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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파수대—1999 |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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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합시다!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닙니다].”—히브리 10:39.
1. 어떤 상황으로 인해 사도 베드로는 두려움에 굴복하게 되었습니까?
사도들은 사랑하는 주인이신 예수께서 그들 모두가 흩어질 것이고 그분을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틀림없이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그것도 그분이 가장 어려울 때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습니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걸려 넘어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용감하고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배반당하여 체포되시자 사도들은 흩어졌으며, 그 가운데는 베드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예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시는 동안, 베드로는 걱정이 되어 그 집 뜰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추운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아마 베드로는 예수는 물론 그분의 동료들은 누구라도 처형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것입니다. 옆에 있던 몇몇 사람이 그가 예수의 친밀한 동료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자, 베드로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예수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세 번 부인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분을 알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부인하였습니다!—마가 14:27-31, 66-72.
2. (ㄱ) 예수께서 체포되시던 밤에 두려움에 사로잡혀 행동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뒤로 물러나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합니까?
2 그 일은 베드로의 생애에서 최악의 순간이었으며, 틀림없이 베드로는 그 후로 평생 동안 그 순간을 후회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날 밤에 했던 행동 때문에 베드로를 겁쟁이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 일 때문에 베드로를 사도 바울이 후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썼을 때 묘사한 사람들과 같은 부류였다고 할 수 있습니까? (히브리 10:39) 아마 우리 대부분은 바울의 말이 베드로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두려움은 일시적인 것으로, 탁월한 용기와 믿음이 특징을 이루었던 생애 중에 있었던 순간적인 실수였기 때문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 대부분에게는 돌이켜 보면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과거의 순간들이, 어쩌면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원하던 만큼 진리를 담대하게 옹호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 (비교 로마 7:21-23) 우리는 그러한 순간적인 실수들을 저질렀다고 해서 우리가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그러한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뒤로 물러나서 멸망한다는 말의 의미
3. 예언자 엘리야와 요나는 어떻게 두려움에 굴복하였습니까?
3 바울은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에 관하여 썼을 때, 순간적인 실수로 용기 있게 행동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베드로의 경험이나 그와 비슷한 다른 경우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담대하고 기탄없이 말하는 예언자였던 엘리야도 두려움에 굴복하여 목숨을 부지하려고 도망한 적이 있었습니다. 악한 왕비 이세벨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기 때문입니다. (열왕 첫째 19:1-4) 예언자 요나는 두려움 때문에 더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요나에게 폭력으로 유명한 악한 도시 니네베로 가라고 임명하셨습니다. 요나는 즉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는데, 다시스는 반대 방향으로 35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요나 1:1-3) 하지만 이 충실한 예언자들과 사도 베드로를 뒤로 물러난 사람들로 묘사하는 것은 부당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5. (ㄱ) 히브리 10:39에서 바울이 무슨 의미로 “멸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는지를 이해하는 데 문맥을 살펴보는 것이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 바울의 말은 무슨 의미였습니까?
4 바울이 사용한 표현 전체에 유의해 보십시오. 바울은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무슨 의미로 “멸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까?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는 때때로 영원한 멸망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멸망이라는 정의가 이 문맥에서는 꼭 맞습니다. 바울은 조금 앞에서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정확한 지식을 받은 후에 고의로 거듭 죄를 짓는다면, 더 이상 죄를 위한 희생이 남아 있지 않고, 도리어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찬 예상과 대적하는 자들을 소멸하는 불타는 질투가 있을 뿐입니다.”—히브리 10:26, 27.
5 따라서 바울이 동료 신자들에게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고 한 말은, 바울과 그의 글을 읽는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로부터 결코 돌아서지 않고 그분을 섬기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음을 의미하였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게 된다면, 결국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가리옷 유다는 뒤로 물러나 그러한 멸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고의로 여호와의 영을 거슬러 행하였던 진리의 적들처럼 되었습니다. (요한 17:12; 데살로니가 둘째 2:3) 그러한 사람들은 상징적인 불못에서 영원한 멸망을 당하는 “겁쟁이들” 가운데 포함됩니다. (계시 21:8) 우리는 결코 그러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6. 사탄 마귀는 우리가 어떤 행로를 취하게 되기를 바랍니까?
