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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이 진동하여도 움직이지 않을 성전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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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만국이 진동하여도 움직이지 않을 성전
1. 이제 ‘유대’인들이 ‘학개’의 이전 예언에 따라 행동한지 얼마가 지났으며, ‘예루살렘’에서 어떠한 절기가 끝나고 있었읍니까?
‘유대’인들이 ‘학개’의 이전 예언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때 즉 기원전 520년 ‘바사’ 왕 ‘다리오’ 1세(‘히스타스피스’) 통치 제2년 유월(‘엘룰’월) 24일로부터 음력으로 한 달이 채 지나가지 않았읍니다. 칠일간의 초막절(혹은 장막절)이 새 달인 칠월 즉 ‘티쉬리’월 15일에 시작하였으며, 그 일곱째 날이 ‘티쉬리’월 21일에 끝났읍니다. 다음 날인 ‘티쉬리’월 22일에는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축하객들의 엄숙한 대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읍니다. 수도에서 열리는 이 초막절에는 ‘아론’ 제사직 24개반 전부가 참석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흥미롭게도 바로 초막절 축하 기간 중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그가 준공한 여호와의 숭배의 성전의 낙성식을 가졌었읍니다.—열왕 상 8:62-66; 6:37, 38; 역대 하 7:7-10.
2. 초막절은 또 무엇이라고도 불리웠으며, 무엇이 특징이었읍니까?
2 속죄일 닷새 후에 있었던 이 일곱째 달의 절기는 또한 수장절(收藏節)이라고도 불리웠읍니다. 땅의 농산물 수확을 고려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명령을 받았읍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칠일 동안 즐거워 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이 절기를 지킬찌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찌니라. 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찌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하려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위 23:33-43; 민수 29:12-38; 신명 16:13-17.
3, 4. (ㄱ) ‘유대’인들은 수장절에 무엇에 대하여 기뻐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거처는 어떻게 여호와의 거처와 비교되었읍니까? (ㄴ) 왜 그 때는 여호와께서 격려적인 소식을 전달하실 때였으며, 이 소식은 어떠한 말로 시작되었읍니까?
3 예언자 ‘학개’가 그의 첫 예언에서 한 말을 볼 때 송환된 ‘유대’인들이 기원전 520년에 많은 수확을 하였다고 믿기는 어렵습니다. (학개 1:5, 6, 9-11; 2:16, 17) 그러나 그들이 창고에 거두어 들인 것이 좀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자비와 참으심 때문이었읍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칠일간의 수장절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뻐할 수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절기에 한 바와 같이 그들이 ‘예루살렘’ 안팎에서 임시 초막에 거주하면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집에 판벽널을 대거나 지붕을 잘 덮지 않았읍니다. 그때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숭배의 전이 그러하였던 바와 같습니다. 이제 성전을 재건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에게는 격려가 더 필요하였읍니다. ‘티쉬리’월 21일은 아직 절기였으므로 ‘예루살렘’은 ‘유다’ 총독과 모든 제사장들을 포함하여 여호와의 숭배자들로 붐비고 있었을 것이며, 영감 받은 소식을 그들에게 전달하기에 좋은 때였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소식이 전달되게 하셨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4 “칠월[‘티쉬리’월 혹은 ‘에다님’월] 곧 그 달 이십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 것이 없지 아니하냐?”—학개 2:1-3.
5. (ㄱ) 여호와의 질문 형태로 보아 이 때에 참석하였던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읍니까? (ㄴ) 비교하여 보면 참으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었읍니까?
5 그러한 질문을 받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성전의 토대, 즉 십육년전인 기원전 536년에 놓여진 기초뿐이었읍니다. (에스라 3:8-13) 질문 형태로 보아 그 때에, ‘바벨론’에 잡혀 갔던 사람으로 팔십 칠여년전인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 사람들이 성전을 멸망시키기 전에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보았던 매우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약간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솔로몬’의 성전이 얼마나 화려하였는가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만이 그것과 그들이 지금 보는 것과를 온전히 비교할 수 있었읍니다. 이전 성전 대지에 현재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비교가 안될만큼 보잘것 없었읍니다. 그렇다면 당장 보기에 그렇게 초라하고 비천한 성전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겠읍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진행하는 것이 가치있을 것입니까? 그러나 성전은 여호와의 집이 될 것이었으므로 중요한 문제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인상적이고 적절한 것으로 만드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6. 성전 재건의 문제는 사실 누구에게 달렸으며, 따라서 사실은 누가 그것을 지을 것이었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실 것이었읍니까?
6 그 문제는 사실 의도된 집에서 숭배를 받으실 하나님께 달려 있었읍니다. 그 집이 재건되어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고 ‘이스라엘’ 국민의 영적 관심사를 촉진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읍니까? 그것이 그분의 뜻이었으므로, 건축자들은 그분의 뜻과 그분의 일을 하게 될 것이었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더라도 그분의 승인과 후원과 지지를 받을 것이었읍니다. 사실 ‘이스라엘’인 건축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그분이 집을 지으실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가장 중요하였읍니다. ‘솔로몬’이 시편 127: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 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7. (ㄱ) 그 전 재건에 누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왜 그러하였읍니까? (ㄴ) 그들이 적들을 두려워 하지 않도록 여호와께서는 ‘학개’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7 그것이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와 관련된 문제였으므로 그러한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친히 일을 추진하셨읍니다. 그 분께서 건축을 하실 분이었읍니다. 그 점을 고려하여 볼 때 그들은 적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해서 두려움에 질릴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그의 예언자 ‘학개’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찌어다.”—학개 2:4, 5.
8. 그 성전 건축자들은 어떤 면으로 강해야 하였으며, ‘고린도’에 있던 사도 ‘바울’의 경우도 어떻게 비슷하였읍니까?
8 성전 재건의 책임을 진 그 ‘이스라엘’ 남은 자들은 믿음이 강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 공사로 그들의 믿음을 나타낼 것이었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읍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이 후에 이태리 ‘로마’ 회중에게 말한바와 같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로마 8:31) 이 말을 한 ‘바울’ 자신이 기원 1세기에 희랍의 ‘고린도’ 시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경험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그러한 보증은 참으로 힘을 북돋아 줍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행전」의 기록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 줍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 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바울’은 믿음을 보이고, 들은 말씀대로 행동하였읍니까?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가] 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사도 18:9-11.
9. (ㄱ) 마찬가지로, 그 성전 건축자들은 어떠한 면에서 강해야 하였으며, 누구의 인도를 받아야 하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과 맺으신 무엇을 그들은 기억해야 하였으며, 이제 왜 그것이 필요하였읍니까?
9 마찬가지로, 송환된 ‘이스라엘’ 남은 자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력히 의뢰하고 그의 일을 행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들 가운데 최고위 관리였던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인도할 책임이 있었읍니다. 그렇게 하면 그외의 남은 자들은 그들을 따라 그들과 함께 일할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의 조상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해야 하였읍니다. 그때는 학개의 말을 듣고 이것을 기억해야 할 적절한 때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조상은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사십년 동안 여행할 때 장막 혹은 초막에 거하였는 데, 바로 지금 ‘이스라엘’ 남은 자들은 이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조상의 그러한 경험을 기억하여 초막절을 기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조상은 도중에 적들을 만났지만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구출하시고 그의 언약을 지키시어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읍니다. 동일한 구출의 하나님께서 그때에 ‘예루살렘’에서 초막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남은 자들과 함께 하셨읍니다. 그들은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더 큰 영광이 예시됨
10, 11. (ㄱ) 그 성전 건축자들은 왜 비교해 본 것으로 실망해서는 안되었읍니까? (ㄴ) 그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제 ‘학개’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0 ‘이스라엘’ 남은 자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솔로몬’의 웅장한 성전에 비해 보잘것 없는 것으로부터 일을 시작한다고 하여 실망해서는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성전 건축 공사에 그들이 수고하여도 뛰어난 결과 혹은 주목할 만한 결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믿음의 노동의 산물로부터 참으로 훌륭한 것을 보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자극하고 기대에 부풀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강화하여 일해야 할 이유를 예언자 ‘학개’를 통하여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11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6, 7, 신세 참조.
12. 우주적 진동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누가 여호와께 향할 것이 암시되어 있읍니까?
12 이 말은 그 ‘이스라엘’ 남은 자들이 그들이 지으려는 숭배의 전에 대하여 간직해야 할 가슴 설레게하는 전망이 아니었읍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 앞에 그 전망을 제시하셨읍니다. 따라서 그것은 확실히 실현될 것입니다. 우주적 진동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그 진동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들의 땅의 높은 것들과 낮은 것들이 진동하여 그 결과 제자리에서 떠나갈 것이며 동시에 멸망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진동을 통하여서도 한 가지 것은 진동하지 않고 남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남은 자들이 건축한 그 전일 것입니다. 그 말은 그 전이 존속하는 것같이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가 존속할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 숭배의 전을 그분께서는 영광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왜냐 하면 만국의 보배가 그리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보배는 만국 가운데서 그 분을 섬기는 길에 들어선 사람들에 의하여 들어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숭배의 그 전은 지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전이 될 것입니다.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그 곳에서 여호와를 숭배할 뿐아니라 만국의 비‘유대’인들도 그 곳에서 여호와를 숭배할 것입니다!
13.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성전 건축 공사에 대하여 이번에 어떠한 보증을 받았으며, 그러므로 그들로 일하게 하는 훌륭한 자극제는 무엇이었읍니까?
13 이것은, ‘이스라엘’ 남은 자들에게 이번에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완성할 것을 보증하였읍니다. 세계를 뒤흔드는 어떠한 사건이 그들 주위에서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 목표는 영광스럽게 달성될 것입니다. 전세계를 어지럽히는 요동과 진동으로 전세계가 혼란되고 두려워하고 마음이 빼앗길지라도 여호와의 숭배의 전 건축 공사는 계속되어 틀림없이 영광스러운 완성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즐거움에 넘치는 낙성식이 있을 것입니다! (신명 20: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약속하셨으므로 그것은 성취되고야 말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강력한 힘의 도움으로 일해야 하였읍니다! 일하게 하는 참으로 훌륭한 자극제였읍니다!
14, 15. “또 한번”이라는 표현은 무엇 즉 어디에서 언제 있었던 일과 관련되어 있읍니까?
14 그러면 언제 이런 일이 있을 것입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 (학개 2:6, 신세 참조) “또 한번”이라면, 이전에 언제 그런 일이 있었읍니까? 이보다 전에 언제 그는 만물을 진동시키셨읍니까? 그런 일이 기원전 1513년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해 음력 삼월(‘시완’월)에 남쪽 ‘시내’ 산에서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달(‘시완’월) 초하루에 그들은 ‘시내’ 산 앞에 진을 치고 있었읍니다. 바로 이 산이 여호와께서 타서 없어지지 않는 떨기나무 불의 기적 가운데 천사를 통하여 예언자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산입니다. 그들이 그곳에 진을 친지 사흘째 되던 날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출애굽기 19:16-19의 기록을 읽어 봅시다.
15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 기슭에 섰더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16, 17. (ㄱ) 그 때에 무슨 경고가 있었으며, 그리고나서 무엇이 주어졌읍니까? (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것에 대하여 무슨 요청을 하였읍니까?
16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동을 삼가며 산에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산에 접근하지 않도록 지시하신 후에 여호와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시내 산 꼭대기에서 십계명을 발표하셨읍니다. (출애굽 19:20에서 20:17) 하나님의 이 말씀이 있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직접 여호와의 음성을 더 듣고자 하였읍니까? ‘모세’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17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이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출애굽 20:18-21.
18. (ㄱ) 후에 ‘모세’는 언제 ‘시내’ 산에서의 이 경험을 다시 언급하였으며, ‘다윗’은 시편 68편에서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 진동은 거룩한 장막의 건축 및 낙성과 어떠한 관계가 있읍니까?
18 예언자 ‘모세’는 거의 사십년후에 ‘이스라엘’ 젊은 세대에게 말한 고별사 가운데서 ‘시내’ 산에서의 이 경험을 다시 언급하였읍니다. (신명 4:9-14; 18:15-19) 시편 필자 ‘다윗’도 영감을 받아 아름다운 노래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저 ‘시내’ 산도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진동하였나이다.” (시 68:7, 8) 온 산이 진동한 이 일은 쉽게 잊혀지지 않았읍니다. 또한 흥미롭게도 ‘시내’ 산이 이처럼 진동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한 회막 즉 장막을 완성하기 아홉달 전 일이었읍니다. 그후 이듬해인 기원전 1512년 음력 정월(‘니산’월) 초하루에 이 거룩한 장막의 낙성식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시내’ 광야에 세워진 장막에서의 여호와의 숭배가 시작되기 전에 이 요동과 진동이 있었읍니다.—출애굽 39:42에서 40:37.
19. 학개 2:6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또 한번 진동시키실 것이나, 이번에는 무엇을 진동시키실 것입니까?
19 학개 2:6에 있는 여호와의 선언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또 한번 땅을 요동 혹은 진동시키실 목적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그리고 이 진동은 또한 하늘과 바다와 육지의 진동을 수반하게 되어 있읍니다. 언제 그러한 진동이 있을 것입니까? “조금 있으면 [또 한번]”이라고 그 분은 말씀하셨읍니다.
20. ‘예루살렘’에 재건된 실제 성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 진동하는 일이 학개 2:6-9의 일차적 성취로 어떤 기간에 일어나야 하였읍니까?
20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기원전 520년 ‘티쉬리’월 21일이었읍니다. 성전 재건은 ‘바사’의 ‘다리오’ 1세 통치 제6년(기원전 515년) 음력 12월 3일(‘아달’월 3일)까지 끝나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학개 2:6-9의 예언을 하신지 사년 사개월여가 지난 후였읍니다. 그 후에 재건된 성전 낙성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에 이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대로 그 거룩한 전을 영광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에스라 4:24; 6:14, 15)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재건된 그 실제 성전과 관련된 그의 예언대로 요동하고 진동하는 일은 예언의 일차적 성취로 그 기간(기원전 520-515년) 중에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역사 기록은 그 예언이 그 특정한 때의 국제적 사건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증명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때는 ‘바사’ 제국에 있어서 참으로 상당한 혼란기였읍니다.
21. 오늘날 우리는 왜 학개 2:6-9의 예언의 더 큰 성취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까?
21 그러나 우리는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은 모형적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더 큰 성전인 그의 영적 성전의 소규모적 형태였읍니다. 그의 헌신한 백성은 오늘날 그분을 그 영적 성전에서 숭배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학개 2:6-9의 더 큰 최종적 성취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현대 성취의 확실성
22. 어느 해부터 현대 국가들은 불안정해 왔으며,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2 지식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십세기에 들어와서 열네째 해 이래 나라들에게 비상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즉시 동의할 것입니다. 기원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 대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 모든 나라를 비틀거리게 하는 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읍니다.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연합 기구의 도움으로도 안정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모두 실패를 거듭하여 왔읍니다. 이 모든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러한 사태는 마침내 어떻게 될 것입니까? 장래사를 말하는 정치인들과 세계 역사가들은 믿을 수 있는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대답이 전혀 없읍니까?
23. 기원전 6세기의 어떠한 소식에 그 대답이 들어있읍니까?
23 그 대답이 통용 기원전 6세기의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말씀 가운데 들어 있읍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6, 7.
