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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깨어라!—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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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90 10/15 6-7면

놀라운 선물인 자유 의지

우리는 삶을 어떻게 영위할 것인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선택할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을 깊이 인식하는가? 아니면 누군가 우리에게 일평생 매순간 사사건건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를 지시해 주기를 원하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다른 사람에 의해 온전히 통제받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매우 압박감을 주고 욕구 불만을 갖게 할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

그러면 우리에게 그처럼 자유에 대한 욕망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선택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악과 고통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악과 고통을 끝내는 조치를 취하시지 않고 기다리신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가 만들어진 방식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인간에게 베푸신 여러 가지 놀라운 선물 중에는 자유 의지가 있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셨으며, 그분이 지닌 특성 중 하나는 선택의 자유임을 알려 준다. (창세 1:26; 신명 7:6) 그러므로 그분은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바로 그 훌륭한 특성 곧 자유 의지라는 선물을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압제적인 통치자에게 예속되는 것보다 자유를 더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거칠고 억압적인 다스림에 분개하면서 자유를 얻으려고 항거한다.

자유에 대한 욕망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성서는 근본적인 이유를 이러한 말로 제시한다. “주[여호와, 신세]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고린도 후 3:17) 그러므로 자유를 원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에 속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기를 원하신다. 그분 자신이 자유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고린도 후 3:17.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자유 의지와 일치하게 작용하는 지각력, 이지력, 판단력과 같은 정신적인 능력도 베풀어 주셨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우리는 생각하고 문제를 신중히 고려하고 결정하며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 (히브리 5:14) 우리는 자체의 의지가 전혀 없는, 지성 없는 로봇처럼 창조되지 않았으며, 짐승처럼 주로 본능에 따라 행동하도록 창조되지도 않았다.

우리의 첫 부모는 자유 의지와 더불어 누구나 이치적으로 원할 만한 모든 것을 받았다. 즉 그들은 공원 같은 낙원에 거하였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였으며, 정신과 몸은 완전하여 늙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을 것이며, 역시 행복한 미래를 누릴 자녀를 가질 것이며, 늘어나는 후손들은 땅 전체를 낙원으로 바꾸는 만족을 주는 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창세 1:26-30; 2:15.

하나님께서 창시하신 것에 관하여 성서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한다. (창세 1:31; 사체로는 본지에서) 성서는 또한 창조주에 대해 “그 공덕[하시는 일, 공동번역]이 완전”하다고 말한다. (신명 32:4; 사체로는 본지에서) 그렇다. 그분은 인간 가족이 완전한 출발을 하게 하셨다. 그보다 더 나을 수 없었다.

한계가 있는 자유

하지만, 놀라운 선물인 자유 의지에는 한계가 없도록 되어 있었는가? 우선, 교통량은 격심한데 교통 법규가 전혀 없이 어느 차선이든, 어느 방향으로든, 어느 속도로든 임의로 달릴 수 있는 곳에서 운전하고 싶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처럼 교통상의 제한 없는 자유는 참사를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다. 일부 사람들의 제한 없는 자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게 될 수 있다. 무제한의 자유는 모두의 자유를 손상시키는 무정부를 초래할 수 있다. 한계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유를 선물로 주신 것은 인간들이 다른 사람의 복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임의로 처신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점에 관해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자유인답게 사십시오. 그러나 악을 행하는 구실로 자유를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I 베드로 2:16, 공동번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자유 의지가 공통 유익을 위해 규제되기를 원하신다. 인간이 절대적 자유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받는 상대적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누구의 법?

우리는 누구의 법에 순종하도록 설계되었는가? 누구의 법이 우리에게 최상의 유익을 주는가? 앞서 지적된 성구 베드로 전서 2:16(공동번역)의 다른 부분은 “여러분은 하느님을 섬기는 종”이라고 기술한다. 이 말은 압제받는 종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그러한 법에 복종할 때 더 행복한 사람이 된다.

인간이 고안할 수 있는 그 어느 법률보다 월등한 하나님의 법이야말로 누구에게나 최상의 지침이 된다. 이사야 48:17에서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언명한 바와 같다. 그렇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법은 그 경계 내에서 폭넓은 자유를 허용한다. 이로 인해 개인 선택권과 다양성이 풍부해지며, 인간 가족은 더 흥미있고 실로 매혹적인 상태가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물리 법칙에도 복종한다. 예로서 우리가 중력의 법칙을 무시하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면 다치거나 죽을 것이다. 특별한 호흡 기구 없이 잠수할 경우 몇 분 안 되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 체내 법칙을 무시하고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다면 역시 죽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첫 부모와 그 후손 모두는 하나님의 도덕적, 사회적 법을 비롯하여 물리 법칙에 순종할 필요가 있게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은 짐스러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그들의 복지에 그리고 후에 있을 인간 가족 전체의 복지에 기여하게 되어 있었다. 첫 부모가 하나님의 법의 한계 내에 머물렀더라면 모든 일이 잘되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 훌륭한 출발이 망쳐지게 되었는가? 그 시작과는 달리 왜 악과 고통이 만연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악과 고통을 그토록 오랫동안 허락해 오셨는가?

[7면 삽화]

놀라운 선물인 자유 의지로 인해 우리는 지성 없는 로봇 그리고 주로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과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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