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세계적인 문제
    깨어라!—2001 | 10월 22일
    • 세계적인 문제

      “자살은 공중 보건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데이비드 새처 미국 공중 위생국장, 1999년.

      미국 공중 위생국장은 위와 같이 말함으로 사상 최초로 자살을 사회적인 쟁점으로 부각시켰습니다. 요즘 미국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미국의 상원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자살 방지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1997년 당시 10만 명당 11.4명인 미국의 자살률은, 2000년에 세계 보건 기구가 발표한 전 세계 자살률인 10만 명당 16명보다 낮은 것입니다. 전 세계 자살률은 지난 45년 동안 60퍼센트나 증가하였습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는 한 해에 약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것은 40초마다 한 사람 정도가 목숨을 끊는 격입니다!

      하지만 통계만 봐 가지고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가족 성원들은 사망한 사람이 자살한 것임을 부인합니다. 더욱이, 성공한 자살 한 건당 미수에 그치는 자살 기도가 10건에서 25건이나 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 조사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미국 고등 학생의 27퍼센트는 지난해에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해 본 적이 있으며, 조사 대상이 된 미국 고등 학생의 8퍼센트는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다른 연구들을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성인 인구의 5퍼센트에서 15퍼센트는 때때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화적 차이

      사람들이 자살을 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합니다. 자살을 범죄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겁이 많은 사람들의 현실 도피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심각한 잘못에 대해 사죄하는 명예로운 방법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자살을 대의를 고취시키는 숭고한 방법으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처럼 견해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화가 중대한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사실, 「하버드 정신 건강 회보」(The Harvard Mental Health Letter)에서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문화는 심지어 “자살할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중부 유럽에 있는 나라인 헝가리를 고려해 봅시다. 졸탄 리흐메르 박사는 그곳의 높은 자살률을 가리켜 헝가리의 “서글픈 ‘전통’”이라고 말합니다. 헝가리 국립 보건 연구소의 소장인 벨라 부다는, 헝가리 사람들은 거의 무슨 이유로든 너무나도 쉽게 자살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부다의 말에 의하면, “암에 걸렸다면, 그 상태를 끝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인도에는 한때 수티라고 알려진 종교 관습이 있었습니다. 과부가 된 아내가 남편의 시체가 놓여 있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 더미 위로 몸을 던지는 이 관습은 오랫동안 금지되어 왔지만, 아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 여자가 그러한 방법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비극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인디아 투데이」지에 의하면, 인도의 그 지역에서는 “25년 동안 거의 25명의 여성이 남편의 시체가 놓여 있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 더미 위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습니다.

      놀랍게도, 일본에서는 자살로 죽는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의 3배나 됩니다! “자살을 정죄한 적이 결코 없는 일본의 전통 문화에서는 의식적이고 제도적인 성격이 강한 할복자살(세푸쿠 또는 하라키리)이 용인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일본—도해 백과사전」(Japan—An Illustrated Encyclopedia)에서는 알려 줍니다.

      나중에 국제 연맹의 부 사무 총장이 된 니토베 이나조는 자신의 저서 「부시도—일본의 영혼」(Bushido—The Soul of Japan)에서 죽음에 매료되어 있는 그러한 문화적 현상에 대해 설명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중세 시대에 생겨난 [세푸쿠]는 전사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속죄하고 실수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불명예를 씻고 친구에게 사죄하고 자신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의식적인 형태의 자살은 이제 거의 역사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다시피 했지만,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러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소수이긴 하지만 여전히 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국에서는 오랫동안 자살을 범죄로 여겼습니다. 6세기와 7세기까지,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살한 사람들을 파문하고 그들에게는 장례도 치러 주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종교적 열정으로 인해 자살과 관련된 이상한 관습이 생겨났는데, 자살한 사람을 목매다는 일이나 심지어 자살한 사람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일과 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자살을 기도한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19세기에 한 영국인은 목을 베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가 교수형을 당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국은 그 남자가 실패한 일을 대신 해 주었습니다. 자살 기도에 대한 형벌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했지만, 196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영국 의회가 자살과 자살 기도가 더는 범죄가 아니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일랜드에서는 1993년까지도 자살이 여전히 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오늘날, 일부 저술가들은 자살을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행위로 보도록 권합니다. 1991년에 발행된, 말기 환자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법에 관한 책에서는 목숨을 끊는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말기 환자가 아닌 사람들 중에서도 그 책에서 추천한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증가하였습니다.

