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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두려우면서도 인자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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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두려우면서도 인자하신 하나님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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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0
파70 10/15 459-462면

여호와—두려우면서도 인자하신 하나님

의심할바 없이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 같이 당신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분은 어떠한 성품 혹은 개성을 가지고 계십니까? 당신은 그분을 어떻게 묘사하겠읍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붙인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기 자신에게 붙이신 이름을 소유하고 계심을 인정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아마도 당신은 손수 갖고 있는 성서에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보았을 것입니다.—시 83:18; 이사야 42:8.

만일 당신이 그 문제를 추리하여 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항상 존재하셨으며, 더욱이 그 분께서는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책임이 있으시다는 결론을 맺었을 것입니다. 의심없이 당신은 우주가 저절로 생겼거나 누군가 지배하는 지성적 존재없이 당신이 도처에서 보는 놀라운 결과가 산출된다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더욱 논리적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천적 창조물들이 하나님에게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여 영광과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고 환호성을 올린 이유에 동의할 것입니다.—계시 4:11.

당신은 틀림없이 무한대 즉 시작과 끝이 없어서 제한시킬 수 없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관념을 용인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시간이 무한하며, 더욱이 공간은 우리가 측정할 수 있는 한, 시작이나 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만세의 왕”이신 것과 더욱이 성서에서 말하듯이 그분이 시작이 없으시고 끝도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읍니다.—디모데 전 1:17; 시 90:2; 계시 10:6.

두려움을 느끼게 하시며 광대하심

그러면 하나님의 모양은 어떠합니까? 당신은 그분을 어떻게 묘사하겠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영이시며, 인간의 시력을 초월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의 용어로 그분의 외관을 묘사하는 것은 비길바 없는 그의 영광을 비슷하게 말하는 것 뿐입니다. (요한 4:24) 여호와께서는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이사야 40:25, 26.

이렇게 놀라운 물질적 우주의 창조주의 위대함과 비길바 없는 영광이 강조되었읍니다. 다분히 당신은 모든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광채와 광도를 가진 강력한 핵을 폭발시키는 영화를 관람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각각 그 이름까지 지어 부르시는 수십억개의 별들 즉 원거리에 있는 항성들은 우리 인간들이 산출할 수 있는 광채와 ‘에너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장한 화염을 방출합니다. 이 헤아릴 수 없는 항성들의 창조주께서는 대단히 두려움을 느끼시게 하시는 분이시며 광대한 분이심에 틀림없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미미한 인간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에 관한 묘사를 영적 용어로 기록시키는 것은 수학의 가장 초보적 지식만 있는 사람에게 고등 대수 방정식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선천적으로 눈이 먼 사람에게 색깔을 설명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욥 37:23, 24.

그렇지만 여호와의 종들 중의 얼마는 그들이 실제로 하나님을 보지 않았지만 천적 궁정의 영감받은 환상을 보았읍니다. (요한 1:18)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묘사한 것은 큰 위엄과 두려운 장엄 뿐만 아니라 또한 청명, 질서, 아름다움 및 유쾌함으로 그렸읍니다. 이러한 묘사들은 하나님의 외양을 보석, 불꽃 및 무지개와 같이 인간에게 알려진 것에 비기어 은유와 직유를 채택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물론 이러한 묘사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에스겔 1:26-28; 계시 4:1-3.

인간의 용모를 가지고 계신 분처럼 묘사됨

동일하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용모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성서 가운데 묘사되어 있읍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 사도 ‘베도로’는 “주[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고 기록하였읍니라. (베드로 전 3:12; 에스겔 20:33; 출애굽 15:6; 누가 11:20) 이러한 표현들은 인간의 판단으로 알기 쉽게 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이 하나님을 “해”, “방패” 혹은 “반석”이라고 한 은유적인 언급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듯이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됩니다.—시 84:11; 신명 32:4, 31.

“하지만 성서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신체조직과 동일한 신체조직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질문할지 모릅니다.—창세 1:27.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는 성서 언급은 첫 인간이 하나님과 유사한 점이 신체적으로 창조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말은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이 소유하고 계신 속성(屬性) 혹은 성품 즉 사랑, 사고 능력, 정의감과 같은 성품을 갖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 대변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특별한 경고는 신체적 유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여 줍니다. 그 경고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호렙’ 산 화염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데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신명 4:15, 16.

