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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민족이 하나님의 은총의 성읍으로 가다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15장

      많은 민족이 하나님의 은총의 성읍으로 가다

      1. 자칭 금식자들에게 ‘스가랴’를 통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온 좋은 소식은 무엇이었읍니까?

      여기 좋은 소식이 있읍니다. 이 소식은 거의 이십 오세기 전 자칭 금식자들과 오늘날 자칭 금식자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라.”—스가랴 8:19.

      2. 시편 30:1, 11에 있는 ‘다웟’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태도에 그러한 변화가 있으려면 배경에 어떠한 다른 변화가 필요하였읍니까?

      2 그러한 변화는 참으로 기원전 6세기에 회복된 “‘유다’ 족속”의 정신 태도에 변화를 의미하였으며, 오늘날 우리의 정신 태도에도 변화를 의미합니다. 견해와 행동에 있어서의 그러한 철저한 변화에 대한 배경으로, 관련된 환경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하였읍니다. 또한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언하셨고 명하셨으므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의 자비로운 표현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것은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점령한 ‘다윗’ 왕이 자신의 경우를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 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시 30:1, 11.

      3. 환경에 있어서의 이러한 변화는 여호와의 숭배자들과 그의 적들에 대한 그의 어떠한 심정으로 인하여 초래될 것이었읍니까?

      3 이 일이 어떻게 발생하게 되어 있었는지에 대하여 예언자 ‘스가랴’는 회복된 ‘유대’인들의 금식 문제에 대한 질문이 있은 직후에 들었읍니다. ‘스가랴’의 기록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연속적인 말씀 중 첫째 말씀을 보면 이러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스가랴 8:1, 2) 이 점에 있어서의 여호와의 심정은 적들에게 학대를 받고 능욕을 당한 여자의 남편의 심정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는 ‘시온’ 산(혹은 ‘예루살렘’)을 온전히 버리시지 않았으므로 세상이 보기에 불명예스러운 상태에 빠진 ‘시온’을 그 상태에서 회복시키는 데 매우 열심히, 그리고 열렬히 행동하실 것이었읍니다. 그는 ‘시온’을 보호하는 데 그리고 ‘시온’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복귀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힘쓰실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시온’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의미하였지만 ‘시온’을 모욕하고 ‘시온’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도록, 특히 여호와의 숭배자로 회복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던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의미하였읍니다. 이에 대한 그의 열심의 정도는 적들에 대한 그의 분노의 정도와 같을 것이었읍니다.

      4. 여호와께서는 그 때까지 ‘예루살렘’에 온전히 돌아오셨읍니까? 그 분이 온전히 돌아오시는 것은 언제 가능하였읍니까?

      4 추방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있던 칠십년 동안 ‘예루살렘’ 시와 ‘유다’ 땅은 사람이나 가축이 없이 황폐되었읍니다. 기원전 537년에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대로 회개한 남은 자들을 그들의 고토로 다시 데려오셨읍니다. 그러나 어떤 면으로는 여호와께서 그 때에 ‘시온’ 산 즉 ‘예루살렘’으로 온전히 돌아오지 않으셨읍니다. 그는 그들을 ‘예루살렘’에 그의 숭배의 두번째 성전을 건축하도록 돌려보내셨읍니다. 십육년 동안 그들은 적들의 압력에 눌려 그 숭배의 거룩한 전 건축을 중지하였고, 여호와께서 예언자 ‘스가랴’를 통하여 말씀하실 때까지 성전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하나님의 봉사를 위하여 준공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으로 성전의 머릿돌을 제 위치에 가져다 놓고 제사장들이 준공식을 가질 때, 그때까지는 여호와께서 그 거룩한 도시에 온전히 돌아오지 않으실 것이었읍니다. 그때 가서야 비로소 그 분은 완공된 성전의 지성소에 그의 영으로 거하심으로 ‘시온’에 거하실 것이었읍니다.

      5. 여호와의 선언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성읍과 산으로서 무엇이라고 불리우게 되어 있었읍니까?

      5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라는 의례적인 선언으로 소개된 하나님의 둘째 약속은 이러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에 돌아왔은즉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리니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 일컫겠고 만군의 여호와의 산은 성산이라 일컫게 되리라.”—스가랴 8:3.

      6. 왜 ‘예루살렘’ 산은 “성산”이라고 불리울 것이었으며, 그 성읍 자체는 “진리의 성읍”이라고 불리울 것이었읍니까?

      6 완공된 성전은 ‘예루살렘’ 산을 거룩하게 할 것이므로 이 높은 곳은 “성산”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다’ 도의 수도로서 여호와의 숭배의 임무에 충실하였고 그의 순결한 숭배의 권익을 다른 모든 것보다 앞세웠으므로 ‘예루살렘’은 “진리의 성읍”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예루살렘’ 가운데서 참 숭배가 실천될 것이었읍니다. 참 하나님에 대한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의 진리가 그 성읍 가운데서 말하여질 것입니다. 산에 위치한 그 도시는 “여호와의 산”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참으로 많습니다!

      7. 여호와의 세째 약속에 의하면 무엇이 ‘예루살렘’ 백성의 예상 수명을 암시하였으며, 그 도시의 광장에 무슨 주목할 만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7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읍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세째 약속이 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예루살렘’ 길거리에 늙은 지아비와 늙은 지어미가 다시 앉을 것이라. 다 나이 많으므로 각기 손에 지팡이를 잡을 것이요, 그 성읍 거리[광장, 신세]에 동남과 동녀가 [소년 소녀가, 신세] 가득하여 거기서 장난하리라.”—스가랴 8:4, 5.

      8. 그 예언적 묘사는 이사야 65장의 무슨 예언의 성취와 비슷합니까?

      8 이것은 신체적인 건강과 평화와 안전에 대한, 그리고 소아 사망이라는 슬픔이 없는 순조로운 인구 증가에 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묘사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사람과 가축이 없이 칠십년간 황폐되기 백 이십 오여년 전에 전달된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와 비슷합니다. 그의 예언은 이러하였읍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찌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이사야 65:17-23.

      9.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지상의 영적 토지는 평화와 안전에 있어서 오늘날 세상 나라와 어떻게 비교됩니까?

      9 영적 ‘이스라엘’의 충실한 남은 자들이 기원 1919년에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토지에 회복된 이래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발견합니까? 지상의 정치 국가들은 표면상으로는 현재 132개 회원국을 가지고 있는 국제 연합을 통하여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상 어느 곳에도 안전이 없읍니다. 또한 온 인류의 평화는 민주주의 및 공산주의 초강대국에 의한 핵전쟁의 위협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영적 토지 내에는 축복받은 평화와 안전이 있읍니다. 특히 기원 1935년 이래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제자들의 “큰 무리”가 영적 남은 자들에게 연합하였는데도 그들 사이에는 국제적 경쟁이나 긴장이나 투쟁이 없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의 영의 열매인 형제 사랑이 그들 사이에 넘치고 있읍니다.

      10. 스가랴 8:4, 5에 있는 여호와의 약속은 현대에 문자적인 의미와 영적 의미로 어떻게 성취되고 있읍니까?

      10 1918년에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지금까지 오십여년이 흘렀지만 그 시련기를 통과한 원래의 남은 자들 중 다수가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있읍니다. 이제 그들은 ‘나이 많으므로’ 문자 그대로 신체적으로 연로하였으며 걸을 때에 지팡이를 사용하는 분들도 있읍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숭배로 자녀를 양육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매력적인 예언의 영적 성취에 관심을 돌려 보면 우리는 ‘‘예루살렘’의 광장에 앉아 있는 연로한 남자들과 여자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의 박해와 징계를 통과한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도시 광장에서 노는 소년 소녀들’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종전후 곧 1919년 이후로 영적 남은 자들에게 가담하게 하신 남은 자들의 성원들을 상징합니다. 노소가 함게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있어서 영적으로 자라며 그들의 영적 토지에서 평화와 안전을 함께 누리고 있읍니다.

      11. 과거에 그러한 예언의 성취를 기대하려면 무엇이 요구되었으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어떠한 네째 선언을 하셨읍니까?

      11 처음에는 그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데 엄청난 믿음이 필요하였으며 따라서 여호와의 숭배자들의 새로 회복된 조직에 고착하는 데는 믿음이 필요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이러한 생각을 아시고 송환된 남은 자들에게 이러한 네째 약속의 말씀을 하셨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일이 그 날에 남은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려니와 내 눈에 어찌 기이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가랴 8:6.

      12. 여호와께서는 조직과 문제들의 식별에 있어서 어떻게 살아 남은 남은 자들을 도우셨으며, 오늘날의 현실에 의하면 여호와께서 약속을 성취시키는 것이 불가능하였읍니까?

      12 기원 1919년에 만군의 여호와의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를 회복하고 확장하는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회복된 남은 자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인 “마지막 때”에 성취시키려고 목적하신 모든 놀라운 일들을 분별하고 인식하기는 참으로 어려웠읍니다. 그러나 참을성 있게 조금씩 조금씩 그는 예언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신권 조직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시정하여 주셨읍니다. 그는 그들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셔서 이 가장 중대한 시기에 이루어져야 할 그리스도인 사업을 수행하게 하셨읍니다. 그는 그들을 도와서 세계 정복을 위한 국제적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숭배자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분별하게 하셨읍니다. 그뿐 아니라 그 분은 그들로 하여금 그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성서적 입장을 취하게 하셨읍니다. 오늘날 그의 신권 조직 내에서 그리고 그 조직을 통하여 성취되는 일들이 반세기 전에는 영적 ‘이스라엘’의 소수의 남은 자들이 보기에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 불가능하였읍니까? 오늘날의 현실을 볼 때 불가능하지 않았읍니다!

      13. 큰 ‘바벨론’이 신도들을 상실하는 것과는 반대로 여호와께서는 다섯째 약속에서 무슨 말씀을 하셨읍니까?

      13 큰 ‘바벨론’의 허다한 종교 단체가 현 세상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신도들을 잃고 있는 오늘날의 실정을 조사하여 볼 때 우리는 그의 하나님께서 다음과 같은 다섯째 약속을 이행하시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었음에 유의하게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을 동방에서부터, 서방에서부터 구원하여 내고 인도하여다가 ‘예루살렘’ 가운데 거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성실과 정의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스가랴 8:7, 8.

      14. 약속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영적 남은 자들을 어디로 모으셨으며, 무엇으로 모으셨읍니까?

      1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영적 ‘이스라엘’인의 회복된 남은 자들은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그리고 모든 나라에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메시아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여 왔읍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아 그리스도의 본에 따라 물에서 침례를 주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서 필요한 모든 권세를 주신 분인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것을 이 제자들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하여 왔읍니다. (마태 24:14; 28:18-20) 극동으로부터, 그리고 극서로부터 영적 ‘이스라엘’의 “거룩한 나라”의 마지막 성원들이 천사의 인도하에 모아졌읍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화국의 수도인 지적 ‘예루살렘’으로 모아지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면 어디로 모아졌읍니까?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이스라엘’”의 토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토지로, 그리고 신권 조직의 연합과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의 여호와의 순결한 숭배와 활동의 연합으로 모아졌읍니다.—갈라디아 6:15, 16.

      영적 번영이 열국의 눈에 띄게 된다

      15, 16. (ㄱ) 그들은 그의 백성이 되고 그 분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증거로 그 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ㄴ) 여호와의 여섯째 선언에 의하면 회복된 남은 자들의 경제적 상태와 사회적 상태는 어떠하였읍니까?

      15 실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납하는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그의 예언적 약속을 성취시키심으로 누가 그의 가납된 백성인가를 뚜렷이 나타내십니다. 그 분은 성서의 하나님으로서 예언에 충실하심으로, 그들과의 언약에 충실하심으로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의로운 일을 하심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음을 알리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의 대제사장 예수 메시야의 대속 희생을 통하여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가 보시기에 그들을 의롭다고 간주하십니다. 이와 일치하게 그는 회복된 남은 자들에게 은총을 베푸시어 열국 백성들이 그 축복을 주시하고 그것이 축복의 훌륭한 본이라고 말할 정도로 영적 번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섯째 약속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행동의 변화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집 곧 전을 건축하려고 그 지대를 쌓던 날에 일어난 선지자들의 입의 말을 이 때에 듣는 너희는 손을 견고히 할찌어다. 그날 전에는 사람도 삯을 얻지 못하였고 짐승도 삯을 받지 못하였으며 사람이 대적을 인하여 출입에 평안치 못하였었나니 이는 내가 뭇 사람으로 서로 치게 하였음이[니라.]

      17. 이제 어떠한 상태의 변화가 있을 것이며, 그러므로 열국은 회복된 남은 자에 관하여 어떻게 이전과 다른 말을 할 것입니까?

      17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이제는 내가 이 남은 백성을 대하기를 전일과 같이 아니할 것인즉 곧 평안한 추수를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 ‘유다’ 족속아,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방 가운데서 저주가 되었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너희로 축복이 되게 하리니 두려워 말찌니라. 손을 견고히 할찌니라.”—스가랴 8:9-13.

      18. 회복된 남은 자들이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성전 공사를 완성시키지 않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그들을 축복하셨다면 그것은 왜 일관성 없는 행동이었을 것입니까?

      18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예루살렘’에 아직 준공되지 않았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이 보다 약 2년전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유다’와 ‘이스라엘’ 족속”의 남은 자들이 성전 기초 공사를 재개하였읍니다. 그러한 사업은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의 권고와 격려를 받아 다시 시작되었었읍니다. (학개 2:10-19; 스가랴 1:1-7; 에스라 4:23에서 5:2) 그때까지 성전 공사는 약 16년 동안 중지되었었읍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의 성전을 소홀히 여긴 그 16년 동안 여호와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물질적으로 번영하게 해주셨다면 그의 숭배의 전이 완성되어 사용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것이 그 분께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는 둘째 성전이 ‘예루살렘’에 건축되리라고 예언하셨읍니다. 그 분이 ‘유대’인 포로의 남은 자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키신 것은 그들이 고토로 돌아가 특히 그의 성전을 재건하게 하기 위함이었읍니다. (이사야 44:26에서 45:6) 그들이 사람들을 두려워 하고 그의 숭배의 전을 건축하는 일을 중지하고 물질주의적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어떻게 그들을 축복하시겠읍니까?

      19. 왜 안팎으로 평화가 없었으며, 남은 자들은 변화를 위하여 무엇을 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19 회복된 포로들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사명을 무시하고 만군의 여호와를 높이기 위하여 그의 이름에 바쳐진 성전을 완공시키려고 하지 않고 있던 그 여러 해 동안 ‘예루살렘’과 ‘유다’ 도의 상태는 영적으로 뿐 아니라 물질적으로, 경제적으로 악화되어 있었읍니다. 사람과 가축이 실업 상태에 있었읍니다. 일기가 불순하여 농작물이 손상을 받았고 추수가 줄어들었읍니다. 적의에 찬 이웃 나라들이 그들의 종교 활동과 기타 활동을 방해하였읍니다. 그들이 이기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목표를 추구하였으므로 그들 동료 ‘이스라엘’인 간에 평화가 없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분노하신 것이 분명하였읍니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그 분이 그들에게 은총을 가지고 돌아오실 것이었읍니다.

