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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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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8
파88 8/1 4-7면

형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견해

“여러분이 ·⁠·⁠· 우상을 버리고 ·⁠·⁠· 살아 계신 참 하느님을 섬기게 되었”다고 사도 바울로는 데살로니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였다. (I 데살로니카 1:9a) 그렇다. 초기 그리스도인 가운데 한때 이교의 우상 숭배자였던 사람들이 많았다. (I 고린토 6:9-11)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자 우상을 숭배하는 습관을 버렸다.

그러나, 우상 앞에서 절하는 것이 매우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형상을 사용하지 않고 숭배한다는 이유로 조롱을 받았다. 일부 이교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그렇다면, 형상을 경배하는 일이 나중에 어떻게 해서 그리스도교국 내에 그렇게 널리 퍼지게 되었는가?

그리스도교국의 형상—어디로부터?

이교의 여러 관습은 로마 황제 콘스탄틴이 소위 개종한 후에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소개되었다. 종교 역사가 에드윈 베번은 그의 저서 「거룩한 형상」(Holy Images)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일은 콘스탄틴 시대부터 그리스도교 세계 전역에서 널리 퍼지게 되었으며 얼마 안 있어 그것에 여러 형태의 경의를 표하는 일이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다른 형태의 형상 숭배를 가능하게 하였다.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필시 그림과 형상에 경의를 표하는 일이 있기 전에 십자가 상징물에 경의를 표하는 관습이 들어온 것 같은데, 십자가 자체는 ·⁠·⁠· 콘스탄틴이 군기[십자가 모양이 섞여 있는 군기]에 본보기를 남기기 이전엔, 그리스도교 기념물이나 종교적 예술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일은 계속 발전하였다. 기원 제 8세기에,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에서 “성도”로 간주되는 다마스쿠스의 요안네스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교황 성하들은 악귀들의 신전과 사원들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성도들의 이름을 지닌 성당을 세웠으며 우리가 그 성도들을 숭배하게 된 것처럼, 그들은 또한 악귀들의 형상을 파괴하였으며 그 대신 그리스도와 성모 및 성도들의 형상을 세웠다.”

이러한 형상에 대하여, 제 13세기의 로마 가톨릭의 “성도”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와 같이 부언하였다. “그리스도의 형상과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 동일하게 경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리스도께서 경애받으시는 것처럼 십자가도 동일하게 경애를 받는다. 즉 라트리아[가톨릭에서 규정하는 최고 형태의 숭배]에 해당하는 경애를 받는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분 자신에게 하듯이, 십자가에게 말하고 간구한다.”

아퀴나스는 아직도 “형상 경배”교리에 기여한 중요한 인물로 간주된다. 「신가톨릭 백과사전」에 따르면, 아퀴나스를 통하여 비로소 “형상 경배”에 대한 ‘설명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형상 숭배가 이교도의 형상 숭배를 대신하는 역할만 했을 뿐임이 분명하다.

종교적 형상 사용을 정당화함

오늘날 종교적 형상을 경배하는 많은 사람들은 형상 숭배자로 불리는 것에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호칭에 대한 반대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제 4세기에, 소위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상을 숭배하는 비그리스도교도들의 논리를 비웃으면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자신이 학식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논쟁자가 있는데, 말하기를, 나는 돌을 숭배하지 않으며 감각이 없는 형상을 숭배하지도 않는다. ·⁠·⁠· 나는 이런 형상을 숭배하지 않는다. 다만 보이는 것을 매우 존경함으로 보이지 않는 분을 섬기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그들은 우상으로 대표되는 보이지 않는 인격체를 숭배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이 부언하였다. “자기들의 형상에 대하여 그처럼 설명함으로써, 그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악귀를 숭배하기 때문에, 그들은 남이 알아주지 않는 유능한 논쟁자인 것 같다.”—아우구스티누스 저 「시편 해설」(Expositions on the Book of Psalms), 시편 xcvii 9.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은 이교도의 우상 숭배를 정죄하는 데 민감하였지만, 그들 자신이 형상을 사용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소위 이교도가 사용했던, 정당화하기 위한 바로 그 논법을 자주 이용하였다. 예를 들면 16세기의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 마리아 및 “성도”의 형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그러한 형상에게 합당한 경의와 경배를 나타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형상이 경배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 속에 어떤 신성이나 덕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경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공의회에서는 이와 같이 설명하였다. “그러한 형상에 나타내는 경의는 그것이 대표하는 본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형상에게 입맞추고 그 앞에서 모자를 벗고, 엎드려 절함으로써, 그러한 형상이 나타내는 대상인,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성도를 경배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같은 근거로 우상 숭배를 계속 정당화한다. 즉 형상은 단지 그것이 대표하는 하늘에 계신 분에 관심을 모으는 수단에 불과하며, 형상 안에는 덕성이나 능력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행하는 면에서 그 점은 어느 정도로 사실임이 판명되었는가? 형상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과연 ‘그 속에 신성이나 덕성’이 없다고 믿는가?

