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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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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기하지 말라!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 우리에게서 부족이 드러날 때
  •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 우리에게 많이 요구될 때
  • 끝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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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파95 12/1 9-14면

포기하지 말라!

“훌륭한 일 행하기를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지치지 않는다면, 제철이 되어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6:9.

1, 2. (ㄱ) 사자는 어떤 방법으로 사냥을 합니까? (ㄴ) 마귀는 특히 누구를 먹이로 삼는 데 관심이 있습니까?

사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냥을 합니다. 때로는 물웅덩이에 혹은 먹이가 될 동물이 잘 다니는 길목에 매복했다가 공격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자는 “단지 상황을 이용한다고—예를 들어, 자고 있는 새끼 얼룩말을 덮친다”고 「야생계의 모습」(Portraits in the Wild)이라는 책은 말합니다.

2 우리의 “적대자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 같이 누군가를 삼키려고 찾아 돌아다”닌다고 사도 베드로는 설명합니다. (베드로 첫째 5:8) 사탄은 자기에게 남은 기간이 짧은 줄을 알기 때문에,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도록 사람들에게 더욱더 많은 압력을 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울부짖는 사자”는 특히 여호와의 종들을 먹이로 삼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계시 12:12, 17) 사탄이 사냥하는 방법은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가 사냥하는 방법과 유사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3, 4. (ㄱ) 사탄은 무슨 방법들을 사용하여 여호와의 종들을 먹이로 삼습니까? (ㄴ) 지금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이므로, 무슨 질문들이 제기됩니까?

3 때때로 사탄은 매복 공격, 즉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을 중단하도록 우리의 충절을 깨뜨리려는 박해나 반대를 시도합니다. (디모데 둘째 3:12) 그러나 마귀는 다른 경우에, 사자처럼 단지 상황을 이용합니다. 그는 우리가 낙담하거나 지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감정적으로 침울한 상태를 이용하여 우리로 포기하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손쉬운 먹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4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는 인간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이 “대처하기 어려운 위급한 때”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때때로 낙담하거나 짓눌리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디모데 둘째 3:1) 그러면 우리는 지친 나머지 마귀의 손쉬운 먹이가 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 더욱이, 우리는 어떻게 사도 바울의 이러한 영감받은 교훈을 청종할 수 있습니까? “훌륭한 일 행하기를 포기하지 맙시다. 우리가 지치지 않는다면, 제철이 되어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라디아 6:9.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5. 무엇이 다윗을 지치게 하였으며,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5 성서 시대에, 여호와의 가장 충실한 종들조차 짓눌리는 느낌이 드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였나이다]”라고 시편 필자 다윗은 썼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느낀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라고 다윗은 설명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악 때문에 다윗은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정도로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동료 인간들이 자기에게 한 일 때문에 여호와에게서 떠나지는 않았습니다.—시 6:6-9.

6. (ㄱ)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어떻게 스스로 마귀의 손쉬운 먹이가 됩니까?

6 이와 비슷하게,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이 우리로 지치게 하고 마음의 고통을 상당히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생각 없이”] 말”하는 일이 있다고 잠언 12:18(「신세」 참조)은 알려 줍니다. 생각 없이 말한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 형제나 자매일 때, ‘찌른 상처’는 매우 깊을 수 있습니다. 감정이 상하여, 아마도 분을 품는 것이 인간의 경향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친절한 혹은 불공정한 취급을 당하였다고 느낄 경우 특히 그러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과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생각될지 모르며, 그 사람을 고의로 피하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분으로 짓눌린 나머지,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집회에 나오기를 포기하고 중단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런 식으로 “마귀에게 틈을 허용”함으로 마귀가 그들을 손쉬운 먹이로 이용하게 합니다.—에베소 4:27.

7. (ㄱ)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마귀의 손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ㄴ) 우리는 왜 분을 가라앉혀야 합니까?

