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악을 선으로 이김
1, 2. (ㄱ) 20세기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당한 악행의 몇 가지를 말씀하십시오. (ㄴ) 이러한 일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저버렸읍니까? (ㄷ) 왜 여호와의 증인들은 법정에 섭니까? (ㄹ)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그들에게 위로가 됩니까?
현대의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일치하게 생활할 의무가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성실하게 숭배하기 때문에 흔히 격렬한 박해를 당합니다. 어떤 이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또 어떤 이들은 갖은 모욕과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허위 고발을 당하였고 합법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하였읍니다. 그들의 자녀들은 퇴학을 당하였읍니다. 집과 재산은 파괴되었읍니다. 불법적인 강제 수혈을 당하였읍니다. 어떤 이들은 사업이 망하게 되었으며 믿음 때문에 실직을 당하였읍니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악한 대우를 받은 두드러진 역사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여호와의 증인들의 신세계 사회는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할 사명을 잊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당할 때 법적으로 자신들을 변호할 권리가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기쁜 소식을 변호하고 법적으로 확립하기 위하여 많은 비용을 사용하였읍니다.—빌립보 1:7.
2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선한 충고와 교훈에 감사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보복의 정신을 피하도록 도와 주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복수할 목적으로 법정에 서지 않았읍니다. 대신 그들은 마태 10:18-28에 있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였읍니다.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저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들은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게헨나’, 새번역]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그들은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증거하기 위하여 통치자들과 판사들 앞에 섭니다.
3. 박해자들에게 공격하는 것이 실용적이 아님을 증명하는 예를 드십시오.
3 그리스도인들이 전적으로 여호와께 의뢰하고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편, 그들은 결코 박해자들에게 대한 매우 육체적인 생각을 하고 조직적인 반격을 가하지 않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데 손꼽힌 사람이 ‘베냐민’ 지파의 ‘바리새’인 ‘사울’이었읍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보복으로 박해자 ‘사울’을 쳐서 죽였다면 그것은 실로 악행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 있는 한 그들이 박해자들일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그의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 대한 진실을 깨닫고 그리고 만일 그가 선한 마음을 가졌다면 ‘사울’과 같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읍니다. ‘사울’은 빛을 보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순결한 숭배를 받아들였읍니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돌이켜 참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할 수 있읍니다.—사도 9장.
4. 행악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종들의 합당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4 ‘사울’과 같이 성실한 마음을 가지지 않은 진정으로 악한 사람들, 돌아설 수 없는 악행자들에 대하여도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올바른 태도를 유지하고 여호와께 의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찌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요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시 37:1, 2, 8, 9) 의심의 여지 없이 여호와께서는 행동을 취하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의 심중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며 행악자들에게는 응분의 조처를 취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격려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시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누가 18:7, 8.
자제의 잇점
5. 왜 자제는 바람직합니까?
5 여호와께서 행악자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은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나 탁월하였으며 지상에 있는 그의 피조물들인 우리들에게 본이 됩니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약하고 불완전한 체질을 아십니다. 그러나 그는 각자의 심중에 있는 바에 따라 각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불완전한 인간에게 오래 참으신다면 우리도 마땅히 이것을 배우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제라는 영의 열매의 일부입니다. 다른 사람이 불쾌하게 할 때 참고 자제하는 데는 분명히 잇점이 있읍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불완전하고 다른 사람을 불쾌하게 할 수 있읍니다. 몇 가지만 자문해보아도 이 점을 알 수 있읍니다. 자기 가족의 어떤 사람에게 화를 낸 일이 없는 사람이 있읍니까? 당신이 화를 낸 적이 있읍니까? 잠깐 생각해 보십시오, 무슨 이득이 있었읍니까? 자제력을 잃어서 유익이 있었읍니까? 그 결과 큰소리만 오고 갔읍니까, 차근차근 이야기하게 되었읍니까? 발생된 일에 대하여 장성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6. 그릇된 행동을 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징계해야 합니까?
