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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기—거짓 희망이 아님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장

      “천년”기—거짓 희망이 아님

      1. 인간 왕국이 천년간 지속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한 왕국이 천년간 지속하려면 그 왕국은 참으로 바람직하고 또한 강력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한 인간 혹은 인간 계승자들로서는 그러한 군왕 통치를 설계하고 창립하고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어떠한 가계(家系)의 역대 왕들이 다스린 인간 왕국 가운데에도 천년 가까이 존속한 왕국은 없읍니다.

      2. 일개 인간 군주에 의한 천년 왕국 통치는 왜 불가능합니까?

      2 그러면 십세기 동안 단 한명의 군주가 계속 다스리는 왕국은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다! 그처럼 오래 산 사람이 없읍니다. 가장 오래된 족보에 의하면 서남 ‘아시아’의 ‘므두셀라’라는 사람이 지상에서 가장 장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천년에서 31년을 모자라게 살고 죽었읍니다.a 현대에 인간의 예상 수명은 그 예외적인 나이보다 훨씬 짧게 정하여져 있읍니다. 오늘날 선진 국가에서는 의학을 이용해 보았지만 평균 수명은 70세에 미달합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약 6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일개 남자나 여자에 의한 천년간의 왕국 통치는, 신민이 그들의 통치자가 아무리 선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불가능합니다.

      3. 최근에 시도되었던 “천년 계획”은 어떠한 인류 장래를 설계하였읍니까?

      3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우리는 그러한 인간적 관점에서 천년 왕국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 있는 다른 수백만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개인적인 관찰자로서 천년간 존속하는 정부를 수립하려는 최근에 있었던 시도를 기억할 수 있읍니다. 이 “천년 계획”은 기원 1933-1945년에 독일을 지배한 ‘나찌’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계획이었읍니다. 미국이 제 2차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에 뛰어든 직후, 압수된 ‘나찌’ 서류에서 그리고 수감된 독일 첩보원들 및 기타 여러 가지 자료에서 이러한 ‘나찌’ 계획에 대한 정보가 약간 수집되었읍니다. 이 계획은 ‘히틀러’가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다면 인류 세계를 무자비하게 억압할 ‘나찌’ 세계 질서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읍니다. 그것은 노예화 계획이나 다름 없었으며, 이 계획을 위하여 독일 이외의 국가로부터 노동자들을 모을 작정이었읍니다. 이 계획에는 천년 장래가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4. ‘히틀러’는 어떠한 이전의 제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하며, 한 사제는 그 점에 대하여 어떻게 증언하였읍니까?

      4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 출신인 ‘나찌’ 지도자 ‘히틀러’는 962년부터 1806년까지 존속한 ‘게르만’족의 신성 ‘로마’ 제국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실 한 ‘로마 가톨릭’ 사제는 그러한 취지의 말을 한 바 있읍니다. 1940년 2월 16일 밤에, ‘조오지타운’ 대학교의 외교관 학교의 이사 ‘에드먼드 에이. 왈시’ 박사는, ‘와싱턴’ 시의 ‘미모오리얼 콘티넨틀 홀’을 꽉 메운 청중에게 연설하는 가운데, 독일 전쟁의 목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재설립”이라고 약술하였읍니다. “‘왈시’ 박사는 ‘아돌프 히틀러’가 ‘게르만’족의 제국이었던 신성 ‘로마’ 제국이 재설립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였다.”—1940년 2월 17일자 「뉴우요오크 타임즈」지.

      5. ‘히틀러’는 ‘나찌’ 제국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호언하였으며, 그러나 그의 계획은 어떻게 되었읍니까?

      5 ‘나찌’ 총통 ‘히틀러’는 오만하게도, “국가 사회주의 제국은 천년간 지속할 것이다” 하고 호언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의 경시총감 ‘하인리히 히믈러’는 더욱 자신만만하여 “일만년도 문제 없읍니다!” 하고 맞장구를 쳤읍니다. ‘히틀러’는 자기 중심적인 계획을 일단 추진하기 시작한 이상, 세계 통치 아니면 세계 파멸, 이 두가지 중 어느 한 가지가 아니면 만족하지 않을 기세였읍니다. 「히틀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저자 ‘에이치. 알. 트레보어로퍼’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히틀러’가 ‘세계 패권 아니면 세계 파멸’이라는 자기의 당초의 계획을 실행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만일 세계 패권이 달성 불가능한 것이라면 그는 가능한 한, 최대의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이것이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일치된 견해였다.)” 이것을 알고는 “사람의 탈을 쓴 마귀!”라고 부르짖을 사람이 있을 것이며, 그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어떻든, ‘히틀러’ 종교의 많은 신봉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성 ‘로마’ 제국은 재설립되지 못했으며, ‘나찌’ “천년 계획”은 12년 내에 수포로 돌아갔읍니다.

      6. ‘히틀러’가 배우지 못하였을 교훈을 그보다 훨씬 이전의 어느 비‘게르만’인 통치자가 배웠으며, 이 통치자의 꿈을 누가 정확히 해석하였읍니까?

      6 그 자칭 세계 통치자 ‘히틀러’는 아마 교훈을 얻지 못하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기보다 휠씬 먼 옛날의 세계 통치자가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배워야 했던 엄연하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에 부딪쳤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히틀러’보다 더 오랫 동안 즉 43년간(기원전 624-581년) 통치하였으며, 그는 ‘게르만’인(人)도 ‘아리아’인(人)도 아니었읍니다. 그는 ‘바벨론’의 왕이었으며 ‘느부갓네살’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기원전 607년에 ‘유대’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고 ‘히틀러’와 같이 주민 전체를 국외로 추방하고, 생존한 ‘유대’인 대부분을 멀리 떨어져 있는 ‘바벨론’의 여러 지역으로 끌고 간 ‘셈’족의 세계 정복자입니다. 국외로 추방된 한 사람은 ‘유대’인의 ‘유다’ 지파에 속한 ‘셈’족 예언자 ‘다니엘’이었읍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상야릇한 꿈을 꾸었는데, 그는 그 꿈을 매우 중요시하였읍니다. 그런데 노예이며 예언자였던 ‘다니엘’만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었읍니다. ‘다니엘’의 해석은 적중하였읍니다.

      7. 그 꿈은 어느 때에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통치자는 낮추어진 자기 경험에서 무슨 교훈을 배우게 되어 있었읍니까?

      7 꿈을 꾼지 1년 후에 ‘바벨론’ 세계 강국의 수뇌 ‘느부갓네살’은 ‘유브라데’ 강가의 수도 ‘바벨론’에 대하여 뽐내며 자랑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하늘에서—음성이 들렸는데, 그가 꿈에 들은 말을 하는 음성이었읍니다. 예언자 ‘다니엘’이 보존한 ‘느부갓네살’ 자신의 기록에서 그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니라].”—다니엘 4:29-32.

      8. 그 오만한 왕을 쳤다가 고친 분은 누구였읍니까?

      8 그 직후에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그 때에 발생한 일이 ‘바벨론’의 역사 기록에 보존되어 있지 않은 이유와 ‘바벨론’의 연대기 편자에 의한 어떠한 역사 기록에서도 삭제 혹은 말소된 이유는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 개인적으로 관련되었던 정직하고 사실에 충실한 예언자 ‘다니엘’은 영감을 받아 그것을 기록하였으며, 따라서 2천 5백여년 후에 사는 우리가 참조할 수 있읍니다. 교만한 왕 ‘느부갓네살’은 즉시 미쳤으며, 그를 친 것은 그가 가장 존경한 신 ‘마르둑’(혹은 ‘므로닥’)이 아니었읍니다. 그 오만한 왕,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의 거룩한 성전을 멸망시킨 그 왕을 치신 분은 그가 미칠 것이라고 예언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었읍니다. 그리고 예언되고 예언된 그대로, 문자적인 “일곱 때” 동안 ‘느부갓네살’ 왕은 미쳐서 궁전 밖의 가까운 들판에서 소처럼 풀을 뜯었읍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자기의 수도 ‘베를린’이 ‘러시아’ 공산군의 손에 들어가자 1945년에 자살하였지만, 미친 ‘느부갓네살’ 왕은 자살하지 않았읍니다. ‘느부갓네살’이 미친 후 7년이 찼을 때에 그를 쳤던 하나님께서 그를 고치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게 하셨읍니다.

      9, 10. ‘다니엘’이 보존한 기록(4:34-37)은 그 ‘바벨론’ 왕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치권에 대하여 절실히 교훈을 배웠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어떻게 알려 줍니까?

      9 ‘바벨론’ 왕은 교훈을 얻었읍니까? 예언자 ‘다니엘’이 보존한 그 자신의 기록에서 대답을 얻을 수 있읍니다. 1인칭의 형태로 기록된 내용은 이러합니다.

      10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 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다니엘 4:34-37.

      11. ‘바벨론’ 왕은 자기가 통치하기에 부적당함을 증명한 그 “일곱 때”에 대하여 무엇을 알지 못하였읍니까?

      11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바벨론’ 세계 강국 곧 성서에서 언급하는 연속적 일곱 세계 강국 중 세째 세계 강국의 보좌에 복귀되었다고 알려 줍니다. (다니엘 4:36) 그는, 자기가 통치하기에 부적당함을 증명한 “일곱 때”의 기간이 더 긴 “일곱 때” 기간 곧 “이방인의 때”에 관한 예언이었음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그 더 긴 “일곱 때” 동안에 다섯 세계 강국 즉, ‘바벨론’, ‘메데-바사’, 희랍, ‘로마’ 및 현대 영미 강국이 땅을 지배할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느부갓네살’은 도합 2,520년이 되는 그 “일곱 때”가 ‘예루살렘’ 및 그곳 성전이 황폐된 해에 시작하여 인류 세계가 최초의 세계 대전에 휘말려들었던 해 곧 1914년에 끝날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누가 21:24; 다니엘 4:16, 23, 25, 32) 그렇습니다. ‘느부갓네살’은 1914년 이방인 지배의 그 “일곱 때”의 끝에 “하늘의 왕”께서 “인간 나라”를 그가 원하는 분 곧 그의 메시야에게 주실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다니엘 9:25.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받은 예고

      12. 세속적 정치가들은 아직도 “인간 나라”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며, 그들은 인간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누구의 손을 금할 수 없었읍니까?

      12 모든 나라의 정치가들은 아직도 “인간 나라”가 자기들의 합당한 관심사이며 자기들의 합당한 활동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도 그렇게 생각하였읍니다. 최근에는 천년간 지속할 정치 체제를 꿈꾼 ‘아돌프 히틀러’도 그렇게 생각하였읍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이 마침내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 그분은 지금도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인간사를 관리할 이 왕국은 아직도 그의 관심과 운영의 합당한 분야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의 지지를 받는 세속적 정치가들은 “그의 손을 금”할 수도 없었고, “무엇을 하느냐?” 하고 그분께 질문할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 4:34, 35) 그분은 기원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인간 나라”를 누구에게 주실 것인가에 대하여 그러한 정치가들과 그들의 종교적 지지자들과 의논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지극히 높으신 자”이시며 “영생하시는 자”이심으로 정치가들과 그들의 종교적 협력자들은 의논의 대상자로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13, 14. 누구의 말을 기초로 앞으로 올 천년기에 대하여 자신있게 예언할 수 있읍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그러므로 누구의 말을 기초로 천년 장래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이 합당합니까? 인간은 내일 일도 예언할 수 없읍니다. 19세기 전에 한 관측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야고보 4:14)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자”, “영생하시는 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분에게 시간이 무슨 문제이겠읍니까?

      14 합당하게도, 단지 120년 산 한 사람은 이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고대 ‘유대’인의 한 경점은 네 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시 90:4 및 표제) 그분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단지 밤에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예언자 ‘다니엘’이 해석하게 함으로써 기원 1914년에 끝나는 2,520년 기간 후에 세계 역사에 발생할 일을 예언하실 수 있읍니다. 그분은 1914년 이후 어느 때엔가 시작할 천년 기간의 발생할 일도 마찬가지로 쉽게 그리고 정확히 예언하실 수 있지 않겠읍니까? 당연히 그렇게 하실 수 있읍니다! 그리고 만일 그분이 이미 그러한 천년 기간에 대하여 설명하셨다면 어떻게 하겠읍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을 기초로 삼아 우리는 앞으로 올 천년기에 대하여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읍니다.

      15. ‘라틴’어 혹은 희랍어의 어근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천년을 어떻게 부르며, 그 천년을 믿는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불리웁니까?

      15 고대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일천년 기간을 ‘밀레니엄’(millennium)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단어의 두 어근은 “천”(千)을 의미하는 ‘라틴’어 ‘밀레’(mille)와 “해”(年)를 의미하는 “아누스”(annus)이기 때문입니다. 희랍인들은 그것을 ‘킬리아스틱’(chiliastic) 기간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왜냐 하면 희랍어 ‘킬리아’는 “천”(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특별한 천년 기간을 믿는 사람들은 ‘킬리아스트’ 혹은 ‘밀레니얼리스트’(천년기파) 혹은 ‘밀리네리언’(천년기 신봉자)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그러한 말을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읍니다.

      16, 17. (ㄱ) 기원 1000년과 관련한 인간의 어떠한 경험이 우리가 천년기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기원 2000년이 가깝기 때문이 아님을 지적합니까? (ㄴ) 인간 존재의 일곱째 천년기가 기원 2000년이 되기 여러 해 전에 시작하는 것이 왜 다행한 일입니까?

      16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지라도, 이 다가오는 천년 기간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에 관한 지식이 “지극히 높으신” 분, “영생하시는” 분의 기록된 말씀에 포함되어 있읍니다. 그에 관하여 우리가 더욱 더 관심을 갖는 것은 기원 2000년 즉 통용 기원 둘째 천년기의 끝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류가 기원 1000년 즉 통용 기원 첫째 천년기의 끝에 다가갔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합니다. 이에 대하여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은 853면에서 “천년기설”이라는 제목하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1000년이 가까와 오자 많은 종말론자들은 창조의 일곱째 날이 인류 역사상 주후 1000년에 실현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10세기 통치가 뒤따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천년설이 더욱 널리 퍼졌다.”—1967년 판권 소유.