      20. 여호와께서는 무슨 명령으로 그의 여섯째 약속의 말씀을 시작하고 끝맺으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0 자비롭게도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통하여 그들의 잘못에 그들의 주의를 환기시키셨읍니다. 그들은 ‘바사’ 전 제국이 그들을 대항할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임을 확신하고 용기를 얻었으며, 사람들이 온갖 수단을 다하여 방해를 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성전 대지에서 공사를 밀고 나가 완성시킬 결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일을 재개하였읍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언자 ‘학개’(2:19)를 통하여 말씀하셨읍니다. 그 때는 ‘바사’ 왕 ‘다리오’ 1세 통치 2년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스가랴’를 통하여 열가지 약속의 말씀을 하실 때는 ‘다리오’ 왕 4년이었읍니다. 이제 성전 건축을 하는 그 국민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시작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불쾌한 일이지만 숭배의 전을 완성시키기 위하여는 할 일이 아직 많았읍니다. 성전 건축자들은 계속 일해야 하였읍니다. 적절하게도 그 분은 그의 여섯째 약속의 말씀의 시작과 끝에 그들의 일하는 손을 견고히 하라는 명령을 하셨읍니다. “두려워 말찌니라”고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21. 주위의 나라들이 다른 이들에게 저주나 축복이 있으라고 말할 때 그들은 누구를 실례로 사용할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성전이 완성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총과 축복을 넘치게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냉담한 태도를 보인 여러 해 동안 그들의 상태는 평화와 안전과 물질적 복지에 있어서 매우 불량하였으므로 주위의 나라들은 ‘유다’ 땅의 회복된 포로들이 저주 아래 있다고 생각하였읍니다. 또한 그러한 나라들은 다른 사람들을 저주할 때에 그 저주 받은 사람들이 ‘유다’ 땅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임한 것 같은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성전이 준공되면 이러한 일이 그칠 것이었읍니다. 그 때에 놀란 열국은 회복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축복받은 상태에 있음을 주시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나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있으라고 말할 때 그 ‘이스라엘’의 축복받은 상태를 본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22. 현 이십세기에도 어떻게 사정이 비슷하며, 오십년 이상 일을 수행해 온 지금에 이르러 여호와의 증인과 그리스도교국은 영적 의미로 어떻게 비교됩니까?

      22 그러므로 현 이십세기,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된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성전에서의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숭배를 그들의 생활에서 첫째로 두고 그 숭배를 회복시키고 확장하는 데 성실하게 열심으로 일할 때까지 안팎으로 어려움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반대자들은 그들을 저주하였고 그들을 방해하였고 그들을 근절시키고 그들의 성전 일을 억압하려고 광적으로 노력하였읍니다. 그러나 오십년 이상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숭배와 그의 메시야 왕국의 권익에 변치 않는 주의를 기울여온 지금에 이르러 그들과 그리스도교국은 어떻게 비교됩니까? 그리스도교적 영적 의미로 번영하고 있는 쪽은 누구입니까? 성서에 엄격히 고착하고 있고 성서에 제시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는 것은 누구입니까?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도 자기네 교회 신도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 같은 열심과 믿음과 용기와 성서 지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증인들처럼 종교적으로 번영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생각의 변화

      23. 하나님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였기 때문에 이제 남은 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읍니까?

      23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그의 일곱째 약속의 말씀으로 그의 순종하는 남은 자들에게 더욱 힘과 격려를 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전에 너희 열조가 나의 노를 격발할 때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뜻하고 뉘우치지 아니하였었으나 이제 내가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였나니 너희는 두려워 말찌니라.”—스가랴 8:14, 15.

      24.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재앙을 내리실 생각을 하신 것은 왜 그 분이 화를 내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니었읍니까?

      24 여기서 여호와께서는 그가 충실한 남은 자들의 열조가 그의 노를 격발시켰으므로 ‘이스라엘’ 나라에 재앙을 내릴 뜻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셨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분이 기분이 상해서 발끈 화를 내신다는 의미가 아니었읍니다. 그 분이 그 나라에 내리실 혹은 임하도록 허락하려던 재앙은 침착하게 말씀하신 경고 즉 그들이 그 분과의 국가적 언약을 어긴다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와 엄격히 일치하는 재앙이었읍니다. 그 분이 오래 전에 예언자 ‘모세’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신 것은 지극히 정당하였읍니다.

      “곧 여호와께서 원방에서,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의 날음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 유치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며

      “이왕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로 번성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던 것 같이 이제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망하게 하시며 멸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너희가 들어가 얻는 땅에서 뽑힐 것이[라.]”

      “여호와께서 너를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만민 중에 흩으시리니 네가 그 곳에서 너와 네 열조의 알지 못하던 목석 우상을 섬길 것이라.”—신명 28:49, 50, 63, 64; 또한 레위 26:27-43 참조.

      25. (ㄱ) 여호와께서 그러한 저주가 임하게 하는 것이 왜 부당한 일이 아니었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뜻을 변경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25 그러므로 율법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인들과 ‘바벨론’인들에 의하여 “땅에서 뽑”히고 ‘유다’ 땅으로 하여금 칠십년 동안 완전히 황폐되게 하신 것은 여호와와의 국가적 언약을 그 분이 이행하는 것에 불과하였읍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그들과의 언약 조건에 따라 그 나라를 징계하신 후에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반대의 일을 하실 뜻을 가지셨읍니다. 그는 먼저 회개한 충실한 남은 자들을 ‘예루살렘’과 ‘유다’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읍니다. 그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성전 건축을 보류하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었고 또 받지도 못했읍니다. 그러나 “이제” 즉 그들이 확신을 가지고 성전 일을 새로 시작하고 용기를 가지고 그 일을 진척시켰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좋게 여기고 “‘예루살렘’과 ‘유다’ 족속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뜻하셨읍니다. 그러므로 만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그 분을 숭배하는데 대한 상으로 그들을 옹호하고 그들과 함께 하신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26. 현 이십세기에 일곱째 약속은 영적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똑같이 적용됨을 볼 수 있읍니까?

      26 현대에 여호와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꼭 같이 적용되는 이 약속에 충실하셨읍니다. 그들이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토지에서 흩어졌읍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은 기원 1919년에 그들이 회복된 이후의 과거 여러 해를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그들이 그의 순결한 숭배를 회복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매우 놀라운 은총을 베풀어 오셨음을 인식할 수 있읍니다.

      27. 여호와께서는 지금 회복된 남은 자들이 무엇을 할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시며, 이것은 무슨 두 계명과 일치합니까?

      27 그러나 자비를 받아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된 자들이 해야 할 중대한 일들이 있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명하시는 일은 율법의 두 계명 즉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 및 우리 자신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일치합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각기 이웃으로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는 성문에서 진실하고 평화한 재판을 베풀고 심중에 서로 해하기를 도모하지 말며 거짓 맹세를 좋아하지 말라. 이 모든 일은 나의 미워하는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가랴 8:16, 17.

      28. 그러므로 그들의 “성문”이나 법정에서 어떻게 진실과 공의가 옹호되어야 하며, “화평한 재판”으로 재판하는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28 회복된 남은 자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일을 한다면 그 분의 은총 가운데 머무를 수 없읍니다. 그들의 성문에서나 법정에서는 공의가 실시되어야 합니다. 동료에게 부당한 재난을 초래하기 위하여 거짓 맹세해서는 안됩니다. 동료에게 말할 때나 법정에서 맹세할 때에 정직해야 하며 항상 진실을 말하고 마음 속에 있는 것과 다른 거짓을 말해서는 안됩니다. 논쟁 문제를 사법적으로 해결할 때의 목표는 법에 의뢰하는 사람들 간에 화평을 조성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화평의 목표는 법정에서 진실과 공의를 옹호할 때만 이룩될 수 있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 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29. 사도 ‘바울’은 스가랴 8:16이 그리스도인 남은 자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냈으며, 그들은 어떻게 참된 것을 말합니까?

      29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에게 적용됩니까? 물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 연합을 위하여 ‘소아시아’ ‘에베소’의 신자들에게 편지할 때에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에베소 4:15, 25) 분명히 사도는 여기서 스가랴 8:16의 일부를 인용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이스라엘’”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하게 적용시키고 있었읍니다. (갈라디아 6:15, 16) 서로 진실하게 말하는 것 즉 참을 말하는 것은 또한 서로 성서 진리를 말하며 큰 ‘바벨론’의 종교적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그의 영적 성전에서 하나님의 순결한 숭배를 촉진합니다.

      금식에서 축제로

      30. 여호와의 여덟째 약속의 말씀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금식의 때가 변하여 무슨 때가 될 것이었읍니까?

      30 단순히 일곱이 성경에서 영적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자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이상의 일곱째 약속의 말씀으로 그치지는 않으셨읍니다. 그 분은 다음과 같은 여덟째 약속으로 넘어가셨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스가랴 8:19.

      31. 그것은 금식에 관한 무슨 질문에 대한 답이었으며, 애통하며 금식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왜 이제 합당하지 않습니까?

      31 이것은 ‘사라셀’과 ‘레겜멜렉’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대답이었읍니다. 그들은 오월중에 그들이 단식을 하고 애통을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인가를 질문하도록 ‘벧엘’에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었읍니다. (스가랴 7:1-3) 이제 ‘예루렘살’에 두번째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 웅대하게 완성될 것이었으므로 과거 기원전 607년 즉 팔십여년 전에 있었던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에 대하여 슬퍼할 때가 아니었읍니다. 그 분이 그들에게 베푸신 선에 대하여 즐거워하고 ‘바벨론’인들이 ‘예루살렘’과 ‘유다’ 땅에 행한 모든 파괴적인 일을 복구하는 일을 기뻐하는 것이 그 분의 뜻이었읍니다. 이제 그들은 애통하고 금식할 이유가 없읍니다! 축제의 절기를 즐겨야 합니다!

      32. 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성취되어 왔으며, 남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매년 어느 한 날을 기념합니까?

      32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이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인 영적 ‘이스라엘’에게 참으로 웅대하게 성취되어 왔읍니다. 오늘날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은 고대 ‘이스라엘’의 어떠한 금식과 애통의 절기도 지키지 않습니다. 음력 칠월(‘티쉬리’월) 십일에 연례 ‘욤 키푸르’ 즉 속죄일도 지키지 않습니다. (레위기 16장) 그들은 여호와의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의 완전한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행하여지는 참 속죄일을 즐거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희생의 가치를 온 인류를 위하여 기원 33년에 하늘에서 여호와께 바치셨읍니다. (요한 1서 1:7에서 2:2)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매년 지키는 유일한 날은 그리스도께서 희생으로 죽으신 유월절날 즉 ‘니산’월 14일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하신 명령에 따라 그 날을 기념합니다. 살아 있는 남은 자들이 1919년 4월 13일 해진 후에 주의 만찬을 기념하였을 때에 전세계에서 17,961명 이상이 그의 희생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였읍니다. 그러나 1972년 3월 29일 수요일 해진 후에는 3,662,407명이 참석하였고 이 가운데 10,350명이 표상물인, 누룩이 들지 않은 떡과 포도주를 취하였읍니다.—누가 22:7-20.

      33. 1972년에 전세계에서 주의 만찬에 참석한 그 많은 수는 여호와의 아홉째 약속의 말씀에 있는 무슨 예언으로 설명됩니까?

      33 이 주의 만찬을 기념한 후자의 경우에 표상물을 취한 10,350명외에 3,600,000여명의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읍니까? 1972년에 이 세계적 현상은 여호와의 아홉째 약속의 말씀의 성취로 설명됩니다. 그 약속은 스가랴 8:20-22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후에 여러 백성과 많은 성읍의 거민이 올 것이라. 이 성읍 거민이 저 성읍에 가서 이르기를 우리가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 할 것이면 나도 가겠노라 하겠으며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리라.”

      하나님의 성읍의 국제적 모임

      34. (ㄱ) “백성”과 “나라들”이 지금 어떠한 방법으로 여호와의 숭배의 중심지로 옵니까? (ㄴ) 모이는 이들 가운데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과 “많은 성읍”에서 나오는 개인들이 포함되어 있읍니까?

      34 여호와의 숭배의 중심지로 “백성” 전체와 “열국” 전체가 그 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 분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오게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한 백성과 나라들 가운데서 개인들이 올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유대’교로 개종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의 1973년 연감」을 조사하여 보면 여호와의 이들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208개 나라와 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들 나라와 섬들 가운데는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포함됩니다. “많은 성읍의 거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1973년 연감」에 나타난 바와 같이 1972년 8월 31일 현재 전세계적으로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회중이 28,407개가 있었읍니다. ‘뉴욕’ 시에만해도 여러 언어로 212개 이상의 회중이 있었읍니다. 여호와를 숭배하는 이들 그리스도인들의 성서와 성서 서적은 165개 언어로 인쇄되고 있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으로 여호와를 숭배하고 있읍니다.

      35. 왜 그들은 현대의 지적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으며, 따라서 그들은 어디에서 여호와를 숭배합니까?

      35 그들이 가는 곳은 결코 현대의 지적 ‘예루살렘’이 아닙니다. 그 현대 ‘예루살렘’에는 과거에 성전이 있던 자리에 회교의 사원인 ‘바위의 도옴’이 있읍니다. 그들은 히브리 12:22에서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이라고 부른 곳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그들은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그 ‘시온’ 산에 설립되고 그 곳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즉위하셨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마태 1:1)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읍에서 통치할 하나님께서 주신 ‘다윗’ 왕가의 권리가 이방 나라들에 의하여 더는 짓밟히지 않습니다. (누가 21:20-24) 그들은 이 메시야 왕국에 충성을 바칩니다. 이 왕국은 멀지 않아 지상에 있는 모든 이방 나라들을 멸하고 영원히 다스리며 만군의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입증할 것입니다. 그의 영적 성전의 지적 뜰에서 그들은 그 분을 숭배하고 그의 은총을 즐길 것입니다.—시 84:2, 10; 116:18, 19.

      36. 여호와의 마지막 약속의 말씀에 의하면 몇 사람이 한 ‘유대’인의 옷자락을 잡게 되어 있으며, 그들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입니까?

      36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의 아홉째 약속의 말씀의 현대 성취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 웅대한 일련의 약속의 마지막 말씀 즉 열째 말씀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스가랴’의 예언의 이 팔장 마지막 귀절(23)에서 이러한 말을 읽을 수 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명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리라 하시니라.”—스가랴 8:23.

      37. 여기서 “‘유대’인”이란 말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하여 육적 ‘유대’인 한 사람이 말한 어떠한 지침이 되는 법칙을 고려할 필요가 있읍니까?

      37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에 대한 이 예언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지침이 되는 법칙 즉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인 사도 ‘바울’이 밝힌 법칙을 고려할 필요가 있읍니다. ‘바울’은 이전에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읍니다. (빌립보 3:5, 6) 육적으로는 ‘유대’인 즉 ‘이스라엘’인인 이 사람은 제 일세기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보낸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로마 2:28, 29.

      38. (ㄱ) 그러므로 혈통이 이 문제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하며, 육적 ‘유대’인에게도 무엇이 중요합니까? (ㄴ) 그리스도인 회중은 언제까지 육적 ‘유대’인들과 개종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었으며, ‘고넬료’는 무슨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38 이 때문에 스가랴 8:23의 성취는 혈육에 따른 인종적 우월성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는 것은 그 사람이 ‘유대’인으로 출생하였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닙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가 누구를 숭배하는가? 그는 하나님의 숭배자라고 공언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그와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 9:24-27에 예언된, 햇수로 칠십번째 주의 후반기 동안 즉 기원 33년 오순절부터 기원 36년 가을까지 그리스도인 회중이 육적 ‘유대’인들과 할례받은 ‘유대’인 개종자들로만 구성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그리스도인 회중을 형성하는 그러한 육적 ‘유대’인들을 구별하였읍니까? 그 기간에는 두가지 종류의 육적 ‘유대’인들이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두 종류의 사람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기원 36년초 가을, 햇수로 제 칠십 주의 끝에 어떠한 부류의 ‘유대’인들과 함께 이방인인 이태리 백부장 ‘고넬료’가 숭배를 드렸읍니까? 사도 행전 10:1-48은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39. ‘고넬료’는 어느 집단의 육적 ‘유대’인들과 함께 가기로 결정하였읍니까?

