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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귀중한 양들을 부드럽게 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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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귀중한 양들을 부드럽게 치는 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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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3
파93 7/15 24-27면

여호와의 귀중한 양들을 부드럽게 치는 일

장로들은 열렬한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들은 사도 바울의 교훈을 들으려고 에베소에서 밀레도까지 약 50킬로미터를 여행해 온 것이다. 이제 이들은 다시는 바울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섭섭한 말을 들었다. 그래서 주어지는 이러한 교훈이 매우 중요할 것임을 알았다. “여러분 자신과 온 양 떼에 유의하십시오. 그들 가운데서 성령이 여러분을 감독자로 임명하여 하나님의 회중 즉 그분이 자기의 아들의 피로 사신 것을 치게 하였습니다.”—사도 20:25, 28, 「신세」, 38.

바울이 양치는 사람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것은 분명히 에베소의 그 장로들에게 많은 의미를 남겼을 것이다. 그 장로들은 주변 시골 지역에서 양 떼를 치는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목자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자신을 백성의 목자에 비하신 것도 알고 있었다.—이사야 40:10, 11.

바울은 그 장로들이 “양 떼” 가운데 “감독자”이며, “회중”의 ‘목자’라고 언급한다. “감독자”라는 용어는 장로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시사하는 한편, ‘목자’라는 용어는 감독자들이 감독의 직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를 설명해 준다. 그렇다. 감독자는 목자가 양 떼를 돌보는 것과 같이 인자한 방식으로 회중의 각 성원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다.

오늘날 실제로 직접 양치기를 해본 장로는 거의 없다. 그러나 성서는 양과 목자 모두에 대해, 특히 상징적인 의미로 자주 언급하기 때문에 바울의 말은 시대에 관계없이 의미 깊다. 그리고 고대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목자들에 대한 기록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런 목자들의 주목할 만한 본은 현대 장로들이 하나님의 회중을 치기 위해 무슨 특성을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깨닫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두려움 없는 목자, 다윗

우리가 성서 시대의 목자에 대해 생각할 때, 필시 다윗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처음에는 양치기였기 때문이다. 다윗의 생애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한 가지 교훈은 목자라는 신분이 명성 높은 지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예언자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 중 하나를 미래의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붓고자 왔을 때, 젊은 다윗은 처음에는 전혀 안중에도 없는 존재였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일곱 형들을 배척하신 후에야 비로소 다윗이 언급되었는데, 이 때 다윗은 들판에 나가 “양을 지키”고 있었다. (사무엘 상 16:10, 11) 그렇지만 다윗이 목자로서 지낸 세월은 다윗이 이스라엘 나라를 돌보는, 크나큰 노력을 요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대비시켜 주었다. “[여호와께서]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 그 백성인 야곱[을] ·⁠·⁠· 기르게 하셨”다고 시편 78:70, 71은 말한다. 적절하게도 다윗은 잘 알려진 아름다운 시편 23편을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다윗처럼,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들은 겸손한 아랫목자로서 섬겨야 하며, 부당한 명성을 구하지 않아야 한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쓴 바와 같이, 목자의 책임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명성이 아니라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다.—디모데 전 3:1; 사체로는 본지에서.

다윗이 문자적인 목자로서 한 일이 비천하기는 했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양 떼 가운데서 사자가 양을 물어 갔을 때, 그리고 또 한 번은 곰이 물어 갔을 때, 다윗은 두려움없이 쫓아가서 사자와 곰을 죽였다. (사무엘 상 17:34-36) 사자가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큰 동물을 죽일 수 있음을 생각할 때, 다윗의 행동은 대단한 용기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 서식한 시리아 불곰은 무게가 자그마치 140킬로그램이나 나가는데, 강력한 앞발을 휘둘러 단번에 사슴을 죽일 수 있다.