      17 우선, 기원 2000년보다 여러 해 전에 인간이 지상에 존재한 6천년이 끝나고 인류 존재의 일곱째 천년기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오늘날 인류 세계는 매우 비참한 상태에 있고 다방면으로 멸망의 위협을 받고 있으므로, 인류 존재에 대한 이러한 위협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인류가 기원 2000년까지 생존할 수 있을는지에 대하여 상당히 의심하고 있읍니다. 미래에 대한 그들의 암담한 전망은 가장 널리 보급된 거룩한 책 즉 성서의 시간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엄격한 사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 현재의 돌이킬 수 없는 사물의 추세에 기초를 둔 것입니다. 이들은 앞으로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연한이 1,000년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권위있게 말하고 있읍니다. 독자인 당신에게는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할 무슨 이유라도 있읍니까?

      18, 19. (ㄱ) 이 지식은 왜 특수 가입자들로 이루어진 모종의 종말론 비밀단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까? (ㄴ) 그 지식을 주는 책은 누구의 이름으로 기록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말하는 이들 암담한 예언자들과는 반대로 “지극히 높으신” 분, “영생하시는” 분은 인류 앞에 놓여 있는 천년간과, 그 후에 계속될 전 인류 사상 가장 장엄한 앞날에 대하여 유쾌하게 말씀하십니다. 희망을 고취하는 이 지식은 “사정에” 밝은 특수 가입자들로 이루어진 모종의 종말론 비밀 단체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이 귀중한 지식의 출처는 전세계 1,500개 언어와 방언을 사용하는 수십억의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성서를 한 권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인생을 밝게해 주는 이 지식을 얻을 수 있읍니다.

      19 성서는 비서 혹은 서기 역할을 한 평범하고 불완전한 인간들에 의하여 기록되었지만, 그 거룩한 책 어디에서도 그것이 인간의 말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저서이며 따라서 그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 “영생하시는” 분의 이름으로 기록되었읍니다. 오늘날까지 그분은 과거에 대한 그리고 우리 앞의 미래에 대한 그 책의 내용에 책임을 지십니다. 그것은 실로 최상의 책입니다!

      20. 우리는 성서 어느 책에서 그 천년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책은 누가 썼읍니까?

      20 그러면 그 책 어디에서 앞으로 올 그 천년기와 그 후의 영원한 시대에 관한 이 지식을 얻을 수 있읍니까? 매우 적절하게도 성서 마지막 책으로 순서가 정해진 책에서 얻을 수 있읍니다. 그 책의 내용은 책명의 의미 그대로입니다. 그 책의 이름은 계시(啟示) 혹은 공개(公開) 혹은 묵시(默示)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 책은 ‘로마’ 제국이 범죄자로 낙인찍고 오늘날 ‘터어키’가 자리잡고 있는 소‘아시아’ 해안 근처 ‘에게’ 해의 유형지 ‘밧모’ 섬으로 보낸 사람에 의하여 기록되었읍니다. 그곳은 실존 장소이며 전설적인 장소가 아닙니다. 유형지에 와 있는 이 죄수는 젊은 시절에는, 당시 ‘로마’의 영토였던 ‘갈릴리’ 도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읍니다. 그는 ‘세베데’의 아들 ‘요한’이었으며, 어부인 그의 형제는 ‘야고보’였읍니다. ‘요한’은 서두에서 자기가 「계시록」을 썼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는 영감으로 그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에 대하여 계시 혹은 공개하는 책이었읍니까? 오늘날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그 대답을 알아 보면서 ‘요한’이 이 책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돌리는지 유의하여 봅시다.

      21. ‘요한’은 서두에서 계시의 책임을 누구에게 돌립니까?

      21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입니다. 그것은 그분이 그의 종들에게 곧 일어나야 할 일을 알리기 위하여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는 그의 천사를 그의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리셨읍니다. ‘요한’은 자기가 본 모든 것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증거하였읍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된 것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성취의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계시 1:1-3, 신 영어 성서(1970년).

      22. “성취의 때가 가깝다”는 말에서 왜 오늘날 우리가 감동을 받습니까?

      22 “성취의 때가 가깝”다는 거의 19세기 전에 기록된 그 말에서 기원 20세기에 사는 오늘날 우리는 감동을 받지 않습니까? 확실히, 시간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곧 일어나야 할 일”이 발생하는 것, 특히 예언된 “천년”이 시작하는 것은 거의 천 구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너무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 천년과 그 직전 사태에 대한 ‘요한’의 기록을 읽어보면 그 때를 더 잘 알 수 있읍니다. 계시록 19:11에서부터 읽어 봅시다.

      23. 흰 말을 타신 분에게는 어떠한 특징들이 있읍니까?

      23 “나는 또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거기에 흰 말이 있었고 신실하고 참된 자라고 불리는 이가 그 위에 타셨는데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또 의로 싸우시는 분입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에 많은 관을 썼고 자기 밖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이 그 몸에 기록되어 있었읍니다. 그는 피로 물든 옷을 입었고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불리었읍니다. 그리고 하늘에 있는 군대가 희고 깨끗한 고운 베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읍니다.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검이 나왔읍니다. 그것으로 모든 나라를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철장을 가지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 확을 밟으실 것입니다.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읍니다.

      24. (ㄱ) 공중에 나는 새들에게 어떠한 초대가 있었읍니까? (ㄴ) 전쟁에 가담하는 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읍니까?

      24 “나는 또 태양 안에 한 천사가 서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는 공중에 날고 있는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들라. 왕들의 살과 사령관들의 살과 힘센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모든 자유인과 종과 작은 자와 큰 자의 살을 먹으라’고 했읍니다. 또 나는 짐승과 세상의 왕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흰 말을 타신 이와 그의 군대를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러나 그 짐승은 잡혔읍니다. 또 그 앞에서 기적을 행하여 짐승의 낙인을 받은 자들과 그의 우상에게 예배한 자들을 미혹하게 한 거짓 예언자도 그 짐승과 함께 잡혔읍니다. 그리고 그들은 산 채로 유황이 타오르는 불 못에 던져졌읍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그 흰 말을 타신 이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맞아 죽었고 모든 새는 그들의 살을 배부르게 먹었읍니다.

      25. 다음에 ‘사단’ 마귀는 어떻게 되며, 얼마 동안 그 상태로 있을 것입니까?

      25 “나는 또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와 큰 사슬을 손에 들고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는 늙은 뱀 곧 악마요 ‘사탄’인 그 용을 잡아 천년 동안 결박하여 ‘아비소스’에 넣고 닫은 후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끝나기까지는 나라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했읍니다. ‘사탄’은 그 후 잠시 동안 풀려 나올 것입니다.

      26. 하늘에 보이는 좌석들에는 누가 앉으며, 그들은 무엇을 합니까?

      26 “나는 또 많은 좌석과 그 위에 심판권을 받은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읍니다. 또 나는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영혼과 짐승이나 그 짐승의 우상에게 예배하지 않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낙인을 받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읍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했읍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아 나지 못했읍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 세력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년 동안 그와 함께 왕노릇할 것입니다.

      27. 지상에는 ‘사단’이 풀려나온 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27 “천년이 끝나면 ‘사탄’은 옥에서 풀려 땅 사방에 있는 나라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게 하려고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을 하려고 그들을 모을 것입니다. 그들의 수효는 바다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그들은 넓은 땅으로 올라와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를 둘러 쌀 것이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들을 미혹하게 하던 악마는 불과 유황의 바다에 던져질 것인데 그곳은 짐승과 거짓 예언자가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영원하도록 밤낮 고통을 당할 것입니다.”—계시 19:11에서 20:10, 새번역.

      28. (ㄱ) 그러므로 무슨 사건들 후에 그 천년이 시작합니까? (ㄴ) 그러면 왜 그 천년이 아직 시작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까?

      28 그 기록을 유의해 보면 “천년”이라는 표현이 여섯번 나옵니다. 또한 그 천년은 “왕들의 왕”과 “세상의 왕들”, “짐승” 및 “거짓 예언자” 사이에 전쟁이 있고 다음에 ‘사단’ 마귀가 결박되고 그가 ‘아비소스’에 던져진 후에 시작합니다. 그러한 사건들은 “곧 일어나야 할 일”의 일부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그러한 사건들과 비교가 될 만한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그 “천년”은 앞으로 시작할 것임이 매우 분명합니다. 그것은 어떤 무기한의 장기간, 우리가 정확히 측정할 수 없는 기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문자적인 천년입니다.

      29. 그 천년을 얼마나 긴 기간으로 보는 것이 하나님의 입증된 시간표에 부합합니까?

      29 그 천년이 무기한의 기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연구가들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새로 형성된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성령을 부어주신 기원 33년 오순절날에 그 천년이 시작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여러 가지 곤란한 문제를 일으키며 그리스도인 회중이 영적으로 생명을 얻은 그 날 오순절 이후로 지금까지 천 구백 사십여년간 영으로 출생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제로 발생한 일과 반대되는 설명을 시도하게 합니다. 문자적인 천년기라야 하나님의 입증된 시간표에 부합합니다.

      30. 왜 우리는 그 천년기에 대한 예언을 세밀히 조사하여 보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됩니까?

      30 그 천년이 이 땅에 가져올 일은 인류 세상이 끝없는 생명과 행복을 누리는 데 절대 필요합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그처럼 아름답게 묘사한 그 놀라운 천년기의 예언적 그림을 즉시 그리고 세밀히 조사하여 보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 지각있는 일이겠읍니까?

      [각주]

      a 성서에서 창세기 5:25-27 참조.

  • 천년기 전에 있을 하늘과 땅 사이의 전쟁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2장

      천년기 전에 있을 하늘과 땅 사이의 전쟁

      1. (ㄱ) 「계시록」에 의하면 천년기의 도래에 앞서 무슨 투쟁이 있게 되어 있읍니까? (ㄴ) 그 전투가 앞으로 일어날 것임이 왜 분명하며, 그 전투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방금, 사도 ‘요한’이 그 천년간에 관하여 미리 본 바를 묘사한 내용을 읽었읍니다. 그때 그러한 놀라운 일이 있을 것으로 예언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천년기(The Millennium)라고 불리웁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영화로운 천년기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묘사하였읍니까? 하늘의 군대와 땅의 인간 군대 사이의 전투였읍니다. 그러한 싸움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나님의 생명을 주는 영으로 출생함으로 영적으로 생명을 얻은 때인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지금까지 발생하지 않았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이 “곧 일어나야 할 일”에 대한 계시를 받기 60여년 전 그 축제일에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셨던 것은 사실입니다. (계시 1:1, 2, 신영성) 그러나 ‘요한’이 계시를 받은 후에도 그러한 “왕들의 왕”과 “세상의 왕”들 사이의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읍니다. 그 전쟁은 앞으로 있을 일이며 우리는 그에 대한 사전 기록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 하면 그 때가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2, 3. (ㄱ) 그 전투는 누가 참전하게 될 전투입니까? (ㄴ) 전쟁을 수행하는 면에서 영화롭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땅에 계시던 때의 예수와 어떻게 다릅니까?

      2 이 다가오는 전투는 핵무기와 화학 무기를 과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강대국들이 미친듯이 상호 멸절을 꾀하는 소름끼치는 제 3차 세계 대전이 아닙니다. 이 다가오는 전투는 “세상의 왕들” 전부가, 정치 이념의 차이의 관계없이, 연합 세력을 형성하여 그들의 공동 적대자 곧 그들 모두보다 우월한 왕 겸 주 즉 “왕들의 왕”, “주들의 주”를 대항할 전투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계시록 19:13에 의하면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합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이 되기 이전에 그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과 하늘에 계실 때에 받은 칭호입니다.—요한 1:1-3, 18.

      3 그분이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은 흰 말을 탄 군대를 인솔하지도 않으셨고 자기를 돕도록 열 두 군단의 천사를 부르는 길을 택하지도 않으셨읍니다. (마태 26:52-54) 그러나 하늘에서 영화롭게 되신 이후, 그리고 기원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 그분은 최고 심판관 여호와 하나님의 집행관의 역할을 할 권한과 기원전 732년에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의 땅을 침공한 ‘앗수르’ 왕 ‘산헤립’의 군인 185,000명을 하루 밤에 죽인, 그것도 핵폭탄을 사용하지 않고 그렇게 한 천사와 같이 지상의 적들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받으셨읍니다. (열왕 하 19:32-36; 이사야 37:33-37) 이것은 ‘요한’이 하늘의 용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신실하고 참된 자라고 불리는 이가 그 [흰 말] 위에 타셨는데 그는 의로 심판하시고 또 의로 싸우시는 분입니다.”—계시 19:11, 새번역.

      4. 그들의 공동 적대자의 입에서 날카로운 긴 칼이 나오는 것은 국가들에게 무엇을 의미할 것입니까?

      4 이것을 핵무기와 화학 무기로 무장한 오늘날 지상의 국가들 간의 3차 세계 대전을 훨씬 능가합니다. 이번에는 국가들이 혈과 육을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흰 말을 탄 자와 그분의 천군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혀를 사용하여 말하고 적을 처형하라는 명령을 발하실 때에 그것은 마치 권능있는 집행관의 긴 칼이 휘둘러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날카로운 검이 나왔읍니다. 그것으로 모든 나라를 치실 것입니다. 그는 친히 철장을 가지고 모든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 확을 밟으실 것입니다.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읍니다.”—계시 19:15, 16, 새번역.