6 사실상 화를 내는 것은 실로 건강에 해롭습니다. 툭하면 식구들에게 화를 내는 부모들이 있읍니다.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신경을 대단히 예민하게 만들고 내성적이 되게 하며 혹은 고질적인 병에 걸리게 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읍니다. 그렇다고 하여 부모들이 자녀들이 무슨 짓을 해도 항상 눈감아 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과 반대됩니다. 때때로 징계가 필요하며 징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합당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부모라면 침착하게 자녀들을 징계할 것입니다. 흥분한 어떤 부모들은 자녀를 징계하다가 중상을 입히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나 징계를 받지 않은 자녀는 인생의 실패자가 될 것이며 자라감에 따라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가치있읍니다. 어린 아이에게 때때로 채찍을 사용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성경의 충고를 고려해 봅시다. “그리고 여러분, 아버지들이시여, 여러분의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을 여호와의 징계와 권위있는 충고로 양육하십시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 6:4, 신세; 4:31, 32.
7. 회중 내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과실을 범하는 것에 관한 합당한 견해는 무엇입니까?
7 ‘바울’이 에베소 4:31, 32에서 말한 것은 회중에도 적용됩니다.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말이 점점 다가옴에 따라 우리는 회중 내에서 매우 밀접히 연합해야 하며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를 반가와 해야 합니다. 마귀는 분노하고 있으며 자기의 때가 조금 밖에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난관을 조성합니다. 그러나 회중에는 사랑을 얻고 위안을 얻으며 다음 날의 시험과 문제에 대비하도록 세움을 받는 장소가 있읍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 4:7, 8) ‘베드로’가 범죄나 실수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고려한 것은 매우 장성된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류를 범하고 또 어떤 사람은 경솔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장성되어 가고 여호와의 영을 가지게 됨에 따라 우리는 확실히 용서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렇게 용서한다면 즉각적인 유익은 범죄자 즉 악행자에게 있지만 그러나 그 다음에는 우리에게도 유익이 있읍니다. 용서해 주는 대신에 악을 악으로 갚는다면 우리는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아버지께 범죄자가 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렇게 충고하셨읍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 6:14, 15.
8. 형제나 자매와의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8 심지어 회중 내에 있는 어떤 사람이 괘씸한 죄를 범하여 극도로 감정이 상하였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공식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라.]” (마태 18:15-17) 이것은 그리스도인 가정과 회중에 매우 좋은 조언입니다. 회중과 가정에서 차분히 앉아 그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불화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보복 혹은 앙갚음은 회중을 분열시킬 수 있으며 가정을 파괴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누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할 수 없다면(그리고 잊어버릴 수 없다면), 그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여 해결하고, 그 문제로 인하여 기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헌신한 가정에서나 회중에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먼저 여호와께 그의 충고를 따를 용기와 힘을 구하고 다음에 이에 근거하여 문제를 해결할 절차를 밟으십시오. 그러면 만족한 결과를 보게 될 것입니다.
감독자들
9. 감독자가 자신의 일로 억눌려 있을지라도 자신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라고 충고를 받고 있읍니까?
9 회중의 감독자들은 교리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는 사람을 바로 잡아주어야 합니다. 매우 어리석게 혹은 무지의 소치로 진리를 의문시하거나 성서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회중 내에 말썽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제력을 행사하고 문제를 침착하게 처리하라고 여호와께서는 지시하십니다. 다툴 필요가 없읍니다. 다투어 본댓자 아무런 소용이 없읍니다. 하나님의 영의 감동 아래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충고하였읍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디모데 후 2:23-26) 이러한 충고를 따름으로 감독자는 그리스도인 장성을 나타냅니다.
10. ‘바울’은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떻게 본이 됩니까?
10 심지어 믿음을 상실할 정도까지 되어서 해칠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자제하고 온유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과 상대한 경험이 있으며 분명히 그가 문제를 조용히 처리하였읍니다. 그는 디모데 전 1:19, 20과 디모데 후 4:1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 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라.]” 그러므로 ‘바울’은 악행자에게 개인적으로 가해함이 없이 감독자로서의 자기의 의무를 정확히 이행하였읍니다.
