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수석 대행자를 열심히 주시함
“우리 믿음의 수석 대행자이시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열심히 주시 ··· 합시다. ··· 참으로 ··· [그를] 면밀히 고려하십시오.”—히브리 12:2, 3, 신세.
1. 어떻게 그리고 왜 사물이 흔히 새롭게 보일 수 있읍니까?
아주 잘 아는 어떤 물체를 당신이 잘 살펴 볼 때 그것이 새로운 각도로 보이게 된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있읍니까? 아마 그 물체가 다른 배경 속에 놓여져 있거나 혹은 당신의 관찰력이 발전하여 더 예리해졌기 때문이거나 혹은 어떤 다른 이유 때문일지 모릅니다. 한 예를 들면, 당신이 성장한 후 당신이 어린 시절에 살던 곳이나 그 주위를 다시 방문하였을 때 이러한 일은 흔히 일어날 수 있읍니다. 아마 그 고장은 변하지 않았으며 당신은 옛날에 있던 마을 표지를 알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매우 달라 보이며 흔히 더 작게 보입니다. 당신의 어린 시절에는 그 고장이 당신에게 큰 세계였읍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그 고장은 세계와 비교할 때 단지 작은 모통이에 불과합니다.
2. (ㄱ) 어떻게 ‘하와’는 사물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게 되었읍니까? (ㄴ) 누가 ‘하와’를 조정하였으며,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읍니까?
2 사물을 다른 면으로 보게 되는 일은 또한 처지나 문제에 따라서 그러하고 어떤 다른 사람의 영향이나 제안으로 말미암아 그러할 수 있읍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당신이 사물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방법을 배운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누구의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유익할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아주 뚜렷한 한 예를 인간 역사의 맨 처음부터 볼 수 있읍니다. 뱀의 제안을 들음으로써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다른 이의 눈으로 보는 방법을 배웠읍니다. 그는 그 열매를 더는 만져서도 안될 만한 금지된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그것이 볼수록 극히 먹음직스러운 것으로 보게 되었읍니다. (창세 3:1-6) 이처럼 성서가 보여 주듯이 실제로 ‘하와’에게 영향을 준 “옛 뱀”인, ‘사단’은 비록 생명과 계몽으로 인도하는 도구인 척하였지만 생명과 계몽으로 인도하는 대행자 혹은 도구임을 입증하지 못했읍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그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과 같이, 그는 “살인자”이며 “거짓말장이”였읍니다. 그는 사실상 “죽게 하는 수단을 가진 자 곧 마귀”였읍니다.—계시 12:9; 요한 8:44; 히브리 2:14, 신세.
3. ‘사단’은 그의 목적를 위하여 항상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 왔읍니까?
3 ‘사단’의 수단과 책략은 그때 이래 항상 동일하였읍니다. 그는 교활하고 속이는 방법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의 눈으로 사물을 보도록 영향을 주고자 애씁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대행자들과 보이지 않는 대행자들이 동일한 방법을 채택하도록 훈련시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어떤 자들을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라고 언급하면서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이 동일한 경고가 오늘날에도 적합합니다.—고린도 후 11:13-15.
4. 어떤 면으로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까?
4 이 사실을 마음에 간직할 때, 경계하며 만사를 당연한 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시기에 적절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어떤 견해들이 아무리 유명하고 우리의 종교적 배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우리의 숭배와 구원에 영향을 미치는 기본적인 것들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얻으며 그것을 유지하고자 간절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참되고 가치 있는 것들을 계속 열심히 주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읍니다.
생명과 빛의 수석 대행자를 식별함
5. ‘에덴’에서의 사건들이 하나님을 실패케 하거나 좌절케 하지 못하였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여주셨읍니까?
5 ‘사단’에게는 자기가 완전한 첫 인간 부부를 빗나가게 하는데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여호와의 목적은 ‘에덴’에서 일어난 일이나 혹은 그 첫 불순종과 반역의 결과로 일어날 어떤 일로 말미암아서도 좌절되지 않았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그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여호와께서는 무슨 일을 하실 것이며 어떻게 그 목적을 실현시키실 것인지를 예언하셨읍니다. 그는 여자의 씨가 “네[뱀 실제적으로 ‘사단’을 지적함]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예언하심으로써 때가 되면 ‘사단’과 그의 영향력을 멸망시키실 것을 암시하셨읍니다.—창세 3:15.