      5, 6. (ㄱ) 국가들은 어느 장소에서 왕들의 왕과 맞서 전투를 하게 될 것이며, 격파하고 분쇄하는 어떠한 일이 있을 것입니까? (ㄴ) “하나님의 큰 잔치”에 천사가 초대하는 것은 땅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무공훈장을 받고 명예롭게 매장될 것인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5 이것은 반종교적이고 급진적인 인간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서 싸우는 일종의 3차 세계 대전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입니다. 그때까지는 이미 국제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을 횡포하게 처치하였을 국가들이 이번에는 ‘아마겟돈’이라고 불리우는 세계 사태 진전의 단계에 모여 있을 것입니다. “그 세 영은 ‘히브리’ 말로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았”다고 한 기록과 같을 것입니다. (계시 16:14-16, 새번역) 바로 이 세계 상태에서 왕들의 왕, 주들의 주께서는 포도주 확의 포도와 같이 반항적인 국가들을 격파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격렬한 진노의 포도주 확”을 밟으실 것입니다. 그들이 그분께는 무력한 양떼 같을 것이며 그분은 그들을 “철장”을 사용하여 토기장이의 질그릇같이 분쇄할 것입니다. (계시 14:18-20; 2:26, 27; 12:5; 시 2:8, 9)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서 땅에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무공 훈장을 받고 명예롭게 매장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는 그것을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을 위하여 “베푼 하나님의 큰 잔치”라고 불렀읍니다.

      6 햇빛에 빛나는 천사는 공중에 나는 모든 새에게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 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 대한 기록은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하는 말로 끝납니다. (계시 19:17, 18, 21) 썩은 고기를 먹는 새들에게 먹힐 사람들에 관한 이러한 묘사로 볼 때 모든 전쟁 중의 전쟁이 될 이 전쟁을 위하여 모든 나라들의 국민들의 총동원과 조직화가 있을 것 같습니다.

      7. 땅의 임금들의 ‘아마겟돈’ 전열에 있는 “짐승”은 무엇입니까?

      7 ‘아마겟돈’에서 있을 전열에 관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더라].” (계시 19:19) 이 “짐승”은 이들 “땅의 임금들”의 군대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는 동물 곧 단순한 ‘마스코트’입니까? 문자적인 짐승이 ‘아마겟돈’에서 싸우는 군대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읍니까? 아무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의미하는 것은 문자적인 짐승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징적인 짐승입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적 중요성을 띤 세계적 상징물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그것은 계시록 13장 1절부터 8절에서 묘사되어 있는 상징적 짐승이기 때문입니다. 2절은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하고 알려 줍니다. 그것은 “용” 즉 ‘사단’ 마귀가 세계의 모든 사람을 다스리기 위한 보이는 도구로 오래 전에 설립한 세계적 정치 제도입니다. 그것은 천년 이상, 아니, 기원전 22세기 이후로 사천 백여년 동안 온 땅에서 짐승같은 행동을 계속하여 왔읍니다.

      8. 그 상징적 짐승은 언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그 권한을 어느 정도로 확장하였읍니까?

      8 이 상징적 짐승은 실제 짐승의 사냥군이었던 ‘니므롯’ 시대에 땅의 주민들을 크게 괴롭히기 시작하였읍니다. 이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 계곡의 ‘시날’ 땅에서 ‘바벨’탑을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2189년 경이었읍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어 ‘여호와를 반대하는 강력한 사냥군’이라고 불리우게 되었읍니다. 그는 구‘바벨론’ 즉 초기 ‘바벨론’ 제국을 설립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창세기 10:10-12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더라].” (창세 10:8-12, 신세 참조; 11:1-9) 이렇게 조그만 세력으로 시작된 이 상징적 짐승은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세력과 권한을 계속 확장하여 마침내 그것은 온 땅을 지배하는 정치적 보좌를 확립하게 되었읍니다.

      9. (ㄱ) 상징적 짐승의 일곱 머리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ㄴ) 그 짐승은 그 “열 뿔”을 사용하여 누구를 대항하였읍니까?

      9 지나간 수천년간 이 상징적 짐승은 그 정치 제도의 여러 성원국들로 하여금 지배적인 세계 강국으로 행동하게 하였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계시록 13장은 이 상징적 짐승을 연속적인 일곱 세계 강국 즉 (1) ‘애굽’ (2) ‘앗수르’ (3) 신‘바빌로니아’ (4) ‘메도-페르샤’ (5) 희랍 (6) ‘로마’ 및 (7) 영미 이중 세계 강국을 대표하는 일곱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 일곱 머리 가진 짐승은 상징적 “열 뿔”을 가지고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시대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추종자들을 포함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숭배자들을 그 뿔로 받았고 찔렀고 학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9:19에서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말 탄 자” 예수 그리스도의 천사들로 이루어진 천군을 대항하여 전쟁하는 대열에 짐승과 함께 늘어서 있다고 묘사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10. (ㄱ) 땅의 임금들과 함께 전열에 서 있는 “거짓 선지자”는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예언합니까? (ㄴ) 그것이 만들자고 제창한 “짐승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10 계시록 19:20은 또한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와 함께 “거짓 선지자” 곧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가 있다고 언급합니다. 이것은 종교적 큰 ‘바벨론’에 속한 종교적 예언자가 아니라 정치적 예언자입니다. 그것은 계시록 13:11-17에 묘사되어 있는 그 정치 조직입니다. 거기에서는 그것이 짐승의 우상을 만들자고 제창하고 다음에 그 우상에게 생기를 넣어 그 우상이 권위있게 말하게한 두 뿔 가진 짐승으로 나타나 있읍니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은 영미 이중 세계 강국 즉 일곱째 세계 강국이며 일곱 머리 가진 짐승의 정치적 “우상”은 오늘날 국제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는 기구 즉 국제 연합입니다. 전세계는 오늘날 영국과 미국으로 구성된 이 일곱째 세계 강국이 인류 세계에 지시를 내리려고 노력하고 인류의 장래에 대하여 인상적인 예언을 하고 있음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그분의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거짓” 예언자입니다.

      11, 12. (ㄱ) 어떠한 정신이 임금들과 군대를 ‘아마겟돈’ 전쟁으로 이동시킵니까? (ㄴ) 전세는 왜 일방적일 것이 분명하며, ‘요한’은 그 전투가 어떻게 될 것을 미리 보았읍니까?

      11 그 상징적 짐승은 온전한 상태로 발전하여 기원 1763년 이후로 일곱째 머리를 가지게 되었읍니다. 지금까지 국제 연합은 또한 (그 전신인 국제 연맹을 생각지 않고도) 사반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읍니다. “온 천하 임금들”은 땅을 위한 정당한 정부인 하나님의 왕국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국가적 목표를 추구하고 자기들의 국가적 주권을 보존하려는 추진력에 따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모아지고 있읍니다. 사도 ‘요한’이 환상으로 미리 본 ‘아마겟돈’에서 있을 미증유의 전투의 때는 아주 가까왔으며, 자기 일에 바쁜 세상 사람들의 생각보다 가까왔읍니다!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그분의 왕들의 왕께서 전면 전쟁으로 모아지고 있는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를 적대하시므로 전세는 처음부터 일방적일 수밖에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요한’의 다음과 같은 그 전투에 대한 예언적 묘사가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있읍니다.

      ‘아마겟돈’에서 있을 전투

      12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 불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계시 19:19-21.

      13. (ㄱ)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전투에서 원수 조직 중 얼마나 되는 부분을 적대하십니까? (ㄴ) “짐승”은 무엇을 하다가 잡히며, 누가 그것을 몰아서 잡히게 합니까?

      13 이 전투 기록으로 볼 때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는 상징적 용 즉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자의 전체 보이는 조직을 적대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일곱 머리를 가진 짐승으로 상징된 그 보이는 세계적 조직을 지지하는 것이 그 조직의 구성 요소 전부 즉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 사령관들, 강한 자, 말 탄 자들, 자유인들, 노예들, 작은 자와 큰 자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또한 지상의 그 보이는 제도의 일부입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이 세상의 보이는 전체 조직 중 주요 부분인 영미 이중 세계 강국이기 때문입니다. 그 전체 세계 제도는 세상의 불경건한 모든 행위에 대한 그리고 세상이 사람들을 괴롭힌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집행을 교묘히 피할 만큼 교활하지 못합니다. 상징적 짐승은 거짓 선지자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충실한 숭배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악행을 저지르다가 “잡”힙니다. 이 사나운 짐승을 몰아서 잡히게 할 분은 왕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것은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처럼 멸망됩니다.

      14.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던짐을 당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14 이 짐승같은 정치적 통치의 세계 제도와 정치적 “거짓 선지자”는 인류를 괴롭히는 일을 두번 다시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어서 기능을 상실한 정치 체제로서가 아니라 계시록 19:20에서 말하듯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울 것입니다. 그들은 이 “불못”에서 살아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전투에서의 그들의 죽음은 죄인 ‘아담’이 그의 모든 인간 후손들에게 가져온 죽음으로 인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못”은 또 다른 종류의 죽음 곧 부활이 없는 끝없는 죽음을 상징합니다. 계시록 자체(20:14)는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사를 관리하는 현 정치 제도를 영속화하기 위하여 애국적으로 분투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실패할 것입니다!

      15. ‘아마겟돈’에서 죽임을 당하는 통치자들과 통치받는 사람들이 부활될 것인지의 여부를 무엇이 알려 줍니까?

      15 그러면 통치자로 혹은 통치받는 백성으로 왕들의 왕의 수중에 있는 하나님의 왕국을 반대하고 상징적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편들어 싸우는 다른 사람들은 부활을 받을 것입니까? 그들은 완전한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투사이신 왕들의 왕의 입에서 날카로운 칼과 같이 나오는 혀는 그들 모두에 대한 처형 명령을 발하며 천사들로 된 천군은 왕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그 고의적인 반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국가와 정부를 위하여 “대의에 목숨을 걸었다가” 명예로운 죽음을 당한 자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기념 묘지 즉 매년 전몰 장병 기념일에 추도객들이 찾아가는 국군묘지에 안장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부활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시체가 ‘아마겟돈’ 전쟁터에 널려 있어 악취를 풍기는 그 시체에 썩은 고기를 먹는 모든 새가 모인다고 묘사되어 있읍니다. 예언은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고 알려 줍니다. 새들은 “하나님의 큰 잔치”에서 실컷 먹을 것입니다.—계시 19:17-21.

      16. (ㄱ) 땅과 (ㄴ) 새들과 (ㄷ) 짐승의 숭배자 아닌 예외의 사람들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생존할 것인가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16 그 기록은 “임금들”이 통치한 문자적인 땅이 불타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은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땅은 ‘아마겟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서 생존합니다. 또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는 생존하여 땅에 흩어진 시체의 고기를 먹습니다. 그러나 또한 지상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 후에 생존한 사람들이 있읍니다. 이것이 이 전투 기록 중에는 직접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 생존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전투시에 땅의 모든 주민이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받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에 비하면 수효는 적지만 예외가 있을 것입니다. (계시 19:20) 하나님의 보좌 앞과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 있는 것으로 사도 ‘요한’이 이전 환상에서 본 “큰 무리”는 어떠합니까? 그들은 ‘아마겟돈’에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대항하여 싸우는 자들에 끼어 있지 않습니다.

      17. 계시록 7장은 하나님과 그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큰 무리”의 태도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17 ‘요한’은 이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들이]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더라].” 이십사 장로 중 하나는 이들에 대하여 질문하고 나서 ‘요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계시 7:9-14)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오는 이 “큰 무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반대하지 않았읍니다. “큰 무리”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을 거절하였읍니다.

      18.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시작할 때에 왜 땅은 무인지대가 아닐 것입니까?

      18 그러므로 “큰 무리”는 ‘아마겟돈’에서 처형되는 사람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을 웅대한 절정으로 하는 “큰 환난”에서 나올 것입니다. “큰 무리”는 그 “큰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자 여호와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환호하며, 종려 가지를 흔들듯이, 앞에 놓인 천년을 즐거움으로 기대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영광스러운 천년이 시작할 때에 땅은 무인 지대가 아닐 것입니다.

  • 천년기를 환상으로 미리 봄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3장

      천년기를 환상으로 미리 봄

      1, 2. (ㄱ) 땅은 ‘아마겟돈’에서 있을 전쟁에서 전소될 것입니까? (ㄴ) 이 사실은 그 후에 ‘사단’과 그의 악귀들이 당하는 일로 어떻게 증명됩니까?

      이 지구는 ‘아마겟돈’에서 있을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의 전쟁”에서 전소되어 재와 연기로 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실은 그 전쟁 직후 ‘사단’ 마귀가 당할 일로 증명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그와 그의 악귀 천사들은 하늘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탄생한 후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패하여 쫓겨 내려 온 땅에 그들이 그대로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단’과 그의 악귀들은 “짧은 기간”(신세) 땅 근처에 감금되어 있도록 그곳으로 던져졌던 것입니다. (계시 12:7-13)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시까지 지구에 감금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는 그들에게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땅으로 내려 올 필요가 있읍니다. 이에 관하여 우리는 ‘요한’의 환상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게 됩니다.

      2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계시 20:1-3.

      3. ‘사단’ 마귀만이 무저갱에 던져집니까? 이로 말미암아 ‘사단’의 어떠한 싸움이 끝납니까?

      3 ‘사단’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났을 때에 그의 악귀 천사들은 그와 함께 쫓겨나 지구 근처에 감금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통치자가 당하는 일을 그들도 당합니다. 그들은 ‘사단’ 마귀와 함께 잡히고 사슬에 결박되고 천년 동안 무저갱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세상 나라를 미혹하는 일이 더 이상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그리스도인 후사들 중 아직 지상에 남은 자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일이 끝날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계시록 12:13, 17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하늘의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상징]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 지라.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4, 5. (ㄱ) 그 싸움은 왕국 남은 자와 “큰 무리”를 전멸할 것입니까? 이에 대한 어떠한 증언이 있읍니까? (ㄴ) ‘사단’의 무저갱의 감금은 땅을 누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까?

      4 이 마귀적 싸움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왕국 후사들의 남은 자 모두를 멸하지는 못합니다. 그 싸움은 또한 메시야 예수에 대한 이러한 증거를 받아들이고 땅의 모든 나라에서 나와 왕국 남은 자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의 영적 성전에서 그분을 숭배하는 “큰 무리”를 전멸하지도 못합니다. 계시록 7:9-15은 각 인종과 나라와 족속에서 나온 이 “큰 무리”의 생존을 증언하여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

      5 그러므로 ‘사단’과 그의 악귀 천사들의 무저갱의 감금은 땅을 인간 주민이 전혀 없게 황폐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무저갱의 감금은 땅을 왕국 남은 자와 “큰 무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천사들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무저갱에 천년 동안 갇혀 있을 때 그들은 아주 ‘없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입니다.—계시 17:8 비교.

