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으라’
1. (ㄱ) 이 폭력의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을 수 있읍니까? (ㄴ) 곤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여호와께 열렬히 간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폭력의 세상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어떻게 위에 인용된 사도 ‘베드로’의 충고를 온전히 따를 수 있읍니까? ‘베드로’는 그 대답으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여호와 하나님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갖고자 진실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말씀 가운데 세워놓으신 표준들을 밀접히 따름으로써 평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베드로 전 3:11, 12) 악인들이 우리에게 악한 일을 자행하려 할 때 우리는 여호와께 열렬히 간구할 수 있읍니다. 강간범이나 그 외의 악한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는 큰 소리로 그분의 이름을 불러 도움을 간청할 수 있읍니다.—비교 신명 22:25-27.
2. 폭력적인 상황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다윗’이 표현한 어떠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읍니까?
2 폭력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는 흔히 여호와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그 상황을 모면하는 비결이 되어 왔읍니다. 재삼 재사, 여호와의 증인들은 ‘다윗’이 시편 18:46, 48에서 기도로 표현했던 다음과 같은 확신을 가짐으로써 축복을 받아왔읍니다. “여호와는 생존하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찌로다. 주께서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구조하시니 주께서 실로 나를 대적하는 자의 위에 나를 드시고 나를 강포한 자에게서 건지시나이다.” ‘의인은 땅을 차지할 것이며 거기서 영원히 거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굳건한 믿음으로 기대하는, 오늘날 이들 수백만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또한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라는 보증도 받고 있읍니다.—시 37:29, 39.
3. (ㄱ) 신명기 32:10과 다니엘 3:19-27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줍니까? (ㄴ) ‘라합’과 현대의 한 ‘파이오니아’가 구출받은 방식은 무엇을 지적해 줍니까?
3 현 폭력의 세상에서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실’ 수 있읍니다. (신명 32:10; 다니엘 3:19-27) 심지어, 하고자 하신다면, 그분은 핵 무기로 인한 끔찍한 대 참사 같은 것에서도 자기의 백성을 보호하실 수 있읍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이 1945년 8월 6일에 일본 ‘히로시마’ 형무소에 수감되어 박해를 받고 있던 여호와의 한 충실한 종의 경험으로 실증되었읍니다. 그 날 아침에 그는 평상시의 일정을 좀 변경시킨 것으로 인해 원자탄의 폭발로부터 해를 입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a 대부분의 형무소가 파괴되었으나, ‘라합’이 ‘여리고’의 참혹한 멸망을 생존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게 ‘미우라 가쯔오’는 ‘히로시마’의 황폐를 살아남았읍니다. (여호수아 6:23, 24) 그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그는 ‘원자탄 투하로 형무소에서 풀려’ 나와 ‘파이오니아’ 봉사에 자기의 여생을 바치게 된 것에 대해 여호와께 감사하고 있읍니다. (비교 시 116:15) 그 어느 것도 “크고 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신, 우리의 주권자이신 주께는 너무 놀라운 일이 될 수 없읍니다.—예레미야 32:17-19.
여호와의 조직에 밀접히 고착하라
4. 이사야 60장에서는 현 시대의 하나님의 조직의 상태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읍니까?
4 현 폭력의 시대에 맞서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어머니 같은 조직의 부드러운 인도가 필요합니다. 1938년 이래,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는 신권적으로 개선된 상태가 존재하게 되었읍니다. 그 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예언하신 일이 있었읍니다. “내가 ··· 화평을 세워 관원을 삼으며 의를 세워 감독을 삼으리니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지금 여호와의 세계적인 조직의 특징을 이루는 평화와 의에 대한 사랑은 64년 전에 “작은 자”에 불과했던 수천명의 왕국 선포자들이 지구상의 205개 나라들로 전진하여 확장해 가면서 2,477,000명의 “강국”을 이루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해 왔읍니다. 야외로부터의 보고에 의하면, “끝”이 가까와 옴에 따라, 여호와께서는 ‘때가 되어 속히 이루고’ 계심을 알려 줍니다.—이사야 60:17, 18, 22; 마태 24:14.
