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계속 걸으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였으니, 그분과 결합하여 계속 걸으십시오.”—골로새 2:6.
1, 2. (ㄱ) 성서는 여호와께 드리는 충실한 봉사로 이루어진 에녹의 생애를 어떻게 묘사합니까? (ㄴ) 골로새 2:6, 7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신과 함께 걷도록 어떻게 우리를 도와 오셨습니까?
어린 소년이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는 것을 지켜 본 적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하는 동작을 하나하나 그대로 따라 하는 어린 아들의 얼굴은 깊은 존경심으로 발갛게 상기되어 있습니다. 아들이 따라오도록 도와 주는 아버지의 얼굴도 사랑과 승인에 가득 차서 환하게 빛납니다. 적절하게도, 여호와께서는 바로 그러한 장면을 묘사하는 표현을 사용하여 자신에게 충실한 봉사를 바치는 사람의 생애를 묘사하십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말씀은 충실한 사람 에녹이 “참 하느님과 함께 계속 걸었다”고 말합니다.—창세 5:24, 「신세」; 6:9, 「신세」 참조.
2 사려 깊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이 자신과 함께 걷도록 도와 주는 것처럼,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 최상의 도움을 베풀어 오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을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곳 지상에서 걸으셨던 전체 인생 행로의 한걸음 한걸음마다 하늘의 아버지를 온전히 반영하셨습니다. (요한 14:9, 10; 히브리 1:3) 그러므로 하느님과 함께 걷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걸을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주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였으니, 그분과 결합하여 계속 걸으십시오. 여러분이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서 세워지고 믿음에서 굳건해져서, 감사하는 가운데 믿음이 넘치게 하십시오.”—골로새 2:6, 7.
3. 골로새 2:6, 7에 따르면, 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데는 단지 침례를 받는 것 이상이 관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3 마음이 정직한 성서 연구생들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분의 완전한 발걸음을 따르려고 노력하며 침례를 받습니다. (누가 3:21; 히브리 10:7-9) 1997 봉사 연도에만도 전세계에서 37만 5000명이 넘는—매일 평균 1000명이 넘는—사람들이 매우 중요한 이 단계를 밟았습니다. 이러한 증가는 가슴 설레게 합니다! 하지만 골로새 2:6, 7에 기록되어 있는 바울의 말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데는 단지 침례를 받는 것 이상이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계속 걷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계속되어야 하는, 즉 지속되어야 하는 행동을 묘사합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데는 다음의 네 가지 점이 관련된다고 덧붙여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분 안에서 세워지고, 믿음에서 굳건해지고, 감사로 넘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표현들 하나하나를 검토해 보고 그것이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계속 걷는 데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지 알아봅시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
4.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4 먼저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릴’ 필요가 있다고 썼습니다. (비교 마태 13:20, 21)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떻게 노력할 수 있습니까? 식물의 뿌리는 겉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식물에 매우 중요합니다. 뿌리는 식물을 고정시켜 주고 식물에 자양분을 공급해 줍니다. 그와 비슷하게, 그리스도의 모범과 가르침은 우선 우리에게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깊이 새겨지게 됩니다. 그분의 모범과 가르침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서 우리에게 자양분을 공급하고 우리를 강하게 해줍니다. 그분의 모범과 가르침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과 결정을 지배하게 할 때, 우리는 마음이 감동되어 여호와께 헌신하게 됩니다.—베드로 첫째 2:21.
5. 우리는 영적 음식에 대해 어떻게 “열망을 품”을 수 있습니까?