6. 하나님께서는 그의 첫 예언적 약속에 대한 믿음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어떠한 단계들을 밟으셨읍니까?
6 누가 이 약속된 “씨”일 것인가는 처음에 언급하셨을 때 밝히지 않으셨으나,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부가적 지식을 주심으로써 그 소망과 약속이 살아 있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맹세의 약속을 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읍니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특히 ‘다윗’의 그 많은 시편과 ‘이사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장차 올 이분 즉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이며 왕으로서 하나님의 모든 원수들을 완전히 멸망시킬 분에 관한 가슴 설레이는 자세한 사실들을 많이 알려 주셨읍니다. 여호와의 선서하신 맹세에 따라, 그는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 되셔야 할 분이었읍니다. ‘이스라엘’에서 왕들과 대제사장들이 직무에 취임할 때에는 특별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었읍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이분은 이사야 61:1-3에 언급된 크나큰 사업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주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실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사실들과 많은 약속들은 ‘유대’인들에게 장차 오실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에 관한 더 확실한 희망을 부풀어 오르게 해주었읍니다.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라는 말은 둘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뜻입니다.—창세 22:18; 사무엘 하 7:12, 13; 시편 2:1-9; 110:1-7.
7. 약속된 씨의 신분이 어떻게 밝혀졌는지 설명하십시오.
7 마침내, 첫 약속이 있은지 40세기가 지나자 “씨”의 신분이 밝혀질 때가 왔읍니다. 억측에 의해서가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땅에 있는 예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특별한 임무를 띄고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천사를 통하여 밝혀졌읍니다. 이 천사는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온 ‘가브리엘’ 천사였으며, 그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라].” ‘마리아’가 남자와의 관계가 없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천사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누가 1:26-38.
8.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그의 신분이 어떻게 더 증명되었읍니까?
8 하나님의 영으로 예수에게 기름붓는 일이 그의 탄생시에 행해지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30년 후에 그가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을 때 일어났읍니다. ‘요한’ 자신이 이 사실에 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 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그는 이것이 물로 침례를 주도록 그를 보내신 여호와께서 그에게 찾아 보라고 말씀하신 징조였다고 부언하였읍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 참석하셨을 때, 일어서셔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이사야」 두루마리에서 낭독하셨읍니다. “여호와의 영이 내 위에 있다. 왜냐 하면 가난한 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그가 나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읽으시는 것을 마치자 그는 “여러분이 방금 들은 이 성귀가 오늘 성취되었읍니다”고 선언하셨읍니다.—요한 1:32-34; 누가 4:16-21, 신세.
9. 누가 처음으로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확신하였으며,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9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에게 소개되자 곧 그가 메시야임을 인정하였읍니다. 그들 중 ‘안드레’라는 제자는 예수와 함께 하루 밤을 유숙하고는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전도 봉사가 거의 끝나갈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 하드냐고 물으신 다음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질문하셨읍니다. ‘시몬 베드로’는 즉시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이러한 분별력을 가진 것은 인간에게서 나온 어떤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요한 1:41; 마태 16:15-17.
10. 어떤 다른 면으로 예수를 식별할 수 있으며, 그것은 왜 중요합니까?
10 ‘에덴’에서 속이는 일을 시작하여 죽음을 가져온 자에게로 돌아 가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된 씨라는 것을 배우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또한 그가 참다운 계몽과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서 그리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대행자로 증명될 수 있는가에 관하여도 알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마귀의 도전에 대한 당당하고도 완전한 대답이 될 것이며, 여호와를 입증할 것이고, 그의 이름이 거룩히 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부가해서 참 숭배와 구원에 대한 중대한 질문에 관하여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살펴 보면, 우리는 이 증명이 확실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시대와 우리 시대에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인내로써 달립시다. 우리가 우리 믿음의 수석 대행자이시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열심히 주시하면서 그렇게 합시다. ··· 참으로, 죄인들이 그를 자신의 이익에 배치되는 그러한 거역하는 말을 하는 것을 견디신 분을 면밀히 고려하십시오. 그렇게 하므로 여러분의 영혼이 피곤하여 지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브리 12:1-3, 신세.
11, 12. (ㄱ) 어떤 경우에 예수를 “수석 대행자”라고 하였읍니까? (ㄴ) 이러한 참조문들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과 참 숭배에 관하여 우리를 돕습니까?