5. 「시편」에 기술된 것처럼, 무엇이 폭력에 직면해서도 여호와의 백성이 강건하도록 유지시켜 주었읍니까?
5 이러한 확장 가운데 상당 부분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히틀러’ 수용소에서 그리고 전시에 미국에서 자행되었던 폭도들의 공격으로 겪어야 했던 폭력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것이었읍니다. 폭력은 지구상의 여러 지역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읍니다. 그 중에서도, 근년에 ‘레바논’에서 자행되었던 것보다 더 심한 폭력을 경험한 나라는 극히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우리의 형제들은 강건하였읍니다. 그들을 그토록 강건하게 유지시켜 준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여호와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그들의 집회 및 기타 그리스도인 활동에서 계속 연합하고자 하는 결의였읍니다.—시 73:28; 149:1.
6. 우리는 정기적인 집회 참석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이러한 사실은 폭력 시대에도 우리가 함께 모이는 일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히브리 10:24, 25) ‘사단’의 세상의 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을 지탱하는 데 그 일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라면, 보다 교활한 마귀의 책략을 이겨내기 위한 힘을 얻는 데에도 그 일이 필요합니다. 정기적인 집회 참석은 우리에게 생명을 뜻합니다!
7. (ㄱ)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을 넘어뜨리기 위해 어떻게 애쓰고 있읍니까? (ㄴ) ‘사단’은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폭력과 부도덕의 영을 고취시킵니까? (ㄷ) 우리는 어떻게 평화를 추구할 수 있으며, 무슨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7 이 무서운 시대에, ‘사단’은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과 그것으로 살 수 있는 호화로운 물건들]을 사랑하고 ···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함으로써 그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애씁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로 하나님의 백성과의 정기적인 연합을 못하게 만들 수 있읍니다. (디모데 후 3:1, 2, 4, 새번역) 어떤 TV ‘프로그램’이나 얼마의 ‘비디오 게임’ 등으로 미화되고 있는, ‘사단’이 조장하는 폭력 및 부도덕의 영에 휩쓸리지 않고 개인 연구, 묵상 및 집회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정확한 지식을 섭취하고 그것을 계속 적용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요한 17:3, 신세; 빌립보 1:9-11; 골로새 1:9-11.
우리의 보호처는 어디에 있는가?
8. (ㄱ)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현 폭력 시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읍니까? (ㄴ) 그들의 행로가 현명하지 못한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8 폭력에 대한 두려움은 지상의 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 가운데 두드러진 것입니다. 최근의 한 ‘갤럽’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45‘퍼센트’는 밤에 집으로부터 1.6‘킬로미터’ 이내의 지역에 혼자 외출하기를 무서워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총을 휴대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 곧 있을지 모를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폭력 장비를 준비하는 것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취해야 할 행로입니까? “자기 방어용 무기”와 관련된 많은 사고들—심지어 어린 자녀들이 다른 청소년들을 살해한 일도 있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잠시 멈추어 그 점에 관해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전문적인 총잡이들은 다른 총이 보이기만 하면 흔히 총을 발사하며, 그것도 살해하기 위해 발사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니 총 솜씨가 서투른 사람이 이길 가능성이 있겠읍니까?
9. 그리스도인은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보호처를 발견하게 됩니까?
9 그리스도인은 무기를 휴대함으로써가 아니라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좇음으로써’ 보호책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전 3:11) 여호와를 신뢰하십시오. 만일 당신이 악한을 만나게 된다면, 당신이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임을 알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폭력으로 위협하는 자에게 대항할 것이 아니라 그가 요구하는 물질을 내어주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당신의 생명이 이것들보다 훨씬 더 귀중합니다. 막다른 상황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는 여호와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언 18:10.
