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해오신 일들을 깊이 인식하는가?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누가 9:23, 신세 참조.
1. 하나님께서 베풀어 오신 놀라운 선물들 가운데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생명을 빚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태어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생명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 가지 것들 곧 음식의 맛, 햇살의 따뜻함, 음악, 봄날의 신선함, 사랑의 포근함을 즐길 수 있도록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그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신을 주셨고 그분에 관해 배우고 싶어하는 욕망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영감을 받은 성서는 우리에게 건전한 지침을 제시하고, 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알려 주며 그분의 의로운 신세계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제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일에서 계속 강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도움이 될 수 있는 성령과 지방 회중의 지원 및 사랑이 많은 연로한 남녀를 주십니다.—창세 1:1, 26-28; 디모데 후 3:15-17; 히브리 10:24, 25; 야고보 5:14, 15.
2. (ㄱ)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오신 일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것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2 그 모든 것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시어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 더 많은 점을 알려 주셨고, 받아들일 모든 사람을 위해 “구속[대속물, 신세] 곧 죄 사함”을 제공하셨습니다. (에베소 1:7; 로마 5:18)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그 대속물로 인해 가능해진 구원은, 아무도 그것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행위로는 전혀 불가능한, 모세에 의한 율법 아래 이전에 행해진 어떤 행위로도 분명히 불가능한, 그러한 최상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느니라.]”—갈라디아 2:16; 로마 3:20-24.
믿음과 행함
3. 야고보는 믿음과 행함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하였습니까?
3 구원은 믿음으로 인해 오지만, 믿음 및 하나님께서 해오신 모든 것들에 대한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마음에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우리는 믿음을 보여 주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는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심지어 악귀들도 ‘믿고 떨’지만 분명히 악귀들은 경건한 행함이 없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믿음과 행함을 모두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되풀이하여 말하였습니다.—야고보 2:17-26.
4.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기 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4 예수께서는 또한 올바른 행함 곧 행실의 중요성을 보여 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형주]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a 우리가 자신을 “부인”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개인적인 기호를 많이 포기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빚진 사람임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분의 종으로서 그분에게 자신을 바치고 예수께서 하신 것처럼 그분의 뜻을 배우고 행하려고 노력합니다.—마태 5:16; 누가 9:23, 신세 참조; 요한 6:38.
생활이 영향을 받음
5. (ㄱ) 베드로는 무엇이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에 영향을 주어야 함을 보여 주었습니까? (ㄴ) 베드로는 무슨 착한 행실을 권하였습니까?
5 베드로는 우리를 위해 흘려진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대단히 뛰어난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에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의 인식이 우리로 하여금 하게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을 열거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교훈하였습니다. ‘모든 악독을 버리라.’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하라.’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라.]”—베드로 전 1:19; 2:1, 2, 9; 3:11, 15; 4:2.
6. (ㄱ)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믿음을 분명히 나타냈습니까? (ㄴ) 이것은 우리를 위해 무슨 본이 되어야 합니까?
6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 믿음은 그들의 견해와 성품을 바꾸어 놓았으며, 그들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과 일치시키게 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추방과 돌로 침과 매맞는 일과 투옥을 당하였으며, 믿음을 저버리기보다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사도 7:58-60; 8:1; 14:19; 16:22; 고린도 전 6:9-11; 에베소 4:22-24; 골로새 4:3; 빌레몬 9, 10) 기원 56년경에 태어난 유명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날이 저문 뒤 밤을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 불길에 싸여 화형을 당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연대기」(The Annals) 15권 44항.
7.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슨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될 수 있습니까?
7 일부 회중에서, 여러 해 동안 집회에 참석해 온 사람들을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조직을 사랑하고, 그분의 백성이야말로 그들이 이제까지 만난 최상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진리에 관해 훌륭하게 설명하고 외부 사람들에게 진리를 변호합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으며, 무엇인가가 그들을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오순절 날에 3000명이 밟았던, 혹은 믿음이 있는 에디오피아인이 물어 보았던, 혹은 박해자였던 사울이 예수가 참으로 메시야임을 깨닫자마자 아나니아가 밟도록 강력히 권했던 훌륭한 단계를 결코 밟지 않았습니다. (사도 2:41; 8:36; 22:16) 오늘날 그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왜 성서에서 “선한 양심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고 부르는 단계를 밟지 않았습니까? (베드로 전 3:21, 신세)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상황—진리를 알지만 진리와 관련하여 어떤 일을 하기를 주저하는 상황—에 있다면, 이 기사를 여러분에 대한 특별한 사랑에서 준비된 것으로 보기 바랍니다.
