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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때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징조”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0장

      그 때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징조”

      1. 우리는 천년기가 가까왔음에 대하여 왜 알기를 갈망해야 합니까?

      성서의 설명에 비추어 볼 때 천년기는 산 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온 인류가 크고 동경할 만한 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때가 다가왔다는 발표는 이해력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우리는 그 때가 다가왔음을 확신할 수 있는 어떤 확실한 이유가 있는지 알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무엇이 그러한 이유들입니까? 그 이유 몇가지를 고려하여 봅시다.

      2. (ㄱ) 지금 무엇이 모이고 있는 사실 자체는 천년기가 다가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까? (ㄴ) 누가 하나님 편에서 “전쟁”을 지휘하시며, 그분은 이미 어떠한 직책을 가지고 계십니까?

      2 지금까지 우리가 천년기에 대하여 고려한 바로 볼 때 우리는 천년기 직전에 전 인류 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곧 ‘아마겟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정치적 통치자들 즉 “온 세계의 왕들”이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세력의 인도를 받아 그 최대의 전쟁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을 지금 볼 수 있읍니다. 이 사실 자체는 그 전쟁 후에 있게 될 대망의 천년기가 또한 다가왔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계시 16:13-16, 새번역) 그 전쟁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편에서 적극적인 행동을 하실 분은 하나님의 천군의 지휘자, 신실하고 참된 자라고 불리우는 분,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이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이미 이 천적 지휘자는 왕이십니다. 그분은 “머리에 많은 관을 썼고” “그의 옷과 넓적다리에는 왕들의 왕, 주들의 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분입니다. (계시 19:11-16, 새번역) 그러므로 그분은 144,000명의 그리스도인 공동 후사들과 함께 그 천년간의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왕으로 통치하고 계십니다.—계시 12:5; 14:1-4; 20:4-6.

      3. 그리스도의 천년기 이전 통치의 시작과 관련하여 두루마리의 처음 두 봉인이 떼어질 때 ‘요한’은 무엇을 보았읍니까 (계시 6:1-4)?

      3 이 왕들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기 이전에 통치를 시작하실 일에 대하여는, 현 이십세기의 세계 상태에 대한 그 앞의 묘사에서 언급되었읍니다. 이러한 묘사가 계시록 6장에 나오는데, 그 가운데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곱 봉인을 떼기 시작하실 때 그가 본 것을 알리고 있읍니다. 그 봉인은 천적 보좌에 앉아 계시는 하나님의 손에서 그가 받은 “두루마리”를 밀봉한 것이었읍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린 양이 그 일곱 봉인 중의 하나를 떼는 것을 내가 보았읍니다. 그 때에 나는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뢰 같은 소리로 ‘오라’고 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었고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져 있었는데 그는 이기며 나아갔고 또 이기려고 나아갔읍니다. 어린 양이 둘째 봉인을 떼었을 때에 나는 둘째 생물이 ‘오라’하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러자 불같은 붉은 말이 나왔는데 그 위에 탄 자에게는 사람들이 서로 죽이도록 땅 위에서 평화를 걷어 버리는 권한이 허락되었고 또 다른 검이 그에게 주어졌읍니다.”—계시 6:1-4, 새번역.

      4, 5. (ㄱ) 불같이 붉은 말을 탄 자는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ㄴ) 그 때에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누가 나아갔으며, 이것은 시편 2:1-6이 성취되도록 어떻게 무대를 조성하였읍니까?

      4 여기에서 우리는 기원 1914년에 돌발한 최초의 세계 대전을 묘사하는 상징에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대전은 6년간 지상에서 평화를 더 걷어버린 두 번째 세계 대전의 선구에 불과하였읍니다. 그 최초의 세계 대전이 의로운 전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적 면류관을 받고 지상의 적들과 싸우고 승리하고 그들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대항하여 나아가실 정해진 때였읍니다. 이것은 그분이 후에 ‘아마겟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큰 날에 일어날 전쟁”시에 하나님의 편에서 싸우실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최초의 세계 대전시에 예수께서 하늘에서 왕으로 관을 쓰신 때에 시편 2편의 이러한 말씀이 성취될 무대가 조성되었읍니다.

      5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받은 자[그의 그리스도, 희랍어 칠십인역]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1-6; 또한 사도 4:24-30.

      6. 양차 세계 대전과 국제 연합은 ‘시온’ 산에 앉으신 여호와의 왕을 권좌에서 몰아냈읍니까? ‘아마겟돈’에서 있을 전쟁의 결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증할 것입니까?

