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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84 11/15 20-24면
  • 효과적인 봉사로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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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과적인 봉사로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음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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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4
파84 11/15 20-24면

효과적인 봉사로 더 많은 제자들을 삼음

“그분이 ·⁠·⁠· 어떤 사람들은 전도자[복음 전도자, 신 영어 성서]로, 어떤 사람들은 목자와 교사로 삼으셨읍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 활동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에베소 4:11, 12, 공동번역.

1.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읍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은둔 생활을 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의 봉사는 전적으로 사람 지향적인 것이었읍니다. 사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는 거의 언제나 사람들과 관계하셨읍니다. 여행을 하시면서 그분은 사람들의 실정을 보시고 그들에 대해 깊은 연민을 느끼셨읍니다. 그리스도인 봉사자로서 우리는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느낍니까?—마태 9:35, 36.

2.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떻게 예수를 본받고 있읍니까?

2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 봉사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융통성 있는 접근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수행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계 어디에서나—가두에서나, 문전에서, 분주한 장터에서, 버스 정류소나 전철역 혹은 기차역에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사업 구역에서—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읍니다.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증인’들은 복음 전파자로 일하고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복음”(evangel)이라는 말은 “좋은 소식”이라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 ‘유앙겔리온’(euaggelion)에서 유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은 누구나 좋은 소식의 봉사자, 즉 복음 전파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증인은 누구나 사람들과 관계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5; 에베소 4:11, 12.

3.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무엇입니까?

3 복음을 전파하는 이 일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까? 많은 종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라디오’ 및 TV 접근 방식이 과연 참다운 대답입니까? 자문해 보십시오. ‘라디오’나 TV가 우리의 질문을 즉석에서 대답해 줄 수 있읍니까? 그럴 수 없읍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 것들은 비인격 보도 매체입니다.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이 행한 것, 즉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아직도 가장 효과적인 봉사 방식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데는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바울’이 그 점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비유로 알려 준 바와 같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린도 전 3:5-7.

4. 효과적인 봉사의 직무에는 어떤 세 가지 단계가 관련되어 있읍니까?

4 이 말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세 가지 단계—심는 일, 가꾸는 일 및 거두는 일—를 시사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제일 먼저 심는 일, 즉 왕국의 좋은 소식에 최초로 접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심은 것에 물을 주는 일을 포함한 가꾸는 일이 있게 됩니다. 그 일은 어떻게 행해집니까? 대화를 더 함으로써, 질문에 대답해 주고, 의문들을 풀어줌으로써입니다. 이것은 흔히 정기적인 성서 연구로 인도되어 성서 진리를 사람의 정신과 마음 속에 깊이 심어 주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최종 결과로서, 그리스도 예수의 또 다른 활동적인 제자, 즉 또 한명의 봉사자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어떻게 제자를 거두어 들이는 그 행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읍니까?

5. 무엇이 효과적인 봉사자가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까?

5 전 기사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자기 제자들에게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실용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나의 방식들’에 관하여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4:17, 신세 참조) 그의 도움으로 소‘아시아’와 희랍 여기저기에 회중들이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성공을 웅변적으로 증거해 줍니다. 우리는 이미 그의 (그리고 예수의) 방식들 몇 가지를 살펴보았지만, 오늘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더 있읍니까?

무엇이 그 근거이고, 그 소식인가?

6. 무엇이 우리의 봉사의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까?

6 그리스도인의 소식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인간의 지혜나 철학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는 명백한 대답을 알려 줍니다.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 ·⁠·⁠· 하기에 유익하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야말로 우리의 봉사의 주춧돌이 되어야 합니다.—디모데 후 3:14-17.

7, 8. 예수와 ‘바울’은 성경을 사용하는 면에 있어서 어떻게 본을 세워 놓았읍니까?

7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본이 되셨읍니다. 그분은 항상 성경을 인용하셨읍니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그가 ‘데살로니가’에서는 희랍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말았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기록은 다음과 같이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니라.]”—사도 17:1-3.

8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그 중 어떤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방식을 따라 오늘날 우리의 전파 활동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대화를 위한 성서 주제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에게서 호응의 감정을 자아낼 수 있읍니다.—사도 17:4.

9, 10. (ㄱ) 오늘날 우리의 전파 활동의 주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ㄴ) ‘바울’의 봉사에서 예를 들어 보십시오.