24. 그 예언의 말씀의 적용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24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의 예언자 ‘학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 그 가슴설레게 하는 말씀이 단지 그 예언자의 시대나 “조금” 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우리는 그 동일한 말씀이 현대 우리 시대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25. (ㄱ) 후에 동일한 민족에게 보낸 글의 어떠한 인용에 그 대답이 들어있읍니까? (ㄴ) 왜 그 사람들은 임박한 재난으로 인하여 조심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25 ‘학개’가 예언한지 오랜 후, 사실상 약 580년 후에 그 예언이 하나님의 영감 하에 인용되었고 장래에까지, 현 국제적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까지 적용시켜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학개’의 예언도 그러하였지만 그의 예언의 인용도 ‘히브리’인들 곧 ‘히브리’ 족장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보낸 글에 나와 있읍니다. 그러나 이 후자의 ‘히브리’인들이 통용 기원 1세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읍니다. (창세 14:13; 히브리 1:1, 2; 2:16) 그들에게 ‘학개’의 예언을 인용한 때는 ‘예루살렘’과 재건된 성전이 ‘로마’인들에게 기원 70년에 멸망당하기 약 십년 전이었읍니다. 따라서 큰 변동이 임박하였고,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은 아직도 지적 ‘예루살렘’과 물질적 성전에 고착하고 믿지 않는 ‘히브리’인들과 같이 재난과 사망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26.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필자는 그들에게 ‘에서’를 언급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6 영감받은 필자는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이 영적 가치에 대한 합당한 인식을 가지고 올바른 길을 추구함으로써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지 않도록 할 것인가를 말하면서, 그 영감받은 필자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거룩한 것을 인식하지 않는 자, 신세]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그의 아버지 ‘이삭’의]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브리 12:14-17.
27. (ㄱ) 이들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의 입장은 ‘시내’ 산에서의 그들의 조상들보다 왜 더욱 심각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어떻게 ‘에서’와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읍니까?
27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들이 ‘메시야’ 즉 ‘다윗’ 왕의 후손이며 족장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의 추종자들이 된 후로 상태가 놀랍게 변하였읍니다. 그들 ‘히브리’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기원전 1513년에 예언자 ‘모세’에게 인도되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의 조상이 직면하였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심각한 환경에 직면하였읍니다. 더 큰 일들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었으며 영원히 상실될 위험에 있었고 그것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결국 멸망을 당할 수 있었읍니다. ‘아브라함’의 아들인 족장 ‘이삭’이 그의 물질주의적인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데도 회개하기를 거부한 것과 같이 이들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이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베푸신 과분한 친절에 대한 인식을 상실한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시기를 거부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손자로서 자기에게 열려진 영적 기회에 대하여 과소 평가한 ‘에서’와 달리 그들은 거룩한 것을 더럽혀서는 안되며, 거룩한 것들에 대하여 온전한 인식을 나타내고, 이러한 것을 굳게 잡아야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감받은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온 이들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이렇게 계속 말하였읍니다.
28. 필자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히브리’인들은 무엇에 이른 것이 아닙니까?
28 “너희의 이른 곳은 [‘시내’ 산과 같이] 만질만한 불 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이르거든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을 저희가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이 무섭기로 [중보]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29.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히브리’인들은 무엇에 이르렀으며, 어떠한 여러 환경에 이르렀읍니까?
29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옛날 ‘시내’ 산에 있던 천사들만이 아니라]와 하늘에 기록한[‘이삭’의 지적 족보에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장자들[‘이삭’의 장자 ‘에서’보다 더 큰 장자들 즉 하나님의 그리스도인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시내’ 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대표 천사가 아니라]과 및 온전케 된 의인[‘시내’ 산에 있던 ‘히브리’인들과 같이 단죄된 죄인들이 아니라]의 영들과 새 언약[‘모세’의 중보로 맺어진 율법 언약보다 더 나은]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예수 그리스도의 피]니라.”—히브리 12:18-24; 갈라디아 3:19; 사도 7:37, 38.
30.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들 ‘히브리’인들의 입장에 대하여 무엇을 더 인식할 수 있읍니까?
30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이 이른 그 모든 더 큰 것들을 고려할 때에 우리는 그들이 기원전 1513년에 ‘아라비아’ ‘시내’ 산 앞에 있던 그들의 ‘히브리’인 조상보다 더욱 심각한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들에게는 상실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았읍니다. 그들이 만일 ‘이삭’의 장자 ‘에서’와 같이 되어 하늘에 기록된 하나님의 영적 장자들과 관련된 거룩한 것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멸망을 당할 수 있었읍니다.
31. 오늘날 누구에게 동일한 사실이 적용되며, 그러므로 이들은 열심히 어떻게 해야합니까?
31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들이 개종한 ‘유대’인이건 개종한 이방인이건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영감받은 말씀인 거룩한 성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보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한 성경을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은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분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부가적인 것들을 주의깊이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온전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변명을 하면서 그러한 말씀을 듣지 않거나 주의를 돌리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영감받은 필자는 그리스도인 ‘히브리’인들에게 이렇게 계속 말합니다.
32. 그러므로 필자는 회피하는 일에 대하여 계속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32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회피, 신세; 변명]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시내’ 산을 진동시켜 산산 조각이 되게 하지는 않았음]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33.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그러한 약속을 하셨으며, 이제 그 필자가 그것을 인용하는 것이 왜 적절하였읍니까?
3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그러한 약속을 하셨읍니까? 바로, 고대 ‘예루살렘’에 주어진 학개 2장 6절의 예언에서 약속하였읍니다. 그 말씀은 이러합니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이 약속은 예언자 ‘학개’가 그들에게 이 예언을 말한 ‘조금 후에’ 온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말한 필자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영감받은 해설을 가하였읍니다.
34. 그 필자는 학개 2:6을 인용하고 어떻게 해설하였읍니까?
34 “이 또 한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제거, 신세]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에서’와 달리]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시내’ 산에 붙었던 불처럼 파괴적인]이심이니라.”—히브리 12:25-29.
35. 필자는 “또 한번”이라는 말을 어느 때에 적용시켰으며, 그러므로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에게 무엇이 가까왔음이 분명합니까?
35 주의깊게 살펴 보았읍니까?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에게 쓰고 있는 필자는 “또 한번”이라는 표현을 미래에 적용하고 진동하지 않을 유일한 것은 왕국, 하나님께 가납될 방법으로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상속할 왕국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또한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은 모두 제거되고 그 자리를 왕국 곧 굳게 서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다스릴 정부가 차지할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은 이미 격동하고 요동하고 진동하고 있을지는 모르나 아직 제거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영감받은 성경의 해석을 근거로 하여 볼 때, 학개 2:6, 7의 예언이 현 이십세기에 적용되며, 그 예언의 완전한 성취가 장차 있을 것이며 매우 가까왔음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36. 학개 2:6, 7의 현 이십세기 성취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6 실제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는 제거되거나 소멸되지 않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 예언이 소규모적으로 처음에 성취될 때 즉 ‘학개’ 시대 조금 후에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약속이 현 이십세기에 성취될 것입니까?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6, 7.
37. 언급된 모든 것의 진동의 결과로 어떠한 일이 있을 것이며, 이것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것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야 합니까?
37 언급된 모든 것들의 요동과 진동의 결과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라는 점을 누구라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지상의 실제적 숭배의 전이 아니라 그의 참 성전 즉 그의 특별한 마련의 테두리 안에서 영과 진리로 그 분을 숭배하는 영역에서,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순수한 숭배가 미화되고 높여질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 4:21-24) 여호와께서는 살아 있는 모든 우주 가운데서 그 분께 합당한 숭배의 장소를 마땅히 받으셔야 합니다. 이 올바르고 순수한 숭배를 반대하고 방해한 모든 것은 제거되어 없어져야 합니다. 히브리 12:26, 27에 있는 영감받은 필자의 말에 의하면 그 모든 것들의 요동과 진동은 그들이 제거되고 진동의 결과로 산산조각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38. 진동 혹은 요동과 관련해서,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른 것들(히브리 12:22, 23)은 어떠할 것입니까?
38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은 진동되지 않을 것이며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위치한 하늘의 “‘시온’ 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회중’도,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도 진동되지 않을 것이며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 12:22, 23) 헌신하고 침례받고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른 이러한 것들은 멸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솔로몬’ 왕과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이 땅 ‘예루살렘’에 건축한 성전들과 같은, 이 지상에 있는 모형적 물질적 성전과 무관하며 그러한 것에 의존해 있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멸할 수 없는 것들은 여호와의 더 큰 성전 즉 그의 영적 성전과 관련이 있읍니다. 그 성전은 그 지성소(하늘 자체)에 그 분을 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성전입니다. (열왕 상 8:27; 이사야 66:1; 사도 7:48-50; 17:24, 25; 히브리 9:23, 24) 또한 그 멸할 수 없고 제거할 수 없는 것들은 여호와의 “진동치 못할 나라[왕국]”와 관련이 있읍니다.—히브리 12:28.
39. 그러므로 진동하는 “하늘”은 문자적입니까, 상징적입니까? 그 이유는?
39 그러면 진동하고 요동하고 제거될 “하늘”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진동자이며 요동자이며 제거자이신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명백한 대답을 알려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히브리’ 그리스도인인 사도 ‘요한’에게 주신 감탄스러운 ‘기호’의 책인 「계시록」에서 그 분은 그 하늘들이 제거되는 일을 상징적으로 설명해 주셨읍니다. 계시록 20:11에서 그분은 사도 ‘요한’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기록하게 하셨읍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그 피하여 간 하늘 대신 다른 것이 들어 앉았읍니다. 계시록 21:1, 2에서 ‘요한’은 계속 이렇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여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상징하는 기호인 것과 같이(계시 21:9), “처음 하늘” 즉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서 피하여 없어진 “하늘”도 “기호” 즉 상징입니다.
40, 41. 우리는 계시록 12:3-5, 7-12에서 “하늘”의 의미에 대한 어떠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읍니까?
40 무엇의 “기호”입니까? 분명히, 인류를 지배하는 어떤 보이지 않는, 영적이고 천적인 조직을 상징하는 “기호”임에 틀림없읍니다. 계시록 12장에서 이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기호, 신세]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 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41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 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새번역]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계시 12:3-5, 7-12.
42. 이 기록을 볼 때, “하늘”은 무엇을 상징한 것임을 알 수 있읍니까?
42 기호로 된 이 기록에는 상징적 “하늘”이 ‘사단’ 마귀와 그의 지배 아래 있는 악귀 천사들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는 영의 조직을 상징한다는 것이 명백히 나타나 있읍니다. ‘사단’ 마귀는 이러한 악한 악귀 천사들과 함께 “온 천하”를 꾀어왔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인류 세상의 “임금”이라고 부르셨읍니다. (요한 12:31; 14:30; 16:11)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그의 신분을, 불신자들의 정신을 어둡게하는 “이 세상 신”이라고 밝혔읍니다. ‘바울’은 또한 그를 “공중의 권세잡은 자 ···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불렀읍니다. (고린도 후 4:4; 에베소 2:2) 사도 ‘요한’은 인류 세상에 대한 ‘사단’의 영향력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또 아는 것은 우리[그리스도인들]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니라.]” (요한 1서 5:19) ‘사단’과 그의 악귀 천사들은 에베소 6:12에서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부른 자들입니다. 그들은 현재 악한 인류를 지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하늘입니다.
43. 그 “하늘”이 이미 요동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읍니까?
43 그들이 인류를 영원히 지배하는 “하늘”이 아님을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가까운 장래에, 온 인류에게 임할 다가오는 “큰 환난” 후에 그 “하늘”은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피하여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계시 20:11) 그러므로 그들은 제거될 “하늘”입니다. 그들은 온전히 멸망되도록 요동될 수 있는 하늘입니다. 그들의 요동은 이미 시작되었읍니다.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난 1914년 초 가을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하늘에 탄생한 후에 시작되었읍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호위하는 “대군”이신 하늘의 ‘미가엘’의 역할을 하는 즉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 마귀와 악귀 조직에게 전쟁을 일으키셨읍니다. 그 결과 이들 악한 영의 세력은 하늘의 그들의 처소에서 요동되어 이 땅 근처로 떨어져 내려왔읍니다.
44. “하늘”이 흔들려 상부 하늘과의 접촉이 끊어진 결과 무슨 일이 있었으며, 언제 요동하는 일이 끝날 것입니까?
44 흔들려 떨어져 이전과 같이 하늘과 접촉할 수 없게 되자 분노한 그들은 인류에 대한 “화”를 증가시켰고, 또한 이 땅에 있는 여호와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백성들인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박해를 가져왔읍니다. (계시 12:5-13, 17; 다니엘 12:1) 그러나 그들이 이처럼 비하되었다고 하여 그들의 요동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최종적으로 요동할 때는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후일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감옥과 같은 무저갱에 떨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구속된 인류를 아무런 간섭없이 다스리는 천년 동안 그곳에 감금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현재의 그 악한 “하늘”은 사라질 것이며, 의가 영원히 거하는 “새 하늘”에게 길을 열어 줄 것입니다.—베드로 후 3:7-13; 계시 20:1-3.
45. “하늘”이 요동하기 시작한 일로 말미암아 어느 곳의 일이 영향을 받았으며, 문자적 지구의 요동과 제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45 악귀 하늘이 마침내 무저갱에 빠질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동안 지구 근처로 이처럼 비하되고 제한되었기 때문에 기원 1914년 이후 지상 인류의 제반사는 막대한 영향을 받았읍니다. 그러면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하늘”뿐 아니라 “땅”을 진동시키고 요동하게 하고 격동시키겠다는 약속을 성취시키실 것입니까? (학개 2:6; 히브리 12:26) 요동할 “하늘”이 인류 위에 있는 문자적 보이는 하늘이 아니듯이 그 하늘과 대조를 이루는 “땅”도 인간의 발 밑에 있는 문자적 땅이 아닙니다. 문자적 땅과 그 영존성에 대하여 시편 104:5은 하나님의 창조물에 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사 영원히 요동치 않게 하셨나이다.” 이와 일치하게 우리의 문자적 지구는 진동하고 요동하여 제거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46. 그러므로 요동하고 제거될 “땅”은 무엇이며, 그것은 언제부터 존재하게 되었읍니까?
4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진동시키고 요동시켜 제거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상징적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관련된 “하늘”이 지성있는 산 피조물[‘사단’ 마귀 아래 있는 악귀 영들]로 구성되어 있는 바와 같이 상징적 “땅”도 지성있는 산 피조물로 구성된 사회 즉 악한 자 ‘사단’ 마귀의 세력하에 있는 인간 사회입니다. 이 불경건한 인간 사회는 ‘노아’ 시대의 홍수 얼마 후에 존재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사실상 전세계를 망라하고 있읍니다. (계시 12:9; 요한 1서 5:19) 이 상징적 “땅”과 그것을 지배하는 “하늘”은 “이제 하늘과 땅”을 구성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고 베드로 후서 3:7은 알려줍니다.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 소멸시키는 불로 사르듯이 상징적 “땅”을 멸망시키시기 전에 어떻게 그 분은 그것을 진동케하고 요동케하고 격동케 하실 것입니까?
“땅”을 진동시킴
47.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상징적 “땅”을 요동케 하기 시작하셨읍니까?