6 사탄 마귀는 우리가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기를 바랍니다. “간교한 행위”의 명수인 그는 그러한 파멸적인 행로가 흔히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베소 6:11,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 사탄은 직접적인 박해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좀더 교활한 수단을 사용하여 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침식시키려고 합니다. 사탄은 담대하고 열심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잠잠히 있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바울이 편지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사탄이 어떤 술책을 사용하였는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뒤로 물러나도록 그리스도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방법
7. (ㄱ) 예루살렘 회중의 역사는 어떠하였습니까? (ㄴ) 바울의 글을 읽은 일부 사람들은 영적으로 어떤 상황에 있었습니까?
7 증거에 의하면, 바울은 기원 61년경에 히브리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예루살렘 회중의 역사는 파란만장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신 후에 폭력적인 박해의 물결이 밀어닥쳐서, 그 도시에 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어쩔 수 없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기간이 뒤따랐으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늘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도 8:4; 9:31) 여러 해가 지나면서, 때때로 박해와 난관을 겪었습니다. 바울이 히브리 사람들에게 편지를 썼을 무렵에는 회중이 다시 비교적 평화로운 기간을 누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압력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신 지 거의 30년이 지났습니다. 끝이 너무 오래 지체되고 있으며 자신들의 생애 중에는 끝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특히 비교적 최근에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 가운데는, 아직 심각한 박해와 같은 시험을 겪은 적이 없고 시련 아래서 인내할 필요성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 12:4) 분명히 사탄은 그러한 상황을 이용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탄은 어떤 “간교한 행위”를 사용하였습니까?
8. 많은 유대인들은 갓 형성된 그리스도인 회중에 대해 어떤 태도를 나타냈습니까?
8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유대인 사회는 갓 형성된 그리스도인 회중을 멸시하였습니다. 바울의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오만한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퍼부었던 조롱에 대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실상 이런 취지로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세기 동안 예루살렘에 서 있는 거대한 성전이 있다! 우리에게는 그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고귀한 대제사장과 보조 제사장들이 있다. 매일 희생이 바쳐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천사들을 통해 모세에게 전해지고 시나이 산에서 큰 표징으로 확정된 율법이 있다. 이제 막 시작된 분파인 이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에서 배교한 자들이며,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도 없다!’ 그러한 조롱은 바라던 효과를 거두었습니까? 일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비난 때문에 혼란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의 편지는 아주 적절한 시기에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했던 이유
9. (ㄱ)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무슨 주제가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까? (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의미에서 예루살렘 성전보다 더 나은 성전에서 섬기고 있었습니까?
9 바울이 유대 지방에 있던 형제 자매들에게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는 이유로 제시한 두 가지 점을 검토해 봅시다.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교 숭배 체계의 우월함인데, 그 점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역력히 나타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 전체에 걸쳐서 이 주제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훨씬 더 큰 실체 즉 “손으로 만들지 않은” 건물인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모형에 불과하였습니다. (히브리 9:11) 그 그리스도인들은 순결한 숭배를 위한 그러한 영적 마련 안에서 섬기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더 나은 계약 아래서, 오래 전에 약속된 새 계약 아래서 섬겼으며, 그 계약의 중개자는 모세보다 더 탁월한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예레미야 31:31-34.
10, 11. (ㄱ) 예수께서 그분의 계보 때문에 영적 성전에서 대제사장으로 섬길 자격이 없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는 어떤 면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한 대제사장이셨습니까?
10 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한 훨씬 더 나은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셨습니다. 사실 그분은 아론의 후손이 아니셨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분은 “멜기세덱의 방식을 따”른 대제사장이셨습니다. (시 110:4) 계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멜기세덱은 고대 살렘의 왕이자 대제사장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예수를 전영하는 적절한 예언적 모형이 되었습니다. 예수의 제사직은 불완전한 인간 조상에게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우월한 것 즉 여호와 하느님께서 친히 맹세하신 서약에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는 멜기세덱처럼 대제사장으로만이 아니라 왕으로도 봉사하시며, 결코 죽지 않으실 분입니다.—히브리 7:11-21.
