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자비, 박해자들에게는 심판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8장

      박해받는 자들에게는 자비, 박해자들에게는 심판

      1. ‘학개’가 마지막 예언을 한 때로부터 영감받은 또 다른 소식이 성전 건축자들에게 임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갔으며, 그 동안 그들은 무엇을 하였읍니까?

      장소는 ‘예루살렘’, 때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 시대이며, 기원전 519년의 첫 사반기에 들어섰으나 아직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인 ‘바사’ 제국의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이었읍니다. 그 때는 ‘학개’가 영감을 받아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과 총독 ‘스룹바벨’에게 마지막으로 예언한 날로부터 정확하게 음력 두달 후였읍니다. 그것은 구월(‘기슬래’월) 이십 사일이었으며 기원전 519년이 시작될 때가 멀지 않은 때였읍니다. ‘예루살렘’ 역사상 그 기념할 만한 날에 ‘시온’ 산 바로 북쪽에 있는 ‘모리아’ 산에서 성전 기초 공사가 다시 시작되었읍니다. 영감받은 또 다른 소식이 그들의 하나님으로부터 ‘유대’인 건축자들에게 임하기까지 그들은 만 두달 동안 중단하지 않고 거룩한 건물 공사장에서 일하였읍니다. 이번에는 원수들의 어떠한 방해 공작에도 그들은 그들의 일을 중단하지 않았읍니다.

      2.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일에 대한 소식을 ‘다리오’ 1세보다 분명히 누가 먼저 들었을 것이며, 결정 통지를 받을 때까지 얼마의 시일이 걸렸을 것입니까?

      2 기원전 519년 ‘스밧’월 24일까지는, ‘예루살렘’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소식이 아마 멀리 ‘바사’의 수도에 있는 ‘다리오’ 왕의 귀에는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역졸이 준마를 타고 하루에 약 160‘킬로미터’를 주파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그 소식은 아주 늦게 들어갔읍니다. (에스더 3:13-15; 8:10, 14) ‘예루살렘’에서 “비옥한 언월 지대”를 경유하여 ‘수산’으로 가려면 천 육백여 ‘킬로미터’가 될 것이며 또 ‘수산’에서 북쪽으로 ‘엑바타나’까지는 길이 똑바르다면 320여 ‘킬로미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리오’ 왕이 깜짝 놀랄 정보를 듣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따라서 ‘바사’ 왕이 있는 곳에서 ‘유브라데’ 강 건너편(서편)에 있는 도를 다스리는 ‘바사’ 관리들이 이 소식을 먼저 들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토론을 하고 조사를 하는데 몇 개월(사 오개월로 추산하는 사람도 있음)이 걸렸을 것이며 그 후에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한 ‘다리오’ 왕의 결정을 통지받고 시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라 5:2에서 6:2의 기록을 보면 그 경위는 이러합니다.

      3. ‘유브라데’ 강 건너 서편의 ‘바사’ 총독들은 성전 건축자들에게 어떠한 질문을 하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3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하여 돕더니 그 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다 나아와 저희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4. ‘바사’ 총독들이 ‘다리오’ 왕에게 보낸 편지의 사연은 어떠하였읍니까?

      4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 강 서편 ‘아바삭’ 사람이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이 이러하니라. 그 글에 일렀으되

      “‘다리오’ 왕은

      “만안하옵소서. 왕께 아시게 하나이다. 우리가 ‘유다’ 도에 가서 지극히 크신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 보온즉 전을 큰 돌로 세우며 벽에 나무를 얹고 부지런히 하므로 역사가 그 손에서 형통하옵기로 우리가 그 장로들에게 물어 보기를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고 우리가 또 그 두목의 이름을 적어 왕에게 고하고자 하여 그 이름을 물은즉

      “저희가 우리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 오랜 옛적에 건축되었던 전을 우리가 다시 건축하노라. 이는 본래 ‘이스라엘’의 큰 왕이 완전히 건축한 것이더니 우리 열조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저희를 ‘갈대아’ 사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이 전을 헐며 이 백성을 사로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더니 ‘바벨론’ 왕 ‘고레스’ 원년에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건축하게 하고 또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속에서 금, 은 기명을 옮겨다가 ‘바벨론’ 신당에 두었던 것을 ‘고레스’ 왕이 그 신당에서 취하여 그 세운 총독 ‘세스바살’이라 이름한 자에게 내어 주고 일러 가로되 너는 이 기명들을 가지고 가서 ‘예루살렘’ 전에 두고 하나님의 전을 그 본처에 건축하라 하매 이에 이 ‘세스바살’이 이르러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지대를 놓았고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건축하여 오나 오히려 필역하지 못하였다 하였사오니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5. ‘다리오’ 왕은 편지를 받고 어떠한 조처를 취하였으며, 무엇이 발견되었읍니까?

      5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려 서적 곳간 곧 ‘바벨론’에서 보물을 쌓아둔 곳에서 조사하게 하였더니 ‘메대’도 ‘악메다’[‘엑바타나’, 신세] 궁에서 한 두루마리를 얻으니 거기 기록하였으되.”

      6. 그 일이 진행되는 동안 ‘예루살렘’ 건축자들은 어떻게 하고 있었으며, 기원전 519년 ‘스밧’월 24일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6 제사장 ‘에스라’가 열기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유대’인 남은 자들은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인도를 받아 과감하게 성전 재건 사업을 계속해 나갔읍니다. 십일월 이십사일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그 때는 기원전 519년 겨울이었읍니다. 그 중요한 날에 예언자 ‘스가랴’는 격려적인 일련의 환상을 받기 시작하였읍니다. 이에 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 환상

      7. ‘스밧’월 24일에 받은 첫 환상에서 ‘스가랴’는 무엇을 보았읍니까?

      7 “‘다리오’ 왕 이년 십일월 곧 ‘스밧’월 이십사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더라.]”—스가랴 1:7, 8.

      8, 9. 누가 ‘스가랴’에게 설명하였으며, 말들을 보고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8 환상 중에 ‘스가랴’는 천사의 인도를 받았읍니다. 천사는 오늘날 우리도 이해하기를 원하는 것들을 그에게 설명하여 주었읍니다. 탄 자들이 있는 말들이 ‘예루살렘’ 변두리 계곡에 있는 화석류 나무 사이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 그 시기에 ‘예루살렘’에 전쟁이 임박하였읍니까? 성서에서 말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욥 39:19-25; 잠언 21:31) 누가 그 말들을 보냈읍니까? 말탄 자들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그들의 목적은 전쟁입니까? ‘스가랴’는 이러한 점들을 알기 원하였읍니다.

      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까?”

      10, 11. 그 말탄 자들은 누구로 판명되었으며, 그들은 화석류나무 사이에 있는 말탄 자에게 무엇이라고 보고하였읍니까?

      10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니라.]”—스가랴 1:9.

      11 그 말탄 자들은, 말하자면, 정찰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나님께서 파견하신 천사들이었읍니다. 이러한 기록을 읽어보면 그 점이 명백하여 집니다.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스가랴 1:10, 11.

      12. (ㄱ) 천사 정찰대의 보고와 같이 어떠한 면으로 “온 땅”은 평화로왔읍니까? (ㄴ) 이와 관련하여 ‘애굽’은 무슨 문제로 ‘앗수르’와, 다음에 ‘바벨론’과 싸웠읍니까?

      12 그 천사 정찰대는 붉은 말을 타고 있는 그들의 대장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그들은 온 땅에 세계적 평화가 있다고 말하였읍니까? 분명히 그러하였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인 의미에서, 즉 다른 것과 관련해서만 그러하였읍니다. 다른 것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예루살렘’과 ‘유다’ 구역입니다.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예루살렘’이 열국중에서 가졌던 이전의 지적 지위를 상실하였다는 점에서 그러하였읍니다. 기원전 607년까지 그것은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모형적 메시야 왕국의 소재지였읍니다. 이 여호와의 소규모 왕국은 이방 세계, 이방 나라들에게 고민 거리였읍니다. ‘애굽’은 ‘예루살렘’과 협상해서 협정을 맺기 위하여 혹은 ‘예루살렘’의 제반사에 대한 통제권을 얻기 위하여 ‘앗수르’와, 다음에 ‘바벨론’과 싸웠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607년 이후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다.

      13. 기원전 607년부터 ‘애굽’은 왜 ‘예루살렘’에 있던 모형적 메시야 왕국과 협정 관계를 유지하지 않았읍니까?

      13 세계적으로 중요한 그 해에 ‘느부갓네살’과 그의 ‘바벨론’ 군대와 연합군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멸망시켰읍니다. ‘다윗’ 왕국은 전복되었고 ‘다윗’ 계통의 왕이 더는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지 않았읍니다. 그 곳에 앉은 마지막 인간 왕이었던, ‘스룹바벨’의 종증조부 ‘시드기야’는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 갔으며 그곳에서 실명하고 투옥된채 여생을 보냈읍니다. 기원전 607년 ‘티쉬리’월에 ‘유다’ 땅에 남아 있던 가난한 서민 소수인들은 ‘바벨론’인들(‘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였으며, ‘유다’ 땅과 ‘예루살렘’은 사람도 짐승도 없이 황폐되었읍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언한 그대로 되었읍니다!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이 계산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기간은 무엇이었읍니까?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기간을 무엇이라고 부르셨고, 세상 정치에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였으며, 그것은 언제 끝났읍니까?

      14 그것은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기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누가 21:24)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소규모적 메시야 왕국의 소재지였고 따라서 ‘다윗’ 왕의 메시야 후손의 손으로 다스릴 하나님의 왕국의 권리를 상징하였으므로, 이것은 ‘예루살렘’ 즉 그 왕국의 권리를 짓밟도록 허락될 그 이방 나라들에게 특별한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바로, 이방 나라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허락을 받아 수도가 지적 ‘예루살렘’에 있던 이전 왕국과 같은 하나님의 어떠한 메시야 왕국의 간섭도 받지 않고 땅을 다스릴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처럼 간섭받지 않는 이방인의 때는 상징적인 일곱 “때” 즉 문자적인 2,520년간 계속될 것이었으므로 이 정해진 기간은 기원전 607년 ‘티쉬리’월부터 시작하여 현 이십 세기의 1914년 ‘티쉬리’월까지 계속될 것이었읍니다. (다니엘 4장) 기원전 519년 당시에 천사 정찰대가 온 땅이 정온하다고 보고한 것도 당연합니다!

      15. ‘유다’ 땅의 상태와 그 곳의 ‘유대’인 총독은 왜 동요될 필요가 없었으며, 재개되는 성전 재건 사업에 대하여 조사에 나선 총독 ‘닷드내’는 어떠한 절차를 밟았읍니까?

      15 왕 ‘다리오’ 1세 2년이었던 그 해에 ‘유다’ 땅과 그 지역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은 “‘인도’로 ‘구스’까지” 이르는 ‘바사’ 제국의 127개도 중 한 도에 불과하였읍니다. (에스더 1:1-3) 이곳에는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 총독이었지만 그는 그의 조부이며 왕이었던 ‘여호야긴’이 석달 열흘 동안 ‘다윗’의 보좌에 앉았던 것과 달리 ‘다윗’의 보좌에 앉지는 않았읍니다. 그는 아마 ‘유브라데’ 서편 관할 지역의 총독들 중 한 사람, 아마 총독 ‘닷드내’의 직접 지휘를 받았을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왕 ‘다리오’ 1세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 대하여 심각하게 동요될 필요는 없었읍니다. 물론 총독 ‘닷드내’는 성전 기초 위에 재건 공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 흥분하여 당국자의 입장으로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대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군인을 출동시켜 공사를 막지는 않았읍니다. 대신 그는 ‘다리오’ 왕에게 질문을 보내어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왕이 결정을 내리기를 기다렸읍니다. (다니엘 6:8) 총독 ‘닷드내’는 왜 그처럼 자제하였읍니까? 에스라 5:5이 설명합니다.

      16. 에스라 5:5에 의하면 총독 ‘닷드내’는 왜 그러한 절차를 밟았읍니까?

      16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 왕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17, 18. (ㄱ) 그러므로 “온 땅”의 상태에 대하여 천사 정찰대는 무엇을 발표할 수 있었읍니까? (ㄴ) 그러나 이에 대한 누구의 태도가 가장 중요한 의문이며 어떠한 질문이 있었읍니까?

      17 따라서, ‘예루살렘’이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에 대한 세상의 불안에 대하여 천사 정찰대는 ‘예루살렘’ 골짜기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는 그들의 대장에게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하더이다” 하고 보고할 수 있었읍니다. 이방 세계 혹은 이교 세계는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어떠한 메시야 왕국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태평한 상태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 자신은 어떠하였읍니까? ‘예루살렘’과 그것이 대표하는 것에 대한 그분의 태도는 어떠하였읍니까? 그의 예언자 ‘학개’가 영감을 받아 말하기를 그쳤다는 것을 그분이 더 보증하셨읍니까? 그 분도 ‘예루살렘’의 복지와 여호와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있어서의 그것의 역할에 대하여 이방 나라들처럼 태평하셨읍니까? 하늘의 천사들도 이에 대하여 관심이 있었으며, 특히 “네[‘다니엘’의]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그러하였읍니다. (다니엘 12:1; 베드로 전 1:12) 이에 대한 증거로 다음에 예언자 ‘스가랴’는 환상 가운데 이것을 보았읍니다.

      18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자비를 보이지, 신세] 아니 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년이 되었나이다.”—스가랴 1:12.

      19.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칠십년”이 어떤 사람들의 생각에 계속되는 것같이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9 천사가 말한 것을 보고 일부 사람들은 “칠십년”에 대한 여호와의 선언이 ‘예루살렘’과 기타 ‘유다’ 도시들에 대하여 아직도 계속되는 줄로 생각하였읍니다. 이것은 성전 재건이 과거 십칠년간 중단된 사실 때문이었읍니다. 그 분은 포로로 잡혀간 그들의 조상이 ‘솔로몬’ 왕이 건축한 이전 성전을 더럽혔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우 노하셨었읍니다. 이제 기원전 520년 팔월(‘헤스반’월)에 여호와께서는 송환된 ‘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처럼 되지 말고 재건된 성전을 통하여 그 분께 드리는 온전한 숭배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옴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말라고 경고하셨읍니다. (스가랴 1:1-6) 이에 비추어 볼 때에 이러한 일들이 ‘예루살렘’과 사람이 다시 거주하게 된 ‘유다’의 기타 도시들에 대하여 그분께 의미한 바에 따라 천사의 외침을 이해해야 합니다.

      20. 그러므로 “칠십년”에 대해 천사가 외친 말을 보고 왜 그 기간이 계속되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됩니까?

      20 “칠십년”에 대한 천사의 언급은 예언자 ‘예레미야’가 언급한 칠십년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칠십년 동안 ‘유다’와 ‘이스라엘’ 두 나라는 ‘바벨론’ 왕조를 섬겨야 하였으며, 그 칠십년 끝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과 ‘갈대아’인들의 그릇된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묻고 그 일에 대하여 처벌하실 것이었읍니다. (예레미야 25:11-13) 그러면 여호와의 천사의 말은 그 칠십년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거나, 아니면 막 끝났다는 뜻입니까? 역사에 의하면 그럴 수 없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이보다 약 이십년 전(기원전 539년)에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대왕을 통하여 세계 강국의 자리에 있던 ‘바벨론’을 전복시키고 이년 후 즉 기원전 537년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왕을 대리하던 ‘고레스’를 감동시켜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에스라 1:1에서 2:2; 역대 하 36:20-23.

      21. 그 “칠십년” 동안 ‘유다’ 땅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으며, 그 땅의 그러한 상태가 지나간지 오래되었는지를 무엇이 알려줍니까?

      21 더욱이, ‘유대’ 땅은 “안식하여 칠십년”을 지내야 하였읍니다. (역대 하 36:21) 어떻게? “황폐하여 사람이나 짐승이 없으며 ‘갈대아’인의 손에 붙인 바” 됨으로써 입니다. (예레미야 32:43; 33:10-12) 예언자 ‘스가랴’와 천사들은 ‘유다’ 땅과 ‘예루살렘’이 사람이나 짐승없이 완전히 황폐되는 그 칠십년간이 기원전 537년에 끝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그 해에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서 돌아와 그 땅에 다시 살게 되었읍니다. 그 해 칠월(‘티쉬리’월)에 그들이 그들의 도시에 돌아가 살고 있었다고 보고 되었읍니다. (에스라 3:1, 2) 그 땅은 더 이상 황폐되지 않았고 예언자 ‘학개’가 십칠년 후에 보고한 바와 같이 그 땅에서 곡식이 자라게 되었읍니다. (학개 1:6-11; 2:16, 17) 그러므로 그 칠십년은 지나간지 오래였읍니다!