      39 이태리어를 말하는 이 ‘고넬료’는 육적 ‘유대’인들과 함께 숭배하는 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을 모독한 자 및 거짓 그리스도로 규정하고 횡포한 죽음에 처한 육적 ‘유대’인들에게 ‘자비의 선물’을 많이 하는 일을 중지하였읍니다. ‘고넬료’와 그의 동료 전향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된 육적 ‘유대’인들과 행동을 같이 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을 부어주셨고 그렇게 하여 그 분(하나님)이 그리스도인 회중과 함께 하심을 분명히 하셨읍니다. (사도 2:1-47; 11:1-18) 그 그리스도인 회중은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 하에 있는 영적 ‘유대’인들 즉 영적 ‘이스라엘’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읍니다. 이태리인 ‘고넬료’는 믿는 육적 ‘유대’인들과 다름없는 영적 ‘유대’인 즉 ‘이스라엘’인이었읍니다. ‘고넬료’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영적 ‘유대’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심을 알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영적 ‘유대’인들과 함께 가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40. 특히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후에 스가랴 8:23을 그리스도인이 아닌 육적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킬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결정할 수 있읍니까?

      40 ‘로마’ 군단에 의하여 ‘예루살렘’과 물질적 성전이 멸망된 일을, 그 몸서리나는 재난을 당한 ‘유대’인들이 단순히 할례 받은 육적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풀이할 수 있겠읍니까? 정직하고 논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그러한 해석을 옳다고 하겠읍니까? ‘모리아’ 산에 있는 ‘예루살렘’에는 이방인들이 혹시 가서 ‘유대’인들과 함께 숭배할 ‘유대’인의 성전이 없읍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이 1967년에 6일 전쟁에서 옛 성벽 도시 ‘예루살렘’을 점유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대’ 종교계 및 정치계 지도자들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본받아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그 위치에 성전을 재건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스가랴 8:23을 오늘날이나, 내다볼 수 있는 미래의 비그리스도인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에게 적용시킬 근거가 어디 있읍니까? 아무 근거도 없읍니다!

      41. 스가랴 8:23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에게 성취되고 있읍니까?

      41 그러면 이 예언은 오늘날 종교적 그리스도교국, 많은 종파로 나누어져 있는 종교 조직으로 전세계를 개종하려는 생각을 오랫 동안 간직해 온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성취되고 있읍니까? 모든 백성과 나라들의 비그리스도인 열명이 그리스도교국의 한 교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하고 말합니까? 그리고 이 예언에서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분명히 이방 세계는 이방인 열명에 교인 한명의 비율로 그리스도교국의 종파로 개종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국은 오늘날 그리스도교국내의 교인들의 수가 924,274,000명이라고 추산하고 있으며 그 열 배는 현재의 세계 인구의 두배가 넘을 것입니다.

      42. 오늘날 영적 ‘유대’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스가랴 8:23이 어느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되는지를 알기 위하여 어떠한 질문에 대한 사실들을 알아 보아야 합니까?

      42 그리스도의 사도 시대에 두 종류의 육적 ‘유대’인들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에도 영적 ‘유대’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두 부류가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에는 중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언약하에 있는 영적 ‘유대’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9억 이상 있읍니다. 그러나 영적 ‘유대’인이라고 공언하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이러한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어느 부류의 사람들이 참 영적 성전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참으로 숭배하며 섬기고 있는가?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어느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서 어떤 이름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그들과 함께 가겠다고 말하는가? 이 경우에 우리는 사실에만 근거를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실들을 토대로 대답을 알아봅시다.

      43. 스가랴 8:23이 적용되는 영적 ‘이스라엘’인들을 어떠한 사실들이 구별해주며, 현재 그들 중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있읍니까?

      43 전세계의 증거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큰 ‘바벨론’ 즉 그 거짓 ‘바벨론’적 종교 세계 제국으로부터 해방시킨 사람들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이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 시대의 여호와의 두번째 성전 건축 사업과 같은 영적 사업에 종사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의 사람들을 통하여 전세계적으로 만군의 여호와의 숭배를 촉진하는 데 마음을 다하고 있읍니다. 매년 그들은 유월절 날에 모여서 여호와의 아들이신 메시야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며 그 때에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누룩이 들지 않은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그들이 나타내는 웅변적인 증거로 볼 때 오늘날 기름부음을 받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수는 오늘날 약 만명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가랴’ 시대의 남은 자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입니다.

      44. 이들 참 영적 ‘이스라엘’인들에게 가담한 사람들은 누구이며, 보고에 의하면 이들의 수는 얼마나 됩니까?

      44 그러면 영적 성전에서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숭배에 이들 영적 ‘유대’인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계시록 7:9-17에 예언되어 있는 바와 같이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이들도 여호와의 메시야의 제자가 되고 있읍니다. (마태 28:19, 20) 1972년에만도 이들 여호와의 메시야의 제자로 헌신하고 침례 받은 사람들의 수가 163,123명이었읍니다. 그 해에 평균 1,596,442명이 현 사물의 제도의 임박한 종말까지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모든 곳에서 전파하라는 메시야의 명령에 순종하여 함께 일하였다고 보고하였읍니다. (마태 24:14, 신세) 스가랴 8:23은 이미 참으로 놀랍게 성취되어 왔읍니다!

  • 포로들을 해방시킬 왕의 나타나심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16장

      포로들을 해방시킬 왕의 나타나심

      1. 오늘날 자주 보도되는 지역과 도시들에 대하여 말한 ‘스가랴’의 예언은 현재 어떻게 성취되며, 오늘날의 성취를 알아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까?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및 ‘가사’ 땅이 ‘뉴스’의 각광을 받고 있읍니다. 이러한 지역에 있는 도시들의 이름이 ‘스가랴’의 예언서 9장에 나와 있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6세기에 예언자 ‘스가랴’가 말한 내용은 ‘이스라엘’ 공화국과 관련된 오늘날의 이러한 지역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스가랴’의 예언은 먼저 문자적으로 통용 기원 1세기에 성취되었지만 그 예언은 오늘날 현 이십 세기에 영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최종적 성취를 보고 있읍니다. 십구세기 전의 처음 성취를 알아 봄으로써 우리는 오늘날의 영적 성취를 분별할 수 있읍니다.

      2. 어느 시대의 지도에 우리는 관심을 돌리고 있으며, ‘하드락’ 땅과 관련하여 언급된 장소들은 ‘유대’ 지방입니까?

      2 ‘바사’ 왕조 치세 중의 ‘팔레스티나’ 지도를 보면 ‘시리아’의 수도 ‘다메섹’과 ‘다메섹’에서 약 193‘킬로미터’ 북쪽에 ‘하맛’이 있읍니다. 또한 지중해 연안으로 고대 ‘베니기아’(현재 ‘레바논’)의 도시들인 ‘두로’와 ‘시돈’이 있읍니다. 그리고 ‘블레셋’ 도시들인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아스돗’ 및 ‘갓’이 있읍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있읍니다. “‘하드락’ 땅”은 어떠한 지도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그 위치와 정확한 경계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언에서는 이 땅을 ‘다메섹’과 연관시키고 있읍니다. ‘베일리’와 ‘터싱햄’에 의한 「성서 세계 지도」(초판 1971년) 199면에서는 “‘하드락’ 땅”을 단순히 “‘다메섹’ 근처 ‘시리아’의 한 지방”이라고 하였읍니다. 「웨스트민스터 성서 역사 지도」 개정판(1956년) 124면은 ‘하드락’ 땅이 “‘하맛’ 북쪽 ‘시리아’의 한 지방”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다메섹’ 북쪽 지방이라는 말이 됩니다. “‘하드락’ 땅”이라는 표현이 이상의 ‘시리아’, ‘베니기아’ 및 ‘블레셋’ 도시 전체를 포함하는 집합적 구역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인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도시들은 모두 비‘이스라엘’, 비‘유대’ 도시들입니다.

      3. 스가랴 8장의 마지막 귀절들은 9장의 처음 귀절들과 어떻게 대조를 이룹니까?

      3 ‘스가랴’ 예언 8장 마지막 귀절들(20-23절)은 열국의 모든 언어와 많은 도시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여호와를 숭배할 것이며 ‘유대’인 한 사람의 옷 자락을 잡고 그와 함께 가서 그의 하나님을 숭배할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그 다음 장(9) 처음 여덟 귀절은 그렇게 하지 않는 데 대한 몇가지 결과를 명쾌하게 알려줍니다. 그러면 그 부분, 스가랴 9:1-8을 읽어 봅시다.

      4. 스가랴 9:1-8에 의하면 언급된 지방의 활동에 간섭하는 분은 누구이며,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합니까?

      4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그 접경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 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 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다.”

      5. 왜 여호와의 노가 ‘다메섹’, “‘하드락’ 땅” 및 ‘하맛’에 머물렀읍니까?

      5 기원전 6세기의 고대 ‘시리아’는 거짓 신들을 숭배하였고 회복된 ‘유다’ 땅에 대하여 적의를 품었읍니다. ‘시리아’는 ‘예루살렘’에 재건된 성전에서 여호와를 숭배하기를 거절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시리아’의 일부로 “‘하드락’ 땅”에 대하여 유리한 말씀이 아니라 경고를 발하시는 데는 이유가 충분히 있었읍니다. 그의 불리한 말씀은 ‘시리아’ 전체의 수도 즉 ‘다메섹’에 머물 것이었읍니다. ‘하맛’ 지방은 ‘다메섹’과 접하였으므로 ‘하맛’에도 여호와의 불리한 경고가 머물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시리아’ 전역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지 못하고 있었읍니다.

      6. 왜 여호와께서는 ‘베니기아’ 도시들에 대하여 불리한 말씀을 하셨읍니까?

      6 ‘베니기아’ 지방도 ‘시리아’와 접경해 있었으며 그 지방도 절박한 재난의 때에 ‘유다’ 땅을 적대하였읍니다. 시편 83:5-8은 여호와의 백성들에 대한 국제적인 음모에 가담한 ‘베니기아’의 도시인 ‘그발’과 ‘두로’를 포함시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희가 ···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거민이요 ‘앗수르’도 저희와 연합하여 ‘롯’ 자손[‘모압’과 ‘암몬’]의 도움이 되었나이다.” ‘두로’는 사실 ‘시돈’의 식민 도시였읍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9:2-4은 그 도시를 언급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7. 스가랴 9:2-4은 ‘두로’를 무엇과 연결시키며, ‘두로’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었읍니까?

      7 “‘두로’와 ‘시돈’은 넓은 지혜가 있으니 그들에게도 임하리라.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보장을 건축하며 은을 티끌같이, 정금을 거리의 진흙같이 쌓았은즉 주께서 그를 쫓아내시며 그의 바다 권세를 치시리니 그가 불에 삼키울찌라.”

      8. ‘스가랴’가 언급한 ‘두로’는 어느 ‘두로’이며, 왜 그렇습니까?

      8 그 말씀으로 볼 때 “여호와의 말씀”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 ‘두로’와 ‘시돈’으로 대표된 ‘베니기아’ 전역에 대하여도 불리한 선언이었음이 확실합니다. 여기서 ‘두로’라는 이름의 도시는 섬 도시입니다. 왜냐 하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팔레스티나’ 원정 중에 육지 도시를 파괴하였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29:17-20) ‘두로’의 생존자들은 앞 바다의 도시로 도피하여 그곳에 강대한 도시를 건설하였읍니다. 에스겔 28:1-19에 의하면 ‘두로’는 그의 이전 친구 ‘이스라엘’에 대해 마귀적인 배반자가 되었으며 ‘시돈’은 ‘두로’와 같은 길을 택하였읍니다. (에스겔 28:20-26) 칠십년 황폐 후 기원전 537년에 ‘유다’ 땅이 회복된 후 ‘두로’와 ‘시돈’은 ‘예루살렘’과 두번째 성전에 대한 마음의 태도를 변경시키지 않았읍니다. 참으로 현명하지 못하였읍니다!

      9. ‘두로’는 어떻게 재산을 축적하고 힘을 축적하였으며, 그러나 ‘두로’에 대한 여호와의 예언은 어떻게 이루어졌읍니까?

      9 ‘두로’와 ‘시돈’은 이 세상의 지혜를 계속 따르고 세상 지혜를 증가시켜 재산을 축적하고 약탈을 당할 수 있는 금과 은을 이 땅에 쌓는 데 힘썼읍니다. ‘두로’가 해상의 상업국으로 안전을 위하여 구축한 강력한 성벽은 기원전 332년에 희랍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전략을 저항하지 못하였읍니다. 지상의 군대와 많은 배에 탄 해상의 군대가 그때 무력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지적 집행 도구를 통하여 ‘두로’의 군대를 바다 속에 던져 넣으셨읍니다. ‘두로’가 바다에 요새를 만들었지만 허사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두로’의 막대한 재물을 정복자에게 넘겨 줌으로 ‘두로’를 쫓아 내셨읍니다. 그때 ‘두로’는 불에 삼키워 완전히 멸망되었읍니다.

      10.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떠한 관심을 나타냈으며, 보고에 의하면 ‘두로’에 무엇이 설립되었었읍니까?

      10 여러 해 후에 ‘두로’가 재건되긴 했지만, ‘두로’도 ‘시돈’도 그 도시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되기 전에 가졌던 강력한 상업적 위치를 회복하지 못하였읍니다. 통용 기원 1세기에 ‘두로’와 ‘시돈’에서 많은 사람이 와서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의 행적을 보았으며 치료를 받았읍니다. (마가 3:7, 8; 누가 6:17; 마태 15:21-29) 마태복음 11:20-22과 누가복음 10:13, 14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의 왕국의 소식을 듣고 그에 따라 행동할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세째 선교 여행시에 ‘두로’에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나 있었읍니다. (사도 21:2-7) 이 ‘두로’인들은 군대에 의지하거나 지상에 보물을 쌓는 일을 하지 않고 하늘에 보물을 쌓았읍니다.

      이교 원수의 교만이 끊어짐

      11, 12. (ㄱ) 고대에 어떠한 도시 연맹이 ‘블레셋’을 다스렸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누구의 교만을 끊으실 것이며, 어떻게 끊으실 것입니까?

      11 ‘블레셋’에 대한 경고로 선언된 “여호와의 말씀”은 어떠하였읍니까? 고대에는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갓’, ‘가사’ 등 오개 도시 연맹이 ‘블레셋’ 땅을 지배하였읍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블레셋’에 대하여 선언된 이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서 ‘갓’은 언급되지 않았읍니다. 스가랴 9:5-7은 계속 이렇게 예언하였읍니다.

      12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칠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거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 입에서 그 피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13. (ㄱ) 기원전 332년의 ‘두로’의 멸망은 ‘아스글론’과 ‘가사’와 ‘에그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까? (ㄴ) ‘아스돗’은 어떻게 달라질 것이었읍니까?

      13 그러므로 ‘아스글론’ 시는 ‘두로’의 멸망을 보고 무서워할 것이며 마침내 거민이 없게 될 것입니다. 분명히 ‘가사’는 같은 이유로 심한 아픔을 느꼈으며, 그 쓰라린 사건과 그 결과로 ‘가사’의 집권자가 바뀌었고 원래의 왕은 없어졌읍니다. 분명히 ‘에그론’ 시는 공격해오는 적으로부터 ‘두로’가 보호하여 주고 구출하여 줄 것으로 기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두로’가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의 칠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몰락하였을 때 ‘에그론’도 희망이 좌절되고 수치가 되었으므로 심히 아파하였읍니다. 그러나 네번째로 언급된 도시인 ‘아스돗’은 어떠하였읍니까? 분명히 그 도시의 주민이 달라질 것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하리라”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합법적인 원주민은 그 곳에 머물지 못할 것입니다. 나그네들, 외래인들이 그 도시를 점령하고 집권할 뿐 아니라 주민이 될 것입니다.

