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 관한 정확한 지식은 생명으로 인도한다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신 당신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갖는 것,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요한 17:3, 신세.
1.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정확한 지식은,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극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것입니다.” (디모데 전 2:4, 신세)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성서로부터 나오는 그러한 지식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그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디모데 후 3:16, 17; 요한 1서 2:17) 그러한 지식은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및 우리와 그분과의 관계를 올바로 식별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시 2:12; 빌립보 2:5-11.
2. 정확한 지식이 없을 때 어떤 결과에 이를 수 있읍니까?
2 정확한 지식이 없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반대자 곧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인 사단 마귀가 조장하는 거짓 가르침에 현혹될 수 있읍니다. (요한 8:44) 그러므로 어떤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고 거짓말이라면, 그러한 교리를 믿고 가르치는 것은 여호와께 불명예를 돌릴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를 반대하는 입장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거짓과 주의 깊이 구별하기 위해 성경을 조사할 필요가 있읍니다. (사도 17:11) 우리는 “항상 배우나 마침내[결코, 신세] 진리의 지식[정확한 지식, 신세]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과 같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디모데 후 3:1, 7.
3.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관한 성서의 분명한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3 앞의 기사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삼위일체 교리는 성서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 가운데서 자신이 만물의 창조주이며, 하늘에서의 자신의 첫 창조물이 자신의 아들이었음을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 주십니다. (계시 4:11; 골로새 1:15, 16)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기초 역할을 하는 대속 희생물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진실한 사람들을 한층 더 계몽시키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인간으로 보내셨읍니다. (마태 20:28; 요한 6:38)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는 독립된 두 인격체이며 성령은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이라는 이 간단하고도 분명한 가르침이 여러 세기에 걸쳐 왜곡되어 왔읍니다. 오히려, 삼위일체 가르침은 그리스도교국의 기본적인 교리가 되었읍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4. 요한 복음 10:30에 대한 교회들의 주장이 참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교회들은 어떻게든지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해, 요한 복음 10:30에 세번째 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그 구절을 예로 듭니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는 자기가 단지 다른 형태를 취한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읍니까? 결코 그럴 수 없읍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분보다 열등하며 그분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요한 복음 10:30에서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이었읍니까?
5, 6. (ㄱ) 예수께서는 무슨 의미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읍니까? (ㄴ) 이 점이 예수의 제자들과 관련하여 어떻게 예시됩니까?
5 예수께서는 생각과 목적에 있어서 자신과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 관해 하나님께 기도한 요한 복음 17:21, 22의 이러한 말씀에서 그 점을 알 수 있읍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 ···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 모두가 한 인격체가 될 것을 기도하신 것이었읍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예수와 하나님이 그러한 것처럼 제자들이 같은 생각과 같은 목적으로 연합될 것을 기도하신 것이었읍니다.
6 동일한 생각이 고린도 전서 1:10에 표현되어 있는데, 바울은 그 구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다 같은 말을 하고 그들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자신과 아버지가 동일한 인격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이 동일한 인격체임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던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누구였는가?
7. (ㄱ) 그리스도교국은 요한 복음 1:1에 관해 무엇이라고 주장합니까? (ㄴ) 요한 복음 1:1의 무슨 표현을 볼 때, 결코 삼위일체를 언급한 것이 아님을 즉시 알 수 있읍니까?
7 하지만,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되어 있는 요한 복음 1:1은 어떠합니까? 요한 복음 1:14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오신 이 “말씀” (희랍어, 로고스)이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요한 복음 1:1의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사체로는 본지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 다른 사람과 동일인일 수는 없읍니다. 그러므로 별개의 두 인격이 있음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한, 삼위일체 신의 세째 위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읍니다.
8. 일부 다른 성서 번역판들은 요한 복음 1:1의 후반부를 어떻게 번역합니까?
8 요한 복음 1:1 후반부의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는 표현이 다른 번역판들에는 다르게 번역되어 있읍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1808년: “그리고 말씀은 신이었다.” (and the word was a god.) 「신약, 대주교 뉴컴의 새로운 번역에 근거한 개정역: 교정본 부가」(The New Testament, in an Improved Version, Upon the Basis of Archbishop Newcome’s New Translation: With a Corrected Text), 런던.
1864년: “그리고 말씀은 신이었다.” (and a god was the Word.) 「엠파틱 다이아글롯」, 벤저민 윌슨역, 뉴욕 및 런던.
1935년: “그리고 말씀은 신성이었다.” (and the Word was divine.) 「성서—미국역」, J. M. P. 스미스와 E. J. 굿스피드 역, 시카고.
1935년: “로고스는 신성이었다.” (the Logos was divine.) 「신번역 성서」, 제임스 모팻역, 뉴욕.