      22. 예언자 ‘다니엘’은 “칠십년”이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까지 계속되지 않았음을 어떻게 지적하였읍니까?

      22 만일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때에 그 칠십년이 아직 계속되고 있었거나 막 끝났다면, 천사는 알면서도 왜 그러한 말을 하였겠읍니까? 천사는 그 기간이 분명히 칠십년이라는 것을 알면서 ‘만군의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질문한 이유가 무엇이겠읍니까? (스가랴 1:12)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이 전복된 후 ‘메대’ 왕 ‘다리오’ 원년 당시에 예언자 ‘다니엘’은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한 것”을 깨달았읍니다. (다니엘 9:1, 2) 그리고 분명히 ‘다니엘’이 그 햇수를 깨달은 것은 그 기간이 끝나기 십칠년이나 되는 오랜 기간 전이 아니라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칠십년 기간이 끝나기 직전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바사’ 왕 ‘고레스’ 삼년”까지는 살았던 연로한 예언자 ‘다니엘’은 자기가 그 기간의 길이를 정확하게 계산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니엘 10:1) 그러므로 그 “칠십년”은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까지 계속되지 않았읍니다.

      23. 그 칠십년은 무슨 더 긴 기간의 첫 부분이었으며, 따라서 천사가 “언제까지”인가를 질문하였을 때 그는 무엇을 비교하고 있었읍니까?

      23 그 잊을 수 없는 칠십년은 또한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의 처음 칠십년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칠십년이 기원전 537년에 끝났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이방인의 때가 아직도 계속되어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이 짓밟히고 있었읍니다. (누가 21:24) 그러므로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여, 언제까지입니까?’ 하고 외친 천사는 여호와의 선민에 대한 그의 통박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전의 칠십년 기간을 회상하여 말하고 있었읍니다. 그는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에 대하여 오랫 동안 방심하여 왔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그들에 대한 통박을 새롭게 하셨는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아직도 얼마나 있어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기타 ‘유다’ 도시에 자비를 보이실 것인가를 질문한 것입니다. 예언자 ‘스가랴’도 이 점을 알기 원하였읍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24. 여호와께서는 질문한 천사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셨으며,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그리고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셨니까?

      24 ‘스가랴’는 만군의 여호와와 질문한 천사와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게된 것을 참으로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스가랴 1:13-15.

      25. 왜 여호와께서는 그의 선민에 대하여 진노하셨으며, 그러나 그분은 왜 이방 열국에 대하여 진노하게 되셨읍니까?

      25 여호와께 불순종한 이 선민들에게 진노하신 것은 정당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에게 징벌하시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분은 ‘바벨론’과 그의 동맹군 및 동조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벌하셨읍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하셨읍니다. 한편, 시정의 도구로 사용된 이방 나라들은 그분의 선민에 대한 순수한 증오심에서, 또한 그 분과 그 분의 숭배에 대한 경멸의 표시로 지나치게 행동하였읍니다. 심술궂게도 그들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읍니다. 악의를 품고 그들은 가외에 고난을 더하였읍니다. 현대의 박해자들도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그렇게 하기 일쑤였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열국을 심히 진노”하신다고 한 데에는 선하고 정당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오늘날 국가주의적 정신을 가지고 있는 박해자들은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이제 ‘예루살렘’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 목적을 가지셨읍니까?

      2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자비를 가지고, 신세]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스가랴 1:16.

      27.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을 영원히 버리지 않으셨다는 것을 박해자들에게 어떻게 증명할 것이었으며, 어떻게 먹줄이 그 곳에 쳐질 것이었읍니까?

      27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 대한 이방 나라들의 징계 행위는 실제 박해로 행해졌읍니다. 박해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백성을 완전히 버리셨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버리지는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것을 박해자들에게 증명하기로 결정하셨읍니다. 이에 대한 상징으로 ‘예루살렘’은 영원히 황폐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먼지와 부스러기를 떨고 일어나게 하고 그 곳에 사람이 다시 거주하게 하심으로써 자비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것이었읍니다. 그 곳에 집들이 다시 세워지고 그리하여 집을 건축하는 동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질 것이었읍니다. 건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물 즉 여호와의 성전도 그 곳에 건축될 것이었읍니다! 그렇게 되면 박해자들도, 그들의 거짓 신들도 쓰디쓴 패배감을 느낄 것이었읍니다!

      28. 그러므로 여호와의 선택은 누구에게 분명히 나타나게 되어 있었으며,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28 복구 공사를 위한 하나님의 때는 도래하였읍니다. 이제 아무런 방해도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보이는 지상의 조직을 택하셨읍니다. 그 선택은 안일한 세상 열국이 노하든 안하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분명해 질 것이었읍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비밀이 없었읍니다. 하나님의 결정과 선택에 사람들이 주의를 돌려야 함을 보이기 위하여 예언자 ‘스가랴’의 귀에 이러한 명령이 발하여졌읍니다.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후회하며, 신세]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스가랴 1:17.

      29. (ㄱ)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그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셨으며, 그는 어떻게 그러한 선택을 나타내실 것이었읍니까? (ㄴ) ‘예루살렘’은 일명 무엇이었으며, 왜 그리고 누가 그 곳에 거하였읍니까?

      29 만군의 여호와께서 ‘바사’의 ‘유다’ 도의 여러 도시를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신 것에 유의하십시오. 그 분은 그 도시들을 택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 도시들을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십니다. 그 분은 이러한 복구된 도시가 그 분으로부터 넘치도록 풍부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번영할 것입니다. 이러한 도시에는 각기 지방적 다스림을 위한 장로의 회가 있었읍니다. 그러한 재조직된 도시들은 땅의 수도를 가질 것이었읍니다. 그 제일의 도시는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도시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수도였던 도시 즉 여호와의 백성이 재건한 ‘예루살렘’일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적으로 선택한 도시도, 제국이 선택한 도시도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신권적으로 선택된 것입니다. 위대하신 신권 통치자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택한 이 도시는 ‘시온’이라고도 불리웠읍니다. 왜냐 하면 ‘시온’ 산에 ‘다윗’의 궁전이 소재하였었기 때문입니다. 그 궁전 옆에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궤의 임시 안치소로 장막을 친 바 있읍니다. 재건된 ‘시온’ 혹은 ‘예루살렘’에는 도 전체를 관할하는 총독부가 소재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총독 ‘스룹바벨’은 그 곳에 거주하였읍니다.

      30. 어떻게 그리고 언제 여호와께서는 “‘시온’에 대하여 후회”하셨읍니까?

      30 그 곳 거민들이 계속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시온’ 즉 ‘예루살렘’이 ‘바벨론’인들에게 멸망되어 칠십년 동안 황폐되도록 명하셨읍니다. 정하신 때에 여호와께서는 황폐된 ‘시온’에 대하여 후회하셨읍니다. 이것은 ‘시온’을 멸망하게 하신 것이 그분의 잘못이나 실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이 성취되고 그의 목적이 달성되어 자신을 입증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의 분노는 가라앉을 수 있었고 자신을 위로하실 수 있었읍니다. 이제 그 분은 자신의 진노를 받은 대상에 대하여 슬퍼하실 수 있었고 서슴치 않고 그것에 대하여 동정하고 그것을 위로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아무 실수도 인정하시지 않고도 여호와께서는 칠십년 황폐의 끝에 ‘시온’에 대하여 후회 하셨읍니다. 아무 비행도 씻을 필요가 없이, 부당하게 입힌 아무 손해도 배상할 필요가 없이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포로되었던 백성을 돌아오게 하셨고 그들로 ‘시온’을 재건케 하셨읍니다. 멸망의 때는 지나갔고 건설의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정심이 놀랍게 나타났읍니다!

      31. (ㄱ) 어떤 나라가 ‘예루살렘’이 완전히 도괴되어야 한다고 외쳤으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읍니까? (ㄴ) 한 도시에 대한 여호와의 선택을 큰 소리로 외칠 때는 언제였읍니까?

      31 기원전 607년에 ‘시온’ 즉 ‘예루살렘’을 도괴할 때에 ‘에돔’ 사람들은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는 말로 ‘바벨론’ 정복자들을 선동하였읍니다. (시 137:7) 조소하는 적들은 ‘시온’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도시를 영원히 버리셨으며, 자기들처럼 그 분께서 ‘예루살렘’을 다시는 선택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그의 은혜로운 예언을 잊거나 부인하실 수 없었읍니다. 충실하시게도 그 분은 “‘예루살렘’을 택”하셨으며 그 선택은 수년 후, ‘스가랴’가 첫 환상을 본 기원전 519년에 유효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백성들에 의해 건설되었을 뿐 아니라 성전 기초가 놓였고 상부 건축 공사가 이미 시작되었읍니다. 성전이 완공되면 여호와께서는 그 곳에 자신의 이름을 두실 것이며 그분은 영으로 임재하실 것이고 그분의 온전한 숭배가 그곳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만국에 증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원전 519년에도 그분의 선택을 큰소리로 외칠 때였읍니다!

      32. 현대 ‘예루살렘’에서 오늘날 스가랴 1:17이 성취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2 현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읍니까? ‘아랍’과 ‘이스라엘’은 1948년과 1967년에 현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전쟁을 벌였지만 현대 ‘예루살렘’에는 그와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읍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서부 성벽(‘코텔 마아라비’) 아래에서 울거나 기도문을 외우고 있고, 그들보다 약 18‘미터’가량 높은 곳에 있는 지역에서는 회교도들이 ‘바위의 도옴’과 ‘모스크 엘악사’에서 숭배하고 있읍니다. 여기서 남쪽으로 성서에 나오는 ‘시온’ 산은 현 성벽 밖에 폐허로 남아 있읍니다. 현 상태를 정당하게 고려하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과 숭배를 위한 장소로 땅의 ‘예루살렘’을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스가랴 1:17의 현대 성취를 찾아야 합니다.

      33. (ㄱ) ‘스룹바벨’이 고대 ‘예루살렘’을 다스린 것은 오늘날 무엇에 상응합니까? (ㄴ) 그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33 오늘날 지상에는 ‘예루살렘’ 총독 ‘스룹바벨’이 한 바와 같은 성전 건축 공사가 없읍니다. 그러나 더 큰 ‘스룹바벨’ 즉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 분은 히브리 12:22에서 부른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총독으로 다스리십니다.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찼을 때에 그 분은 그 곳에 통치하는 왕으로 즉위하셨으며 지상에 있는 그의 참되고 충실한 제자들을 다스리십니다. 그러한 제자들은 결코 그리스도교국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국은 모순되는 수백가지 종파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계 평화와 안전의 보존자로서 국제 연합에 집착하고 있으며 그의 손에는 이 세상의 비그리스도교적 전쟁으로 말미암아 피가 가득합니다. 하늘의 더 큰 ‘스룹바벨’은 그분이 숭배하는 동일한 하나님 즉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다스리십니다. 이들 숭배자들도 이 하나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이 될 의무가 있읍니다. (이사야 43:10-12; 44:8) 그들이 바로 더 큰 ‘스룹바벨’의 정부의 자리인 “하늘의 ‘예루살렘’”을 이루는 사람들입니다.

      34. 1914-1918년에 있었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사태는 어떻게 여호와께서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같이 보였읍니까?

      34 이러한 모든 성경적 관련성 때문에 지상에 있는 이러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위에 있는 ‘시온’ 산과 “하늘의 ‘예루살렘’”을 대표합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상징적 ‘시온’ 즉 ‘예루살렘’에 일어난 것과 같았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1914-1918년)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은 더 크신 ‘스룹바벨’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고착한다는 이유로 그리스도교국의 소위 그리스도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읍니다.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그들의 증거 사업은 방해를 받았고 최소 한도로 위축되었읍니다. 그들은 전쟁으로 혈안이 된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음으로 육체적 무기를 들고 서로 대항하여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 상호간의 국제적 협조는 그들의 국제 조직을 파괴하려는 적들에 의하여 깨어졌읍니다. 그들은 전세계에서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마치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읍니다.

      35. 전후 기간 시초에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을 대표할 자들을 어떠한 두 집단 중에서 선택하셨읍니까?

      35 돌연 제1차 세계 대전은 1918년 11월에 휴전으로 끝나고 전후 기간이 시작되었읍니다. 이제 평화시의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읍니다. 그 해 12월에 그리스도교국의 종교가들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를 옹호하기 시작하였읍니다. 미국 그리스도교회 연방 협의회는 제창된 국제 연맹이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 점을 공개적으로 분명히 하였읍니다. 제창된 국제 연맹의 모든 회원국이 수백만명의 전사자들의 피에 더럽혀진 나라들인데도 그렇게 선언하였읍니다. 연방 협의회의 그 거창한 선언, 그 경건한 종교적 발언은 옳았읍니까? 분명히 그 때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실 때였읍니다. 그는 영적 ‘시온’ 즉 ‘예루살렘’의 대표자로 누구를 선택하실 것이었읍니까? 피로 물든 박해자들이 있는 그리스도교국을 택하실 것입니까, 아니면 더 큰 ‘스룹바벨’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고착하는 박해받는 자들을 택하실 것입니까? 그 분은 누구를 자신의 증인들로 조직하실 것입니까?

      36.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을 택하셨는지의 여부를 증명하는 어떠한 질문이 있읍니까?

      36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혼란과 타락이 전후 1919년 당시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리스도교국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합니까? 오늘날의 사실들은 그 분이 그의 “성읍들”을 넘치도록 풍부하게 하셨음을 부정할 여지없이 증명합니까? 그의 영적 성전은 숭배의 전으로 그리스도교국 내에 재건되어 있읍니까?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교국은 수백가지 교파를 통하여 여호와를 영적 성전에 계신 하나님으로 숭배합니까? 누가 그리스도교국의 증인으로 나서서 그렇다고 명백히 대답하겠읍니까? 그러한 증인이 없으므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37. 상태의 변화와 관련하여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의 주의를 이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37 어디를 보아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분명히 누구를 택하셨는가를 아는데 있어서 이름만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선택 받은 자들을 식별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전후의 봉사를 위하여 어떻게 조직하였으며, 무엇을 선포하였고 세계 무대에서 타협함이 없이 무엇을 옹호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행하여 온 일입니다! 물론 “자비”를 가지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돌아오”셨는가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이 전후에 깨어나기 전의 그들의 영적 상태를 고려할 때 이러한 것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의절되고 배척받은 상태에서 그들은 일어났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으로부터 박해를 받아 거의 죽은 상태에서 일어났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만 아니라 제2차 대전 중에도 그리고 그 두 세계적인 대학살전 사이에도 그들을 박해하였으며 그들의 종교 조직을 파괴하려 했고 귀찮은 종교 문제로 여기고 영원히 그들을 멸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읍니다. 그러면 그처럼 종교적 박해와 반대를 받아가면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38. 전후 기간 중 지상에 있는 누가 여호와의 선택을 받은 자들임이 증명되었으며, 그들을 식별하게 해주는 무슨 특징이 있읍니까?

      38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역사적 사실은 그들을 식별하게 해줍니다. 오늘날 국제 무대에서의 그들의 역할은 그들을 뚜렷이 구별하여 줍니다. 그들은 그들이 숭배하고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 즉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리스도인 증인들입니다. 이 국제적으로 경멸받는 집단, 헌신하고 침례받고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종교적으로 무력한 상태에 있다가 종전 후 1919년에 여호와의 봉사로 전진하여 세계적 활동 무대에 올라섰읍니다. 정치적, 종교적, 군사적 및 사회적 세계가 국제 연맹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 때 기름부음을 받은 이 남은 자들은 온 인류의 유일한 희망으로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지지하는 편에 굳게 섰으며 그들의 이전 역사상 전례없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행로를 시작하였읍니다. 이 “좋은 소식”의 전파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태 24:14(신세)에서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이라고 예언 하신 바와 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증명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165개 언어로 전파되고 있읍니다!

      39. (ㄱ) 이 공적은 여호와께서 어디로 무엇을 가지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가능하였읍니까? (ㄴ) 이들은 무엇에 이르렀으며, 그들은 어디에서 거룩한 봉사를 하고 있으며, 누가 그들에게 가담하고 있읍니까?