10. (ㄱ) 자기 방어와 관련하여, 에스라 8장과 고린도 후서 11장의 내용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줍니까? (ㄴ) ‘아프리카’와 ‘아일랜드’로부터 온 보고들은 무기를 휴대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0 그러나 살벌한 위험 지구를 지나야 할 경우,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기 방어를 위해 무기를 휴대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그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교 에스라 8:21-23, 31; 고린도 후 11:23-27) 어느 ‘아프리카’ 나라에서 봉사하는 여행하는 감독자들의 본을 고려해 보도록 하십시다. 근년에 이들 형제들은 흔히 회중들을 섬기기 위해 교전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읍니다. 종종 그들은 ‘게릴라’ 또는 경비병들에게 검색을 당하게 됩니다. 만일 그들에게서 무기가 발견되었다면 그들은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그들의 신분과 여하한 폭력 무기도 소지하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은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가 있었읍니다. 그것은 분쟁으로 찢긴 북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는 “어디를 보나 죽음이 보인다”는 말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중립적 입장은 잘 알려져 있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자들로서 그들은 ‘가톨릭’ 지역과 ‘프로테스탄트’ 지역 모두에서 보호를 받고 있읍니다.
11. (ㄱ) 그리스도인들은 흉기로 무장해서는 안 됨을 무엇이 명백히 해줍니까? (ㄴ) 성서에 따르면, 우리는 어디에 우리의 신뢰를 두어야 합니까?
11 성서는 그리스도인 개인이 인간 습격자들이나 침입자들을 대항할 목적으로 집이나 기타 장소에 총기 또는 그 외의 흉기를 휴대 혹은 소지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명백히 밝혀 줍니다. 그 점은 현대에 ‘여호와의 증인’들의 체험으로 뒷받침되고 있읍니다. (이사야 2:4; 베드로 전 3:11) 폭력에 대비하는 사람은 폭력을 부르는 것입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은 주로 여호와, 자기의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시 18:48; 140:1, 4; 잠언 3:5-7.
12. (ㄱ) 성서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경찰의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떤 그리스도인이 위급한 상황에서 화기를 사용하거나 임의로 법을 집행할 수 있읍니까?
12 로마서 13:1, 4과 일치하게, 세상의 “위에 있는 권세들”은 경찰 같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특정한 기관들을 설치하여 무장시킴으로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게 합니다. 하나님에 의해 허락된 그러한 마련들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기관에 요청하여 보호를 받는 것은 타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이 자기 자신이나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지 손 가까이 있는 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라도, 그는 화기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는 자기 임의로 법을 집행해서도 안 됩니다. 많은 나라에서는 자기 방어를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일조차도 불법입니다.—마태 22:21; 비교 출애굽 22:2.
13. 그리스도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무술을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개인적으로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중국의 ‘쿵후’와 같은 무술을 익힐 수는 있지 않는가? 극히 치명적인 동양의 이 무술은 중국의 신성시되는 산들 가운데 하나인 ‘송샨’ 비탈에 위치한 ‘샤올린’ 수도원의 ‘젠’ 불도승들이 1,400여년 전에 개발한 것임에 유의하십시오. 일본의 무술 ‘부시도’도 종교적 근원을 가진 것인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무사의 길”을 뜻합니다. 유도, 검도 및 당수 등의 무술을 행하는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종교적 명상을 통하여 기(氣)를 모으고 있읍니다. 당수의 목적은 상대방을 무기력하게 하는 데 있으며, 그 결과로 피해자는 중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게 될 수 있읍니다. 확실히,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방어를 위해 무술에 의존하지 않을 것입니다!—잠언 3:31.
14, 15. (ㄱ) 어떤 그리스도인이 식용으로 동물을 사냥하거나 죽이는 것이 합당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떤 그리스도인이 특권을 받아들이는 데 부적격자가 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그리스도인이 식용을 위해 동물을 사냥할 목적으로 총기를 소지하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대홍수 이래, 하나님께서 식용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을 허락해 오셨으나 피는 먹지 말고 땅에 쏟아야 합니다. (창세 9:3, 4; 신명 12:23-25) 지방 법이 허락할 경우에, 야수에게서 보호받기 위해 혹은 사냥용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 ‘증인’이 더러 있읍니다. (마태 22:21) 그들에게는 이것이 식품을 얻기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거나 실질적인 수단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도 고대와 현대의 “니므롯들”이 행하여 온 바와 같은, ‘스포오츠’ 목적 즉 죽이는 ‘드릴’을 맛보기 위해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여호와께서 승인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동물의 피는 여호와 보시기에 귀중한 것입니다.b—레위 17:11, 14.
