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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는 정신을 갖지 않음파수대—196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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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꺾을 뿐만 아나라 자신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집니다. 그는 불만이 가득차고 불행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불평한 다음에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그 영혼을 환난 에서 보전하느니라.』는 현자의 말은 올바른 말입니다.—잠언 21:23.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라
16. 우리가 누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기 위해서 누구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합니까? 그리고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생각을 집중해야 합니까?
16 불평이란 마음과 정신에서 생기는 것이므로 우리의 생각을 적절히 통제하고, 힘과 격려가 되는 재료를 생각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호와의 도움을 반드시 구해야 함을 다음과 같이 알려 줍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그렇습니다. 만일 당신의 약점이 이것이라면, 그 약점을 극복하도록 도와 달라고 여호와께 주저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성실한 간구를 들으실 것이며, 당신에게 마음의 평화와 만족을 부여하시어 불평하고 불만족한 정신과 대치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각자가 기도와 일치하게 노력해야 할 것을 부언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 4:6-8.
17. (ㄱ) 빌립보 4:8에 있는 「바울」의 말을 적용하는 데는 왜 부단한 투쟁이 필요합니까? (ㄴ) 우리의 형제들의 결점으로 짜증이 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17 이와 같이 「바울」은 각자가 자기의 혀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각까지도 자제하여야 함을 강조합니다. 즉 우리의 형제들이 가진 선하고 덕이 있고 사랑할 만한 것들에 생각을 집중시켜야 합니다. 타락한 육신은 상대방의 약점을 먼저 보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 결과 상대방이 소유한 여러 가지 훌륭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성품에 눈을 감게 합니다. 그리고 누구에게서든지 약점을 발견 하기란 매우 쉬운 일이므로 불평하는 정신을 가진 사람이 불평할 재료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서 부단한 투쟁을 합니다. 우리를 질투하게 혹은 짜증나게 하는 것을 볼 때, 그러한 것을 즉시 잊어 버리고 그 대신 선한 성품들을 생각하려고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움으로 계속 노력하신다면, 당신은 당신의 형제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여호와께 대한 그들의 헌신을 더 깊이 인식하게 됨을 느낄 것입니다. 물론 당신 자신은 사귀기에 더 즐거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18. (ㄱ) 「바울」이 「고린도」인들과 「로마」인들에게 한 말로 볼때, 불평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잘못을 저지릅니까? (ㄴ) 그러므로 불평하는 태도를 극복하는 데 어떠한 사람이 더 수월할 것입니까?
18 불평하는 사람은 육신과 육신의 약점을 강조하며, 따라서 그 특정한 면에 있어서는 영적으로 애기와 같이 행동합니다. 심중으로 형제들이 나타내는 헌신과 사랑을 보는 대신, 타락하고 죄많은 육신에 관한 면만 봅니다. 「고린도」 회중이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지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편지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3:1, 3) 로마서 8:5에서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하여,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정규적 성서 연구와 집회 참석과 기도와 여호와께 대한 활동적 봉사를 통하여 항상 여호와의 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은 그러한 영적 활동에 있어서 비정규적인 사람보다 불평하는 경향을 더 수월하게 극복할 수 있읍니다.
개인에 대한 불평
19. 불평을 어떠한 두 가지 부류로 대별할 수 있읍니까?
19 불평하는 문제를 분석하건대 두 가지 부류로 대별할 수 있겠읍니다. (1) 개인에 대한 불평과, (2) 여호와의 조직과 목적이 포함된 좀 더 심각한 성질의 불평입니다. 먼저 개인에 대한 불평을 살펴 보고, 다음 기사에서 두번째 면을 논의하기로 합시다.
20. 개인에 대한 불평의 대부분의 원인은 무엇이며, 대개 그러한 불평은 미래 생각해 낸 것입니까?
20 개인에 대한 불평의 거의 대부분은 사소한 오해나 성격 차이로 생깁니다. 안존하고 말이 없는 자매는 좀 더 개방적인 다른 자매의 태도가 눈에 거슬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할지 모릅니다. 개인의 습관, 풍습,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좋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대단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어서 때때로 불평을 일으키게 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한 불평의 대부분은 미리 생각해 낸 것이 아닙니다. 단지 어떤 사소하고 눈에 거슬리는 행동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자극받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흔히 성급하게 말하며, 흔히 나중에 후회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불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겠읍니까?
21. 특히 마태 6:14, 15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우리 형제들의 사소한 단점을 어떻게 보아야 마땅합니까?
21 첫째로 그러한 불평의 본질을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그러한 불평은 대부분의 경우 사소하고 중요치 않은 것이며 유치하기까지도 합니다. 그러한 불평은 진정한 근거가 없읍니다. 이유가 있다면 단순히 어떤 형제나 자매가 당신이 정해 놓은 규범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여호와께서 우리 형제들의 『약점』을 기꺼이 묵과하시고 용서해 주신다는 것을 인식할 때, 여호와께서 그 약점을 얼마나 심중하게 여기실 것인가를 고려한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이 여러 가지 결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관대하게 용서하시지 않읍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의 단점을 생각하고 여호와께 누차 용서를 빌며, 아마 동일한 약점에 대해 용서를 빌지 않읍니까? 여호와의 용서를 받기 위한 선결 조건은 예수께서 마태 6:14, 15에 명시하신대로 남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22. 사소한 단점에 대해 불평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의 결핍을 표시하는 것인지 설명하십시오.