침례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극복함
8. 이제까지 전혀 좋은 연구생이 아니었다면, 이제 취해야 할 현명한 행로는 무엇일 것입니까?
8 무엇이 여러분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까? 앞 기사에서는 일부 사람들의 경우 개인 연구가 문제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정신을 주셨으며,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데 그 정신을 사용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읽는 법조차 배운 적이 없는 일부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읽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읽는 법을 이미 알고 있다면, 베뢰아 사람들이 한 것처럼, 이것들이 그러한지 알아보기 위해 “날마다 성경을 상고[주의 깊이 조사, 신세]”하면서 참으로 연구합니까? 진리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탐구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깊숙이 파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참으로 흥미 진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하는 진정한 욕망을 발전시켜 왔습니까? 진리에 대해 진심으로 굶주림을 느낍니까?—사도 17:10, 11; 에베소 3:19.
9. 회중 내의 어떤 사람과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입니까?
9 때때로, 실제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 회중 내의 어떤 사람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문제 때문에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심각할 정도로 감정을 상하게 하였습니까? 그렇다면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는 예수의 말씀이 알려 주는 지침대로 하십시오. (마태 18:15)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조차 그 사람은 몰랐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설사 분명히 알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전히 “네 형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더욱이, 그 일에 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과연 누구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까?—그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어떤 불완전한 인간의 실수로 인해 그분에 대한 사랑이 방해를 받을 정도로 제한된 것입니까?
10, 11. 은밀한 죄가 있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0 은밀한 죄가 있기 때문에 침례받기를 주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과거에 있은 일일 수 있거나, 혹은 반복되는 그릇된 행실일지 모릅니다. 이런 것이 여러분에게 있는 문제라면, 그 문제를 시정할 때는 바로 지금이 아닙니까? (고린도 전 7:29-31) 많은 여호와의 백성은 자신들의 생활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사도 3:19.
11 여러분이 과거에 한 일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회개하고 변화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이라] ··· 옛 사람[성품, 신세]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성품]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여러분은 생활을 그분의 길과 일치시키고, 깨끗한 양심을 누리고, 그분의 의로운 신세계에서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노력이라도 치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아닙니까?—골로새 3:5-10; 이사야 1:16, 18; 고린도 전 6:9-11; 히브리 9:14.
12. 담배, 알코올 남용 혹은 마약 중독이 깨끗한 양심을 소유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2 담배 사용, 알코올 남용 혹은 마약 중독이 깨끗한 양심을 소유하는 데 장애물이 됩니까? 생명을 위협하는 그러한 습관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인 생명에 대한 불경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한 습관들이 가로막고 있다면, 확실히 지금은 그러한 습관들을 시정할 때입니다. 그러한 습관들은 여러분의 생명만큼 가치있는 것입니까?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깨끗하고 의로운 길은 그러한 시정을 하게 할 만한 것임을 깊이 인식합니까?b—고린도 후 7:1.
물질적인 것들
13, 14. (ㄱ) 성경은 물질적인 목표들에 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하늘의 것들을 첫째 자리에 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오늘날의 세상은 성공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랑”을 다른 거의 모든 것보다 앞 자리에 둡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을 막는 “가시떨기”에 비하셨습니다. 그분은 또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질문하셨습니다.—I 요한 2:16, 새번역; 마가 4:2-8, 18, 19; 마태 16:26.
14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새들이 먹을 것을 찾을 수 있게 그리고 백합화가 화려하게 필 수 있게 하신다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는 새들보다 훨씬 더 귀하지 않느냐? ··· 하나님께서 ··· 하물며 너희야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새번역) 현명하시게도, 예수께서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왕국, 신세]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우리 마음도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늘의 것들을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지적하신 것입니다.—누가 12:22-31; 마태 6:20, 21.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경건한 봉사
15.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본은 우리에게 무슨 훌륭한 격려가 됩니까?
15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까? 수줍음 때문에 주저하게 됩니까? 만일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갖는 느낌과 동일한 느낌을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가졌다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고 능한 많은 사람을 택하시지 않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 (고린도 전 1:26-29) 강력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반대하고, 그들에게 전파하는 일을 중단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담대함을 주실 것을 구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전하는 소식이 예루살렘에 가득하였으며, 나중에는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습니다!—사도 4:1-4, 13, 새번역, 17, 23, 24, 29-31; 5:28, 29; 골로새 1:23.