      14.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며,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어떻게 끊으실 것입니까?

      14 그러므로 분명히 “여호와의 말씀”은 ‘블레셋’에게 불리한 경고였읍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매우 교만하였고 여호와의 백성들이 고토로 돌아온 후에도 특히 그들에 대하여 거만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교만은 파멸을 초래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상술한 일들을 ‘블레셋’의 4대 도시에 행함으로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과 비교하여 자랑할 수 있는 ‘블레셋’ 사람이 더는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의 거짓 종교 숭배도 끊으실 것입니다.

      15. (ㄱ) ‘블레셋’인들의 ‘피 묻은 것’과 “가증한 것”은 어떻게 될 것입니까? (ㄴ) ‘블레셋’의 남은 자들은 어떠한 행로를 취할 것입니까?

      15 그들은 거짓 신들에게 숭배를 드릴 때에 여호와와 그의 백성들이 보기에 가증한 희생을 먹었읍니다. 또한 그들이 희생의 식사시에 먹은 동물 희생은 피를 빼지 않은 것이었읍니다. 그러한 가증한 우상 숭배는 중지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이렇게 계속되었읍니다. “그[블레셋] 입에서 그 피[피묻은 것들, 신세]를, 그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하리니 그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 그러한 피묻은 가증한 것을 그 ‘블레셋’의 입과 잇사이에서 어떻게 제할 것인지는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가증한 희생과 의식을 겸한 우상 숭배를 버리지 않는 ‘블레셋’인 전체 가운데서 자진적으로 순종적으로 그렇게 할 남은 자들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남은 자들은 “우리 하나님께로,” 만군의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생명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변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스가랴 9:7은 이 남은 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16. (ㄱ) 어떻게 ‘블레셋’의 남은 자들은 “‘유다’의 한 두목같이” 될 것입니까? (ㄴ) “‘여부스’ 사람같이” 된다는 말은 ‘에그론’ 사람들에게 어떠한 사회 계층을 암시하였읍니까?

      16 물론 ‘함’족인 ‘블레셋’ 사람들은, ‘셈’족이며 ‘히브리’인인 ‘유다’ 지파의 두목이 될 수 없었읍니다. (창세 10:6, 13, 14, 21-25) 그러나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로 개종한 순종하는 남은 자들은 ‘유다’의 한 두목 같이 될 수 있었읍니다. 즉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선민과 관련하여 탁월한 지위를 가질 것이며 미미하고 하찮은 존재로 간주되지 않을 것입니다. 일족의 두목과 같이 그들에게 책임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책임은 ‘유대’인들의 책임보다는 낮을 것입니다. 이것은 ‘에그론’이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는 말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블레셋’ 사람들같이 ‘여부스’ 사람들은 ‘함’의 아들 ‘미스라임’을 통한 후손이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을 통한 ‘함’족이며 따라서 ‘가나안’ 사람들이었읍니다. (창세 10:6, 15, 16) ‘여부스’ 사람들은 ‘예루살렘’의 원주민들이었으며, 그 때문에 ‘예루살렘’은 한 때 ‘여부스’라고 불리웠읍니다.

      17. ‘에그론’ 사람들의 은총받은 위치는 왜 “‘여부스’ 사람같이” 되리라는 말로 암시되었읍니까?

      17 기원전 1070년에 ‘다윗’ 왕은 ‘여부스’ 사람들로부터 그 도시를 정복하고 ‘예루살렘’이라고 불렀읍니다. (사사 1:21; 사무엘 하 5:4-9) 후에, 정복된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에 ‘예루살렘’의 웅장한 성전을 포함한 여러가지 공공 건축 사업에 종사하는 노예로 이용되었읍니다. (열왕 상 9:15-23; 역대 하 8:1-10)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가담하는 것과 고대 ‘이스라엘’에서 하나님의 모형적 메시야 왕국을 위한 훌륭한 시설을 하는 데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큰 특권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여부스’ 사람같이” 된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숭배로 귀의한 ‘에그론’과 그 거민들이 보조적이긴 하지만 은총받은 위치에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였읍니다.

      18. ‘블레셋’ 사람들은 기원 1세기에 그리스도교에 대한 어떠한 경험을 하였읍니까?

      18 통용기원 1세기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이 ‘블레셋’인들에게 전파되었읍니다. 우리는 복음 전도자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파한 일을 잘 기억합니다. 그때 그들은 병거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블레셋’ 지방의] ‘가사’로 내려가는 길”에 있었읍니다. ‘빌립’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 ‘에디오피아’인에게 침례를 주고 그와 헤어진 다음 ‘가사’에서 약 54‘킬로미터’ 북쪽에 있는 ‘아스돗’(희랍어로 ‘아소도’, 현대의 ‘이스둣’)에 나타났읍니다. 분명히 많은 ‘블레셋’인들이 ‘빌립’의 전도에 응하였을 것입니다. (사도 8:26-40) 기원 36년에 이태리 백부장 ‘고넬료’가 개종한 후에 ‘블레셋’ 사람들도 개종할 수 있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성령을 받을 수 있었읍니다.

      19. ‘잡족이 ‘아스돗’에 거하리라’는 예언은 현대판 ‘블레셋’인들에게 어떻게 성취되고 있읍니까?

      19 현 이십 세기에 많은 종교가들은 고대 ‘블레셋’인들과 같이 거짓 신들을 숭배하여 왔고 여호와의 백성에 대항하여 싸웠읍니다. ‘블레셋’의 오개 도시 연맹의 으뜸 도시였던 고대 ‘아스돗’의 주민이 잡족으로 바뀌었듯이 오늘날의 이들 실체적 ‘블레셋’ 사람들도 개성이 변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헌신하고 물에서 침례를 받음으로 더는 이 ‘블레셋’ 세상의 일부가 아니며 이 세상에 대하여 ‘나그네’가 되었고 어울리지 않게 되었으며 부적절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고대 ‘두로’와 같이 이기적인 상업주의를 추구하지 않으며 ‘에그론’이 ‘두로’에게 희망을 두었던 것 같이 그것에 의존하거나 희망을 두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고대 ‘시리아’와 달리 군대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피를 갈구하는 현 세상의 신들을 숭배하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우리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를 옹호하는 편에 서 있읍니다.

      20. 오늘날의 이들 변화된 ‘블레셋’ 사람들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과 함께 어떠한 몫을 받고 있읍니까?

      20 이러한 행로를 고려할 때 이들 변화된 현대 ‘블레셋’인들은 영적 ‘이스라엘’인 혹은 영적 ‘유대’인들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함께 영적 성전에서 여호와의 숭배를 촉진하는 데 가담할 몫을 받았읍니다. 그들은 “‘유다’의 한 두목같이” 그 성전 활동과 관련한 임무와 책임을 받았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이들 헌신하고 침례받은 종들은 이미 “큰 무리”로 성장하였으며 계속 증가하고 있읍니다. 영으로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한 이 셀 수 없는 “큰 무리”는 계시록 7:9-17에 예언되었읍니다.

      21, 22. (ㄱ)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전초가 되는 것은 그 백성들에게 어떠한 유익이 있으며, 왜 그들 사이로 지나다닐 엄한 주인이 없을 것입니까? (ㄴ) 어떻게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이 예언을 성취시켜 오셨읍니까?

      21 고대 ‘블레셋’과 ‘베니기아’와 ‘시리아’는 전에 ‘유대’인 포로였던 회복된 남은 자들의 횡포한 원수들이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 원수들을 다루시는 방법과 그의 선민들을 다루시는 방법을 대조하여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내 집을 둘러[전초로]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엄한 주인이]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스가랴 9:8, 신세 참조.

      22 만군의 여호와께서 전초로 진을 쳐서 공격하는 적군이 그의 ‘집’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침공하고는 퇴각하지 못하도록 하실 수 있었읍니다. “전초” 역할을 하는 그분은 노예를 혹사하는 “포학한 사람”이 더는 그들 가운데로 지나며 그들을 노예화하지 못하도록 방지하실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적들이 영적 성전에서의 여호와의 숭배를 반대하여 사상 최대 규모로 모여든 현 “마지막 때”에,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인의 “집”을 보호하여 오셨읍니다. 여호와의 강력한 영으로 강화된 영적 ‘이스라엘’의 여호와의 “집”은 세상적 “포학한 자”가 영적 토지에 왕래하면서 그들의 종교적 엄한 주인이 되려는 모든 노력을 성공적으로 저항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본받아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통치자로 순종하였읍니다.—사도 5:29.

      23. (ㄱ)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라는 여호와의 약속은 온 인류 가운데서 그의 백성들의 입장과 관련하여 무엇을 의미합니까? (ㄴ) 오늘날 영적 남은 자들과 동료 숭배자들의 “큰 무리”에게도 어떻게 이것이 적용됩니까?

      23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성전에 있는 그의 숭배자들에 대한 적들의 위협과 반대 행위를 잘 알고 계십니다.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고 그분은 말씀하셨읍니다. 이것은 조금 전 “경고” 즉 “여호와의 말씀의 경고가 ‘하드락’ 땅에 임하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봄이니라 [여호와께서는 세상 사람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지켜보시는 것이다, 신세]”라는 그의 말씀과 일치합니다. (스가랴 9:1) 그분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도 지켜보십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선민 외에도 온 인류를 지켜보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학대한 ‘시리아’, ‘베니기아’ 및 ‘블레셋’ 같은 오랜 적들에 대하여 경고하셨읍니다. 이 “경고”는 예언적이며 오늘날 여호와의 영적 ‘이스라엘’과 동료 숭배자들의 “큰 무리”에게 영적으로 적용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의 이들 숭배자들 모두를 다루시는 방법과 현대판 ‘시리아’, ‘베니기아’, ‘블레셋’을 다루시는 방법의 차이는 이미 분별될 수 있읍니다. 온전한 차이는 다가오는 “큰 환난”중에 즉 그분께서 모든 불경건한 원수들 가운데서 그의 충성스런 숭배자들을 완전히 해방시키실 때에 뚜렷이 나타날 것입니다.—마태 24:21, 22; 계시 7:14, 15; 19:11-21.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느니라]”

      24. (ㄱ) ‘가사’가 당한 일에 비추어 볼 때 그 도시의 적의의 대상인 ‘예루살렘’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예루살렘’의 함성은 왜 ‘가사’의 함성과 다를 것입니까?

      24 ‘블레셋’ 도시 ‘가사’에는 왕이 끓어질 것이지만 ‘블레셋’의 적의의 대상인 ‘예루살렘’—시적 칭호로 ‘시온’—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그 도시는 ‘가사’같이 탐욕적 상업 주의와 비신권적 군대의 요새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심히 아파할 것”입니까? 극도의 고통과 소름끼치는 두려움으로 외칠 것입니까?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가사’의 외침과 다를 것입니다! 왜냐 하면 여호와께서는 ‘시리아’, ‘베니기아’, ‘블레셋’에 대한 경고를 발한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 찌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찌어다.a [함성을 올리라, 신세]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스가랴 9:9, 10.

      25. “‘예루살렘’의 딸”은 왜 함성을 올릴 충분한 이유와 왕의 도래에 대하여 매우 기뻐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까?

      25 그 영광스러운 약속이 성취될 때에 왜 ‘예루살렘’은 크게 기뻐하고 ‘함성을 올릴’ 충분한 이유를 세상에서 가지지 않을 것입니까? 이 하나님의 약속이 예언자 ‘스가랴’를 통하여 주어졌을 때에 ‘예루살렘’에는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도시에는 ‘바사’의 황제 ‘다리오’ 1세가 임명한 지방 총독 즉 ‘다윗’ 왕가의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이 있었을 뿐입니다. ‘다윗’ 왕국은 약 구십여년전 즉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인들에 의하여 전복되었읍니다. 그때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되고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으로 잡혀 갔읍니다. ‘예루살렘’의 완전한 황폐의 칠십년간은 지나갔지만 비‘유대’ 나라들이 ‘다윗’ 왕권을 짓밟는 2,520년간의 이방인의 때는 기원 1914년까지 계속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시대에 “‘예루살렘’의 딸”은 ‘다윗’ 계통에서 참 메시야 왕 곧 총독 ‘스룹바벨’에 의하여 전영된 메시야가 올 것을 열망하고 있었읍니다.—학개 2:23.

      26. 우리는 ‘스가랴’의 예언의 일차적인 성취에 대하여 왜 막연하게 추측할 필요가 없읍니까?

      26 거짓 그리스도가 아니라 참 메시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스가랴’의 예언의 일차적 성취에 대하여 막연하게 추측할 필요가 없읍니다. 적어도 세사람의 목격 증인 즉 세금 징수원인 ‘마태 레위’와 ‘예루살렘’ 거민인 ‘요한 마가’와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 의한 기록이 있읍니다. 또한 제1세기의 역사가이며 소‘아시아’의 의사였던 ‘누가’도 사실을 수집하고 기록하였읍니다. 그 예언 성취는 기원 33년 ‘니산’월 9일 일요일에 있었읍니다. ‘마태 레위’는 이렇게 알려줍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니라.]”—마태 21:1-16.

      27. 만일 제자들이 소리치지 않았다면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을 것입니까?

      27 또한 ‘유대’인 의사 ‘누가’는 이러한 세부점을 부가하였읍니다.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누가 19:39, 40; 또한 마가 11:1-18; 요한 12:12-19 참조.

      28.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개선하실 때에 어떻게 그는 평화스러우셨고, “겸손”하셨고, “공의로우”셨고, “구원”을 받으셨읍니까?

      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헤롯’ 대왕 곧 기원전 37년에 ‘예루살렘’을 삼개월간 포위 공격한 후에 ‘예루살렘’을 급습하여 함락하고 ‘하스모네’(‘마카베’) 왕, ‘레위’ 지파의 ‘안티고누스’를 폐위시킨 ‘헤롯’ 대왕과는 달리 군마를 타시지 않고 평화스럽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 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스가랴 9:9에 예언된 바와 같이 참으로 “겸손”하셨읍니다. 그는 거짓 그리스도 혹은 거짓 메시야가 아니라 천적 아버지 여호와에 의하여 입증된 메시야이셨으며 “공의로우”셨읍니다. 그는 사실 육체에 있어서 완전하셨으며 죄없고 흠없는 ‘의로운’ 분이었으며 따라서 불의한 온 인류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하여 자신을 완전한 인간 희생으로 바치셨읍니다. (사도 7:52; 히브리 7:26; 요한1서 2:1) 그의 고대 조상 ‘다윗’ 왕이 적들에 대한 승리를 거둠으로 구원받은 것 같이 그는 참으로 “구원”을 받으셨읍니다. (사무엘 하 22:1-4; 8:6, 14)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개선하실 때에 큰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즉 “‘다윗’의 자손을 구원하소서!” 하고 외친 것은 헛되지 않았읍니다. 칠일 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늘의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시키심으로 예수를 사망에서 구원하셨읍니다.—히브리 5:7-10.

      29. (ㄱ) 영적 제자들과 관련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이방 사람들에게 화평을 전”하셨읍니까? (ㄴ) 그는 그리스도교국 안팎에서 어떻게 모든 전쟁무기를 제거하시며, 그 분이 오늘날의 “큰 무리”에게 화평을 전하는 결과는 무엇일 것입니까?