47 이 일을 시작하시는 그 분의 방법은 인간 사회의 거처인 문자적 지구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그분은 결코 이전에 하신 일이 없는 방법으로 하실 것입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인간 사회는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땅과 바다를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지구의 창조주를 무시하는 처사이며, 그릇되고 근시안적인 주장입니다.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1914년에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가 끝나기까지 이러한 견해와 그에 따른 행동을 방해하시거나 도전하시지 않고 내버려 두셨읍니다. 드디어 1914년에 그분은 하늘에 그분의 메시야 왕국을 탄생하심으로 그분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셨읍니다. 계시록 12:5에 하나님의 “여자”의 “아이”인 “아들”로 묘사된 이 보이지 않는 천적 정부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도록 임명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우주 주권을 주장하심으로 말미암아, 상징적 “땅” 곧 불경건한 인간 사회, 오랫동안 안정된 상태에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의 허락으로 문자적 땅을 자기 소유물처럼 다루고 마치 그들이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는 양 땅을 오용한 인간 사회가 요동하였읍니다.
48. 영적 아닌 상징적 “땅”은 우주 주권자 여호와의 보이지 않는 천적 행동으로 인하여 어떻게 충격을 받았읍니까?
48 그러나 인간 사회가 우주 주권자의 이 보이지 않는 천적 행동을 알지 못한다면 지상의 인간 사회가 어떻게 그 일로 말미암아 진동 혹은 요동하겠읍니까? 영적 아닌 인간 사회가 어떻게 그것을 느끼며, 그것에 의하여 충격을 받겠읍니까? 그것은 그들이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가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한 1914년에 끝났다는 통고를 받게 하심으로써 입니다. 그들의 장기간의 세계 지배는 이제 끝났읍니다. 이제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였도다.]” (계시 11:17, 18) 지상 인간 사회에 이 우주적 변동에 관하여 통고하는 일은 현재 통치하시는 주권자 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분의 지상 대사들에 의하여 수행되었읍니다.
49. 통고하는 일을 하는 그 “대사”들은 누구이며, 왜 그들의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지금 더 긴급합니까?
49 “대사”들은 누구입니까? 이들은 헌신하고 침례받고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들로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그의 두번 째 편지 5장 19절과 20절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대사]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을 잡으시고 하늘에서 신생 메시야 왕국을 통하여 통치를 시작하셨으므로 지상 인간 사회가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였읍니다. 세계적 사물의 제도 전체를 완전히 제거할 때는 임박하였으며, “마지막 때”는 시작하였읍니다. (다니엘 12:4) 문제는, 누가 그 제도와 함께 멸망 당하는 일을 피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50. 상징적 “땅”은 왕국 대사들의 통고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50 상징적 “땅” 곧 전쟁에 시달린 인간 사회는 그리스도의 손에 있는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의 “대사”들이 통고하는 소식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땅은 평온을 되찾고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신생 왕국과 화목하라는 초대에 평화스럽게 응하였읍니까?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합니다. 전쟁에 찢긴 땅은 그러한 통고를 받고 진동하고 요동하고 격동하였읍니다. 계시록 11:18의 예언과 같이 ‘이방 나라들은 분노’하였읍니다. 즉 왕국 대사들에 대하여 분노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들 왕국 대사들을 탄압하기 위하여 세계적 전시 사태를 이용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폭력적 박해를 자행하기까지 하였고 어떤 경우에는 대사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읍니다. 이것이 바로 당시에 만국 성경 연구생으로 알려진 헌신하고 침례받고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당한 경험입니다. 그들이 오늘날에는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51. (ㄱ) 왕국 대사들에 의한 통고와 그 영향에 대하여 더욱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이 원인은 어떻게 히브리 12:26에 기록된 바와 같았읍니까?
51 상징적 “땅”이 진동하고 요동하고, 여호와의 왕국 대사들을 적대시하여 맹렬히 격동한 때에 그 “땅”이 만든 수치스러운 기록이 역사에 뚜렷이 실려 있읍니다.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충실한 대사들의 통고 활동은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왔으며 그 범위를 넓혀왔고 상징적 “땅”은 이러한 통고와 그 도전적 의미로 말미암아 아직도 진동하고 요동하고 격동하고 있읍니다. 이러한 통고가 참이라는 증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때”의 특징을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신 일들이 성취되고 있읍니다.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누가 21:11) 그러나 상징적으로 말하여 그것은 히브리 12:26에서 말한 바와 같았읍니다. 즉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 임재하시어 십계명을 주실 때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던 것과 같이 되었읍니다. 오늘날 그의 왕국 대사들이 그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소식을 전하는 일로 말미암아 상징적 “땅”이 요동하여 왔읍니다.
52. 진동될 또 다른 것들 즉 “바다”와 “육지”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52 지상의 인간 사회의 모든 요소는 진동하고 요동하여 왔읍니다.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다음과 같은 말씀과 같이 되었읍니다. “조금 있으면 [또 한번]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 시킬 것이[라.]” (학개 2:6) 지구 표면에는 바다와 육지가 있읍니다. 바다는 계속 움직이고 있고, 육지는 지방적으로 지진이 일어날 때를 제외하고는 매우 안정되어 있읍니다. 학개 2:6의 예언은 “하늘과 땅”의 경우와 같이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바다”는 인간 사회의 한 부분 즉 불안정하고 뒤숭숭하며, 말하자면 “진흙과 더러운 것”을 솟쳐내며, 평화롭지 못하고, 급진적 변화를 바라며, 계속 “육지”와 충돌하는 부분을 상징할 것입니다. (이사야 57:20) 이와 대조적으로 상징적 “육지”는 지적 인간 사회의 안정된 부분, 비교적 견고하고 보수적이며 급진적 변화를 반대하고 현상을 유지하려는 부분을 상징할 것입니다.
53. 인간 사회의 두가지 요소가 진동하여 왔는지의 여부가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53 그러나 인간 사회의 이러한 두가지 요소는 다같이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좋아하지 않고 인간들이 지구를 다스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도 영적 대사들이 “열국의 지정된 때”가 만료되고,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이 지금 하늘에서 통치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인 사물의 제도가 이전에 결코 경험한 일이 없는 큰 환난에서 완전히 제거될 때가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통고를 받고 진동하여 왔읍니다. (마태 24:3-22; 마가 13:4-20) 인간 사회의 보수적 요소와 급진적 요소가 다같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소식을 듣고 진동하고 있다는 증거로 그들은 하나님의 소식의 선포자들 즉 왕국 대사들에 대하여 “분노”하여 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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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라’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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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라’
1. 학개 2:7은 만국의 진동 후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의 숭배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고 하여서는 안됩니까?
분명히, 학개 2:6의 예언은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14년에 우주 주권을 잡으신 후로 성취되어 왔읍니다. 그러나 예언을 더 살펴 보면, 만국이 진동하는 결과로 사람이 만든 지상의 사물의 제도가 완전히 제거되는 것 외에 또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학개 2:7에서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하십니다.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성전 즉 그의 순수한 숭배의 전을 영광스럽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볼 때, 누가 감히 이 험난한 때에 여호와께 대한 참 숭배를 경멸하거나 경시하겠읍니까?
2. 기원 1914년 이래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나라들을 진동시켜 오셨으며, 왜 나라들의 최종적 반응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까?
2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예언 그대로 만국을 진동시켜 오셨읍니다. 기원 1914년 이래 그 분은 왕국 대사들을 만국에 보내어 우주적 상태에 일어난 중대한 변화를 통고하셨읍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언 가운데서 말씀하신대로 되었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3-14, 신세) 모든 나라는 그들이 지금까지 왕국 대사들에 대하여 분노하여 왔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역사 기록은 나라들이 그렇게 하였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나라들의 분노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았읍니다. 앞으로 있을 결정적 최종 단계에 가서도 왕국 대사들은 계속 여호와의 우주 주권에 고착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소식에 따라 생활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모든 나라는 최종적으로 분노를 터뜨릴 것입니다.
3. 여호와께서는 어느 정도로 나라들을 진동시키실 것이며, 그러므로 현재 그들이 종교적 관용을 베푼다 하더라도 어떠할 것입니까?
3 지상의 정치 국가들의 적의는 최대한으로 나타날 것이며,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나라가 마침내 파멸되어 영원히 제거될 때까지 그들을 진동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들이 현재는 왕국 대사들에게 혹시 종교적 관용을 베푼다 하더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그런 일에 속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4. 국가들이 전체 정치 체제로서 학개 2:7의 예언을 성취시켰읍니까? 그 여부를 무엇이 증명합니까?
4 만국이 최종적으로 분노를 터뜨리고 그들이 격렬하게 제거되기 전에 학개 2:7의 예언에 의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합니까? 이런 일입니다.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면 역사적 사실은 지금까지의 이 예언의 성취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모든 정치 국가가 전체 국가로서, 정치 체제로서 여호와의 숭배의 참 성전으로 들어오지 않았으며, 자기 나라의 보배를 기꺼이 선물로 가져오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기원 1914년 이래 일어난 모든 사건에도 불구하고 나라들은 아직도 그들의 지적 주권을 포기하지 않고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옹호하기를 거절합니다. 1945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그들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 국제 연합을 설립하였읍니다. 그들은 이 국제 연합에 오늘날까지 필사적으로 집착하고 있읍니다. 그 국제 기구는 여호와의 주권에 대하여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읍니다.
5. 진동하는 나라들 안에 있는 개개 시민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으며, 그들은 누구와 연합하였읍니까?
5 그러나 강한 진동을 경험해 온 만국내에서 그 동안 함께 뭉쳐 있으려고 노력하여온 개개 시민들은 어떠합니까? 지금까지 왕국 전파에 대하여 정치적 정부의 태도와 다른, 그리고 정치와 야합한 종교 단체의 태도와 다른 반응을 보여온 사람들이 수십만명이 있읍니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그러한 정치적 정부하에서는 행복하고 평화스럽고 풍요한 장래를 기대할 수 없음을 인식하였읍니다. 그들은 현 사물의 제도의 정치 국가들의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이라는 것을 인식하였읍니다. 그들은 ‘사단’ 마귀가 “이 세상 신”이라는 것을 절감하며, 정치 국가를 숭배함으로 그 거짓 신을 숭배하는 일이 있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든 주권이 당연히 지존하신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를 그의 참 숭배의 전에서 숭배하기 위하여 그 분께 전적으로 헌신하였읍니다. 그들은 그 분의 대사들과 연합하였읍니다.
6. 여호와의 주권 및 숭배의 그러한 현대 옹호자들을 볼 때 우리는 ‘이사야’의 무슨 예언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까?
6 여호와의 우주 주권 및 숭배의 그러한 현대 옹호자들을 볼 때 우리는 자주 인용되는 이사야 2:2-4의 예언이 감격적으로 성취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말일에 [그 날들의 마지막 부분에, 신세]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위에 뛰어 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7. 이 일은 언제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에 의하여 일어났읍니까?
7 이 “마지막 때”의 첫 부분이 아니라 “그날들의 마지막 부분에” 이 국제적 군중이 가장 높이 올려진 “야곱[혹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로 몰려들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만방” 즉 만국에서 나오고 있으므로 왕국 대사들처럼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닙니다.
8, 9. 그 예언의 성취는 어느 해부터 눈에 띄게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무슨 사건 후에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8 “만국”에서 나온 이들 개개인들이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서 연합해서 숭배하기 위하여 상징적 “여호와의 산”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읍니까? 그 일이 눈에 띈 것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기 4년전인 1935년 8월 1일호와 15일호 「파수대」지에 “큰 무리”라는 2부로 된 기사가 나온 후였읍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그보다 앞서 1935년 5월 31일 금요일 오후에 미국 ‘와싱턴’ 시에서 열린 여호와의 증인의 대회에서 발표된 것입니다. 그 연설과 인쇄된 기사는 다음과 같은 계시록 7:9, 10에 예시되고 예언된 “큰 무리”에 관하여 설명하였읍니다.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더라.]”
10.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누구로 구성되어 있읍니까?
10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그 앞의 다섯 귀절(계시 7:4-8)에서 묘사되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게 되어 있는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과 구별되었읍니다. 이 국제적 “큰 무리”는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왕겸 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이 아닌 최근에 나온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구성됩니다. (계시 20:4-6) 그들은 그러한 인을 받지는 않았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헌신하고 침례 받은 제자들입니다. 그 분에 의하여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맞은 제자들 144,000명으로 이루어진 천적 왕국 하의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되었읍니다. 이들 인 맞지 않은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0:16에서 말씀하신 “다른 양들”에 속합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935년이래 모아지고 있는 이 “다른 양들”의 수는 매년 증가하여 참으로 “큰 무리”를 이루었읍니다.
“보배”가 보존됨
11, 12. (ㄱ) 그들이 여호와의 숭배의 전에서 보배와 같은 존재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옳습니까? (ㄴ) 그들도 진동하여 파멸될 것 중에 끼어 있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11 그러한 헌신하고 침례받은 “다른 양들”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에 바쳐진 전에서 보배와 같은 존재입니까? 참으로 그러합니다! 이들이 사실 만군의 여호와의 예언대로 그의 성전으로 숭배하기 위하여 들어오는 “만국의 보배”입니다. 여호와께서 만국에게 원하시는 것은 물질적 선물과 재정적 헌금이 아닙니다. 그 분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으로부터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와 같은 살아 있는 아름다운 숭배자들을 원하십니다. (요한 4:23, 24) 이들은 전세계 사물의 제도에 임할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진동하고 요동하여 산산조각이 나서 멸망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러한 양같은 사람들은 그 파괴적 환난 중에 보존될 것입니다. 이 사실이 다음과 같은 질문과 대답에 강조되어 있읍니다.
12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사도 ‘요한’]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시 7:13, 14.
13, 14. (ㄱ) 그러면 학개 2:7의 다음 부분 즉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ㄴ) 이것이 계시록 7:15에는 어떻게 예언되어 있읍니까?
13 만국에서 나오는 “다른 양들”이 이름으로써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의 예언의 다음 부분 즉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하리라”는 말씀을 성취시키십니다. (학개 2:7) 숭배자들이 없는 텅빈 성전은 만군의 여호와께 영광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숭배의 장소를, 깨끗이 씻어 희게 된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고 외치는 숭배자들로 채우는 것은 여호와의 전을 온갖 물질적 장식물로 채우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숭배의 전이 이렇게 영광으로 채워진다는 것이 ‘요한’의 질문에 대한 답 다음 부분에 예언되어 있읍니다.
14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계시 7:15.
15. (ㄱ) 이 증가하는 “큰 무리”가 밤낮 하나님을 섬기는 곳은 사실 어디입니까? (ㄴ) 여호와께서 이처럼 성전을 영광으로 채우시는 것을 보고 지상에서 누가 외경감을 금치 못합니까?
15 수십만명의 “다른 양들”의 이 “큰 무리”가 지금 우주 주권을 가지고 즉위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 이미 있읍니다. 그들은 어느 곳에서나 그의 메시야 왕국과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온 인류의 구원을 선포함으로, 그곳에서 밤낮 그분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고 있읍니다. 그들은 인맞은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였던 이방인의 뜰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바로 이 큰 영적 성전에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제사장보로 섬기고 있읍니다. 이 때문에, 영적 제사장보로 섬기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현재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에 성실하게 가담하는 “다른 양들”의 이 증가하는 “큰 무리”와 사랑으로 연합하여 있읍니다. 그러한 제사장보들은 하나님께서 이처럼 그의 성전을 영광으로 채우시는 것을 보고 외경감을 금치 못하고 있읍니다.
16. (ㄱ) 그들을 “큰 환난”에서 보존하시려는 목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일을 하십니까? (ㄴ) 어린 양같은 목자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주십니까?
16 양같은 숭배자들로 이루어진 “큰 무리”가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보존되리라는 것이 이러한 말로 약속되었읍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 그들이 진동해서 멸망되어 땅에서 제거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것이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 있는 “큰 무리”에 관한 이러한 부가적인 말씀 가운데 보증되어 있읍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하나님의 불쾌하심]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시 7:15-17.