      39 세계 역사상 이 커다란 공적은 인간의 힘과 능력과 지혜와 용기와 인내심만으로 이룩된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언된 봉사와 증거를 하도록 그들을 택하신 것이 주된 요인이었읍니다. 그들이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그 분께 전적으로 헌신하였을 뿐 아니라 그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셨고 “자비”를 가지고 그들에게 “돌아오”셨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충실히 따름으로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고 있읍니다. 그들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큰 이해력과 분별력을 가지고 여호와의 영적 성전을 인식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그들의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영적 제사장보로 봉사하며 그 분을 숭배하고 있읍니다. 현재 그들의 숭배에는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가담하고 있읍니다. 이들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평화를 좋아하는 양같은 사람들입니다. 예언 그대로 입니다! (계시 7:9-17) 우리는 그들을 208개 나라와 섬에서 만날 수 있읍니다.

      40. (ㄱ) 여호와께서 이들 회중들을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실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은 어떻게 조직되었읍니까? (ㄴ) 그 “성읍들”은 어떠한 면으로 ‘넘치도록 풍부하게 되고’ 있읍니까?

      40 그들에게는 도시와 같은 정치적 공동체가 없읍니다. 그들의 상징적 “성읍들”은 예수 그리스도 곧 더 큰 ‘스룹바벨’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종교적 회중들입니다. (마태 28:19, 20) 이들은 성경에 약술된 신권 통치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도시와 같이 이 회중에는 각기 원로의 회 혹은 “장로의 회”가 있읍니다. 또한 각 장로의 회를 돕는 “봉사의 종들”(‘디아코노이’)이 있읍니다. (디모데 전 3:1-13; 4:14; 디도 1:5-9; 빌립보 1:1; 베드로 전 5:1-4) 여호와께서는 적절하게도 이 그리스도인 회중들을 “나의 성읍들”이라고 부르실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참으로 그들의 조직과 성장에 책임이 있으시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분께 무조건 헌신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이러한 상징적 “성읍들”을 조사하여 보면 그들은 영적 의미로 그 분으로부터 ‘넘치도록 풍부하게 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산더미 같은 증거로 판단하여 볼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하늘의 ‘예루살렘’의 대표자로 선택하셨읍니다. 우리는 마땅히 그 분께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스가랴 1:16, 17의 예언이 그처럼 성취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둘째 환상

      41. (ㄱ) 박해자들에게 이미 임한 일이 사태의 끝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ㄴ) ‘스밧’월 24일에 받은 환상에서 ‘스가랴’는 무엇에 관하여 질문하였읍니까?

      41 그러나 박해자들 및 만군의 여호와의 헌신한 숭배자들을 박해하고 멸절시키려는 자들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오늘날 세계 상태를 볼 때 우리는 이미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관찰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박해자들의 현재의 상태는 문제의 종말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마침내 무슨 일이 닥칠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예언자 ‘스가랴’는 ‘바사’ 왕 ‘다리오’ 1세 통치 제2년 즉 기원전 519년 십일월(‘스밧’월), 같은 날인 이십 사일에 첫 환상에 이어 그 직후 또 하나의 환상을 보았읍니다. ‘메대-바사’ 제국은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이었으며, 이 둘째 환상에 그 제국은 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환상을 본 ‘스가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눈을 들어 본즉 네뿔이 보이기로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대답하되 이들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헤친 뿔이니라.”—스가랴 1:18, 19.

      42. 그 “뿔”은 무엇을 상징하며, 뿔이 넷이 있다는 데에는 무슨 뜻이 있읍니까?

      42 예언자 ‘스가랴’는 영감받은 성경에서 뿔이 한 나라나 제국 정부의 권세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상징적인 그 네개의 뿔은, 그 때까지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거민들을 흩어지게 하고 그 도시들을 파괴한 네개의 나라 혹은 제국을 반드시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읍니다. 성경에서 넷이라는 숫자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읍니다. 예를 들면 바람과 관련하여 넷이라는 말을 사용할 경우 하늘의 네 바람은 하늘의 모든 부분 혹은 사방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또, 네 바람은 지구의 모든 방향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에스겔 37:9; 다니엘 7:2) 여호와의 예언자 ‘에스겔’이 본 여호와의 천상의 병거에 달린 네 바퀴는 하나님의 병거의 균형잡힌 상태를 시사하는 것이었읍니다. (에스겔 1:15, 21) 따라서 네 뿔은 문자 그대로 네 나라가 아니라 관련된 모든 정부의 권세를 의미하는 것이며 어느 방향도 빠짐이 없기 때문에 불균형이 없는, 모든 방향으로 활동하는 모든 정부 권세를 의미할 수 있었읍니다.

      43. 그러므로,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 외에도 어떠한 다른 정치 국가들이 그 상징적 “네 뿔”에 포함되었을 것입니까?

      43 그러므로 세계 강국이었던 ‘애굽’, ‘앗수르’ 및 ‘바벨론’만이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을 흩어지게 한 것이 아니고 ‘에돔’과 기타 동맹국 같은 나라들도 여호와의 선민들에게 그러한 악한 행동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모두 박해 행위에 가담하였읍니다. 그 정치 조직들은 그들의 권력 특히 군사력을 여호와의 선민들에게 악의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사용하였읍니다.—스가랴 1:15.

      44. 여호와께서는 안일한 이방 나라들에 대하여 왜 크게 진노하셨읍니까?

      44 그 이교 정치 국가들은 모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청종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은 백성에 대하여 징계하시려고 생각하신 정도를 넘었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은 행동의 여유를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악의와 원한과 질투와 심술을 나타내는데 사용하였읍니다. 그러한 이유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스가랴’가 들을 수 있도록 천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스가랴 1:15)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에게 복수감 혹은 악의를 만족시켰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있는 그러한 나라들에 대하여 어떻게 큰 진노를 나타낼 것을 목적하셨읍니까? 그 분은 ‘스가랴’의 눈 앞에 전개된 환상의 다음 부분에서 그 방법을 이러한 말씀으로 알리십니다.

      45. 여호와께서는 ‘스가랴’에게 환상 가운데서 안일한 나라들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표현하시기 위한 수단으로 무엇을 보이셨읍니까?

      45 “때에 여호와께서 공장 네명을 내게 보이시기로 내가 가로되 그들이 무엇하러 왔나이까? 하매 대답하여 가라사대 그 뿔들이 ‘유다’를 헤쳐서 사람으로 능히 머리를 들지 못하게 하매 이 공장들이 와서 그것들을 두렵게 하고 이전에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치려 하느니라 하시더라.”—스가랴 1:20, 21.

      46. (ㄱ) 그러한 “공장”이 왜 넷이 있었으며, 그들의 직업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사명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누가 그들을 보냈으며, 이것은 박해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46 이러한 공장(工匠)들 즉 공예인이 수자에 있어서 넷이므로 네 뿔과 맞먹습니다. 그들의 수는 네 뿔의 경우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경우에 관련되어 있고 균형잡히고 온전하고 충분한 방법으로 조직된 모든 “공장”을 상징할 것입니다. 그들은 공장 즉 공예인들이므로 파괴주의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로 건설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파괴시키는 일에 사용될 수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작업 도구를 그 목적에 사용할 수 있읍니다. 이것이 환상에 나타난 그들의 사명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의 공장이었읍니까? 그들을 누가 보냈읍니까? 분명히 만군의 여호와께서 보내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여호와의 백성들과 ‘유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흩어지게 한 네 뿔의 권세를 파괴하기 위해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기 위하여 사용한 것은 분명히 그들의 망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가하는 “뿔”에게는 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 박해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어야 하였읍니다.

      박해자들에게 하나님의 주의가 돌려지다

      47. 그 박해한 나라들에게 그 후에 일어난 일은 세상사의 자연적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47 여호와의 크신 진노는 박해하는 나라들 위에 어김없이 표현되었읍니다. 고대 역사에 의하면 고대 여호와의 선민을 악의적으로 학대한 나라들이 그 후로 잘되지 못하고 재난을 당하였읍니다. 오늘날 그러한 나라들은 어디에 있읍니까? 이처럼 재난을 당한 것은 전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자연적인 세상사의 진전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그러한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결과였읍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교훈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48. (ㄱ) ‘로마’는 기원 제1세기에 누구의 박해자가 되었으며, 어떻게 박해를 계속하였읍니까? (ㄴ) ‘로마’는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부분의 머리입니까?

      48 통용 기원 제1세기에 영적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베들레헴-유다’의 예수의 인도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읍니다. 그 영적 ‘이스라엘’은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 나라를 대치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의 참 상속자 ‘이삭’이 ‘이스마엘’을 대신하자 ‘이스마엘’이 ‘이삭’을 박해한 것처럼 육적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을 형성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하였읍니다. 육적 ‘이스라엘’은 이 때문에 좋지 않은 결과를 당하였읍니다. 즉 그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은 기원 70년에 멸망되고 ‘유다’ 도의 생존자들은 흩어졌으며 대부분은 포로가 되었읍니다. (갈라디아 4:21-31; 데살로니가 전 2:14-16; 창세 21:1-14) 기원 64년에 ‘로마’에 대화재가 있은 후, ‘로마’는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읍니다. ‘로마’는 이교 ‘로마’ 제국의 여왕으로서 뿐 아니라 신성 ‘로마’ 제국의 종교적 여왕으로서도 이 박해를 계속하였읍니다. 그 신성 ‘로마’ 제국은 십구세기 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대에 종말을 고하였읍니다. 그러나 ‘로마’는 아직도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의 가장 크고 가장 강하고 가장 신도가 많은 부분의 머리입니다. 그러나 ‘로마’는 그러한 입장에서 “요동”해 왔읍니다.

      49. 누가 ‘로마’의 뒤를 이어 박해하는 세계 강국이 되었으며, 누구를 통하여 언제 이것이 예언되었읍니까?

      49 십팔 세기에 성서 역사상 여섯째 세계 강국인 ‘로마’는 성서 예언에 나타난 일곱째이며 최대의 세계 강국인 대영 제국에게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대영 제국의 역사를 보면 그 제국 역시 만군의 여호와의 영적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흩어지게 하는 죄를 범하여 왔읍니다. 이 점에 있어서 미국도 마찬가지였으며 미국은 후에 일곱째 세계 강국에 융화되어 영미 양대 세계 강국을 형성하였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더욱 심하게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그러한 박해를 받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것이 사로잡혀간 예언자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 삼년에” 예언적 상징물로 생생하게 예언된 일입니다. 즉 그때는 고대 ‘바벨론’이 무너지기 전이며 따라서 ‘스가랴’가 네 뿔과 네 공장의 환상을 보기 이십여년 전이었읍니다. (다니엘 8:1, 9-12, 23-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상징적 “네 공장”이 ‘스가랴’가 환상을 본지 2,490여년 후에 “열국의 뿔을 떨어”칠 필요가 있을 것을 아셨읍니다.

      50. 일곱째 세계 강국 외에 어떤 다른 “뿔들”이 현대 영적 ‘이스라엘’을 박해하는 데 참여하였읍니까?

      50 현대에는 두 뿔가진 영미 양대 강국 뿐 아니라 다른 현대의 상징적 “뿔들”도 박해와 억압으로 영적 ‘이스라엘’을 흩어지게 하는데 가담하였읍니다. 현대에 가장 난폭한 박해의 한 경우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하의 제3독일 제국에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받은 잔혹한 학대였읍니다. 기타 주축국들은 그와 합세하여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과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을 악의적으로 억압하였읍니다. 그 후로 “북방 왕”을 형성하는 기타 정치적 “뿔들”은 여호와의 충실한 숭배자들을 압박하고 찌르고 위협하였읍니다.

      51. 언제 그리고 누가 “북방 왕”에 의한 박해를 예언하였으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박해에 대하여 무엇을 생각하셨음이 문명합니까?

      51 ‘바벨론’이 무너진 후 “‘바사’ 왕 ‘고레스’ 삼년”에 여호와의 천사는 우리 시대에 상징적 “북방 왕”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그처럼 박해하여 고통을 줄 일을 예언자 ‘다니엘’에게 예언하였읍니다. (다니엘 10:1, 18-21; 11:29-36, 44, 45) 이로 보건대 여호와께서는 과거에 그의 모형적 백성들을 박해한 “뿔들”만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미래, 즉 현대에 실체적 백성들을 박해할 “뿔들”도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5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누구를 미리 경고하기 위하여 그의 모형적 백성들의 과거의 경우를 사용하셨으며, 이것이 계시록 7:1-3에 있는 ‘요한’의 환상 가운데 어떻게 지적되어 있읍니까?

      5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충실한 숭배자들의 정당한 영적 토지에 대항하여 ‘뿔을 든’ 현대 열국에게 미리 경고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모형적 백성의 과거의 박해의 경우를 사용하셨읍니다. 그러한 모든 열국을 치시는 데 그분은 자기의 상징적 “공장”들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환상 중에 나오는 “공장”의 수가 넷이라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이 기원 1세기 말에 환상에서 본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는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시 7:1-3.

      53. 그 “네 바람”이 놓이면 그 결과로 “네 뿔”에는 무슨 일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여호와의 박해받는 숭배자들을 강화하여 인내하게 할 것입니까?

      53 네 바람이 놓이면 전세계적인 폭풍이 일어나 땅의 모든 나라들이 해를 입을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맞은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항하여 열국이 든 상징적 “뿔들”은 멸망될 것입니다. 이것은 “공장 네명”이 모든 나라의 상징적 “네 뿔”을 망치로 두들겨 부수는 것으로 상징된 것과 같은 결과를 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박해받는 숭배자들에게 모든 “자비”를 가지고 돌아오시는 것과는 반대로, 박해자들에게는 그 분의 자비 없는 심판의 집행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을 온전히 믿을 때 박해받는 모든 사람들은 더욱 힘을 얻고 끝까지 인내할 것입니다.

  • 하나님의 수도 조직의 성장과 보호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9장

      하나님의 수도 조직의 성장과 보호

      1. (ㄱ) 누가 가장 위대한 조직자이십니까? (ㄴ) 로마 1:19, 20에 의하면 지상에 있는 지성있는 피조물들은 그 조직자에 대하여 무엇을 지각했어야 합니까?

      온 우주 가운데서 가장 위대하신 조직자는 “위대한 제일 원인”이신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의 비길데 없이 뛰어난 조직 능력은 하늘과 땅에서의 그의 모든 활동으로 충분히 증명됩니다. 제1세기에 ‘로마’(‘이탈리아’)에는 국가의 신인 ‘주피터’가 아니라 살아계신 전능의 하나님을 숭배한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기원 1세기 중엽에 이 숭배자들이 받은 편지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읍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로마 1:19, 20) 인류 세계의 창조 이후로 지성있는 인간들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일이 없다 할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지각할 수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분이 만드시고 매우 질서있게 준비해 놓으신 보이는 결과로써 그들은 그분이 완전한 조직자이심을 지각했어야 합니다.

      2, 3. (ㄱ) 그분이 각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의 지성있는 피조물들을 조직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어떠한 기초가 있읍니까? (ㄴ) 그는 그의 보이지 않는 천적 조직에 대하여 ‘에녹’을 통하여 어떠한 경고를 하셨읍니까?

      2 이 하나님께서는 지성없는 창조물들을 보이는 하늘과 지상의 놀라운 생태로 그처럼 완전하게 조직할 수 있었으므로 그분은 그의 모든 살아있고 지성있는 피조물들을 조직하실 수 있고 또 조직하실 것입니다. 제각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러한 피조물들을 조직하시는 것은 우주의 평화와 일치 조화를 도모하고 무질서를 방지하는데 그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은 삼천 사백여년 전에 ‘아라비아’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조직하시고 그들에게 다른 어떠한 이방 나라의 법도 필적할 수 없는 율법을 수여하실 때에 자신의 조직 능력을 보이게 나타내셨읍니다. 그보다 전에 측량할 수 없는 장구한 세월동안 그분은 하늘의 영자들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조직을 가지고 계셨읍니다. 첫 사람의 칠대 손자였던 ‘에녹’은 지상에 있는 우리에게 이 보이지 않는 조직에 대해 경고해 주었읍니다.

      3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 14, 15; 창세 5:18-24; 히브리 11:5.

      4. 인류는 언제 하나님의 우주 조직의 일부였었으며, 그들은 언제 그 조직을 떠났으며, 인류는 언제 그 조직으로 복귀될 것입니까?