      29 그는 “평강의 왕”이라고 불리울 분입니다. (이사야 9:6, 7) 그의 ‘유대’ 제자들은 ‘에브라임’과 ‘유다’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출신이었으며 그는 그들을 평화로운 형제애로 연합시켰읍니다. 그의 제자들 가운데서 그는 심지어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과 이방인들 사이의 적의를 해소시키기까지 하셨읍니다. (에베소 2:11-20)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이미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은 그의 말을 듣기를 거부하고 오늘날까지 자체 내에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읍니다. 다가오는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메시야 왕을 사용하여 전차들과 활과 오늘날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모든 전쟁 무기를 일소하실 것입니다. (계시 16:14-16; 19:11-21) 그분은 인류 가운데서, 모든 나라에서 횡포한 전쟁을 도발하는 모든 자들을 제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라에서 나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 있는 평화를 옹호하는 숭배자들의 “큰 무리”에게 승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평화 가운데 평화를 전하실 것이며 그들은 보존될 것입니다.—계시 7:14.

      30. 이방인의 때가 기원 1914년에 끝난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의 실체에 어떻게 정식으로 나타났으며, 그러나 그가 받아들여졌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30 기원 1914년에 이방 나라들이 ‘다윗’ 왕계의 메시야 왕권에 대한 ‘예루살렘’의 권리를 짓밟은 이방인의 때인 2,520년 기간이 만료되었을 때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메시야 예수를 천적 보좌에 앉히시고 원수 가운데서 통치하고 정복하게 하셨읍니다. (시 110:1-6; 사도 2:34-36; 히브리 10:12, 13) 제1차 세계 대전(기원 1914-1918년) 중에 영적 ‘이스라엘’인의 헌신하고 침례받은 남은 자들은 이방인의 때가 끝나고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통치하는 왕으로 삼으셨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메시야 왕은 기원 1세기의 ‘예루살렘’으로 전영된 그리스도교국에 특히 임하시고 계셨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교국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다스릴 왕으로 그분을 받아들였읍니까?

      31. 1918년 12월까지 그리스도교국이 여호와의 메시야를 왕으로 받아들였는지의 여부를 무엇이 증명합니까?

      31 그리스도교국이 그의 영적 “형제들”인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에게 한 일을 볼 때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한 것은 메시야 예수 자신에게 한 것과 같습니다. (마태 25:40, 45; 마가 9:37) 이방인의 때가 끝난지 삼년 반 후에 전쟁의 진용을 갖춘 그리스도교국은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인 남은 자들에게 박해와 억압을 가하여 기원 1918년 봄에 최절정에 달하였읍니다. (계시 11:2-10) 그렇게 한 후 먼저 그리스도교국은 1918년 11월 11일에 제1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읍니다. 기원 제1세기의 ‘예루살렘’을 본받아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의 메시야 왕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였읍니다. 다음 달(1918년 12월)에 그리스도교국은 제창된 국제 연맹을 “지상에 있어서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으로 옹호한다고 공적 의견을 표명하였읍니다.

      32. 그리스도교국의 행로에 비추어 볼 때 여호와의 메시야 왕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무도 없었읍니까? 예언에 의하면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이었읍니까?

      32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 세우신 메시야 왕을 영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읍니까? 아닙니다. 있었읍니다! 기원 33년 ‘니산’월 9일 일요일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왕으로 입성하는 것을 영접하고 환영한 ‘유대’인 남은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도 그렇게 한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이방 정부들의 박해와 억압적 조처로 이들은 흩어졌고 해체되었읍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개선하신지 닷새째 날에 배반당하시고 체포되신 후에 예수의 제자들이 흩어진 것과 같았읍니다. 그러나 종전후 첫해인 기원 1919년에 그들이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소생하고 그의 봉사에 다시 활동적이 되었을 때에 그들은 그해에 제창되고 채택되고 출범한 국제 연맹을 배척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가짜 그리스도의 왕국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가랴 9:9의 정신을 받아들여 “크게 기뻐”하였으며 ‘함성을 올리’기 시작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왕 참 메시야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33. (ㄱ) 기원 1919년 이래 왕을 영접한 이들은 어떻게 그들의 기쁨을 알렸으며 그들의 함성이 들리게 하였읍니까? (ㄴ) 메시야-그리스도는 언제 어떻게 평화로운 나귀를 타시는 일을 그치고 어디로 군마를 타고 가실 것입니까?

      33 그들은 그들의 기쁨을 전세계에 알립니다. 그들은 그들의 외치는 소리가 전세계에 들리게 합니다. 어떻게? 기원 1919년에 인류 세계가 이전에 알지 못한 최대규모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선포하는 운동을 시작함으로 그렇게 하였읍니다. (마태 24:14; 계시 14:6) 그들은 메시야의 “정권”의 예언된 확장의 범위까지 즉 “바다에서 바다까지 ···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여 왔읍니다. (스가랴 9:10; 시 72:8) 이미 208개 나라와 섬들이 들었으며, 165개 언어로 그렇게 합니다. 멀지 않아 하나님의 정하신 불변의 때가 오면 그리스도교국과 이 세상 사물의 제도의 다른 모든 요소들은 인류 세계가 이전에 알지 못한, 급속도로 다가오는 “큰 환난”시에 온 땅에서 제거되고 말 것입니다. 계시록 19:11-21에서 메시야-그리스도께서는 평화로운 나귀를 타신 것이 아니라 흰빛 군마를 타고 기원 1914년이래 땅의 영역에서 무단 거주하여 온 모든 반대자들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터로 돌진하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읍니다.

      갇혔던 자들이 요새로 돌아옴

      34. (ㄱ) 예수 메시야께서는 갇혔던 자들에게 단순히 자유를 선포하셨을 뿐입니까? (ㄴ) 스가랴 9:11, 12에 있는 “여인”에 대한 여호와의 선언은 어떠한 질문을 일으킵니까?

      34 예수 메시야께서는 지상에서 완전한 인간이셨을 때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전파”하도록 보냄을 받아오셨읍니다. (이사야 61:1; 누가 4:16-21) 그는 자유를 선포하실 뿐 아니라 자유를 선포하신 후에 포로된 자들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스가랴’를 통한 선언은 다음과 같이 이것을 예언하였읍니다. “또 [여인이여] 너로 말할찐대 네 언약의 피를 인하여 네가 너희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으로[요새로, 신세] 돌아올 찌니라.” (스가랴 9:11, 12, 신세 참조) 여기서 여인으로 불리운 자는 누구이며, “갇혔던 자들”은 누구이며 “보장” 즉 “요새”는 무엇입니까?

      35. 여기서 언급된 “여인”은 어느 때에 흘려진 피로 유효하게 된 언약 하에 있읍니까?

      35 여인인 것처럼 불리운 자는 고귀한 생명의 피로 여호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조직입니다. 그것은 지적 ‘예루살렘’도 아니며 할례받은 육적 ‘이스라엘’의 지적 나라도 아닙니다. 고대 ‘이스라엘’ 나라가 ‘아라비아’ ‘시내’ 산에서 중보 ‘모세’에 의하여 희생된 동물 희생의 피를 통하여 여호와와 국가적 언약 하에 들어온 것은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24장) 그러한 동물의 피로 유효하게 된 그 국가적 언약에 의하여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은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 수용소에서 해방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지금 예언자 ‘스가랴’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은 먼 장래에,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는 일이 있은지 오랜 후에 있을 해방이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메시야 왕이 나타나신 후에 있을 물없는 구덩이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 일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기원 33년 ‘유대’인의 유월절이 되기 5일 전에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후에 있게 됩니다. 그 유월절 날에 희생의 피가 흘려졌읍니다.

      36. 여기서는 누구의 피를 의미하였으며, 피에 의한 언약은 누구와 맺어졌으며, 스가랴 9:11에서 “여인”이라고 불리운 자는 누구입니까?

      36 그 피는 누구의 피였읍니까? 메시야의 피였읍니다. 그의 피는 기원전 1513년에 ‘애굽’에서 있었던 첫 유월절 이후 ‘유대’인들이 매년 희생한 모든 유월절 양의 피로 전영되었읍니다. (고린도 전 5:7; 요한 1:29, 36; 베드로 전 1:18, 19) ‘이스라엘’에 의하여 희생된 모든 동물 희생의 피보다 더 고귀한 메시야의 피에 힘입어 새 언약은 유효하게 되었읍니다. 그 언약은 누구와 맺어졌읍니까? 메시야 왕을 배척하고 그를 죽인 지적 ‘예루살렘’ 혹은 육적 ‘이스라엘’과 맺지 않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내적 의미의 ‘유대’인 즉 영적 ‘이스라엘’과 맺어졌읍니다. (예레미야 31:31-34; 히브리 8:7에서 9:15) 여호와와 영적 ‘이스라엘’ 간의 이 새 언약의 중보는 메시야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스가랴 9:11에서 피에 의한 언약 하에 있는 여인으로 불리운 것은 영적 ‘이스라엘’입니다.

      37, 38. (ㄱ) 여인의 “갇혔던 자들”은 누구이며, 현 이십세기에 물 없는 구덩이는 무엇입니까? (ㄴ) 물없는 구덩이에는 어떤 더 큰 의미가 주어질 수 있으며, 피는 무슨 언약을 유효하게 합니까?

      37 그러면 이 상징적 여인의 “갇혔던 자들”은 어디에 있었읍니까? 현 이십세기,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이들 “갇혔던 자들”은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입니다. 금세기의 역사는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이들이 큰 ‘바벨론’의 종교적 속박으로 들어왔고 그의 정치적 군사적 애인에게 속박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 상태에서 그들은 “물없는 구덩이”에 있는 것과 같았읍니다. 그 곳에서는 영적으로 원기를 회복할 수 없었으며 나올 수 있는 희망도 없었읍니다! 그러나 대속 희생으로 흘린 그리스도의 피에 의하여 이러한 상태에서의 그들의 죄는 용서받았고 여호와의 은총과 올바른 지상의 영적 토지로 회복되어 더는 그들이 포로가 아닙니다. 그러나 물없는 구덩이는 또한 바람직하지 못한 더 큰 상태, 우리의 범죄한 첫 조상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전받은 죄의 일반적인 단죄와 죽음의 형벌 아래 있는 더 큰 불리한 상태를 상징할 수 있읍니다. 이 영적 남은 자들을 그 상태에서 나오게 하는 데는 참으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가 필요하였읍니다. 그의 피는 새 언약을 유효케 하는데 적용된 피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 26:28)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니라.”—누가 22:20; 히브리 13:20.

      39. 물없는 구덩이에 “갇혔던 자들”은 어떠한 근원으로부터의 희망만 품을 수 있었으며, 여호와께서는 기원 1919년에 그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부르셨읍니까?

      39 그러므로 영적 ‘이스라엘’과 맺은 새 언약의 피의 적용으로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갇혔던 남은 자들을 죄와 사망의 단죄의 “물없는 구덩이”에서 내보내셨읍니다. (히브리 12:24) 종교적 큰 ‘바벨론’은 이들 “갇혔던 자들”에게 아무런 희망도 제시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메시야의 인자한 약속을 신뢰할 때만 “희망”을 품을 수 있었읍니다. 큰 ‘바벨론’의 영적 포로 상태에 있는 이들에게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기원 1919년에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아, 너희는 보장[요새, 신세]으로 돌아올찌니라” 하고 부르셨읍니다.—스가랴 9:12.

      40. (ㄱ) 그 하나님의 부름은 “갇혔던 자들”이 어떻게 하라는 의미였읍니까? (ㄴ) 갇혔던 자들이 돌아가야 할 요새는 무엇입니까?

      40 그 하나님의 부르심은 “소망을 품은 갇혔던 자들”이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의미였읍니다! (계시 18:1-4) “보장” 즉 “요새”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사무엘 하 5:7-9의 말을 상기시켜 줍니다. “‘다윗’이 ‘시온’ 산성[요새, 신세]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 ‘다윗’이 그 산성[요새, 신세]에 거하여 ‘다윗’ 성이라 이름하[니라.]” 그러나 ‘다윗’ 왕의 수도는 확정되어 ‘시온’ 산보다 많은 지역을 포함하게 되었으며 그것이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그 자체가 강력한 요새일 뿐 아니라 그것이 대표한 것도 “요새”였읍니다. 그것은 무엇을 대표하였읍니까?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곳의 인간 왕은 거룩한 기름으로 기름부음을 받아 통치자가 되었지만 이 기름부음 받은 통치자는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기 때문입니다.—사무엘 하 5:1-3; 역대 상 29:23, 신세.

      41. (ㄱ) “갇혔던 자들”이 이처럼 돌아오는 일은 기원전 537년에 있었던 무슨 일로 전영되었읍니까? (ㄴ) “갇혔던 자들”은 기원 1919년에 왜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읍니까?

      41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 포로의 남은 자들은 ‘유다’ 땅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시를 재건하고 그리하여 지적 요새로 돌아갔읍니다. 그들의 행동은 영적 ‘이스라엘’의 현대 남은 자들의 행동의 모형이었읍니다. 여호와의 부름에 순종하여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기원 1919년에 큰 ‘바벨론’에서 나와 영적 “요새”로 돌아갔읍니다. 하나님의 요동할 수 없는 메시야 왕국보다 더 확고한 요새가 어디 있겠읍니까? ‘예루살렘’이라는 지적 요새가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한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요새는 하늘의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참 메시야의 왕국 곧 여호와의 왕국을 상징합니다. 고대 ‘예루살렘’은 그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국에 관한 그 하나님의 권리를 이방 나라들이 짓밟는 이방인의 때는 기원 1914년에 끝나고 즉시 메시아 왕국이 하늘에 탄생되었읍니다. (계시 12:1-9) 그러므로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기원 1919년에 해방되자마자 요새같은 그 왕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읍니다. 그들은 기원 1914년부터 그 왕국을 선포해 왔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왕국 전파 사업을 공전의 규모로 새로 시작함으로써 돌아왔읍니다.

      42. 영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오늘날 여호와께서 여인에게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42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이 ‘요새로 돌아오’는 데는 훌륭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여인에게 말하는 것처럼 영적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오늘날도 이르노라. 내가 배나 네게 갚을 것이라.” (스가랴 9:12)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읍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해방된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과거를 돌이켜 볼 때 그들은 자기들이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큰 ‘바벨론’과 그의 세상 애인들의 손에서 당한 고통은 그들이 현재 올바른 영적 토지에서 현재 즐기는 영적 축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래로 특히 그러합니다! 그들이 받은 축복은 그들의 해방자 만군의 여호와의 손에서 그들이 기대한 이상이었읍니다. 그것은 “배”나 되었읍니다. 그들은 참으로 넘치는 축복을 받고 있읍니다!

      일곱째 세계 강국에 대한 영적 전쟁

      43. 스가랴 9:13-15에서 여호와께서는 영적인 공격전에서 그의 백성들을 어떻게 사용하실 것입니까?

      43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 그의 숭배자들이 장래에 공격을 당할 것을 내다 보셨읍니다. 그는 어떠한 조처를 취하실 것입니까? 공격도 하고 방어도 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공격 활동에 대하여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유다’로 당긴 활을 삼고 ‘에브라임’으로 먹인 살을 삼았으니 ‘시온’아 내가 네 자식을 격동시켜 ‘헬라’ 자식을 치게 하며 너로 용사의 칼과 같게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위에 나타나서 그 살을 번개같이 쏘아 내실 것이며 주 여호와께서 나팔을 불리시며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행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스가랴 9:13-15.

      44. 하나님의 승리의 백성들의 기쁨은 무엇을 통하여 얻은 기쁨과 같을 것이었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다가오는 어떠한 세계 강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읍니까?