15 어떤 사람이 식품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재미로 동물을 사냥함으로 회중 안의 상당수의 ‘증인’들이 교란되고 있다면, 그는 그의 좋지 않은 평판 때문에 특별한 봉사의 특권을 받을 입장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전 3:2.
16. 장로들은 어떻게 도울 수 있으며, 그러나 상기 9항부터 15항까지에 나오는 성경적 충고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무슨 결과를 당할 수 있읍니까?
16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이 사람들에 대한 호신책으로 무기를 휴대 또는 소지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것을 고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장로들은 그런 사람이 그 상황을 시정하도록 충고하고 도움을 베풀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미가 4:3) 그처럼 개인 무기를 휴대하거나 ‘구타하는 자’가 되기 위해 계속 대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회중에서 특권을 누릴 자격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전 3:2, 3.
일반 직업과 관련된 무기 사용
17. 대다수의 ‘증인’들이 무술 또는 무기를 휴대하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항하여 사용할 목적으로 무기를 휴대하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유도나 당수와 같은 무술을 연마해야 할 경우에는 어떠합니까? 개인적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러한 사람은 예수의 추종자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로마 12:17, 18) 이사야 2:4의 말씀을 고려해 본 후, 대다수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러한 직업을 피합니다. 설혹 그 직업이 로마서 13:4과 일치하게 공중[또는 재산]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일지라도, 경험이 알려 주듯이, 개인의 양심의 손상과 더불어 무기로 인명을 희생시켜 피흘린 죄를 초래할 위험성과 보복을 당해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상실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합니다. (시 51:14; 비교 민수 35:11, 12, 22-25) 분명히 그와 같은 일들이 발생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그러한 위험성을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18. (ㄱ) 장성한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세상 사람들의 견해와 어떻게 다릅니까? (ㄴ)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기 위해 일을 조정하고자 어떻게 노력할 수 있읍니까?
18 이 “마지막 날” 기간에, 고용인이 무기를 휴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읍니다. 은행이나 안전원, 경비원 및 경찰은 그렇게 해야만 직업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경우가 있읍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돌아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그리스도인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디모데 전 5:8) 그의 성서로 훈련받은 견해는 세상 사람들의 견해와는 다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리낌없이 그러한 무기들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있을 수 있는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무기를 사용합니다. (에베소 5:15-17)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피의 신성함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 피흘리는 죄를 피하기 원할 것입니다. (창세 9:6; 시 55:23) 장성한 그리스도인은 무장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을 구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c ‘증인’들 가운데는 자기들의 고용주와 상의함으로써 무기를 휴대할 필요가 없는 부서로 옮기는 데 성공한 사람들도 있읍니다.
19. 그러한 형제는 필요한 조정을 하기 전에는 무슨 특권들을 받기에 적합치 않을 것입니까?
19 세상이 점점 더 난폭해져 감에 따라, 우리는 어떤 형제가 무장을 하는 직업에 계속 종사한다면, 그를 더는 본이 되는 형제로 간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시정을 하도록 6개월의 기간이 주어질 수 있읍니다. 그래도 그가 시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회중 안에서 특별한 봉사의 특권이나 책임을 맡을 입장에 있지 않게 될 것입니다.—디모데 전 3:2; 디도 1:5, 6.
모두가 평화를 추구하라
20. (ㄱ) 평화의 행로를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혹독한 시련과 심지어 죽음에도 불구하고, 성실을 유지하는 자들은 무슨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까? (ㄷ) 당신은 누구를 신뢰합니까?
20 많은 경우 ‘여호와의 증인’들은 평화를 추구하는 가운데 신체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보호를 받아왔읍니다! 확실히 이 성경적 행로는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간혹 사상자가 생기는 일이 있기는 하지만, 죽음에 직면해서도 두려움이 없는 그들의 태도는 그들로 더 빠른 부활을 받을 대열에 서게 했읍니다. (히브리 11:36-40; 계시 2:10) 종종 여호와께서는 ‘욥’의 경우와 같이 ‘사단’이 자기 백성을 혹독하게 시험하도록 허락하시는 일이 있읍니다. 그러나 성실을 유지하는 사람의 최종 결과는 행복한 것입니다. (욥 1:18, 19; 42:12-15) 이 폭력의 시대에 어떠한 일이 발생하든지, 그로 인해 우리의 성실성이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합시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라.]”—역대 하 16:9.