22 그러므로 우리가 그러한 사소한 단점 때문에 그 형제와 불화하고 그 단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확대시킨다면, 우리는 정말로 사랑과 용서심이 결핍되어 있음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천적 아버지의 본을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 . . 사랑은 . . .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고린도 전 13:4, 5; 베드로 전 4:8, 9)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우리는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용납』하라는 충고를 준 이유를 가히 이해할 수 있읍니다.—에베소 4:2.
23. 이러한 사소한 불만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23 그러므로 우리가 계속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려면, 사소한 불만이 생길 때, 그것을 마음 가운데서 완전히 제거함으로 잊어 버리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터무니없이 커지도록 방임하지 말고 뿌리를 박고 번성하기 전에 초기에 잘라 버리십시오. 불평하는 정신을 끊어 버리십시오. 그러면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 오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읍니다.
24. 예수께서는 좀 더 심각한 성질의 개인적 불평들을 어떻게 처리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4 그러나 어떤 형제나 자매가 정말로 불평을 들을 만한 일을 하였을 경우가 있읍니다. 알고 했든 모르고 했든 간에 그 형제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을지 모르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을 잊어 버리거나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당신은 그것이 당신의 마음에 대단히 번민거리가 되며, 심지어 여호와께 대한 봉사에까지 영향을 줌을 느낄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경우에 마태 18:15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적용할 것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25. (ㄱ) 형제에 대해 심각한 불평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일을 해서는 결코 안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마태 18:15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 왜 지혜로운가 설명하십시오.
25 비록 당신이 불평할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형제의 행동에 관해 다른 사람들에게 불평함으로써 회중 내에 퍼지게 해서는 결코 안됩니다. 이러한 일은 평화를 조성하지 못하며, 오히려 전 회중을 소요케 만들고, 심지어는 형제들 사이에 당파를 만들 가능성도 있읍니다. 당신의 감정을 상한 사람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당신의 불평을 간접적으로 들을 것이 틀림없는데, 그것은 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불평은 불화를 회복시켜 주는 대신 악화시킵니다. 잠언은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자를 이간하는 자니라.』고 말합니다. (잠언 17:9) 불평하는 태도는 사실상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올바른 방법은 형제와 사적으로 만나서 그 문제를 그와 함께 조용히 그리고 화평스러운 태도로 논의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 형제는 자기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는지 깨닫지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경우라면, 그 형제는 당신이 회중 내에 불평을 퍼뜨리는 대신 자기에게 직접 와준 것을 얼마나 고맙게 생각할 것인지 상상해 보십시오!
26, 27. (ㄱ) 상대방 형제가 용서를 구할 때, 감정이 상한 자는 어떻게 할 의무가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어떻게 할 의무가 있으며, 어느 정도까지 그렇게 해야 합니까? (ㄴ) 골로새 3:12-14의 「바울」의 충고가 모든 경우의 개인적 불평에 있어서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하십시오.
26 당신의 형제가 겸손하게 당신의 용서를 구할 때, 하늘에 계신 당신의 아버지께서 당신을 용서하여 주시는 것과 같이 그 형제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용서하여 주는 것이 당신의 의무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완전히 갚을 수 없는 빚과도 같습니다. (로마 13:8) 따라서 사도 「베드로」가 예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께서는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데 일곱번까지가 아니라 일흔 일곱번까지 하십시오.』라고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마태 18:21, 22, 신세) 우리의 형제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관대 하게 베풀므로써 우리는 그 보상으로 많은 즐거움과 행복을 거둘 것이며, 부식하고 당파를 일으키는 불평의 정신을 갖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깊이 인식하고 여호와와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함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불완전한 사물의 제도를 특징짓는 여러 가지 사소한 일에 보다는 우리의 장래에 영향을 끼칠 『더 중요한 일』(신세)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 시킬 수 있읍니다.—빌립보 1:10.
27 본 기사의 결론으로서 「바울」이 여러 해 전에 「골로새」인들에게 보낸 말을 경청하고 부지런히 적용합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개인적 불평을 하는 일이 없게 되는데 큰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 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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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조직에서 만족을 발견함파수대—196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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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조직에서 만족을 발견함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한 6:68.
1. 여호와의 피조물들은 왜 그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항상 우주 만물을 통제해 오셨읍니다. 별들과 태양, 달, 혹성들로 각자의 궤도를 돌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 하신 능력이며, 지구를 인간의 거처로서 인자하시게 유지하시고 보존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가하시는 모든 일은 절대적으로 완전하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최고 통치와 자비로운 감독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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