      일천년간 땅을 다스릴 통치자들

      6.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가는 일은 지구 통치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일으킵니까?

      6 ‘사단’ 마귀가 더는 인류 세상의 통치자 혹은 사물의 제도의 “신”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 12:31; 14:30; 16:11; 고린도 후 4:4) 그러면 ‘사단’ 마귀가 무저갱에 들어가고 “없”을 천년 동안 누가 사람이 거주하는 땅을 다스릴 것입니까?

      7. ‘요한’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되는 환상에서 무엇을 보았읍니까?

      7 환상 가운데서 사도 ‘요한’은 누가 땅을 통치할 것인지를 보았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계시 20:4-6.

      8, 9. (ㄱ) 어디에 있는 보좌가 보였으며, 실제로 몇개의 보좌가 그곳에 있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요한’은 어느 “날”이 시작되는 것을 보았으며, ‘바울’은 ‘아덴’에서 그 “날”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8 ‘요한’이 본 보좌들은 땅이 아니라 하늘에 있었읍니다. 왜냐 하면 이들은 천년간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 통치할 자들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좌의 수는 정해져 있었읍니다. 그 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맞고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144,000명의 영적 ‘이스라엘’인들과 상응하는 144,000이었읍니다. (계시 7:1-8; 14:1-5) ‘사단’ 마귀가 “이 세상 임금”으로 군림했던 지난 수천년간 공의가 결여되었고 불공평이 있었으므로 인류를 심판하는 권능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들 144,000명의 보조 심판관들에게 맡겨지는 것은 훌륭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이 그 144,000개의 보좌 및 그 보좌에 앉은 자들을 보았을 때에 그는 19세기 전에 ‘아덴’의 ‘아레오바고’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던 영광스러운 심판 날이 시작되는 광경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9 “이것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을 통하여 ··· 세계를 심판하실 날을 정하시고 또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근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사도 17:22-31, 새번역.

      10, 11. ‘요한’이 본 것은 어떠한 “영혼들”이었으며, 그들은 무슨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읍니까?

      10 사도 ‘요한’은 심판하는 보좌에 앉은 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144,000 왕국 공동 후사들임을 밝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도끼로 처형된 자들, 신세]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있더라].”—계시 20:4.

      11 사도 ‘요한’은 머리 없는 “영혼들”을 보지 않았읍니다. 그는 “영혼”이라는 묘사적인 말을 사용함으로써 영매자와 같이 “육체에서 분리된 영”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영감 받은 성경이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방식 그대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었읍니다. 그는 살아있고 의식있는 몸을 지닌 존재자를 의미하였으며 그 몸을 통하여 그들은 개성을 나타냈읍니다. 단, 보이지 않는 하늘에 있는 심판하는 보좌에 앉기 위하여는 그들의 몸이 영의 몸이라야 할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고린도 전서 15:44(새번역)은 “[죽을 때에] 육의 몸으로 심겨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하고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천적 몸을 지닌 살아있고 의식있는 몸들, 심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정신 능력을 갖춘 자들을 보았으며 ‘요한’은 이들이 예수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였기 때문에 “도끼로 처형된” 자들이라고 밝혔읍니다.

      “도끼로 처형[됨]”

      12. (ㄱ) 그리스도의 왕국 공동 후사 모두는 문자 그대로 도끼로 처형되었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상징적으로 도끼로 처형하는 일을 하십니까,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합니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합니까?

      1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 전부가 그들이 예수를 증거하고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였다는 이유로 도끼로 처형되거나 목베임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여서는 안됩니다! ‘요한’의 친형제인 사도 ‘야고보’는 칼에 죽임을 당하였는데,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아마 그를 목베어 죽였을 것입니다. (사도 12:1, 2) 전하는 바에 의하면 사도 ‘바울’은 이태리 ‘로마’에서 목베임을 당하였읍니다. (디모데 후 4:6-8) 그러나 144,000명 모두가 목이 잘리는 순교를 당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도끼로 처형되는 이유가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였기 때문이므로, 문자적이든 상징적이든 그들을 도끼로 처형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님이 확실합니다. 그들을 처형하는 것은 정치 국가입니다. 사도 ‘요한’을 ‘밧모’ 섬에 유형시킨 ‘로마’ 제국의 경우, 이러한 처형 권능은 막대기 다발 안에 끼운 도끼 즉 범죄자를 치고 목베는 데 사용한 도끼로 상징되었읍니다. 이 상징물은 ‘패시즈’(Fasces)라고 불리웠으며, 행렬시에는 ‘로마’의 최고 집정관의 앞장을 서는 ‘릭토르’(처벌관)들이 받들고 다녔읍니다. 이태리 ‘파시스트’당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그의 집정시에 이 상징물을 일반에 보급하였읍니다.

      13. 계시록 20:4에 의하면 전세계 정치 국가는 비유적으로 왜 왕국 후사들 144,000명을 도끼로 처형합니까?

      13 사실상, 이 세상 정치 국가는 144,000명을 그 국가 권위 하에서 살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심판함으로써 그들 왕국 후사들을 처형합니다. 국가는 그들에게 말하자면 사형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사도 ‘요한’이 명시하였읍니다. 어떠한 점에서? ‘요한’이 말하듯이, 그들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도 아니한” 점에서 그러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들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온 땅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 어떠한 정치 국가도 숭배하지 않았읍니다. 현 20세기에 있는 이들 왕국 후사들의 남은 자들은 또한 이전에는 국제 연맹이라고 했었지만 현재에는 국제 연합이라는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도 숭배하지 않았읍니다. 상징적 “짐승”인 전세계적 정치 국가는 ‘아마겟돈’에서 있을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에서 “유황 불 붙는 못”으로 상징된 멸망으로 들어갑니다.—계시 13:1-17; 14:9-11; 19:19, 20; 20:4.

      14.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어떠한 면으로 짐승을 숭배하지 않으며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습니까?

      14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상징적 “짐승”을 숭배하지 않으며, 정치에 간섭하지도, 정치적 직책을 획득코자 입후보하지도, 유혈 전쟁에 가담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국가의 노예이며 흔히 짐승같은 세속적 활동을 수행하는 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을 상징하는 그들의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않습니다. 144,000명은 또한 ‘짐승의 우상’을 숭배하여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인간이 만든 국제 기구에 구원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 전파한 하나님만을 숭배하며 우주 주권자로 그분께 충성을 바칩니다. 그들은 지상의 정치 국가를 높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바로,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천년간 인류 세상을 통치하도록 임명하신 그리스도 메시야임을 증거합니다. “짐승”이 144,000명을 도끼로 처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15. 144,000명 모두는 마침내 지상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되며 그들은 어떻게 하늘에 있는 심판하는 보좌에 앉을 수 있읍니까?

      15 끔찍한 순교를 당하여 지상 행로를 마치든지 그렇지 않든지 간에 144,000명의 왕국 후사 모두는 마침내 육체의 죽음을 당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서 하늘에 있는 그 심판하는 보좌에 앉습니까? 그것은 인간 영혼불멸에 의해서가 아니라 죽은 자의 부활에 의하여 가능합니다. ‘요한’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즉 도끼로 처형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였다고 말합니다.—계시 20:4.

      16. 그들은 어떠한 피조물로 다시 살아나며, 그들은 얼마나 긴 생활을 누립니까?

      16 그들은 지상에서 인간 영혼으로서가 아니라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적 아들로 다시 “살아”났읍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 중에서 그들이 다시 살아난 모습을 보았읍니다. 그들은 오늘날 인류보다 수명이 깁니다. 그들은 969세를 산 ‘므두셀라’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읍니다. (창세 5:25-27)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며 천년간을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후에 끝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부활시에 불멸성을 옷입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전 15:50-57) 그들이 부활받는 순간부터 그들에게는 약함도 부패도 없고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죽어가는 육체에 ‘아담’과 ‘하와’로부터 유전받은 불완전성의 아무런 흔적도 없는 온전한 생명에 이릅니다. 그들은 완전히 살아 있을 것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받고 영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고린도 전 15:42-55.

      17. (ㄱ) “큰 환난”을 생존한 “큰 무리”는 ‘사단’이 무저갱에 들어간 직후 즉각적으로 완전하게 될 것입니까? (ㄴ) 그들은 언제 하나님의 율법을 흠없이 지킬 수 있을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7 부활 직후의 그들의 상태와 천년 시초의 나머지 인류 세상의 상태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을 이었읍니다. “그들은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 했읍니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했읍니다.” (계시 20:4, 5, 새번역) 이것은 “큰 환난”을 생존한 하나님의 영적 성전의 숭배자들의 “큰 무리”도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들이 결박되고 무저갱에 들어간 직후 즉각적으로 육체의 완전함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하다는 선언을 받는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여러 가지 마련과 축복을 통해 향상되고 점진적으로 진보하여 인간 완전성에 이르고 무죄한 육체로 하나님의 율법을 흠없이 지킬 수 있는 능력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기념 묘지와 물 속에 매장되어 잠자는 수십억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18. (ㄱ) 천년기 중에 ‘하데스’에서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를 동정한 어느 사람이 포함될 것입니까? (ㄴ) 그러한 인간 부활자들은 언제 인간 완전성에 이를 것이며, 어떻게 그러합니까?

      18 이들에게 일어날 일에 대하여는 천년기를 미리 본 ‘요한’의 기록에서 알려 줍니다. “바다가 그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주고 사망과 ‘하데스’도 그 가운데 있는 죽은 자들을 내어 놓았읍니다. 그들이 각각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읍니다.” (계시 20:13, 새번역) 이와 같이 ‘하데스’ 즉 죽은 인류의 일반 무덤에서 나올 자들 가운데는 예수의 곁에서 형주에 달려 죽은 그 행악자가 포함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바 있읍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그대에게 말하노라. 그대는 바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 23:43, ‘로더함’역; 신세계역) 이 행악자는 ‘하데스’에서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에 의하여 인류를 위해 재설립된 지상 낙원에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낙원에서 행악자는 부활되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자기의 인생 행로를 시정하고 인간 불완전성과 죄있는 상태를 고침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통치의 천년 끝에 가서는 그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 완전성의 목표에 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년기 끝에 가서 지상에서 인간 완전성과 무죄함을 얻게 되는 이들 모두는 그들의 완전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우주 주권 통치에 대한 그들의 충성의 마지막 시험을 당해야 합니다.

      19. (ㄱ) 그러면 어떠한 의미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합니까? (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충성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됩니까?

      19 성실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정당한 다스림에 충실을 증명하는 완전하게 된 그러한 지상의 사람들은 최고 심판관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는 선언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 무죄한 사람들을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선언하실 것이며 지상 낙원에서 행복 가운데 누릴 끝없는 생명의 권리를 그들에게 부여하실 것입니다. 이제 모든 단죄에서 해방된 이들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완전한 관점에서 볼 때 참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로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끝나기까지 살아나지 못했읍니다.” (계시 20:5, 새번역) 완전케 된 인간들로서 천년이 끝난 후에 경건한 충성의 시험을 충실하게 통과하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히 멸망될 것입니다. ‘요한’이 그 때에 있을 일을 미리 보고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사망과 ‘하데스’가 불바다에 던져졌읍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누구나 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다 이 불바다에 던져졌읍니다.” (계시 20:14, 15, 새번역) 그러므로 이들 불충성스러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첫째 부활”

      20-22. (ㄱ) ‘요한’이 “첫째 부활에” 대한 논의로 돌아갔을 때에 왜 에베소 2:1-6에 대하여 의문이 생깁니까? (ㄴ) 이와 동일하게, ‘바울’이 그리스도인 할례 문제를 논한 골로새 2:11-13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20 “그 나머지 죽은 자들”에 대한 그 말을 삽입한 후에 사도 ‘요한’은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사람들[도끼로 처형된 자들]”의 부활 문제로 다시 돌아가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 세력을 부리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년 동안 그와 함께 왕노릇 할 것입니다.”—계시 20:5, 6, 새번역.

      21 그리스도의 이들 144,000명의 왕국 공동 후사들의 이 “첫째 부활”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2:1-6에서 말한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거기에서 그 사도는 소‘아시아’ ‘에베소’ 시에 있던 제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잘못을 저질러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죄 가운데 있던 그 때에는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살았으며 허공에 출몰하는 것들의 수령인 악령의 지시를 따라서 살았읍니다. ···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잘못을 저지르고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려 주셨읍니다. 이와 같이 은총으로 여러분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한 자리에 앉게 해 주셨읍니다.”—2:1-6, 공동 번역.

      22 이와 동일하게 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의 ‘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인 할례 문제를 논할 때에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여러분은 ···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동시에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다시 살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 가운데서 죽었었고 또 육체의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데서 죽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읍니다.”—골로새 2:11-13, 새번역.

      23. (ㄱ) 전술한 성귀들이 그리스도인 생활의 “첫” 경험 중 하나를 지적하기 때문에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은 “첫째 부활”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그러므로, ‘사단’이 천년 동안 결박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합니까?

      23 우리는 이와 같이 비유적인 의미 혹은 영적인 의미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로에서 “첫” 경험 중 하나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 경험이 계시록 20:5, 6에 언급된 “첫째 부활”이라고 생각하고 「신 가톨릭 백과 사전」(1967년판)은 “천년기설”이라는 표제 하에 다음과 같이 해설하였읍니다.

