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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 살까지 살 수 있는가?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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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1990
깨90 5/1 6-9면

몇 살까지 살 수 있는가?

“오늘날 살아 있는 많은 사람에게는 상당히 연장된 수명을 누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이제 불로 불사도 가능할 것 같다.”

“지금 살아 있는 수백만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말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가? 첫 번째 것은 의학 칼럼니스트이자 교수인 로렌스 E. 램 박사가 저술하여 1975년에 발행한 「불로 불사 준비」(Get Ready for Immortality)에 나오는 말이다. 두 번째 것은 워치 타워 협회 제2대 회장 J. F. 러더퍼드의 공개 연설과 그 연설 내용을 담은 책자의 제목이다. 공개 연설은 1918년, 캘리포니아 주(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처음 행해졌다.

그런데, 비슷해 보이는 두 말은 그러한 결론에 이르게 된 추리와 연구에서 판이한 것이다. 램 박사의 말은 수많은 소위 불사론자들이 하는 전형적인 말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노화에 대한 연구를 포함하여 의학상의 진보로 인해 곧 우리가 늙는 이유에 대한 신비가 풀릴 것이며, 마침내 죽음 자체를 정복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업적으로 평균 예상 수명이 늘어났고 많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로 불사에 대한 예측은 여전히 한낱 낙관적인 예견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J. F. 러더퍼드는 과학이나 의학을 토대로 예측한 것이 아니다. 그의 논점은 성서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성취된 성서 예언을 통하여, 인류 세상이 이미 “마지막 때”에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논증하였다. (다니엘 12:4) 그렇게 하면서 그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당시 세상의 끝을 생존한 것처럼, 수백만 명이 이 세상의 멸망을 생존하여 의로운 신세계로 들어가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성서에 근거한 희망을 지적하였다.—마태 24:37-39; 계시 21:3, 4.

러더퍼드의 연설은 청중들 중 많은 사람에게 매우 놀랄 만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왕국 통치 아래 땅에서 영원히 사는 일에 관한 그러한 말을 비현실적이고 믿기 어려운 것으로 여긴다. (시 37:10, 11, 29) 그러나 성서에서 우리가 늙고 죽는 이유에 관해 하는 말은 과연 그토록 믿을 수 없는 것인가? 사실 성서는 그 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살도록 만들어졌지 죽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논리적이게도, 성서는 인간 생명의 시작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창세기 제1장에서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다. “하나님이” 첫 인간 부부를 창조하신 후에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 1:28.

첫 인간 부부 아담과 하와가 그 임명을 수행하려면, 필시 매우 오래 살아야 하였을 것이며, 후손들도 오래 살아야 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몇 살까지 살 것이었는가? 성서 창세기를 읽어 보면, 아담과 하와에게 수명이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는 언급을 전혀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계속 살기 위해 달해야 할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창세 2:17.

그러므로 죽음은 오로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할 경우에만 닥칠 것이었다. 그들이 순종한다면 에덴이라는 그 지상 낙원에서 한없이 살 전망이 있었다. 인간은 살도록 만들어졌지 죽도록 만들어진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계속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첫 인간 부부는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명령을 무시하기로 하였고 그로 인해 죄를 지었다. 그들의 불순종한 행로로 인해 그들과 후손들에게 죽음의 단죄가 임하게 되었다. 수십 세기 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였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유전 법칙으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단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창조되었을 때 미래의 세대에게 완전하고 끝없는 생명을 전달해 줄 역량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생명이 죄와 사망으로 손상되게 되었으므로 더는 그 웅대한 유산을 물려줄 수 없었다. 그후로 온 인류는 인간 수명을 늘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죄와 불완전과 사망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느 면에서, 결함 곧 버그가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비할 수 있다. 결함을 찾아내서 시정하지 않는 한 프로그램은 올바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람은, 인체의 기능 부전을 초래하여 노화와 죽음을 가져오는 유전받은 결함을 시정하기는커녕 찾아내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사람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시정할 마련을 하셨다. 그분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마련하셨다. 그에 따라 예수께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 사실상 원래의 아담을 대신하여 우리의 아버지이자 생명을 주는 분이 되셨다. 그러므로 순종하는 인간은 죄인 아담의 자녀로서 죽도록 정죄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겨질 수 있다. 예수께서는 친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라고 설명하셨다.—고린도 전 15:45; 이사야 9:6, 신세; 요한 3:16; 6:4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 봉사의 끝에 이르러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이 웅대한 생명의 상을 얻기 위한 기본 요구 조건을 이렇게 언명하셨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 17:3.

‘나무의 수한과 같다’

세쿼이아 나무 씨를 심고 그것이 수십 미터가 넘게, 수한이 다하도록 자라는 것을 보고 즐긴다는 생각을 해보자. 그에 더하여 수천 년 후 그 나무가 죽은 뒤, 또 다른 씨를 심고 다시 그 나무가 아름답게 자라는 것을 보고 즐기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러한 생각은 현실에 맞는 것인가? 참으로 현실에 맞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를 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65:22) 이러한 약속은 ‘몇 살까지 살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대답은 앞으로 무한정, 아니 사실상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이다.—시 133:3.

현재 이러한 초대가 발해지고 있다. “오라 ·⁠·⁠·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계시 22:17)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 모두에게 하시는 초대다.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영적 마련을 활용하라는 초대다.

당신은 그러한 초대를 받아들일 것인가? 오래오래 사는 것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전망은 지금 당신이 하는 선택에 달려 있다!

[7면 네모]

평균 수명

18세기말에 북아메리카나 서유럽에서 태어난 사람은 35 내지 40세를 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었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남자는 약 71세, 여자는 약 78세를 살 것으로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외의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증가가 이루어졌다. 우리는 장수에 관한 한 우리에게 잠재력이 더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면, 평균 수명을 어느 정도까지 연장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한계가 있는가?

근간의 역사에서 500년, 300년 혹은 200년만이라도 살았거나 살 것으로 기대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학이 진보하였지만, 오늘날 평균 수명은 여전히 80세 미만이다. 그렇지만 140세, 아니 150세까지 사는 사람들에 관한 보고가 있다. 그리고 성서 시대에 사람들은 수백 살을 살았다. 그것은 신화 혹은 전설에 불과한 것인가?

흥미롭게도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인간 수명의 정확한 기한은 알려져 있지 않다”고 기술한다. 그 항목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누군가 실제로 150년을 살았다고 한다면, “다른 사람이 150년 1분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정당한 이유는 없다. 그리고 150년 1분이 용인된다면 150년 2분 등등이 용인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그 항목은 이렇게 말을 잇는다. “장수에 대해 현존하는 지식을 근거로 볼 때, 인간 수명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정할 수 없다.”

이러한 점을 통해서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는가? 의학이 노화와 죽음에 대해 배워 알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인간 상태를 근거로 한 것이라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중대한 질문은 ‘인간 상태가 언제나 같았는가?’ 혹은 ‘언제나 같은 채로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하고 약속하신다. 급속히 다가오는 신세계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갈’ 것이다.—계시 21:4, 5.

[8, 9면 삽화]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르더라.’—계시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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