11 더욱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대제사장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해마다 희생을 바칠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그분이 희생하신 것은 그분 자신의 완전한 생명이었으며,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단 한 번에 바치셨습니다. (히브리 7:27) 성전에서 드렸던 모든 희생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서, 예수께서 바치신 희생을 전영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완전한 희생은 믿음을 나타내는 모든 사람의 죄를 실제로 용서하기 위한 마련이었습니다. 또한 이 대제사장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알고 있던 바로 그분 즉 변함이 없으신 예수라는 바울의 설명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줍니다. 그분은 겸손하시고 친절하시며 “우리의 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히브리 4:15; 13:8) 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보조 제사장들로 섬길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뒤로 물러나서 부패한 유대교의 “약하고 천한” 것들로 돌아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갈라디아 4:9.
12, 13. (ㄱ) 바울은 결코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할 무슨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하였습니까? (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게 하는 데 과거의 그들 자신의 인내의 기록이 격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2 바울은 마치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라도 한 듯이,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를 제시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인내의 기록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이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을 당하면서 큰 싸움을 인내한 이전의 날들을 계속 기억하십시오.” 바울은 그들이 “극장에서처럼” 치욕과 환난에 “노출”되었던 일을 상기시켰습니다. 투옥을 당했던 사람들도 있었으며, 감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나타내어 그들을 지원해 주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범이 되는 믿음과 꾸준함을 나타냈습니다. (히브리 10:32-34) 하지만 바울이 그들에게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계속 기억”하라고 권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한다면 용기를 잃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13 그와는 반대로, 히브리 사람들이 ‘이전의 날들을 기억’한다면 그들은 여호와께서 어떻게 시련 아래서 그들을 붙들어 주셨는지를 상기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도움으로 그들은 이미 사탄이 가한 많은 공격에 대항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히브리 6:10)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행한 충실한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계셨으며, 그러한 일들을 자신의 무한한 기억 속에 간직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권고하신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어떤 도둑도 그러한 보물을 훔쳐 갈 수 없으며, 또 옷좀나방이나 녹이 그러한 보물을 먹어치울 수도 없습니다. (마태 6:19-21) 사실 그러한 보물은 그리스도인이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경우에만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을 모두 탕진해 버리는 셈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행로를 결코 추구하지 말아야 할 참으로 강력한 이유를 제시하였습니다! 충실한 봉사에 바친 그 모든 세월이 허사가 되게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계속 인내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훨씬 더 나은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하는 이유
14. 우리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했던 것과 비슷한 어떤 도전들에 직면합니까?
14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뒤로 물러나지 말아야 할 그와 똑같은 강력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순결한 숭배 방식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지 기억해 보십시오. 1세기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좀더 대중적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고 조롱하면서 자기들의 웅장한 종교 건물들과 오래 된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우리의 숭배 방식을 승인하고 계심을 확신시켜 주십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누리지 못했던 축복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성전이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을 때 살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29년에 침례를 받으시어 그 성전의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기적을 행하시는 하느님의 아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분이 죽은 후에도 기적들이 더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예언된 대로, 그러한 선물들은 마침내 그쳤습니다.—고린도 첫째 13:8.
15.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때에 살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15 하지만 우리는 에스겔 40-48장에 나오는 광범위한 성전 예언이 의미심장하게 성취되고 있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a 따라서 우리는 순결한 숭배를 위한 하느님의 마련이 회복되는 것을 목격해 온 것입니다. 이 영적 성전은 온갖 형태의 종교적 오염과 우상 숭배로부터 깨끗해졌습니다. (에스겔 43:9; 말라기 3:1-5) 이러한 깨끗하게 하는 일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유익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16.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실망스러운 추세에 직면하였습니까?
16 1세기에, 그리스도인 회중 조직의 장래는 암울해 보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마치 새로 씨를 뿌린 밀밭에 잡초가 덧뿌려져서 밀과 잡초를 거의 구별할 수 없는 상태처럼 될 것이라고 이미 예언하셨습니다. (마태 13:24-30)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연로한 사도 요한이 부패를 막는 마지막 억제력으로 작용하고 있었을 때인 1세기 말에, 이미 배교가 번성하고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 둘째 2:6; 요한 첫째 2:18) 사도들이 사망한 지 오래지 않아, 교직자 계급이 새로 출현하여 양 떼를 압제하고 구별되는 복장을 입었습니다. 배교는 괴저처럼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참으로 실망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순결한 숭배를 위해 새로 설립된 마련이 부패한 제도에 의해 파묻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태 진전은 예수께서 회중의 기초를 놓으신 지 한 세기가 채 안 되어 일어났습니다.