      ··· “첫째 부활”은 세례[침례]를 상징한다. ··· 그것에 의하여 사람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 ··· 지상에 있는 자들이든 하늘에 있는 자들이든 충실한 자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부활시로부터 마지막 심판시까지 그 영광스러운 면으로 고려되는 교회의 전체 수명을 상징하는 예수의 1,000년 통치에 가담한다. ··· 이 동일한 기간중에 ‘사단’이 사슬에 매이는 것은 ‘사단’의 영향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지만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단’의 영향이 줄어드는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의 결과이다. 마지막 때를 눈앞에 두고 최후의 투쟁을 한 후에 ··· ‘사단’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완전히 정복될 것이다. ···

      24, 25. 기원 33년 오순절 이래 교회의 수명은 얼마나 되었으며, ‘바울’은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왕노릇하는 일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4 “첫째 부활”에 관한 그러한 설명은 ‘요한’이 계시록 20:1-6에서 기술하고 있는 바와 일치합니까?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 회중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침례를 받기 시작한 기원 33년 칠칠절 이후로 지금까지, “교회의 수명”은 단지 천년이 아니라 거의 그 두 배임이 증명되었읍니다. 거의 2천년이 되는 이 기간중에 참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 중 한 사람이라도, 심지어 그리스도인 회중 자체 내에서라도, “왕노릇”한 일이 있읍니까?

      25 사도들 중 누가 그와 같이 “왕노릇”했읍니까? 사도 ‘바울’이 아니었읍니다! 사실 그는 ‘고린도’ 회중의 어떤 야심적인 성원들에게 이렇게 편지한 일이 있었읍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 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생각컨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고린도 전 4:8, 9) 그는 자기의 선교인 동반자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인이 육체의 죽음을 경험한 후에 통치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믿을 만한 말씀이 여기 있읍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참고 견디면 그와 함께 왕노릇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를 모른다고 하면 그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디모데 후 2:11, 12, 새번역.

      26. ‘라오디게아’인들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침례일로부터 지상에서 왕노릇하는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26 그리고 사도 ‘요한’은 어떠합니까? 유배를 당하여 ‘로마’의 유형지 ‘밧모’ 섬에 있을 때에 그는 부활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라오디게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하였읍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시 3:21) 통치하는 것은 모두 장래의 일,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이 육체의 죽음을 경험한 후의 일이었읍니다. 그리스도인이 물에서 침례를 받은 날 이후에 이 땅에서 통치하는 일이 결코 있지 않게 되어 있었읍니다.

      27, 28. (ㄱ) 계시록 20:4은 자진적인 물침례로 그들이 비유적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을 묘사합니까? (ㄴ) 사망은 어떠한 수단에 의하여 또한 무엇 때문에 온다고 묘사되어 있으며, 따라서 어떠한 종류의 사망으로부터 “첫째 부활”이 있어야 합니까?

      27 그들은 어떠한 부활에 의하여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합니까? 그것은 비유적인 부활입니까? 아니면 실제 사망과 무덤으로부터의 문자적인 부활입니까? 계시록 20:4은 그들이 예수 자신의 경우와 같이 물에서 침례를 받을 때에 자진적으로 경험하는 비유적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동하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이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즉 “도끼로 처형된”(신세) 사망입니다.

      28 그들이 ‘도끼로 처형’되는 이런 일은 자기들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리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의 뜻에 의한 것이며, 그 일은 그들이 물에서 침례를 받은 후에 일어나며,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며 하나님이 (지구를 포함한) 우주의 정당한 통치자임을 옹호하기 때문입니다. ‘도끼로 처형’하는 이 일의 결과로 마침내 그들은 실제로 육체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물 침례시에 발생하는 비유적 사망으로부터가 아니라 문자적인 육체의 죽음으로부터 왕노릇하기 위하여 ‘다시 살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왕노릇하는 것은 그들이 물에서 침례를 받은 후에 경험하는 영적 부활 후에 땅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계시록 20:4-6에서 말한 부활은 ‘스올’ 즉 인류의 일반 무덤에서의 죽음의 잠으로부터 실제로 문자 그대로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29, 30. (ㄱ) “둘째 사망이 아무 세력을 부리지 못”한다는 말은 단순히 비유적으로 부활된 사람들에게 적용됩니까? (ㄴ) ‘바울’은 히브리 10:26-31에서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9 이에 대한 증거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이 또 있읍니다. 계시록 20:6(새번역)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합니다. 이 사람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아무 세력을 부리지 못합니다.” 그 둘째 사망이 “유황이 타오르는 불못”으로 상징되어 있읍니다. (계시 19:20; 20:14, 새번역) 이것은 단순히 물에서 침례를 받고 허물과 죄 가운데에서의 사망으로부터 영적으로 살아났고 영적으로 함께 일으킴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와 함께 ··· 하늘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말입니까? (에베소 2:1, 5, 6, 새번역)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 침례받은 자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시험을 받고 불충실하게 되어 “둘째 사망” 즉 완전한 멸절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직도 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희랍 ‘고린도’에 있는 침례받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12) 또한 히브리서 10:26-31(새번역)은 침례받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30 “우리가 진리에 대한 지식을 얻은 다음에도 의식적으로 계속 죄를 짓는다면 속죄의 제사는 다시 없을 것입니다. 다만 심판과 반역자들을 삼켜버릴 맹렬한 불을 두려움으로 기다릴 것뿐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두세 증인에 의하여 사형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계약의 피를 경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모욕하는 사람은 얼마나 더 무서운 벌을 받아야 하겠는가 생각해 보시오. ‘원수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 주겠다’ 하시고 또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다’고 말씀하신 분을 우리는 알고 있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심판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31. 히브리서 6:4-8은 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1 또한 히브리서 6:4-8(새번역)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번 빛을 받은 사람들과 하늘의 선물을 맛보고 성령과 함께 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장차 올 세상의 권능을 맛본 사람들이 타락하면 그들은 회개하여 다시 새로와질 수 없읍니다. 그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형주]에 다시 달아 욕을 보이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땅이 자주 내리는 비를 빨아들여 농사짓는 사람들을 위하여 농작물을 자라게 한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낸다면 그 땅은 쓸데없게 되며 오래지 않아 저주를 받고 마침내 불에 타버릴 것입니다.”

      32. 어떠한 부활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둘째 사망”의 “권세”에 복종하지 않고 “둘째 사망”의 해를 입지 않습니까?

      32 이에 비추어 볼 때 “첫째 부활”은 물 침례를 받은 후에 겪는 그리고 침례받은 사람이 여전히 “둘째 사망”을 당할 수 있고 그 “권세”에 굴복할 수 있는 상태에 방치하는 비유적 부활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올’에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승천하신 그 보이지 않는 하늘로 하나님의 영자로서의 생명으로 옮겨가는 문자적인 실제 부활입니다. 이들에게 예수의 이러한 약속이 적용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시 2:10, 11)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 부활시에 불멸성과 불후성을 옷입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 없으며 그 “권세”에 복종하지 않습니다.—고린도 전 15:53, 54.

      33. 그것은 어떠한 두가지 면으로 “첫째 부활”이라고 불리울 수 있읍니까?

      33 우리는 지금 이것을 “첫째 부활”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인식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이 부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지 사흘 째 날에 경험하신 부활 즉, 즉각적으로 온전한 생명에 이른 부활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가 되셨읍니다. (계시 1:5; 골로새 1:18) 그 부활은 시기에 있어서 “나머지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것’보다 앞섭니다. 그 부활은 시기에 있어서 첫째일뿐 아니라 죽은 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부활이라는 점에서도 첫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신 하늘에서 하나님의 영자(靈子)로서 누리게 될 썩지 않고 멸하지 않는 생명에 이르는 부활입니다.

      34.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어떻게 “거룩”합니까?

      34 그러므로 과연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외칠 만합니다. (계시 20:6, 새번역) 그들은 “둘째 사망”에 해당하는 불충실을 나타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참으로 “거룩”합니다. 또한 바로 이 부활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며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는 일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 때에는 ‘사단’ 마귀가 세상의 통치자가 아닐 것입니다.

      확정적 실제 “천년”

      35, 36. (ㄱ) 침례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으로 인한 ‘사단’의 영향력 감소를 경험한 일이 있읍니까? (ㄴ) ‘베드로’와 ‘바울’의 훈계는 사실이 어떠할 것임을 지적합니까?

      35 그러므로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천사들을 사슬로 묶고 무저갱에 넣는 것은 「신 ‘가톨릭’ 백과 사전」의 설명처럼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으로 인하여 현 사물의 제도에서 ‘사단’의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지상의 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물에서 침례를 받은 후로 ‘사단’의 영향력 감소, 현저한 그것의 감소를 느껴본 일이 없읍니다. 오히려, 사도 ‘베드로’는 그의 지상 생애 말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할 필요를 느꼈읍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라].” (베드로 전 5:8) 동일한 이유로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이러한 충고를 하였읍니다.

      36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에베소 6:11-13.

      37. 계시록 12:17은 그리스도께서 속죄의 희생을 하신 이후로 ‘사단’이 비유적으로 결박되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알려 줍니까?

      37 더우기, 사도 ‘요한’은 계시록 12:1-17에서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탄생과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큰 용”이 하늘에서 이 땅으로 추방된 후의 그의 활동을 묘사합니다. 그 다음, ‘요한’은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현 20세기의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되는 특별한 경고를 이러한 말로 부가합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시 12:17) 이 모든 일이 물침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사단’의 권능과 영향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것을 뜻하는 것 같이 생각됩니까? ‘사단’이 사슬에 결박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까?

      38. ‘사단’이 더 이상 누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그는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집니까?

      38 그러나 사도 ‘요한’이 실제로 말하는 바에 따르면 ‘사단’ 마귀가 잡히고 사슬에 매이고 무저갱에 던져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계시 20:1-3) ‘요한’이 사용한 “만국”이라는 말은 침례받고 기름부음받은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참되고 진정한 추종자들과 본을 따르는 자들이 아닌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마귀가 하늘에서 추방될 때에 그는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로 언급되었읍니다. (계시 12:9) 충실한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사람이 거주하는 땅의 미혹된 “만국”의 일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단’ 마귀와 그의 악귀 천사들이 결박되고 무저갱에 던져진 후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 것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144,000명이 아니라 “만국”입니다.

      39. 기원 33년 오순절 이래 ‘사단’이 만국을 미혹하는 일은 약화되었읍니까? 계시록 12:12은 무엇을 예언하고 있읍니까?

      39 그렇다면 ‘사단’ 마귀가 그러한 만국을 미혹하는 일은 기원 33년 ‘예루살렘’에서 칠칠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그리스도인 회중이 침례를 받은 이래 천 구백여년 동안 약화되고 감소되고 줄어들었읍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할 만큼 인류 역사에 몰지각하고 무식한 사람이 있읍니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과학면에서 인류는 가장 밝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세상 “만국”은 오늘날 과거 어느 때보다도 미혹을 당하고 있으며 더욱 비참한 결과를 직면하고 있읍니다. 왜? 그 이유는 ‘사단’과 그의 악귀들의 이 국제적 사기 행각의 결과로 매우 가까운 장래에 미혹 받은 만국이 멸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 마귀가 추방될 때에 다음과 같이 “하늘에 큰 음성”이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땅과 바다에는 화가 있다. 악마는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크게 분노를 품고 너희에게 내려 왔기 때문이다.”—계시 12:10-12, 새번역.

      40, 41. (ㄱ) 따라서 ‘사단’이 결박되는 천년에 대한 종교가들의 어떠한 주장이 거짓입니까? (ㄴ) 인류는 실제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필요로 하며, 지금 누가 그들의 희망을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에 두고 있읍니까?

      40 그러므로 ‘사단’ 마귀가 무저갱에 갇히는 “천년”은 문자적인 천년이 아니라 지상의 “교회의 전체 수명”(이미 1,900년이 넘음)에 적용된다는 그리스도교국 종교가들의 주장은 거짓임이 증명되었읍니다!

      41 성서의 시간표에 의하면 지상에 인류가 존재한 일곱째 천년기의 시작은 가까왔으며, 바로 이 세대 안에 시작될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상의 거민들에게 ‘사단’ 마귀가 실제로 결박되고 무저갱에 던져지는 것을 필요로 하는 때입니다. 그 직전에 일어날 세계적 사건들은 임박하였으며, 인류의 큰 적대자인 압제자는 십세기 동안 무저갱에 밀봉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된 회중이 왕으로 통치하여 인간 가족에게 평화와 축복을 가져다 줄 천년은 영광스러운 많은 가능성을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읍니다! 지금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에 희망을 두고 있는 헌신한 성서 신봉자들의 “큰 무리”는 사망을 면하고 전 인류 사상 가장 밝은 시대에 들어갈 하나님의 보증을 받고 있읍니다. 그들에게는 참으로 축복된 전망이 있읍니다!

      42. 천년기 통치자들에 대한 “큰 무리”의 태도에 대한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고려하는 것이 시기에 알맞습니까?

      42 동일한 통치자들이 천년간이나 다스리면 그 “큰 무리”는 싫증이 나지 않을 것인가? 그들은 그 기간이 끝나기 오래 전에 정부의 개혁을 원하고 새로운 한 집단의 통치자들을 산출하기 위한 일반 투표를 요구하지 않을 것인가?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을 다스리는 이들 천적 제사장들과 왕들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 그들이 계속 그 직책에 머무는 것을 감사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심각한 질문들입니다. 사실 이 천년 왕국 하에서 이 “큰 무리”는 천적 정부가 존속하는 한—천년간, 그리고 후에는 무한한 시간까지 살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지금 이러한 흥미있는 질문을 고려하면서 어떠한 왕들과 제사장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의 봉사가 온 인류 곧 생존 자들과 죽은 자들에게 얼마나 귀중할 것인가를 더욱 온전히 조사해 보는 것이 시기에 알맞습니다. (디모데 후 4:1)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그들의 과거의 배경 및 지존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천년기의 왕 겸 제사장으로 봉사하기에 합당하다고 간주하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28면 삽화]

      ‘패시즈’

  • 천년간 계승자 없이 다스릴 왕들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4장

      천년간 계승자 없이 다스릴 왕들

      1. 누구의 시대 이후로 인간이 세운 왕국들은 불만족스러웠읍니까?

      인간이 세운 왕국들은 결국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읍니다. 적어도 통용 기원 22세기 즉 4,150여년 전부터 인류 가족은 인간이 세운 왕국들을 가지게 되었읍니다. 기록에 나타난 첫 인간 왕의 이름은 방주 건축자 ‘노아’의 증손 ‘니므롯’이었으며, 창세기 10:8-12의 기록에 의하면 ‘니므롯’은 스스로 왕이 된 것 같습니다.