11 “수석 대행자”(희랍어: ‘아케이고스’)라는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지위를 잘 설명합니다. 이 말이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에 4번 나옵니다. 그 첫째 경우는 ‘베드로’가 기원 33년 오순절 직후에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할 때 이 말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리고는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읍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 생명의 주[수석 대행자, 신세]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느니라].” 그후 사도들이 ‘산헤드린’ 법정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는 명령을 받자, ‘베드로’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대답하였읍니다. 그리고 예수를 “나무에 달아 죽인” 책임이 그들에게 있음을 지적한 다음에 ‘베드로’는 이렇게 계속합니다. “하나님이 ···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수석 대행자, 신세]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지었읍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끝으로 ‘바울’은 히브리 12:1-3에 있는 참조문 외에도 동일한 서신 조금 앞에서 예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수석 대행자, 신세]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사도 3:13-15; 5:27-32; 히브리 2:10.
12 이들 문맥만을 보아도 구원의 방법과 받아들이실 만한 숭배가 얼마나 명백합니까! 우리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 받으신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이신 예수의 직위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을 통치자로서 순종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명백합니까! (마태 28:18) 우리가 이분을 여호와의 눈으로 보고, “생명의 수석 대행자를 죽인” 종교적 지도자들이 한 것과 같이 결코 ‘사단’의 눈으로 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 두가지 상반된 관점을 지금도 가질 수 있으며, 사실상, 이 두 가지 관점은 우리 시대에도 활동적으로 역사하고 있읍니다.
13. (ㄱ) 희랍어 ‘아케이고스’의 원 뜻은 무엇입니까? (ㄴ) 삼위일체론자의 견해와는 반대로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어떻게 잘 적용됩니까?
13 「흠정역」을 포함하여 다른 번역들은 히브리 12:2에 있는 희랍어 ‘아케이고스’를 “수석 대행자” 대신에 “창시자”(author)라고 번역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런 번역은 정확하지도 않으며 다른 성귀와 일치하지도 않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a은 시간이나 혹은 계급의 순서에 있어서 수석 혹은 첫째라는 뜻을 가졌읍니다. 그 뜻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잘 적용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를 생명이나 구원의 창시자가 되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분은 삼위일체론자들이 믿는 것처럼 창조의 창시자 혹은 창조를 시작하신 분이 아니라 계시록 3:14에 명시된 바와 같이, 그분은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시작”이셨읍니다. (신세) 즉 창조주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된 첫째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 점은 고린도 전 8:6에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한 명백한 표현과 일치합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되시는 한분 하나님이 계실 뿐이며 만물은 그에게서 생겼고 ··· 또한 주님도 한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계시며 만물이 그를 통하여 있게 되었”다고 하였읍니다. (새번역) 다시 말하면, 유일한 근원이신 여호와께서 계시며, 그분은 많은 대행자들을 사용하시지만, 그의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그의 수석 대행자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14. 어떠한 방법으로서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를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읍니까?
14 ‘사단’이 그의 대행자들과 거짓 종교를 통하여 가능한 한 모든 것이 혼돈을 일으키게 하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체[계몽]가 비취지 못하게”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하나님 자신이 아님]”입니다. (고린도 후 4:4) 눈을 멀게 하는 이 영향력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통하여 즉 그의 관점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면밀히 주시하기를 배울 수 있으며 생명과 빛의 수석 대행자이신 그의 아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읍니다.
15. ‘요한’에 의하면, 이 아들이 언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읍니까?
15 이에 관련하여, ‘요한’이 예수의 복음서를 소개할 때 이 제목에 관하여 쓴 것을 복습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 필자들은 예수의 조상을 ‘아담’에까지 소급해 가지만, ‘요한’은 아주 짧고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말로써 참 시작 즉 창조의 시작에까지 우리를 이끌고 갑니다. 예수의 인간 이전의 칭호 “말씀”(희랍어: 로고스)이란 말을 그에게 적용시키면서, ‘요한’은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는 말씀이 생명의 대행자였음을 나타내면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분이 또한 계몽의 대행자이심에 관하여 ‘요한’은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다음에 ‘에덴’에서 시작한 ‘사단’의 교활하고 기만적인 수단에서 나온 분열과 적개심을 고려할 때, 대단히 중대하고 격려적인 말을 ‘요한’은 언급합니다. 즉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이기지 못하더라.”—요한 1:1-5, 난외주.