17. (ㄱ) 이와 같은 일이 이전에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 일어난 일이 있읍니까? (ㄴ) 성전에서의 그 분께 대한 숭배는 어떻게 그분께 영원히 보증되었읍니까?
17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놀라운 일이 이전에는 결코 없었읍니다. 만국에서 나온 그렇게 많은 “보배”가 들어와서 그 영적 성전을 영광으로 채운 적이 이전에는 없었읍니다. 이 영적 성전에서의 여호와의 숭배는 그분께 영원히 보증되었읍니다. 만국과, 상징적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고 요동시키는 일이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아마겟돈’에서 웅대한 절정에 이르고, 그 다음 ‘사단’을 무저갱에 넣을 때에 그 분이 즉위하여 계시는 영적 성전은 요동하지 않고 굳게 서 있을 것입니다. 그 곳에 있는 그분의 숭배자들은 그분의 장막 아래에서 인자한 보호를 받을 것이며, 앞으로 영원히 거룩한 숭배를 드리도록 보존받을 것입니다.
나중 전의 더 큰 영광
18. “만국의 보배”가 창조주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만국의 보배”가 위대하신 창조주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그들의 하나님이신 그분께 대한 순결한 숭배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제도들과 ‘유대’ 종교 및 기타 종교 제도들은 그들의 숭배의 전을 금과 은과 기타 땅에서 가치가 높은 물질적 보물로 채웠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질적 부가 홀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서 그의 숭배자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모든 물질의 소유자이십니다.
19. (ㄱ) 우리는 물질적 선물로 하나님을 부유하게 할 수 있읍니까? (ㄴ) 왜 성전 건축자들은 ‘학개’ 시대에 비용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읍니까?
19 그러한 가치 있는 물질을 어떤 종교 건물에 가져온다고 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더 부유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읍니다. 이미 창조주의 것을 창조주께 드린다는 것은 여러 종교의 사제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지는 모르나 창조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전을 영광으로 채우는 데 그러한 물질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학개’의 예언은 계속 이렇게 알려줍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 2:8) 당시 ‘학개’ 시대, 즉 기원전 520년에 ‘예루살렘’ 성전 건축자들은 비용에 대하여 염려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렇게 부유하신 하나님을 모신 그들에게는 그럴 필요가 없었읍니다.
20. 창조주께서는 필요한 모든 비용이 조달되도록 어떻게 하실 수 있으셨으며, 건축자들은 처음 전망이 밝지 않았다 하더라도 왜 실망할 필요가 없었읍니까?
20 그 당시, 창조주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성전 건축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물질의 소유자이셨읍니다. 그들은 바로 그분의 숭배의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마치는데 필요한 모든 재정적 지원을 하여 주실 것을 그분께 의뢰할 수 있었읍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영으로, 물질적으로 풍부한 어떤 사람들을 감동시켜 재건 사업에 사용할 헌금을 하게 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 분께서 계획된 숭배의 새 전을 영광으로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은 확신을 가지고 전 재건을 착수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보증이었읍니다. 그것은 완성될 것이었으며 숭배자들은 그리로 올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처음 보기에는 전망이 밝지 않았다 할지라도 성전 건축자들은 실망할 필요가 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나중에 완성시키지 못하고 손을 뗄 수 밖에 없는 것을 시작하라고 격려하실리가 없었읍니다. 온 우주 가운데서 가장 부유한 분이 그들 배후에 계셨읍니다.
21. 그것은 「시온의 파수대」에 게재된 어떠한 말을 상기시켜줍니까?
21 이것은 우리에게 1879년 8월에 「파수대」지 제2호에 실린 “당신은 「시온의 파수대」를 원하는가?”라는 제목 아래 2면에 있는 내용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하였읍니다.
이 말을 돈을 간청하는 말로 생각하지 말라.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시온의 파수대”를 지원하심을 믿으며, 사실이 그러할진대 사람들에게 결코 후원을 구걸하거나 탄원하지 않을 것이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분이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여 주시지 않을 때에 우리는 그때가 바로 출판을 중지할 때라고 이해할 것이다.
이러한 말이 당시 6,000부의 잡지에 게재되었읍니다.
22. 성전 건축자들은 왜 엄청난 믿음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으며, 그들은 어떠한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었읍니까?
22 ‘예루살렘’의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나머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엄청난 믿음을 나타낼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때에 여호와의 숭배의 전 재건에 대한 ‘바사’ 제국의 공식 금지령이 아직도 유효하였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였읍니다. 그 뿐 아니라, 건축자들은 ‘솔로몬’ 왕이 건축한 영광스러운 이전의 성전과 비교할 때 그 검박한 공사의 시작은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보였기 때문에 실망을 느끼게 되는 것을 물리쳐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격려해 나가기 위하여 여호와의 견해를 가질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예언자 ‘학개’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견해를 이러한 말로 알리셨읍니다. “이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이 나중 전의 영광이 이전 전의 영광보다, 신세]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9.
23. ‘나중 전의 영광이 이전 전의 영광보다 크다’는 말을 이해하려면 여호와의 참 성전에 대하여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23 이 예언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억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한 거처인 지성소가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다는 것과 이 영적 성전은 ‘예루살렘’ 전체가 황폐된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성전의 지상에 있던 모형이 멸망되었을 뿐입니다. 여호와의 진정한 영적 성전은 앞으로 존재하게 되어 있었으며 재건될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시점에서 미래에 있을 영적 성전은 오늘날까지 존속하여 왔으며, 우리 시대에 여호와의 예언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성취는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그 하나의 영적 성전에 적용됩니다.
24. ‘학개’ 시대에 “나중 전”과 “이전 전”은 무엇 무엇이었으며, 어떻게 나중 전의 영광이 이전 전의 영광보다 컸읍니까?
24 그 당시 즉 2,490여년 전인 ‘학개’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새로운 두번 째 성전이 건축되어야 하였읍니다. 그것이 “나중 전”이 될 것이었읍니다. 파괴된 ‘솔로몬’의 성전은 “이전 전”이었읍니다. 이 두 전은 모두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었읍니다. (히브리 9:23) 학개 2:9에 있는 여호와의 보증에 의하면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감독 하에 ‘예루살렘’에 건축되는 성전의 영광은 ‘솔로몬’ 왕의 성전의 영광보다 클 것이었읍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었읍니까? 우선, 더 오래 사용된 면에서 그러하였읍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420년간 존속하였는데 반하여 이 전은 기원전 515년부터 기원 70년까지 584년간 존속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나중 전”은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 계속 존재하였고 그 분은 그 곳에서 가르치셨읍니다. 더욱이, 기원전 17년에 ‘로마’ ‘유대’ 도의 ‘헤롯’ 대왕은 ‘스룹바벨’의 성전을 점차적으로 재건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전을 ‘솔로몬’의 성전에 필적하는 장엄한 성전으로 만들려고 많은 돈을 투입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전에 대한 숭배자들의 인식이었읍니다.
25. “나중 전”의 더 큰 영광은 성전에서 숭배하는 자들 면으로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25 그러므로 ‘솔로몬’의 성전의 경우보다 ‘예루살렘’에 재건된 여호와의 숭배의 전에 더 많은 숭배자들이 모인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더 오랜 기간 그러하였읍니다. 또한 성전은 ‘유대’인들이 지상 여러 곳으로 흩어져 포로 생활 혹은 망명 생활을 하기 시작한지 90여년 후에 재건되었으므로 숭배자들은 이전 성전의 경우보다 더 지상의 여러 곳에서 왔읍니다. 기원 33년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에는 육적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대’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리기아’, ‘밤빌리아’, ‘애굽’,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및 ‘유대’로부터 왔읍니다. (사도 2:1-11) 이렇게 해서 나중 전은 종교적으로 더 큰 후원을 받았으며, 따라서 예언의 모형적 성취에 있어서 영광이 더 컸읍니다.
26. 여호와의 영적 성전은 지상의 인간들이 건축한 모형적 성전으로부터 어떠한 영광을 얻었읍니까?
26 그러면 여호와의 예언은 영적 성전 즉 파괴될 수 없는 유일한 성전, 결코 재건되거나 대치되지 않을 성전에게는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이러한 면으로 성취되었읍니다. 즉 ‘솔로몬’과 ‘스룹바벨’과 ‘헤롯’이 건축한 그 물질적 성전이 서 있던 기간중에 지상의 ‘예루살렘’에 있던 그 모형적 성전을 통하여 여호와의 진정한 영적 성전에 주의가 이끌려지고 있었읍니다. 기원전 593년에 예언자 ‘에스겔’이 기적으로 환상 가운데 본 성전도 모형적으로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에스겔 40:1에서 47:2) 그러한 세속적이고 지적인 성전들은 인간이 보기에 웅장하기는 하였지만 그 곳에서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참된 영적 성전의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을 온전히 인식시켜 줄 수는 결코 없었읍니다. 실체에 대한 이 모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기원 29년에 물에서 침례를 받고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약속된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되실 때까지 계속되었읍니다.—마태 3:13-17; 요한 1:29-34.
27. 기원 29년에 여호와의 참 성전은 어떻게 지상의 모형적 성전외에도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읍니까?
27 그 후부터 여호와의 영적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형적 성전 외에도 더 많은 것을 갖게 되었읍니다. 그때부터 이 영적 성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 대제사장”이 됨으로써 정식으로 실재하게 되었읍니다. (히브리 6:20; 시 110: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전의 첫 방 즉 성소(聖所)로 상징된 영적 상태로 들어오셨읍니다. 이 성소에는 금촛대와 진설병 상과 금향단이 있었읍니다. 또한 그분은 구리 제단이 있는 성전 제사장 뜰로 상징된 상태로 들어오셨으며, “세상 죄”를 위한 속죄의 희생으로 자신의 완전한 인간 몸을 바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제단으로 다가가셨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진정한 영적 성전과 관련된 속죄일의 실체가 시작되었읍니다. (히브리 8:1에서 10:10) 이러한 절차가 기원 33년까지 3년 반 동안 계속되었읍니다.
천적 성전이 영광스럽게 됨
2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그리고 언제 성전의 안 휘장으로 비유된 간막이를 통과하셨으며, 그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28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에 영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그의 희생을 마치셨고 그의 시체는 매장되었읍니다. 세째 날인 기원 33년 ‘니산’월 16일에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영자(靈者)로 부활되어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장막으로 상징된 간막이 즉 육체를 통과하셨읍니다. 그리하여 그는 진정한 지성소 곧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신 하늘 그 자체로 들어가실 수 있었읍니다. 거기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자신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시고 인류를 위하여 속죄하실 수 있었읍니다.—히브리 9:23-28; 6:19, 20; 10:19, 20.
29.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계신 곳에 나타나심으로 어떻게 여호와의 참 성전에 영광이 부여되었읍니까?
29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정한 지성소로 들어가셨을 때에 이것은 여호와의 진정한 영적 성전에, 이전에 결코 가져보지 못한 영광을 부여하였읍니다. 왜냐하면 ‘영광스럽게’ 불멸성으로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받아 부활되신 그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그분이 계시는 지성소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 전 15:42-57; 히브리 7:15-24.
30. 다른 사람들이 성전의 성소로 상징된 상태로 들어온 것은 언제였으며, 안의 휘장으로 상징된 간막이를 통과할 사람들의 수는 마침내 얼마나 될 것입니까?
30 기원 33년 ‘시완’월 6일 오순절에 여호와께서는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읍니다. (사도 2:1-38)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영으로 출생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기름부음을 받아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제사장보가 되었읍니다. (요한 3:3, 5; 고린도 후 1:21; 요한 1서 2:20-27; 3:1, 2; 베드로 전 2:9) 이와 일치하게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로 상징된 제사장들의 영적 상태로 들어와서 실체적 금촛대의 빛과 진설병 상을 즐기고 금향단에서 기도의 향을 피우게 되었읍니다. (히브리 9:1, 2; 누가 1:8-12, 21, 22) 영적 ‘이스라엘’ 회중은 마침내 144,000명의 영적 제사장보가 될 것이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설립된 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될 때 각각 영의 몸으로 ‘영광스럽게’ 불멸성을 옷입고 일으킴을 받을 것입니다.—로마 6:5; 고린도 후 5:1-5.
31. 이것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의 영광을 어떻게 더 할 것입니까?
31 이와 같이 “첫째 부활”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하늘의 지성소로 안내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할 것입니다. (계시 7:4-8; 14:1, 3; 20:4-6) 여호와께서 이 충실한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을 친히 계신 지성소로 그처럼 영광스럽게 입장하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 분은 ‘헤롯’이 다시 수축한 ‘스룹바벨’의 물질적 성전이 지상에서 모형으로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 동안 그의 성전이 이전에 전혀 갖지 않았던 영광을 그 영적 성전에 더 하실 것입니다.
32. 사람이 만든 모형적 ‘예루살렘’ 성전의 바깥 뜰의 경우는 어떠하였으며, 언제까지 그러하였읍니까?
32 ‘예루살렘’에 그러한 모형적 성전이 있을 때에 제사장 뜰 밖에 있는 성전 뜰은 도처에서 온 숭배자들로 붐비었읍니다. (시 84:1, 2, 10; 누가 1:21) 기원 70년 이후로는 숭배자들의 무리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숭배의 전 뜰로 모여들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숭배를 위한 모형적 물질적 성전은 영원히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요한 4:20-24; 사도 21:26-28; 마태 24:1, 2; 누가 21:5-7, 20-24) 사람의 손으로 만든 모형적 성전의 영광은 영원히 사라졌읍니다. 이제 우리는 더는 장차 있을 좋은 것들의 그림자의 시대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속하는 영광스러운 실체의 시대에 살고 있읍니다. (골로새 2:16, 17; 히브리 10:1-4, 10) 그러면 참 성전의 뜰들은 어떠합니까?
33. 이 진동의 시대에 여호와의 영적 성전과 관련하여 “만국의 보배”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하게 됩니까?
33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의 진정한 영적 성전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예언자 ‘학개’를 사용하여 “만국의 보배”가 그의 숭배의 전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예언하셨읍니다. 이 일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가 진동할 때에 있을 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주적 격동이 극적인 절정에 이를 때에 점점 가까이 오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이제 시기에 적절한 한가지 질문이 있읍니다. 만국이 진동하여 산산조각이 나서 제거되기 전에 만국에서 실제로 그러한 보배가 이르고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34. 그러면 여호와의 영적 성전 뜰은 어떻게 이전에 없던 영광으로 채워졌읍니까?
34 그들 수십만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형태로 “이르”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들을 그의 “다른 양들”로 인도하셨으며, 그들을 여호와의 성전 뜰에 있는 영적 제사장보 중 아직 생존한 남은 자들과 “한 무리”가 되게 하셨읍니다. (요한 10:16; 계시 7:9, 10)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여호와의 뜰에서 질서있게 거룩한 봉사를 드리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그들의 구원에 대한 감사를 돌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를 영광스럽게 하는 광경을 이루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나 대성당 및 ‘유대’교의 회당이 아니라 여호와의 영적 참 성전을 이전에 없던 영광으로 채우고 있읍니다. 참으로 분명한 사실은 이미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개 2:9) “이 전의 새로운 영광이 옛 것을 초월할 것이다. 야훼 사바오드의 말이다.” (예루살렘) “이 전의 미래의 영광이 첫 번 것보다 더 클 것이다.”—바잉튼.
진동 중에 있는 평화
35, 36. (ㄱ)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위안이 되는 말로써 ‘학개’를 통한 그의 두번째 예언을 끝맺으셨읍니까? (ㄴ) ‘예루살렘’의 성전은 평화스럽게 종말을 고하였읍니까? 오늘날 지상 어디에 평화가 깃들어 있읍니까?