      2. (ㄱ) 왕국에 대한 ‘노아’의 태도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분명히 어떠한 정부 형태를 더 좋아합니까?

      2 ‘니므롯’의 왕국 초기까지 살아있던 ‘노아’는 그를 ‘바벨’(즉 ‘바벨론’)의 왕으로 삼지 않았읍니다. ‘노아’는 심지어 자기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하지 않고 단순히 확장하는 인류 가족의 족장으로 머물러 있었읍니다. (창세 9:28, 29; 10:32에서 11:9) 오늘날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한 가문의 상속자들로 왕이 계승되는 체제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일반 선거에 의한 대통령을 갖는 공화 정체 혹은 민주 정체와 같은 국민의 정부 형태를 분명히 더 좋아합니다. 이러한 민주 정체하에서 사람들은 주로 한 정당에서 나온 일단의 통치자들에게 곧 싫증을 내게 되며 또 다른 정당이 내세우는 입후보자들을 선출함으로써 정권 교체를 추구합니다.

      3. 누가 인간이 세운 왕국에 싫증을 느끼며, 그분은 인간이 처음으로 왕국을 세운 곳에서 무엇을 선언하셨읍니까?

      3 인간들만이 상속자들로 이어지는 인간 왕국에 싫증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지상에 존재하는 인간이 세운 어떠한 정부에도 싫증을 내십니다.a 사람들은 아직 그렇게 느끼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느끼십니다. 사실 인간이 세운 이들 여러 가지 정부들은 바로 하나님의 소유물(지구)에서 그릇된 통치, 불만족스러운 통치, 부적당한 통치를 계속하여 왔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세운 첫 왕이 집권한 곳, ‘바벨론’에서, 자신이 정하신 때에 인간이 세운 이 모든 정부를 멸하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의 길을 여시겠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는 예언자 ‘다니엘’을 통하여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다니엘 2:44.

      4, 5. (ㄱ)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인류의 통치자들은 누구입니까? (ㄴ) 사도 ‘요한’에 의하면 그러한 통치자들의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또한 그 외의 누구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보증합니까?

      4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면 그분은 지상의 그러한 왕들과 정치적 통치자들을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들 중 다수는 그리스도교국의 왕들과 정치적 통치자들이지만 그들도 그분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분을 사랑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첫째로 구”할 것이며 오늘날 인간이 세운 정부에서 정치적 직책을 맡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 6:33) 인류가 하늘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왕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한 왕의 보조자들 역시 그러합니다. 즉 인류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분은 그들을 그 직책에 머물러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도대체 그들이 그러한 직책을 갖게 된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들은 살아계시고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입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도 사랑할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읍니다.

      5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요한 1서 4:20, 21.

      6. 통치자들이 자기들의 국경과 주권을 고집하여 왔기 때문에 인류는 어떠한 영향을 받았읍니까?

      6 인간 왕들과 기타 인간 통치자들은 국가들과 백성들을 갈라놓는 역할을 하는 국경 혹은 주 경계를 지키는 데 여념이 없었읍니다. 각 통치자는 자기 영토 내에서의 지배권을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그 영토 내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에게 충성하기를 기대합니다. 현 사물의 제도하에서 땅은 많은 국가 혹은 주 영토로 구분되어 그 안에서 국가 주권을 주장하여 그 결과 온 인류는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읍니다. 국가간의 적대 관계가 야기되었읍니다. 따라서 이제 흥미있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7. 땅을 다스리는 천적 통치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며, 계시록 14:1-5은 이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7 하나님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간 홀로 왕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이 아들은 정부의 자리인 천적 ‘시온’ 산에서 왕으로 홀로 서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시 14:1-5.

      8.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에게 영토를 임명하는 일 및 언어 문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8 이와 같이 땅을 다스릴 충성스러운 통치자가 144,001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지구가 144,000개의 영토로 분할되고 144,000명 각자는 자기에게 할당된 영토를 다스리며 그 안에 있는 백성은 수석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그 특정한 왕 앞에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가? 지상의 거민을 그와 같이 나누면, 그 결과는 비록 경계가 보이지는 않지만 경계선이 생기게 될 것이며, 경계선으로 분단된 거민 사이에는 어느 정도 대립이 있을 것이 아닌가? 또한 이전에 중국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에 임명이 되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을 다스리도록 임명되고 영어를 사용하던 왕국 후사는 영어를 사용하는 주민을 다스리도록 임명되는 등 언어 집단별로 임명이 있을 것인가? 분열을 일으키는 언어 장벽이 계속 존재하여 상호 이해를 방해할 것인가?

      9. (ㄱ) 예수의 어떠한 명령에 따라, 누구 가운데서 144,000명의 왕국후사들이 나왔읍니까? (ㄴ) 그들의 언어상의 차이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9 이러한 것은 당연하고 적절한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성서는 그리스도의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 각자에게 수석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왕으로 돌보아야 할 어떠한 임무가 부여될지 알려 주지 않고 있읍니다. 기원 33년에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된 이후 지난 19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이들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은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과 민족과 부족 가운데서 택함을 받았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승천하시기 며칠 전에 ‘갈릴리’에 모인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8:19) 우리는 144,000명의 보조 왕들이 하늘에서, 왕국 영광 가운데서, 언어의 차이로 분열되고 통역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읍니까? 사도 ‘바울’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에 대하여 기술한 바 있읍니다.—고린도 전 13:1.

      10. 하늘의 144,000명의 언어는 무엇일 것이며, 그들의 이전의 지적 언어는 어떻게 됩니까?

      10 의문의 여지 없이, 부활받고 영광스럽게 된 144,000명은 모두 하나의 천적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이 언어의 선물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될 때 받는 새로운 영의 몸을 가진 그들에게 수여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전의 지적 언어가 그들의 정신 가운데서 키워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들은 바로 그들의 이전의 언어에 의하여 자기 자신들을 식별하고 자기가 이전에도 존재하였던 바로 자신임을 인정할 수 있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적 부활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언어를 사용할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의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단일 인종, 단일 언어

      11. 천년 왕국 하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현재의 언어 장벽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며,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 될 것입니까?

      11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그의 144,000명의 보조 왕들의 천년 통치 하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현재의 언어 장벽은 인류에게서 제거될 것입니다. 지구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목적을 지구가 하나의 공통 언어, 그들의 첫 지적 아버지인 완전한 인간 ‘아담’의 언어를 사용하는 피조물로 적절히 채워지는 것이었읍니다. ‘에덴’ 동산에서 인류는 하나의 언어로 출발하였읍니다. ‘노아’ 시대의 세계적 홍수 후에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하나의 언어, ‘아담’의 십대손인 의로운 ‘노아’의 언어로 의로운 새 출발을 하게 하셨읍니다. 그 하나의 언어가 ‘바벨’탑을 건축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까지 존속하였읍니다.

      12. 하나님께서는 ‘바벨’탑 건축 시에 취하신 행동으로부터 오게 된 언어의 결과를 어떻게 제거하실 것입니까?

      12 그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악한 일에 힘을 합치고 있던 건축자들의 연합을 깨뜨리셨읍니다. 어떻게? 언어를 혼잡게 하고 그들을 여러 언어 집단으로 갈라지게 하고 지구상 여러 곳으로 흩어지게 함으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창세 11:1-9)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원래 목적과 일치하게 인류 전체를 그분이 인류의 첫 인간 조상에게 주신 언어, 단일 계통의 언어로 돌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단, 아마도 하나님께서 ‘바벨’탑 건축시에 창안하신 기타 언어들로부터 유래한 말들이 부가되어 어휘가 훨씬 더 많아질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누구에게 일시적이나마 언어 문제가 있을 것이며, 그러나 어떠한 유익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13 이것은 ‘노아’ 홍수를 생존한 여덟명을 포함하여 홍수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천년 왕국 하에서 지상에 부활될 때 그들에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류 대다수는 새로운 언어, 즉 하나님께서 온 인류가 사용하도록 목적하신 언어를 배워야 함을 의미할 것입니다. 왕국이 훌륭한 언어 강사들을 사용할 것을 생각한다면 이로 인한 큰 문제는 없을 것임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부활되는 아기들도 어려서부터 새로운 언어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서로 직접 의사소통을 하게 될 것이며 서로 언어상의 용어와 표현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가족을 연합시키는 놀라운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b을 각자 혼자의 힘으로 읽을 수 있게 되고 그 예언들이 모두 성취되었으며, 예언자 ‘말라기’까지 이르는 정확한 역사적 기록을 또한 포함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게 될 것임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 때에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사람은 다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참되십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3:4, 새번역.

      14. 현재의 인종간, 국가간, 부족간의 장벽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의 경우에 어떻게 제거될 것입니까?

      14 언어 장벽 뿐 아니라, 인종, 국가, 부족으로 인한 현재의 장벽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에게 이러한 장벽들은 모두 과거지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장벽들은 모두 육체에 딸린 것입니다. 그들의 부활은 그들이 이전에 지상에서 가졌던 육체의 부활이 아닐 것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형제들아, 내[사도 ‘바울’]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 전 15:50) “비록 우리[그리스도인들]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고린도 후 5:16) “첫째 부활”에서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현재의 인종, 국가, 부족 간의 장벽이 있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신의 성품”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 후 1:4) 그들은 모두 특별하고 천적인 가족 안에서 형제들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라].” (로마 8:17) 그러므로 “신의 성품”에 따라 그들 사이에 연합이 있을 것입니다.

      15, 16. (ㄱ)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연합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떻게 인간적이고 지적인 장애물들을 극복합니까? (ㄴ)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신 어떠한 간청에 고착합니까?

      15 그러나 이들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그들이 지상에서 시험을 받으며 육체로 있는 동안에도 일반 인류의 인종, 국가, 부족적 장벽으로 인하여 분열되지 않았읍니다. 육체상으로는 그들은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이루어진 제자들’입니다. (마태 28:19) 그러나 그들은 첫째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며, 그들이 어느 인종, 어느 국가, 어느 부족에 속하여 있는가 하는 것은 단지 이차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침례받은 제자들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지상에서 연합시키게 하며 모든 육체적, 인간적 장애물들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세상의 인종, 국가, 부족간의 투쟁에 대하여 엄정 중립을 선언하고 그 중립을 유지하며 지방적이든, 국가적이든, 국제적이든, 정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 관한 기도 가운데서 하나님께 간청하신 것에 고착합니다.

      16 “내가 그들을 위하여 구하옵니다. 내가 세상을 위하여 구하옵는 것이 아니옵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구하옵니다. 그들은 모두 아버지의 사람이옵니다. ··· 내가 그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사온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하였사옵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옵니다. ···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사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옵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고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는 것이옵니다.”—요한 17:9-23. 새번역.

      국제적 평화가 지켜지다

      17. (ㄱ) 144,000명은 전쟁과 관련하여 어떻게 그리스도교국과 ‘유대’인 사회의 종교가들을 본받지 않았읍니까? (ㄴ) 천적 왕들인 그들은 땅의 백성에게 어떠한 성경적 법칙을 시행할 것입니까?

      17 이 때문에, 144,000명의 왕국 후사들은, 지상에서, 파멸적인 전쟁에 가담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정부 하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로마 가톨릭’교인이 ‘로마 가톨릭’교인과, 정교회 신도가 정교회 신도와, ‘프로테스탄트’ 교도가 ‘프로테스탄트’ 교도와, 육적 ‘유대’인이 육적 ‘유대’인과 육체의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것을 본받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한 손에는 하나님의 소식 혹은 성서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칼 혹은 기관총을 들고 가서 제자를 삼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여러 나라 출신이지만 이사야 2:4의 예언에 있는 원칙을 실천하였읍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만일 그들이 지상에 있는 동안 이 하나님의 법칙에 고착하였다면 그들이 왕으로 땅을 다스릴 때 지상에 있는 신민에게 동일한 평화로운 법칙에 따라 살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것을 시행할 것입니다.

      18. 사도 ‘요한’이 미리 본 바와 같이 지상의 어떠한 다른 국제적 무리가 이 동일한 행동 법칙에 따라 살고 있읍니까?

      18 이 신민의 행복한 선구자로서 지금 이들 왕국 후사들의 남은 자와 연합하고 있으며 그 동일한 평화로운 행동 법칙에 따라 살고 있는 국제적인 큰 무리가 있읍니다. 그들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묘사한 대로, 세계 역사상 바로 오늘날 모여들 것으로 예언된 놀라운 무리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도다 하니[라]. ···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라].”—계시 7:9-15.

      19. 하나님의 새 제도는 서로 이미 어떠한 관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출발할 것이며, 그들은 오랜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낸 ‘베드로’의 어떠한 말을 따라야 합니까?

      19 여호와 하나님께서 오늘날의 이 “큰 무리” 위에 보호의 장막을 치시고 다가오는 “큰 환난”을 안전히 통과하게 하실 것이므로 하나님의 지상의 사물의 제도로 살아서 들어갈 사람들은 평화로운 국제적인 무리일 것입니다. 그때에는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질서의 인간 사회는 모두 이미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고 있는 환난 생존자들인 “큰 무리”로 출발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함으로 사도 ‘베드로’가 인용한 말과 일치하게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여, 악한 말을 못하게 혀를 붙들며 거짓 말을 못하게 입술을 다물라.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며 평화를 구하고 그것을 찾으라.”—베드로 전 3:10, 11, 새번역; 시 34:12-14.

      20. (ㄱ)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 관한 어떠한 성서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그 평화가 교란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까? (ㄴ) 어떻게 그리스도의 통치는 ‘솔로몬’의 통치와 같을 것입니까?