      4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의 집으로 창설하신 ‘에덴’ 동산에 있던 완전한 인간 남녀는 그의 우주 조직의 일부였읍니다. 그들은 그 조직의 지적인 보이는 부분이었읍니다. 그리고 땅은 하늘을 보좌로 삼으신 여호와의 발등상이라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완전한 인간 남녀는 그의 우주 조직의 가장 낮은 부분이었읍니다. (이사야 66:1)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반역하였기 때문에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을 때에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우주 조직에서 쫓겨났읍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조직에서 온 거룩한 ‘그룹’들이 ‘에덴’ 동산 입구에 나타나 불순종하는 인간 남녀가 다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읍니다. (창세 3:1-24)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지상에 ‘에덴’ 낙원을 회복할 때 순종하는 인류는 인간 완전성과 거룩함으로 높여질 것이며 그 후로 위대하신 조직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다시 한번 그의 우주 조직의 일부로 삼으실 것입니다. (누가 23:43) 그 때에 하늘과 땅은 장엄한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지휘할 무엇을 세우실 목적을 가지고 계시며, 어디에서 그 구성원이 택하여집니까?

      5 완전한 조직자께서 생각하고 계신 일은 우주 조직의 지적인 보이는 부분의 회복만이 아닙니다. 그 분은 자신의 목적이 기록된 책인 성서를 통하여 그의 모든 지성있는 피조물들을 지휘할 수도(首都) 조직을 세우실 웅대한 목적을 알려 주십니다. 논리적으로, 그 수도 조직은 거룩한 하늘에 지존하신 하나님 바로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그분께서 수도 조직의 성원으로 택하시는 자들이 하나님의 발등상인 땅에 있는 인류 가운데서 뽑힌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말할 수 없이 높여지는 것입니다! 성서 마지막 책에 이에 대한 설명이 있읍니다.

      6. ‘다윗’의 시대에 무엇이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의 수도였으며, 수도로서의 그 도시의 지위는 ‘다윗’의 시대에 어떻게 높여졌읍니까?

      6 우리는 ‘다윗’ 왕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의 보이는 신권 조직이었을 때에 ‘예루살렘’ 도시가 이 신권 조직의 수도였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사무엘 하 5:1-10) 수도로서의 ‘예루살렘’ 시의 지위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옮겨져서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궁전 근처 장막 안에 놓였을 때에 드높여졌읍니다. (사무엘 하 6:11-14; 7:1-3) 여호와께서는 그의 영에 의하여 ‘이스라엘’의 보이지 않는 천적 왕으로 그 거룩한 장막에 즉위하셨읍니다.

      7-10. (ㄱ) 무슨 도시의 이름이 하나님의 수도 조직에 붙여졌읍니까? (ㄴ) 사도 ‘요한’은 그 이름의 적용을 어떻게 알리고 있으며, 그는 수도 조직을 어떻게 묘사합니까?

      7 그러므로 지적 ‘예루살렘’의 이름을 여호와의 수도 조직에 붙이는 것은 적절합니다. 그러나 그 조직은 물론 새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게 됩니다. 이 영화로운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지 않고 성서를 완성시킬 수는 없었읍니다. 계시록 21장에 이 이름의 적용이 나타나 있고 그 이름이 적용된 조직을 밝혀줍니다. 연로한 그리스도의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8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동편에 세문, 북편에 세문, 남편에 세문, 서편에 세문이니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0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여호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계시 21:1-4, 9-14, 22-27.

      11. 그 새 ‘예루살렘’은 무슨 단체를 상징하며, 그 성원들의 국적은 무엇이며, 그들의 공직은 어느 정도로 높습니까?

      11 틀림없읍니다. 그 ‘거룩한 도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깨끗하고 더럽혀지지 않았고 거룩한 그리스도인 회중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영적 ‘이스라엘’, 마음에 할례를 받은 내적인 ‘유대’인들로 구성됩니다. “어린 양의 십이 사도”가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그들 모두는 영적 ‘이스라엘’ 즉 영적 ‘유대’인이 되었읍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여호와의 성령이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 위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도 1:12에서 2:42) 이들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효가 144,000명(12 x 12 x 1,000)이며 마치 이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에 새겨져 있는 것 처럼 열두 지파로 분류되었읍니다. (계시 7:4-8) 그들이 ‘땅의 왕들’이라고 불리운 사실은 그들의 공직에 주의를 이끌어 줍니다. (계시 20:4, 6) 그들은 새 ‘예루살렘’의 빛으로 말미암아 다니는 지상의 “만국”보다 높습니다.—계시 5:10, 신세.

      12, 13. (ㄱ) 그 「계시록」의 어떠한 묘사가 새 ‘예루살렘’이 수도 조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까? (ㄴ) 상징적 기초석 중 하나는 신부의 남편의 신분을 어떻게 밝혀줍니까?

      12 새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은 그것이 ‘다윗’ 왕 시대와 그의 아들 ‘솔로몬’ 왕 시대의 ‘예루살렘’과 비슷한 수도 조직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로 된 새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창조물의 전 영역을 다스리는 수도 조직이라는 것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그것은 바로, 새 ‘예루살렘’이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라고 불리우는 사실입니다. (계시 21:2, 9; 22:17) 이 상징적 어린 양에 대한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당신은 죽임을 당하셨고, 당신의 피로써 하나님을 위한 사람들을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사셨기 때문이며, 당신은 그들을 한 왕국으로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 대한 제사장들로 삼으셨고, 그들은 왕들로서 땅을 다스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시 5:9, 10, 신세) 한 때 죽임을 당하셨던 이 어린 양은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사실과 일치하게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한 사람은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읍니다.

      13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베드로 전 1:18, 19; 고린도 전 5:7.

      14, 15. (ㄱ) 그 신부-아내의 머리는 누구입니까? (ㄴ) 성원들의 무슨 상속 자격 때문에 신부-아내의 지위는 높아졌으며, 남편의 지위는 무엇이라고 ‘베드로’는 말하였읍니까?

      14 남편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신부이며 아내인 새 ‘예루살렘’의 머리이십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5:23) 그러나 신부인 아내는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한 아들들로 구성되며, 그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들입니다. (로마 8:16-18) 그러한 후사 자격은 신부인 아내의 지위를 높여주며, 신부-아내는 남편과 함께 하늘에서 영광과 영예를 얻습니다. 그러면 “남편”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지위는 무엇입니까?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한 사람인 ‘베드로’는 그 분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15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베드로 전 3:18, 21, 22.

      16. ‘바울’은 빌립보 2:5-11에서 신부-아내의 남편의 현 지위에 대하여 어떻게 더 자세히 말하였읍니까?

      16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될’ 다른 이들에게 사도 ‘바울’은 더욱 자세히 이렇게 편지하였읍니다. “여러분은 이 마음[정신 태도, 신세]을 품으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정신 태도]입니다. 그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시었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려 하시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셨으며 사람의 형상을 입으셨읍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형주]에서 죽으셨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 올리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어 하늘에 있는 자나 땅위에 있는 자나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을 예수의 이름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읍니다.”—빌립보 2:5-11, 새번역.

      17. (ㄱ) 하나님의 아들이 그처럼 높여졌기 때문에 그의 지위는 어떠하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수도 “조직”을 창조하셨읍니까? (ㄴ) 제사직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아내 반열은 어떠한 상대적 지위에 있읍니까?

      17 어떠한 피조물도 “하나님 우편”보다 더 높아질 수는 없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올리신 ‘높은 지위’는 그 우편의 지위를 가리킨 것이었읍니다. (시 110:1; 사도 2:34-36; 히브리 1:3, 13; 8:1, 2; 10:12, 13; 12:2) 이 때문에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다른 모든 창조물에 대하여 수도적 지위를 가지십니다. 물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조직”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부-아내, 즉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로 된 회중을 주셨기 때문에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거룩한 우주 조직 위에 수도 조직을 창조하십니다. 지존하신 분이 창설하시는 이 수도 조직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대제사장이며, 신부-아내 반열은 144,000명의 제사장보, “왕같은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 전 2:9)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볼 때에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현재 수도 조직을 가지고 계시며 그 조직을 통하여 그의 우주 조직의 다른 모든 부분과 관계하신다는 것은 아무런 모순이 없읍니다.

      세째 환상

      18, 19. (ㄱ) ‘스가랴’의 이전 환상에 의하면 ‘예루살렘’에 무엇이 행하여질 필요가 있었읍니까? (ㄴ) 세째 환상에서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하고자 하였읍니까?

      18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붙은 여호와의 수도 조직을 이와 같이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예언자 ‘스가랴’의 세째 환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는 기원전 519년 십일월(‘스밧’월) 이십사일 그 놀라운 날에 세째 환상을 보았읍니다. ‘스가랴’는 조금 전 환상에서 “뿔들을 들어 ‘유다’ 땅을 헤친 열국의 뿔을 떨어”뜨리도록 여호와께서 보내신 네 명의 공장(工匠)을 보았읍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흩어지게 한 일에는 ‘예루살렘’이 포함되었으며, 그 때문에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정하신 때에 다시 모아지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그 때에 그분이 ‘자비를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실’ 것이었읍니다. (스가랴 1:14-21) 그러므로 그 다음에 ‘스가랴’의 세째 환상의 주제가 따르는 것은 논리적입니다. 이 환상은 다음과 같았읍니다.

      19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척량 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은즉 내게 대답하되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하였느니라.]”—스가랴 2:1, 2.

      20. (ㄱ) 그가 젊다는 사실은 그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ㄴ) ‘예루살렘’의 성벽이 아직 재건되지 않았으므로 이 젊은이는 무엇을 척량해야 하였읍니까?

      20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젊은 사람이었으며, 그가 아직도 많이 배워야 하고 지식을 얻어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활기에 넘치는 그 젊은이는 ‘예루살렘’의 온전한 회복에 관심이 있었으며, ‘예루살렘’이 얼마나 커질 것이며 얼마나 광대해야 하는지를 알기를 열망하였읍니다. 그래서 척량 줄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 해 기원전 519년에는 적어도 측량할 수 있는 ‘예루살렘’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도시의 성벽은 아직 재건되지 않았고 그후 오랫 동안 재건되지도 않을 것이었읍니다. 육십 삼여년 후인 기원전 456년 음력 구월(‘기슬래’월)에만해도 ‘바사’의 수도 ‘수산’에는 “‘예루살렘’[성벽]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 보고가 들어왔읍니다. (느헤미야 1:1-3) 그러므로 기원전 519년의 ‘예루살렘’은 아마 아직 이전에 포로로 잡혀가기 전 도시의 경계선에 이르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마 회복된 도시가 이전의 도시보다 더 확장되었을 것입니다.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는 두번째 ‘예루살렘’의 최종 경계는 어디라야 하는지를 척량할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21. 한 천사는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청년에게 어떻게 충고하라고 다른 천사에게 말하였읍니까?

      21 여호와께서 자비를 가지고 돌아오실 ‘예루살렘’의 경계를 열정적인 한 젊은이가 정하는 것이 온당하였읍니까? ‘스가랴’의 보고를 읽어보고 알아 봅시다.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나가매 다른 천사가 나와서 그를 맞으며 이르되 너는 달려가서 그 소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그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스가랴 2:3-5.

      22. 총독 ‘느헤미야’ 시대에 일어난 일과 기원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일어난 일로 볼 때 우리는 젊은이에게 전달된 이 소식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합니까?

      22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때에 ‘스가랴’ 시대의 지적이고 문자적인 ‘예루살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셨읍니까? 후에 있었던 사실들은 그렇지 않음을 명백히 알려줍니다. 왜 그렇지 않았읍니까? 왜냐 하면 ‘예루살렘’이 더는 사람들이 거하는 “성곽 없는 촌락”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육십사년 후 곧 기원전 455년에 총독 ‘느헤미야’의 인도하에 ‘예루살렘’ 성벽은 완전히 재건되었읍니다. 또한 총독 ‘느헤미야’의 보고에 의하면 그 재건된 성벽에는 열두문이 있었읍니다. (느헤미야 2:3에서 6:15; 7:1) 남편에는 골짜기 문과 분문(糞門)과 샘문이 있었고, 동편으로는 수문(水門)과 마문(馬門)과 시찰문(‘함밉갓’ 문)이 있었고, 북편으로는 수위문 혹은 감옥문과 양문(羊門)과 어문(魚門)이 있었고, 서편으로는 옛 문과 ‘에브라임’ 문과 모퉁이 문이 있었읍니다. (느헤미야 2:13, 14; 3:26, 28, 31; 12:39; 3:32, 3, 6; 역대 하 25:23) 그 도시는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읍니다. (누가 21:20-24) 이 1972년에도 존재하는 세번째 ‘예루살렘’에도 성벽이 있으며 사면에 모두 문들이 있읍니다. 그러나 현대 ‘예루살렘’은 그 곁에 세워졌으며 그 인구는 도합 275,000명으로 보고되었읍니다.

      23. (ㄱ) 스가랴 2:4, 5이 현대 ‘예루살렘’에 성취되지 않는 것이 어떻게 분명합니까? (ㄴ) 그러면 어디에서 예언의 성취를 찾아야 합니까?

      23 오늘날의 ‘예루살렘’이 옛 성벽 도시밖으로 멀리 “성곽 없는 촌락”으로까지 확장되었기는 하지만 지식있는 관찰자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까지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도시에 대하여 “불 성곽”이 되셨고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셨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공화국의 ‘예루살렘’은 국제 연합이 보호하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이 공화국은 1949년 이후로 국제 연합의 회원국임—다분히 이방 나라인 미국과 같은 우방들이 ‘이스라엘’ 공화국에 제공하는 군사 원조에 의뢰하고 있읍니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스가랴 2:4, 5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이 영적 ‘이스라엘’에게 성취될 것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 예언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과 관계가 있으며 그들은 앞으로 더 큰 ‘스룹바벨’ 총독 예수 그리스도 밑에 있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 즉 여호와의 우주 조직의 수도 조직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24. 제1차 세계 대전 후 여호와의 영광으로 인하여 이사야 60:1-3의 감동적인 부름에 응할 의무가 있던 지상의 유일한 생존자들은 누구였읍니까?

      24 종전후 기원 1919년에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은 지상에 생존하여 모든 나라에 증거하기 위하여 전세계적으로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려는 열렬한 욕망을 나타냈읍니다. (마태 24:14) 그리스도 아래있는 하늘의 새 ‘예루살렘’은 그 충실한 남은 자들로 대표되었읍니다. 그들이 지상에서 대표하고 있는 것 때문에 이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예언된 감동적인 명령에 응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었읍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리어 너를 일컬어 여호와의 성읍이라,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 하리라.

      25. 여호와께서는 어느 정도로 그의 조직의 성장을 촉진시키실 것이었읍니까?

      25 “네 백성이 다 의롭게 되어 영영히 땅을 차지하리니 그들은 나의 심은 가지요 나의 손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인즉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이사야 60:1-3, 14, 21, 22.

      26. “여호와의 성읍”의 대표자들에게 주어진 그 감동적인 부름은 기원 1919년 당시 왜 참으로 적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읍니까?

      26 “여호와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영적 ‘시온’에 주어진 이 부름은 시기에 참으로 적절하였읍니다. 기원 1919년 당시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전망은 암담하였읍니다. 오늘날 전망이 결코 더 밝아지지 못하였읍니다! 그 때에는 새 ‘예루살렘’의 대표자들인 남은 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박해를 받아 낮아졌고 압도된 상태에서 일어나 빛을 낼 때였으며 “빛을 발”할 때였읍니다. 무엇으로 빛을 낼 때였읍니까? 무슨 빛을 발할 때였읍니까? 충실한 남은 자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빛은 소위 현 두뇌 시대의 세상적 계몽의 빛이 아니라 헌신한 남은 자들에게 비추어진 “여호와의 영광”이었읍니다. 영광은 찬란하고 장엄하고 빛을 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읍니다. 즉 그들을 종교적 정치적 군사적 적들의 속박에서, 비참한 예속 상태에서 구출하셨읍니다. 그는 남은 자들을 그의 주권과 그의 설립된 메시야 왕국의 대사로 임명함으로써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읍니다. 그들은 그의 증인으로, 왕국 대사로 활약하여 자기들에게 비추어진 “여호와의 영광”을 만방에 나타내야 합니다.