1975년: “그리고 말씀은 신(혹은 한 신성을 지닌 분)이었다.” (and a god (or, of a divine kind) was the Word.) 「요한 복음」(Das Evangelium nach Johannes), 지그프리트 슐츠 역, 괴팅겐, 독일.
1978년: “그리고 로고스는 신과 같은 분이었다.” (and godlike sort was the Logos.) 「요한 복음」(Das Evangelium nach Johannes), 요하네스 슈나이더, 베를린.
1979년: “그리고 로고스는 신이었다.” (and a god was the Logos.) 「요한 복음」(Das Evangelium nach Johannes), 유르겐 베커역, 뷔르츠부르크, 독일.
또한, 사단 법인 뉴욕 워치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1950년에 발행한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신세계역」은 그 표현을 “말씀은 신이었다” (and the Word was a god.)라고 번역하였읍니다.
9. 희랍어 원문에서, 요한 복음 1:1에 첫 번째로 나오는 명사 데오스(신) 앞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임을 나타내는 무엇이 있읍니까?
9 그러한 번역은 요한 복음 1:1의 희랍어 문법 구조와 일치합니까? 그렇습니다. 일치합니다. 요한 복음 1:1에는 희랍어 명사 데오스(신)가 두번 나옵니다. 첫 번째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말씀은 그분과 함께 있었읍니다. 즉 “이 말씀[로고스]이 하나님[데오스의 한 형태]과 함께 계셨”읍니다. 첫 번째 데오스의 앞에는 희랍어 정관사의 한 형태인 호가 있읍니다. 앞에 정관사 호가 있는 명사 데오스는 별개의 주체, 이 경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즉 “이 말씀이 [그] 하나님과 함께 계셨”읍니다.
10. 요한 복음 1:1에 두번째로 나오는 데오스와 관련하여, 관사 호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10 그러나 8항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은 번역판들에서는, 요한 복음 1:1 후반부의 두번째 데오스(서술 명사)를 “하나님”(God)이 아니라 “신성”(divine) 혹은 “신”(a god)으로 번역합니다. 그렇게 번역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번째 데오스는 희랍어에서 동사 앞에 나오는, 정관사 호가 없는 단수 서술 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서, 그러한 문장 구조는 주어의 특징이나 특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본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말씀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신성” 곧 “신”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말씀”이 하나님께서 땅으로 보내신 하나님의 대변자임을 알려 주는 많은 성구들과 조화를 이룹니다. 요한 복음 1:18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the only-begotten god]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창조하신 아들]이 [인간 예수로 이 땅에 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셨느니라.”
11. 번역자가 희랍어에는 전혀 없는 관사(a)를 넣어 준 무슨 성서의 예가 있으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희랍어로부터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희랍어 원문에는 관사가 없지만 그 서술 명사 앞에 관사(a)를 넣은 성서 구절들은 그외에도 많이 있읍니다. 번역에서 이처럼 관사를 넣어 주는 일은 그 명사의 특징이나 특성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예를 들어, 제자들이 물 위를 걷고 계신 예수를 보았을 때 「제임스 왕역」은 마가 복음 6:49에서 “그들은 그것이 영(희랍어, 판타스마)이라고 생각하였다.”(they supposed it had been a spirit)라고 말합니다. 「신세계역」은 그 구절을 “그들은 ‘그것은 유령(an apparition)이다!’라고 생각하였다”로 좀더 정확하게 번역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 1:1의 정확한 번역은 말씀이 “하나님”이 아니라 “신”이었음을 알려 줍니다.
12. 부정관사(a)를 사용한 무슨 비슷한 예를 요한 복음 8:44에서 찾아볼 수 있읍니까?
12 그와 비슷한 두 가지 예를 요한 복음 8장 44절(신세)에서 찾아볼 수 있읍니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마귀에 관해 이야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자는 시작부터 살인자(a manslayer)였[다.] ··· 그는 거짓말장이(a liar)며 거짓말의 아버지다.” 요한 복음 1:1의 경우와 비슷하게, 희랍어 원문에서 이 두 표현의 서술 명사(“manslayer,” “liar”)는 동사 앞에 나오며 정관사가 없읍니다. 각각 마귀의 특성이나 특징이 묘사된 것이며, 많은 현대어 번역판에서는 이 점을 전달하기 위해 부정관사(a)를 넣어 줄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임스 왕역」은 이러한 표현의 번역을 합니다. “그는 살해자였으며 ··· 그는 거짓말장이고 그것의 아버지다.”(He was a murderer ··· he is a liar and the father of it)—또한 마가 11:32; 요한 4:19; 6:70; 9:17; 10:1, 13, 21; 12:6, 신세 참조.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13, 14. 도마가 예수를 여호와라는 뜻으로가 아니면서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삼위일체론자들은 또한 자신들의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요한 복음 20:28을 예로 듭니다. 그 구절에서 도마는 예수에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하였읍니다. 위에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도마가 예수를 가리켜 신이라고 한 것이라는 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인간 이전의 예수가 분명히 신 다시 말해서 강력하고도 신성을 지닌 인격체였다는 사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죽으시고 하늘 생명으로 부활되신 이래 확실히 그러한 입장이 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권세 있는 인간들이 “신”이라고 불린 일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시편을 인용하기까지 하셨읍니다. (시 82:1-6, 난외주; 요한 10:34, 35) 사도 바울은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다고 지적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8:5) 사단조차도 “이 세상 신”이라고 불립니다.—고린도 후 4:4.