35 여호와께서는 다음과 같은 위안을 주는 말로써 ‘학개’를 통한 그의 두번째 예언을 끝맺으셨읍니다.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9.
36 기원 70년에, ‘예루살렘’과 ‘스룹바벨’이 건축하고 ‘헤롯’ 왕이 보수한 성전이 파괴된 것은 평화롭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가장 끔찍한 환난 가운데 그렇게 되었읍니다. (마태 24:1-22) 그러나 여호와의 진정한 영적 성전은 평화가 영속하는 장소입니다. 참 그리스도인들이 그 숭배의 영적 전에서 집회를 올바로 개최해 나가는 일에 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 모든 일을 적절하게 또 질서있게 진행시키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전 14:33, 40, 새번역) 이러한 행실의 법칙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집회에서 볼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평화의 영이 넘쳐 있읍니다.—갈라디아 5:22, 23.
37. 사방이 진동할지라도 남은 자들 및 “큰 무리”와 관련하여 여호와의 전 뜰에 어떻게 평화가 주어져 있읍니까?
37 만군의 여호와께서 상징적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키는 반면 그분은 그의 영적 성전의 지적 뜰에는 평화를 주십니다. 그의 영적 제사장보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그의 숭배의 전에서 그들의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고 있으며, 이 세상의 논쟁과 분쟁에 전혀 휩쓸리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른 “다른 양들”의 “큰 무리”는 이사야 2:2-4에 있는 그들에 대한 예언을 상징적으로 행하여 왔읍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었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었읍니다. 그들은 육체의 싸움을 연습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다가오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의 적들에게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확신하고 그 분이 싸우시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을 것입니다. (계시 16:14-16; 역대 하 20:15)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고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보일 것입니다.—야고보 3:17.
38. ‘학개’ 시대에 좌절감에 빠졌던 성전 건축자들 앞에 놓였던 어떠한 전망이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을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떠한 훈계를 받고 있읍니까?
38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의 숭배의 영적 전에서 오늘날 누리고 있는 평화는 참으로 웅대합니다! “만국의 보배”가 연이어 들어 옴에 따라 여호와의 영광이 그의 영적 성전을 채우는 것은 보기에 참으로 즐겁습니다! 오래 전에 ‘예루살렘’에 새로운 성전을 건축하던 사람들이 한 때는 좌절감에 빠져 있었으나 여호와의 예언자 ‘학개’의 도움으로 그러한 놀라운 전망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 앞에 놓이게 되었읍니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나라가 진동하는 현 시대에 ‘학개’의 예언이 감탄스럽게 성취되는 것을 보고 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숭배의 전에서 그 분께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이 사실로부터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인식이 부족하였던 ‘에서’와 같이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을 잃지 말라는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교훈은 바로 이들 남은 자들에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히브리 12:16, 17, 28, 29.
[85면 도해]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헤롯이 재건한 성전
(평면도)
티로피안 골짜기
기드론 골짜기
동쪽으로 감람산
행각
왕의 행각
솔로몬의 행각
북행각
이방인의 뜰
바깥뜰
돌장벽
여인들의 뜰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들의 뜰
성전
성벽
성벽
미문
문
문
문
문
문
문
1. 지성소
2. 성소
3. 번제단
4. 바다
5. 성전 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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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민족을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부르심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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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한 민족을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부르심
1. 지금까지 ‘학개’는 얼마 동안 혼자 예언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고무하셨읍니까?
예언자 ‘학개’가 ‘예루살렘’에서 그의 두번째 예언을 한 때 즉 기원전 520년 음력 칠월(‘티쉬리’월) 이십 일일로부터 적어도 열흘이 지났읍니다. 아직도 ‘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이었읍니다.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자들인 충실한 ‘유대’ 남은 자들은 이제 고토에서 십칠년간을 보냈읍니다. ‘바사’ 제국의 이전 왕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내린 금지령이 아직도 유효하였읍니다. 성전 재건은 기원전 536년에 기초만 놓인 채 그대로 있었읍니다.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숭배의 전의 재건에 대한 단순한 인간의 금지령이 해제될 때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예언자 ‘학개’를 일으켜 송환된 ‘유대’인들을 고무하여 성전 건축 사업을 재개하도록 하셨읍니다. 이 일이 음력 유월(‘엘룰’월) 초하루에 있었읍니다. 음력으로 두달 동안 ‘학개’는 혼자 유일한 예언자로 재건 사업을 계속 권고하였읍니다.
2. 여호와께서는 성전 건축자들의 믿음과 용기를 더욱 북돋기 위하여 무엇을 마련하셨읍니까?
2 ‘학개’의 예언만으로도 충분하였고 그의 예언은 ‘유대’인들이 행동하도록 자극하였겠지만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는 사업을 지체없이 재개할 여호와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여호와의 두번째 증인이 ‘유대’인들에게 있다면 그것은 더욱 믿음과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었읍니다. 사려깊게도 여호와께서는 중대한 시기에 두번째 예언자로 ‘스가랴’라는 사람을 일으키셨읍니다. 성전 건축에 대한 금지령과 얼마후 성전 건축자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 금지령을 무시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3. ‘에스라’는 건축 금지령이 발효된 일과, 때가 되자 ‘유대’인들이 그 금지령을 무시한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읍니까?
3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라.]”—에스라 4:23에서 5:2.
4. ‘스가랴’는 언제부터 예언하였읍니까?
4 ‘잇도’의 손자 ‘스가랴’는 왕 ‘다리오’ 1세 2년(기원전 520년) 어느 때에 예언하기 시작하였읍니까? ‘스가랴’의 예언서 서두에서 이렇게 알려줍니다. “‘다리오’ 왕 이년 팔월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스가랴 1:1.
5. (ㄱ) ‘스가랴’가 예언을 시작한 날은 어느 날이었을 것입니까? (ㄴ) 오늘날 우리가 그 책을 검토하여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5 이십 구일간의 음력 팔월은 ‘헤스반’월이라고 불리웠으며 가을에 속한 달이었읍니다. 그 달 어느 날이었는지는 예언 가운데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히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월삭을 기념한 ‘헤스반’월 초하루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때는 ‘학개’가 예언을 시작한지 정확하게 두달 후일 것입니다. ‘에스. 바잉튼’역에는 이 귀절이 다음과 같이 번역되었읍니다. “‘다리오’ 이년 여덟째 월삭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스가랴’에게 임하였다.” (스가랴 1:1) 그 당시 ‘스가랴’는 자기의 예언서가 대단히 중요한 책으로서 수백년 후에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필자들이, 고대하던 메시야, 그리스도 혹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임하여 온 인류를 위한 그의 사명의 첫 부분을 수행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의 예언서를 인용할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마태 21:5; 26:15, 28, 31; 27:9; 마가 14:24, 27; 누가 22:20; 요한 12:15; 19:37; 계시 11:2, 4) 이것은 「스가랴서」가 영감받은 참 예언서일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현대의 성취를 검토해 보아야 할 중요한 예언서임을 증명합니다.
6. ‘스가랴’는 누구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교훈을 받았으며, ‘아마겟돈’이 가까운 지금 「스가랴서」를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6 처음부터 ‘스가랴’가 선포하도록 교훈을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의미심장한 어귀인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시기와 환경에도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읍니다. ‘스가랴’의 예언 십사장에 걸쳐 그 강력한 표현이 쉰두번(52회) 나옵니다. 마지막장 3절은 이것이 결코 하나님의 헛된 칭호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그 예언은 이러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가사 그 열국을 치시되 이왕 전쟁날에 싸운 것같이 하시리라.” (스가랴 14:3)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아마겟돈’으로 열국이 행진하는 것에 관하여 알리고 있는 성서 마지막권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오늘날 이 예언을 염두에 두는 것은 극히 중요합니다. (계시 16:14, 16) 이 하나님은, 대제사장 ‘엘리’의 시대와 예언자 ‘사무엘’ 시대, 그리고 중무장을 한 ‘블레셋’ 거인 ‘골리앗’에게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 싸워 완전하게 겨냥한 물매 돌로 그를 죽인 바 있는 ‘다윗’의 시대에 숭배를 받으신 만군의 여호와 그분입니다.—사무엘 상 1:3-4:4; 17:45.
‘스가랴’ 예언의 첫 머리
7. 스가랴 1:2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누구에 대하여 진노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7 여호와의 새로운 예언자 ‘스가랴’를 통한 만군의 여호와의 소식의 첫 머리는 송환된 ‘유대’인들에게 이러한 말로 전달되었읍니다.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스가랴 1:1, 2) 이 “열조”는 기원전 617년과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간 그들의 부친과 조부들이었읍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을 더럽혔고 오염시켰고 그 분과 맺은 국가적 언약을 파기하였고 세속적 이방 나라들과 정치적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에 대하여 매우 진노하셨읍니다. 그의 진노는 가열되어 그 분은 마침내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되게 하셨고 ‘유다’ 땅 전역이 황폐되어 칠십년 동안 사람도 가축도 거하지 못하게 하셨읍니다. 화근은 ‘유대’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순결하고 더럽히지 않은 숭배를 버린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 곳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도록 해방된 ‘유대’인들이 상기해야 할 심각한 사실이었읍니다.
8. 그 때에 ‘스가랴’는 하나님께 어떻게 하라고 ‘유대’인들에게 말하라는 명령을 받았읍니까?
8 고토로 돌아와 이미 십칠년간을 보낸 이들 ‘유대’인들에게 ‘스가랴’의 소식은 이렇게 계속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너희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 가리라.”—스가랴 1:3.
어떠한 의미로 “돌아오라”는 것이며 그 결과는 무엇인가?
9. 회복된 ‘유대’인들은 어떠한 의미로 만군의 여호와께 ‘돌아와야’ 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9 여호와께서 회복된 그 ‘유대’인들에게 자기에게로 “돌아오라”고 하신 것은 어떠한 면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었읍니까? 예언자 ‘학개’가 이미 그들에게 말하였으며 그들은 얼마의 행동을 하지 않았읍니까? 그렇게 하였읍니다! ‘학개’가 첫 예언을 한 후의 기록은 이러합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 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 왕 이년 유월 이십 사일이었더라.” (학개 1:14, 15) 그러나 그 때부터 한달 남짓하게 지나자 얼마의 사람들은 노력을 늦추고 냉담한 태도를 보인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예언자를 통하여 다시 한번 고무적인 권고를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였을 것입니다.
10. 그 ‘유대’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오’려고 어떻게 하였으며, 그들이 온전히 돌아왔다는 증거는 무엇이 될 것이었읍니까?
10 온 민족이 한 마음과 한 영혼으로 만군의 여호와께 돌아와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께 두려움없고 마음을 다한 숭배를 다시 드리는 형태로 돌아와야 하였읍니다. 그 당시 그들의 경우에 있어서, 이것은 그들이 성전 재건을 완성함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온 보이는 표현을 해야 함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고토로 돌아온 주된 목적이었읍니다. (에스라 1:1에서 4:3) 자기들의 개인 주택을 짓는 일이나 농사를 경영하는 일 및 기타 물질적 관심사는 중요성에 있어서 이차적인 것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도시에 성전을 완성시켜야만 그 회복된 ‘유대’인들은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그들이 받은 율법에 따라 그분을 온전히 숭배할 수 있었읍니다. (학개 1:3-9) 그러므로 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마련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하여 돌아오는데 할 일이 많았읍니다.
11.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대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돌아오실’ 것이었읍니까?
11 그들이 그처럼 온 영혼을 다한 숭배로 ‘돌아왔다면’ 어떠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분이 그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은 그들에 대한 그분의 은혜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숭배의 중심이 되는 전의 재건에 대한 적들의 반대를 무로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이 성전 복구 공사에서 손을 뗀 후로 당한 물질적 고통을 제거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영적 축복은 물론 이려니와 물질적으로도 좋은 것들을 축복으로 주실 것입니다.—스가랴 8:9-15.
1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온 국민이 연합하여 할 일은 무엇이었읍니까?
12 국민 총동원! 여호와의 인도와 예언자들의 격려로 이와같은 거족적 행동을 취할 때가 온 것입니다. 회복된 ‘유대’인들은 모두 그들의 가장 중요한 사업을 지지하고 여호와의 숭배의 전을 구석구석까지 완성시켜야 하였읍니다. 이렇게 하면 여호와의 이름이 앙양될 것이며 그렇게 해야만 국가의 대제사장과 제사장보들과 ‘레위’인들 모두가 그들에게 지시된 의무와 봉사를 수행하여 온 국민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주고 만국에서 나온 충실한 개종자들에게 영적 유익을 줄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완공된 성전이 없으면 도처에 있는 ‘유대’인들이 매년 세번의 절기를 적절히 기념할 수도 없었고 연례적인 속죄일도 기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나무 패며 물 긷는”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봉사에 온전히 기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호수아 9:23; 에스라 2:43-58) 그러므로 이제 그들 온 국민이 연합하여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읍니다.
13. 그들의 열조의 행위의 결과는 그 회복된 ‘유대’인들에게 무슨 역할을 했어야 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무엇에 주의를 돌려야 하였읍니까?
13 그들의 열조의 행동과 그 결과는 이 중대한 시기에 회복된 ‘유대’인들에게 경고의 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스가랴’를 통하여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 열조를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실을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다 하나 그들이 듣지 않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다 하셨느니라 하라.”—스가랴 1:4-6.
14. (ㄱ) 만일 회복된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행위를 따른다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해야 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들의 상태에 관하여 질문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이전 예언자들이 동일한 상태에 있는 것은 ‘학개’와 ‘스가랴’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되었읍니까?
14 이 경고에 의하면 만일 회복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그들의 조상들처럼 행동한다면 그들은 여호와를 불쾌하게 할 것이 틀림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이 어디 있느냐고 질문하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여 지금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악한 길과 악한 행실을 버리고 회개하고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복된 ‘유대’인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었읍니다. ‘특히 ‘예루살렘’의 멸망과 ‘유다’ 땅의 황폐에 대하여 예언한 ‘예레미야’ 같은 예언자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계속 살았는가?” 그들도 우리의 불순종한 조상들처럼 죽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는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회복된 ‘유대’인들이 여호와께서 기원전 520년에 일으키신 예언자들인 ‘학개’와 ‘스가랴’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건전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읍니다.
15. (ㄱ) 중요하고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은 이전 예언자들의 죽음보다는 그들과 관련된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그들의 조상의 행위를 본받는다면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읍니까?
15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씀과 규례를 선포하기 위하여 영감받은 대변자로 사용하신, 죽음을 면치 못하는 예언자들이 건전한 논증의 기초가 아니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예언자들을 감동시켜 말하게 하신 내용이 중요하고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을 통한 여호와의 말씀과 그 분이 결정하신 규례 혹은 명령은 실현되었읍니까? 회복된 ‘유대’인들의 조상들은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생각을 돌이켜서 이렇게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그러므로 회복된 ‘유대’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말씀을 정확히 이행하시는가를 시험해 볼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 결과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임한 결과와 같이 될 것이 틀림 없었읍니다. 즉 여호와의 실패하지 않는 말씀과 전례 혹은 명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이며 여호와의 그러한 선언이 성취되어 마침내 그들에게 덮칠 것입니다.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금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읍니다. 그렇게 하면 여호와께서는 약속대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현대의 비슷한 쟁점
16. (ㄱ) 현재 우리의 결정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ㄴ) 그러므로 생존한 남은 자들이 종전후 첫 해인 1919년에 직면한 문제는 무엇과 관련되어 있었읍니까?