      27.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누구에게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실 필요가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7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바로 누구에게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실 필요가 있었읍니까?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에게가 아니라 새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에게 입니다. 영광스럽게 된 그 남은 자들이 캄캄한 이 세상으로 나가서 만군의 여호와의 증인으로 그리고 왕국 대사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28. 현 폭력 시대에, 현재 고도 ‘예루살렘’ 주위의 돌 성벽보다 남은 자들 주위의 여호와의 “불 성곽”이 왜 더 효과적입니까?

      28 ‘이스라엘’ 공화국의 고도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것과 같은 문자적인 돌 성벽이 현 핵무기 시대, 핵탄두를 장비한 ‘미사일’ 시대에 무슨 보호가 되겠읍니까? 그것은 가소로운 생각입니다! 기원전 455년(과 그 후에) 총독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주위에 쌓은 돌 성벽은 기원 70년에 ‘로마’ 군대를 막는데 성공하지 못하였읍니다. 현 폭력 시대에 핵화력은 불로 막지 않으면 안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방법으로 막으실 수 있읍니다. 그 분은 그렇게 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의 충실한 남은 자들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런데 누가 그들을 공격하여 성과를 거둘 수 있겠읍니까?

      29.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은 ‘도단’에서 ‘엘리사’가 보호받은 무슨 사건을 기억하고 있으며, 그들은 하나님이신 그들 주위의 “성곽”을 부수려는 원수들에게 무슨 일이 있을 것을 인식하고 있읍니까?

      29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의 영광스럽게 된 남은 자들은 인조 방어 시설이나 자연 방어망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과 그들의 원수들의 눈에 보이시지는 않으나 그분께서 그들 사면에서 “불 성곽”이 되실 것을 기대합니다. 그들은 “불말과 불병거”가 ‘도단’ 성읍 주위 산에 가득하였었지만 예언자 ‘엘리사’의 사환에게 그리고 ‘엘리사’를 생포하기 위하여 ‘도단’을 포위한 ‘아람’ 군대에게 보이지 않았던 일을 기억합니다. (열왕 하 6:13-17) 그들의 영적 눈이 열렸기 때문에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수단에 의하여 그들을 보호하실 수 있고 그것이, “불 성곽”을 부수려하고 그들을 공격하려는 원수들에게는 불같은 멸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입니다.—히브리 12:29.

      30. 살아있는 남은 자들은 기원 1919년에 조직의 성장을 어떻게 제한하려고 하였으며, “천국의 아들들”의 “추수”에 대한 실제 사실은 어떠하였읍니까?

      30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와 같은 관심있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수도 조직의 성장을 측정하고 제한하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읍”이 너무 비대하여져서 그 주위에 충분한 보호 “성곽”을 쌓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기원 1919년 당시에 한 동안 영적 ‘이스라엘’의 살아있는 남은 자들은 예수께서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신 추수 사업이 끝났으며 지상에서 그들이 할 남은 일이란 “이삭 줍는 사업” 즉 단지 소수의 나머지 사람들 혹은 무시된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마태 13:39) 그들은 영적 추수가 단지 시작에 불과하였으며 “천국의 아들들”의 많은 수가 하나님의 수도 조직으로 더 모아져야 한다는 것을 일시 동안 깨닫지 못하였읍니다. 그 “아들들”에 대하여 그들은 이전에 알지 못하였읍니다. 사실, “천국의 아들들” 144,000명의 예정된 성원들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남은 자들의 온전한 수가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 기간중에 모아져야 하였읍니다.

      31. (ㄱ) 우리는 ‘스가랴’ 시대의 ‘예루살렘’ 인구를 어떻게 추산합니까? (ㄴ)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는 걱정하는 마음에서 도시의 크기를 제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게 되었읍니까?

      31 기원전 519년에 ‘스가랴’가 본 환상 가운데서 척량 줄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는 회복된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이 얼만큼이나 성장해야 할 것인가를 측정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의 인구는 분명히 너무 많지 않았읍니다.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단지 42,360명의 ‘이스라엘’ 사람들과 약 7,560명의 종들과 가수들, 도합 약 49,920명에 불과하였다는 것과 그후 총독 ‘느헤미야’ 시대에 “십분의 일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와서 거하게” 한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에는 ‘스가랴’ 시대에 단지 수천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었읍니다. (에스라 2:64, 65; 느헤미야 7:66, 67; 11:1, 2) 그러므로 여호와의 천사가 젊은이에게 “‘예루살렘’에 사람이 거하리니 그 가운데 사람과 육축이 많으므로 그것이 성곽 없는 촌락과 같으리라”고 말하였을 때에 그는 그 주위에 물질적 성벽을 두르기 위하여 ‘예루살렘’의 길이와 폭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그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 인구는 그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염두에 두신 바에 따라 증가하게 되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안전히 보호하실 것이었읍니다.

      32. 연례 주의 만찬에서 표상물을 취하는 사람들의 수는 증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보호 능력은 어떠하였읍니까?

      32 여호와의 수도 조직의 영적 후사들의 현대 남은 자들의 경우에 성원들의 수는 해가 거듭할수록 증가하였읍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만찬 연례 기념식에 참석하여 표상물인 떡과 포도주를 취한 헌신하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증가하였음이 기록을 위하여 보내진 보고에 나타났읍니다. 여호와의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의 수가 전세계적으로 얼마나 증가하든지 간에 여호와께서는 그들 사면의 “불 성곽”같이 그들을 보호하셨읍니다. 그분은 그들이 현 위기의 때를 생존하도록 보존하셨고 심지어 기원 1939-1945년에 세계가 전쟁으로 광분할 때에도,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그들을 보존하셨읍니다.

      33. 사실들을 종합하여 보면 여호와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로 대표된 ‘예루살렘’ 가운데서 ‘영광’이 되셨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33 또한 여호와께서는 새 ‘예루살렘’의 후사들의 이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에게 “내가 ··· 그 가운데서 영광이 되리라”고 하신 약속을 이행하셨읍니까? (스가랴 2:5) 그분은 참으로 그렇게 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분은 박해받고 괴로와하고 반대 받는 남은 자들 가운데서 천적 보호자가 되심으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지적이고 육적인 보호 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생존하는 사실은 그들이 숭배하고 그들이 신뢰하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반영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그분 안에서 자랑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러 해 동안 그의 이름과 왕국을 증거한 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하였으며 1931년 7월 26일 이후로 그들은 그 명칭으로 전세계에 알려졌읍니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어떠한 다른 종교 단체를 통하지 않고 그들을 통하여 여호와의 이름이 온 땅에 알려졌읍니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이름에 추호의 모독도 돌리지 않으려고 양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들은 그 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분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에 명시된 행동 규범에 따라 살며, 사람보다 그분께 순종하고자 노력하여 왔읍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분의 이름에 영광이 되었읍니다. (사도 5:29) 그 분은 참으로 그들 가운데 영광이십니다!

      해방자의 부름

      34. 누가 순결한 숭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할 집결점이며, 기원 1919년 이후로 모이라는 어떠한 부름이 울려퍼졌읍니까?

      34 영광스러우신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바로 정치와 군국주의와 상업주의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숭배의 모든 애호자들이 연합과 형제애를 가지고 모여야 할 집결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영광이 보이는 곳에 집합 장소가 있읍니다. 그 분은 모이라고 부르십니다. 그 분은 큰 ‘바벨론’의 종교적 속박에서 그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그들에게 모이라고 부르십니다. “이제 너희는 북방 땅에서 도망할 찌니라”고 부르시는 그분의 말씀은 기원 1919년 이후로 울려 퍼졌읍니다.—스가랴 2:6.

      35. (ㄱ) ‘스가랴’ 시대에 무엇이 “북방의 땅”이라고 불리웠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거기에서 도망하는 일은 오늘날 무엇을 전영하였읍니까?

      35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북방 땅”은 ‘바벨론’ 즉 기원전 539년에 ‘메대’와 ‘바사’인들에 의하여 함락된 도시였읍니다. ‘바벨론’은 참으로 ‘예루살렘’ 동편에 위치해 있었지만,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도록 군대를 파견할 때 ‘바벨론’은 그 군대를 우회로를 택하여 “북방”에서 ‘예루살렘’으로 내려오게 하였읍니다. (예레미야 1:14-16; 에스겔 21:18-22) 또한 ‘바벨론’에 정복된 구역은 ‘예루살렘’ 북방까지 포함되었읍니다. ‘유대’인들이 기원전 617년과 기원전 607년에 포로로 끌려갈 때 그들은 말하자면 “북방의 땅”으로 잡혀 갔읍니다. 그들은 그 땅에서 도망하라는 부름을 받을 수 있었읍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를 전영하였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영적 ‘이스라엘’인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남은 자들은 큰 ‘바벨론’에, 다시 말하면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 속박되었었읍니다. 그곳으로부터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해방의 해인 1919년에 회개한 남은 자들을 부르셨읍니다. 남은 자들은 그곳으로부터 도망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36. (ㄱ)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다고 하신 여호와의 말씀은 당시에 어떻게 사실이었읍니까? (ㄴ) 현대 남은 자들도 어떻게 동일하였읍니까?

      36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의 “뿔들”이 여호와의 선민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대행자로 행동하면서 ‘이스라엘’과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열두 지파를 마구 흩어지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스가랴 2:6의 기록과 같이 말씀하신 것은 정확하였읍니다. “내가 너를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흩어지게 하였[느니라.] ··· 여호와의 말이니라.” 정복자들로부터 교묘히 빠져 나와 그들보다 앞서 도망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러 방향에 있는 이곳 저곳으로 도망하였읍니다. 영적 ‘이스라엘’인의 현대 남은 자들의 경우 그들도 “하늘의 사방 바람같이” 각 방향으로 흩어졌었읍니다. 그 방향이 지리적인 혹은 신체적인 의미를 지닐 필요는 없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에 있는 영적 토지에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37. 영적 ‘이스라엘’인들을 이처럼 상징적인 방법으로 흩어지게 하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졌읍니까?

      37 그러므로 그들은 상징적인 의미로 흩어졌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상의 정당한 영적 토지 내에서 활동할 수 없게 하는 모든 상태 혹은 환경으로 흩어졌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영적 특권과 영적 사업은 제한을 받았읍니다. 예를 들면 여호와의 남은 자들의 서적의 일부 혹은 전부에 대한 정부의 금지령이 흩어지게 하는 한가지 방법일 것입니다. 그들의 종교 조직을 금지한 것도 한 예입니다. 또, 이 세상의 국제적 투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중립을 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인들을 군 형무소나 수용소에 감금한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전쟁으로 흥분한 나머지 혹은 종교적 편견 때문에 거짓 고발을 하고 그들의 법인 단체의 간부들을 체포하고 열차로 그들을 호송하여 형무소로 혹은 교도소로 보낸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영적 토지에서 흩어지게하고 그들의 그 영적 토지에서의 그리스도인 특권과 활동을 막기 위하여 모든 방법이 모든 방향으로 사용되었읍니다.

      38. 여호와의 천사가 ‘유대’인 포로들에게 “‘바벨론’ 성에 [딸과 함께, 난외주]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하고 외치는 것은 왜 적절하였읍니까?

      38 ‘유대’인 생존자들의 더 큰 부분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당한 재난에서 ‘바벨론’과 그에 속한 구역으로 사로잡혀 갔는데, 그 가운데는 이전의 ‘앗수르’ 제국에서 빼앗은 구역도 포함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천사가 이제 이렇게 외치는 것은 아주 적절하였읍니다. “‘바벨론’ 성에 [딸과 함께, 난외주] 거하는 ‘시온’아, 이제 너는 피할지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 하시되 너희를 노략한 열국으로 영광을 위하여 나를 보내셨나니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줄 알리라.”—스가랴 2:7-9.

      39. “‘시온’아” 하고 부르실 때에 여호와께서는 누구에게 도망하라고 부르시고 계셨읍니까?

      39 여기에서 ‘예루살렘’과 같은 곳인 고대 ‘시온’은 수도에서 살다가 잡혀온 포로들만이 아니라 온 국민을 대표하였읍니다.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에 전복당하고 ‘바사’의 정복자 ‘고레스’는 ‘유대’인 포로들에게 해방의 조서를 내렸기 때문에 ‘시온’에 주어진 부름은 사실 ‘유대’인 포로 전원에게 주어진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바벨론’의 딸과 함께” 거하고 있었으며, ‘바벨론’ 시는 더는 범해지지 않은 처녀 딸이 아닌 여인으로 언급되어 있읍니다.

      40. 스가랴 2:8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40 “영광을 위하여”라는 표현은 미래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예언의 말씀을 입증하심으로 영광을 얻으셨읍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을 징계 하시는 일에 대한 그분의 말씀은 옳았읍니다.

      41. 열국은 여호와의 백성을 징계할 때에 왜 여호와께 대하여 얼마의 두려움과 존경심을 나타냈어야 합니까?

      41 이제 징계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나 임명받은 일을 남용한 원수 나라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의를 돌리실 때가 되었읍니다. 그들은 지나치게 행동하였으며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백성들에게 분풀이를 하였읍니다. 그들은 ‘시온’과 그 백성을 지나치게 학대하였읍니다. (스가랴 1:15, 21) 그들은 그 분이 징계할 목적으로 그들의 손에 붙이신 그의 백성들을 좀 더 동정심을 가지고 다루었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이 백성의 하나님에 대한 얼마의 두려움, 얼마의 존경심을 나타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징계받은 백성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나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42. (ㄱ) 여호와께서 그의 눈을 움직이신 것은 박해자로 행세한 열국에 대하여 어떠한 역전을 경고하신 것이었읍니까? (ㄴ) ‘바빌론’은 어떻게 그러한 역전을 당하였읍니까?

      42 따라서 이제 그 분이 이 무례하고 주제넘은 열국에 대하여 손을 움직이실 때 그것은 주먹을 흔드는 것 같이 위협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한가하고 무의미한 거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흩어지게 하고 노략한 그들이 보복을 당하리라는 경고였읍니다.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노예 생활을 했던 사람들에게 약탈을 당할 것이었읍니다. 참으로 의외의 역전이며 여호와의 손에 의하여 그렇게 될 것이었읍니다! ‘유대’인 포로들이 정복자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할 수 있도록 자유케 되었을 때에 이러한 역전이 있었읍니다. 에스라 1:7, 8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을 때에 정복당한 ‘바벨론’은 참으로 면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를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라.]”—다니엘 1:1, 2; 5:3-23.

      43. ‘다니엘’의 경우 ‘바벨론’은 어떻게 역전되었읍니까?

      43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여러가지 면으로 한 때 노예 생활을 하였던 ‘이스라엘’ 포로들은 ‘바벨론’을 발로 짓밟을 기회를 가졌으며 ‘바벨론’은 “거리의 진흙같이 밟”혔읍니다. (미가 7:8-10) ‘바벨론’이 ‘메대’의 ‘다리오’와 ‘바사’의 ‘고레스’에게 무너질 때 예언자 ‘다니엘’은 이미 ‘바벨론’의 노예가 아니었으며 ‘메대’ 왕 ‘다리오’는 ‘다니엘’을 ‘메대-바사’ 전국을 다스리는 백 이십명의 지방 장관 위에 세운 “총리 세명” 중 한 사람이었읍니다.—다니엘 6:1-3, 28.

      44. ‘바벨론’인들의 숭배와 여호와의 백성들의 숭배에는 어떠한 역전이 있었읍니까?

      44 또한 ‘바사’의 ‘조로아스터’ 교도들의 종교와 고대 ‘바벨론’의 종교와의 차이 때문에 마술사, 마법사, ‘갈대아’인들 및 점성가들은 종교적으로 빛을 잃게 되었으며 마침내 ‘바벨론’의 종교 중심지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다고 느꼈읍니다. 그들은 서쪽으로 이동하여 소‘아시아’의 ‘버가모’로 갔으며 다시 거기에서 ‘이탈리아’로 간 것 같습니다. (계시 2:12, 13)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바벨론’을 정복한 자들로부터 특혜를 받았으며 그들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예루살렘’의 본래의 위치에 있는 여호와의 재건된 성전에서의 봉사의 처소에 복귀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시온”은 ‘바벨론’에서 고향으로 도망하였읍니다.

      “그의 눈동자”를 해치는 데 대한 하나님의 반응

      45. (ㄱ) 그의 백성이 폭행을 당하는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얼마나 민감하십니까? (ㄴ) 그러므로 그는 왜 오늘날의 나라들에 대하여 손을 움직여 오셨읍니까?