[각주]
a 온전한 내용을 알려면, 「깨어라!」 1954년 9월 8일호(영문), 17-19면 “버섯 구름 속에서” 기사 참조.
c 「파수대」 1973년 2월 15일호(영문) 127, 128면을 참조하라.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읍니까?
◻ 폭력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어디에 신뢰를 두어야 합니까?
◻ 여호와의 조직과 그 조직의 충고에 밀접히 고착하는 것에는 무슨 유익이 있읍니까?
◻ 자기 방어를 위해 무기를 휴대하거나 무술을 익히는 것은 왜 어리석은 일입니까?
◻ 무장을 해야 하는 직업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충고를 받고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0면 네모]
폭력의 증가—어디에서 그칠 것인가?
“미국과 소련 간의 전면 핵 전쟁은 ··· 세계 인구의 약 80‘퍼센트’가 목숨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캘리포오니아’의 한 상원 의원과의 회견을 기초로 한 「익스프레스」지, 1982년 3월 29일자.
“폭탄에 정신이 나간 소련과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핵 전쟁이 고려해봄직하다는 권유를 받게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 물론, 소련과 미국의 핵 무기고에서 전부 혹은 주요한 일부만이라도 사용되는 핵 전쟁은 북반구를 완전히 황폐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1982년 12월 26일, 평화 연구가 ‘프랭크 바나비’.
“전쟁 준비가 평화의 전제 조건이라면 분명히 평화가 지금보다 더 보장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지구상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폭탄 100만개 분이 비축되어 있는데도, 이러한 사실이 4,200,000,000에 달하는 세계 인구 한 사람당 연간 무기를 위해 115‘파운드’를 지출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앙드레 퐁테인’이 「르몽드」지에 기고, 1983년 1월 9일자 「더 가아디안」지에 재차 게재됨.
“UN 사무총장이 핵 전쟁의 위협이 증대되고 있다고 말하다—‘새로운 무기 세대와 새로운 인간 세대 사이에 양자 택일을 해야 한다’고 그는 말하였다.”—‘재비에르 페레즈 데 쿠엘라’ 사무총장의 말을 인용한 「뉴우요오크 타임즈」 1983년 2월 16일자.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찌라도 없으리로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전도 1:4; 시 37:10, 11.
[21면 네모]
‘여호와의 증인’들이 ‘레바논’, ‘트리폴리’에서 폭력의 시기를 견뎌내다
“그들은 실로 격렬한 시기를 겪으면서도 집회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들의 지역 대회가 열리는 동안 한 집단의 117명이 어느 형제 집에 모였으며, 마지막 자매가 들어오자 ‘로킷’탄이 바로 문 밖에서 폭발했다고 하였읍니다. 집회 중 내내 ‘로킷’탄과 박격포탄이 그들 주변 도처에서 빗발치듯 떨어졌읍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반이 잘려나간 전봇대와 유산탄으로 곰보가 된 주변 건물들을 보여주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여 있던 ‘어파아트’는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읍니다!
“한번은 두 가족이 포격 때문에 집회에 가야 할 것인지를 망설이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가기로 결정했으며 생명을 구했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집회 장소에 있는 동안 한 가족의 집은 폭격을 받아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다른 한 집은 유산탄을 맞아 벌집처럼 되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좌익계 지역에 살고 있던 한 ‘증인’ 가족은 우익계의 침입을 받아, 끌려나와 처형될 판국이었읍니다. 그런데 진리 안에 있지 않으나 우익계에 속해 있던 한 친척이 이 소식을 듣고 처형대가 당도하기 전에 그들을 찾아갔읍니다. 그는 그들을 우익계 본부에 데려다 주었으며, 거기서 그들은 ‘증인’들의 중립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좋은 증거를 하였으며 그 결과 풀려나게 되었읍니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많이 있읍니다.”—한 방문객의 보고에서.
[23면 삽화]
폭력을 폭력으로 대응할 것인가 아니면 여호와를 신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