      44 그 상징적 전쟁에서 여호와의 숭배자들은 승리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술취한 것같이 즐거이 부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 104:15) 그러므로 ‘스가랴’ 시대에 회복된 ‘이스라엘’인들은 ‘헬라’(희랍) 자식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읍니다. 그 당시 ‘알렉산더’ 대왕은 희랍을 세계 지배의 위치에 이끌어 올려 다섯째 세계 강국이 되게 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바벨론’은 이제 세째 세계 강국의 자리에서 물러 났읍니다. ‘메대-바사’가 당시에 네째 세계 강국으로서 땅을 지배하고 있었읍니다. 기원전 332년에 희랍이 다섯째 세계 강국으로 군림하여 ‘유다’ 땅을 다스리기 전이었읍니다.

      45. (ㄱ)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희랍 세계 강국에서 갈라져 나온 무엇과 영적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ㄴ) ‘시온의 아들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이겼읍니까?

      45 그러나 다니엘 8:8-25에 의하면 희랍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 자라서 여섯째 세계 강국이 되고 다시 상징적 ‘작은 뿔’인 영미 이중 세계 강국인 일곱째 세계 강국이 될 것이었읍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바로 이 그리스도인 강국이라는 일곱째 세계 강국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특히 양차 세계 대전 중에 그러하였읍니다. 그것은 세상의 정치 국가의 투쟁에 대한 중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으로 그리고 국가주의적 인간들보다 하나님을 통치자로 순종하기 위한 노력으로 싸우는 영적 전쟁이었읍니다. (사도 5:29-32) 영적인 ‘시온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고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그들의 충실함으로 이겼읍니다. 이 말은 지금까지 할례받은 육적 ‘유대’인들의 ‘시온주의’ 운동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46. 여호와께서는 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어떻게 활과 화살처럼 사용하시며, 그의 화살은 어떻게 빠르게 나가며, 그는 상징적 “나팔”을 어떻게 불며 그는 무엇을 “용사의 칼”로 사용하십니까?

      46 일곱째 세계 강국이 1918-1919년에 국제 연맹을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으로 제창하고 추진할 때 기원 1914년에 하늘에 건설되었고 고대 ‘시온’으로 상징된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은 인간이 만든 모조품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왕국을 “용사의 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천국의 아들들”(‘시온’의 영적 아들들)은 전세계적으로 왕국 소식을 선포하며 그 왕국 소식이 또한 영적 칼과 같습니다. (마태 13:38, 43; 에베소 6:17) 고대 ‘유다’(활)와 같이 그리고 ‘에브라임’(화살)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 중 더 나이 많은 편을 사용하여 메시야 왕국의 원수들에 대한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선포하는 데 화살과 같은 새로운 남은 자들을 밀었읍니다. 여호와의 상징적 “화살”은 왕국 선포에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선포하는 데 “번개같이” 빠릅니다. (이사야 61:1, 2) 여호와께서는 그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에 대한 현대의 설명을 통하여 영적 “나팔”을 불어 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영적 전쟁으로 부르십니다.

      47. (ㄱ) 특히 언제부터 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들 위에 나타나셨으며, 어떠한 면으로 그분은 그들을 호위하셨읍니까? (ㄴ) 그들은 어떻게 상징적인 “물맷돌”을 밟아왔으며, 그들은 무엇을 보고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즐거움으로 가득합니까?

      47 여호와께서는 그들 위에 나타나 계십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기원 1931년 이래 특히 그 분의 이름으로 즉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 불리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메시야 왕국의 원수들에 대하여 “남방 회리바람을 타고” 가시듯이 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 ‘이스라엘’인의 충실한 남은 자들은 그분이 호위하고 그들의 믿음과 영적 상태와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영적 토지를 보존하실 것입니다. 원수들은 회복된 남은 자들에게 어리둥절하게 하는 많은 방해물을 던지지만 그러한 상징적 “물맷돌”이 날아와도 남은 자들은 기가 죽어 활동을 중지하는 일이 없읍니다. 그들은 사실 그러한 “물맷돌”을 밟아 아무 성과없이 무로 돌아가게 합니다. 성전 동이가 동물 희생의 피로 가득하고 희생의 구리 제단 옆에 그 피를 뿌려 그 모퉁이를 적신 것처럼 여호와께서 원수들의 생명의 피를 멸망으로 부으시면 호위를 받은 남은 자들도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원수들의 피는 마치 마셔도 무방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포도주와 같을 것입니다.

      48. 여호와께서는 그의 헌신한 백성들을 다루실 때 어떻게 돌보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들은 무슨 돌과 같이 빛납니까?

      48 여호와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인의 남은 자들을 습격하는 용사같은 분이 아니고 그들을 돌보는 평화로운 목자같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절정에 이르셨읍니다.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그의 형통함과 그의 아름다움이 어찌 그리 큰지 소년은 곡식으로 강건하며 처녀는 새 포도주로 그러하리로다.”—스가랴 9:16, 17.

      49, 50. (ㄱ) 여호와께서는 언제부터 그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읍니까? (ㄴ) 어떻게 여호와께서는 자기 양떼의 구원자로 행동하시며, 이들은 그 분께 얼마나 고귀합니까?

      49 ‘스가랴’ 시대에 그것은 마음을 강하게 하는 예언이었읍니다. 오늘날 일곱째 세계 강국과 다른 모든 군사화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의 끝에 가까운 오늘날 이 예언은 성취를 보아 왔으며 현재 웅대한 절정에 다가가고 있읍니다.

      50 「파수대」(영문) 1926년 1월 1일호 “누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것인가?”라는 주요 기사가 발행된 이래 여호와께서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전세계적으로 뚜렷이 선포되어 왔읍니다. 그 분께서 오래 전에 예언자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리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여호와를 영화롭게 하는 남은 자들을 그 분은 과연 영화롭게 하셨읍니다. (사무엘 상 2:30) 그 분은 인류 사상 최악의 전쟁인 제2차 세계 대전(기원 1939-1945년)시에 박해와 위험을 당할 때에 그들을 구원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중동에서 양떼가 목자의 아낌을 받듯이 이들 영화로운 영적 ‘이스라엘’인들은 그 분께 아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면류관의 보석은 그 면류관을 쓴 사람에게 참으로 고귀하며, 그의 모습은 그 광채로 인하여 위압 감을 느끼게 합니다! 영적으로 말하여 “자기 백성의 양떼”인 그들은 왕관의 번쩍이는 보석과도 같이 참으로 고귀합니다. 그 분은 앞으로 원수의 최후의 공격에서 그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51. 남은 자들에게 비친 여호와의 정신적 영상은 어떠하였으며, 비유로 말하면 그 분의 어떠한 마련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번영하여 왔읍니까?

      51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참으로 선하심을 보이셨읍니다! 그들에게 비친 그분의 정신적 영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읍니다! 그 분은 풍부한 곡식처럼 그의 계시된 거룩한 말씀에서 나오는 풍부한 영적 양식으로 그들을 먹이셨읍니다. 그들의 마음은 새 포도주를 마신 것처럼 즐거워졌읍니다. 이 모든 것 때문에 그들은 지금까지 영적으로 번영하여 왔읍니다.

      [각주]

      a 스바냐 3:14; 이사야 44:23; 시편 41:12; 욥 38:7 비교.

      [260면 지도]

      (온전한 형태의 본문을 보기 원한다면, 출판물을 참조하십시오)

      바사 왕조 치세중의

      팔레스티나

      깃딤(구브로)

      하맛

      지중해

      리블라

      하드락 땅(?)

      레바논 산맥

      시리아

      베니기아

      시돈

      두로

      다메섹

      바산

      사마리아

      요르단 강

      에브라임

      예루살렘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블레셋

      에그론

      유다

      갓

  • 거짓 예언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통합
    신권 통치에 의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낙원
    • 제17장

      거짓 예언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통합

      1. 흩어진 사람들을 본토로 다시 모아 그 영토가 초만원이 되게 하는 것은 인구가 폭발하고 있고 세계 기근이 임박한 오늘날 어떠한 문제들을 연상시킵니까?

      오늘날, 지구는 만원이라는, 아니, 인구가 폭발한다는 그리고 세계 기근이 기원 1975년으로 임박했다는 불길한 경고가 보도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청년들과 처녀들이 밭의 곡식과 포도원의 고급 포도주를 즐기며 풍요한 생을 누리는 것에 관하여 예언하는 것은 사람이 미심쩍게 들립니다. 더 이상 들어설 공간이 없을 정도로 인구를 더 많게 한다고 예언하는 것은 더욱 이상하게 들립니다. 일부 나라들은 인구의 급증 때문에 이웃나라에서 취한 국경밖의 지역에 공간을 넓혀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식량 생산을 증가시켜야 하고 농지를 더 개간해야 합니다. 그런데 흩어진 국민을 국경내로 다시 모으고 영토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구가 있게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식량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읍니까?

      2. 시편 104:13-16에 의하면 인간 정부와는 달리, 누구에게는 식량 문제가 없읍니까?

      2 식량 문제 말입니까? 인간 정부로서는 사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낙원의 창설자께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오늘날도 그 분께는 그러한 문제가 없읍니다. 현 세상 사태로부터 소급하여 이십 삼여세기 전에 영감받아 기록된 것에 그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의 나무가 우택에 흡족함이여. 곧 그의 심으신 ‘레바논’ 백향목이로다.”—시 104:13-16.

      3. 스가랴 10:1, 2은 어느 방향에서 구제책을 구하라고 알려줍니까?

      3 자기를 의존하는 사람들이 인간의 온갖 노력으로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아무리 예언할지라도, 단 한가지 방향에서만 구제책을 기대할 수 있읍니다. 인간과 마귀들보다 더 높은 근원으로부터 온 선언, 스가랴 10:1, 2에 기록된 선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말로 그 방향을 지적합니다. “봄 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대저 ‘데라빔’들은 허탈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 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느니라.]”

      4. 특정한 때에 비를 내리실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은 ‘노아’ 시대와 ‘엘리야’ 시대에 어떻게 입증되었읍니까?

      4 전세계에 비를 내리실 수 있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능력은 기원전 2370년에 입증되었읍니다. 그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은 일주일 동안에 대표적인 동물과 새들을 거대한 방주(상자)에 넣으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그 일주일이 끝나자 사십일간 온 땅에 비가 내려 일년간 땅의 온 지면이 홍수에 덮였었읍니다. (창세기 6-8장) 또한 특별한 때에,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비를 내리신 또 다른 경우는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의 영토에 삼년 반 동안 가뭄이 있은 후 예언자 ‘엘리야’가 기도한 때였읍니다. 의로운 사람의 기도에 대한 이 응답의 시초로 “바다[지중해]에서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더니” 그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었읍니다.—열왕 상 18:43-45; 야고보 5:16-18; 누가 4:25-26.

      5. 회복된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소홀히 여긴 동안에 경험한 무슨 일로써 그들은 “복된 장마비”(에스겔 34:26)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됨을 알았읍니까?

      5 ‘유다’ 땅에 회복된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 여호와께서는 훌륭한 환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그의 말씀은 이러하였읍니다.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마비를 내리리라.” (에스겔 34:26) 그러나 남은 자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 하였읍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을 소홀히 하였던 그 여러 해 동안 그들의 토지에는 뙤약볕이 내리쬐었고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여호와]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읍니다. (학개 1:10, 11; 2:16, 17; 스가랴 8:10-12) 그러므로 그들은 ‘먹구름을 내며 낙비를 내리시는’ 분께 기도할 필요를 느꼈읍니다.—스가랴 10:1, 신세 참조.

      6. 미신적인 이교인들의 거짓 신들이 비를 내립니까? 비를 내리시는 데 대한 어떠한 말이 참됨을 생태학자들은 멀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까?

      6 그 분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분께 기도를 드린 충실한 남은 자들에게 그 분은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시었읍니다. 충실한 개개인의 토지는 축복을 받아 필요한 채소를 내었읍니다. 미신적인 이교인들의 거짓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기도를 드려서는 안됩니다. 더 이전 예언자인 ‘예레미야’는 하늘의 비를 내리시는 분에게 이렇게 말씀드렸읍니다.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예레미야 14:22) 여호와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는 오늘날의 모든 생태학자들 즉 환경 전문가들은 멀지 않아, 여호와께서 비를 내리시는 분이라는 성서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7.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왜 실제로 비가 내려서 세계 기근이 닥치지 않게 되기를 기도하지 않으며, 그들이 생존하는 데는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읍니까?

      7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여호와의 영적 성전에서의 순결한 숭배를 재수립하는 데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읍니다. 그들은 세계 기근을 방지하려는 희망에서 실제 비가 땅에 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기근” 즉 “식량 부족”으로 말미암아 세상 나라와 백성들의 고통이 배가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말씀을 기억합니다. (마태 24:7, 신세 참조) 그들은 다가오는 세계적인 대 “환난”을 생존하고 하나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생명을 얻는데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축복들 즉 성서와 예언에 대한 이해의 증가, 하나님과의 은총받을 만한 관계, 더 많은 그의 성령 즉 활동력, 그의 헌신한 백성들과의 정기적인 모임, 그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파에 참여하는 일, 그의 뜻을 행하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에 대한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들은 바로 그러한 축복의 소낙비를 내려 주실 것을 기도하여 왔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영적 토지는 많은 “채소”를 내었읍니다. 그 토지는 영적 낙원이 되었읍니다.—고린도 후 12:4.

      8. 그리스도교국은 무슨 신들에게 축복을 구하였으며, 어떠한 결과에 이를 것이 예언되었읍니까?

      8 그리스도교국은 “경건의 모양”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의 거짓 신들, 상업주의, 군국주의, 진화론적 교육, 현대 과학 기술 및 국제 연합에 축복을 구합니다. 그리스도교국 내의 정치 지도자들도 점성가들과 영매술자들에게 찾아가 의견을 묻습니다. 관찰에 의하면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스가랴 10:2에 예언된 그대로 입니다. “대저 ‘데라빔’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복술자는 진실치 않은 것을 보고 거짓꿈을 말한즉 그 위로함이 헛되므로 백성이 양같이 유리하며 목자가 없으므로 곤고를 당하[느니라.]”

      9.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어떻게 ‘데라빔’과 ‘복술’을 사용하는 죄를 범하였읍니까?

      9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성서를 떠나서 그들의 ‘데라빔’ 즉 그들의 가정의 수호신, 집 지키는 신에게 도움을 구하였읍니다. 이것은 미신적인 고대 ‘로마’인의 행동과 같습니다. 그들은 각자 자기 의견을 존중하고 각자 자기 특유의 종교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들은 군사, 경제 및 정치 분야 전문가들의 예언에 귀를 기울이며, 그러한 세상적 지도자들과 대변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기도하는 사제들과 교직자들을 의뢰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들에게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주제넘게도 거역하고 완고하게도 자기 생각에 따라 행동합니다. 예언자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반항적인 ‘사울’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이 바로 그들에게 적용됩니다. “거역하는 것은 사술[복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사무엘 상 15:23.

      10. 그리스도교국의 예언자들은 참을 예언하였읍니까? 구제책은 마련되었으며 양떼는 한 목자 아래 보호를 받아 왔읍니까?

      10 여호와의 관점에서 보면, 소위 이방 세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리스도교국도 ‘데라빔’ 우상 숭배 및 악귀적인 복술과 관련되어 있읍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사견은 그릇됨이 증명되었읍니다. 인간이 지금까지 사용해 온 모든 수단에 의하여 세상 상태가 개선된다는 저명인사들의 예언은 단지 일장 춘몽에 불과하며 거짓임이 드러났읍니다. 이것은 속임을 당하고 그릇 인도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읍니까? 그들은 확실히 양떼처럼 분산되며 각자 향방을 모르는 양처럼 자기 생각대로 행동합니다. 그들은 길을 잃었으며 인간 사회의 악한 요소에 희생이 됩니다. 그 결과 그들은 큰 곤고를 당하여 왔으며 인간으로부터 아무런 구제책을 얻지 못하고 있읍니다. 어떠한 정치적 통치자도 어떠한 정치 조직도 그들에게 목자가 되어 그들을 보호해 주고 평화로운 초장이나 고요한 물가로 인도할 수 없읍니다.