16 우리의 결정의 기초가 되어야 할 중요한 질문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의 전과 관련하여 우리는 어떠한 입장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원 1914년부터 지금까지 생존한 인류 세대가 일찍부터 직면한 문제입니다. 기원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국제적인 전투가 행하여진 지역에 있는 다수의 종교 건물들이 손상되거나 파괴되었읍니다. 전후에 많은 수의 교회가 수리 혹은 재건되었읍니다. 그러나 세계 대전후 참으로 헌신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은 기원전 537-520년에 회복된 ‘유대’인들의 경우와 달리 어떤 종교적 전이나 건물이 아니었읍니다. 여호와의 영적 참 성전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폭격이나 폭탄으로 손상되거나 파괴되지 않았읍니다. 그 성전은 스쳐지지도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종전후 첫 해인 기원 1919년에 문제가 된 것은, 여호와의 헌신한 백성들의 남은 자가 그의 영적 참 성전 및 그 안에서 드려져야 할 순결하고 더렵혀지지 않은 숭배와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17. 제1차 세계 대전을 생존한 헌신하고 침례받은 만국 성경 연구생들은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올 필요가 있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7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헌신하고 침례 받은 만국 성경 연구생들의 일은 전쟁과 정부의 금지령과 횡포한 박해 때문에 심각한 방해를 받은 하나님의 왕국을 증거하는 일이었읍니다. 그들은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올무가 되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에 어느 정도 굴복하였었읍니다. (잠언 29:25) 그들은 대부분 비전투 복무를 함으로써 피흘리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지만 그들은 이 세상의 투쟁에 대한 엄격하고 순전한 중립을 지키지 않았읍니다. 몇가지 중요한 면에서 그들은 여호와께 회개하고 돌아올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렇게 하면 그분은 그들에게 은혜를 가지고 돌아오실 것이었읍니다.—스가랴 1:3.
18, 19. 그 때는 무슨 일을 다시 시작할 때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8 이 세상 나라들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종결과 함께 그들의 “마지막 때”에 돌입한 것이 분명합니다. (다니엘 12:4) 세상 사태로 볼 때 여호와께서 임명하신 일을 다시 수행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었읍니다. 그분의 예언은 이러합니다.
19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마가 13:10.
20. (ㄱ) 어떠한 면으로 그 거대한 세계적 일이 수행될 필요가 있었읍니까? (ㄴ) 어떠한 두 가지 조직을 고려해야 합니까?
20 세계적 규모의 그러한 거대한 일은 가장 조직적인 방법으로 온전히 연합된 조직과 함께 참 영적 성전에 계신 신권 통치자 여호와 하나님의 최고 지휘를 받아 수행 되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조직하는 일을 하시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조직은 단지 두 개 뿐이며, 그중 한 조직은 모든 지성있는 피조물에게 잘 알려져야 합니다. 그것은 창조주의 조직, 여호와의 조직입니다. 다른 조직은 그의 최고 적대자의 조직, 예언자 ‘스가랴’가 지적한 자 즉 ‘사단’ 마귀의 조직입니다.—스가랴 3:1, 2.
21. 마귀의 조직의 주요 부분들은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왕국 전파가 조직적인 방법으로 수행될 필요성이 절실합니까?
21 인간들의 현 사물의 제도는 확실히 하나의 조직을 대표하며,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사단’ 마귀를 가리켜 “이 사물의 제도의 신”이라고 불렀읍니다. (고린도 후 4:4, 신세) 그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2:2; 6:11, 12) ‘사단’ 마귀의 조직의 보이지 않는 영의 부분이 고도로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다고 설명하였읍니다. ‘사단’의 조직의 보이지 않는 부분과 보이는 지적 부분은 다같이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 전파를 반대하고 있읍니다. 이 때문에 왕국의 전파자들이 조직적인 방법으로 일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절실합니다.
22. (ㄱ) 여호와의 “만군”은 조직되었읍니까? (ㄴ) 예수의 사망시까지 여호와의 보이는 땅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 무엇이 그의 보이는 땅의 조직이었으며,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22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확실히 이 만군을 조직하셨읍니다. (누가 2:13-15; 계시 14:6, 7)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지상에서 왕국의 소식을 전파하라는 임명을 다만 그의 보이는 땅의 조직에만 주실 것입니다. 예언자 ‘모세’ 시대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망시까지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는 조직이었읍니다. (시 147:19, 20) 그러나 기원 33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부어진 때부터 마음에 할례를 받은 영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었고 그의 보이는 땅의 조직이 되었읍니다. (사도 2:1-40; 갈라디아 6:16; 로마 2:28, 29; 베드로 전 2:9)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은 헌신하고 침례받고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 예수의 제자들로 구성된 참다운 그리스도인 회중입니다. 인체와 같이 그것은 치밀하게 조직되었으며 많은 지체가 각기 개별적인 임무를 수행합니다. (로마 12:4-8; 고린도 전 12:12-28; 에베소 4:15, 16; 골로새 2:19) 회중에는 특별한 봉사를 수행하는 임명된 장로들과 봉사의 종들이 있읍니다.—빌립보 1:1.
23.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은 왕국 전파 외에 어떠한 다른 일을 하여 왔읍니까?
23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에 모든 민족에 증거하기 위하여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제1차 세계 대전이 종전한 후 하나님의 보이는 땅의 조직의 유일한 일이 아닙니다. 영적 의미로 추수하는 일이 진행되어 왔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을 예언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린 밀밭의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24. 예수께서는 추수와 추숫군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4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라.]”—마태 13:37-39.
25.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종들 중 살아있던 남은 자들은 1919년에 무엇으로 모아들여졌으며, 천사들이 아직도 추수하는 일을 수행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으며, 누구를 통하여 그렇게 하였읍니까?
25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기원 1919년에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백성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예언된 왕국 전파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의 보이는 땅의 조직으로 모아졌읍니다. 이 사실은 1919년 9월에 미국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에서 8일간의 ‘만국 성경 연구회’ 대회가 개최되었을 때에 매우 분명하게 나타났읍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심한 시련과 박해를 생존한 이 충실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성원들은,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도록 기름부음을 받는 예정된 수를 완성시킬 만큼 많지 않았읍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가 될 온전한 수는 144,000명으로 예정되었읍니다. (계시 7:4-8; 14:1, 3; 20:4, 6) 따라서 더 많은 “밀” 반열을 천사들이 발견하고 추수하여 여호와의 보이는 땅의 조직으로 모아들일 필요가 있었읍니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천사들은 지상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을 통하여 일하고 있었으므로 이제 추수하는 일은 무엇을 요구하였읍니까?
26. 이 추수하는 일은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있는 남은 자들이 무슨 일을 할 것을 요구하였으며, 그들에 의하여 침례받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들이 되기 위하여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야 합니까?
26 그것은 1919년 이래, 그리스도의 왕국의 공동 후사들 중 살아 있는 성원들이 제자를 삼고 침례를 주고 가르치는 일을 더 계속할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이들 새로운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한 제자로 침례를 받은 후 “천국의 아들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로마 8:15-17)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 기간에 그처럼 모아진 사람들은 이미 죽기까지 충실함을 증명한 밀 같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천국의 아들들” 144,000명의 예정된 수를 완성시킬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충실한 모아진 사람들에 대한 이러한 기록을 읽을 수 있읍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시 20:4, 6.
성전 “성소”에 있는 영적 제사장보들
27, 28. (ㄱ)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과 관련하여 어떠한 위치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그들은 그 특별한 영역에서 어떠한 특권을 가지고 있읍니까?
27 이들 기름부음을 받은 충실한 제자들은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단지 통치만 하지 않을 것임에 유의하십시오. 그들은 또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144,000명은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보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땅에 있는 동안 그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러한 관계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천구백년 전에 사도 ‘베드로’는 기름부음을 받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사장보들인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영적 제사를 드릴’ 특권을 받았읍니다. (베드로 전 2:9, 5) 따라서 그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여호와의 영적 성전과 특별한 관계에 있으며, 그 성전의 지성소는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신 곳으로서 거룩한 하늘에 있는 여호와의 독처하시는 곳입니다.
28 이들 제사장보들은 지상에서 아직 육체를 가지고 있는 동안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안에 있는 첫 방 즉 “성소”로 상징된 영적 상태에 있읍니다. ‘예루살렘’ 성전 성소에는 진설병을 차려놓는 금을 입힌 상과 금촛대와 금향단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영적 성소에 있는 그리스도인 제사장보들도 영적 음식을 먹으며, 영적 계몽을 즐기며, 그들이 아직 지상에 있는 동안 여호와께 충실한 기도와 열성스런 봉사의 향을 피우고 있읍니다. (출애굽 40:4, 5, 22-28; 열왕 상 7:48-50; 역대 하 4:19-22) 영적 분별력과 식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할지 모르나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 영적 제사장보들이 여호와의 큰 영적 성전의 이 거룩한 영역에서 드리는 참으로 거룩한 봉사가 있읍니다. 이 영적 성전의 지성소의 그 높여진 지위에서 그분은 이들 제사장보들의 활동을 자세히 조사할 수 있고, 그분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그들의 봉사와 관련하여 그들에 대한 심판을 하실 수 있읍니다.—말라기 3:1-5.
29. (ㄱ) 그러므로 1919년 이래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있는 남은 자들은 어떠한 종류의 일을 하고 있었읍니까? (ㄴ) 이것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29 이러한 것을 고려할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원 1919년에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있는 남은 자들이 “추숫군”들인 하늘의 천사들의 높은 인도를 받아 수행되는 추수 사업에서 지상에서의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참 영적 성전에 영향을 주는 일을 행하고 있었읍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그들이 제자를 삼는 일을 하고 그리하여 천사들인 추숫군들의 인도 아래 “밀” 반열을 모아들임으로 그들은 더 많은 영적 제사장보들을 산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큰 영적 성전의 성소에 더 많은 제사장보들을, 아니 온전한 수의 영적 제사장보들을 두시도록 그분과 함께 부지런히 일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일할 더 많은 제사장보들을 통하여 거룩한 봉사를 확장할 목표로 일하고 있었읍니다.
30. 그 때는 밀 같은 그리스도인들을 모아들일 올바른 때였읍니까? 이것이 어떻게 성전 “성소”에서 일할 실무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이었읍니까?
30 이것은 고대 ‘이스라엘’ 땅에서 정기적인 추수를 한 후와 같이 “이삭줍는 사업”이 아니라a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있는 남은 자들의 이 모아들이는 일은 천사 “추숫군”들의 인도 아래 수행하는 진정한 추수 사업이었읍니다. 그들이 이 일을 할 때는 1914년 이후인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었으며, 예수께서는 ‘추수 때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3:39, 신세 참조; 24:3, 31) 그 후 몇년 동안 수행된 영적 추수 사업의 결과 그리스도의 밀같은 제자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수가 1931년까지 현저히 증가하였읍니다. 그 해에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성경적 근거하에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하였읍니다. 분명히, 여호와의 영적 성전 성소에 있는 제사장보들의 수가 증가하여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144,000명의 영적 제사장보의 예정된 정원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온전한 수를 포함하게 된 것 같습니다. 바로 그것이 여호와의 참 성전 성소에서 일할 실무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이었읍니다.
31. 성전 사업을 위하여 그들은 기원 1919년에 어떻게 자유롭게 되고 회복되었읍니까?
31 그러므로 이제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있는 남은 자들이 기원 1919년에 시작해야 할 영적 성전 사업이 있었읍니다. 더 큰 ‘고레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과분한 친절에 의하여 그들은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과 그의 정치적 애인으로부터 해방되었읍니다. 그들은 자유롭게 되어 지상의 그들의 올바른 토지로 회복되었읍니다. 그 목적은 바로 이 성전 사업에 전념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32. 기원 1919년에 일어난 일은 어떻게 기원전 520년에 일어난 일과 같았읍니까?
32 그것은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가 회복된 ‘유대’인 남은 자들을 격려하여 오랫동안 방치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다시 일하게 하도록 일으킴을 받았던 기원전 520년과 같았읍니다. 기원 1919년에 「파수대」의 지면들은, 두려움 없이 지존하신 하나님께 대한 대범하고 공개적인 봉사를 재개하도록 기름부음을 받은 살아 있는 남은 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는 데 사용되었읍니다. 그의 메시야 왕국은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에 하늘에 건설되었으며 이제 그 소식이 전세계에 선포되어야 하였읍니다. 하나님께 대한 이러한 찬양의 제사를 모든 원수들 앞에서도 마땅히 그분께 드려야 하였읍니다.—히브리 13:15; 시 138:1-3.
33.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고대 ‘유대’인 남은 자들의 조상들의 행위를 본받으면 무슨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 것이며,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33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여호와께 ‘돌아올’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 그들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지고 그들에게 ‘돌아오실’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진노를 크게 격발시킨 고대 ‘유대’인 남은 자들의 조상들 같이 된다면 여호와의 예언자들의 경고와 충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재난을 당한 그 조상들 같이 재난을 당할 것이었읍니다. 그렇게 되면 또한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적 말씀과 명령이 이 “마지막 때”에 그들에게 임할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현명하게도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기원 1919년에 여호와께 ‘돌아오기’ 시작하였읍니다.
[각주]
a 1919년 5월 1일호 「파수대」(영문) “추수는 끝났다—그 후에는 무엇이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와 1919년 8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49면 “위험한 때가 도래한다” 및 “이삭줍는 사업”이라는 제목의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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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진동할 때 있을 축복과 선한 통치권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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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세계가 진동할 때 있을 축복과 선한 통치권
1. ‘스가랴’는 자기가 예언을 시작한 다음 달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으며, 이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일을 하셨읍니까?
‘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 음력 팔월(‘헤스반’월)에 행한 ‘스가랴’의 첫 예언은 짧으면서도 시기에 적절하였고 자극적이었읍니다. (스가랴 1:1-6) 바로 다음 달에 ‘스가랴’는 ‘유대’ 민족의 장래의 복지를 좌우하는 중대한 일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읍니다. 음력 구월(‘기슬래’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았읍니다. ‘스가랴’의 동료 예언자 ‘학개’는 그 중대한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읍니다. (학개 2:18)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지 말라는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취해진 그 행동은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학개’에게 영감을 주어 다시 예언하게 하셨읍니다.
2, 3. (ㄱ) 기원전 520년 ‘기슬래’월 24일에 행한 ‘학개’의 첫 예언은 누구에게 한 예언이었읍니까? (ㄴ) 학개 2:10-12에는 대화의 첫 부분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읍니까?
2 그 역사적인 날에 ‘학개’의 예언 중 첫 예언은 여호와의 성전이 준공되었을 때에 그 곳에서 섬기기를 바라는 ‘레위’ 제사장들에게 한 예언이었읍니다. ‘레위’인 ‘아론’ 계통의 그 제사장들 가운데는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도 들어 있었읍니다. 그 예언은 그 제사장들 모두에게 교훈을 새겨주었으며, 그 교훈은 지금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학개’의 기록을 읽어보고 어떠한 대화가 있었는지 알아봅시다.
3 “‘다리오’ 왕 이년 구월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는 제사장에게 율법에 대하여 물어 이르기를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학개 2:10-12.
4. 말라기 2:7에 의하면 그 제사장들은 그 시험적인 질문에 왜 대답할 수 있었어야 하였으며, 그러나 무엇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을지 모릅니까?