9 이제 그 다음 질문은 ‘우리는 무슨 소식을 전파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봉사의 주제는 무엇이었읍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셨읍니다.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 신세]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현 제도의 마지막 날에 관해 이야기하시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누가 4:43; 마태 24:14, 신세.

10 ‘바울’의 전파 활동에서도 그 동일한 것이 강조되었읍니다. 예를 들어, 회당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그는 “석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신세] 강론하며 권면”하였읍니다.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는 ‘강론하여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증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국”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의 추진력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9:8; 28:23, 31, 신세 참조.

호전적인가, 아니면 호감을 사는가?

11. 사람들은 ‘증인’을 대하게 되면 흔히 어떠한 반응을 보이며, 우리는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읍니까? (사도 17:17, 18)

11 제1세기에 사람들은 종교와 인종 및 국적에 따라 분열되어 있었읍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2:7-11)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 문제에 접하게 되면 자기 나름대로의 선입관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증인’을 만나면 흔히 위협을 느끼고 방어 태세를 취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자세를 바꾸어 놓을 수 있읍니까? 친절과 재치 및 융통성을 사용함으로써입니다.

12, 13. ‘바울’은 ‘아덴’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들의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12 ‘바울’이 우상 숭배지인 ‘아덴’에서 그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유의하십시오. 그가 그토록 많은 우상들을 보고 나타낸 최초의 반응은 분개심이었읍니다. 그가 ‘아레오바고’에 서서 연설하게 되었을 때, 그는 즉각 그들의 우상 숭배를 공격하였읍니까? 그의 서론은 다음과 같았읍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사도 17:16-23.

13 ‘바울’은 서두의 그러한 말로 청중이 떨어져 나가게 하였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의 접근 방법은 독선적인 것이 아니라 재치있는 것이었읍니다. 비록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숭배는 헛된 것이었지만, 그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았읍니다. 그가 그곳에 선 것은 왕국 소식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들의 강한 종교성을 인정하였으며, 그것을 토대로 사용하여, 참 하나님과 그분의 대표자이신 부활되신 예수에 관한 주제로 이끌어 갔읍니다. 이 재치 있는 접근 방법의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일부 사람들은 조롱하였지만,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고 말한 사람들도 있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재방문 초대를 받은 것입니다!—사도 17:22-32.

14. 우리는 우리의 봉사에서 어떻게 ‘바울’의 본을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14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봉사에 이 방식을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읍니까? 우선 우리는 집주인의 종교관을 알려 주는 표지들을 관찰하는 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마 그가 종교 장식을 걸치고 있거나 얼마의 종교 장식을 그 집 현관이나 응접실에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 ‘바울’처럼 상대방의 종교적 견해에 대해 잘 알게 될 수 있읍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정적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비논쟁적인 서론을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을 찾아간 첫째 목적은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지 즉각 교리 토론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얻는 것이지, 그저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비교 디모데 후 2:23-26.

15. 예수의 봉사에서 우리는 또 어떠한 훌륭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읍니까? (누가 10:38-42)

15 그 외에 우리는 또 그리스도의 본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그분의 봉사를 검토해 보면, 우리는 그분의 확신과 간결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분은 어떠한 상황으로도 당황하시지 않고 온갖 환경하에서 하나님의 왕국에 관하여 거리낌없이 이야기하셨읍니다. 그분은 가정과 같이 친근한 상황에서도 전파하실 수 있었고, 군중 앞에 서서 골자나 성서 혹은 확성 시설 없이도 교훈을 베푸실 수 있었읍니다! 그분은 또한 대중의 마음을 끄는 점도 가지고 계셨읍니다. 미천한 사람들도 그분께 접근할 수 있다고 느꼈읍니다. 그분은 밭과 농작물, 그물과 어업과 관련된 그들의 용어를 사용하셨읍니다. 그분의 비유들은 뜻이 깊은 것이기는 하였지만 매우 현실적인 것들이었읍니다. 우리도 봉사하면서 그와 같은 훌륭한 특성들을 나타냅니까?—마태 4:18-25; 13:1-33; 누가 5:1-3.

마음을 감동시키는 방법

16. 우리가 유능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정상적으로는,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성서의 소식을 확신하게 되는 데에는 시간과 주의 깊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들을 조사해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무런 보수나 의무감 없이, 정기적인 가정 성서 연구를 하는 마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연구들은 상당한 기간 지속되며 여러 가지 제목들 및 질문들을 망라합니다. 확실히 이것은 우리가 유능하게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과연 본질적으로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입니까?—디모데 전 4:16.

