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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부: 별처럼 떴다 지는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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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부: 별처럼 떴다 지는 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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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로 이루어진 다수를 통한 통합
  • 종교의 옷자락을 드리운 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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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0 9/1 16-20면

저울에 달린 인간 통치

제2부: 별처럼 떴다 지는 왕들

군주국: 왕이나 황제 같은 세습 국가 원수를 수반으로 하는 정부. 왕국: 왕이나 여왕을 수반으로 하는 군주제 형태의 정부. 제국: 대개 단일 주권의 지배를 받는 일단의 나라나 국가 혹은 민족들로 구성되는 광대한 영토, 일반적으로 황제를 수반으로 한다.

“당시에 시날왕 아므라벨과 ·⁠·⁠·”라는 말로 시작되는 창세기 14장에서, 성서는 처음으로 “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아므라벨이 일부의 주장처럼 바빌론(바벨론)의 유명한 왕 함무라비의 또 다른 이름이었는지 아닌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그가 누구였든 간에, 인간 왕권에 관한 개념이 아므라벨에게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보다 수백 년 전에 니므롯은, 비록 왕이라고 불리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왕이었다. 사실, 그는 역사상 최초의 인간 왕이었다.—창세 10:8-12.

니므롯 왕이나 아므라벨 왕을 고증해 주는 인공 유물이 전혀 없는 것은 사실이다. “키시의 왕, 엔메바라게시가 믿을 만한 비문들에 언급된 가장 오래 된 메소포타미아 통치자”라고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알려 준다.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 국가였던 키시로부터 통치자에 해당하는 수메르어가 유래하였는데, 그 단어는 “큰 사람”을 의미한다. 엔메바라게시의 추정 통치 연대는 성서 연대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성서가 인정하는 기간에 근접하며, 더욱 중요한 점으로, 인간 통치의 발생 장소를 성서가 지적하는 곳과 동일한 지점으로 잡는다.

하나로 이루어진 다수를 통한 통합

중국의 상(商) 곧 은(殷) 왕조는, 연대 추정이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18세기와 16세기 사이 언젠가 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튼, 군주 정체는 가장 오래 된 인간 정부 형태이며, 또한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군주”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 “모너크”(monarch)는 희랍어로 “혼자”를 뜻하는 모노스와 “통치”를 뜻하는 아르케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군주 정체는 영속적인 국가의 수반으로서 독자적인 권리를 행사하는 단 한 사람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한다. 절대 군주국에서는 왕의 말이 곧 법이다. 왕은 말하자면 하나로 이루어진 다수이다.

군주 정체는 언제나 국민들을 단결시키는 데 유용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중세 유럽사를 가르치는 존 H. 먼디의 설명에 의하면, 중세기의 정치 이론에서 “군주 제도는 개별적인 정당들을 초월하기 때문에 지역적인 이익이 각기 다르고 상반되는 넓은 영역에 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고 한다. ‘지역적인 이익이 상반되는’ 넓은 영역은 흔히 군사적 정복의 결과였는데, 그 이유는 왕들이 예외없이 군사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역사가 W. L. 워런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보통 성공적인 왕권의 우선적인 척도로 간주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군주제 정부 형태는 알렉산더 대제 휘하의 그리스(헬라) 제국, 카이사르(가이사) 지배하의 로마 제국 그리고 보다 최근의 대영 제국과 같은 세계 강국의 설립에 이바지하였다. 대영 제국은 20세기초 그 절정에 달했을 때, 한 명의 통치자 아래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과 육지 면적의 4분의 1을 통합했었다.

종교의 옷자락을 드리운 왕권

많은 고대 왕들은 신격을 주장했다. 역사가 조지 세이바인이 이렇게 지적한 바와 같다. “알렉산더를 비롯한 그리스 왕들은 그리스 도시의 신들 명단에도 올라 있었다. 신격화된 왕의 존재는 동방에서 보편적인 관례가 되었으며 결국은 로마 황제들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왕의 신성에 대한 이러한 신앙이 유럽에서 “그 형태를 달리해 가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었다고 말한다.

중앙 및 남아메리카의 아즈텍과 잉카 제국은 신성한 군주국으로 간주되었다. 아시아에서는 1946년에 와서야 비로소 일본의 고 히로히토 천황이 태양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124대 인간 후손이라는 주장을 철회하였다.