7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어떻게 마귀의 손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분을 품지 않으려고 해야 합니다. 오히려, 솔선해서 가능한 한 속히 화해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십시오. (에베소 4:26) 골로새 3:13은 우리에게 이렇게 강력히 권합니다.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평할 이유가 있더라도, 계속 ·⁠·⁠· 서로 기꺼이 용서하십시오.” 특히 감정을 상하게 한 사람이 잘못을 시인하고 진정으로 미안하게 생각할 때 용서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비교 시 32:3-5과 잠언 28:13) 그러나 용서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묵인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한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용서하는 것에는 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포함됩니다. 분은 지기에 무거운 짐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사고력을 소모하고, 우리에게서 행복을 앗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적절할 때 베푸는 용서는 우리 자신에게 유익하게 작용합니다. 다윗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한 말이나 행동 때문에 포기하고 여호와를 떠나지 않기 바랍니다!

우리에게서 부족이 드러날 때

8. (ㄱ) 일부 사람들은 왜 특히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까? (ㄴ) 우리가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포기할 때 무슨 위험이 있습니까?

8 “우리는 모두 여러 번 걸려 넘어집니다”라고 야고보 3:2은 말합니다. 우리가 걸려 넘어질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시 38:3-8) 우리는 육체의 약함과 싸우면서 종종 패배를 경험할 때 특히 심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a 그러한 힘겨운 싸움에 직면한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무튼 나에게는 희망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의 봉사에서 힘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스스로 포기할 때 마귀에게 기회를 주게 되며—마귀는 즉시 그 기회를 이용할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2:5-7, 11) 필요한 것은 죄책감에 대한 좀더 균형 잡힌 견해일 수 있습니다.

9. 우리는 왜 하느님의 자비를 확신해야 합니까?

9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온당합니다. 그런데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기는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받을 가치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때때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따뜻하게 보증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고백한다면, 그분은 충실하고 의로우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요한 첫째 1:9) 하느님께서 우리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자기는 “사유[“용서”]하기를 즐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 86:5, 「신세」 참조; 130:3, 4)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으므로, 우리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분에게로 간다면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약속하신 대로 용서하실 것입니다.—디도 1:2.

10. 일찍이 「파수대」는 육체의 약함과 싸우는 일에 관해 격려가 되는 무슨 보증의 말을 실었습니까?

10 당신은 약함과 싸우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해서 당신이 이미 이룩해 놓은 발전이 꼭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지 1954년 11월 1일 호에서는 격려가 되는 이러한 보증의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전 생활 방식에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이 뿌리 박힌 어떤 좋지 않은 습관 때문에 여러 번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실망하지 말라.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결론 내리지 말라. 사탄은 당신이 바로 그렇게 추리하기를 원할 것이다. 당신이 자신에 대해 슬퍼하고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당신이 아직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겸손하고 진지하게 하느님께 향하는 일에, 그리고 그분의 용서와 깨끗하게 하심과 도움을 구하는 일에 결코 지치지 말라. 동일한 약함으로 얼마나 자주 돌아가든지 간에, 어려울 때에 어린아이가 자기 아버지에게 가듯 그분께 가라.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은혜로우시게도 자기의 과분한 친절 때문에 당신에게 도움을 주실 것이며, 당신이 진실하다면 그분은 양심이 깨끗해진 것을 당신이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

11. (ㄱ) 우리는 왕국 전파 활동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느껴야 합니까? (ㄴ)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의 직무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어떤 느낌과 힘겨운 싸움을 합니까?

11 왕국 전파 활동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활동에 참여할 때 기쁨을 얻게 됩니다. (시 40:8) 하지만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의 직무에서 더 많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러한 죄책감이 심지어 우리의 기쁨을 서서히 빼앗아 가서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가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실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포기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인 경우를 고려해 봅시다.

남편과 함께 세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하였습니다. “가난이 얼마나 시간을 많이 빼앗아 가는지 아십니까? 나는 할 수 있는 한 절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중고품 할인점이나 재고 정리 상점을 뒤지면서 혹은 심지어 옷을 꿰매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또한 [할인 식품] 쿠폰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데, 즉 쿠폰을 자르고 철하고 그것으로 식품을 구매하는 데 매주 한두 시간을 보냅니다.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심한 죄책감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시간을 야외 봉사에 보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지요.”