17. 현대의 그리스도인 회중은 어떤 의미에서 1세기의 그리스도인 회중보다 더 오래 존속해 왔습니까?
17 이제 그와는 상반되는 일을 고려해 보십시오. 오늘날 순결한 숭배는 사도들이 사망하였을 때까지의 기간보다 이미 더 오랜 기간 존속해 왔습니다! 과거 1879년에 본지의 첫 호가 발행된 때부터, 여호와께서는 숭배가 점점 더 순결해지게 하심으로 우리를 축복해 오셨습니다. 여호와와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영적 성전을 깨끗이 할 목적으로 1918년에 그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말라기 3:1-5) 1919년 이후로 여호와 하느님께 숭배를 드리기 위한 마련은 점진적으로 정련되어 왔습니다. 성서 예언과 원칙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더 명확해져 왔습니다. (잠언 4:18) 이러한 일에 대한 영예는 누구에게 돌아갑니까? 한낱 불완전한 인간에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께서만이 회중의 머리인 그분의 아들과 함께 이 부패한 시대에 자신의 백성이 부패하지 않도록 보호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순결한 숭배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신 데 대해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을 결코 잊지 말도록 합시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게 하겠다고 굳게 결심하도록 합시다!
18. 우리에게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
18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처럼 우리에게도 비겁하게 물러서는 행로를 거부해야 할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인내의 기록입니다. 우리가 최근에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했든지 아니면 수십 년 동안 충실하게 그분을 섬겨 왔든지, 우리는 그리스도인 활동의 기록을 쌓아 왔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투옥이나 금지령이나 잔학 행위나 재산을 잃는 것과 같은 박해를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경우는, 가족의 반대와 멸시와 조롱과 무관심을 겪어 왔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내하면서, 생활상의 도전과 시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 충실한 봉사를 계속 드려 왔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여호와께서 잊지 않으실 꾸준한 인내의 기록을 하늘의 보물 창고에 쌓아 왔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지금은 뒤로 물러나 우리가 이미 버리고 떠났던 부패하고 낡은 제도로 되돌아갈 때가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가 모두 무가치한 것이 되게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특히 “조금만” 있으면 끝이 닥치게 될 때인 오늘날은 더더욱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때입니다.—히브리 10:37.
19.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무엇을 검토할 것입니까?
19 그렇습니다.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도록 합시다! 그와는 반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히브리 10:39) 그러면 우리 자신이 그러한 묘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그 점을 고려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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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사람이 됩시다파수대—1999 |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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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가진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 믿음을 가지고 영혼을 살아 있게 보존할 사람들입니다.”—히브리 10:39.
1.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이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음에 여호와를 숭배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왕국회관에 가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잠시 둘러보도록 하십시오. 그들이 여러가지 방법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수십 년 동안 하느님을 섬겨 온 연로한 사람들, 매일 동배의 압력을 이겨 내고 있는 청소년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애쓰는 부모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책임을 맡고 있는 회중 장로들과 봉사의 종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있는 모든 연령층의 영적 형제 자매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은 참으로 소중합니다!—베드로 첫째 1:7.
2. 히브리 10장과 11장에 나오는 바울의 교훈이 오늘날 우리에게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불완전한 인간들 가운데 사도 바울보다 믿음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진정한 믿음이 마침내 “영혼을 살아 있게 보존”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히브리 10:39) 하지만 믿음 없는 이 세상에서는 믿음이 공격을 당하거나 침식되기 쉽다는 사실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고투하고 있던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을 깊이 염려하였습니다. 히브리 10장과 11장의 일부분을 살펴보면서, 바울이 그들의 믿음을 세워 주는 데 사용한 방법들에 유의해 봅시다.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더 강한 믿음을 세워 나갈 수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 대한 확신을 표현하라
3. 히브리 10:39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믿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 대해 바울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까?
3 우리가 유의해 볼 수 있는 첫 번째 점은, 바울이 자신의 글을 읽게 될 사람들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뒤로 물러나서 멸망할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영혼을 살아 있게 보존할 사람들입니다.” (히브리 10:39) 바울은 충실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가장 나쁜 점이 아니라 가장 좋은 점을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자신이 자신의 글을 읽을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의로운 상태에 있는 것처럼 그들을 낮추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비교 전도 7:16) 오히려 그는 자신을 그들 가운데 포함시켰습니다. 그는 자신만 아니라 자신의 글을 읽게 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앞에 놓여 있는 만만치 않은 장애들에 직면할 것이며, 뒤로 물러나서 멸망하지 않기 위해 용감하게 투쟁할 것이며, 믿음을 가진 사람들임을 증명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진심에서 우러나온 확신을 표현하였습니다.
