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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친 사람들에게 하는 사랑에 찬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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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친 사람들에게 하는 사랑에 찬 초대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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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5
파95 8/15 12-17면

지친 사람들에게 하는 사랑에 찬 초대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마태 11:28.

1. 예수께서는 세 번째 전파 여행 중에 갈릴리에서 무엇을 보셨습니까?

기원 32년이 시작되기 얼마 전, 예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서 세 번째 전파 여행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도시와 마을들을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며 온갖 질병과 온갖 허약함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시면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기 때문”입니다.—마태 9:35, 36.

2.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2 그러나 예수께서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실 뿐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수확하는 주인”이신 여호와 하느님께 기도하라고 교훈하신 후에, 사람들을 돕도록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마태 9:38; 10:1) 그 후에 그분은 진정한 위안과 위로를 얻는 방법에 대해 사람들에게 친히 확약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이러한 초대를 하셨습니다.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기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마태 11:28, 29.

3. 예수의 초대는 왜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호소력이 있습니까?

3 오늘날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끼는 때에 살고 있습니다. (로마 8:22; 디모데 둘째 3:1) 어떤 사람들은 단지 생활비를 버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활력을 다 써버린 나머지 가족이나 친구 혹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 남아 있는 시간과 활력이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각한 병, 고통거리, 우울증, 그리고 그 외의 신체적·감정적 문제들의 짐을 지고 있습니다. 압력을 느끼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하고, 먹고, 마시고, 심지어 마약 남용에 몰두함으로 위안을 얻으려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을 악순환에 빠지게 하고 그들이 더 많은 문제와 압력을 경험하게 할 뿐입니다. (로마 8:6) 분명히, 예수의 사랑에 찬 초대는 그 당시에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호소력 있게 들립니다.

4. 우리는 예수의 사랑에 찬 초대로부터 유익을 얻기 위해 무슨 질문들을 고려해야 합니까?

4 그러면 예수 시대의 사람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기에 “찢겨지고 내던져”진 것같이 보였고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까? 그들이 져야 했던 무거운 짐은 무엇이었으며 예수의 초대가 어떻게 그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었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지친 사람들에게 하는 예수의 사랑에 찬 초대로부터 우리가 유익을 얻는 데 매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수고하며 짐을 진” 사람들

5. 사도 마태가 예수의 봉사의 직무 중에 있은 이 사건을 보고한 것은 왜 적절하였습니까?

5 흥미롭게도 오직 마태만 예수의 봉사의 직무 중에 있은 이 사건을 보고하였습니다. 레위라고도 알려진 마태는 세금 징수원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고 있던 한 가지 특정한 짐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태 9:9; 마가 2:14) 「예수 시대의 일상 생활」(Daily Life in the Time of Jesus)이라는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돈과 물품으로 내야 [했던] 세금은 대단히 과중하였으며, 그 세금은, 그들에게 두 가지 형태의 과세 즉 주민세와 종교세가 동시에 부과되었고 액수도 적지 않았다는 면에서 몹시 무거운 짐이었다.”

6. (ㄱ) 예수 시대에 어떤 세금 제도가 운영되었습니까? (ㄴ) 세금 징수원들이 그렇게 평판이 나빴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ㄷ)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에 관해 생각나게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까?

6 이 모든 것을 특히 무거운 짐이 되게 한 것은 당시의 세금 제도였습니다. 로마 관리들은 속주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권리를, 가장 많은 액수를 부르는 자들에게 맡겼습니다. 한편, 이들은 그 지역 사회에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여 실제로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습니다. 이 피라밋 구조에 들어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수수료 즉 몫을 덧붙이는 것이 온전히 정당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는 “거기에 이름을 삭개오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수석 세금 징수원이고 부자였다”고 상세히 묘사하였습니다. (누가 19:2) “수석 세금 징수원”인 삭개오와 그의 감독 아래 있던 자들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게 하면서 부를 축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제도로 야기된 학대와 부패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세금 징수원들을 죄인과 창녀 가운데 포함시키게 되었으며, 필시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취급을 받아 마땅하였을 것입니다. (마태 9:10; 21:31, 32; 마가 2:15; 누가 7:34) 사람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의 멍에 아래서 화내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십시오. 세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조세를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조세를 내[십시오]”라고 생각나게 할 필요성을 느낀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로마 13:7ㄱ; 비교 누가 23:2.

7. 로마의 형법은 어떻게 사람들의 무거운 짐을 더욱 무겁게 하였습니까?

7 바울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움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두려움을, 존중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존중을” 나타낼 것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로마 13:7ㄴ) 로마인들은 그들의 형법이 잔인하고 가혹했던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사람들을 복종시키기 위하여 채찍질, 매질, 엄한 투옥형, 처형이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누가 23:32, 33; 사도 22:24, 25) 심지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도 그들이 합당하다고 보았을 때 그러한 형벌을 시행할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마태 10:17; 사도 5:40) 그러한 제도는, 노골적으로 압제적은 아니었더라도, 그 제도 아래 사는 누구에게나 확실히 매우 억압적이었습니다.