      11, 12. (ㄱ) 그리스도교국의 통치자들은 필자 ‘다윗’의 본을 어떻게 따르지 않았읍니까? (ㄴ) 스가랴 10:3-7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종교 교직자들의 인도를 받는 정치적 “목자들”을 기뻐하십니까?

      11 정치적 통치자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그리스도교국의 통치자들도 ‘다윗’ 왕의 본을 따르기를 거절해 왔읍니다. ‘다윗’은 기원전 1077-1037년에 ‘이스라엘’ 양떼의 목자였읍니다. 목동 출신인 ‘다윗’은 시편 23:1, 2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가장 높으신 목자 여호와께서, 백성의 목자로 그리스도교국의 종교 교직자들의 인도와 지지를 받는 정치적 통치자들의 행동을 보고 기뻐하실 수 있겠읍니까? 다음과 같은 스가랴 10:3-7에 의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12 “내가 목자들에게 노를 발하며 내가 수염소들[염소같은 지도자들, 신세]을 벌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그 무리 곧 ‘유다’ 족속을 권고하여[주의를 돌려, 신세] 그들로 전쟁의 준마와 같게 하리니 모퉁이 돌이 그[유다]에게로서, 말뚝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잡은 자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와서 싸울 때에 용사같이 거리의 진흙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와 말 탄 자들로 부끄러워하게 하리라.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에브라임’이 용사 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 하리라.”

      13. 교직자들은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에게 그들에 대한 누구의 태도를 알리지 않았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였읍니까?

      13 심지어 그리스도교국에서도 정치적 “목자들”은 여호와의 그들에 대한 분노가 뜨거워졌음을 인식하지 않습니다. 종교 교직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이 있을 것을 구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국의 “수염소” 즉 “염소같은 지도자들”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벌하실 것을 믿지도 두려워 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 가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사제들과 설교자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중보 역할을 하며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지 않을 것입니까? 그러므로 그들은 예언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에서 하나님의 격렬한 분노의 열기를 느낄 것으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전쟁”의 격전장인 ‘아마겟돈’에서 그 분으로부터 벌을 받을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 교직자들이 이들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을 무식과 자기 만족에 빠지게 하였을지라도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그 분은 그들에게 통고하여 오셨으며, 그것도 미리 반복적으로 통고하셨읍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14. 여호와께서는 누구를 통하여 충분히 일찍 그러한 통고를 하셨으며, 그 분은 어떻게 이들을 양과 같은 상태에서 당당한 군마와 같은 상태로 변화시키셨읍니까?

      14 그의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인 증인들인 “‘유다’ 족속”의 실체를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 이들은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교국의 정치적 “목자들”과 “염소 같은 지도자들”을 따르지 않았읍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목자이시며 기원 1919년 이래로 그 분은 그의 양 “무리”인 그들에게 따뜻한 주의를 돌리셨읍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그리스도교국과 보조를 맞추어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종교 교직자들의 승인과 지지를 받은 짐승같은 인류의 정치적 군사적 착취자들에게 순종하는 양들과 꼭 같았읍니다. 그러나 그 첫 세계 전쟁 이후로 위대하신 천적 목자께서는 그의 “무리” 곧 영적 “‘유다’ 족속”을 다시 모으셨읍니다. 그 분은 양 같은 상태에 있던 그들을 변화시켜 “전쟁의 준마” 같게 하셨읍니다. 그 분은 그들에게 그의 말씀과 성령을 통하여 용기를 주심으로 당당한 군마와 같은 용기를 갖게 하셨읍니다.—스가랴 10:3.

      15. 기원 1914년 이후로 영적 “‘유다’ 족속”에게 왜 당연히 이러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까?

      15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 하면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의 사자”를 하늘에 즉위시키시고 “가서 네 원수들 중에서 정복하라”고 그에게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계시 5:5; 창세 49:9, 10; 시 110:1, 2, 신세) 영적 “‘유다’ 족속”의 지도자가 그러한 것처럼 그 “족속”의 다른 성원들도 그래야 할 것입니다. 이 “‘유다’ 족속”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읍니다. “모퉁이 돌[중심 인물, 신세]이 그에게로서, 말뚝[지지하는 통치자, 신세]이 그에게로서, 싸우는 활이 그에게로서, 권세 잡은 자[공사 감독, 신세]가 다 일제히 그에게로서 나아[오느니라.]”—스가랴 10:4.

      16. (ㄱ) ‘스가랴’ 시대에는 누가 “중심 인물”이었으며, 오늘날은 누구입니까? (ㄴ) 그는 어떻게 “지지하는 통치자”이시며, 전쟁의 “활”이며, “공사 감독”이십니까?

      16 ‘스가랴’ 시대에는 ‘유다’ 지파인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총독이 “모퉁이 돌”이었읍니다. 현대에는 기원 1914년에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이 탄생한 이후로 ‘유다’ 족속의 ‘다윗’의 후손인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 즉 “중심 인물”이십니다. 그 분이 만물의 중심이 되시며 왕으로서의 무거운 책임이 그에게 집중적으로 지워져 있읍니다. 왕의 권익이 걸려 있고 지지해 주는 “말뚝”처럼 메시야 왕은 “지지하는 통치자”이십니다. 그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전능한 손에서 그는, 멀리서 적을 해치고 쓰러뜨릴 수 있는 “싸우는 활”이십니다. 그는 “‘유다’ 족속”의 모든 성원들에게 왕가의 일을 할당하는 최고 공사 감독이십니다. 그는 그들 중 일부를 보조 공사 감독으로 임명하십니다. 그들 모두는 그들의 우두머리이며 인도자이신 그 분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분이 그들의 선두에 계시므로 “‘유다’ 족속” 전체는 마땅히 용기있어야 합니다.

      17. 왜 현대에는 영적 “‘유다’ 족속”에게 전시와 같이 용기가 필요합니까?

      17 현대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태에 압도되어 두려움으로 마비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시대가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에 대한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미리 경고받아 왔읍니다.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천사들이 메시야 왕국에 의하여 하늘에서 쫓겨 났으며 이 용같은 적대자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우리가 오늘날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이 여자[하나님의 천적 조직]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시 12:17)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영적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은 그들 가운데서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켰읍니다. “싸울 때에 용사 같이 거리의 진흙 중에 대적을 밟을 것이라.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한즉 그들이 싸와 말탄 자들로 부끄러워 하게 하리라.”—스가랴 10:5.

      18. (ㄱ) 영적 “‘유다’ 족속”은 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들 편에 누가 계십니까? (ㄴ) “말 탄 자들”은 무엇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까?

      18 여기에는 적의 요새를 침공한 승리의 용사가 묘사되어 있읍니다. 적의 요새의 거리는 방어를 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피에 붉게 젖었읍니다. 그러므로 침공자들은 먼지에 섞인 피로 된 진흙에 대적을 짓밟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영적 “‘유다’ 족속”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의 전쟁은 오늘날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을 무기로 삼는 영적 전쟁입니다. (고린도 후 10:4; 에베소 6:14-18) 용인 ‘사단’ 마귀와 악귀들이 이 땅으로 내어 쫓긴 현 “악한 날”에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전쟁을 피할 수 없읍니다. 그들은 “여호와가 그들과 함께” 하시므로 과감하게 전쟁을 하여 왔읍니다. 그들이 “마지막 때”의 끝이 가까운 지금까지도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들이 영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말”에 의지하는 자들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 여호와의 숭배자들과 맞서 싸우는 적들은 참으로 수치와 실망을 경험하였읍니다. 이들 “말 탄 자들”은 갖은 반대와 간섭과 박해를 가하였지만 영적 “‘유다’ 족속”의 남은 자들을 막지는 못하였읍니다.

      통합된 민족

      19. (ㄱ) ‘이스라엘’ 열지파 나라는 기원전 997년에 어떻게 분리되었읍니까? (ㄴ) 그 결과 생긴 두 왕국의 생존자들은 어떻게 ‘바벨론’에서 함께 포로가 되었읍니까?

      19 통용 기원전 육세기인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서 충실한 남은 자들이 해방되고 그들이 ‘유다’ 땅으로 복귀하였을 때에 통합되었읍니다. 기원전 997년에 그 나라는 분리되었었읍니다. 열지파는 ‘다윗’ 왕가가 통치권을 계승하는 것에 대하여 반기를 들었읍니다. 단지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만 ‘다윗’ 왕실에 충실히 고착하였읍니다.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은 가장 인구가 많은 지파인 족장 ‘요셉’의 작은아들 ‘에브라임’ 지파의 인도를 받았읍니다. ‘요셉’의 장자인 ‘므낫세’ 지파는 형제 지파인 ‘에브라임’ 지파와 행동을 같이 하였읍니다. 북쪽의 열지파 왕국은 단지 기원전 740년까지만 존속하였읍니다. 그 해에 당시 수도였던 ‘사마리아’가 ‘앗수르’인들에게 멸망되고 생존자들은 ‘앗수르’ 영토로 추방되었읍니다. 그러나 기원전 632년에 ‘바벨론’은 ‘앗수르’를 전복시키고 영토와 ‘이스라엘’ 포로들을 인수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생존자들을 ‘바벨론’으로 추방시켰을 때 모든 지파가 포로가 되었읍니다.

      20. (ㄱ) 왜 열지파 왕국의 포로들은 “‘에브라임’ 족속”과 “‘요셉’ 족속”이라고 불리웠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두 족속이 재통합을 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20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가 열지파 왕국을 지배한 이래 그 왕국의 포로들은 “‘에브라임’ 족속” 혹은 “‘요셉’ 족속”이라고 불리웠으며 그 족속의 수석 대표자는 ‘에브라임’이었읍니다. 충실한 포로들의 남은 자가 ‘유다’ 땅으로 돌아와 그곳에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부가 재통합하리라는 것을 지적하여 여호와께서는 두 족속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또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유다’ 족속을 견고하게 하며 ‘요셉’ 족속을 구원할찌라.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그들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이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 같이 되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에브라임’이 용사같아서 포도주를 마심 같이 마음이 즐거울 것이요 그 자손은 보고 기뻐하며 여호와를 인하여 마음에 즐거워하리라.”—스가랴 10:6, 7.

      21. (ㄱ) 여호와께서는 “‘유다’ 족속”을 누구보다 견고하게 하셨으며, 어떠한 면으로 그 분은 “‘요셉’ 족속”을 구원하셨읍니까? (ㄴ) 그들은 어떻게 이전에 여호와께서 버리신 적이 없는 백성 같이 되었읍니까?

      21 주권자이신 주 하나님께서는 “‘유다’ 족속”을 원수들 보다 “견고”하게 만드신 분이었읍니다. 그 족속이 특히 ‘다윗’의 메시야 왕국을 대표하였읍니다. “‘요셉’ 족속”의 포로들도 구원을 받았읍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들에 대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읍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바사’의 ‘유다’ 도에서 그들의 동료 지파 사람들과 함께 살 거처를 주셨읍니다. 그렇게 하기 전에 그 분은 ‘앗수르’의 포로 상태에서 그들을 구출하셨읍니다. ‘유다’ 족속과 같이 이들도 여호와의 봉사에서 “용사같”이 되었읍니다. 그들에게 그 분은 다른 포로들에게와 마찬가지로 긍휼을 보이셨고 회복된 포로들은 모두 그 분이 이전에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버리신 적이 전혀 없는 백성같이 되었읍니다. 이 사실은 송환된 ‘유대’인들이 마침내 ‘예루살렘’에 두번째 성전을 완공하고 온 국민의 하나님이신 그 분께 그곳에서 연합된 숭배를 드렸을 때 특히 모두가 보기에 분명하였읍니다. 그 분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을 입증하셨읍니다.

      22. (ㄱ) 그들이 기뻐해야 할 마음의 자극은 왜 포도주를 마실 때 받는 자극보다 강합니까? (ㄴ) 어떠한 면으로 그들의 아들들도 기쁨을 함께 누릴 것입니까?

      22 그들이 기뻐해야 할 마음의 자극은 포도주를 마실 때보다 더 강하였읍니다. 그들을 자극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었읍니다. 그들의 마음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안에서 기쁨에 넘쳤읍니다. 왜냐 하면 그 분은 그들을 선대하였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되찾은 고토에서 출생한 그들의 아들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와 선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그들도 그것을 보고 그것을 경험하고 그로 인하여 그들의 부모들과 함께 기뻐할 것이었읍니다.

      23. 최종 성취에서 무엇이 “‘유다’ 족속”과 “‘요셉’ 족속”(‘에브라임’ 족속)에 해당하며, 어디에서 언제부터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통합하셨읍니까?

      23 “유다 족속”과 “‘요셉’ 족속”(‘에브라임’ 족속)에 관한 예언이 현 이십 세기에 어떻게 최종적으로 성취되는지를 알기 위하여는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둘로 나눌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 어려움을 겪고 기원 1919년에 하나님의 은총으로 회복되고 해방된 원래의 남은 자들이 있읍니다. 그리고 기원 1919년 이후로 큰 ‘바벨론’에서 구출되고 원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한 새로운 남은 자들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로 통합되는 일은 기원 1919년 이후로 그들이 그 분의 인도로 들어오게 된 영적 토지에서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연합하여 살아 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숭배를 그의 영적 성전에서 재수립하고 확장하는 일을 할 수 있었읍니다. 정복할 수 없는 그의 영으로 그 분은 그의 메시야의 이들 양 같은 제자들의 “무리”를, 두려움 없이 전쟁터로 돌진하는 당당한 군마 같이 되게 하셨읍니다.

      24. 통합된 남은 자들은 왕국을 선포하는 일에 있어서 어떻게 전쟁터로 돌진하는 말과 같은 용기를 보였읍니까?

      24 그리하여 그들은 어느 때 보다 용감하게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 하늘에서 통치하는 왕국을 선포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가정에 무료 성서 책자를 배부하여 왔으며 그 수는 수억부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수백명의 전 시간 “서적 배부자들”에게만 이 사업을 계속 떠맡기지 않았읍니다. 현재 그들 모두가 사람들의 가정을 찾아가서 집주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소책자와 대책의 형태로 된 성서 연구 보조물을 사업에 대한 소액의 헌금으로 전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수백개의 방송국과 계약하여 온 땅에 왕국 소식을 방송하였으며 심지어는 최대의 방송망을 조직하기도 하여 가능한한 많은 청취자의 가정과 귀에 소식이 전해지게 하였읍니다. 종교적 정치적 사법적 반대가 증가하여 왕국 소식을 무료로 방송하기가 어렵게 되었을 때에 그들은 ‘스피커’를 위에 단 차를 몰고 다니며 일선에서 소식을 전하였읍니다. 휴대용 축음기를 집집으로 가지고 다니면서 음반에 녹음된 소식을 틀었읍니다.

      25. 심판의 소식은 1922-1928년에 어떻게 용감하게 선포되었읍니까?

      25 기원 1922-1928년의 칠년 동안 영적 ‘이스라엘’인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은 일곱개의 대회 즉 일련의 국제 대회를 개최하였읍니다. 연속적으로 열린 이 대회에서 매년 하나님의 성서로부터의 두려움 없는 심판의 소식이 선포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보이는 청중과 ‘라디오’에 의한 보이지 않는 청중에게 행한 적절한 공개 강연으로 지지를 받았읍니다. 이러한 심판의 소식의 선포와 그것을 지지하는 연설들은 많은 언어로 무료 ‘팜플렛’의 형태로 무료 배부되었으며 수억부의 이러한 ‘팜플렛’이 여러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읍니다. 연설과 지면을 통하여 매년 전달된 이러한 소식은 전세계가 듣도록 연속적으로 일곱번 나팔을 불어 여호와의 현대 심판을 울려 퍼지게 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이러한 일이 묵시의 책인 「계시록」 팔장과 구장과 십일장에 묘사되어 있읍니다.