      자살이 정말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입니까? 아니면 계속 살아야 할 좋은 이유가 있습니까? 이러한 문제를 고려하기에 앞서, 먼저 자살을 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지 검토해 봅시다.

      [4면 삽입]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약 100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것은 거의 40초마다 한 사람이 목숨을 끊는 격이다!

  •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
    깨어라!—2001 | 10월 22일
    •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는 이유

      “사람마다 자살하게 된 경위가 다 다르다. 극히 사적이고 알기 어려우며 끔찍하다.”—케이 레드필드 재미슨, 정신과 의사.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 20세기 초에 일본의 유명한 작가였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자살하기 얼마 전에 그렇게 썼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 앞에 이러한 말을 썼습니다. “물론, 나는 죽고 싶지는 않지만 ·⁠·⁠·”

      아쿠타가와와 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사실은 죽고 싶지는 않지만 “자신이 겪고 있는 바로 그 일을 끝내고” 싶어한다고, 한 심리학 교수는 말하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남기는 유서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표현에도 그러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혹은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와 같은 문구들은 삶의 냉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전문가가 설명했듯이, 자살을 하는 것은 “감기를 핵폭탄으로 치료하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이유는 가지각색이지만, 살면서 겪는 특정한 일이 흔히 자살하도록 부추기는 방아쇠 역할을 합니다.

      방아쇠 역할을 하는 일들

      절망감에 굴복하여 자살하는 청소년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사소해 보이는 문제들 때문에 자살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았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을 때, 청소년들은 자신이 죽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보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을 다루는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나무라 히로시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내적 욕구를,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의미 있게 표현하려고 한다.”

      최근에 영국에서 실시된 한 조사에서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심한 괴롭힘을 당하면 자살을 기도할 가능성이 거의 일곱 배나 높아집니다. 그러한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이는 참으로 심한 감정적 고통을 겪습니다. 목을 매어 자살한 13세 된 한 남자 아이는 자신을 괴롭히고 심지어 돈을 빼앗기까지 한 다섯 사람의 이름을 밝히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 아이는 유서에 “제발 다른 아이들을 구해 주세요”라고 썼습니다.

      그런가 하면 학교 생활에서나 법규를 지키는 것과 관련해서 문제를 겪고 있거나, 실연을 당했거나, 성적이 좋지 않거나,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휩싸일 때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 청소년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부를 잘하긴 하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청소년들은 퇴보하거나 실패한 일이 벌어질 경우—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경우이든 자신의 상상에 불과한 경우이든—자살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성인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재정 문제나 직장과 관련된 문제가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일본에서는 경제 불황이 여러 해 계속되자 최근에 자살 건수가 한 해에 3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마이니치 데일리 뉴스」지에 의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중년 남성의 거의 4분의 3은 “빚, 사업 실패, 가난과 실직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 때문”에 목숨을 끊었습니다. 가정 문제 역시 자살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의 한 신문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자살할 위험성이 높은 그룹 중 하나로 “최근에 이혼한 중년 남성들”이 꼽혔습니다. 그리고 헝가리에서 행해진 한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자살할 생각을 한 소녀들 가운데 대다수가 결손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퇴직과 신체적 질병 역시 방아쇠 역할을 하는 중대한 요인인데, 특히 노인들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자살은 흔히 도피구로 선택하는 것으로서, 반드시 불치병에 걸렸을 때만이 아니라 환자가 고통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할 경우에도 자살을 도피구로 선택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방아쇠 역할을 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자살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그러한 상황에 직면해서도 목숨을 끊지 않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을 해결책으로 보지 않는데 일부 사람들은 자살을 해결책으로 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들

      “목숨을 끊기로 결정하는 것은 대부분 자신이 겪은 일을 해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존스 홉킨스 대학교 의과 대학 정신 의학 교수인 케이 레드필드 재미슨은 말합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 건강이 좋을 경우에는,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것이 자살을 정당화할 만큼 비참한 것이라고 해석하지 않는다.” 미국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 근무하는 이브 K. 모시치츠키는, 저변에 깔려 있는 몇 가지 요인을 포함하여 많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자살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고 지적합니다. 그처럼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들 중에는 정신 장애와 중독 장애, 유전 형질, 뇌의 화학 작용이 포함됩니다. 그 중 몇 가지를 고려해 보도록 합시다.