네 자녀와 믿지 않는 남편이 있는 한 자매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참으로 여호와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나는 정말로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알다시피, 나는 자부심을 가져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께서 내가 그분께 드리는 봉사를 받아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전 시간 봉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전 시간 섬기겠다고 한 나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를 것입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서 울고 있습니다.”

12.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의 직무에서 더 많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왜 심한 죄책감을 느낍니까?

12 여호와를 가능한 한 온전히 섬기고 싶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시 86:12) 그러면 왜 일부 사람들은 더 많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을 느낍니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무가치한 존재라는 막연한 느낌, 아마도 생활상의 불유쾌한 경험에서 비롯된 느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경우에, 부적절한 죄책감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에 대해 비현실적인 견해를 갖는 일로 인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될 때까지 일하지 않는 한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라고 한 그리스도인 자매는 시인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자매는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표준을 정하였으며—그런 다음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였을 때 더욱더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13.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13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간단히 말해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영혼을 다하여 섬기고 우리의 환경상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골로새 3:23) 그러나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것과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나이, 건강, 체력, 혹은 가족 책임과 같은 요인들로 제한을 받을지 모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봉사가 영혼을 다한 것임을—건강이나 환경상 전 시간 봉사를 할 수 있는 사람 못지 않게 영혼을 다한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마태 13:18-23.

14. 당신이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필요할 경우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14 그러면 당신이 현실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신뢰할 만하고 장성한 그리스도인 벗, 아마도 당신의 능력과 한계와 가족 책임을 알고 있는 장로나 경험 많은 자매와 문제를 논의하고 싶을 것입니다. (잠언 15:22) 하느님의 눈에는 한 인격체로서의 당신의 가치가 당신이 야외 봉사에 참여하는 양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의 종들은 모두 그분께 귀중한 존재입니다. (학개 2:7; 말라기 3:16, 17) 전파 활동에서 당신이 하는 것이 다른 사람이 하는 것보다 많거나 적을 수 있지만, 그것이 당신이 최선을 다한 것이기만 하면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시며,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갈라디아 6:4.

우리에게 많이 요구될 때

15. 회중 장로들에게는 어떤 면으로 많이 요구됩니까?

15 “누구든지 많이 주어진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될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12:48) 확실히 회중 장로로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많이 요구”됩니다. 바울처럼, 그들은 회중을 위하여 그들 자신을 소비합니다. (고린도 둘째 12:15) 장로들은 연설을 준비하고, 양 치는 방문을 하며, 사법적인 일을 처리하는데—자기 자신의 가족을 소홀히 하는 일 없이 그 모든 일을 합니다. (디모데 첫째 3:4, 5) 일부 장로들은 또한 왕국회관을 짓는 일을 돕고, 병원 교섭 위원으로 일하며, 순회 및 지역 대회에서 자진 봉사를 하며 바쁘게 지냅니다. 이 수고하고 헌신적인 남자들은 어떻게 그러한 책임의 짐에 눌려 지치게 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까?

16. (ㄱ) 이드로는 모세에게 무슨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까? (ㄴ) 무슨 특성이 있을 때 장로는 적절한 책임을 다른 장로들에게 나누어 줄 것입니까?

16 겸허하고 겸손한 사람인 모세가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돌보는 일에서 지쳐 있을 때, 그의 장인 이드로는 일부 책임을 다른 자격 있는 남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였습니다. (출애굽 18:17-26; 민수 12:3) “지혜는 겸허한 자들에게 있다”고 잠언 11:2(「신세」)은 말합니다. 겸허하다는 것은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겸허한 사람은 마지못해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하지 않으며, 적절한 책임을 다른 자격 있는 남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아무래도 감독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지도 않습니다.b (민수 11:16, 17, 26-29) 오히려, 그는 다른 사람이 진보하도록 돕기를 갈망합니다.—디모데 첫째 4:15.

17. (ㄱ) 회중 성원들은 어떻게 장로들의 짐을 가볍게 할 수 있습니까? (ㄴ) 장로의 아내들은 무슨 희생을 하며, 우리는 그러한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그들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까?