14 그리스도께서는 불완전한 인간이나 사단보다 훨씬 더 높은 지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이나 사단이 “신”으로 언급될 수 있다면, 분명히 예수께서는 신으로 언급되실 수 있으며 또 신으로 언급되셨읍니다. 여호와와의 관계에서의 독특한 위치 때문에, 예수는 “독생하신 하나님” (the only-begotten god) (요한 1:18), “능한 하나님” (Mighty God) (이사야 9:6, 신세) 그리고 “신” (a god) (요한 1:1, 신세)입니다. 그러므로 도마가 예수를 가리켜 그렇게 말한 것은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었읍니다. 도마는 자기에게 있어서 예수가 신, 곧 신성을 지닌 강력한 분이라고 말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가 여호와라고 말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도마는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지 정관사(the)를 붙여서 “그”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5. 요한 복음 20장 31절은 예수의 신분을 어떻게 분명히 밝힙니까?
15 바로 세 구절 뒤인 요한 복음 20:31에서, 성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구절에서 도마가 한 말의 의미에 대한 온갖 의문이 풀립니다. 성서 필자 요한은 분명히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지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
16. 유대인들은 무엇이라고 억지 비난을 하였으며, 예수께서는 그 비난을 어떻게 논박하셨읍니까?
16 교회들이 사용하는 또 다른 성구는 요한 복음 5:18입니다. 그 구절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한 이유가 예수가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알려 줍니다. 예수가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았다고 말한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예수가 아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다음 구절(19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이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거나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주장하지 않으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잘못 생각하였다는 것, 곧 자기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설명하신 것이었읍니다. 우리는 우주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읍니까?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억지 비난을 한 것이고, 예수께서는 그러한 비난을 논박하신 것이었읍니다.
17. (ㄱ)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분에 관한 하나님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으로부터의 분명한 증언은 무엇입니까? (ㄴ) 삼위일체론자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의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적할지 모르는 성구가 어느 성구든 어떻게 되지 않으면 안 됩니까?
17 그러므로, 하나님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증언을 통해, 예수의 증언을 통해 그리고 예수의 제자들의 증언을 통해 압도적인 증거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독립된 두 인격인 아버지와 아들임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그러한 증거는 또한 성령이 삼위일체 신의 세번째 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임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문맥을 무시한 채 성구들을 인용하거나 삼위일체를 지지하기 위해 그러한 성구들을 구부리려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러한 성구들은 어느 것이든 성서의 분명한 증언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삼위일체가 발전하게 된 이유
18. 삼위일체 교리는 어디에서 유래하였읍니까?
18 18면의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를 검토해 본다면, 우리는 삼위일체가 이교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성서의 가르침이 아니라, 4세기에 그리스도교국에 의해 채택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오래 전에 고대 바빌론, 이집트 및 그외 지역에 삼위일체 신들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국이 이교의 개념을 그 가르침에 집어넣어 혼합시켰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사람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였는데, 그는 이 문제에 관한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이교도들과 배교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자신의 제국을 공고히 하기를 원하였읍니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교 가르침의 발전이기는커녕, 그리스도교국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부터 배교하고 그 대신에 이교 가르침을 채택하였다는 증거였읍니다.