      45 이 모든 것은 이 세상 열국이 여호와의 숭배자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것이 불법한 행동임을 생생하게 설명하여줍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것은 그 분의 눈동자, 신체 가운데 가장 민감한 부분을 해치는 것과 같습니다. 오래 전, 곧 기원전 1473년에 예언자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선민에 대하여 매우 민감하심을 이렇게 지적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명 32:10) 그 분은 오늘날 그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민감하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과 이교국에 속한 나라들은 이 사실을 고의로 무시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을 학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분이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 거리가 되리라”고 예언하신 대로 해 오신 것이 조금이라도 이상합니까? (스가랴 2:9) 그 분은 어떻게 이 일을 해오셨읍니까?

      46. 기원 1919년에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의 약탈자들이 어떻게 그들에게 약탈을 당하게 하셨읍니까?

      46 그 분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을 큰 ‘바벨론’의 종교적 속박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님께서 주신 합당한 지상의 영적 토지로 그들을 회복시키셨읍니다. 그들은 그 국제적인 음녀 큰 ‘바벨론’의 정치적 애인에 비굴하게 순종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침해하려는 세상 정치인들에게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합니다. (사도 5:29) 기원 1919년 해방의 해에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널리 그리고 멀리 선포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세계 기구 즉 국제 연맹에 대한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선포하기 시작하였으며, 국제 연맹이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이 기원 1914년 이방인의 때의 종결에 하늘에 탄생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 대신에 국제 연맹을 받아들여 기원 1919년에 출범시켰기 때문입니다.—계시 12:5.

      47. 여호와의 이러한 불리한 판결은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어떻게 더욱 선언되었읍니까?

      47 만군의 여호와의 이러한 불리한 판결은 1922년부터 1928년까지의 칠년간에 걸쳐서 더욱 광고되고 범위가 넓어졌읍니다. 그 기간에 미국과 영국 및 ‘캐나다’의 ‘만국 성경 연구회’는 연속적으로 연례 국제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대회와 관련하여 종교 및 정치에 대하여 예언한 하나님의 예언을 다룬 성서 해설 서적이 발표되었읍니다. 만국 성경 연구생들의 연례 대회에서 매번 결의문 혹은 선언문이 채택되었으며 첫 대회인 1922년 대회에서의 결의문 제목은 “도전”이었고 일곱번째이자 마지막인 1928년 대회에서의 선언문은 “‘사단’을 반대하고 여호와를 옹호하는 선언문”이었읍니다. 이러한 일곱개의 결의문과 그것들을 지지하는 공개 강연 및 관련된 성서 선언문은 성서 마지막 책인 계시록 8장에서 16장에 예언된 내용과 일치하였읍니다.

      48. 이러한 발표는 「계시록」의 무엇과 일치하였읍니까?

      48 그것들은 일곱 천사가 분 일곱 나팔, 일곱가지 장면을 소개한 일곱 나팔과 일치하였읍니다. 또한 임명받은 일곱 천사가 대접에서 쏟은 “마지막 일곱 재앙”과도 일치하였읍니다.—계시 21:9; 15:1에서 16:21.

      49. (ㄱ) 그러한 일의 현대 성취는 관련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ㄴ) 여호와의 그러한 심판의 선포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며, 그러므로 그분은 사실상 나라들에게 어떠한 일을 하여 오셨읍니까?

      49 나팔에 의하여 소개된 그 장면들의 현대 성취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득 담은 일곱 대접의 현대 성취는 (그리스도교국을 포함한) 큰 ‘바벨론’과 세상 정부 내에 큰 소동과 불안과 반역적 원한을 일으켰읍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그러한 불리한 심판을 선포하는 일은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칠년간으로 제한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되어 1920년대 당시보다 더 큰 용량과 힘과 범위로 확장하였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종교적인 큰 ‘바벨론’과 정치적 보호자에 대해 그의 불리한 판결을 전세계적으로 그처럼 선포하신 것은 주먹을 흔드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세상의 종교적 정치적 조직, 그의 백성을 약탈해온 조직들에 대하여 위협적으로 손을 움직이셨읍니다. 그분은 이전에 그러한 압제자의 종이었던 그의 증인들을 통하여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50. (ㄱ) 여호와께서는 마침내 언제 그러한 심판을 집행하시며, 보냄을 받은 천사에 대하여 무엇이 알려질 것입니까? (ㄴ) 심지어 우리 시대에도 하나님의 집행에 의하여 어떠한 사람들이 입증되었읍니까?

      50 멀지 않아서 우리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눈동자를 해치는 것처럼 지존하신 하나님을 아프게 한 원수들에게 그러한 하나님의 판결이 집행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천사가 ‘스가랴’에게 말한 중대한 때가 될 것입니다.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을 알리라.” (스가랴 2:9)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완전한 성취의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심지어 지금도 우리는 이 천사가 마치 미리 기록한 역사처럼 진리를 말하였다는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읍니다. 따라서 이것은 다만 만군의 여호와께서만이 이 천사를 보내신 분일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자 ‘스가랴’도 참되고 오류 없는 예언의 기록자로 입증되고 있읍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오늘날도 입증되고 있읍니다. 누구에 대하여 그러합니까? ‘스가랴’의 놀라운 예언과 그 예언의 현대 성취에 주의를 돌려 온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에 대하여 그러합니다.

      왜 지금 기뻐하라고 하였는가?

      51. 악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라들은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왜 큰 소리로 기뻐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51 한때 악의적인 생각을 한 나라들은 인간사의 변천에 대하여 큰 소리로 기뻐할 이유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그들의 권력하에 넣고 나라들에게 이들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인들에게 화풀이를 하게 하신 때였읍니다. 그 때에 국가들은 하늘과 땅의 창조주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 의한, 민주적 국가 집단들이나 독재적인 국가 집단에 의한 세계 지배 문제를 둘러싸고 전쟁을 하였읍니다. 그들은 지구의 자원을 장악하여 이들로부터 물질적 이익을 취하려 하였읍니다.

      52. 그러한 나라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충실하게 받드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왜 학대하였읍니까?

      52 그들은 뜨거운 국가주의적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국가주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총동원하려고 노력하면서,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하늘에 건설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통합되기를 거절한 사람들에게 분노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압력하에서 국가들은 하나님의 왕국의 이들 투사들을 학대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옹호하는 이들의 영향력을 제거하고 참으로 기뻐하였읍니다!

      53. 계시록 11:7-10에는 국가들의 기뻐하는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53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이들 옹호자들의 이러한 패배를 보고 짐승같은 나라들이 기뻐하고 자축할 것이 계시록 11장에 예언되어 있는 데, 거기서는 ‘스가랴’의 예언에서 비유적 표현을 빌리고 있읍니다. 계시록 11:7-10에는 상징적인 말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형주]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읍니다.

      54, 55. (ㄱ)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이 기쁘게 노래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것은 언제였읍니까? (ㄴ) 이것은 누구에게 큰 소리로 외치라고 부르는 것과 같았으며, 큰 소리로 외칠 무슨 이유가 있었읍니까?

      54 기원 1919년에 「계시록」 환상에 묘사된 바와 같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들 매장되지 않은 증인들을 영적으로 부활시키고 그들로 그의 왕국 봉사를 다시 활동적으로 수행하게 하셨읍니다. 국가들과 그들의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은 크게 당황하였지만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이 소생하여 큰 소리로 기뻐할 때가 되었읍니다. 그들을 소생시키신 하늘의 해방자께서는 그들을 그렇게 하도록 부르셨읍니다. 그들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을 대표하고 있고 그 성원이 될 대열에 있으므로 마치 하나님께서 그 영적 조직으로 부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그 ‘시온’(일명 ‘예루살렘’) 조직을 불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55 “여호와의 말씀에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네 가운데 거하리라. 네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네게 보내신줄 알리라. 여호와께서 장차 ‘유다’를 취하여 거룩한 땅에서 자기 소유를 삼으시고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시리니 무릇 혈기 있는 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하라 하더라.”—스가랴 2:10-13.

      56. (ㄱ)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유다’의 황폐시에 ‘유다’ 땅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셨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 땅을 다시 소유하셨으며, 그분은 그때에 어떠한 기적을 행하셨읍니까?

      56 ‘스가랴’ 시대에 그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였는지를 알아 보면 우리는 그 성취가 이 놀라운 통용 기원 이십세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낼 수 있읍니다. 당시 여호와께서는 ‘유다’ 땅에 대한 권리를 양도하시고 영토에 탐욕이 많은 어떤 나라가 그것을 소유하도록 혹은 외인들이 들어와 무단거주하도록 허락하셨읍니까? 결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 분이 그의 백성들을 그곳에서 추방하여 ‘바벨론’으로 가게 하셨지만 그 분은 그 땅을 보호하셨고 오랫 동안 안식을 실시하셨읍니다. 어떻게? 예언대로 사람과 짐승이 없이 황폐하게 함으로써 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그의 백성들을 그 땅이 칠십년간 안식한 후에 해방시키고 ‘바벨론’에서 그들이 사랑하는 고토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유다’ 구역을 다시 소유하였읍니다. 그 분은 ‘예루살렘’을 다시 ‘유다’의 수도로 택하셨읍니다. 즉 회복된 포로들이 이전의 위치에 두번째 ‘예루살렘’을 건축하게 하셨읍니다. 그리하여 “하루”에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이 해산의 고통을 당하는 것처럼 생겨났읍니다. 또한 “순식간에” 나라가 “생”겼읍니다. 즉 ‘유다’의 “거룩한 땅”을 다스리는 수도가 ‘예루살렘’에 재건되었읍니다. (이사야 66:7, 8) 그것은 기적이었읍니다!

      57.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유다’ 땅에 언제 거하셨으며, 언제 어떻게 그곳에서 그 분이 거하신다는 것이 더욱 분명하여졌읍니까?

      57 고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율법 아래 있는 신권적 국가였으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기초가 다시 놓이고 재건되었을 때에 ‘예루살렘’에 다시 거주하셨읍니다. 그의 숭배의 전이 기원전 515년에 완성되고 정기적인 숭배가 온전한 규모로 그 곳에서 시작되었을 때에 이것이 더욱 분명하여졌읍니다. 그 재건된 성전은 주위 모든 나라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곳에 거하신다는, 그 분이 지금은 ‘시온’에, ‘예루살렘’에 거하신다는 상징이 될 것이었읍니다. 그 곳에서 그 분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읍니다.

      58. 정직한 마음을 가진 주위의 국민들은 어떻게 호의적인 관찰을 할 것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어떻게 할 것이었읍니까(스가랴 2:11)?

      58 이것은 주위의 이방 나라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었읍니까? 그러한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진리의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에 당연히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며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하신 예언들을 성취시킴으로 완전한 예지와 전능한 능력을 나타내셨읍니다. 그 분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국가적 사망에서 부활시키고 ‘바벨론’의 무덤에서 일으키시고 그들을 회복시켜 고토에서 살게 하시자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 관찰자들은 그 분이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며 숭배받으시기에 합당한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았읍니다. 성실하게 그들은 그 분을 숭배하기를 원할 것이며 가능하다면 그들은 ‘시온’(‘예루살렘’)의 그 분의 거처로 가서 그렇게 할 것이었읍니다. 스가랴 2:11의 이러한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었읍니다.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것은 ‘유다’의 “거룩한 땅”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증가할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59, 60. (ㄱ) 새 ‘예루살렘’의 한 부분을 얻을 대열에 있고 큰 ‘바벨론’의 영역에 매장된 것 같은 남은 자들에게 비슷한 일이 어떻게 발생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이 남은 자들과 함께 거하신다는 것을 증명하셨읍니까?

      59 이와같은 일이 또한 현대의 영적 ‘이스라엘’인 남은 자들의 경우에 참되지 않았읍니까? 그들은 고대 ‘스가랴’ 시대에 “‘시온’의 딸”이 그렇게 해야 하였던 것처럼 “노래하고 기뻐”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영적 ‘이스라엘’인의 이 남은 자들은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결혼 준비를 한’ 신부와 같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천적 새 ‘예루살렘’의 일부가 될 대열에 서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온 우주 조직을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수도 조직입니다. (고린도 후 11:2; 계시 21:2, 9, 10) 제1차 세계 대전 중 “거룩한 나라”로서의 남은 자들의 연합은 깨어졌읍니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토지에서 포로로 잡혀 갔으며 큰 ‘바벨론’의 영역에 매장된 것 같았읍니다. 그 첫 세계 대전이 끝나고 압력이 제거되었을 때에 계시록 11:11-13에 예언적으로 묘사된 것이 놀랍게 성취되어 세상은 깜짝 놀랐읍니다!

      60 여호와께서는 영적으로 매장되었던 남은 자들을 소생시키시고 그들을 큰 ‘바벨론’의 무덤에서 일으키고 회복시켜 지상에서 그들에게 합당한 영적 토지에 거하게 하셨으며 연합된 “거룩한 나라”로 재통합하였읍니다. 그는 다시 그리스도 아래에서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바라보는 이 충실한 남은 자들을 택하셨읍니다. (빌립보 3:20, 21)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호의의 관심을 보였으며 그는 그들에게 그와 같은 강력한 활동력인 성령으로 활기를 불어 넣고 메시야 왕국을 전세계적으로 증거하게 하셨읍니다. 그와 같은 일이 전 그리스도인 역사상 이전에 결코 없었읍니다. (마가 13:10; 마태 24:14; 28:19, 20)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나라들과 함께 우상인 국제 연맹을 “세상의 유일한 희망”으로 숭배하지 않고, 오로지 ‘희망의 하나님’을 그의 영적 성전에서 숭배하는 열심으로 불탔읍니다. (계시 13:14, 15; 14:9)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전에 없던 범위로 알렸읍니다. (이사야 12:4, 5) 외부로 보이는 모든 상징에 의하여 그 분은 그들과 함께 거하셨읍니다.

      61. 그러므로 “그 날에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것이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61 오늘날 우리는 이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읍니까? 정치적 실체로서의 나라들은 두려워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들 가운데 순결하고 참되고 이치적인 종교, 숭배받기에 합당한 참 하나님과 접촉하게 하는 종교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성실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읍니다. 영적 ‘이스라엘’인의 충실한 남은 자들이 사람이 거하는 땅에 더욱 더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함에 따라 참 하나님을 찾는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르렀읍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야라는 것을 배우고 그들이 하나님께 헌신의 단계를 밟고 물 침례를 받아 메시야의 제자가 되었읍니다. (마태 28:19, 20) “많은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여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예언대로 되었읍니다. (스가랴 2:11) 국적이나 인종은 그렇게 하는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읍니다.

      62. 이것은 기원 1935년 이래 어느 정도로 성취되었으며,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읍니까?

      62 이것은 기원 1935년 이후로 놀랍게 성취되었읍니다. 그 때는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증인들이라는 명칭을 채택한 지 사년 후였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도 참 하나님을 진정으로 찾는 이들이 메시야의 제자로서 “여호와께 속”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읍니다. 1935년 당시의 그들의 수에 비해 볼 때,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과 비교해 볼 때 이처럼 “여호와께 속”하게 된 이들은 성서에 수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큰 무리”가 되었읍니다. (계시 7:9-17)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듯이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라고 공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영적 아들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그들을 출생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분은 그들을 받아들이셨고 그들이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분께 헌신하는 것을 받아들이셨읍니다.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게 하는 것은 예수의 대속 희생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들 헌신하고 침례받은 사람들을 그 분께 속한 “내 백성”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다른 양”으로서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과 “한 무리”가 되었읍니다.—요한 10:16.

      63. 그러한 “양들”로서 그들은 어떻게 “여호와께 속”하게 되었읍니까?

      63 이 “다른 양들”은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었고 그의 부름에 응하여 “많은 나라”로부터 나왔읍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연합하여 그의 영적 성전에서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의 숭배에 가담하고 있읍니다. (계시 7:15) 그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여호와께 속”하게 되었읍니다.

      64. (ㄱ) 그들 앞에는 어떠한 희망이 놓여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그들 때문에 그의 전을 어떻게 영광으로 채우셨읍니까(학개 2:7)?