17 회중 성원들은 장로들의 짐을 가볍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장로들에게도 돌보아야 할 자기 가족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장로들의 시간과 주의를 비합리적으로 요구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은 장로의 아내들이 남편의 시간을 회중과 비이기적으로 나누어 가짐으로 치르게 되는 자진적인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남편이 장로로 섬기는, 세 자녀의 어머니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나는 남편이 장로로 섬길 수 있도록 가정 내에서 가외의 짐을 기꺼이 지는 것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나는 남편의 봉사로 인해 우리의 가정에 여호와의 풍성한 축복이 있음을 알고 있으며, 남편이 바치는 것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나는 남편이 매우 바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을 경우보다 종종 정원에서 일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자녀 징계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섭섭하게도, 이 자매는 일부 사람들이 그 자매의 가외의 짐에 대해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왜 파이오니아를 하지 않으세요?”와 같은 신중하지 못한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언 12:18)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들을 칭찬하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잠언 16:24; 25:11.

끝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18, 19. (ㄱ) 지금은 왜 영원한 생명을 위한 경주에서 달리기를 중단할 때가 아닙니까? (ㄴ)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슨 시기 적절한 조언을 하였습니까?

18 주자는 장거리 경주의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몸은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을지—기진맥진해 있고 몹시 달아오르고 탈수 증상을 보일지—모르지만, 결승선에 아주 가까이 이르렀으므로 달리기를 중단할 때가 아닙니다. 이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생명의 상을 위한 경주를 하고 있으며, 지금 결승선에 매우 가까이 가 있습니다. 지금은 달리기를 중단할 때가 아닙니다!—비교 고린도 첫째 9:24; 빌립보 2:16; 3:13, 14.

19 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직면하였습니다. 기원 61년경에,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때가 다 되어 가고 있었으며—악한 “세대” 곧 배교한 유대 사물의 제도가 이제 곧 “사라”질 참이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깨어 있고 충실해야 하였으며, 그들은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에게 둘러싸이는 것을 볼 때 그 도시로부터 도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누가 21:20-24, 32) 그러므로 바울의 이러한 영감받은 조언은 시기 적절하였습니다. ‘피곤하여 영혼이 낙심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히브리 12:3) 사도 바울은 여기에서 생생하게 묘사하는 두 동사, ‘피곤하다’(캄노)와 ‘낙심하다’(에클리오마이)를 사용하였습니다. 한 성서 학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그리스어 단어들은]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 긴장을 풀고 쓰러진 주자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말이었다. [바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아직 경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조급하게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지쳐서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난관에 직면하여 버틸 것이 요구된다.”

20. 바울의 조언이 왜 오늘날 우리에게 시기 적절합니까?

20 바울의 조언은 오늘날 우리에게 참으로 시기 적절합니다! 증가하는 압력에 직면하여, 우리는 다리가 후들거리는, 기진맥진한 주자처럼 느낄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결승선에 아주 가까이 이르렀으므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역대 하 29:11) 우리의 적대자인 “울부짖는 사자”가 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포기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여호와께서는 ‘지친 자에게 힘’을 주시는 마련을 해 오셨습니다. (이사야 40:29, 「신세」 참조) 그러한 마련들이 무엇이며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마련들을 이용할 수 있는지를 이어지는 기사에서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a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나쁜 기질과 같은 깊이 뿌리 박힌 성격상의 특질을 제어하기 위해 혹은 수음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고투할지 모른다.—「깨어라!」 1988년 6월 1일 호 19-21면; 1983년 1월 1일 호 11-14면; 사단 법인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발행한 「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198-211면 참조.

b 본지 1992년 10월 15일 호 20-3면 “장로들이여—위임하라!” 기사 참조.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키거나 우리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포기하는 일을 피할 수 있습니까?

◻ 죄책감에 대한 무슨 균형 잡힌 견해를 가질 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까?

◻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 겸허가 어떻게 회중 장로들이 지치지 않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 히브리 12:3에 나오는 바울의 조언이 왜 오늘날 우리에게 시기 적절합니까?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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