5 예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지식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지식을 음식에 비하기까지 하셨습니다. (마태 4:4) 더욱이 그분은 산상 수훈 가운데, 히브리어 성경의 서로 다른 여덟 권의 책에서 21회나 인용하셨습니다. 그분의 모범을 따르기 위해, 우리는 사도 베드로가 권고한 바와 같이, “갓난아기처럼” 영적 음식에 대한 “열망을 품”어야 합니다. (베드로 첫째 2:2) 갓난아기는 먹을 것을 간절히 원할 때, 그러한 자신의 열망이 매우 강하다는 점을 분명히 나타냅니다. 우리가 현재 영적 음식에 대해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다면, 베드로의 말은 우리에게 그러한 열망을 “품”도록 권합니다. 어떻게 권합니까? 시편 34:8에 나오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찌어다”라는 원칙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기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인 성서를 ‘맛본’다면, 아마도 매일 성서를 얼마간 읽음으로써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영적으로 자양분을 공급해 주며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열망은 자라게 될 것입니다.
6. 우리가 읽은 내용을 묵상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6 하지만 일단 음식을 먹었다면 잘 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읽은 내용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 77:11, 12) 예를 들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책을 읽을 때, 각 장마다 멈추어서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본다면 더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기록에서 나는 그리스도의 성품의 어떤 면을 볼 수 있으며, 나 자신의 생활에서 그 점을 어떻게 본받을 수 있는가?’ 그와 같이 묵상한다면, 우리는 배워 알게 된 것들을 적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후 결정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겠는지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린다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됩니다.
7. 단단한 영적 자양분에 대한 우리의 견해는 어떠해야 합니까?
7 바울은 또한 우리에게 “단단한 음식” 즉 하느님의 말씀의 더 깊은 진리를 섭취하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히브리 5:14) 성서를 통독하는 것이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의 첫 번째 목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연구할 구체적인 주제들이 더 있는데, 이를테면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여호와께서 자신의 백성과 맺으신 여러 가지 계약들, 혹은 성서에 나오는 예언적 소식 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한 단단한 영적 음식을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재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지식을 섭취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자랑할 이유를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강해지고 그분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 첫째 8:1; 야고보 4:8) 우리가 굶주린 사람처럼 열심히 그러한 지식을 섭취하고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며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사용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 올바로 뿌리를 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고 있’는가?
8.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8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두 번째 부면과 관련하여, 바울은 하나의 시각적 영상에서 다른 시각적 영상으로—식물에서 건물로—신속하게 옮겨 갑니다. 건축 중인 건물에 대해 생각하면, 기초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많은 힘든 작업을 통해 건물이 시원스럽게 올라가고 있는 장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특성과 습관을 길러 나가기 위해 즉 세워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한 노력은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는데, 바울이 디모데에게 이렇게 쓴 바와 같습니다. “그대의 진보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십시오.” (디모데 첫째 4:15; 마태 5:16) 우리를 세워 주는 그리스도인 활동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9. (ㄱ) 봉사의 직무에서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우리가 세울 수 있는 실용적인 목표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ㄴ) 여호와께서 우리가 봉사의 직무를 즐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9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마태 24:14; 28:19, 20) 그분은 담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증거하심으로, 완전한 모범을 세우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결코 그분만큼 잘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러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주로서 거룩하게 하고, 여러분 속에 있는 희망에 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 앞에서 항상 답변할 준비를 하십시오. 그러나 온화한 기질과 깊은 존경심으로 그렇게 하십시오.” (베드로 첫째 3:15) 자신이 “항상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낙담하지는 마십시오. 그 표준에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될 합리적인 목표를 세우십시오. 미리 준비한다면, 다양한 제공 연설을 하거나 성구를 한두 구절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 출판물을 더 많이 전하거나 재방문을 더 많이 하거나 성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봉사 시간, 출판물을 전한 수, 연구 건수와 같은 양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질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합리적인 목표들을 세우고 그러한 목표들에 달하려고 애쓰는 것은, 봉사의 직무에 즐거이 우리 자신을 바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그것, 즉 우리가 “기쁨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시 100:2; 비교 고린도 둘째 9:7.