19. 삼위일체 교리가 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그러한 교리가 발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확실히,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과 성령에 대해 혼란을 일으키고 신비로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은 혼란을 겪는 사람들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해 혼란을 느끼면 느낄수록, 하나님의 반대자인 사단 마귀 곧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려고 애쓰는 “이 세상 신”의 목적에는 그만큼 더 잘 부합됩니다. (고린도 후 4:4) 그러한 교리는 신학자들만 성서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지도자들의 목적에도 잘 부합됩니다. 이것은 그들이 평신도를 계속 지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 (ㄱ) 삼위일체에 관한 간단 명료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ㄴ) 해방시켜 주는 진리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20 그렇지만, 이 문제에 관한 진리는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소년도 자기와 아버지는 동일인이 아니며 독립된 두 개체임을 압니다. 그와 비슷하게,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때에도 똑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간단 명료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삼위일체 교리는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입니다. 따라서 그 교리의 근원은 틀림없이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계시 12:9) 그러나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및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에 관한 간단하면서도 새 힘을 주는 진리는 사람들을 이교 사상에서 기원하고 사단이 지어낸 거짓 가르침의 속박에서 자유케 해줍니다. 예수께서 진실한 진리 탐구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바와 같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 8:32) 해방시켜 주는 진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과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요한 17:3, 신세.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에 관한 정확한 지식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예수께서는 무슨 의미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셨읍니까?
◻ 요한 복음 1:1은 말씀과 하나님을 어떻게 구별합니까?
◻ 왜 도마는 예수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온당하게 부를 수 있었읍니까?
◻ 삼위일체 교리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누가 지어낸 것입니까?
[18면 네모]
삼위일체 교리 발전사
「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1985년판, 마이크로패디아 제 11권 928면에서는 삼위일체 제목 아래 이렇게 말한다. “삼위일체라는 말도 그에 해당하는 명확한 교리도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으며,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도 구약에 나오는 셰마 즉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주이시니[라]’(신명 6:4)는 말과 모순되는 말을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동 백과사전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그 교리는 여러 세기에 걸쳐 많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발전된 것이다. ··· 325년에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비록 성령에 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품성에 있어서 ··· 아버지와 같다’고 고백함으로 그 교리의 중요한 신조가 공표되었다. ··· 제 4세기 말에 이르러 ··· 삼위일체 교리가 구체적으로 정립되었으며 그후 그대로 유지되었다.”
「신 가톨릭 백과사전」 1967년판 제 14권 299면은 이렇게 인정한다. “‘세 위 속의 한 하나님’이란 명확한 표현은 제 4세기 말 이전에는 완전히 체계화되지 않았으며, 확실히 온전하게 그리스도인 생활과 신앙 고백의 일부가 되지 않았다. ··· 사도 교부들간에는 그러한 경향이나 사조에 조금이라도 닮은 것조차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기원 325년에 니케아 종교 회의에서 공식 채택된 교리다. 그 교리는, 오래 전에 고대 바빌론과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던 이교 사상을 구체화한 것이며 다른 나라와 지역에도 이미 그런 사상이 있었다. 역사가 윌 듀랜트는 「문명의 이야기 제 3부」(The Story of Civilization: Part III) 595면에서 이렇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이교 사상을 없앤 것이 아니라 채택하였다. ··· 삼위일체 신에 대한 사상은 이집트로부터 온 것이다.”
베르길리우스 페름 편저 「종교 백과사전」은 1964년판 793면과 794면에서 “삼신”이라는 단어 아래 그리스도교국의 삼위일체 신뿐만 아니라 비빌로니아인, 불교도, 힌두교인, 고대 노르웨이인, 도교(道教)도 및 그 외 종교들의 삼위일체 신들을 열거한다. 예를 들어, 그 백과사전은 이렇게 지적한다. 인도에는 “위대한 삼신으로서 창조자 브라마와 보존자 비슈누와 파괴자 시바가 있다. 바빌로니아인의 삼신 아누와 엔릴과 에아가 모든 존재 물질인 공기와 물과 땅을 대표하는 것처럼, 이들도 모든 존재의 순환을 대표한다.”
런던의 대영 박물관은 이집트의 이시스와 하르포크라테스와 네프티스 같은 고대의 삼위일체 신들을 보여주는 인공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그 박물관의 ‘중세 및 고대 후기 유물 부서’에서 발행한 한 출판물은 고대 장신구에 새겨져 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 주의를 이끈다. “앞[면], 이집트의 신들 호루스-바이트(매 머리), 부토-아코리(뱀) 및 하트호르(개구리 머리). 뒷[면], 그리스 시(詩) ‘하나의 바이트, 하나의 하트호르, 하나의 아코리: 이들의 능력은 하나다. 하일, 세계의 아버지, 하일, 셋으로 이루어진 신!’ 그러므로 그 신들은 한 능력, 아마도 태양 신의 세 가지 표현으로 보인다.”
역사는 삼위일체가 이교도들에게서 빌어온 것이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여러 세기 전에 존재하였음을 확증한다. 예수께서 죽으신 지 오랜 후에, 이교 철학에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과, 예수 및 사도들이 가르친 하나님의 참 숭배로부터 배교했던 사람들이 삼위일체를 조장하였던 것이다.
[16면 삽화]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제자들이 생각과 목적에 있어서 하나가 될 것을 기도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