17. 예수께서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신 한 가지 방식은 무엇이었읍니까?

17 이번에도 역시 예수에게서 대답을 구하게 됩니다. 그분은 어떻게 가르치셨읍니까? 다음 귀절들을 검토해 보고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신 간단한 방식을 알아 맞추어 보십시오. 누가 복음 6:9, 32-34, 39-42.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은 분별력있는 질문들을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청중이 추리하고 자신의 가르침에 비추어 스스로를 검토해 보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질문을 사용하심으로 그분은 재치있게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읍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분의 추종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듣는 동기가 단순히 피상적인 것이었는지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마태 13:10-17; 마가 8:34-38.

18. (ㄱ) ‘여호와의 증인’들이 출판물에서 질문을 그토록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어떤 방식을 지나치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까?

18 ‘여호와의 증인’들이 봉사에 사용하는 거의 모든 성서 연구 보조 서적에는 각 항목 본문 설명을 위한 질문들이 나와 있읍니다. 이 연구 보조 질문은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로 설명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면 그가 내용을 이해했는지 못했는지가 밝혀지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예수께서 질문들을 사용하기는 하셨지만, 대답의 첫 마디나 첫 음절을 알려 줌으로 그것이 단순한 추측 놀이가 되게 하신 일이 없었읍니다. 때때로 우리는 일부 성서 연구생들과 그런 식의 연구 방식에 빠진 일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상습적으로 사용할 만한 좋은 방식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은 사소한 추측 놀이가 아니라, 추리와 논리에 근거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요한 17:3; 요한 1서 5:20.

누구의 제자들인가?

19, 20. 이제 조심해야 할 어떠한 점이 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이제, 조심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읍니다. 생산적인 구역에서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면 우리는 마침내 제자들을 산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의 제자들입니까? 우리는 그들을 “나의 양들”로 생각해야 합니까? 그리고 떠받드는 위치에 있게 할 것입니까?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게 신과 같은 대우를 하려고 하였을 때, 그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냈는지 유의하십시오. 그들은 군중에게 이렇게 외쳤읍니다. “여러분,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합니까?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가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는 것입니다.”—사도 14:14, 15, 새번역.

20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에게 주의를 이끌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같이 자기를 본받으라고 교훈하기는 하였지만, 그들이 자신의 추종자들이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봉사는 언제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고린도 전 3:6, 7; 11:1.

21. 제자들이 봉사자들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때가 되면, 제자들은 봉사자들이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정말 이야기할 만한 좋은 소식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게 됩니까? 우리만 알고 있을 수 있읍니까? 그와는 반대로, 우리는 참지 못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왕국의 좋은 소식의 경우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정기적으로 그리고 자진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이어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가 반복하는 봉사자들의 연쇄 과정은 계속됩니다. 이것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다음과 같은 교훈에 들어 있는 원칙과 일치합니다.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누가 6:45; 디모데 후 2:2.

22. (ㄱ) 여호와께서 가르치는 자들 및 복음 전파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을 만들어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아직도 장차 수행해야 할 어떠한 일이 있읍니까?

22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전세계에 20세기의 교육자들, 복음 전파자들, 봉사자들로 이루어진, 최상의 훈련을 받은 조직을 두고 계십니다. 2,600,000명이 넘는 그들은 현 악한 제도에 끝이 임하기 전에 행해지고 있는 최종 증거 활동에 참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 점증하는 무리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대비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부활로써 돌아올 수십억을 교육시키는 일입니다. 당신도 그처럼 놀라운 특권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읍니까? 당신의 봉사는 현재 생산적입니까? 우리가 효과적인 봉사자로 일함에 따라, 우리의 빛을 비추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기도하는 바입니다.—마태 5:16; 요한 5:28, 29.

우리가 공부한 요점들

◻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 우리가 가르치는 일은 무엇에 근거한 것이어야 합니까? 그 소식은 무엇입니까?

◻ 사람들이 우리 말을 듣도록 하는 데는 무슨 특성들이 필요합니까?

◻ 예수께서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감동시키셨읍니까?

◻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서 조심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21면 삽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파하고 있다

[22면 삽화]

증거 활동을 할 때 우리는 집주인의 종교를 알려 주는 것들을 관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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