16.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묘사된 허다한 ‘구름 같이 둘러싼 증인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6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장애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한, 허다한 ‘구름 같이 둘러싼 증인들’에 관해 알려 줍니다. 우리도 그와 비슷한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자.]”—히브리 12:1.
17.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무슨 격려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1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종들에게 대단히 큰 도움을 베푸실 수 있습니다. 우주의 창조주께서는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 40:31.
18. 왕국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기 위해 어떻게 소심한 태도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18 여러분이 지방 회중에서 볼 수 있는 담대하고 행복한 증인은, 세계 전역에 있는 삼백오십만 명이 넘는 열심 있는 종들 중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러한 말씀으로 예언하신 일에 즐거이 참여합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왕국을 전파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 그렇게 할 자격이 있는데도 여러분에게 문제가 된다면, 봉사를 훌륭하게 하는 증인에게 전파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자고 부탁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정상적인 것을 초월한 능력”을 주시며, 여러분은 이 경건한 봉사가 참으로 즐거운 일임을 알고 놀랄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고린도 후 4:7, 신세; 또한 시 56:11; 마태 5:11, 12; 빌립보 4:13 참조.
19.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무슨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명령하셨습니까?
19 예수께서는 왕국 소식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들이 그 소식에 따라 행동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 28:19, 20.
20. 영적으로 발전하는 사람이라면, 곧 무슨 질문을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까?
20 하나님의 축복들, 예수의 “보배로운 피” 및 영원한 생명이라는 놀라운 희망에 대한 여러분의 인식은 행동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킵니까? (베드로 전 1:19)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조건들에 일치시켜 왔습니까? 제자를 삼는 일에 정기적으로 참여합니까?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이 ‘분명히 그렇다’는 것이라면,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 에디오피아인이 빌립에게 “내가 침례를 받지 못하게 막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한 질문과 동일한 질문을 자신이 참석하는 회중의 장로들 중 한 사람에게 할 때가 된 것일 것입니다.—사도 8:36, 신세.
[각주]
a 「예루살렘 성서」는 이 부분을 “자신을 단념하고”(renounce himself)로 번역한다. J. B. 필립스 역본은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give up all right to himself)로 되어 있다. 「신영어 성서」는 “자신을 뒤에 두고”(leave self behind)로 되어 있다.
b 그러한 습관들을 끊는 일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해, 「파수대」 1981년 6월 호 39-47면; 1973년 9월 1일 호 401-8면 그리고 「깰 때이다」 1982년 10월 15일 호 3-11면; 1981년 5월 22일 호(영문) 3-11면을 참조할 것. 이러한 기사들은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 도서실에서 구해 볼 수 있을 것임.
기억하십니까?
◻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감사할 만한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믿음과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합니까?
◻ 무슨 문제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으며, 우리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 아직 침례받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까?
[18면 네모]
‘나는 어떤 종류의 “땅”인가?’
예수께서는 씨를 뿌리러 나간 사람에 관한 예를 드셨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이 먹었다. 어떤 씨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이 나오지만, 해가 돋자 말라 죽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서 기운이 막혔다. 예수께서는 이 세 가지 그룹이 의미하는 바를, 곧 첫째 그룹은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둘째 그룹은 말씀을 받으나 “환난이나 핍박”의 열기에 물러서는 사람들이며, 셋째 그룹은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힌 사람들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또한 좋은 땅에 떨어진 다른 씨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그룹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한다고 말씀하셨다.—마태 13:3-8, 18-23.
‘나는 어떤 종류의 “땅”인가?’하고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9면 네모]
그들은 믿음을 위해 죽었다
믿음을 저버리기보다는 죽음을 택한 사람을 알고 있는가? 수천 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그렇게 하였다. 「나치 국가와 새로운 종교들: 비국교주의에 관한 다섯 가지 사례 연구」(The Nazi State and the New Religions: Five Case Studies in Non-Conformity)에서, 크리스틴 E. 킹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매 두 명의 독일 증인 중 한 명은 투옥당하였으며, 네 명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수용소에서의 끔찍스러운 일들이 마침내 1945년에 끝났을 때, “증인 수는 증가해 있었고 타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교회에 대한 나치의 박해」(The Nazi Persecution of the Churches)에서, J. S. 콘웨이는 증인에 관해 이렇게 기술하였다. “게슈타포의 횡포한 그 무서운 힘 앞에서 그들과 같은 결의를 나타낸 교파는 전혀 없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나 인종 문제로 박해를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성서로 훈련받은 양심을 범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고통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