10. 우리가 수행할 필요가 있는 그 밖의 그리스도인 활동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러한 활동은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0 또한 우리가 회중에서 수행하는 활동들이 있는데, 그러한 활동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세워 줍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 그리스도인을 식별하게 해주는 표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13:34, 35) 아직 연구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과도 친숙해짐으로써 “넓히”라는 바울의 조언을 따를 수 있습니까? (고린도 둘째 6:13) 장로들 역시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필요로 합니다. 장로들과 협조하고 그들에게 성경적 교훈을 구하며 그 교훈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그들의 수고가 훨씬 수월해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 13:17) 그와 동시에,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1. 우리는 침례에 대해 어떤 현실적인 견해를 가져야 합니까?
11 침례는 마음 설레게 하는 행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침례받은 이후에도 우리의 생활이 매순간 침례받을 때와 똑같이 감격적이 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지는 데는 ‘이 동일한 과정으로 질서 있게 걷’는 것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빌립보 3:16) 그것이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생활 방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똑바로 앞을 향해 걷는 것, 다시 말해서 좋은 영적 습관을 세워 나가고 그러한 습관을 날마다, 해마다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마태 24:13.
당신은 ‘믿음에서 굳건해지고 있’는가?
12. “믿음에서 굳건해져”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12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것을 묘사하는 세 번째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에서 굳건해지’라고 강력히 권합니다. 한 번역판에는 “믿음과 관련하여 확증되”라고 되어 있는데,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가 “확증하다, 보증하다, 법적으로 폐지할 수 없게 만들다”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식에서 자라감에 따라,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확고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이며 사실상 법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이유를 갖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더욱 굳건해지게 됩니다. 그러면 사탄의 세상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장성을 향하여 밀고 나아”가라는 바울의 훈계를 생각나게 해줍니다. (히브리 6:1) 장성과 굳건한 상태는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13, 14. (ㄱ) 골로새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굳건한 상태를 위협하는 어떤 것들에 직면하였습니까? (ㄴ) 무엇이 사도 바울을 염려하게 하였을 수 있습니까?
13 골로새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굳건한 상태를 위협하는 것들에 직면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경고하였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혹시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여러분을 자기 먹이로 끌어갈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요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을 따르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 2:8) 바울은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의 신민이 된 골로새 사람들이 영적으로 축복받은 상태에서 끌려 나가게 되기를, 즉 떨어져 나가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골로새 1:13) 그들을 그릇 인도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바울은 “철학”이라고 지적하였는데, 이 단어는 성서에서 이 곳에만 나옵니다. 바울은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와 같은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해 말한 것입니까? 그 당시에 그러한 철학자들이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위협이 되기는 하였지만, “철학”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사상을 가진 여러 집단이나 학파를 가리켰는데, 거기에는 종교 집단도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요세푸스와 필로와 같은 1세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종교를 하나의 철학으로 불렀는데, 아마도 자기들의 종교가 더 호소력 있게 들리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14 바울을 염려하게 하였을 수 있는 일부 철학들은 종교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같은 장 뒷부분에서 “손 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에 관해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종결된 모세의 율법의 특징들에 대해 넌지시 언급하였습니다. (로마 10:4) 이교 철학과 함께 회중의 영성을 위협하는 영향력들이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골로새 2:20-22) 바울은 “세상의 초보적인 것들”의 일부인 철학에 대해 경고하였습니다. 그러한 거짓된 교훈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15. 우리는 어떻게 종종 직면하게 되는 비성경적인 생각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까?
15 하느님의 말씀에 확고한 근거를 두지 않은 인간의 생각과 사상을 조장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굳건한 상태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위협에 대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영감받은 표현을 다 믿지 말고, 그 영감받은 표현들을 시험하여 그것이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아보십시오.” (요한 첫째 4:1) 그러므로 학교에서 급우가 당신을 설득하여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사는 것이 구식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거나, 이웃 사람이 당신에게 물질주의적인 태도를 받아들이도록 영향을 미치려고 하거나, 직장 동료가 당신이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을 범하게 하려고 은근히 압력을 가하거나, 심지어 동료인 믿는 사람이 자신의 견해를 근거로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 비평적이고 부정적인 말을 할 경우, 그런 사람들의 말에 결코 동조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 걸러 내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걸으면서 계속 굳건한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가운데 믿음이 넘치게 함’
16.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네 번째 부면은 무엇이며, 우리는 무슨 자문을 해 볼 수 있습니까?