      그러한 요인들 중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우울증, 양극성 기분 장애, 정신 분열증, 알코올 남용이나 마약 남용과 같은 정신 장애와 중독 장애입니다. 유럽과 미국 모두에서 실시된 조사에서 알려 주는 바에 의하면, 실행에 옮겨진 자살의 90퍼센트 이상이 그러한 장애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실, 스웨덴의 연구원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그러한 종류의 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지 않은 남성들은 자살률이 10만 명당 8.3명이었지만 우울증에 걸린 남성들의 경우에는 자살률이 10만 명당 650명이나 되었습니다! 또한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자살을 하게 만드는 요인은 동양에 있는 나라들의 경우에도 유사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 방아쇠 역할을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는 재미슨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한 우울증을 견디거나 인내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재미슨 교수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점점 절망감이 쌓여서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면 자살 충동을 억제하는 정신 기능이 점차 약해집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을,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계속 사용함에 따라 브레이크 패드가 닳아서 얇아지는 경우에 비하였습니다.

      그러한 경향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울증은 치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력하다는 느낌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들을 해결하고 나면, 흔히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방아쇠 역할을 하는 가슴 아픈 일이나 스트레스에 사람들이 반응을 나타내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많은 자살 사건의 경우 개인의 유전 형질이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유전자가 어느 정도 개인의 성격을 좌우하는 역할을 하며, 여러 연구 결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어떤 가계에는 다른 가계보다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자살하기 쉬운 소인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자살할 수밖에 없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재미슨은 말합니다.

      뇌의 화학 작용 역시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뇌에서는 수십억 개의 뉴런이 전기 화학적으로 통신을 합니다.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신경 섬유의 말단 부분에는 시냅스라는 좁은 틈이 있는데, 그 틈에 있는 신경 전달 물질을 통해서 정보가 시냅스를 건너 화학적으로 전달되게 됩니다. 세로토닌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양은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자살하기 쉬운 상태와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뇌의 내부」(Inside the Brain)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들면 ·⁠·⁠· 삶에 행복을 더해 주는 샘이 말라 버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할 위험성이 증가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자살하도록 예정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픈 일과 스트레스를 극복합니다.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드는 것은, 압박감에 대해 정신과 마음이 반응을 나타내는 방식입니다. 방아쇠 역할을 하는 직접적인 원인뿐만 아니라 저변에 깔려 있는 요인들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생활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 되찾게 해 줄, 좀 더 긍정적인 견해를 갖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6면 네모]

      성별과 자살

      미국에서 행해진 한 연구에 의하면, 여성은 자살을 기도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두세 배 높지만, 자살에 성공할 가능성은 남성이 여성보다 네 배나 높다. 여성은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을 가능성이 적어도 남성의 두 배는 되며, 그렇기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는 여성의 수가 더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우울증은 대체로 남성보다 덜 심하며, 따라서 여성은 대체로 덜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반면에 남성은 자살에 반드시 성공하기 위해 더 과감하고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에는 자살에 성공하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많다. 사실, 한 연구 결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자살 중 약 56퍼센트는 중국, 특히 중국의 시골 지역에서 일어난다. 중국 여성들의 충동적인 자살 기도가 자살 성공으로 이어지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치명적인 농약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7면 네모와 삽화]

      자살과 외로움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려 자살하게 만드는 요인들 중 하나는 외로움이다. 핀란드에서 행해진 자살에 관한 한 연구의 책임자로 일한 요우코 뢴퀴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자살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매일 외로움을 느끼며 생활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여가 시간이 많았지만 사교적 접촉이 거의 없었다.” 일본 하마마츠 대학교 의과 대학의 정신병 학자인 오하라 겐시로는, 최근에 일본에서 중년 남성의 자살이 크게 증가한 원인은 “고립”이라고 설명했다.