모든 왕들이 신격을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적어도 신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단언하였다. 지상에서 신을 대표하도록 선발되었다는 것은 사제로서 초능력을 부여받았음을 의미하였다. 존 H. 먼디는 “왕 자신이 사제라는 고대 사상이 서양에 확산되어, 군주가 교회를 지배하는 수장이 되고 사도직의 지도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콘스탄티누스에 의한 [기원 4세기에 있었던] 교회와 국가의 제휴 그리고 그에 병행하는 교회측의 신 플라톤주의 사상 흡수로부터 유래한” 종교적 개념이었다. 대관식 때 베푸는 종교적 축복은 그렇지 않으면 결여될 수도 있는 왕의 통치권의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그 위엄을 더해 주었다.

1173년, 영국의 헨리 2세는 “신의 은총을 입은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나중에 왕권 신수설(王權神授説)로 알려진 사상이 비롯되었는데, 그것은 왕권이 세습적인 것임을 뜻하였다. 신은 출생이라는 사실을 통해 자신의 선택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졌다. 1661년에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정부의 지배권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이 신조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시행하였다. 루이 14세는 그에 대한 반대를 곧 그가 대표하는 신에 대한 죄로 간주했다. 그는 “레타 세 무아! (짐은 곧 국가다)”라고 뽐냈다.

비슷한 사상이 스코틀랜드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났다. 1603년에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기 전, 제임스 6세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하고 있을 때, 이 군주는 이렇게 기록했다. “왕은 신으로 불린다. ·⁠·⁠· 왕들은 지상에 있는 신의 보좌에 앉아 있고 자신의 통치에 관하여 신 앞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앙이 제임스 왕이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도록 정식으로 인가해 주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 결과, 즉 아직도 프로테스탄트 교인들이 널리 사용하는 「제임스 왕 역」이다.

절대 군주 시대

중세기초부터 군주 정체는 줄곧 전형적인 정부 형태였다. 왕들은 탁월한 영주들에게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돈이 안 들고 편리한 통치 방법을 개발하였다. 그 결과, 이번에는 봉건 제도로 알려진 정치 및 군사 제도가 생기게 되었다. 군사 및 기타 봉사에 대한 대가로, 영주들은 그들의 봉신(封臣)들에게 토지를 주었다. 하지만 봉건 영주들이 더욱 효율적이고 강력해질수록, 왕국이 봉건적 세력 단위로 해체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었다.

더욱이, 봉건 제도는 시민들에게서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하였다. 그들은 군사력을 가진 영주의 지배를 받았으며, 영주의 수입의 주된 원천이었다. 교육과 문화적 기회를 빼앗긴 “농노에게는 자신의 영주를 대항하여 법을 시행할 수 있는 권리가 거의 없었다”고 「콜리어 백과 사전」은 알려 준다. “농노는 영주의 승낙 없이는 결혼을 하거나, 토지 사용권을 상속자에게 넘겨 주거나, 영지를 떠날 수 없었다.”

절대 군주 정치를 하는 방법은 그런 것뿐만이 아니었다. 어떤 왕들은 개인들에게 나중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직위에서 해임시킬 수도 있는 행정직을 주었다. 그런가 하면 관습과 사회적 압력에 의해 다스리는 민간 단체에 지방 행정을 맡긴 왕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방법은 이모저모로 만족스럽지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로버트 필머 경과 프랑스의 자크-베니뉴 보쉬에 같은 17세기 저술가들은 여전히 절대주의야말로 유일하게 적합한 정부 형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절대주의 시대는 얼마 남지 않았었다.

명목상의 원수로 격하된 “신들”

군주는 신에게만 책임을 진다는 일반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그들로 하여금 인간의 법과 관습 및 권위에 대해서 책임을 지게 하려는 압력이 오랫동안 가중되어 왔다. 「컬럼비아 세계사」(The Columbia History of the World)는 18세기 무렵, “군주들은 17세기의 통치자들과는 판이한 미사여구를 구사하였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러한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통치자들이었다”라고 덧붙인다. 이어서, “프리드리히 대제가 자신을 ‘국가 제1의 공복’이라 부르고 왕권 신수설을 부인했을 때, 그는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1688년에 일어난 영국의 혁명과 1789년의 프랑스 혁명 이후로, 절대주의 시대는 거의 막을 내렸다. 점진적으로, 절대 군주제는 의회나 헌법 혹은 그 양쪽에 의해서 제한을 받는 군주 정체로 바뀌어 갔다. 역사가 W. L. 워런의 말을 빌리면, “왕권을 여전히 왕의 임의대로 움직일 수 있었고 신민들이 언제라도 그 왕권을 받아들였던” 12세기와는 대조적으로, 오늘날 대부분의 왕과 여왕의 정치 권력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물론, 몇몇 군주들은 아직도 상당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군주는 “신격”의 후광을 잃은 지 이미 오래 되었으며, 명목상의 원수로서, 백성들이 충성심으로 뭉치도록 고취시킬 수 있는 권력의 중심이 되는 표상으로서 봉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제한 군주제는 일인 통치의 통합시키는 특징을 유지하는 한편, 실권을 의회에 부여함으로써 그 부정적인 면을 없애려고 노력해 왔다.