이것은 어떤 사람도 여호와 하나님과 유사한 것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이 무엇과 같이 생기셨으며, 즉 무슨 형상을 가지고 계시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영적 창조물들이 인간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이를테면 그들의 지각력은 인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과 같은 눈과 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은 광선의 혜택 없이도 아주 어두운 곳에서 행해진 행위도 볼 수 있으십니다. (시 139:1, 7-12; 히브리 4:13) 사실 그분의 시력은 지구 전체를 에워쌀 수 있읍니다. (잠언 15:3) 그리고 그분이 사람의 태 내에서 성장하는 태아를 보기 위하여 ‘엑스’선의 설비가 필요하지 않습니다.—시 139:15, 16.

더욱이 여호와의 청력은 대기 내의 음파에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분은 소리로 표현하지 않는 마음의 생각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 24:42-45; 시 19:14) 사람은 광대한 물질적 우주를 성공적으로 측량할 수 없읍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물질적 하늘이 어떤 지적 성전이나 집이 하나님이 거하시게 하기에는 너무나 작듯이 물질적 하늘이 하나님의 거처를 둘러싸거나 포용하지 못합니다. (열왕 상 8:27) 진실로 우리가 숭배하는 하나님은 얼마나 크십니까!

창조 사업에 나타난 사랑

여호와께서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시며, 광대하신 분이면서도 또한 탁월하신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그분의 모든 행동 가운데서 이 성품이 현저히 나타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첫 창조물인 영적 아들에게 잇따른 다른 모든 창조사업에 자기와 함께 참여하는 특권을 가지게 하시고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하심으로써 영예가 아들에게도 돌아가게 하심으로 사랑을 보이셨읍니다. (창세 1:26; 골로새 1:15-17) 그리하여 비겁하게 경쟁의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으며 오히려 그분의 아들의 충성과 전심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주권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과시하셨읍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영적 아들들에게 그들의 임무 수행에 있어서 상대적 자유을 용인하셨읍니다. 심지어는 그들이 특별한 임명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견해를 제의하도록 허락하신 경우도 있읍니다.—열왕 상 22:19-22.

여호와의 사랑은 지적 창조물들이 존재하도록 마련하신데 더한층 나타나 있읍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 아버지가 자식의 사랑과 지혜로운 처신을 보고 특히 기쁨을 발견하듯이 여호와께서도 그분을 사랑하며, 지혜롭게 섬기는 지성있는 창조물들로 인하여 기쁨을 발견하십니다. (잠언 27:11; 마태 3:17; 12:18) 이 즐거움은 어떤 물질적 혹을 물리적인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분의 창조물이 자진적으로 의로운 표준을 고수하고 비이기심과 관대함을 보인 것을 보시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시 147:10, 11; 히브리 13:16.

확실히 인간적 완전함을 지닌 첫 사람 ‘아담’은 창조주께 두려운 존경심과 사랑을 느낄 이유가 있었읍니다. ‘아담’은 후에 성서 시편 필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것에 동의할 수 있었읍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아담’은 지상의 피조물들 가운데서 특히 다재 다능한 자기의 몸과 자기 주위에 있는 사물을 볼 때 여호와를 찬양할 만한 훌륭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아담’이 관찰하였던 가지각색의 새로운 새, 동물, 물고기 그리고 서로 상이한 식물, 꽃과 나무, 모든 들과 삼림, 언덕, 골짜기와 시내는 하나님의 웅대한 창조 사업의 다양성을 반영해 주어 아버지의 지혜의 깊음과 넓이 그리고 여호와의 개성의 다채로움을 명심하게 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및 감촉 등 사람의 모든 감각들은 감수성이 강한 ‘아담’의 마음에 가장 관대하시고 사려깊으신 창조주의 증거를 전달하여 주었을 것입니다.

‘아담’의 지성으로 필요한 교제와 대화도 그의 아버지께서 그에게 지성을 가진 여성 짝을 준비하여 주심으로 상실하지 않게 되었읍니다. (창세 2:18-23) 그들 한 쌍은 성서 시편 필자가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하였듯이 여호와께 훌륭히 노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시 16:8, 11) 대단히 큰 사랑의 대상을 갖게 되므로 ‘아담’과 ‘하와’는 틀림 없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요한 1서 4:16.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적 필요물들을 공급하셨읍니다. 그분은 인간 아들 ‘아담’과 함께 대화를 하시며, 인간의 숭배에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순종하는 행위, 숭배의 거룩한 임명을 주심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읍니다. (창세 1:27-30; 2:15-17) 심지어 첫 인간 부부가 여호와의 율법을 범하였을 때에도 사랑을 중단하지 아니하시고 실천하셨읍니다.