      20 “큰 환난”의 폭풍이 지나면 무지개와 같은 세계적 평화가 깨끗하여진 땅에서 빛날 것입니다. 여호와의 천년기 왕이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평화가 교란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허락하신다면 그분은 오래 전에 그에 대하여 선언된 예언을 이루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다윗’의 왕좌와 그 왕국 위에, 신세] 앉아서 그 나라[왕국]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사야 9:6, 7) 예수 그리스도는 “‘솔로몬’보다 더 큰 이”이심을 기억합시다. (마태 12:42)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40년간의 통치는 “평화를 애호하는”을 의미하는 ‘솔로몬’이라는 이름과 일치하게 평화로 특징을 이루었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천년간의 평화를 유지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왕좌와 그 왕국 위에”

      21. 평화의 왕의 정사와 평화는 누구의 왕좌 및 왕국과 분리될 수 없읍니까?

      21 이사야 9:6, 7을 다시 읽어 보면, 평화의 왕의 “정사”가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 있을 것이라고 하였음에 유의하게 됩니다. 우리는 기원전 1070-1037년에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통치한 ‘다윗’의 왕좌와 왕국으로부터 이 약속된 끝없는 평화를 분리시킬 수 없읍니다. 그 평화는 미합중국의 어떠한 대통령이나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인간이 만든 기구인 국제 연합에 의존하여 이룩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22. (ㄱ) 여호와의 열심은 무엇을 근거로 그 예언을 성취할 것입니까? (ㄴ) ‘다윗’은 종교면에서 어떠한 사람이었읍니까?

      22 그것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다윗’ 왕의 통치 초기에 ‘예루살렘’에서 그에 대하여 파기할 수 없는 언약 즉 거룩한 약속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근거로? ‘다윗’은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었읍니다. 그는 종교심이 매우 강하였지만 당시 비‘이스라엘’ 나라의 우상 숭배자들이나 다신교도들과 같지 않았읍니다. ‘다윗’이 지었고 성서 「시편」에 포함된 많은 시 혹은 서정시를 당신이 직접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다윗’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적인 숭배자였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가장 유명한 시에 속하는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 23:1, 6) 또한 시편 40:8, 9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내가 대회 중에서 의의 기쁜 소식을 전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내 입술을 닫지 아니할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23, 24. (ㄱ) ‘다윗’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긴 후에 그 궤를 둘 장소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를 원하였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건축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3 ‘다윗’ 왕이 ‘예루살렘’을 자기의 수도로 삼은 후 몇달이 경과하였을 때 그는 거룩한 언약궤,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왕궁 근처에 친 천막 안에 두었읍니다. ‘다윗’은 자기의 궁전 곧 “백향목 궁”과 여호와의 언약궤가 있는 곳이 차이가 많음을 절감하였읍니다. 마침내 그는 예언자 ‘나단’에게 여호와의 언약궤를 위하여 합당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제안하였읍니다. (사무엘 하 7:1-3)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러한 말씀을 전하셨읍니다.

      24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역대 상 22:8-10.

      25. 여호와께서는 인식의 표시로 ‘다윗’을 위하여 어떠한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까?

      25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기 위하여 숭배의 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의 사랑에 입각한 욕망을 인식하지 못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그것을 인식하셨으며, 그러한 인식의 표시로 그분은 언약 즉 ‘다윗’을 위한 집을 세울 것이라는 엄숙한 약속을 하셨읍니다. 그 집은, 문자적인 주택이 아니라, ‘다윗’의 가문에서 나올 역대 왕가(王家)입니다. 이 말씀은 예언자 ‘나단’을 통하여 ‘다윗’ 왕에게 전달되었읍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이루고 ···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하라.”—사무엘 하 7:11-16.

      26. ‘다윗’은 깊은 감사의 표시로 여호와의 이름과 “집”에 대한 여호와의 목적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기도하였읍니까?

      26 ‘다윗’은 이 하나님의 언약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확실케 하옵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으로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신고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말씀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종에게 허락하셨사오니 이제 청컨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사무엘 하 7:25-29.

      27. 여호와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왕국 언약에 고착하고 계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사야’를 통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후에 ‘에스겔’을 통하여 ‘시드기야’ 왕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27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그 기도에 응답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3백여년 후에 그분은 그의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다윗’의 왕좌와 그의 왕국 위에”있는 평화의 왕의 정사를 굳게 세울 것이며 “자금 이후 영원토록”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이사야 9:6, 7, 신세 참조) 1세기 이상이 경과한 후에 ‘예루살렘’의 ‘다윗’의 후손의 왕국이 멸망당하기 직전에 여호와께서는 왕권이 ‘다윗’의 집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하심으로써 ‘다윗’과의 왕국 언약에 고착하고 계심을 나타내셨읍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다윗’의 보좌에 앉은 마지막 왕 ‘시드기야’에게 예언자 ‘에스겔’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관을 제하며 면류관을 벗길찌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에스겔 21:25-27.

      28. (ㄱ) ‘다윗’의 집의 왕국은 언제 전복되었으며, ‘스룹바벨’은 칠십년 후에 ‘유다’를 다스리는 어떠한 직책에 있게 되었읍니까? (ㄴ) ‘스가랴’는 ‘다윗’의 집을 깨끗하게 하는 데 대한 어떠한 예언을 하였읍니까?

      28 ‘다윗’의 보좌는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 멸망시에 전복되었으며, 생존한 ‘유대’인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갔읍니다. 칠십년 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 남은 자들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유다’ 땅으로 돌아와 ‘예루살렘’에 ‘솔로몬’ 왕이 건축한 처음 성전이 있던 곳에 또 다른 성전을 건축하였읍니다. ‘다윗’ 왕의 후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총독이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학개’와 ‘스가랴’를 일으켜 성전 재건 사업을 하는 총독 ‘스룹바벨’을 격려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다윗’과 맺은 왕국 언약에 대한 충성을 표시하여 예언자 ‘스가랴’에게 영감을 주시고 이렇게 말하게 하셨읍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스가랴 13:1.

      29. ‘예루살렘’과 ‘유다’에는 언제 ‘에돔’ 사람 왕이 있게 되었으며, ‘다윗’과의 왕국 언약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있을 수 있었읍니까?

      29 사백여년이 경과하고 ‘팔레스티나’ 땅은 제국주의적인 ‘로마’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읍니다. ‘유대’인이 아닌 ‘에돔’인 ‘헤롯’ 대왕이 ‘로마’ 원로원의 임명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읍니다. 그처럼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평화를 끝없이 유지할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다윗’과 맺은 그 언약에 대하여 완전히 잊으신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맺으신 때로부터 도합 천여년이 지났고 그 때까지는 언약이 폐해지고 시효가 지나고 소멸 상태에 있는 것 같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언약이 존속할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았읍니까? 믿음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떠하십니까?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의 탄생

      30, 31. (ㄱ) 여호와께서는 ‘다윗’ 왕의 어느 후손 계열을 주시하셨읍니까? (ㄴ) 여호와께서는 그 후손 계열의 어느 딸을 주목하셨으며, 그는 누구와 약혼하였읍니까?

      30 왕국 언약을 맺으신 분으로서 잊을 줄 모르시는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언약을 이행할 뜻을 고정시키셨읍니다. 충실한 ‘다윗’ 왕을 위하여 왕가를 지으실 것을 약속하신 그분은 ‘다윗’의 남자 후손을 계속 주시하셨읍니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 계열 하나가 ‘솔로몬’ 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윗’의 또 다른 아들 ‘나단’을 통해서 이어지는 것을 보셨읍니다. 이 특별한 계통은 다른 스무명을 거쳐, 예언자 ‘스가랴’ 시대에 ‘예루살렘’의 총독이 된 ‘스룹바벨’을 낳았읍니다. ‘스룹바벨’은 ‘레사’라는 아들을 낳았는데, ‘레사’ 이후로 다른 16명을 거쳐 후손 계열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으며, 그 후에 ‘헬리’가 ‘맛닷’의 아들로 태어났읍니다. (누가 3:23-31)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남자 후손이 아니라 ‘헬리’의 딸을 주목하셨읍니다. 그 딸은 기원전 1세기 후반에 ‘로마’의 ‘유다’ 도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읍니다. 그의 이름은 ‘마리아’였읍니다.

      31 얼마 후 ‘마리아’는 북쪽으로 ‘로마’의 ‘갈릴리’ 도에 있는 ‘나사렛’으로 이사하였읍니다. 거기에서 그는 혼기에 달하여 ‘나사렛’ 주민 ‘야곱’의 아들 ‘요셉’이라는 목수와 약혼하였읍니다.

      32. ‘요셉’과의 그 약혼은 왜 적절하였으며, ‘다윗’의 후사에 대한 어떠한 질문이 생겼읍니까?

      32 이 약혼은 매우 적절하였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셉’은 ‘나사렛’이라는 두드러지지 않은 마을의 비천한 목수였지만 ‘나단’이 아니라 ‘다윗’의 첫 왕위 계승자 ‘솔로몬’을 통한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조상 ‘다윗’ 왕의 보좌에 앉을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요셉’은 이제 오래 전에 약속된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의 직계 친아버지가 될 것입니까?

      33, 34. (ㄱ) 여호와께서는 왜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보이셨읍니까? (ㄴ) 그 때에 발생된 일은 임종을 맞은 ‘야곱’의 어느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읍니까?

      33 결혼식이 있기 전 즉 ‘요셉’이 ‘마리아’를 위하여 마련한 집으로 ‘마리아’를 법적 아내로 데려오기 전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였읍니다. 그 일을 현 이십세기 두뇌 시대의 사람들은 믿기를 거절하고 있읍니다. 때는 기원전 3년 말경이었읍니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오랫 동안 기다리신 정하신 때였읍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헬리’의 딸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뚜렷하여졌읍니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품격있는 ‘유대’인 처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유다’ 지파 ‘다윗’ 왕가의 후손이기 때문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 때에 발생한 일은 족장 ‘야곱’이 자기의 네째 아들 ‘유다’에게 선언한 영감받은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이 일은 멀리 기원전 1711년에 있었으며, 임종을 맞은 ‘야곱’은 ‘유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34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즉, 그것을 가진 분]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세 49:8-10.

      35, 36. (ㄱ)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나이 많은 친척 ‘엘리사벳’에게 어떤 기적을 행하셨읍니까? (ㄴ) 천사 ‘가브리엘’은 ‘다윗’의 왕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마리아’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35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유다’ 지파의 ‘다윗’ 왕가에서 난 처녀 ‘마리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보이셨읍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레위’ 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 곧 ‘마리아’의 나이 많은 친척에게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마리아’에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생식력을 회복시켜, ‘엘리사벳’은 그 때에 임신 6개월이 되었으며, 침례자 ‘요한’이라고 불리울 아들을 곧 낳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목수 ‘요셉’과의 약혼 기간이 아직 차지 않은 ‘유대’인 처녀 ‘마리아’에게 어떤 일을 하셨읍니까? 의사 ‘누가’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36 “여섯달 만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 ‘나사렛’ 동네에 이르러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의 집을 찾아갔읍니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읍니다. 천사가 그 집안에 들어가 ‘마리아’에게 말했읍니다. ‘은혜를 입은 이여, 기뻐하라. 주께서 너와 같이 계시다.’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몹시 놀라 이 인사가 대체 무슨 뜻일까하고 생각했읍니다. 그 때 다시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했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마리아’야, 너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는 위대한 분이 될 것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이 그에게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며 그는 영원하도록 ‘야곱’의 후손을 다스리는 왕이 될 것이요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누가 1:26-33, 새번역.

      37.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인간 아버지 없이 아들을 낳을 것임을 어떻게 설명하였읍니까?

      37 이것은 ‘마리아’의 약혼한 남편 ‘요셉’이 ‘예수’의 직계의 친 아버지가 되지 않을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무엇이라고요? 인간 아버지 없이 아들이 탄생된다고요? 기적에 의한 이 처녀 분만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마리아’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천사 ‘가브리엘’은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감싸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보라, 네 친척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기를 배었다.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라는 소문이 났으나 그가 임신한지 벌써 여섯달이 되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누가 1:34-37, 새번역.

      38. 이제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그의 아기는 누구의 아들이 될 것이었읍니까?

      38 ‘마리아’는 이러한 방법으로 ‘다윗’ 왕의 영원하고 영구적인 후사가 될 분의 지적 어머니가 되는 데 동의하였읍니까? 누가 1:38이 대답해 줍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보십시오, 저는 주의 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했읍니다. 천사는 ‘마리아’를 떠나갔읍니다.” (새번역) 그 후에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여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그를 감싸주셨읍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약혼한 남편을 통하지 않고 기적으로 잉태하였읍니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 예수의 아버지는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영감받은 다른 성귀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천적 독생자의 생명을 ‘마리아’의 난세포로 옮기고 잉태하게 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요한 3:16; 빌립보 2:5-11) 이 일이 거룩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할 아무런 이유가 없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어날 아기는 거룩한 분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우게 되어 있읍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발생하였읍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모세’의 율법]아래 나게”하셨다고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갈라디아 4:4.

      왕국 언약의 영원한 후사

      39. (ㄱ) 누가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야곱’의 집을 다스리는 왕으로 삼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예수는 ‘마리아’를 통하여 어떠한 권리를 상속받았읍니까?

      39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한 말로 볼 때에 그의 아들 예수께서 ‘다윗’ 왕의 영원한 후사가 될 것이 분명하였읍니다.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누가 1:32, 33) 19세기 전의 ‘유대’인들이나, 오늘날의 육적 ‘유대’인들이 이 예수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천적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왕국의 그 왕위를 주게 되어 있었읍니다. ‘다윗’의 경우에, 그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족장이며 아버지인 “‘야곱’의 집”만을 다스리는 보좌였읍니다. 그러므로 ‘유대’인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마리아’의 첫 아들이 ‘다윗’ 왕가에 태어났으며, ‘마리아’에 의하여 예수께서는 ‘다윗’의 왕국에 대한 육적 권리를 가지고 태어나셨읍니다. 이 사실에 대한 증거로 사도 ‘바울’은 영감을 받아 하나님으로부터의 이 좋은 소식에 관하여 기록하였읍니다. “그 아들은 인간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나셨고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사심으로 그 권능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셨읍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로마 1:1-4, 새번역.