다윗이 아버지의 양들에 대해 용기 있는 관심을 나타낸 것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목자들에게 훌륭한 본이 된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양 떼를 부드럽게 대하지 않”는(「신세」) “흉악한 이리”에 대해 경고하였다. (사도 20:29) 현대에도 그리스도인 목자들이 여호와의 양들의 영적 복지를 보호하기 위해 용기를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양들을 담대히 보호해야 하는 한편, 인자한 목자 다윗과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양들을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 (요한 10:11) 양 떼가 여호와께 속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장로들은 “하나님의 유산인 그들 위에 군림”하여 양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베드로 전 5:2, 3, 「신세」; 마태 11:28-30; 20:25-27.

회계함

족장 야곱 역시 잘 알려진 목자였다. 야곱은 자기에게 돌보도록 맡겨진 개개의 양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야곱은 장인 라반의 양 떼를 충실하게 돌보았기 때문에 20년간 일한 뒤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나이다.]”—창세 31:38, 39.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은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아들의 피로 사신” 양들에 대해 훨씬 더 큰 관심을 나타낸다. (사도 20:28, 「신세」; 베드로 전 2:25; 5:4) 바울은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회중에서 인도하는 사람들이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한다는 것을 생각나게 하였을 때, 그 막중한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히브리 13:17.

또한 야곱의 본은 목자의 일에는 시간 제한이 없음을 보여 준다. 그 일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일이며, 종종 자기 희생이 요구된다. 야곱은 라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세 31:40.

오늘날 많은 인자한 그리스도인 장로들의 경우도 분명히 그렇다. 다음과 같은 경험이 예시해 주는 바와 같다. 한 형제는 뇌종양 생검(生檢) 결과 합병증이 생겨 병원의 집중 치료실에 들어갔다. 가족은 병원에서 밤낮 그의 곁에 있기로 하였다. 필요한 도덕적 지원과 격려를 베풀기 위해 지방의 한 장로는 바쁜 일과를 조절하여 환자와 가족을 날마다 방문하였다. 그런데 병원의 집중 치료 절차 때문에 언제나 낮에만 방문할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그 장로는 종종 밤늦게 문병을 가야 하였다. 그러나 장로는 기꺼이 밤마다 문병을 갔다. “내게 편리한 시간이 아니라 환자에게 적합한 시간에 방문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고 장로는 말하였다. 그 형제가 병원의 다른 곳으로 옮길 정도로 충분히 회복되었을 때도 그 장로는 날마다 격려적인 방문을 계속하였다.

모세가 목자로서 배운 것

성서는 모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다고 묘사한다. (민수 12:3) 하지만 기록을 보면 언제나 그렇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젊었을 때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애굽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였다. (출애굽 2:11, 12) 온유한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후에 모세를 사용하시어 수백만으로 이루어진 한 민족을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실 것이었다. 그러므로 분명히 모세에게는 훈련이 더 필요하였다.

모세는 이미 “애굽사람의 모든 지혜”로 세속 훈련을 받았지만, 여호와의 양 떼를 치기 위해서는 훈련을 더 받아야 하였다. (사도 7:22, 「새번역」) 이런 가외의 훈련을 어떤 형태로 받을 수 있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40년간 미디안 땅에서 비천한 목자로 일하도록 허용하셨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돌보면서 참을성, 온유, 겸손, 오래 참음, 온화한 기질, 자제 같은 훌륭한 특성을 발전시켰다. 모세는 또한 여호와를 기다리는 법을 배워 알았다. 그렇다. 모세는 실제로 양을 길러 봄으로 이스라엘 나라의 유능한 목자가 되는 자격을 갖추게 되었다.—출애굽 2:15-3:1; 사도 7:29, 30.

그런 특성은 바로 오늘날 장로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기 위해 필요로 하는 특성이 아닌가? 그렇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생각나게 한 바와 같이, “주의 종은 ·⁠·⁠·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디모데 후 2:24, 25.

이런 특성을 온전히 발전시키는 데 어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실망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모세의 경우와 같이, 훌륭한 목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특성을 온전히 발전시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지만 때가 되면 그런 진실한 노력에는 상이 따를 것이다.—비교 베드로 전 5:10.