      64 여호와께서 이들 “다른 양들”을 천적 새 ‘예루살렘’의 일부가 되도록 그의 영으로 출생하시지 않았으므로 그는 그들 앞에 그의 “발등상” 즉 이 땅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두셨으며, 그때에 이 땅은 아름다운 낙원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창세 2:8; 누가 23:4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기원 1914년 이래 인간사를 다루신 방식으로 모든 나라를 진동하여 오셨으며, 그렇게 하여 이들 “다른 양들”은 그의 메시야 왕국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의 왕국을 인식하여 그들은 숭배의 전으로 들어왔으며 그 분은 그들을 보배와 같은 숭배자들로 받아들이십니다. 사실 그들은 “이르”겠다고 예언된 “만국의 보배”이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순결한 숭배의 장소에 있는 그들을 통하여 그의 전 혹은 성전을 영광으로 채우십니다.—학개 2:7.

      65. 오늘날 증거에 의하면 ‘스가랴’의 세째 환상을 우리가 알도록 도운 자들을 보내신 분은 어떤 분이며, 이것은 다른 무엇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보강하여 줍니까?

      65 그 기념할 만한 해인 기원 1935년에 우리는 이 계시록 7:9-17의 “큰 무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그후 거의 사십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스가랴’가 받은 세째 환상에 예언된 일들이 웅대하게 성취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가 충분한 증거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스가랴’와 그의 백성들에게 천사를 보내신 분이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며, 어떤 거짓 예언의 근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여호와께서 또한 예언자 ‘스가랴’를 보내어 오늘날 우리를 위하여 환상을 기록하게 하셨읍니다. 이것은 ‘스가랴’의 나머지 모든 환상도 성취될 것이라는 우리의 확신을 보강하여 줍니다.

      66. 마땅하게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여호와께서는 무엇을 하시기 위하여 “성소에서 일어나”셨읍니까?

      66 그렇다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잠잠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참으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스가랴’가 본 세째 환상이 이러한 영감받은 명령으로 끝난 것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모든 혈육이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 것은 여호와께서 그 성소에서 일어나심이니라.” (스가랴 2:13) 그 분은 그의 말씀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하늘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읍니다.

      [156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귀환 시대의 예루살렘

      하나넬 망대

      어문

      함메아 망대

      양문

      수위문

      성전 지역

      티로피안 골짜기

      시찰 문

      광장

      모퉁이 문

      넓은 성벽

      에브라임 문

      풀무 망대

      옛 문

      오벨

      마문

      광장

      기혼샘

      수문

      다윗 성

      골짜기 문

      샘문

      왕의 동산

      분문

      힌놈의 골짜기

      기드론 골짜기

      엔로겔

  • ‘사단’이 대제사장을 대적하는 데 실패함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10장

      ‘사단’이 대제사장을 대적하는 데 실패함

      1. 종교적으로 말하여 온 인류 세계는 무엇을 필요로 하며, 왜 그렇습니까?

      오늘날 온 땅에는 각 종파의 대제사장들이 있읍니다.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제사장은 ‘바티칸’ 시에 있는 최고위 성직자 ‘폰티펙스 맥시머스’입니다. 그러나 전 인류 세계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단 한분의 대제사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살아계신 참 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온 우주의 주권자는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사람들에게 그분을 대표하고 사람들을 위하여 그분과 교섭할 수 있는 단 한분의 대제사장을 필요로 합니다. 이것은 참 종교가 단 하나이며 “영과 진리로” 그 분께 드리는 순결한 숭배가 단 하나라는 사실과 일치합니다.—요한 4:24, 새번역.

      2. 여호와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6일까지 어떠한 하나의 대제사직을 인정하셨으며, 그 날 어느 한 영적 대제사장이 나타나셨읍니까?

      2 기원전 1512년부터 기원 33년까지 십오여 세기동안, 이 살아계신 참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대제사직은 단 하나만 존재하였읍니다. 이 대제사직은 ‘레위’ 지파에 속한 예언자 ‘모세’의 형 ‘아론’ 계통에 제정되었읍니다. ‘아론’은 기원전 1512년 ‘니산’월 초하루에 제사직에 취임하였읍니다. 그후 여러 세기 동안, 기원 33년 ‘니산’월 16일 일요일까지, 대제사장들은 ‘아론’의 후손 가운데서 계승되었읍니다. 기원 33년 그 날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죽음에서 부활되신 날입니다. 그 때로부터 사십일째 되던 날 그 분은 영적 대제사장으로 승천하시어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셨으며 거기에서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께 완전한 인간 희생의 고귀한 가치를 바치셨읍니다.

      3. 그 때부터 왜 여호와께서는 단 한분의 대제사장과 상대하실 수 있었읍니까?

      3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단 한분의 대제사장과 상대하여 오셨읍니다. 그 대제사장은 ‘레위’인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이 아니라 결코 죽지 않으시는 한분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에 대한 이러한 예언이 있읍니다.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히브리 5:5, 6, 10; 6:19, 20; 7:15-17.

      4. (ㄱ) 또한 매년 속죄일에 어떠한 다른 대제사장이 예수를 전영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스가랴’의 네째 환상에서 누가 그 분을 전영하였읍니까?

      4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희생의 영적 대제사장이시므로 고대 ‘이스라엘’ 나라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이 또한 그 분의 전영 혹은 모형이었읍니다.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매년 속죄일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도 자신의 희생의 피의 가치를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 지성소인 참 지성소 즉 하늘 자체로 들어가셨읍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사닥’의 아들 ‘이스라엘’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의하여 전영되었읍니다. ‘여호수아’는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벗어나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대제사장이었읍니다. (학개 1:1) 이러한 관점으로 볼 때 예언자 ‘스가랴’의 네번째 환상을 고려하는 것은 흥미를 자아냅니다. 이 환상 가운데서 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주인공입니다. ‘스가랴’는 마치 법정을 들여다 보는듯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5. 여호와의 천사는 ‘여호수아’ 옆에 있는 자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5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리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스가랴 3:1, 2.

      6. (ㄱ) 그 ‘사단’은 누구였읍니까? (ㄴ) 왜 그는 ‘여호수아’를 대적하고 있었읍니까?

      6 여기에 나온 ‘사단’은 여호와를 위한 검사 역할을 하는 단순한 교회식 “마귀의 옹호자”가 아니었읍니다. 그는 통용 기원전 십칠세기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천사 아들들의 집회에 나타나 여호와 하나님의 면전에서 족장 ‘욥’을 그릇되이 비난한 그 ‘사단’입니다. (욥 1:6에서 2:7) 그러나 기원전 519년에 ‘스가랴’가 본 환상에서 왜 ‘사단’ 마귀는 여호와의 천사 앞에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려고 하였읍니까? 왜냐 하면 전 해 음력 ‘기슬래’월 이십사일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숭배를 위하여 단호한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와 총독 ‘스룹바벨’과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두번째 성전의 기초에서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학개 2:18, 19)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준공된 두번째 성전에서 여호와의 온전한 숭배에 재취임하여 일하고 있었읍니다. ‘여호수아’가 준공된 성전에서 그의 임무를 시작하게 되면 그는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었읍니다.

      7. (ㄱ) ‘사단’이 ‘여호수아’의 경우에 방지하려고 노력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사단’은 누구의 예언에 어떻게 반대 행동을 하려고 하였읍니까?

      7 참 종교를 대항하여 싸우는 ‘사단’ 마귀는 그 이유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하기 위하여 나타났으며 그를 격하시켜 ‘이스라엘’ 나라를 위하여 여호와께 대한 온전한 숭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 대한 그의 봉사의 주요한 결핍으로 인하여 그는 초라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사단’은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과 반대로 행동하여 ‘이스라엘’의 적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하여 사업이 좌절되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그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걸어 그가 자기의 대제사직의 임무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고발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여호와께 모독이 될 것이었읍니다.

      8. (ㄱ) 왜 천사 재판장은 ‘사단’을 책망할 자가 여호와라야 한다고 말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이미 ‘예루살렘’을 택하셨읍니까?

      8 그러나 ‘사단’은 너무 늦게 악의적인 노력을 기울였읍니다. 그가 대적 행위에 힘쓰고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걸어 악한 고발을 하기 전에 여호와의 재판장으로 일하던 천사는 ‘사단’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지존하신 하나님은 ‘사단’을 책망할 만큼 충분히 높은 분이었으며 단순히 여호와를 대표하는 어떠한 하급 천사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여호와의 지위에 합당한 존경을 나타내고 있었읍니다. (유다 8-10) 더구나 여호와께서는 이미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는 행동을 시작하셨읍니다. 그는 이미 ‘예루살렘’을 그의 성전을 위한 도시로 택하시고 계셨읍니다. ‘사단’은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을 변경하거나 실현할 수 없는 선택으로 만들 수 없었읍니다. 그는 성전이 기원전 515년에 준공되는 것을 보고 책망을 받고 실망할 자였읍니다. 이러한 책망은 여호와께로부터 올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분이 이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였기 때문입니다.

      9. (ㄱ) “불에서 꺼낸 나무”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ㄴ) 그것이 불에서 꺼내어졌음을 무엇이 알려 주었으며, 어떻게 알려 주었읍니까?

      9 그러면 여호와의 천사 재판장은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는 반문을 왜 부가하였읍니까? 왜냐 하면, 불에서 꺼낸 후에는 상징적 “나무”로부터 당장에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에서 꺼낸 나무로 상징된 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였읍니다. 그러나 그의 직책 때문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대제사장으로 그가 섬긴 ‘이스라엘’ 온 국민을 대표하였읍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바벨론’에서 ‘사단’ 마귀는 여호와의 선민으로서의 그들의 신원을 태워서 없애려고 하였읍니다. 42,000여명의 다른 ‘이스라엘’ 백성도 수천명의 종들과 가수들과 함께 돌아왔읍니다. 그러므로 남은 자들 전체는 모두 함께 “불에서 꺼낸 나무” 같았읍니다. 여호와께서 자비를 베풀고 그의 약속에 충실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상징적 ‘바벨론’의 “불”에서 꺼내어져 “거룩한 땅”에서 그 국민의 신분이 회복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그의 성전 재건 공사가 매우 늦어지는 것에 대하여 참으셨지만 ‘예루살렘’에 성전을 두시려는 목적에 고착하셨읍니다. 그 목적으로 그 도시를 택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너무 성급한 주장을 해서는 안되었읍니다.

      10. ‘사단’이 ‘여호수아’를 비난할 가능성이 있는 어떠한 것도 제거하기 위하여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10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적하는 ‘사단’의 대적 행위는 저지되었읍니다. ‘사단’이 ‘여호수아’에 대하여 고발할 근거로 삼을 가능성있는 어떠한 것도 없도록 하기 위하여 ‘여호수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스가랴’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스가랴 3:3, 4.

      옷을 바꿔 입는 것이 필요하게 된 이유

      11. 더러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가 어떻게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할 수 있었읍니까?

      11 이제 이러한 질문이 생깁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는데, 어떻게 그가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 혹은 전영일 수 있읍니까? 히브리 7:26, 27은 오늘날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와 고대 대제사장 ‘여호수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읍니다. 대제사장은 이 높은 직위에서 그가 섬기는 사람들을 대표하며 그들의 상태는 그에게 반영됩니다. 그는 그의 백성의 죄악을 담당합니다.

      12. 오래 전에 ‘아론’의 두 남은 아들과 ‘아론’ 자신은 제사장들이 백성의 잘못을 담당한다는 것을 알리는 어떠한 말씀을 들었읍니까?

      12 제사직이 사람들의 허물을 담당하였다는 것을 예언자 ‘모세’는 ‘아론’의 남은 두 아들에게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말할 때 지적하였읍니다.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레위 10:16, 17) 성소 혹은 성전은 거룩하였읍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만지는 것은 그들 자신이 잘못을 범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여진 제사장들은 그러한 잘못을 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위해 성소에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이러한 취지로 민수기 18:1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족은 성소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요 너와 네 아들들은 너희가 그 제사장 직분에 대한 죄를 함께 담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장들은 백성의 잘못에 대하여 방패와 같은 역할을 하였읍니다.

      13. ‘학개’는 제사장들과의 대화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나라의 부정함을 지적하였으며, 그것은 왜 부정하였읍니까?

      13 ‘학개’와 ‘스가랴’가 예언을 시작한 때에 ‘예루살렘’에 있던 성소 혹은 성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 기초는 십육년 동안 상부 구조가 건축되지 못한채 방치 되어 있었읍니다. 이것은 주위 적들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읍니다. 그 기간에, 송환된 ‘이스라엘’ 백성은 냉담에 빠지고 물질주의에 흘렀읍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과의 대화에서, 의식상 부정한 사람이 희생의 일부를 만졌을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학개’가 질문하였을 때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앞에서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학개 2:13, 14.

      14. 그러면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은 것같이 보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4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대표하였으므로 백성의 이러한 부정한 상태는 또한 그에게 돌려졌읍니다. 결과적으로, 마치 그가 부정한 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았읍니다. 그는 성전 없이 직무를 행하려고 하였으며 그 때문에 그것은 정당하게 보이지 않았읍니다. 그는 성전에서와 같이 온전한 존엄성과 위엄을 가지고 봉사할 수 없었읍니다. ‘사단’ 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비난을 퍼부을 때 그것은 전혀 무관심하고 부정한 국민에게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읍니다.

      15, 16. (ㄱ) 기원 1919년에 영적 ‘이스라엘’인의 생존한 남은 자들의 영적 상태는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외관을 좋게 반영하였읍니까, 나쁘게 반영하였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성전에 있던 ‘이사야’와 같이 남은 자들의 외친 말은 무엇을 시사하였읍니까?

      15 그 해 기원전 519년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의하여 전영된 대제사장의 실체에 있어서도 비슷합니다. 종전후 기원 1919년에 지상에 있던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의 영적 상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 불명예스러운 것이었읍니다. 전시의 제한 조치와 반대와 박해로 인한 장애 때문에 남은 자들은 영적 성전에서의 공개적이고 담대한 여호와의 숭배에 있어서 여러가지로 부족하였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 및 그의 정치적 군사적 애인에 속박되었읍니다. 그들은 송환된 고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과 같은 영적 상태에 있었읍니다. ‘이사야’가 거룩한 성전에 계신 여호와의 환상을 보았을 때와 같이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16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이사야 6:5.

      17. 남은 자들의 외관으로 판단하면 그들의 대제사장은 어떻게 보였으며, 그러므로 이것은 그 당시 남은 자들에게 합당한 상태였읍니까?

      17 우리가 생존한 남은 자들의 영적 외관으로 대제사장의 외관을 판단하면 그들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더러운 옷을 입”은 것같이 보였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부당한 모습이었읍니다. 영적으로 더러운 상태는 남은 자들이 그들의 대제사장을 대표하는 부당한 상태였고, 그것은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나쁘게 반영하였읍니다.

      18. 환상 가운데서 상태를 개선하기 위하여 어떠한 일이 행하여졌읍니까?

      18 그러한 상태는 즉각 개선되어야 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사법 천사는 “그 더러운 옷을 벗기”게 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는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스가랴 3:4.

      19.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서 옷을 바꾸어 입는 경험을 하기 위하여 그 자신이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19 이런 일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어떻게 발생하였읍니까? 그가 거룩한 직책으로 대표한 회복된 ‘이스라엘’ 나라를 여호와 앞에서의 그들의 부정한 상태로부터 나오게 함으로써 발생했읍니다. 이 일은 회복된 남은 자들로 하여금 다시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하게하고 그것을 준공하게 하고 그 외의 다른 일은 모두 두번째 자리로 즉 뒤로 미루게 함으로써 될 것이었읍니다. 이 중요한 면에서 백성들을 깨끗하게 하면 그 결과 그들의 대제사장은 깨끗한 외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옷을 바꾸어 입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는 그러한 “아름다운 옷”을 입고 봉사할 성전을 가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성전의 준공과 봉헌은 그가 그러한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 여호와를 찬양할 것을 요할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국가의 종교 대표로 성전 재건 공사를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서 총독 ‘스룹바벨’과 함께 지도자 역할을 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그는 더 좋은 옷으로 바꾸어 입을 자격이 있었읍니다. 그렇게 하여 그의 종교적 외관은 하나님을 수치스럽게 반영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20.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제1차 세계 대전 후에 남은 자들의 외관으로 인하여 어떻게 나쁜 외관을 가지게 되셨읍니까?

      20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상징한 분 즉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였읍니다. 영으로 출생한, 기름부음을 받은 제자들의 남은 자들은 “부정한” 영적 상태에 있던 제1차 세계 대전 가운데서 나왔읍니다. 그들은 영적 ‘이스라엘’인들 즉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여호와의 영적 제사장보들이었읍니다. 그들의 영적 옷은 제1차 세계 대전중에 그들의 태도와 결함으로 더럽혀졌읍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그들의 대제사장을 나쁘게 반영하였고 따라서 그 분을 잘못 대표하였읍니다. 그가 영적 ‘이스라엘’ 나라의 부정 혹은 죄악을 담당 하시거나 그 책임을 지시므로 마치 그 자신이 더러운 종교적 옷을 입은 것과 같았읍니다.

