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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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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94
파94 5/15 8-9면

고트어 성서—주목할 만한 업적

고트족은 게르만족의 일파로서, 필시 스칸디나비아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기원 후 초기 몇 세기 동안, 그들은 남쪽으로 흑해와 다뉴브 강까지 내려와 로마 제국의 변방 식민지로 이주하였다.

게르만어로 쓰인 최초의 문헌은 고트어 성서였다. 오늘날 이 역본은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독특하고 귀중한 성경 역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울필라스—선교인이자 성서 번역자

이 성서의 번역자는 울필라스인데, 고트식 이름인 울필라로도 알려져 있다. 역사가 필로스토르기우스에 따르면, 울필라스는 고트인이 지금의 터키 동부 지방에 위치한 카파도키아(가바도기아)를 습격해서 끌고 간 포로의 자손이었다. 기원 311년경에 태어난 그는 약 30년 후에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에게서 성직 임명을 받고 고트인 가운데서 선교인으로 일하도록 훈련을 받았다.

“개종자를 가르치고 그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서, 그는 끈기 있게 열왕기서를 제외한 모든 성서를 그리스어에서 고트어로 번역하였다”고 역사가 윌 듀랜트는 말한다. (「믿음의 시대」[The Age of Faith]) 느헤미야서의 단편을 제외하고는, 오늘날 현존하는 다른 고트어 성서 사본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일부분뿐이다.

고트어는 문자 언어가 아니었다. 따라서 울필라스는 비범한 창의성을 요하는 어려운 번역 작업을 해야 하였다. 고대 교회 역사가들은 그가 주로 그리스어와 라틴어 문자에 기초하여 고트어 문자 27개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신 브리태니카 백과 사전」은 “그가 게르만어로 그리스도교 용어를 만들었으며, 그 가운데 얼마는 지금도 사용된다”고 말한다.

고트어 성서의 초기 역사

울필라스는 기원 381년이 되기 전에 번역을 마쳤고, 그로부터 이삼 년 후에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이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이 “그 번역판은 스페인과 이탈리아로 이주한 고트인이 널리 사용하였다”고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실제로, 현존하는 단편의 수로 볼 때, 이 고트어 성서는 사본이 많이 만들어진 것 같다. 십중팔구 몇몇 사본은 고트인이 왕국을 세운 지역에 있던 라벤나와 베로나의 필사실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필사실이란 사본을 작성하고 필사하는 수도원의 방을 말한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를 재정복한 후, 고트인의 나라는 기원 555년경에 종말을 고하였다. 고트인의 나라가 없어진 후로, 퇴네스 클레베리에 따르면, “이탈리아에 있던 고트어와 고트 전통은 사라졌으며,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 고트어로 된 사본은 더는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 그것들은 대부분 분해되었고 문질려 글자들이 지워졌다. 그리고 나서 값비싼 양피지는 새로운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다시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사본

이런 사본 가운데 일부는 완전히 지워지지 않아서, 희미하게 보이는 원래 글자가 여전히 남아 있다. 팔림프세스트라고 하는 이런 양피지 여러 개가 발견되어 해독되었다. 주목할 만하게도, 마태, 요한, 누가, 마가 복음의 순으로 사복음서가 들어 있는 유명한 아르겐테우스 책자본은 손상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이 호화로운 책자본은 기원 6세기 초에 라벤나의 필사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겐테우스 책자본—“은서(銀書)”라는 의미—으로 불리는 것은 이것이 은 잉크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양피지 책장이 자주색으로 염색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필시 왕족이 사용하기 위해 주문하였던 것 같다. 각 복음서의 처음 3행과 각 부분의 시작은 금 글자 장식을 하였다. 사본 각 난의 아래 부분에는 네 개의 “아치”가 나란히 있는데, 아치의 위 부분에는 복음서 필자의 이름이 또한 금 글자로 쓰여 있다. 그 아래 부분의 내용은 복음서의 평행을 이루는 구절을 참조할 수 있게 한다.

고트어 성서 본문의 복원

고트인의 나라가 멸망되고 나서, 귀중한 아르겐테우스 책자본도 사라졌다. 이 책자본은 16세기 중엽에 독일 쾰른 근교에 있는 베르덴의 수도원에서 공개됨으로 비로소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었다.

1569년에, 고트어역 주기도문이 출판되었으며, 그 부분이 발췌된 성서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아르겐테우스 책자본이라는 이름은 1597년에 최초로 인쇄되어 나타났다. 이 사본은 베르덴을 떠나서, 프라하에 있는 황제의 예술 소장품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에, 전쟁에서 이긴 스웨덴인들은 다른 보물들과 함께 이 사본을 가져갔다. 1669년 이후로 이 책자본은 스웨덴의 웁살라 대학교 도서관에 영구 보관되었다.

아르겐테우스 책자본은 원래 336개의 책장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187장이 웁살라에 있다. 그 외에 한 장—마가 복음의 마지막 장—이 1970년에 독일의 슈파이어에서 발견되었다.

이 책자본이 다시 나타난 이후로, 학자들은 사어가 된 고트어의 의미를 풀기 위해 사본에 대한 연구에 착수하였다.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사본에 더해 이전에 본문을 복원하려고 시도했던 것들을 이용하여, 독일 학자 빌헬름 슈트라이트베르크는 1908년에, 서로 마주보는 양면에 그리스어와 고트어 본문이 각각 실린 “디 고티셰 비벨”(고트어 성서)을 엮어 출판하였다.

오늘날 이 고트어 성서는 주로 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성서가 번역되던 초기에 만들어져서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은, 울필라스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의 현대어로 번역하려는 간절한 욕망과 결의를 가지고 있었음을 증명해 준다. 그는 그렇게 해야만 고트인들이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이해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9면 사진 자료 제공]

Courtesy of the Uppsala University Library, Sw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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