      26. 「계시록」의 다섯째 나팔 소리의 설명은 어떻게 큰 ‘바벨론’에서 해방된 후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이 군사 같음을 묘사합니까?

      26 천사의 인도하에 그러한 다섯번째 나팔의 소식을 크게 외칠 것에 관하여 계시록 9:7-11은 큰 ‘바벨론’에서 해방된 남은 자들을 황충으로 상징하여 이렇게 묘사합니다.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이것은 남은 자들을 군사처럼 묘사합니다.

      27. 여섯째 나팔에 대한 「계시록」의 설명은 남은 자들을 군사와 같고 “용사”와 같다고 말하는 점에서 어떻게 스가랴 10:3-7과 일치합니까?

      27 여섯째 나팔 소리(기원 1927년에 시작한)의 효과에 관한 묵시적 묘사로 보면 남은 자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선언하기 위하여 수억의 선전 수단을 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묘사된 바를 보십시오.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요한’]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이 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계시 9:16-19) 그러므로 이러한 상징적 환상들은 회복된 남은 자들을 여호와의 전쟁의 준마와 “용사”로 비유하는 스가랴 10:3-7과 일치합니다.

      강력한 방해물들이 극복됨

      28. 스가랴 10:8-12에서 여호와께서는 ‘애굽’과 ‘앗수르’에서 그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실 때에 장애물을 극복하시는 일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28 우리가 현재 명백히 보듯이 만군의 여호와께는 자신이 말씀하신 목적을 실현하는 데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이 하나도 없었읍니다. 그 분이 장애물을 어떻게 처리하시는지를 스가랴 10:8-12에서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그들을 향하여 휘파람 불어 모을 것은 내가 그들을 구속하였음이라. 그들이 전에 번성하던 것 같이 번성하리라. 내가 그들을 열방에 뿌리려니와 그들이 원방에서 나를 기억하고 그들의 자녀와 함께 다 생존하여 돌아올찌라.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돌아오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 내가 그들로 고해를 지나게 하며 바다 물결을 치리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홀이 없어지리라.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니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스가랴 10:8-12.

      29. (ㄱ) 여호와께서는 예언된 바와 같이 언제 ‘앗수르’의 교만을 낮추셨읍니까? (ㄴ) 그는 언제 씨처럼 흩어진 그의 백성들을 휘파람으로 부르셨으며, 이에 대한 반응은 어떠하였읍니까?

      29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앗수르’라는 말은 ‘앗수르’인들이 기원전 740년에 ‘이스라엘’ 열지파 왕국의 생존자들을 추방하여 보낸 지역들을 포함할 것입니다. 그러나 ‘앗수르’의 “교만”은 ‘느부갓네살’ 왕 시절의 ‘바벨론’에 의하여 낮아졌읍니다. 한편 ‘앗수르’를 강탈한 이 정복자의 “교만”은 여호와의 지적 도구였던 ‘바사’의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기원전 539년에 낮아졌읍니다. 그 후로 여호와께서는 ‘바벨론’ 제국의 북부 지역에서 그의 백성의 흩어진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 수 있었읍니다. 그 분이 그들을 흩으신 곳에서 그들은 뿌려진 씨와 같이 번성하였읍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하는 곳이 아무리 멀지라도 그들은 “휘파람”을 듣고 그를 기억할 것이었읍니다. 이것은 그들을 소생시키는 힘이 있을 것이며 그들이 포로 생활 중에 낳은 그들의 아들들도 같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휘파람”에 의한 그 분의 초대에 생기를 얻고 반응을 나타내는 그들은 황폐된 고토로 돌아올 것이었읍니다.

      30. 그의 포로된 백성들을 ‘애굽’에서 모아오는 데 어떠한 방해가 있을 수 있으며,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방해물들을 어떻게 하실 수 있읍니까?

      30 남쪽의 ‘애굽’으로 잡혀 가거나 도피한 포로들도 많았읍니다. (열왕 하 23:31-34; 25:22-2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방향으로도 “휘파람”을 부셨읍니다. 그 곳에서 그 분은 남은 자 양 모아 ‘예루살렘’에 있는 그의 성전에서 그 분을 숭배하게 하셨읍니다. ‘애굽’의 통치자가 휘두르던 홀은 이것을 막지 못하였읍니다. ‘애굽’의 왕권의 홀은 없어지고 존재하지도 않는 듯이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었읍니다. 지존하신 하나님의 “휘파람”은 애굽의 홀보다도 큰 권력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애굽’의 신격화된 ‘나일’ 강물이 그의 백성들에게 방해가 된다면 그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 물이 마른 것 처럼 그 물을 다루실 수 있읍니다. 홍해가 방해가 된다면 그 분은 그 물에 “고해” 즉 고통을 주며 그 바다를 지나실 수 있읍니다. 그는 파도를 치실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의 돌아오는 포로들이 그 바다를 통과하여 ‘예루살렘’의 숭배의 장소로 오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는 이전에 기원전 1513년에 하신 일을 다시 하실 수 있읍니다.

      31. (ㄱ) 여호와께서는 그 땅에 인구가 너무 많지 않도록 어떻게 돌보실 것이며, 계속 성장하게 하실 것입니까? (ㄴ) 그들은 어떠한 의미로 그의 이름으로 행할 것입니까?

      31 그 땅에는 인구가 너무 많아질 우려가 없었읍니다. 온 땅의 소유자께서 그의 회복된 포로들을 위하여 땅의 경계를 확장하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의 경계는 ‘길르앗’ 땅에서 ‘요단’ 강 동편까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중해를 따라 서쪽으로 ‘레바논’ 땅도 포함할 것입니다. 이와같이 확장된 지역을 점령하여 그들은 “전에 번성하였던 것 같이 번성”할 것입니다. 그들의 인구 증가율은 인구가 조밀한 어떠한 다른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많을 것입니다. 지존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억압하고 압제하고 그들을 감소시키려는 모든 이방인들의 노력에 비하여 그들을 “견고”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의 이름으로, 혹은 그의 이름으로 불리우는 백성으로 그들은 행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든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것을 영화롭게 하려고 노력하며 그것을 낮추는 일을 전혀 하지 않을 것입니다.

      32. 여호와께서는 언제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으며, 어떻게 부셨읍니까?

      32 기원전 537년에 여호와께서는 ‘바벨론’의 정복자인 ‘바사’의 ‘고레스’ 대왕에 의하여 포고된 해방령으로 그의 포로된 백성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였읍니다. (에스라 1:1에서 3:2) 그 칙령이 ‘애굽’에는 적용되지 않았지만 후에 ‘애굽’에 있는 포로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열렸읍니다.

      33. 여호와께서는 언제 영적 ‘이스라엘’인의 포로들에게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으며, 어떠한 수단을 통하여 그렇게 하셨읍니까?

      33 마찬가지로 기원 1919년에 큰 ‘바벨론’은 더 큰 ‘고레스’ 즉 승리적으로 즉위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하여 크게 무너졌읍니다. 여호와께서는 포로된 남은 자들에게 그때에 “휘파람”을 불기 시작하셨읍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월 2회 발행되는 잡지 즉 오늘날 전세계에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로 알려진 잡지를 통해서였읍니다. 그 잡지의 앞 표지에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말이 인쇄되어 있읍니다. (이사야 43:12) 동 잡지는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지지하는 편으로 통합시키고 모으는 부름을 온 땅에 있는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에게 전달하였읍니다. 그 방향으로 일보 전진하여 동지는 1919년 9월 1-8일에 미국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 시에서 열릴 대회를 발표하고 모든 독자들을 초대하였읍니다.

      34. (ㄱ) 기원 1919년에 그 대회에 참석한 수는 얼마나 되었으며, 그들은 왕국 전파 사업의 확장에 대하여 무엇을 알았읍니까? (ㄴ) 오늘날 왕국 선포 사업의 확장은 어떠한 결과에 이르렀읍니까?

      34 약 육천명이 이 의미 깊은 재소집과 영적 잔치에 참여하였읍니다. 그들은 지상의 올바른 영적 토지로 회복된 것을 기뻐하였읍니다. 그들은 당시 「황금 시대」라 불렀고 현재 「깨어라!」라고 부르는 자매지의 창간으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광고하는 수단을 확장할 마련을 알게 되었읍니다. 이 잡지의 창간호는 1919년 10월 1일호였읍니다. 그 후로 그것은 메시야 왕국과, 이 왕국이 곧 가져다 줄 생명과 평화와 행복과 번영의 시대를 선포하는 강력한 도구의 역할을 해 왔읍니다. 이 잡지가 일반 대중에게 거리에서 제공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 1940년이었읍니다. 오늘날 월 2회 발행되는 이 잡지는 매호 29개 언어로 칠백 오십여만부가 인쇄되고 있으며 계속 독자가 늘고 있읍니다.

      35. (ㄱ) 여호와의 “휘파람”은 어떻게 더욱 더 널리 울려 퍼졌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휘파람”에 응하는 데 대한 방해물들은 어떻게 극복되었읍니까?

      35 기원 1919년 그 해방의 해로부터 시작하여 남은 자들은 계속 다시 모아졌읍니다. 충실한 남은 자들이 큰 기쁨과 열정을 가지고 왕국 소식을 용감하게 멀리 멀리 전파하였으므로 여호와의 “휘파람”은 더욱 널리 퍼졌읍니다. 그리스도교국 안팎의 참 하나님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그의 영적 성전에서 숭배하라고 초대하는 그 “휘파람” 소리를 들었읍니다. 그들은 최대한의 노력으로 응하였읍니다. 그들 앞에 방해물, 이를 테면 ‘나일’ 강이나 홍해나 혹은 ‘애굽’과 ‘앗수르’와 같은 정치적인 압제국이 있었읍니까? 참 영적 성전에서 그들이 섬기려고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의 기록된 말씀을 열어주시고 그러한 위압적인 방해물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방법을 지적하여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휘파람”에 대한 순종을 앞세워야 합니다!

      36. 개개인의 경우에 “‘앗수르’의 교만”은 어떻게 낮아져야 하며, 어떻게 “애굽의 홀”은 “없”어져야 합니까?

      36 그들은 두려움을 버려야 합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에서 나오라는, 그리스도교국 뿐 아니라 이교국도 포함하는 거짓 종교 세계 제국에서 나오라는 하늘로부터의 부름에 청종해야 합니다. (계시 18:1-4) 그들은 ‘앗수르’와 같은 군국주의적 국가주의적 정부들의 교만을 부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인간이 만든 모든 정부보다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을 앞세워야 합니다. 그들 개개인의 경우에 모든 높고 강력한 통치권의 권익은 여호와의 우주 주권과 그의 메시야적 도구의 권익 앞에서 낮아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정치 강국이 휘두르는 상징적 “‘애굽’의 홀”의 능력과 권력이 가장 우월하다고 간주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이 휘두르는 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원 1914년에 그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 [천적]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시 110:1, 2) 이 메시야 홀과 “애굽의 홀”을 비교하면 이 후자 곧 인간의 홀은 “없”어집니다.

      37, 38. (ㄱ) 국가 숭배 대신에 여호와를 어떠한 분으로 인정해야 하며, 이러한 요구 조건을 이해하도록 어떠한 도움이 있었읍니까? (ㄴ) 「정부」라는 책은 “신권 통치”와 “여호와 왕”이라는 제목하의 일부에서 어떠한 설명을 하였읍니까?

      37 그들은 정치 국가를 최고로 인정하고 인간이 만든 국가를 숭배할 것이 아니라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를 신성 통치자 혹은 신권 통치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라는 책은 이러한 요구 조건을 이해하도록 도와 주었읍니다. 그 책은 1928년에 미국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7월 30일부터 8월 6일까지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의 대회에서 대중에게 발표되었는 데, 그 대회에서 상징적 일곱째 나팔 소리가 퍼지기 시작하였읍니다. (계시 11:15-18) 이 책은 247-250면에서 “신권 통치”와 “여호와 왕”을 논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38 “그러면 땅에 있는 사람들을 어떠한 형태의 정부가 지배할 것입니까? 그 정부는 순수한 신권 정부가 될 것입니다. 여러 세기 동안 모든 창조물은 고통 가운데 신음하고 괴로워하여 왔으며, 그러한 정부의 출현을 기다려 왔읍니다. (로마 8:19) 이제 그러한 정부가 설립될 때가 도래하였으며, 통치자들과 지상의 피지배자들이 모두 진리를 배우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 신권 정부는 여호와 하나님이 최고 통치자로 일하시는 정부입니다. 그 분은 합당하게 설치한 대행 기관을 통하여 법을 만드시고 집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최고의 능력이 항상 그분께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 폐위된 후로 그 분은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셨고 ‘권리를 가진’ 자를 즉위시킬 때가 되기까지는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허락하셨고 간섭을 하지 않으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 밑에서 자기와 일치하게 다스리도록 그를 임명하고 기름부으셨읍니다. ··· 사람들이 그 위대한 신권 통치를 식별하고 인식할 때 그 신권 통치는 온 땅의 기쁨이 될 것입니다.”

      39. (ㄱ) 어떠한 형태의 정부에 의하여 인류에게 낙원이 회복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의 남은 자들의 영적 낙원에 어떠한 조직을 설립하셨읍니까? (ㄴ) 신권적인 영적 토지에서 남은 자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방해물들을 헤치고 나가야 합니까?

      39 낙원은 바로 다가오는 이 신권 통치를 통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것입니다. 현재 영적 낙원은 회복된 남은 자들 사이에 존재하며, 위대하신 신권 통치자께서는 그들 사이에 신권 조직을 설립하셨읍니다. 이처럼 조직된 이 영적 남은 자들은 독재적인 통치자이든 민주적인 통치자이든 모든 인간 통치자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높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사야 33:22에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사도들과 같이 신권적 입장을 취합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의 최고 법원에 섰을 때 이렇게 그들의 입장을 밝혔읍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사도 5:29-32) 그러므로 신권적인 영적 토지에서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과 연합하는 사람들은 상징적 ‘나일’ 강의 민주적 흐름과 상징적 홍해인 인류의 변하는 조류를 헤치고 지나가서 여호와의 신권적 마련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진적이고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분께서 그 물같은 방해물들을 없는 것 같이 만들어 주실 수 있읍니다.

      40. (ㄱ) 하나님께서는 무엇과 관련하여 남은 자들을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하게 하셨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ㄴ)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라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그들은 메시야 왕국과 함께 무슨 일에 참여할 것입니까?

      40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적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남은 자들을 다시 모으고 재연합시키셨으며 참으로 그들을 모든 방해물들과 적대자들에 비하여 ‘견고하게’ 만드셨읍니다. 그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참으로 ‘군대의 힘이나 [인간]의 세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그의 영 즉 보이지 않는 활동력으로 되었읍니다. 그 분이 “내가 그들로 나 여호와를 의지하여 견고케 하리”라고 말씀하신대로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의 거룩한 이름에 영예를 돌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와 일치하게,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기도와 일치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들은 그 이름에 존엄성을 더하며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다고 선포합니다. (시 148:13) 그러므로 기름부음을 받은 남은 자들이 있는 모든 나라에서 스가랴 10:12의 이러한 예언이 성취되고 있읍니다. “그들이 내 이름을 받들어 왕래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이 ‘아마겟돈’에서의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시까지 이 일을 계속 한다면 그들은 메시야 왕국과 함께 온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이름을 입증하는 데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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