16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네 번째 부면은, 우리가 “감사하는 가운데 믿음이 넘치게”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 2:7) ‘넘치게 하다’라는 말은 둑 위로 물이 넘쳐흐르고 있는 강을 연상하게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감사하는 일이 지속적인 혹은 습관적인 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우리 각자는 ‘나는 감사하고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17. (ㄱ)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감사할 만한 것이 많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들 가운데 당신이 특히 감사하게 느끼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17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날마다 여호와에 대한 감사로 넘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최악의 시대이긴 하지만, 순간순간 위로가 되는 작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감정 이입을 해주는 벗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위안이 되는 손길로 어루만져 줍니다. 하룻밤의 충분한 휴식이 원기를 북돋워 줍니다. 맛있는 한 끼의 식사가 배고픈 고통을 사라지게 합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아이의 웃음소리, 눈부시게 파란 하늘, 상쾌한 산들바람—이 모든 것과 그 밖의 많은 것들을 우리는 단 하루 사이에 경험할지 모릅니다. 그러한 선물들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기가 너무나 쉽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감사하다고 말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들은 모두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의 근원이신 여호와로부터 옵니다. (야고보 1:17) 그리고 그분은 이러한 선물들이 작아 보이게 만드는 선물들도—이를테면, 생명까지도—주십니다. (시 36:9) 더 나아가,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그분이 각별히 좋아하시는 자”이신 자신의 유일하게 태어난 아들을 보내심으로 최고의 희생을 치르셨습니다.—잠언 8:30, 「신세」; 요한 3:16.
18. 우리는 우리 자신이 여호와께 감사하고 있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18 그러므로 “여호와께 감사[함이] ··· 좋으니이다”라는 시편 필자의 말은 진실로 참됩니다. (시 92:1) 바울은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것과 관련하여 감사하십시오”라고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8; 에베소 5:20; 골로새 3:15) 우리 각자는 더 많이 감사해야겠다고 결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필요와 관련된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의 기도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청원을 우리의 기도에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합니다. 그러나 당신에게서 무언가 얻을 필요가 있을 때만 말을 건네는 벗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단지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서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 감사할 줄 모르는 세상을 내려다보시다가 그러한 기도를 들으시면 그분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에 따르는 부차적인 유익 한 가지는, 그러한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생활의 긍정적인 부면에 초점을 맞추어 우리가 참으로 큰 축복을 받은 상태에 있음을 생각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 골로새 2:6, 7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면에서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19 하느님의 말씀의 단 한 구절로부터 이토록 많은 지혜로운 지침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계속 걸으라는 바울의 교훈은 우리 각자가 마음에 새기기를 원해야 하는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분 안에서 세워지’고, ‘믿음에서 굳건해지’고, ‘감사로 넘치’겠다고 결심합시다. 그러한 교훈은 새로 침례받은 사람들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교훈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식물의 뿌리가 어떻게 점점 더 깊이 뻗어 내려가는지를, 그리고 건축 중인 건물이 어떻게 점점 더 높이 올라가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걷는 일에는 결코 끝이 없습니다. 발전할 여지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그리고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끝없이 계속 걷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걷는 데는 무엇이 관련됩니까?
◻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세워질’ 수 있습니까?
◻ ‘믿음에서 굳건해지’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합니까?
◻ 우리에게는 ‘감사로 넘칠’ 만한 무슨 이유들이 있습니까?
[10면 삽화]
나무의 뿌리는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무에 양분을 공급해 주고 나무가 흔들리지 않도록 고정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