      [5면 삽화]

      성인들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재정 문제나 직장과 관련된 문제가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된다

  •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깨어라!—2001 | 10월 22일
    •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컵에 수면제가 마흔아홉 알 들어 있다. 이걸 삼킬까 말까?’ 스위스에 사는 28세 된 한 남자가 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그를 버리고 떠났으며, 그는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수면제의 일부를 삼킨 후에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안 돼.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다행히도, 그는 살아서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해서 언제나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 국립 방역 센터의 알렉스 크로즈비는 십대 청소년들의 자살 기도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도록 단 몇 시간 만이라도 막을 수 있다면, 그들이 자살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중간에 개입하기만 하면 상당수의 자살을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구로사와 히사시 교수는 일본 의과 대학 부설 인명 구조 및 응급 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자살 충동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인가 중간에 개입하기만 하면,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도와줄 필요가 있습니까?

      근본 문제를 직시하라

      앞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연구원들은 자살한 사람의 90퍼센트가 정신 장애나 약물 남용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미국 국립 정신 건강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이브 K. 모시치츠키는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연령층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가장 바람직한 일은 정신 장애와 중독 장애를 방지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러한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회에 강한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도쿄 메트로폴리턴 정신 의학 연구소의 다카하시 요시토모는 말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사람들도 즉각 치료를 받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고 그는 부언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치스럽다고 해서 잠자코 있지만은 않습니다. 일본에서 17년간 쇼를 진행한 유명한 텔레비전 아나운서인 오가와 히로시는, 자신이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자살할 뻔한 적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에 비할 수 있다”고 오가와는 말하였습니다. 누구나 다 우울증에 걸릴 수 있지만 회복이 가능하다고, 그는 설명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어떤 사람이 문제를 가지고 혼자서 고심하고 있으면, 보통 그 문제가 터무니없이 커 보이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앞서 언급한 헝가리의 보건 담당 관리인 벨라 부다는 말합니다. 이러한 말은 성서에 나오는 고대의 이러한 잠언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분명히 알려 줍니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자는 그 자신의 이기적인 열망을 추구하는 것이니, 실용적인 지혜를 모두 거스르며 나아간다.”—잠언 18:1.

      이 지혜로운 말에 귀 기울이십시오. 감당하기 어려운 개인 문제로 가득 찬 바다와도 같은 이 세상에서 혼자 허우적대지 마십시오. 신뢰할 수 있고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를 찾으십시오. ‘하지만 나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정신 건강 전문가인 사토 나오키 박사의 말에 의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토 박사는 환자들이 자신의 약한 면을 보여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면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주는 사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많은 곳에서는, 자살 방지 센터나 위기 대처 상담 전화의 도움을 받거나 정서 장애를 치료하는 명망 있는 의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근원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종교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필요한 도움을 받은 사람들

      불가리아에 사는 병약한 마린은 죽고 싶은 강한 욕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하는 「파수대」라는 종교 잡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의 방문을 받아 보라는 그 잡지의 권고를 받아들였습니다. 마린은 그 결과 어떤 일이 있게 되었는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는 그들을 통해, 생명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주신 선물이며 우리에게는 자신을 해치거나 고의로 생명을 끊을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자살하고 싶어하던 이전의 욕망을 버리고 다시 삶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마린은 또한 그리스도인 회중으로부터 사랑 넘친 지원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병약하긴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즘엔 하루하루가 즐겁고 평온합니다. 매일매일 즐거운 일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지요! 모두가 여호와와 그분의 증인 덕분입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스위스의 젊은 남자 역시 여호와의 증인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즘에 그는 자신을 집으로 맞아들여 준 “한 그리스도인 가족의 친절”에 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나중에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 성원들은 여러 날 동안 번갈아 가며 나를 식사에 초대해 주었습니다. 후한 대접을 받은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남자는 성서를 통해 연구한 내용으로부터 큰 격려를 받았습니다. 특히 참 하느님이신 여호와께서 인류에게 느끼시는 사랑에 관해 배웠을 때 그러하였습니다. (요한 3:16) 사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그분 앞에 “마음을 쏟아 놓”을 때 당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십니다. (시 62:8) 그분은 사람들의 흠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분을 향하여 그 마음이 온전한 자들을 위하여 힘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십니다. (역대 둘째 16:9)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보증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느님이니 두리번거리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참으로 너를 돕겠다. 내가 참으로 나의 의의 오른손으로 너를 굳게 잡아 주겠다.”—이사야 41:10.