11. 감독자가 그가 하는 일에 있어서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형제들에게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11 때때로 감독자는 그가 회중에서 기대하는 지지를 얻지 못할 때가 있읍니다. 이것은 감독자에게 자제와 오래 참음의 정신의 어려운 시험이 될 수 있읍니다. ‘바울’은 이 점에 있어서도 본이 됩니다. ‘바울’이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다른 헌신한 사람들이 그에게 도움이나 후원을 베풀지 않았읍니다. ‘바울’은 악으로 갚을 생각을 하였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다시 그리스도인 장성을 증명하였고 천적 근원으로부터 위안과 도움을 받았읍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피력합니다.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디모데 후 4:16, 17) 그는 용서의 정신을 나타내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그들이 여호와께로부터 책망받게 되지 않기를 원하였읍니다.
12. 감독자는 회중에서 어떠한 정신을 계속 배양해야 합니까?
12 감독자는 침착하고 장성된 사고와 보복하지 않는 정신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또한 그는 회중 내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처신할 수 있는지 보여 주어야 합니다. 회중이 영적인 모든 일에 협력하는 것을 감독자는 크게 감사합니다. 감독자로서 ‘바울’은 올바른 정신을 권장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면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데살로니가 전 5:12-15.
13. 영의 열매는 어떻게 회중 내에 있는 모두에게 유익합니까?
13 만일 감독자와 회중 전체가 영의 열매를 나타낸다면 그 회중은 강하게 연합될 것이며 평화스러울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영의 열매들에 유의하십시오. “반면에, 영의 열매는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반대하는 법은 없읍니다. 더우기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못 박았읍니다. 만일 우리가 영으로 살면, 또한 영으로 단정하게 걸어갑시다.” (갈라디아 5:22-25, 신세) 이 모든 것들은 그 그리스도인과 그 주변의 사람들을 유익하게 합니다. 질서 있는 회중은 모두에게 축복이 됩니다.
14. (ㄱ) 육체의 일은 어떻게 남들에게 해롭습니까? (ㄴ) 회중 내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14 그와 반면에 육체의 일은 모두 자신과 남에게 해를 끼치며 따라서 피해야 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갈라디아 5:19-21) 어떤 사람이 이러한 악한 것 중 어느 것을 회중 내로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회중에게는 물론, 여호와께 대하여 죄를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회중은 복수 혹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는 정신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수행하고 회중의 의와 순결함을 보존하기 위하여 절차를 밟아 징계 조처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자제하기만 한다면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올바른 견해
15. 그리스도인들은 박해자들과 박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15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이러한 자제를 배우기가 매우 어렵게 보일지 모르나 그것은 가능하며 오랫 동안 하나님의 종들이 그렇게 해왔읍니다. (야고보 5:10, 11) 우리는 아무도 이러한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을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으로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전세계적으로 악을 행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하여 가엾게 여깁니다. 참으로 그들은 동정을 받을만 합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학대하고 그들에게 악을 행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지 못한 교육을 받았으며 매우 그릇된 훈련을 받았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악을 생각지 않고, 혹은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단지 육체의 경향을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박해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 낼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들이 그 죽이는 행위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일을 한다.” (요한 16:2, 3, 새번역) 이 말씀을 볼 때 우리는 예수께서 박해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셨는가를 알 수 있읍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였으며, 이 때문에 그들은 살인자들이 될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하여 그리스도인은 항상 여호와께 기도하여 도움과 인도를,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을 구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 그렇게 하였읍니다. (사도 4:24-31) 그리고 그들은 근본 문제를 이해하였기 때문에 악을 인내하고 그들의 사명에서 이탈함이 없이 여전히 즐거워할 수 있었읍니다. 박해자들은 “사도들을 불러다가 때린 후에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하고 놓아 주었읍니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할만한 사람이 된 것을 기뻐하며 의회에서 물러나왔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쉬지 않고 가르치며 전했읍니다.”—사도 5:40-42, 새번역.
16. 문제가 있을 때 올바른 말의 효과를 설명하십시오.