형상—숭배자의 견해

스페인 세비야에는, 동정녀 라 마카레나 상과 동정녀 데 라 에스페란사 상의 추종자들 사이에 광신적인 경쟁이 있다.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세 동정녀 상 곧 필라 성모, 크리프트 성모, “벨 베리에르” 성모가 있다. 이 성모 상에는 각기 헌신한 신자들이 있다. 세 형상은 모두 동일한 사람을 대표하는데도, 그 숭배자들은 자기들의 성모 상이 다른 성모 상보다 좀더 우월하다고 확신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경의를 표하는 대상은 형상이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형상 자체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 교회에선 상대적 숭배라고 변명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형상 숭배로 밝혀지는 경우가 흔하다. 수세기 동안 실제로 행해진 것을 살펴보면 신학상의 미묘한 구별은 거의 의미가 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신학자들의 이론은 성서의 교훈과 모순된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우상 숭배는 완전히 정죄된다고 명백히 밝히셨다. (출애굽 20:4, 5; 신명 4:15-19) 모세가 사용했던 구리 뱀과 같은, 일부 상징물이 허용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상에게 절하므로 숭배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었다.—민수 21:9; 열왕 하 18:1, 4.

이스라엘은 우상 숭배를 금하는 이러한 법에 불순종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 예를 들면 시내 산에 머무를 때,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였다. 그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풀먹는 황소 상과 바꾼’ 것은 얼마나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였는가! (시 106:20, 신세 참조) 그런데도, 오늘날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처럼, 그들은 송아지가 아니라, 하느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하였다! “모두들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 내 온 우리의 신이다.’” (출애굽 32:1-5)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러한 “상대적인” 숭배 곧 애굽의 종교로 다시 돌아가는 이런 뻔뻔스러운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사도 7:39-41) 그것은 그들이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직접 위배하는 행위였으며 이스라엘을 소멸의 위험으로 몰아넣는 행위였다.—출애굽 32:9, 10, 30-35; 신명 4:23.

그러면 여호와 하느님께서 형상에 대해 그처럼 강력한 태도를 취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한 가지 이유는, 형상은 능력이 없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신명 32:21ㄱ; 시 31:6) 예레미야는, 형상은 허수아비이며 그것은 숨도 못 쉰다고 말하였다. (예레미야 10:5, 14) 이사야 역시 나무의 일부를 사용해서 불을 피워 요리를 하면서 다른 일부로는 신을 만드는 자들을 조롱하였다. 이사야는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에 대해 “지각이 없고 철이 없는 것들, 눈은 닫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마음은 어두워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경책하였다.—이사야 44:13-18.

형상 숭배와 관련된 특히 치명적인 위험 한 가지는 형상이 악귀 세력과 접하는 매개물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시편 필자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였다. “그들[이교도들]의 우상을 섬겼으니 그것이 그들의 올가미였다. 귀신들에게 아들 딸을 잡아 바치[었다.]” (시 106:35-37; 비교 레위 17:7; 신명 32:17.) 형상 숭배의 결과로, 또 다른 미신적인 영매 행위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 하나의 예로 이스라엘에 우상 숭배를 부흥시킨 므낫세 왕이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이 야훼의 전 안팎 뜰 안에 하늘의 별들을 섬기는 제단들을 쌓았”으며, “점장이와 술객을 두”었다.—열왕 하 21:1-6.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은 동일한 위험성에 관하여 경고한다. 「신성서 사전」(The New Bible Dictionary)은 이와 같이 말한다. “우상 숭배에 대한 구약의 반론은 ·⁠·⁠· 바울이 나중에 확언하게 된 동일한 두 가지 진리를 인정한다. 즉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악귀에 의한 초자연력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따라서 우상은 실재하는 영적 위험물이 된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썼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세상에 있는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또 하느님은 한분밖에 안 계십니다.” 하지만 그는 후에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이교도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I 고린토 8:4; 10:19, 20.

