.—빌립보 4:11, 12.

여호와를 신뢰함

자기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꺼이 신뢰한다는 표시다. 이것은 행복에 기여한다. 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의지[“신뢰”]하는 자가 복[‘행복’]이 있”다고 설명한 바와 같다.—잠언 16:20, 「신세」 참조.

하지만 하나님보다 돈과 소유물을 더 신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가? 이렇게 본다면, 미국 화폐에 실제로 적혀 있듯이,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표어를 돈에 써놓은 것이야말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행위다.

돈으로 살 수 있는 좋은 것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게 지낸 솔로몬 왕은 물질적 소유물을 신뢰하는 것이 영속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음을 인정하였다. (전도 5:12-15) 은행이 파산하거나 물가가 갑자기 오를 경우 은행에 넣어 둔 돈을 제대로 써 보지 못할 수 있다. 심한 폭풍이 몰아치면 부동산도 못쓰게 될 수 있다. 보험에 든 경우 물질적 손실을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지만, 감정적 손실은 보상받을 수 없다. 갑작스레 증권 시장이 무너지면 증권이나 채권도 하룻밤 사이에 못쓰게 될 수 있다. 보수가 좋은 직장도—이런저런 이유로—오늘 있다가 내일 없어질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은 예수의 이러한 경고에 귀기울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이해한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태 6:19, 20.

언제나 우리를 부양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음을 아는 것보다 더 마음 든든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시 94:14; 히브리 13:5, 6.

하나님의 책망을 받아들임

진정한 벗이 사랑의 영으로 조언이나 심지어 책망을 할 경우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종 욥의 친구라고 나선 한 사람은 자기를 의롭게 여기면서 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행복’, 「신세」]이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로 엘리바스가 넌지시 비친 뜻—욥이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은 옳지 않았다. 오히려 실로 “번뇌케 하는 안위자”였다! 하지만 나중에 여호와께서 욥을 인자하게 책망하셨을 때, 욥은 책망을 겸손하게 받아들임으로 더 큰 행복을 얻을 만하게 처신하였다.—욥 5:17; 16:2; 42:6, 10-17.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하신 것과는 달리 오늘날에는 자기 종들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기 말씀을 통해 그리고 자기 영으로 인도하는 조직을 통해 종들을 책망하신다. 하지만 물질적 관심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대개, 성서를 꾸준히 연구하고 여호와의 조직에서 마련하는 모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들일 시간과 힘이 없으며 그럴 의향도 없다.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사람은 그런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로운 일임을 인정한다. 잠언 3:11-18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행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행복’]되도다.”—「신세」 참조.

청결하고 평화를 사랑함

예수께서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과 “평화를 좋아하는”(「신세」) 사람이 행복하다고 설명하셨다. (마태 5:8, 9) 그러나 물질주의적 생활 방식을 부추기는 세상에서 이기적이고 불결하기까지 한 욕망이 우리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가 얼마나 쉽겠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지침으로 삼지 않는다면, 아주 쉽사리 다른 사람과 누리는 평화로운 관계를 파괴할 수 있는 의심쩍은 수단을 써서라도 재정상의 이득을 얻으려고 잘못된 노력을 기울이기까지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이렇게 경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 전 6:10.

돈을 사랑하다 보면 자기 생각만 하게 되어 불만과 감사할 줄 모르는 태도와 탐욕을 키우게 된다. 이런 그릇된 영이 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중요한 재정 문제를 결정하기 전에 이렇게 자문해 본다. 그것은 정말 필요한가? 다른 수많은 사람은 그렇게 비싼 물품이나 시간을 많이 뺏는 돈벌이 좋은 직업 없이도 살아가는데, 내게는 그런 것이 필요한가? 혹시 돈이나 시간을 더 사용하여 참 숭배에 참여하는 몫을 늘리고 세계적인 전파 활동을 지원하며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가?

인내를 나타냄

욥이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련 중에는 경제적 파탄이 있었다. (욥 1:14-17) 욥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인내가 필요하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인내해야 하며, 어떤 그리스도인은 유혹을, 또 다른 그리스도인은 덜 바람직한 경제 상태를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온갖 형태의 인내에 대해 상 주신다.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가 욥과 관련하여 이렇게 쓴 바와 같다.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행복’, 「신세」]되다 하[느니라.]”—야고보 5:11.

경제 형편을 낫게 하려고 영적 관심사를 소홀히 하면 일시적인 경제 안정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왕국 아래 있을 영구적인 경제 안정에 대한 영상을 밝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가? 그만큼 위험을 무릅쓸 가치가 있는가?—고린도 후 4:18.

지금부터 영원토록 행복을 누림

일부 사람들은 사람이 행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할 것임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은 더 중요한 장기적 유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하나님께서 교훈하시는 것을 하면 자기에게 당장 오는 이득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물질을 의지하는 것이 헛되고 좌절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합당하게도 성서 필자는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하고 묻는다. (전도 5:11; 또한 전도 2:4-11; 7:12 참조) 관심사는 어느덧 시들고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도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마치 허공을 가르며 먼지를 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참 그리스도인은 물질적인 면에서 ‘남에게 지지 않기 위해 애쓰라’는 압력에 결코 굴하지 않는다. 참 그리스도인은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냐로 참 가치가 평가됨을 알고 있다. 참 그리스도인은 행복하려면, 참으로 행복하려면 여호와와 훌륭한 관계를 누리고 그분을 부지런히 섬기는 것이 필요함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20면 삽화]

물질만으로는 결코 영속적인 행복을 누릴 수 없다

[22면 삽화]

‘자기들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성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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