제한 군주제 사상은 여전히 인기가 있다. 최근 1983년에 네팔의 네팔리 의회당 지도자인 크리슈나 프라사드 바타라이는 군주 정체야말로 ‘혼란을 막는 방벽’이라고 호언하면서, ‘왕은 나라의 연합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존재’라고 말하였다. 또한 1987년에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 축하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 조사에 응한 사람의 17퍼센트가 군주 정체로 되돌아가는 것에 찬성했다. 군주주의자 그룹의 한 성원은 이렇게 말했다. “왕만이 정치적 분쟁으로 그토록 오래 분열되었던 국가를 연합시키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같은 해, 「타임」 잡지는 이처럼 언급했다. “왕권은 충성을 불러일으킨다. 그 이유는 아마도 군주가 우리 세속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성상이며, 여전히 신비에 싸인 채 신앙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전설적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신이 죽는다 해도, 여왕은 만수 무강하소서!” 그러나 곧이어 좀더 현실적인 견해를 표명하여, “[영국] 여왕의 주권은 주로 그 찬란한 무력함에 있다”고 부언했다.

부족함이 드러나다

절대 군주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 제도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 통치자는 누구나 조만간 죽게 되므로 계승자가 그를 대신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대개 계승자는 덕이 많거나 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혈통 때문에 선택된다. 아들이 아버지처럼 훌륭할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혹은 아버지가 나빴다면, 아들은 더 나을 것인지 어떻게 아는가?

또한 크리스티아노 그로타넬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왕위 계승자의 선택”은 종종 “모호하게만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왕가의 계승자 후보들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왕의 사망에 뒤이은 기간은 보통 실제적으로나 상징적으로나 사회적인 (그리고 질서의) 혼란 기간이다.”

한 사람이 통치하므로, 절대 군주제의 효율성은 그 통치자 한 사람의 효율성에 달려 있다. 그의 재능과 장점이 그의 정부에 반영될 수 있겠지만 그의 약점과 한계 및 지식 부족 역시 반영될 것이다. 명문 태생일지라도 불완전하다. 나쁜 왕들은 나쁜 정부를 세우고 좋은 왕들은 좀더 나은 정부를 세우지만, 오직 완전한 왕만이 인류가 간절히 바라고 또 가질 만한 형태의 정부를 설립할 수가 있다.

의회 군주제 혹은 제한 군주제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 금세기에 우리는 대영 제국에서, 사상 유례없이 거대하고 강력했던 제국의 분할된 국토를 통할하는 영국의 명목상의 원수인 왕과 여왕들을 보아왔다.

다른 종류의 별

별처럼 떴다 지는 왕들—그중에 예외가 하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리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고 하신다. (계시 22:16) 육체를 따라 다윗 왕의 직계 후손인 예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정부의 왕이 될 자격을 갖추셨다. “광명한 새벽 별”인 예수는 또한 날을 밝히며 떠오를 것이라고 베드로가 말한 “샛별”이기도 하시다.—베드로 후 1:19; 민수 24:17; 시 89:34-37.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할 때, 인간 군주 정체의 지는 별들에게서 인도를 구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반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임명하신 왕, 곧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모든 인간 왕들을 초월하여] 죽지 아니함이 있”는 예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둘 것이다. (디모데 전 6:15, 16) 이미 보이지 않는 왕으로 하늘에 떠있는 그분은 곧 신세계의 아침이 밝아오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한번 떠오른 이상 결코 지지 않을 별—왕—이시다!

[17면 삽화]

아무리 훌륭한 인간 왕도 죽을 때는 자신의 업적을 불확실한 자의 손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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