16. 누가 그러한 대행자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요한’은 어떻게 우리를 돕습니까?
16 아마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즉 어두움의 세력이 빛을 가지신 그리스도 예수를 이기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좋은데, 그것이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거짓 종교는 그만두고라도 어두움, 악, 타락 및 폭력의 세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점점 더 활동적이며 이기기가 더 어려운 것같이 보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그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좀 더 주의를 집중해 보십시다. 침례자 ‘요한’의 임무가 “빛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다음에 사도 ‘요한’은 계속하여,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진실로 당신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었던지 간에, 당신은 이 빛의 대행자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음을 분명히 뜻합니다. 만일 당신이 특별히 그렇게 하지 않는 한 당신이 자동적으로 그 유익에서 제외되어 소망 없는 위치에 빠지게 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지지하는 ‘요한’의 계속되는 말을 살펴 보십시오. 그는 우선 일반적으로 말해서 예수께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인정하였읍니다.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 세상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유대인들]이 영접지 아니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읍니다. 그러한 말을 한 다음에 그는 그러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부언하였읍니다.—요한 1:6-12.
17. 이에 관하여 예수 자신은 어떠한 더 큰 도움을 주셨읍니까?
17 이 문제에 관하여 한층 더 밝은 빛을 던져 주는 예수 자신의 말씀을 나중에 ‘요한’은 인용하여 믿음을 실천하는 문제에 있어서 선택의 자유를 사용하는 데는, 각자에게 책임이 있음을 나타냈읍니다. 하나님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왜 사람들 대부분이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의 마련을 받아들이지 않고 일축해서, 정죄의 심판 하에 머물게 되었는가를 설명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더 나아가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한 3:16-21.
18.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결정해야 합니까?
18 만일 당신이 빛보다도 어두움을 더 사랑하고 징계와 교정을 받기를 싫어하거나 혹은 당신의 견해와 행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책임질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마음으로부터 변화될 필요를 인식하며,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참된 것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기뻐하며,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이 제목에 관한 계속되는 토론에 우리와 함께 참여하도록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수석 대행자에게 가담하는 방법
19. 어떤 방법으로 그리스도인 회중은 그리스도 예수와 동일시됩니까?
19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충성스러운 사도들의 인도 아래 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이시며 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예수와 친밀한 신분을 갖도록 애썼읍니다. 예수에 관한 ‘요한’의 복음서가 기록되기 거의 40년 전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의 아들”에게 주신 이 독특한 지위에 관한 이 주제를 확장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아들]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회중]의 머리라.”—골로새 1:13-18; 또한 에베소 2:19-22 참조.
20. ‘바울’은 어떤 종류의 위험을 경고하였으며, 그것은 어떻게 역사하였읍니까?
20 그러나, ‘바울’은 그 다음으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는 위험에 관하여 경고할 필요를 느꼈읍니다. 그는 이 위험에 관하여 여러 번 편지하였으며 말하였고 그 근본 원인을 밝혔읍니다. 그는 ‘에베소’ 회중의 연로자들에게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읍니다. 다른 회중에게 그는 편지하기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고 하였읍니다. 미혹한다는 말은, 나쁜 길로 인도한다는 뜻이며 정직이나 본분으로부터 떠나도록 유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여자들의 정절을 포기하도록 유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일치하게 ‘바울’이 ‘고린도’ 회중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살펴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 ···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골로새 1:23; 사도 20:30; 데살로니가 후 2:3; 고린도 후 11:2-4.
21. ‘사단’은 어떻게 ‘아담’과 ‘하와’를 둘 다 함정에 빠지게 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무슨 경고가 됩니까?
21 뱀이 ‘하와’를 미혹한 반면에, ‘하와’ 자신은 자기의 영향력을 사용하여 같은 방향으로 자기의 남편을 미혹한 것 같습니다. 금단의 실과에 관한 기록은 간단하게,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고만 말합니다. (창세 3:6) 그러나 우리는 ‘하와’가 단순한 벙어리 같은 행동이나 벙어리 같은 호소를 사용하였다고 상상할 수는 없읍니다. 그들은 둘 다 그들이 가졌던 정직함과 성실함에서 미혹되기는 하였지만, 속은 면에서는 둘이 다 같지 않았읍니다. 우리에게는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았다고 한 영감받은 말씀이 있으며 이 말은 ‘하와’가 거짓말을 믿도록 영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하와’에게는 “죄”가 되지 않는다거나 핑계가 될 수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하와’는 뱀을 통하여 한 말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과 반대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 2:14; 창세 3:1-5)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인류 역사의 시초에나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 시대에 얼마나 간교하게 그의 도구를 사용했는가를 알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 시대에도 그 간교함은 결코 줄지 않았읍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된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속거나 미혹되는 일을 피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 인간 부부와는 달리, 우리는 그의 수석 대행자를 통하여 여호와와 관련된 우리의 신분을 확실히 하고 보존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그 일을 어떻게 가장 잘 할 수 있읍니까?
