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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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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할 것인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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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0
파90 9/1 29-31면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할 것인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계속, 신세] 행[하는] ·⁠·⁠·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요한 3서 4) 사도 요한은 자신의 긴 생애 말년에 그와 같이 말했다. ‘그의 자녀들’ 곧 그가 “진리”에 들어오게 한 사람들이 계속 인내하는 것은 그에게 큰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다. 여호와께서도 자신의 숭배자들이 진리 안에서 계속 머물러 있을 때 기뻐하신다. 그분은 오늘날 성원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그 현명한 행로를 따르는 큰 조직을 보시고 참으로 기뻐하실 것임에 틀림없다!—잠언 27:11.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진리에 굳게 고착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순결한 숭배를 태만히 하거나 심지어는 그만두기까지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이러한 일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제1세기에도 그와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모데 후 4:10; 히브리 2:1) 그렇지만 일부 사람이 실제로 태만해진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영성을 계속 살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 준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여러분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계속 증명”하라고 격려하였다. (고린도 후 13:5, 신세) 그리스도인 각자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나는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할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일부 사람은—아마도 건강 문제나 개성의 충돌로 인해—낙담하여 진리 안에서 행하는 일을 태만히 하거나 중단하기까지 한다. 다른 것에 주의를 빼앗겨 태만해진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사물의 제도가 지속되는 동안 그 열매의 일부를 즐기고 싶어한다. 우리는 어떻게 태만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예수께서 남겨 놓으신 본을 고려해 보자.

예수의 본을 따르라

예수께서는 곤란한 상황을 많이 직면하셨다. 그분은 추종자들 사이에 벌어진 개성의 충돌 문제를 다루셔야 했을 뿐 아니라, 적들의 미움과 조롱을 인내하셔야 했다. 그분은 또한 이 세상의 유혹을 저항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상 그분은 누구도 누리기 힘든 규모의 부와 탁월한 지위를 제공받으셨다. (마태 4:8-11; 요한 6:14, 15)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계속 진리 안에서 행하셨다. 그분이 그렇게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이었는가?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답을 알려 준다.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형주, 신세]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 12:1, 2) 예수의 경우,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 곧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귀중한 상을 염두에 두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은 그분이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시적으로 낙담케 하는 것들이나 주의를 빼앗는 것들보다 훨씬 중요하였다.

예수의 경우처럼, 상을 염두에 두는 것은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계시 22:12) 예를 들어, 험한 산길을 따라 걷는 한 여행자를 생각해 보자. 그는 지치고 낙담하게 된다. 한걸음 한걸음이 힘이 들고, 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러다가 고갯마루에 이르러 먼발치에 목적지인 읍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갑자기 가는 일이 좀더 쉬워 보인다. 목적지를 명확히 보게 되자 피로를 잊는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목적지를 명확히 염두에 둔다면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하기가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을 본받으라

낙담케 할 수도 있었던 많은 것을 인내한 또 다른 사람은 사도 바울이었다. 그는 형제들 사이의 분열 및 개성의 충돌 문제를 다루어야 했을 뿐 아니라, 심한 건강 문제, 박해, 신체적 고난 그리고 회중 내의 문제 및 심지어 반대까지 참아야 했다. (고린도 전 1:10; 고린도 후 10:7-12; 11:21-29; 12:7-10) 바울이 포기할 정도까지 낙담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빌립보 4:13) 그는 짐을 혼자서 지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탱시켜 주시기를 바랐다.—시 55:22.

바울이 인내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요청한 하나님으로부터의 힘은 오늘날에도 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께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9-31) 우리가 개인 연구, 집회 참석, 열성적인 그리스도인 활동 그리고—특히—기도를 통하여 여호와께서 힘을 주시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때때로 일어날 수 있는 유혹과 낙담케 하는 것들을 인내할 수 있을 것이다.—시 1:1-3; 로마 10:10; 데살로니가 전 5:16, 17; 히브리 10:23-25.

수백만 명의 사람이 낙원에서 살 준비를 한다

사단은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물의 제도에서 참으로 외국인 거주자에 불과하다. (고린도 후 4:4) 따라서, 때때로 낙담케 하는 것들이나 주의를 빼앗는 것들을 직면한다 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울은 히브리서에서 “우리가 여기는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는다고 기록하였다. (히브리 13:14) 우리의 희망이 이 낡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장차 올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태만해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몇 가지 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곳에서 더 나은 생활을 찾기 위해 고국을 떠나는 이주민과도 같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밟기 어려운 단계다. 그렇게 하려면 자기의 모든 소유물을 싸서 묶거나 처분해야 하며 정든 집은 물론, 친구, 친척과도 작별해야 한다. 또한 생소한 나라에 가서, 자기를 환영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가운데서 살면서 새로운 언어와 익숙지 않은 생활 방식을 배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은 단지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물질적 상황이 나아질 것을 바라고 그러한 이주를 한다.

말하자면, 이 낡은 사물의 제도로부터 이주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일부가 된 사람들도 비슷한 도전을 직면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깨끗한 표준에 따라 살기 위해 문화적인 적응을 하며, 진리의 “순결한 언어”를 배운다. (스바냐 3:9, 신세; 고린도 전 6:9-11)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왕국의 위대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뿐 아니라, 많은 경우에 친척들과 이전 친구들과의 관계가 끊긴다. 따라서 사실상, 그들과 작별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이주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그 한 가지로서, 그들은 사랑해 주고 돌보아 주는 한 공동체에 들어가게 된다. (누가 18:29, 30) 더욱 중요한 것으로, 그들은 우주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와의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의 성취를 고대하면서 정신의 평화와 미래에 대한 확신을 얻는다. (빌립보 4:8, 9)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합당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주의를 빼앗는 것들이나 낙담케 하는 것들로 인해 영구적으로 태만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로부터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마태 7:13, 14; 요한 1서 2:15-17.

영적 건강을 돌보라

우리가 정기적으로 신체적 건강을 돌본다면, 병에 대한 더 큰 저항력을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병이 날 경우, 보다 빨리 회복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축복들과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축복들을 마음속에 명확히 그리면서 자신의 영적 건강을 돌보며,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 안다면,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더 나은 입장에 있게 될 것이다. 주의를 빼앗는 것들이나 낙담케 하는 환경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미리 자신의 영적 건강을 적절히 돌본다면, 그러한 일들이 우리를 압도하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숭배자들이 인내할 때 기뻐하신다는 점을 기억하자. 따라서 진리 안에서 계속 행함으로써 그분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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