      40. (ㄱ) ‘요셉’은 ‘마리아’의 아들 예수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무라고 느꼈으며, 따라서 예수에게 무엇을 갖게 하였읍니까? (ㄴ) ‘누가’는 ‘요셉’을 누구의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40 ‘마리아’가 잉태하였음이 드러난 후에, 그의 남편이 될 사람은 그 경위를 알게 되었고 ‘마리아’를 집으로 데려다가 아내로 삼으라는 명령을 들었읍니다. ‘요셉’은 그곳 ‘나사렛’에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는 ‘마리아’에 의한 하나님의 아들을 자기의 첫 아들로 입양하고 그렇게 하여 예수께 ‘다윗’의 보좌에 앉을 정당한 권리를 갖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자기의 의무임을 인식하였읍니다. ‘요셉’은 ‘솔로몬’ 왕을 통한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c (사무엘 하 7:13-16) ‘요셉’은 예수에게 생후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으며 생후 40일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자신과 ‘마리아’를 위해 깨끗하게 하는 의식에서 아기 예수를 바침으로 그렇게 하였읍니다. (마태 1:17-25; 누가 2:21-24) 그러기 때문에 그는 “‘요셉’의 아들”이라고 불리웠읍니다. (요한 1:45; 6:42) 또한 그러기 때문에 의사 ‘누가’가 제시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그는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헬리’의 아들, 신세]”라고 말한 것입니다. (누가 3:23) ‘요셉’이 실은 ‘야곱’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또한 ‘헬리’의 딸 ‘마리아’와 결혼하여 ‘헬리’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헬리’의 아들”이라고도 불리웠읍니다.

      41.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운 분이 기원전 2년에 어디에서 탄생하였읍니까?

      41 예수 그리스도는 후에 “‘나사렛’ 예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 예수”라고 불리웠읍니다. (요한 19:19; 마태 21:11) 이것은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탄생하셨음을 의미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유다’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였는데, 그들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칙령에 따라 등록하기 위하여 기원전 2년에 ‘베들레헴’으로 이전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였는데, 그 도시는 ‘이새’의 아들 ‘다윗’의 출생지였으므로 “‘다윗’의 동네”라고 불리웠읍니다.—누가 2:1-7.

      42, 43. ‘마리아’의 아들이 하나님의 메시야가 될 분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증언 외에 또 어떠한 천사의 증언이 있읍니까?

      42 ‘마리아’의 아들, 이 예수가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 즉 ‘다윗’의 보좌와 왕국의 영원한 상속자로 기름부음받은 자가 될 분이라는 증거는 천사 ‘가브리엘’의 증언 외에 또 있읍니다. 또 다른 천사가 기원전 2년 10월 초에 예수께서 탄생하신 밤에 증언하였읍니다. 이 영광스러운 천사는 바로 그 절기에 ‘베들레헴’ 근처 들에서 아직 양떼를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나타났읍니다.

      43 두려움에 질린 목자들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라].” 이것이 평범한 출생이 아니었음은 다음에 발생한 일로 증명되었읍니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 2:8-14.

      44. 아기 예수를 왜 ‘애굽’으로 데리고 갔으며, 어떻게 그는 ‘나사렛’의 목수가 되셨읍니까?

      44 ‘사단’ 마귀는 “그리스도 주”가 되실 이 하나님의 아들의 출생을 알았읍니다. ‘사단’ 마귀는 이 세상에 대한 자기의 통치권을 잃지 않으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쳐진지 얼마 후에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의심많은 ‘헤롯’ 대왕을 이용하여 그렇게 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지시하여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도망하여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라고 명하였읍니다. ‘헤롯’ 왕의 사후에 하나님의 천사는 ‘요셉’에게 그의 백성의 땅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였읍니다. 그러나 ‘헤롯’ 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베들레헴’을 포함한 ‘로마’의 ‘유다’ 도를 통치하고 있었으므로 ‘요셉’은 ‘베들레헴’을 지나 ‘갈릴리’ 도의 ‘나사렛’으로 돌아왔읍니다.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자라셨으며, ‘나사렛’인이라고 불리우게 되셨읍니다. 그곳에서 이 장래의 왕은 목수로 일하셨읍니다.—마태 2:1-23; 13:55; 마가 6:1-3.

      45. (ㄱ) 예수께서 참으로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가 되시기 위하여 ‘다윗’과 같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하셨읍니까? (ㄴ) 언제 그리고 왜 예수께서는 침례를 받기 위하여 ‘요단’ 강으로 가셨읍니까?

      45 그러나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도 혹은 메시야라는 말은 예수께서 실제로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기까지 그에게 적용될 수 없었읍니다. 그의 조상, ‘베들레헴’의 목자 ‘다윗’은 그가 실제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기 여러 해 전에 하나님의 예언자 ‘사무엘’에 의하여 기름부음을 받았읍니다. (사무엘 상 16:1-13; 사무엘 하 2:1-4; 5:1-3) 예수의 경우도 비슷하였읍니다.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30세가 차갈 때에 그의 친척 침례자 ‘요한’은 침례 주는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마태 3:1, 2) 이 선포를 듣고 예수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관심사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칠 때가 되었음을 아셨읍니다. 그는 인간 생활 30년째 해의 끝에 가까왔을 때에 ‘나사렛’을 떠나, ‘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고 있는 ‘요한’에게로 가셨읍니다. 왜? 그분은 무죄하였으므로 죄에 대한 회개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 곧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는 침례를 받기 위해서였읍니다. ‘요한’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46. (ㄱ) 예수께서는 침례시에 어떻게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가 되셨읍니까? (ㄴ)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왜 침례받은 예수를 자신의 아들이라고 부르셨읍니까?

      46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침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 3:13-17) 이렇게 하나님의 영이 침례받으신 예수께 내려 옴으로써 그분은 침례자 ‘요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그분은 메시야, 그리스도, 기름부음받은 자가 되셨읍니다. 이 일은 기원 29년 초가을에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분을 그때에 자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 때의 그의 성령이 예수를 그의 영적 아들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요한 1:32-34) 그분은 이제 인간 메시야보다 더 높은 영적 메시야 즉 영적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47. 예수께서는 단순한 인간 메시야가 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를 거절하셨으며, 그는 자기가 기름부음받은 사실과 일치하게 어떠한 사업을 시작하셨읍니까?

      4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야곱’의 집”을 다스릴 지적 왕으로 높임을 받으려고 하셨읍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유혹을 받을 때에 자신을 ‘야곱’의 집 뿐 아니라 이 세상 만국을 다스릴 왕이 되라는 ‘사단’ 마귀의 제안을 물리치셨읍니다. (마태 4:1-11; 누가 4:1-13) 후에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음식을 먹게 하자, 음식을 잘 먹은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그를 지적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피하셨읍니다. (요한 6:1-15) 그분은 자기를 메시야 왕으로 기름부으신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왕국이 올 것임을 아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이 자기에게 부과한 예비적인 사업을 인식하시고 “‘야곱’의 집”의 땅 전역에 하나님의 왕국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평화로운 사업을 시작하셨읍니다. 특히, 기원 30년에 침례자 ‘요한’이 투옥된 후에 그렇게 하셨읍니다.

      48. 그분은 ‘나사렛’ 회당에서 ‘나사렛’ 사람들에게 ‘이사야’의 어느 예언을 읽어 주셨으며, 지상 생애의 나머지 기간에 무엇을 하려고 노력하셨읍니까?

      48 ‘나사렛’ 회당에서 그분은 ‘나사렛’인들에게 이사야 61:1, 2에 있는 예언을 읽어 주셨읍니다. “주[여호와]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침례받으신 예수께서는 그것을 연설 주제로 삼으시고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는 말씀으로 연설을 시작하셨읍니다. (누가 4:16-21)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자기의 이전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야, 그리스도임을 이해시키려 하셨읍니다. 그분은 지상 생애의 나머지 전 기간을 통하여 자기가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음으로써 권한받고 위임받은 일을 성취하고자 노력하였읍니다.

      49, 50. (ㄱ) 예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설립하시려고 군대를 조직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왕이시지만 왕국을 위하여 싸우지 않는 이유를 ‘빌라도’에게 어떻게 설명하셨읍니까?

      49 따라서, 그분은 이 세상 정치에 간섭하지도 않으셨고, ‘마카베’인들과 같이 군대를 조직하여 ‘로마’인들을 그 땅에서 몰아내고 ‘다윗’ 왕국을 다시 설립하려고 하지도 않으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50 예수께서는 자기가 그렇게 하시지 않은 이유를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설명하셨읍니다. 예수의 종교적 적들이 그를 ‘로마’ 제국에 대한 선동자로 처형하도록 ‘빌라도’에게 넘겼을 때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는 ‘빌라도’의 질문을 받고 마침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내 나라가 세상에 속한 것이라면 내 부하들[나의 측근자들, 신세]이 싸워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냐?” 하고 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증거하시면서 “네가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하고 대답하셨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당시 세계 강국이었던 ‘로마’ 제국을 포함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왕국의 왕이셨읍니다.—요한 18:33-37, 새번역.

      51, 52. (ㄱ) 예수께서는 “측근자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교훈하셨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열 두 사도들에게, 다음에 70명의 복음 전도자들에게 정치 활동을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아니면 복음 전도 사업을 하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어떻게?

      51 “나의 측근자들”이라는 예수의 말씀은 누구를 가리킨 말씀이었읍니까? 그 말은 자기의 열 두 사도들(“보냄을 받은 자들”)을 포함한 무장하지 않은 자기의 제자들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들에게도 그분은 이 세상에 정치와 폭력적 투쟁에 참여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된 왕국의 좋은 소식을 평화롭게 가르치고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라고 교훈하셨읍니다.

      52 한 때 그분은 열 두 사도들을 내보내실 때에 그들에게 비밀 정치 운동을 조직하여 ‘유대’인들 간에 반란을 선동하라고 교훈하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1-8) 예수께서 후에 70명의 다른 복음 전도자들을 보내실 때에 그분은 그들에게 비슷한 교훈을 말씀하시고 무엇을 전파할 것인지를 그들에게 알리는 이러한 말씀을 하셨읍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누가 10:1-9.

      53, 54. (ㄱ) 예수께서는 자신의 임재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한 예언에서 무슨 전파 활동을 예언하셨읍니까? (ㄴ) 그들이 전파 활동을 계속하면서, 그들이 전파하는 정부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알기 때문에 그들은 무엇에 간섭하지 않습니까?

      53 예수께서 유월절날에 죽으시기 조금 전인 기원 33년 ‘니산’월 11일에 그분은 자기의 장래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한 놀라운 예언을 하셨읍니다. 이 예언 가운데서 그분은 측근자들 곧 제자들이 수행해야 할 탁월한 사업을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3-14, 신세) 이 사물의 제도의 완전한 끝이 오기 전에 이 왕국 전파는 그분의 제자들에 의하여 전세계적으로 수행되어야 합니다.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마가 13:10) 그들은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왕국을 평화롭게 전파하였기 때문에 세상 정치에 간섭하거나 국제적 투쟁에서 편드는 일이 없었읍니다.

      54 그들은 인도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바와 같이, 단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들은 땅을 다스릴 때 그 왕국을 세울 권한도 능력도 받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지적 정부가 아니며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 인류에 대한 초인적 능력을 가진 천적 정부였읍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늘의 지존하신 하나님만이 땅의 모든 거민을 다스릴 그 메시야 정부를 세우실 수 있읍니다.

      55.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의 일을 이행하는 것과 성서 예언을 성취시키는 면에 있어서 예수께서 온 인류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반대할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읍니까?

      55 하늘이나 땅에 있는 자로서 누가 천년간 왕으로 온 인류를 다스릴 자로 기름부음 받은 분, 메시야,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생활을 흠잡을 수 있겠읍니까? 누가 그분이 부적격자나 무자격자인양 그분이 천년기의 왕이 되시는 것을 반대할 수 있겠읍니까?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사도 ‘베드로’는 지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흠없는 생활을 지적하여 ‘로마’ 백부장 ‘고넬료’와 그의 이방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말씀은 ‘요한’이 [침례]를 선포한 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지방에 퍼진 것임을 여러분이 알고 있읍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읍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귀신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증인입니다.” (사도 10:37-39, 새번역) 모든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시던 동안 기름부음에 의하여 위임된 모든 일을 성취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그분은 순교당하실 때까지 자신에 관한 모든 성서 예언들을 성취시키셨읍니다.

      [각주]

      a 이사야 1:14; 7:13; 43:24 비교.

      b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새 사물의 질서의 하나의 공통 언어가 현대 ‘히브리’어 ‘알파벳’의 사각형 자모로 인쇄되고 기록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어에서 사용되는 ‘라틴’식 ‘알파벳’ 자모로 철자된 ‘히브리’어 출판물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1949년에 남‘아프리카’에서 발행된 교본인 「타랴그 밀림」, 1927년에 ‘예루살렘’에서 발행된 일대기 「아비」, 1933-1934년에 ‘텔아비브’에서 발행된 신문 「데로르」지의 일부 기사가 있다.

      c 만일 ‘다윗’ 왕 계열의 ‘요셉’이 ‘다윗’의 보좌에 앉을 “정당한 권리”를 기다렸다가 자기의 직계 친 아들, 이를테면 ‘야고보’, ‘요셉’(2세), ‘시몬’ 혹은 ‘유다’에게 주기를 원하였다면 이 정당한 권리는 효력을 발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에스겔 21:27)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 하면 ‘요셉’은 ‘여고니야’(혹은 ‘고니야’ 혹은 ‘여호야긴’)를 통한 ‘솔로몬’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22:24-30의 기록은 이러하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 손의 인장 반지라 할찌라도 내가 빼[리라]. ···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다윗’의 보좌에 앉을 후사에 있어서]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마태 1:11-16; 13:55) 따라서, ‘요셉’이 그의 양자 예수에게 정당한 권리를 갖게 하는 것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처녀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여고니야’(‘고니야’)의 후손이 아니라 ‘다윗’이 ‘밧세바’를 통하여 낳은 아들 ‘나단’의 계열을 통한 ‘다윗’ 왕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3:23-38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에는 ‘여고니야’(‘고니야’ 혹은 ‘여호야긴’)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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