22. (ㄱ) 주의나 결정을 요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 있읍니까? (ㄴ) 성서에 접근할 때, 우리는 어떠한 위험들을 피하도록 조심해야 합니까?
22 어떤 이유로서든지 함정에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눈을 통하여 모든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교리 문제나, 세상 상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혹은 개인 문제나, 여러 가지 압력을 받았을 때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 등등 우리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계속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가까이 함으로써입니다. 주로 성서가 기록된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것은 시편 필자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시 119:105) 그 외에 또 중요한 것이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성서를 사람의 지혜와 철학적 견지에서 날카롭고 예리하게 비판적인 눈으로 성서를 살펴왔읍니다. 그 결과로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데 그들의 믿음과 그들에게 듣는 자들의 믿음을 점점 더 침식하게 하였읍니다. 그들 나름대로 종교에 열성스러운 다른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성서를 낭독하고 공부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하여 성서를 낭독합니다. 즉 그들은 우선 그리스도교국의 한 교회나 어떤 교단의 견해나 권위를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낭독한 것에 관한 그들의 이해는 그 교회나 교단이 가지고 있는 전통과 일치하도록 강요받게 됩니다. 보기를 원하지 않는 자보다 더 심한 장님은 없으며 강하게 박힌 사상에 반대되는 것을 듣기를 싫어하는 자보다 더 심한 귀먹어리는 없다는 옛말은 일리가 있읍니다.
23. (ㄱ)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을 어떻게 대조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마음의 태도와 정신적 시각과의 밀접한 관계를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23 이 점에 관한 예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율법에 능통”하였으며 “지식의 열쇠”를 가졌던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그리고는 이들 “어린 아이들”을 가르키시면서 제자들에게 향하여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10:21-23) 종교 지도자들이야말로, 예수를 그들의 메시야로서 인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좋은 입장에 있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성경에 능통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보다 더욱 깊이 그들의 전통 속에 빠져 있었읍니다. 그들의 전체 인생관은 악하고 이기적인 동기로 영향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겉으로 의롭게 보이려고 원하였지만, 그들의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차 있었읍니다. (마태 23:28) 예수께서는 문제가 되는 근원을 꼬집어서 지적하시고 올바른 마음의 태도와 명백한 시각을 가지고 올바로 볼 수 있는 능력간의 강력한 관계와 그에 따라 올바로 인도되는 점을 알리시기 위하여 이들 지도자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만일 육체의 눈이나 정신적인 눈이 나쁜 결함이나 나쁜 동기로 인하여 찌그러지게 본다면 그 사람의 전 생애와 행로가 그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되고 아마 재난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산상 수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요한 5:42-44; 마태 6:22, 23.
24.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과 축복을 구하는데 무슨 단계를 밟아야 하며, 우리에게는 무슨 자극적인 말씀이 주어졌읍니까?
24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밀접히 따르는 것 외에도, 우리는 진실하고 겸손하게 올바른 마음과 정신 태도를 유지할 필요를 명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성서의 가르침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관점과 온전히 일치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기꺼이 사물을 새 빛으로 살펴야 하며 그에 따라 우리의 행동 과정을 조절하고 시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우리로 여호와와 그의 수석 대행자와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한 가치 있는 동기를 가지고, 우리는 예수께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면서, 더 큰 관심과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더 조사해 볼 수 있읍니다.—누가 11:9.
[각주]
a ‘스트롱’ 씨의 ‘컨커단스’: 희랍어 사전, 16면. Nos. 746, X746.
[537면 삽화]
예수께서 침례 받으신 후 그의 위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짐은 그가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으신 분임을 증명하였다
[541면 삽화]
뱀은 간교하게 ‘하와’를 미혹하였다. 우리는 모든 사물을 하나님의 눈을 통하여 봄으로써 ‘사단’의 올무를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