8.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백성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습니까?

8 그러나 로마의 세금과 법보다 더 힘겨운 것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평민에게 지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수고하며 짐을 진” 것으로 묘사하셨을 때 그분이 주로 염려하신 것은 바로 그 짐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압정에 신음하는 백성에게 희망과 위안을 주기는커녕, “무거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지만, 그들 자신은 손가락으로도 그것들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23:4; 누가 11:46) 복음서에서 종교 지도자들이—특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오만하고 무정한 위선자 집단으로 분명히 묘사되었다는 점은 누가 보아도 분명합니다. 그들은 평민을 배우지 못하고 불결한 사람들로 멸시하였으며, 자기들 가운데 있는 외국인을 경멸하였습니다. 그들의 태도에 관해 이러한 주석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말에 짐을 너무 많이 실은 사람은 법의 고발을 받아 마땅하다. 종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땅의 사람들’에게 613개 계명의 짐을 지워 놓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그들을 불경한 사람들로 정죄한 사람은 어떠한가?” 물론, 정말 무거운 짐은 모세 율법이 아니라 백성에게 부과된 엄청난 양의 전통이었습니다.

고난당한 실제 원인

9. 예수 시대의 백성의 상태는 솔로몬 왕 시대의 백성의 상태와 어떻게 비교가 되었습니까?

9 때때로 백성에게 부과된 물질적 짐은 무거운 것이었으며, 따라서 가난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 율법에 나와 있는 합리적인 액수의 세금을 내야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솔로몬 통치 중에, 백성은 성전과 그 외의 큰 건축물을 짓는 일과 같이 매우 많은 비용이 드는 국가적인 계획을 지원하였습니다. (열왕 상 7:1-8; 9:17-19) 그렇지만 성서는 백성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다고 알려 줍니다. (열왕 상 4:20, 25) 무엇 때문에 그런 차이가 있었습니까?

10. 이스라엘은 1세기 무렵에 무슨 이유로 그러한 상황에 처하였습니까?

10 나라가 참 숭배에 대해 확고한 상태를 유지하는 한, 그들은 여호와의 은혜를 누렸으며, 막대한 국가적 지출에도 불구하고 안전과 번영을 누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만일 그들이 ‘그분을 좇지 아니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면 정반대의 심각한 일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었습니다. (열왕 상 9:6, 7) 실제로 정확히 그대로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외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한때 영광스럽던 왕국이 일개 식민지 신분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들이 영적 의무를 소홀히 한 데 대해 지불한 참으로 엄청난 대가였습니다!

11. 예수께서는 왜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찢겨지고 내던져졌”다고 느끼셨습니까?

11 이 모든 일은, 예수께서 자기가 본 사람들이 “찢겨지고 내던져졌”다고 느끼신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즉 여호와의 백성으로서, 대체로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려고 그리고 받아들여질 만한 방법으로 숭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치와 상업 세력에 의해서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있는 배교한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도 착취와 짓밟힘을 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목자 없는 양 같았’는데, 그들을 돌보아 주고 그들을 위해 탄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매우 가혹한 현실에 잘 대처하도록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의 사랑이 넘치는 부드러운 초대는 참으로 시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예수의 초대

12. 오늘날 하느님의 종들과 그 밖의 진실한 사람들은 무슨 압력을 느낍니까?

12 오늘날에도 상황이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합니다. 정직하게 생계비를 벌려고 노력하는 진실한 사람들은 부패한 사물의 제도로부터의 압력과 요구가 견디기 어려운 것임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께 헌신한 사람들이라도 이 면에서 면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종들 가운데서도 자기들의 모든 책임을 이행하기 원하지만 그렇게 하기가 점점 어려워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보고는 알려 줍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에 짓눌려 지칠 대로 지쳤다고 느낍니다. 일부 사람들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잊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면 위안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아는 친밀한 사람 중에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예수의 초대는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13. 우리는 왜 예수께서 쉼과 새 힘을 얻도록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13 예수께서는 사랑에 찬 초대를 하시기 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내게 넘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또한 아들과 또 아들이 기꺼이 계시해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마태 11:27) 예수와 그분의 아버지 사이의 이러한 친밀한 관계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초대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제자가 됨으로써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신 여호와와 친밀하고도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고린도 둘째 1:3; 비교 요한 14:6) 그에 더하여, ‘모든 것이 그분에게 넘겨졌’으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무거운 짐을 가볍게 할 권세와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어떠한 짐들입니까? 부패한 정치, 상업, 종교 제도가 부과하는 짐들 그리고 우리의 유전받은 죄와 불완전성이 지우는 짐입니다. 초대를 하시기 전에 하신 예수의 이 말씀은 첫마디부터 참으로 매우 격려가 되고 안심시켜 주는 생각입니다!

14. 예수께서는 무슨 수고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새 힘을 베푸실 수 있었습니까?