장로 중에 다른 장로만큼 충분히 사용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모세의 경우에 그러하셨듯이, 그런 장로가 중요한 어떤 특성들을 좀더 온전히 발전시키도록 허용하고 계신 것일 수 있지 않겠는가? 여호와께서 ‘당신을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서로 서로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함을 정신에 새겨 두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 (베드로 전 5:5-7, 「새번역」) 온 힘을 기울여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훈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세처럼 하나님께 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여호와의 양들은 모두 귀중하다

성서 시대의 믿음직하고 인자한 목자들은 개개의 양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적 목자들도 그래야 한다. 이것은 “온 양 떼에 유의”하라는 바울의 말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사도 20:28, 「신세」) “온 양 떼”에는 누가 포함될 것인가?

예수께서는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예를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길을 잃은 양 한 마리를 양 떼로 데리고 오려고 즉시 찾아 나섰다. (마태 18:12-14; 누가 15:3-7) 마찬가지로 감독자는 회중의 각 성원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지 않거나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양이라고 해서 더는 양 떼에 속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 양도 여전히 장로들이 여호와께 “회계”해야 할 “온 양 떼”에 속해 있다.

한 장로의 회는 한때 회중과 연합했으나 무활동이 된 사람들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기울였다. 무활동이 된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였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그들을 방문하면서 그들이 여호와의 양우리로 돌아오도록 도왔다. 하나님께 감사할 만하게도, 그 장로들은 2년 반에 걸쳐 30여 명이 다시금 여호와를 활발하게 섬기도록 도울 수 있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사람 중에는 무려 17년간 무활동이던 사람도 있다!

이 책임의 막중함을 감독자들에게 더 인상 깊게 새겨 주는 것은 양들이 “[하나님이] 자기의 아들의 피로 사신”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도 20:28, 「신세」) 그 귀중한 양들을 위해 이보다 더 큰 값을 치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 같은 사람 개개인을 찾아 돕기 위해 봉사의 직무에서 사용된 모든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 보자!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양우리 안에 계속 있도록 그에 버금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분명히 회중의 모든 양은 귀중한 존재다.

양 떼의 한 성원이 심각한 범죄에 관련되었을 때에도, 장로들의 책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장로들은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목자가 되어야 하며, 되도록이면 범죄자를 구하기 위해 부드럽고 온화하게 노력해야 한다. (갈라디아 6:1, 2) 유감스럽게도 어떤 경우에는 회중의 성원이 자기가 범한 심각한 죄에 대해 경건한 슬픔을 나타내지 않는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럴 경우 인자한 목자들에게는 나머지 양 떼를 부패시키는 영향에서 보호할 성경적 책임이 있다.—고린도 전 5:3-7, 11-13.

그렇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길 잃은 양에게 자비를 널리 베푸시는 면에서 완전한 본을 세우신다. 우리의 동정심 많은 목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 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 (에스겔 34:15, 16; 예레미야 31:10) 이 최상의 본을 따라, 현대의 영적 목자들이 제명된 사람들을 방문하게 하는 인자한 마련이 생겼다. 이제는 제명된 사람들이 장로들의 도움에 반응을 나타낼지 모른다. 그처럼 잃어버린 양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렇게 자비로운 노력을 기울인 결과 훌륭한 열매가 맺어졌다. 복귀된 한 자매는 이렇게 말하였다. “장로들의 방문은 돌아오는 데 필요한 힘을 주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한 말에는 그들과 오늘날의 감독자들을 위해 깊은 의미가 가득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바울이 양치는 사람에 대해 언급한 것은 감독자들이 분명히 나타내야 할 매력 있는 특성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목자이자 왕이던 다윗이 본을 보인 겸손과 용기, 야곱이 밤낮 일한 데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개인적 책임감과 보호하여 돌보는 태도, 모세가 보여 준 것처럼 더 많은 훈련을 참을성 있게 받아들이려는 자진성 같은 특성을 생각나게 한다. 참으로, 이런 성서적 본들은 회중 장로들이 부드럽게 ‘하나님의 회중 즉 그분이 자기의 아들의 피로 사신 것을 치기’ 위하여 필요한 특성을 발전시키고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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