      21. 그러므로 생존한 남은 자들은 전후 기간이 시작되자 어떻게 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21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영적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이 회개하고 여호와께 돌아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 받는 것이었읍니다. 이 일은 실제로 전후 기간 시초에 발생하였읍니다. 그들은 전후 기간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사업을 확실히 알기 위하여 열심히 성경을 탐구함으로써 그리고 영혼을 다하여 가장 중요한 이러한 일에 전념함으로써 여호와께 돌아오고 전향하였읍니다.

      22. 용서받은 남은 자들은 그때 무엇에 전념하였으며, 이러한 일을 촉진하는데 지도자 역할을 한 분은 누구였읍니까?

      22 이와 같이 영적 제사장보들의 회개하고 전향한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영혼을 다하여 여호와를 숭배하였고 모든 ‘바벨론’적 오염으로부터 그 숭배를 깨끗이 하고자 노력하였읍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를 다시 확립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송환된 ‘이스라엘’인들이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재건하는 공사를 다시 시작한 것과 일치하였읍니다. (야고보 1:27) 여호와의 숭배와 봉사에 있어서 그의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의 이 소생에 지도자 역할을 한 분은 보이지 않는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셨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비롭게 용서하시고 그들을 깨끗케 하셨을 때에 그들은 그 분 앞에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23. 그러므로 천적 대제사장에게서 그의 상징적인 “더러운 옷”이 어떻게 벗겨졌읍니까?

      23 ‘사단’ 마귀 아래 있는 거짓 고발자들까지도 그리스도의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의 교리와 소식과 공개적 활동에서 차이를 인식하기 시작하였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천적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명예롭게 하였읍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제사장보들의 그러한 잘못을 담당하거나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읍니다. 그에게 간접적으로 입혀진 “더러운 옷”은 그에게서 벗겨지고 옷이 갈아 입혀졌읍니다.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혀졌읍니다!

      24. ‘스가랴’는 ‘여호수아’의 머리에 무엇을 씌우라고 하였으며, 그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의 특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24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예모(禮帽)로 단장한 대제사장을 누가 보기를 원하지 않겠읍니까? 예언자 ‘스가랴’는 그러한 것을 보기 원하였읍니다. 그는 정신으로 그러한 것을 생각했거나 그러한 것에 대하여 감정에 끌려 말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스가랴 3:5-7.

      25. ‘스가랴’가 ‘여호수아’에게 환상의 이 부분을 알려주었을 때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왜 기뻤을 것입니까?

      25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예언자 ‘스가랴’가 예언적 환상의 이 부분을 그에게 알려주었을 때에 참으로 기뻤을 것이 분명합니다! ‘여호수아’는 그때에 하나님 앞에서 가납될 만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분께 치욕의 원인이 아니었읍니다. 여호와의 대제사장을 부끄럽게 할 계속적인 원인을 발견하려는 ‘사단’의 악의적인 노력은 실패하였읍니다!

      26, 27. ‘여호수아’는 여호와께 대한 어떠한 의무를 양심적으로 지킬 것이었으며, 무슨 특권을 즐기기 위하여 그렇게 할 것이었읍니까?

      26 참으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의 여호와의 “전”을 판단하고 하나님의 성전 안뜰을 보존하기를 원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27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천사로부터 권고하는 증거를 명심하고 여호와의 길로 순종적으로 걸을 것이었으며 양심적으로 여호와께 대한 의무를 지켜 언급된 특권에 합당함을 증명할 것이었읍니다.

      28. 환상 가운데 옆에 서 있던 자들은 누구였는데 그들 사이로 ‘여호수아’가 왕래할 것이었으며,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이었읍니까?

      28 그뿐 아니라 ‘여호수아’는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할 수 있을 것이었읍니다. 환상 가운데서 곁에 섰던 자들은 하늘의 천사들이었으며, 그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왕래하였던 것 같이 대제사장으로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집을 위한 중재인으로 하나님께 직접 접근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또한 연례 속죄일에 “예루살렘”의 준공된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갈 특권으로 영광을 받을 것이었읍니다.

      29. 전후 기간에 천적 대제사장은 여호와의 길로 걷는 일과 그의 의무를 이행하는 일, 그의 집을 심판하는 일, 그의 뜰을 보존하는 일에 대해 무엇을 하십니까?

      29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 세계를 위한 이상적인 대제사장이십니다. 왕같은 제사장의 관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된 그의 머리에 씌워질 것이었읍니다. (히브리 6:20; 시 110:1-4; 21:1-5) 그는 항상 하나님의 길로 걸어 왔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의무를 지켰읍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중 지상에 있는 그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경험 후에 그는 그의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길로 걷기 위하여 그 길을 더욱 명백히 배우게 하셨고 그 분은 그들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거룩한 의무를 더욱 온전히 인식하게 하시며 그것을 완전히 이행하게 하십니다. 그의 영광스러운 제사장복은 그가 사도 ‘요한’에게 주신 계시 가운데 묘사되었으며, 그 기록을 보면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께서는 일곱 금촛대 사이에 거니십니다. (계시 1:12에서 2:1) 그는 충실하게 새 언약의 율법에 따라 영적 ‘이스라엘’ 집을 심판하십니다. 그 분은 그들을 여호와의 영적 전의 지적 뜰로 인도하여 그들에게 그 곳에서 그들의 영적 의무를 부여하십니다.

      30. 천적 대제사장은 어떻게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하며, 언제부터 어느 정도로 그렇게 합니까?

      30 ‘여호사닥’의 아들 지적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기원전 515년에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에 들어가기 시작하였읍니다. (에스라 6:15) 그러나 더 큰 ‘여호수아’인 영적 대제사장은 기원 33년에 실체적이고 진정한 지성소인 하늘 자체로 들어 가셨읍니다. 그는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만군의 여호와의 어전에서 그의 인간 희생의 가치를 바치셨읍니다. 그는 이제 “천사보다 ··· 뛰어”나게 되었고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셨으므로 그도 역시 “여기 섰는 자들 중” 즉 천사들 중에 “왕래”할 수 있읍니다. 그는 다른 모든 이들보다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숭배자들을 위하여 중재할 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 대하여 예언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예레미야 30:21.

      “순”과 “돌”

      31. 이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호수아’에게 사법 천사는 “순”과 “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1 ‘스가랴’에게 준 환상에서 여호와의 사법 천사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대제사장에게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스가랴 3:8, 9.

      32.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들은 어떻게 전조의 역할을 하였읍니까?

      32 예언자 ‘스가랴’는 환상 가운데 있는 이 부분의 소식을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뿐 아니라 그 앞에 앉아 있던 그의 “동료들”에게도 즉 제사장보들에게도 알리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에 그들은 어떠한 나쁜 것의 전조가 아니라, 그들이 들으려는 하나님의 선언에 비추어 볼 때에, 그들은 좋은 것, 특별히 좋은 것의 전조가 될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사법 천사를 통하여 들은 것을 증거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은 멀지 않은 장래에 더 큰 제사직,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그들의 제사직보다 더 높은 계급의 제사직의 도래에 대한 전조가 될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메시야의 제사직일 것이며, 그들의 대제사장은 ‘메시야’ 자신이 될 것이었읍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의 두번째 성전의 제사장보로 그러한 전조의 의미를 가진 것과 일치하게 그들의 현 대제사장 ‘여호수아’ 즉 ‘여호사닥’의 아들은 메시야 대제사장의 전조였읍니다. 그는 그 분의 모형이었읍니다!

      33, 34. (ㄱ) 그러므로 전조로서 당시에 무엇이 필요하였읍니까? (ㄴ) 이 필요한 대제사장은 법적 계명에 따라 마련되었읍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어떠 특별한 것에 따라 마련되었읍니까?

      33 더 나은 제사직, 특히 더 나은 대제사장, 고대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직이 필요하였읍니다. (창세 14:18-20) 그 사실에 대한 설명이 약속된 ‘메시야’를 받아들인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글에 기록되었읍니다. 히브리 7:15-22은 이러합니다.

      34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증거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또 예수께서 제사장 된 것은 맹세없이 된 것이 아니니 (저희는 맹세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자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 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35. 더 큰 대제사장은 “가지”라기 보다 어떻게 “순”이었으며, ‘예레미야’는 무엇으로부터 순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읍니까?

      35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동료들이었으며 그로부터 교훈을 받으려고 그 앞에 앉았던 제사장들은 더 나은 것의 “예표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법 천사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스가랴 3:8) “내 종” 곧 여호와의 종은 ‘아론’ 계통의 제사직의 한 “가지”가 되지 않을 것이었읍니다. 제사직에 관한한 그는 전혀 다른 흙에서, 다른 뿌리에서 나오고 있었읍니다. 예레미야 23:5, 6은 누구의 메시야 대제사장이 순이 될 것인가를 이렇게 지적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순, 신세]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기원 33년에 이 “순”을 내셨읍니다.

      36, 37. (ㄱ) 여호와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돌”을 두는 것은 무엇의 보증이었읍니까? (ㄴ) 그 “돌”은 누구를 상징하였으며, 예수께서는 그와 관련하여 시편 118:22, 23을 어떻게 적용시키셨읍니까?

      36 그러면 하나님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두실 “돌”은 어떠합니까? 문자적으로 그것은 돌이 될 것이며, 당시 건축 중이던 성전이 그 돌로 완성되고 준공될 것이었읍니다. 그 두번째 성전의 기초는 이미 놓였고 그러므로 이 “돌”은 머릿돌 역할을 할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돌을 ‘여호수아’ 앞에 두시는 것은 성전이 ‘사단’의 어떠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준공되리라는 것을 보증하는 징조였읍니다. 이 돌도 메시야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상징하였읍니다. 메시야를 돌로 상징하여 시편 118:22, 23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기원 33년에 예수께서는 그를 약속된 메시야로 배척한 ‘유대’인들에게 말할 때 이 성귀를 자신에게 적용시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7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태 21:42, 43; 또한 베드로 전 2:4-9 참조.

      38. 그 하나의 “돌”에 일곱 눈이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8 이 상징적 “돌”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한 주의를 돌리실 것이었읍니다. 이에 대한 확증으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그의 동료 제사장들은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들어야 하였읍니다. (스가랴 3:9) 그것은 일곱 눈이 그 돌에 새겨져서 그 돌을 보는 사람들이 일곱 겹으로 보인다는 뜻이 아니었읍니다. 눈을 가지고 우리는 어떤 것에 우리의 주의를 고정시킵니다. 또한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수자는 완전함을 상징하였으므로 그 한 돌 위에 일곱 눈이 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 상징적 돌, 그의 약속된 메시야에게 완전한 주의를 고정시키신다는 뜻입니다. 다른 자들은 그 상징적 돌을 빠뜨리고 못볼지 모릅니다. 혹은 그들이 그 돌을 무시하거나 배척할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 분이 그와 같이 온전한 주의를 기울이시기 때문에 그 돌은 그 분께 가장 귀중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39. 어떠한 면으로 여호와께서는 그 상징적 돌에 새길 것을 새기십니까?

      39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이 상징적 돌과 그 탁월한 지위와 외관에 완전한 주의를 돌리신다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새길 것을 새기[느니라.]” 이 약속에 대한 영광스러운 성취에 있어서 천적 조각가 여호와께서는 그 분이 다른 아무에게도 부여하지 않은 참으로 아름다운 표를 상징적 돌,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읍니다. 따라서 히브리 1:1-3은 하나님의 탁월한 아들이 “그 본체의 형상[희랍어, 크하락티어, ‘인상’이라는 뜻]” 즉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라고 말합니다. 조각된 상징적 머릿돌로서 메시야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숭배의 성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책임있는 봉사의 지위를 부여 받았읍니다. 이것은 온 인류에게 가장 유익한 것의 전조가 되었읍니다.

      40. ‘그 땅의 죄악’은 무엇이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어떻게 제거하셨읍니까?

      40 꼭대기 돌이 놓이고 성전이 모두 완성되어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온전한 규모의 숭배를 드릴 수 있게 될 때에 우리는 논리적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읍니까? 놀랍고, 놀랍고,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아무 것도 방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3:9) 송환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오랫 동안 중단하였기 때문에 ‘유다’ 온 땅은 “죄악” 가운데 있었읍니다. 그 거민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물질적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부정하였읍니다. (학개 2:13, 14) 그러나 이제 기원전 515년에 ‘예루살렘’에 두번째 성전을 성공적으로 준공하였을 때 ‘유다’ 땅의 그릇된 행로는 완전히 시정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기뻐하셨으며, 그는 특별한 “하루에” 땅의 거민의 죄악을 제거하셨읍니다. 그 “하루”는 조각된 머릿돌이 놓이고 성전이 준공되고 순결한 숭배가 그 안에서 시작된 날이었읍니다.

      41. 이것으로부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숭배에 관하여 어떠한 자극을 받아야 합니까?

      41 이 사실로부터 오늘날 우리는 영적 성전에서의 참 하나님의 숭배를 우리의 생활에서 첫째로 두어야 한다는 강력한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기를 지체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노력에 있어서 방해 받지 말아야 합니다.

      42. 기원 1919년 이후로 영적 제사장보들의 남은 자들은 어떠한 면으로 “예표의 사람”들입니까?

      42 메시야의 영적 제사장보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기원 1919년 그 회복의 해 이후로 오십여년 동안 더욱 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이 일을 하였기 때문에 놀라운 축복이 그들에게 왔음을 알고 있읍니다. 그들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제사장보 동료들과 같이 그들이 이 세상 사물의 제도의 이 “마지막 때”의 “예표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더욱 더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에 전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가장 좋은 것의 전조입니다.

      43. 여호와께서 “내 종 순”, “한 돌”이라고 부르시는 자에 대한 남은 자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43 그들은 어떠한 거짓 메시야나 오늘날의 거짓 메시야 조직에 속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내 종 순”이라고 부르시는 자를 알아냈읍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종결되었을 때에 하늘의 메시야 보좌에 앉히신 분입니다. 그는 메시야 통치를 시작한 분이며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들은 또한 대제사장 ‘여호수아’ 앞에 놓였고 “일곱 눈”이 있는 돌로 상징 된 분을 알아냈읍니다. 그들은 상징적 돌에게 주어진 지위에 맞도록 아름답게 그 돌을 조각하신 여호와의 솜씨에 감탄합니다. 그들은 이 분이 상징적 머릿돌 혹은 꼭대기 돌이 되었으며 여호와의 숭배의 제도에서 가장 높고 가장 책임있는 분이 되신 것을 기뻐합니다. 그들은 그 조각된 상징적 돌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제사장보가 된 것을 기뻐합니다. 성경에서 그들은 그들이 “예표의 사람”들로 이 높여진 돌이신 여호와의 유일한 대제사장 예수의 증인으로 봉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영적 번영이 끝없는 생명으로 인도함

      44. 여호와께서 “이 땅의 죄악”을 제거하신 후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이며, 스가랴 3:10에 의하면 무슨 일이 있을 것입니까?

      44 여호와께서 ‘스가랴’를 통하여 “내가 ···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신 그의 예언을 성취하신 후에 무슨 일이 있을 것입니까? 다름 아닌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예루살렘’에 준공된 그들의 두번째 성전에서 숭배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물질적 영적 축복으로 표현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약속 다음에 이러한 하나님의 예언이 뒤따르는 것은 참으로 적절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스가랴 3:10.

      45. 스가랴 3:10의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는 성전에 있는 숭배자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45 모든 거짓 종교가 세상의 최악의 재난에서 무너지고 멸망되기 직전인 오늘날 그 예언은 여호와께서 승인하신 한분의 대제사장이 봉사하는 하나의 참 영적 성전에서 하나님의 숭배에 마음을 다하여 열중하는 성실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영적 번영을 의미하였읍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미가 4:1-4의 같은 계통의 예언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 중에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46.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영적 토지에서 어떠한 상태를 유지합니까?

      46 핵전쟁이 세계를 위협하는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토지에서 영적 번영을 누리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들 가운데서 사랑에 넘치는 평화를 유지하며 이 세상의 전쟁에 절대 불참합니다. ‘사단’은 그들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데 실패하였읍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