4 여기서 말한 “율법”은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이며 의식상의 문제 및 “거룩한 고기”를 운반하는 자들인 제사장들과 관련이 있었읍니다. 물론 제사장들은 ‘모세’의 율법을 잘 알고 있었어야 하였읍니다. 후기의 예언자 ‘말라기’의 기록에 이러한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저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니라.]” (말라기 2:7)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학개’를 통하여 그들에게 제시된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적입니다. 혹시, ‘유다’ 땅이 칠십년간 황폐되어 그동안 ‘유대’인들이 ‘바벨론’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충실한 남은 자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와 십칠년간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그들의 정통한 지식이 영향을 받지는 않았읍니까? 제사장들은 과연 어떻게 대답하였읍니까?
5. 그 제사장들은 올바른 대답을 말할 때 무슨 율법을 생각하였었을 것이며, 따라서 부정한 사람은 거룩함을 얻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해서는 안되었읍니까?
5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 (학개 2:12) 다시 말하면,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렸던 동물의 “거룩한 고기”가 우연히 그것에 접촉한 다른 음식을 거룩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읍니다. 이러한 대답의 근거로 제사장들은 레위기 7:19, 20에 있는 율법을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 “그 고기가 부정한 물건에 접촉되었으면 먹지 말고 불사를 것이라. 그 고기는 깨끗한 자만 먹을 것이니 만일 몸이 부정한 자가 여호와께 속한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자기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 부정해진 ‘이스라엘’ 사람은 (레위 7:21) 자기가 “거룩한 고기”를 먹음으로 그 고기에 접촉하였다고 하여 자기가 그로 인하여 깨끗하여졌다고, 그가 먹은 것이 자신을 거룩하게 해주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었읍니다. 율법에 따르면 그것은 그릇된 추리입니다.
6. ‘학개’는 다음에 무슨 질문을 하였으며, 어떠한 대답이 나왔읍니까?
6 예언자 ‘학개’는 제사장들의 추리가 그릇되다고 말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그가 이와 반대의 답을 요하는 질문을 하였읍니다. “‘학개’가 가로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중에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부정하겠느니라.”—학개 2:13.
7. 제사장들이 올바른 대답을 한 것은 그들이 시체로 인하여 부정하여진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데 관한 무엇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였읍니까?
7 제사장들이 이렇게 정확한 대답을 한 것은 그들이 “정결케 하는 물”과 관련하여 언급된 여호와의 율법을 알고 있었음을 증명하였읍니다. 바로 이 물을 희생된 붉은 암송아지의 재와 섞어서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사람에게 그 잿물을 뿌렸읍니다. 그 율법은 이러하였읍니다.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 ···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이는 그들의 영영한 율례니라. 정결케 하는 물을 뿌린 자는 그 옷을 빨 것이며 정결케 하는 물을 만지는 자는 저녁까지 부정할 것이며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할 것이며 그것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리라.”—민수 19:2-5, 11-13, 21, 22; 히브리 9:13.
8. 이것은 부정함에 대하여 무엇을 예증하였으며, 이것은 여호와의 성전 건립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어떻게 적용되었읍니까?
8 이것은 부정함이 신체적으로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잘 감염될 수 있음을 예증합니다. 거룩한 것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거룩함을 자동적으로 혹은 쉽사리, 노력없이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오염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단지 교제하거나 접촉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쉽게 영향을 줄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 전 5:6; 갈라디아 5:8, 9) 여호와의 성전이 소홀히 여겨지는 데 대한 사람의 불결하고 냉담한 태도도 그렇게 될 수 있읍니다.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 및 성전을 통한 그 숭배의 표현에 대한 그러한 냉담과 무관심한 태도가 영적 누룩과 같이 ‘이스라엘’ 온 국민에게 퍼질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의 성전을 건립한 후에도 후대의 ‘유대’와 ‘예루살렘’의 총독은 이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 곳에서의 숭배는 온전히 받들어져야 합니다.—느헤미야 10:39.
9. 남은 자들이 십칠년전에 돌아온 후 ‘유대’인들의 태도가 어떻게 되었었음이 분명합니까?
9 분명히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유대’인 남은 자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온 후 십칠년동안 지연되었읍니다. 증거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냉담과 무관심을 보였으며 성전 재건에 대한 처음의 열정이 식어졌음이 분명합니다.
10, 11. (ㄱ) ‘유대’인 남은 자들이 그들이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렸음을 무엇이 증명합니까? (ㄴ) 학개 2:14에 의하면 그 나라와 그 행위가 여호와께 어떻게 보였읍니까?
10 제1세기 말의 그리스도인 회중과 마찬가지로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도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계시 2:4, 5) 의문의 여지없이 ‘유대’인 남은 자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시도록 그분께 ‘돌아갈’ 필요가 있었읍니다. (스가랴 1:3, 4; 예레미야 2:2, 3)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온 직후 ‘예루살렘’에서 초막절(장막절)을 기념할 때에 임시로 올바른 장소에 제단을 쌓았고 올바른 희생을 그 위에서 드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에스라 3:1-6)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였읍니까? 단지 그것과 성전 기초만 가지고 있는 그 민족이 하나님께 어떻게 보였읍니까? 들어 보십시오.
11 “이에 ‘학개’가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학개 2:14.
12. 그러므로 그들이 여호와의 제단에서 드린 희생은 어떠한 영향을 받았으며, 그 점을 고려할 때 그분은 그들을 축복하실 수 있었읍니까?
12 그것은 시체를 만져 부정하게 된 ‘이스라엘’의 경우와 같았읍니다. 희생된 붉은 암송아지의 재를 섞은 물을 뿌려 정결함을 입기 전에 만진 모든 것은 불결하여졌읍니다.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는 여호와의 숭배의 전을 경시하는 태도로 인하여 그분이 보시기에 불결하였으므로 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임시 제단에서 여호와께 드린 희생을 더럽혔읍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영적으로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그들에게 축복을 주실 수 있겠읍니까? 도저히 그러실 수 없었읍니다.
정결케해야 할 현대의 필요성
13. 기원전 520년의 ‘유대’인 남은 자들과 비슷하게 그리스도인 남은 자들은 어떻게 부정하였읍니까?
13 제1차 세계 대전 후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입장도 그와 비슷하였읍니다. 그리스도교국과 그에 부속된 수백가지 종파의 교회는 기원 1914년까지 없었던 가장 유혈적인 그 전쟁에서 죽은 수백만명의 피에 더럽혀졌읍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그러한 유혈죄와 기타 비그리스도인 행위를 멀리하려고 노력하였지만 전적으로 깨끗한 행실은 유지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공동 책임을 지게 되었읍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도 고위층에 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고 그 결과 영적으로 손상을 입었읍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잠언 29:25) 그러므로 남은 자들은 전쟁으로 황폐되고 유혈의 죄가 있는 현 사물의 제도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건설된 왕국과 그의 신원의 날을 담대히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을 상당히 주저하였읍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여호와의 영적 성전 “성소”에 있는 영적 제사장보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인 그들은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다음과 같이 말한 ‘이사야’와 같이 느꼈읍니다.
14. ‘이사야’는 어떻게 성전에서 자신의 부정함을 말로 나타냈읍니까?
14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
15.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언제 ‘이사야’의 이 성전 환상에 주의를 돌렸으며, 기조 연설에서 어떠한 말로 그렇게 하였읍니까?
15 예언자가 이와같이 예언적으로 부르짖은 것은 그가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기적의 환상을 보았을 때였읍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1922년에 이 환상에 그들의 주의를 돌렸읍니다. 때는 “이 날(The Day)”이라고 일컬어진 날 즉 ‘만국 성경 연구회’가 ‘오하이오’ 주(미국) ‘시더포인트’ 시에서 두번째로 개최한 국제 대회 중인 1922년 9월 8일이었읍니다. 그 당시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은 “이 날”에, 마태 4:17이 주요 성귀였던 그의 연설의 절정에 이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그러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왜 소식을 전합니까? 듣는 사람이 있기나 하겠읍니까? 주님의 예언자가 대답합니다.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이사야 43:8-12.
그러므로 성전 반열의 사람들은 이 시대에 주님의 증인으로 임명되었으며 사람들에게 위로의 소식을 전할, 천국이 임하였다는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 따라서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는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사람들에게 그 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읍니다. 또한 이 긴장의 시대에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고 뚜렷이 구별된 백성, 그분의 증인의 입장에 서서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는 소식을 두려움 없이 외치는 백성을 이 땅에 두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임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
··· 1914년 이래 영광의 왕께서는 권능을 잡으시고 통치하십니다. 그분은 성전 반열의 입술을 정결케 하시고 소식을 주어 그들을 보냈읍니다. 왕국의 소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합니다. 그것은 모든 소식중 최선의 소식입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알려져야 할 소식입니다. 그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주님의 백성들의 의무입니다. ···
··· 주님을 위한 충실하고 참된 증인들이 되십시오. ‘바벨론’의 모든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싸우며 전진하십시오. 멀리, 널리 소식을 포고하십시오. 세상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며 만주의 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날중 최상의 날입니다. 보십시오! 왕께서 통치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의 선전원들입니다. 그러므로 왕과 그의 왕국을 광고하고 광고하고 광고하십시오.—「파수대」(영문) 1922년 11월 1일호 336, 337면.
16. (ㄱ) 입술이 깨끗하여진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하기를 원하였읍니까? (ㄴ)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한 사람들 모두가 그러한 태도를 나타냈는지를 그 당시 무엇이 알려줍니까?
16 예언자 ‘이사야’가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소식을 선포할 수 있도록 마치 불로 깨끗케 된 것처럼 그의 입술이 깨끗케 되었듯이,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 중 다수는 그들의 입술이 깨끗케 되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았읍니다. (이사야 6:6-10) 그들은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조 제사장들로 삼으실 자들을 더 모으는 일에 참여하기를 성실히 원하였읍니다. 그 일에 의해서 144,000명의 제사장보가 완성될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영적 남은 자 전원이 그 당시에 그러한 태도를 나타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바로 그 1922년에 「파수대」(영문) 5월 1일호가 발행되기 전에, 그 간행물의 편집부의 다섯 사람 중 한 사람과 그의 아내는 신권 조직을 떠나 다른 직업을 구하였읍니다. 그 무렵에 비슷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더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왕국의 선전원이 되어 깨끗하여진 입술을 사용하여 호별 방문을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읍니다. 여호와의 성전 성소에 있는 영적 제사장보들에 대한 기타 요구 조건은 그들에게 너무나 무거웠읍니다. 그들은 냉담하였고 무관심하였고 세상적 관심사로 돌아갔기 때문에 부정하여졌읍니다.
17. (ㄱ) 그러한 불결함은 여호와의 신권 조직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ㄴ) 어떠한 태도를 그분은 축복하십니까?
17 그러한 종류의 불결함, 영적 성전에 계신 참 하나님의 전적 숭배에 대한 전념의 부족은 신권 조직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오염 요소입니다. 그 결과로 여호와께서는 축복을 내리지 않으십니다. 그의 순결한 숭배를 추진하는데 마음을 다하여 전념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그분의 약속하신 축복을 회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중요한 사실을 ‘학개’의 질문을 받은 제사장들에게 다음과 같이 계속 말씀하시는 가운데 강조하셨읍니다.
18. ‘학개’가 예언한 이날 이전에 남은 자들의 경제적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이제 그들을 이 날부터 왜 축복하실 것입니까?
18 “이제 청컨데 너희는 오늘부터 이 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첩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 때에는 이십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석 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 뿐이었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과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월 이십 사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개 2:15-19.
번영으로 돌아오는 날
19. ‘기슬래’월 이십 사일부터 ‘유대’인 남은 자들은 무엇에 있어서 여호와를 시험할 수 있었으며, 그 분의 율법 언약에 근거하여 그들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었읍니까?
19 이제 때는 아홉째 달(‘기슬래’월) 이십 사일이었으며, 그때까지는 가을 비가 증가되었을 것이며 산꼭대기에는 약간의 눈도 보였을 것입니다. 그 날 충실한 ‘유대’인 남은 자들은 성전 기초를 전혀 다시 놓는 것처럼 새로이 기초 공사에 착수하였읍니다. (에스라 3:8-12) 그 기념할 만한 날로부터 ‘유대’인 남은 자들은 여호와께서 즐거운 약속을 이행하시는가에 대하여 여호와를 시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뭄도, 곰팡이도, 농장물을 해치는 우박도 옛일이 될 것이며 기본 식량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성서 역사를 읽어 보면 그러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없읍니다. 그들이 과감하게 성전 공사에 고착하여 전을 완성시킴에 따라 여호와께서도 자신의 약속에 충실히 고착하셨읍니다. 그분께서 그의 예언자 ‘모세’의 중보로 맺은 율법 언약 가운데서 약속하신 대로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그의 숭배에 전념할 때 그분은 그들에게 주신 땅에서 물질적 번영을 누리도록 보상하실 것이었읍니다.—신명 28:1-14.
20.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참 숭배를 위한 사업을 재개하는 보상으로 무슨 번영을 누릴 것을 기대할 수 있었으며, 그러한 번영은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20 당시 성전 의식이 강한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일어난 일이 기원 1919년 이후로 영적 제사장보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전영하였다면 당시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그러한 일이 반드시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참 영적 성전의 성소에서 제사장의 책임을 다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은 1914-1918년 제1차 대전 중의 시련과 고난을 살아남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즉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에게 전환점이 되었읍니다. 그들은 천적 상속을 바라보는 영적 ‘이스라엘’인이므로 ‘학개’ 시대의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그들의 충실함에 대한 보상으로 물질적 축복을 기대하지는 않았읍니다. 영적 제사장보들인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기대한 것은 영적 번영이었읍니다. 그들은 실망하지 않았읍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그들의 시험은 헛되지 않았읍니다.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의 참 숭배를 촉진하는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사업은 세상으로부터 반대가 심하고 계속되는 재난의 타개책을 몰라 세상 나라들이 고민하는 가운데서도 번영하였고 확장하였고 결과는 더욱 풍성하였읍니다.
21. 충실한 남은 자들의 그러한 영적 번영의 기록을 어디에서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여호와의 약속에 관하여 무엇을 증명합니까?
21 종교적, 정치적, 사법적, 사회적 적대자들은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사실을 알게 되었읍니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영적 번영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려면 1919년 이후로 「파수대」 여러 지면에, 그리고 1927년 이후로 매년 「연감」에 실린 연례보고를 읽기만 하면 됩니다. 그 보고를 읽어보면 여호와의 대제사장,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대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온 땅에 전파하고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일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왔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마태 24:14, 신세; 28:18-20; 사도 1:8; 히브리 2:17에서 3:1) 현대 역사의 지울 수 없는 기록은 거짓말 하실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셨다는 사실을 강력히 입증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여호수아 23:14; 시 138:2; 고린도 전 15:58.
통치체가 깨끗한 숭배를 받든 데 대한 상
22, 23. (ㄱ) ‘학개’의 마지막 예언은 누구에게 전달되었으며, 그것은 무엇에 대한 여호와의 기뻐하심의 표현이었읍니까? (ㄴ) 그 예언에서 여호와께서는 무엇의 기능을 정지시키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스룹바벨’에게 어떻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읍니까?
22 기원전 520년 음력 유월(‘엘룰’월) 초 하루에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이 ‘학개’에게 임하였을 때에 그 예언은 ‘유다’ 총독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에게 그리고 “대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전달되었읍니다. (학개 1:1) 거의 넉달 후에 ‘학개’의 영감 받은 마지막 예언은 ‘바사’의 ‘유다’ 도 총독 ‘스룹바벨’에게만 전달되었읍니다. 그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한 여호와의 격려에 순종하였고 이제 총독인 그의 지휘하에 여호와의 ‘예루살렘’ 성전 기초 공사는 오해한 ‘바사’ 왕이 잘못 내린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힘차고 용감하게 다시 시작되었읍니다. (에스라 4:17-24)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보고 기뻐하셨읍니까? 기뻐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러한 표현으로 직접 총독 ‘스룹바벨’에게 소식을 보내셨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23 “그달 이십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학개’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20-23.