4. 바울이 동료 신자들에 대해 확신을 가졌던 데에는 어떤 이유들이 있었습니까?
4 바울은 어떻게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의 결점을 무조건 덮어 주었습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 바울은 그들이 영적 단점을 극복하도록 돕기 위해 구체적인 교훈을 베풀었습니다. (히브리 3:12; 5:12-14; 6:4-6; 10:26, 27; 12:5) 그렇지만 바울에게는 형제들에 대해 확신을 가질 만한 타당한 이유가 적어도 두 가지는 있었습니다. (1) 바울은 여호와를 본받는 사람으로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을 보시는 것처럼 그들을 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들의 결점만이 아니라 그들의 좋은 특성과 앞으로 선을 행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그들의 잠재력을 보았던 것입니다. (시 130:3; 에베소 5:1) (2) 바울은 성령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어떤 장애도, 어떤 인간적 약함도 여호와를 충실하게 섬기려고 노력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분이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고린도 둘째 4:7; 빌립보 4:13)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에 대한 바울의 확신은 잘못되거나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무조건적인 낙관론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확신은 확고한 기초가 있었고 성경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5. 우리는 바울의 확신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으며, 그렇게 할 때 어떤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까?
5 바울이 나타낸 확신은 분명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에 있는 회중들에게 매우 격려적으로 말해 준 것은 그들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유대인 반대자들의 위압적인 멸시와 오만한 무관심에 직면해 있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표현을 읽고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려는 결심을 다지도록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서로 그와 같이 할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서 긴 목록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결점과 이상한 성격을 찾아내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마태 7:1-5) 하지만 개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믿음에 유의하고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훨씬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격려를 받으면, 필시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로마 1:11, 12.
하느님의 말씀을 적절히 사용함
6. 바울은 히브리 10:38에 나오는 말씀을 기록했을 때, 어디에 나오는 글을 인용하였습니까?
6 바울은 또한 성경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동료 신자들의 믿음을 세워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나 나의 의로운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그리고 ‘그가 뒤로 물러나면 내 영혼이 그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히브리 10:38) 여기에서 바울은 예언자 하박국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a 바울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 말씀에 친숙하였을 것입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언서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원 61년경에 예루살렘과 그 인근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 바울의 목적이었음을 고려해 볼 때, 하박국의 예를 선택한 것은 적절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하박국은 언제 그의 예언을 기록하였으며, 그 당시에 유다의 상태는 어떠하였습니까?
7 하박국은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불과 20여 년 전에 그의 예언서를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 예언자는 환상에서 “독하고 성급한 나라”인 칼데아 사람들(즉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유다를 급습하여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그 과정에서 여러 민족들과 나라들을 삼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박국 1:5-11) 하지만 그러한 재난은 1세기도 더 전인 이사야 시대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하박국 시대에, 선한 왕 요시야에 이어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고, 유다에는 다시 악이 번성하였습니다. 여호야김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박해하였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역대 둘째 36:5; 예레미야 22:17; 26:20-24) 심한 괴로움을 느꼈던 예언자 하박국이 “오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부르짖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하박국 1:2.
8. 하박국의 모범이 1세기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하박국은 예루살렘의 멸망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와 비슷하게,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유대 사물의 제도가 언제 끝날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현 악한 제도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 있을 “날과 시간”을 알지 못합니다. (마태 24:3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박국에게 하신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대답에 유의해 봅시다. 첫째로, 그분은 그 예언자에게 끝이 제시간에 오게 될 것임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더딘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늦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2:3) 둘째로, 여호와께서는 하박국에게 이렇게 일깨워 주셨습니다. “의로운 사람, 그는 자기의 충실함으로 계속 살 것이다.” (하박국 2:4) 참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간명한 진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끝이 언제 올 것인가가 아니라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계속 영위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9. (ㄱ) 기원전 607년에, 그리고 (ㄴ) 기원 66년 이후에, 여호와의 순종적인 종들은 어떻게 그들의 충실함으로 인해 계속 살 수 있었습니까? (ㄷ)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9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약탈당하였을 때, 예레미야와 그의 비서관인 바룩과 에벳-멜렉과 충성스러운 레갑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하박국에게 하신 약속이 참됨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을 모면함으로 “계속 살”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그들의 충실함에 대해 상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5:1-19; 39:15-18; 43:4-7; 45:1-5) 그와 비슷하게, 1세기의 히브리 그리스도인들도 틀림없이 바울의 교훈에 좋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기원 66년에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공격하다가 분명한 이유도 없이 철수하였을 때, 그 그리스도인들은 도피하라는 예수의 경고를 충실하게 청종하였습니다. (누가 21:20, 21) 그들은 충실함 때문에 계속 살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끝이 올 때 충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 계속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믿음을 강화시켜야 할 매우 중요한 이유입니다!