16 어떤 방법으로 보복하든지 모욕적인 언사로 맞서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 있으며 때로는 마음을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언 15:1의 충고를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이 말은 박해를 당할 때나 가정이나 회중에서 문제를 다룰 때 적용될 것입니다. 다투는 것은 백해무익합니다. 다투고 싸우고 보복하는 정신 때문에 온 집안이 망한 예가 있읍니다. 서로 말을 하지 않으려는 정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읍니다. 그러나 의사전달을 하지 않는 것도 가정과 회중에 분열을 자초합니다. ‘바벨’탑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 사람들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되자, 그들의 계획한 바가 모두 수포로 돌아갔읍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에게 교훈이 됩니다. 우리가 함께 무슨 일을 하려 할 때, 그리고 온유한 정신으로 서로 대하려고 할 때 의사 전달을 하는 것이 유익합니다.—창세 11:7, 8; 말라기 3:16.
17, 18. 진리와 그리스도인 인내는 어떻게 우리의 원수들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읍니까?
17 하나님의 말씀과 영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우리가 생활해 감에 따라 우리는 진리가 사람을 변화시켜서 박해자가 하나님의 숭배자가 될 수 있으며 상습범이 모범 시민이 되며 “싸움 대장”이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우선 진리가 그들의 정신과 마음 속 깊이 침투해야 합니다. 항상 모든 사람들에게 기꺼이 선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잠언 25:21, 22과 일치하게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967년 「여호와의 증인의 연감」은 다음과 같은 훌륭한 실예를 소개했읍니다.
“호의를 보임으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때때로 사람들이 진리의 지식에 이르도록 돕는 기회를 가졌읍니다. (히브리 13:2) 다음의 예는 이것을 증명합니다. 한 자매는 가정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귀가하는 길에 그가 연구를 사회한 젊은 여인의 어머니를 만났읍니다. 이 여인이 창백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보고 병이 났구나 생각하고 그 여인을 집안으로 초대하였읍니다. 그리고 이 여인이 진리에 반대하지만 최대의 친절을 베풀었읍니다.
“갑자기 이 여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매에게 ‘왜 나에게 이렇게 따뜻이 대해 줍니까? . . . 만일 댁에서 그걸 알았더라면 . . .’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 자매는 대답하기를 자신은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웃에게 사랑을 나타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그 여인이 아픈 것같아서 간호를 해드리려고 한 것 뿐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렇게 외쳤읍니다. ‘나는 아프지 않아요. 나는 당신이 내 딸의 사랑을 도둑질해갔기 때문에 댁을 죽이려고 왔어요. 내 딸은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있어요.’ 자매는 이 여인에게, 성서는 자녀들로 부모를 공경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사이를 떼어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더욱 가깝게 해 줄 뿐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잠시 생각한 다음에 여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댁에서는 매주 한 번의 오후는 내 딸을 빼앗아가고 있어요. 댁에서 딸을 보러 오니까요.’ 그러자 자매는 연구할 때 같이 참석하면 된다고 제안하였읍니다. 그리고 다음 주 약속을 하고 집으로 데려다 주었읍니다.
“자매는 처음에 약간의 곤란이 있었지만 결과가 있었읍니다. 이 여인은 이제 증인이 되었으며 남편도 증인입니다. 나이가 많아서 이 자매는 원하는 대로 다닐 수 없지만 딸이 가끔 임시 파이오니아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봐주고 있어 도움이 되고 있읍니다. 더욱이 그가 진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기 때문에 이웃 사람들도 도움을 받았읍니다. 이웃의 한 사람도 왕국 전도인이 되었읍니다.”
18 이 여인이 진리에 반대하였지만 그 자매가 선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마태 복음 5장에 있는 예수의 충고와 일치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원수에게까지도 사랑을 나타냄으로써 축복을 받아 훌륭한 결과를 보게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그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를 원하시는 데는 좋은 이유가 있읍니다.
19. 어떻게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악에게 지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읍니까?
19 현 사물의 제도에 대한 ‘사단’의 다스림의 종결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각양 각색의 악에 둘러싸여 있지만 악을 선으로 계속 이깁시다. 하나님의 왕국의 기쁜 소식을 전파하면서 우리에게 임명된 자애 사업에서 악으로 인하여 이탈되지 맙시다. ‘바울’의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말을 명심하십시오. 이 말에 의하면 악에게 지는 유일한 길은 악에게 지도록 자신을 허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의 도움으로 제어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여호와의 도움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악에게 지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로마 12: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