24. ‘스룹바벨’은 그 ‘기슬래’월 이십 사일에 담대한 행동을 함으로 누구의 승인을 받았으며, 이것이 왜 중요하였읍니까?
24 ‘바사’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 음력 구월(‘기슬래’월) 이십 사일에 총독 ‘스룹바벨’은 강대국 ‘바사’ 제국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담대한 행동을 취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 순종하는 선하고 올바른 행동이었읍니다. 이제 그는 예언자 ‘학개’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승인의 표현을 받았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비난이나 반대가 무슨 문제이겠읍니까? 그는 권위의 최고 근원이신 ‘이스라엘’ 나라의 신권 통치자의 승인을 받았읍니다. 인간 통치자보다 신성 통치자이신 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신권 통치자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켜 제거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늘과 땅을 형성하는 영들과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선포된 목적을 좌절시키고 반대하는 데 성공할 수 있겠읍니까? 그럴 수 없었읍니다! 악귀들과 인간들이 모두 합세하여도 그분을 대항하여 승리할 수 없읍니다. 그 분은 그들 모두를 진동시키실 수 있읍니다.
25. 하늘과 땅의 진동에 수반해서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이며, 만군의 여호와 같은 분이 이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시는 것이 왜 적절합니까?
25 우주 주권자께서 이처럼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시는 일에 수반하여 일어나는 일 혹은 결과는 무엇입니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학개 2:22) 자신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시는 하나님께서 인류 세계의 군대와 싸우실 것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공격과 방어를 위한 그러한 무장한 군대는 과연 “열방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현 이십 세기의 나라들은 그러한 이론을 기초로 전진하고 있으며 모든 나라가 무장을 갖추고 있고 일부 나라는 현대 과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가공할 만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력을 강화하고 군대를 고도로 훈련시킬지라도 그것이 열국의 보좌 혹은 행정 중심지를 영구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되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세력”을 소멸하실 수 있읍니다.
26.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들이 그 분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혹은 그분이 그들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실 필요가 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26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으로 등장한 ‘바사’ 제국은 이백년 남짓하게 견고한 위치를 유지하였읍니다. 그 나라의 말과 병거와 그 탑승자들은, 그리고 군사로 동원된 코끼리까지도,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자기 나라가 멸망되는 것을 막지 못하였읍니다. 말과 병거들과 그 탑승자들은 보이지 않는 만군의 여호와를 직접 대항할 수 없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지상의 군대와 싸우시기 위하여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실 필요도 없읍니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부터 그 분은 보이지 않는 능력을 발휘하실 수 있고 공포감으로 혹은 당황하게 하여 혹은 그들 사이에 심한 반목을 일으켜 그들끼리 싸우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분은 모든 적들을 무정부 상태에 빠지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 분은 이전에 그렇게 하셨으며, 또 그렇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총독 ‘스룹바벨’은 그러한 전례를 알고 있었읍니다. (사사 7:19-22; 역대 하 20:22-24) 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의 원수들끼리 무기를 들어 치게 하심으로 다시 한번 그들의 계략을 좌절시키실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었읍니다.
27. 하늘과 땅과 나라들의 진동은 여호와의 손에 있는 인장 반지와 같은 ‘스룹바벨’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었읍니까?
27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숭배의 전을 재건하는 데 그리고 그 안에서 깨끗한 숭배를 드리는 데 전념하는 그의 충실하고 순종적인 백성을 진동시키는 것이 그 분의 목적이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읍니다. 총독 ‘스룹바벨’이 왕 ‘다리오’ 1세로부터 공식 허가를 받기도 전에 성전 건축 공사를 추진한다고 하여 ‘바사’ 황제에 의하여 실각되지는 않을 것이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오른 손에서 인장 반지를 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일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과 땅은 진동하고야 말것입니다! 중무장을 한 나라들도 진동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총독 ‘스룹바벨’의 지위는 견고할 것이며 요동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은 그와 같이 강력한 보증의 말씀이었읍니다.
28, 29. 여호와께서 인장 반지에 대하여 ‘스룹바벨’에게 하신 약속과 왕 ‘여호야긴’ 즉 ‘고니야’에 대하여 선언하신 말씀은 어떻게 반대적이었읍니까?
28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개 2:23.
29 이 하나님의 예언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영감을 받아 ‘여호야긴’(혹은 ‘여고냐’, ‘고니야’)에 대하여 한 말과 정반대였읍니다! ‘여호야긴’은 기원전 618-617년에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통치한 사람이며 ‘스룹바벨’의 조부였읍니다. (역대 상 3:17-19; 역대 하 36:9, 10) ‘예레미야’는 ‘여호야긴’을 ‘고니야’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 손의 인장 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 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찌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예레미야 22:24-30.
30. (ㄱ) 인장 반지는 그것의 소유자에게 얼마나 귀중하였읍니까? (ㄴ) ‘여호야긴’의 공직은 왜 존경을 받아야 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왜 그를 배척하셨읍니까?
30 ‘스룹바벨’의 조부에 대한 하나님의 이 명령으로 볼 때 인장 반지라는 것이 고위층에 있는 사람에게 매우 귀중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 반지에는 그것의 소유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며 공식적 업무에서 공문서 인증의 표시로 그 문서에 소유자의 서명 대신 사용되었읍니다. (창세 38:18-26; 41:42; 열왕 상 21:8) 그러므로 만일 ‘스룹바벨’의 조부 ‘여호야긴’ 왕이 여호와의 오른 손의 인장 반지와 같았다면 그는 여호와께 매우 귀중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기름부음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되었고 비록 삼개월 열흘 동안에 불과하였지만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었읍니다. (사무엘 상 24:6, 10; 애가 4:20; 역대 상 29:23, 신세) 이러한 이유로 ‘여호야긴’이라는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였으며 또 존경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와 공적 관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과 같이 악한 길로 계속 갔기 때문에 여호와를 불쾌하시게 했읍니다. 분노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를 폐위시키고 추방하여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가 거기에서 투옥되게 하셨읍니다.
31. 기원전 537년에 ‘스룹바벨’이 ‘유다’ 도의 총독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22:30에서 ‘스룹바벨’의 조부에 대하여 하신 말씀과 왜 모순된 것이 아니었읍니까?
31 그러나 이것은 어찌된 일입니까? 팔십년 후 즉 기원전 537년에 ‘여호야긴’의 손자 ‘스룹바벨’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바사’의 ‘유다’ 도의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되었읍니다. (에스라 1:1에서 4:3) 그것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22:30에서 ‘스룹바벨’의 조부에게 하신 말씀과 모순되지 않았읍니까? 모순이 아니었읍니다.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에게는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보좌에 앉을 아들에 있어서만은 여전히 “무자”하였읍니다. 사실 나중에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친 그의 삼촌 ‘맛다니야’가 그를 계승하여 ‘다윗’의 보좌에 앉았지만 ‘바벨론’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기원전 607년에 보좌에서 물러나고 말았읍니다. ‘다윗’의 보좌는 무너졌으며 실제로 지적 ‘예루살렘’에 다시는 놓이지 않았읍니다. (에스겔 21:25-27) 그리하여 ‘예루살렘’ 혹은 그것이 상징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이방 나라들에게 짓밟히는 2,520년간의 이방인의 때는 기원전 607년에 시작되었읍니다. 예언된 대로 ‘여호야긴’의 여러 아들들 중 아무도 ‘다윗’의 왕손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지 못하였읍니다. 그의 손자 ‘스룹바벨’은 ‘다윗’의 왕좌가 아니라 왕 ‘고레스’의 임명을 받은 총독의 자리에 앉았읍니다.
32. ‘스룹바벨’은 어떻게 여호와의 손에 있는 살아 있는 인장 반지와 같이 행동하였으며, 그는 왕이었던 그의 조부와 반대로 왜 여호와께 귀중하였읍니까?
32 ‘스룹바벨’은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에 공적 지위에 있어서 조부보다 낮았지만 그는 여호와 보시기에 만군의 여호와의 오른 손에 있는 인장 반지처럼 매우 귀중한 존재였읍니다. 그 이유는 ‘여호야긴’ 왕이 여호와께 매우 귀중하지 않고 버림받은 이유와 반대였읍니다. 즉 그는 여호와의 계명을 계속 지키고 성전에서의 여호와의 깨끗한 숭배에 전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살아 있는 인장 반지와 같이 공적으로, 여호와의 거룩한 이름의 영광과 찬양을 위하여 여호와를 섬겼읍니다. 만군의 천적 사령관께서는 왕 ‘여호야긴’을 배척하신 것과는 반대로 그의 충실한 손자 ‘스룹바벨’을 “택”하셨읍니다. 우주의 신권적 주권자께서는 하늘과 땅과 세상의 모든 군대화한 나라들을 진동시킬지라도 총독 ‘스룹바벨’은 진동시키지 않을 것이며, 보이는 신권 조직 내의 존귀한 봉사의 지위에서 그를 제거하시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분께서 예언자 ‘스가랴’를 통하여 ‘스룹바벨’에 관하여 후에 하신 말씀(4:6-10)은 이것을 확증하였읍니다.
그 예언의 더 넓은 의미
33. (ㄱ) ‘학개’의 예언의 완전한 성취는 기원전 6세기에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왜 끝나지 않았읍니까? (ㄴ) ‘스룹바벨’의 실체는 누구의 총독입니까?
33 이 예언은 통용 기원전 6세기에 ‘바사’의 ‘유다’ 도 총독 ‘스룹바벨’에게 완전히 성취되고 끝났읍니까? 분명히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는 더 큰 어떤 분의 모형이었읍니다. 누구의 모형이었읍니까? 그의 존귀한 후손, 성서 기록에 있는 그의 족보의 끝에 나오는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읍니다. (마태 1:1-16; 누가 3:23-27) ‘스룹바벨’의 이 실체는 이제 여호와의 지상에 있는 보이는 신권 조직 즉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천적 총독이십니다. (갈라디아 6:16; 로마 2:28, 29; 계시 7:4-8) 사실이 증명하는 바에 의하면 이들은 1919년에 큰 ‘바벨론’의 영적 속박에서 회복 되었읍니다. ‘유대’인 포로의 고대 남은 자들과 같이 그들은 ‘바벨론’적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서 해방되어 영적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깨끗한 숭배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34. 그 분은 어떻게 여호와의 성전과 관련된 일의 주창자이십니까?
34 ‘스룹바벨’의 실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천적 총독으로서 여호와의 성전과 관련된 이 일의 주창자이십니다. 그분은 그의 기름부음을 받은 제자들이 그 성전 성소에서 영적 제사장보로 봉사할 장소를 갖도록 조정하십니다.—요한 17:17-19.
35.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은 그 의미에도 불구하고 천적 총독 예수 그리스도에게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적절할 수 있읍니까?
35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이 “‘바벨론’의 씨”를 의미한다고 해서 그를 총독으로서의 천적 예수 그리스도에 적용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읍니다. 그 분이 큰 ‘바벨론’에 계신 적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시련과 박해를 살아 남은 기름부음을 받은 제자들인 남은 자들은 대전 중 큰 ‘바벨론’과 그의 정치적 애인들에게 종교적으로 속박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에게 한 것이 곧 그분께 한 것과 같다는 법칙을 적용시킨다면 더 큰 총독 ‘스룹바벨’(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로 대표된)은, 실제로 ‘바벨론’에서 태어났고 따라서 “‘바벨론’의 씨”라고 불리울 수 있었던 고대의 ‘스룹바벨’과 흡사하게 큰 ‘바벨론’에 계셨읍니다. 그는 ‘유브라데’ 강 유역에 있던 고대 도시보다 더 큰 ‘바빌론’에서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진리로 그들을 자유케 하셨읍니다. (요한 8:32) 지상의 보이는 신권 조직은 총독인 그분의 선한 통치권의 혜택을 받고 있읍니다.
36. 천적 총독은 귀중함과 용기에 있어서 어떻게 고대 ‘스룹바벨’과 비교되며, 오늘날 지상에 있는 누가 그 분을 본받고 있읍니까?
36 ‘스룹바벨’과 같은 이 총독은 여호와 하나님께,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오른 손의 인장 반지같이 극히 귀중합니다. 그는 그의 천적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데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마태 6:9, 10; 요한 12:28; 17:6-12) 그는 고대 ‘스룹바벨’과 같이 두려움이 없으십니다. 총독 ‘스룹바벨’은 강화되어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인 ‘바사’ 제국에 도전하였었읍니다.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의 천적 총독께서는 성서 역사상 일곱째 세계 강국 즉 영·미 양대 강국도, 여덟째 세계 강국 즉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세계 기구인 1972년 현재 132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 연합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계시 17:7-17)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그들의 천적 총독과 같이 그러한 세계 강국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두려움 없이 세계적인 규모로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의 깨끗한 숭배를 위하여 일합니다.
37. ‘스룹바벨’의 실체는 용도와 귀중함에 있어서 어떻게 여호와의 손의 인장 반지와 같습니까?
37 고대의 인장 반지는 그것의 소유자의 이름을 찍고 그렇게 하여 그 문서가 참으로 그 사람이 작성하였고 그 문서가 그의 뜻이나 목적 혹은 교훈을 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되지 않았읍니까? 그렇습니다. 마찬가지로 ‘스룹바벨’의 실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만군의 여호와에 의하여 예언과 약속을 성취하는데 사용되고 있으며 그렇게 하여 그 기록된 선언들이 참으로 절대 불과오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으며 하나님의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사용되고 있읍니다. 또한 이러한 방법으로 여호와의 이름과 말씀이 여호와께 공식 인장 반지처럼 귀중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입증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그리스도인 제자들]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린도 후 1:20.
38. 더 큰 ‘스룹바벨’은 오늘날의 하늘과 땅과 나라들의 진동을 보고도 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는 어떻게 여호와의 숭배자들에 대한 선한 통치권을 유지하실 것입니까?
38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종결된 후로 상징적 하늘과 땅은 진동되어 왔읍니다. 인류 세상 나라들은 진동하고 있으며 세상적 사물의 제도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있읍니다. 진동시키는 일을 하시는 분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그 분이 고대의 총독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신대로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그 진동은 현재 매우 임박한 “큰 환난”에서 격동의 절정에 이를 것이며 그 직후 ‘사단’이 무저갱에 감금될 것입니다. (마태 24:21, 22) 그러나 더 큰 ‘스룹바벨’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진동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에게 주어진 천적 총독의 지위는 요지부동합니다. 그의 왕국은 “진동치 못할 나라”입니다. (히브리 12:28) 그 왕국이 제거되기는 커녕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왕국을 사용하여 오늘날의 큰 ‘바벨론’과 세계 열강을 제거하실 것이며,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그 군사적 “세력”을 멸하실 것입니다. (계시 16:13-16; 17:12-14; 19:11-21) 그 후에 그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 있는 그의 모든 생존한 숭배자들을 축복하여 그들이 영원히 선한 통치권의 혜택을 받게 할 것입니다.
39. 오늘날 여호와의 숭배자들인 우리는 왜 행복합니까?
39 참 성전에 있는 우리 숭배자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거짓 숭배자들의 세상이 진동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축복과 여호와의 천적 총독의 선한 통치권의 혜택을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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