믿음의 모범들을 생생하게 묘사함
10. 바울은 모세의 믿음을 어떻게 묘사하였으며, 우리는 이 면에서 어떻게 모세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10 바울은 또한 모범이 되는 예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믿음을 세워 주었습니다. 히브리 11장을 읽으면서, 바울이 모범이 되는 성서 인물들을 얼마나 생생하게 묘사하였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바울은 모세가 “보이지 않는 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 확고하게 행”하였다고 말합니다. (히브리 11:27)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매우 실재적인 분이셨기 때문에,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호와와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만, 그러한 관계를 세워 나가고 강화시키는 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결정을 포함하여 결정을 내릴 때마다 여호와를 고려할 만큼 그분은 우리에게 실재적이십니까? 그러한 믿음은 가장 극심한 반대까지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1, 12. (ㄱ) 에녹의 믿음은 어떤 상황에서 시험을 받았을 것입니까? (ㄴ) 에녹은 어떤 고무적인 상을 받았습니까?
11 또한 에녹의 믿음을 고려해 보십시오. 에녹이 어떤 반대에 직면하였는지를 우리가 알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에녹은 당시에 살던 악한 사람들에 대한 통렬한 심판의 소식을 전해야 하였습니다. (유다 14, 15) 이 충실한 사람을 위협하였던 박해는 아마도 매우 사악하고 매우 폭력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적들이 에녹을 해치기 전에, 살아 있는 상태에서 죽음의 잠이 든 상태로 “그를 옮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자신이 말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선물을 받았는데, 어떤 면에서 그것은 훨씬 더 좋은 선물이었습니다.—히브리 11:5; 창세 5:22-24.
12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에녹]는 옮겨지기 전에 하느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언을 얻었습니다.” (히브리 11:5) 이 말씀은 무슨 의미였습니까? 에녹은 죽음의 잠을 자기 전에, 모종의 환상을 보았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언젠가 곧 깨어나게 될 지상 낙원에 관한 환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호와께서는 에녹에게 그분이 그의 충실한 행로를 매우 기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에녹은 여호와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비교 잠언 27:11) 에녹의 생애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당신도 그러한 믿음의 생활을 영위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러한 모범들을 숙고하면서, 그러한 모범들을 실재적인 사람들로 여기십시오. 날마다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십시오. 또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날짜에 근거해서, 즉 하느님께서 그분의 약속을 모두 이루실 때와 관련하여 기한을 정해 놓고 그것에 근거해서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영원히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현 사물의 제도와 다음 사물의 제도에서 최상의 생활 방식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 안에서 더 강해져 가는 방법
13, 14. (ㄱ) 히브리 10:24, 25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말은 우리의 집회가 기쁨을 주는 기회가 되게 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ㄴ) 그리스도인 집회의 주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13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실용적인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두 가지만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아마 우리는 히브리 10:24, 25에 나오는 바울의 권고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구절에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집회에 정기적으로 모일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하지만 거기 나오는 바울의 영감받은 말씀은 우리가 그러한 집회에서 단지 수동적인 참관자로 있을 것을 시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십시오. 오히려 바울은 집회를 서로 친숙해질 수 있는 기회로, 하느님을 좀더 온전히 섬기도록 서로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기회로, 서로 격려할 수 있는 기회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단지 받기만 하려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주려고 집회에 참석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집회가 기쁨을 주는 기회가 되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사도 20:35.