14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며 짐을 진 여러분, 모두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 (마태 11:28) 확실히 예수께서는 힘든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종종 제자들에게 당면한 일에 힘쓰라고 교훈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13:24) 그러나 “수고”(“노동”, 「왕국 행간역」)라는 말은 종종 가치 있는 결과도 없으면서 오래 끌고 지치게 하는 노동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짐을 진”이라는 말은 정상적인 능력에 부치도록 짐을 지고 있다는 사상을 전달합니다. 그 차이를,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하여 파는 사람과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도랑을 파는 사람 사이의 차이에 비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비슷한 힘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그 일이 열의에 넘쳐 하는 일이지만, 다른 한 사람에게는 그 일이 끝없는 고역입니다. 차이가 나게 하는 것은, 그 일이 목적 있는 일이냐 목적 없는 일이냐 하는 점입니다.

15. (ㄱ) 우리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낀다면 무슨 자문들을 해 보아야 합니까? (ㄴ) 우리의 짐의 근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15 당신은 ‘수고하며 짐을 지’고 있다고, 당신의 시간과 활력을 요구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지고 있는 짐이 당신에게 너무 무거워 보입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러한 자문을 해 보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는가? 나는 어떤 유의 짐을 지고 있는가?’ 이 점과 관련하여, 한 성서 해설자는 80여 년 전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생활상의 짐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스스로 지운 것과 피할 수 없는 것, 즉 자신의 행동에 기인한 것과 자신의 행동에 기인하지 않은 것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런 다음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우리 중 다수는, 엄밀한 자기 검토를 하고 나면, 우리의 전체 짐 가운데 스스로 지운 짐의 비율이 꽤 높다는 것을 알고 놀랄 것이다.”

16. 우리는 현명하지 못하게도 무슨 무거운 짐을 자신에게 지울 수 있습니까?

16 우리가 자신에게 지울 수 있는 무거운 짐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적이고 쾌락을 사랑하고 부도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디모데 둘째 3:1-5)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상의 유행과 생활 방식에 따르게 하려는 압력을 끊임없이 받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자기 살림의 과시”에 관하여 썼습니다. (요한 첫째 2:16)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쉽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쾌락을 더 많이 즐기기 위하여 혹은 특정한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하여 많은 빚을 지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후에 빚을 갚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하여 직장에서 과도한 시간을 보내거나 여러 가지 직업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7. 어떤 상황이 짐을 지기 더욱더 어렵게 만들 수 있으며, 어떻게 그 상황이 개선될 수 있습니까?

17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거나 하고 있는 것을 자기도 갖거나 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고 추리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은 불필요하게 자기의 짐을 늘리고 있지 않는지 분석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린도 첫째 10:23) 어떤 사람은 얼마만큼의 짐만 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짐을 맡기 위하여 어떤 짐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복지를 위하여 필수적인 것들인 개인 성서 연구, 집회 참석, 야외 봉사를 우선 내려놓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 결과는 영적 힘의 상실이고, 한편 그것은 짐을 지기가 더욱더 어렵게 만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위험에 대해 경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과 과음과 생활의 염려로 짓눌려, 갑자기 그 날이 덫과 같이 순식간에 여러분에게 닥치는 일이 없도록 여러분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누가 21:34, 35; 히브리 12:1) 짐을 져 지친 사람에게는 덫을 알아보고 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위안과 새 힘

18.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제시하셨습니까?

18 그러므로 사랑 넘치게도, 예수께서는 “내게로 오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새 힘을 주겠습니다”라고 치료책을 제시하셨습니다. (마태 11:28) 여기의 ‘새 힘을 주다’와 29절의 “새 힘”이라는 말은, “안식일” 혹은 “안식일을 지키는”이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번역하기 위하여 칠십인역에서 사용하는 단어와 유사한 그리스어 단어들에서 나온 것입니다. (출애굽 16:23) 따라서 예수께서는 자기에게 오는 사람들이 더는 일이 없을 것임을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목적과 일치하게 수행해야 하는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도록 새 힘을 주실 것임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19. 어떻게 ‘예수에게 올’ 수 있습니까?

19 그러면 어떻게 ‘예수에게 올’ 수 있습니까?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고통의 기둥을 메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6:24) 그러므로 예수에게 온다는 것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뜻에 우리 자신의 뜻을 복종시키고, 특정한 책임의 짐을 받아들이고, 계속 그렇게 하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모든 것은 너무 지나치게 요구하는 것입니까? 그 대가는 너무 큰 것입니까? 예수께서 지친 사람들에게 사랑에 찬 초대를 하신 후에 하신 말씀을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기억할 수 있습니까?

◻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 무거운 짐을 졌습니까?

◻ 백성이 고난당한 실제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느낄 경우 어떻게 자기 검토를 해 보아야 합니까?

◻ 우리는 현명하지 못하게도 무슨 무거운 짐을 자신에게 지울 수 있습니까?

◻ 우리는 어떻게 예수께서 약속하신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15면 삽화]

우리가 자신에게 지울 수 있는 무거운 짐들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15면 사진 자료 제공]

Courtesy of Bahamas Ministry of Tou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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