      신세계에 관한 하느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스위스의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 약속은 내가 느끼고 있던 좌절감을 더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영혼을 위한 닻’으로 묘사된 이 희망은 지상 낙원에서 누리게 될 영원한 생명에 관한 약속과 관련이 있습니다.—히브리 6:19; 시 37:10, 11, 29.

      당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하다

      물론 당신은, 자신이 완전히 혼자가 되었고 자신이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혼자가 된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성서 시대에 예언자 엘리야도 살아가면서 우울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여호와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의 예언자들을 칼로 죽여 저만 홀로 남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야는 완전히 혼자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느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동료 예언자들 가운데 많은 수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역시 죽이겠다는 위협을 받고 있었으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 중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혼자였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암담한 시기에도 엘리야와 같은 충성스러운 사람 약 7000명이 참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충실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엘리야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열왕 첫째 19:1-18) 그러면 당신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당신도 당신이 느끼는 것만큼 혼자가 아닐 가능성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부모, 배우자, 자녀, 친구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외에도 더 있습니다. 당신은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서, 당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당신의 말을 참을성 있게 잘 들어 주고 당신과 함께 그리고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장성한 그리스도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 5:14, 15)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모두 당신을 버린다 해도,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을 분이 계십니다. 고대의 다윗 왕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와 내 어머니는 나를 버린다 해도, 여호와께서는 나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시 27:10)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베드로 첫째 5:7)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당신은 귀중하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물론, 때때로 삶이 선물이라기보다는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누군가에게 귀중한 선물을 주었는데 그가 그 선물을 실제로 사용하기도 전에 버린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불완전한 인간은 생명이라는 선물을 이제 막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성서에서는, 바로 지금 우리가 살며 누리는 생명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결코 “참된 생명”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디모데 첫째 6:19) 그렇습니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의 삶은 훨씬 더 온전하고 풍요롭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느님]은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애통과 부르짖음과 고통도 더는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린 것이다.” (계시 21:3, 4) 이 말이 성취될 때 당신이 어떠한 삶을 누리게 될지 상상해 보려고 노력하십시오. 여유를 갖고, 머릿속으로 풍요롭고 다채로운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십시오. 그 그림은 결코 허황된 환상이 아닙니다. 과거에 여호와께서 그분의 백성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묵상해 봄에 따라, 그분에 대한 당신의 확신은 강해질 것이며 그 그림은 당신에게 더욱 실제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시 136:1-26.

      당신이 삶의 의욕을 온전히 되찾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모든 위로의 하느님’께 계속 기도하십시오. (고린도 둘째 1:3, 4; 로마 12:12; 데살로니가 첫째 5:17) 여호와께서는 당신에게 필요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당신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이사야 40:29.

      [9면 네모와 삽화]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것 같은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가?

      누군가가 자살하고 싶다고 당신에게 털어놓을 경우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잘 들어 주라”고, 미국 국립 방역 센터(CDC)에서는 조언한다. 그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표현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은 내성적이고 말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정말로 고통을 겪고 있거나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당신이 그의 행동에서 알아차린 어떤 특정한 변화에 관해 조심스럽게 언급한다면, 그는 마음을 열고 당신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듣는 동안, 감정 이입을 나타내도록 해야 한다. “그 사람의 생명이 당신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미국 국립 방역 센터는 알려 준다. 그의 죽음이 어떻게 당신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그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창조주께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베드로 첫째 5:7.