14 하지만 우리가 집회에 참석하는 주된 목적은 여호와 하느님을 숭배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와 노래에 참여함으로, 주의 깊이 잘 들음으로, “입술의 열매”를—집회에서 해설을 하거나 프로를 다룰 때 우리가 여호와께 드리는 찬양의 표현을—바침으로 그분을 숭배합니다. (히브리 13:15) 그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모든 집회에서 그러한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면, 틀림없이 우리의 믿음은 집회에 참석할 때마다 세움을 받을 것입니다.
15. 바울이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봉사의 직무를 굳게 잡으라고 강력히 권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교훈이 오늘날에도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믿음을 세워 나가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약속하신 분은 충실하시므로, 우리의 희망에 대한 공개적 선언을 흔들림 없이 굳게 잡읍시다.” (히브리 10:23) 어떤 것을 놓쳐 버릴 것같이 보이는 사람을 보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그것을 꼭 붙잡고 있으라고 강력히 권할 것입니다. 분명히 사탄은 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봉사의 직무를 놓쳐 버리게 하기 위해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였으며, 오늘날도 그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압력에 직면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이 한 일을 고려해 보십시오.
16, 17. (ㄱ) 바울은 어떻게 봉사의 직무에서 담대해질 수 있었습니까? (ㄴ) 봉사의 직무의 특정한 부면이 두렵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어떤 방법들을 사용해 보아야 합니까?
16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처음에 빌립보에서 고난을 당하고 불손한 취급을 받은 후에, 우리 하느님에 의하여 담대해져서 심한 고투를 하면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좋은 소식을 말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2:2)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빌립보에서 어떤 “불손한 취급”을 당하였습니까? 일부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는 모욕적이거나 수치스럽거나 난폭한 취급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빌립보의 당국자들은 바울과 그의 동료들을 매로 때렸으며 감옥에 집어넣었고 그들에게 차꼬를 채웠습니다. (사도 16:16-24) 그러한 고통스러운 경험은 바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바울의 선교 여행의 다음 도시인 데살로니가에 있던 사람들은 바울이 두려워서 뒤로 물러난, 다시 말해서 두려움 때문에 위축된 모습을 보았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담대”함을 나타냈습니다. 바울은 두려움을 이기고 계속 담대하게 전파하였습니다.
17 바울의 담대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었습니까? 자기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우리 하느님에 의하여” 담대해졌다고 말하였습니다. 성서 번역자를 위한 한 참조 문헌에 의하면, 이 표현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 주셨다”라고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봉사의 직무에서 별로 담대하지 못한 사람이거나 봉사의 직무의 특정한 부면이 두렵게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바울처럼 되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청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당신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없애 달라고 그분에게 요청하십시오. 당신이 그 일에서 담대해지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에 더하여, 그 밖의 실용적인 방법들도 사용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당신이 두렵게 느끼는 증거 방법에 능숙한 사람과 함께 봉사할 마련을 해 보십시오. 그런 증거 방법 가운데는, 사업 구역 증거, 가두 증거, 비공식 전파, 전화 증거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의 봉사 짝은 봉사하는 방법을 기꺼이 먼저 보여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럴 경우, 잘 보고 배우도록 하십시오. 그런 다음, 담대함을 나타내어 직접 시도해 보십시오.
18. 봉사의 직무에서 담대함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무슨 축복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까?
18 담대함을 나타내면, 어떤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꾸준히 인내하고 낙담하지 않는다면, 진리를 전하면서 훌륭한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경험들은 당신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일 것입니다. (25면 참조) 당신 자신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 일을 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 해 드렸다는 것을 앎으로 만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그분의 축복과 도움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사실, 당신 자신의 믿음을 세워 나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믿음을 세워 줄 수는 없습니다.—유다 20, 21.
19. ‘믿음을 가진 사람들’ 앞에는 무슨 귀중한 상이 놓여 있습니까?
19 당신 자신의 믿음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믿음을 계속 강화시켜 나가기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적절히 사용하여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세워 나감으로, 성서에 나오는 믿음의 모범들을 연구하고 그러한 모범들을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봄으로, 그리스도인 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함으로, 공개 봉사의 귀중한 특권을 굳게 붙잡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해 나가면서, 당신이 진실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포함된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귀중한 상이 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영혼을 살아 있게 보존할 사람들”입니다.b 당신의 믿음이 계속 자라기를 그리고 여호와 하느님께서 당신을 영원히 살아 있게 보존하시기를 바랍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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