그렇다. 악한 영의 세력은 개개인을 자기들의 영향력 아래로 끌어들이려고 애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에페소 6:12) 그러므로 어떠한 종류의 형상 숭배이든 사람의 영적인 인식을 둔하게 만들고, 미신을 조장하며, 어둡고 악한 현 세상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들에 의한 사기 행각을 수월하게 해준다.

‘진리로’ 숭배함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게 더 가까이 나아가기 위하여 형상을 사용하는 진실한 사람들이 많다.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가까이 나아가는 방법을 우리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가? 우리 임의 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됨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이 말씀은 우상 숭배적인 형상 사용을 배제한다. 더우기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치셨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영과 진리로, 새번역]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요한 4:23, 24.

영이신 분이 물질적인 형상으로 대표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형상이 아무리 뛰어나 보인다 할지라도, 그것은 도저히 하느님의 영광과는 비교할 수 없다. 따라서 하느님의 형상은 결코 참다운 것이 될 수 없다. (비교 로마 1:22, 23.) 그러므로 어떤 거짓된 형상을 통하여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진리로 숭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사람이 우상 숭배의 습관을 버리고 ‘아버지께서 찾고 계시는 그러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되도록 도왔다. 형상에 대한 하느님의 견해를 성서로부터 알게 된 후에, 마음이 감동되어서 가정에서 형상을 없애고 숭배 방식에서 형상을 사용하지 않게 된 사람들이 많다. (비교 신명 7:25.) 그러한 사람들이 배운 바와 일치하게 행하기가 반드시 쉽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에 밀접히 고착하고자 하는 진실한 욕망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성서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와 같이 권면한다. “나의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우상을 멀리 하십시오.”—요한 1서 5:21.

[각주]

a 별다른 표시가 없는 한, 모든 성구 인용문은 「공동번역」 성서의 것임.

[7면 네모]

‘이콘은 결코 우상이 될 수 없’는가?

“이콘”은 동방 정교회 성원들이 경배하는 특별한 종류의 형상 곧 성화(聖畫)를 말한다. 어떤 것은 그리스도의 초상이고, 삼위일체의 하느님, 마리아, “성도” 또는 천사를 묘사하는 것들도 있다. 로마 가톨릭 교인들처럼, 정교회 신학자들 역시 이콘 경배를 가리켜 그것이 묘사하는 하늘에 계신 분에게 정성을 전하는 상대적 행위라고 정당화한다. 러시아 신학자 세르게이 불가코프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이콘은 단지 사물에 불과하며 결코 우상 혹은 미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한편 동방 정교회에선 이콘이 교회에 의해 “성화”되었다면, 이콘은 그 앞에서 기도하는 숭배자에게 특별한 은총을 전해 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가코프는 그의 저서인 「정교회」(The Orthodox Church)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이콘의 축복에 관한 의식은 형상과 본체 사이에, 묘사된 대상과 초상 사이에 관련을 맺게 해준다. 그리스도의 이콘의 축복으로, 충실한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신비로운 만남이 가능해 진다. 동정녀의 이콘과 성도의 이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이콘은 그들의 생명을 이곳 지상에까지 연장시킨다고 말할 수 있다.”

더우기, 마리아의 이콘 가운데에는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진 것이 많다고 여겨진다. 불가코프는 이와 같이 주장한다. “마리아는 하늘에 있지만, 우리와 더불어 현세의 생명을 영위하며, 괴로움을 겪으며, 눈물을 흘린다. 마리아는 하느님 보좌 앞에서 세상 사람들을 위해 중재한다. 마리아는 기적을 행하는 이콘 안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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