자비스럽게도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후손이 상실한 인간 완전성과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회복시킬 준비를 하셨읍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설명합니다. (요한 3:16) 당신은 이 사랑스러운 준비에 대하여 여호와께 감사하지 않습니까?

사랑의 증거인 하나님의 표준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 사업 가운데 확립하여 놓으신 불변성에 대하여 그분께 또 감사할 수 있읍니다. 밤과 낮의 규칙적인 순환과 중력에 응하여 방향이 변하지 않고 아래쪽으로만 흐르는 강의 수로와 헤아릴 수 없는 다른 것들이 지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혼란된 분이 아니시고 질서있는 분이심을 입증하여 줍니다. (고린도 전 14:33) 사람들은 참으로 일을 수행하는데 이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인간은 그리하여 염려되는 불확실성에서 자유롭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계획하며 일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 사업과 법칙 내에다 이러한 표준을 준비하여 놓으셨다는 것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며 사려깊은 것입니까?

「브리타니가 백과 사전」은 이러한 표준들을 논평하면서 하기와 같은 흥미있는 진술을 하였읍니다.

“인간의 성취는 (확립한 표준들 내에서) 자연 내의 표준들과 비교할 때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들어난다. 성좌들, 혹성의 궤도들, 자연의 물질에 내재하는 전도성, 유연성, 탄성, 경도, 침투성, 굴절성, 강도, 원자안의 전자들의 궤도들, 혹은 세포들의 구성의 불변한 것과 같은 규칙적인 특성들은 자연 가운데 있는 것으로 몹씨 놀라게 하는 표준화 가운데 얼마되지 않는 예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의 중요함을 보이면서 이 사전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자연에서 발견된 표준화를 통해서만 많은 식물, 물고기, 새들 및 동물들의 종류를 알아내어 분류가 가능하다. 이러한 종류 내에서는 개체들이 다른 것과는 특유한 구조, 기능 및 습관의 미소한 세부가 서로 서로 닮았다. 만일 인체 내에 이러한 표준화가 없더라면 내과의사들은 각자가 소유하는 어떤 기관의 여부와 어디에서 그것들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실로 자연의 표준들 없이는 조직된 사회도 교육도 내과 의사들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즉 각자가 기초를 이루는 것같은 비교 유사점들에 의존되어 있기 때문이다.”—21권, 306, 307면, 1959년판.

여호와의 경이로운 물질적 창조 안에 있는 이러한 표준화를 고려하여 볼 때, 여호와께서 인간의 행실과 창조주와의 관계들을 지배하는 표준들을 세워 놓으셨다는 것은 당연한 추리입니다. 특별히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교훈에 순종하는 표준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순종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요한 1서 5:3.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순종이 당신의 생활의 행복과 즐거움을 방해하거나 어떤 점에서 당신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이러한 생각을 전적으로 버릴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의 지적 피조물들을 위한 그분의 요구들의 테두리 안에는 즐거움을 위한 무한한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상술한 백과 사전에서는 표준에 대한 조목에서 물질적 우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합니다.

“아직도 이러한 압도적인 표준의 증거로 인하여 아무도 자연이 단조롭다고 비난할 수 없다. ‘스펙트럼’의 파장이 좁다란 테가 기초를 형성하더라도 관찰자의 눈을 즐기게 하는 유용한 색깔의 변화와 배합은 실질적으로 제한이 없다. 동일하게 모든 음악의 예술적 효과는 진동수가 다른 적은 음표군을 통하여 귀에 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 창조물을 위한 여호와의 요구 조건들은 의로운 마음이 갈망하는 모든 자유를 그들에게 허용합니다. 참으로 인간의 불완전성과 타락한 생각의 노출과 이 사악한 세상의 습관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요구들에 순응하기가 늘 쉽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시 51:5; 요한 1서 5:19) 그러나 노력을 경주하고 여호와께서 인간 행실을 지배하기 위하여 세워 놓으신 안전한 테두리 안에 머무른다면 참 만족과 행복이 실현됩니다.

참으로 두려우시면서도 인자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더 잘 알고자 원하는 것에는 온갖 고무적인 이유가 있읍니다. 당신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여 놓으신 성서를 더 연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 않으셨읍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알고 섬길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은 얼마나 훌륭한 특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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