      전문가들은 또한 그가 자살하는 수단으로 사용할지도 모르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없애도록, 특히 총기를 없애도록 권한다. 상황이 심각한 것 같다면, 의학적 치료를 받아 보도록 그 사람에게 권해야 할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당신이 직접 응급 의료 서비스에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11면 네모]

      ‘내가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까?’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과 연합함으로, 자살하고 싶은 생각을 극복하도록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을 겪지 않거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흔히 그러한 생각을 한 것에 대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러한 죄의식은 그들이 지고 있는 짐을 더욱 무겁게 만들 뿐이다. 그러면 그러한 감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성서 시대에 살았던 충실한 남녀들 중에도, 삶에 대해 심한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족장 이삭의 아내인 리브가는 한때 가정 문제로 인해 몹시 괴로운 나머지 “나의 이 생명을 몹시 싫어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창세 27:46) 자녀와 건강과 부와 사회적 지위를 잃는 고통을 겪은 욥은 “내 영혼이 실로 내 생명을 혐오스럽게 여”긴다고 말했다. (욥 10:1) 모세는 한때 하느님께 “부디 저를 죽여 없애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민수 11:15) 하느님의 예언자인 엘리야는 한때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오 여호와여, 이제 저의 영혼을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열왕 첫째 19:4) 또한 예언자 요나는 “살아 있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거듭 말했다.—요나 4:8.

      이 사람들이 그러한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정죄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그분은 심지어 그들의 말을 성서에 보존시키기까지 하셨다. 하지만 그 충실한 사람들 가운데 그러한 감정에 이끌려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가치 있게 여기시며 그들이 살기를 원하셨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심지어 악인들의 생명에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 그분은 그들이 그 길을 돌이켜 ‘계속 살도록’ 강력히 권하신다. (에스겔 33:11) 하물며 그분의 은혜를 얻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계속 사는 것은 얼마나 더 원하시겠는가!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대속 희생, 그리스도인 회중, 성서, 기도의 특권 등을 활용할 수 있게 해 놓으셨다. 하느님과의 이 통신 수단 즉 기도는 통화 중인 경우가 결코 없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그분에게 가까이 가는 모든 사람의 말을 들으실 수 있고 또 들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말의 자유를 가지고 과분한 친절의 왕좌에 가까이 가도록 합시다. 그것은 우리가 적절한 때에 도움을 받기 위해 자비를 얻고 과분한 친절을 발견하려는 것입니다.”—히브리 4:16.

      [12면 네모]

      사랑하는 사람이 자살한 적이 있는가?

      어떤 사람이 자살하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이 심한 정신적 혼란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데 대해 자신을 탓한다. 그들은 이와 같은 말을 한다. ‘내가 그날 그와 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만 했더라도’, ‘그때 내가 말을 조심하기만 했더라도’, ‘내가 그를 조금만 더 도와주기만 했더라도.’ 이러한 말에는 ‘내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기만 했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지금 살아 있을텐데’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자살한 데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당한 일인가?

      일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는, 자살하고 싶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려 주는 징후를 알아보기가 너무나도 쉽다는 점을 기억하라.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문제가 다르다.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마음만이 그 비통함을 알고 있으며, 어떤 외부인도 그 기쁨에 참여할 수 없다.” (잠언 14:10, 타나크역)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전혀 분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감정을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가까운 가족 성원에게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말로 슬픔을 표현함」(Giving Sorrow Words)이라는 책에서는,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려 주는 징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현실적으로 볼 때, 그러한 징후를 분별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책에서 부언하는 바에 의하면, 당신이 어떤 징후를 알아보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 가지고 당신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자신을 괴롭히기보다는 지혜로운 왕 솔로몬의 이러한 말에서 위로를 얻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산 자들은 자기들이 죽을 것임을 의식하지만,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전도 9:5)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불타는 지옥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정신적 고통과 감정적 고통은 끝났다. 그는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쉬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당신 자신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의 복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솔로몬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 있는 동안 “네가 해야 할 바로서 네 손이 찾아 낸 일은 무엇이든 네 힘을 다하여 하여라.” (전도 9:10) 자살한 사람들의 미래 생명에 대한 전망은 “부드러운 자비의 아버지,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신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하도록 하라.—고린도 둘째 1:3.a

      [각주]

      a 「깨어라!」 1990년 9월 15일호에 실린 “성서의 견해: 자살자들—부활되는가?” 기사를 읽어 보면, 자살한 사람들의 미래 전망에 대한 균형 잡힌 견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8면 삽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라

      [10면 삽화]

      당신의 생명은 다른 사람들에게 소중하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