      6 기원 1914-1918년의 그 첫 세계 대전 이후로 나라들을 혼란시킨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왕,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왕국 정부의 천적 소재지인 ‘시온’에 앉히셨읍니다. (계시 14:1; 히브리 12:22) 제 1차 세계 대전도, 제 2차 세계 대전도, 국제 연합 기구도 이 메시야 왕을 권좌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읍니다. ‘아마겟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에 일어날 전쟁”은 천적 보좌에 앉으신 그분의 지위를 더욱 굳게 할 것이며 그분은 그 보좌에서 충성스러운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과 함께 천년기 통치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계시 19:19-21) 이러한 중요한 이유 때문에 인류에게 활력을 주는 축복을 수반할 약속된 천년기는 우리에게 확실합니다. 그 때는 다가왔읍니다!

      7. 왜 우리는 고대의 그 “악하고 음란 세대”와 같지 않으며, 그러나 우리가 고려하도록 예수께서 말씀하신 “징조”는 어디에 기록되어 있읍니까?

      7 이상에 제시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천년기가 참으로 다가왔으며, 더우기, 우리 세대 내에 시작할 것임을 확신하기 전에 “징조”를 요구할 회의적인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우리는 십구 세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임을 확신할 수 있도록 예수로부터 징조를 구한 종교적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그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아닙니다. (마태 12:38, 39) 그러나, “징조”에 관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설명이 분명히 있으며, 예수께서는 우리가 살펴 볼 수 있도록 그것을 말씀하셨으므로, 그것을 우리가 고려하기를 거절한다면 우리는 심각한 무지 속에 머물러 있게 될 것입니다. 그 설명이 마태복음 24, 25장, 마가복음 13장, 그리고 누가복음 21장에 나와 있읍니다. 징조에 관한 설명은 사도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에게 주어진 것인데, 그것은 그분이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임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약속된 어떤 미래의 사건들이 가까왔으며, 성취될 때가 임박하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이 주어진 때는 기원 33년 봄 ‘니산’월 11일 즉 그분이 횡사당하기 3일 전이었읍니다.

      “징조”에 관한 예언

      8. 예수께서는 자기가 떠나갈 것을 어떻게 암시하셨으며, 그분이 돌아오실 때에 어떠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까?

      8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듣고 매우 무서워한 일 즉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에 대하여 막 예언하셨읍니다. 그 때 그분은 종교적 반대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마태 23:38, 39) 이것은 그분이 떠나가신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분이 돌아오시면 시편 118:26의 예언적 말씀에 따라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하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9.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숭배자들이 자기의 돌아옴을 환영하는 그러한 말을 하지 않을 것임을 어떻게 지적하셨읍니까?

      9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을 그러한 예언적 말로 환영할 곳이 ‘예루살렘’의 물질적 성전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분의 불길한 말씀에 뒤따르는 이러한 기록에 의하면 바로 그 점을 예수께서는 매우 분명히 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마태 24:1, 2.

      10. 성전이 내려다 보이는 감람산에서 네명의 사도들은 예수께 어떠한 질문을 하였으며, 여러 가지 번역판들은 그들의 질문을 어떻게 번역하였읍니까?

      10 열두 사도는 그들이 감람산에 가기 전까지는 이러한 무서운 예언에 관하여 질문하지 않았읍니다. 감람산에서는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였고 ‘헤롯’ 대왕이 수리한 그 성전이 잘 보였읍니다. 시야에 그러한 것들이 잘 들어왔기 때문에 네명의 사도는 감동을 받고 중대한 질문을 한 것 같으며 그 질문은 또한 다른 사도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임재, 신세; ‘파로우시아’, 희랍어]과 세상 끝[사물의 제도의 결말, 신세]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마태 24:3) 「‘영’의 직역 성서」는 사도들의 말을 희랍어에서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언제 있을 것입니까? 그리고 당신의 임재와, 시대의 온전한 끝의 징조가 무엇입니까?” ‘로더햄’의 「강조된 성서」에도 비슷하게 번역되어 있읍니다. “이러한 일들이 언제 있을 것이며, 당신의 임재와 시대의 결말의 징조가 무엇일 것인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뉴우캄’ 대주교의 「새번역」(개정판)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당신의 출현과 시대의 끝의 징조는 무엇일 것입니까?”—1808년판.

      11. (ㄱ)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언제 있었으며, 그러나 그 때에 또한 다른 무슨 일이 있지 않았읍니까? (ㄴ) 그러므로 우리가 역사에 대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입니까?

      11 오늘날 우리는 ‘예루살렘’의 문자적인 성전의 멸망이 언제 발생하였었는지를 알고 있읍니다. 그것은 천구백년 전인 기원 70년 여름이었는데, 그 때에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 시 전체를 파괴하였읍니다. (누가 21:20-24) 그러나 다른 일들, 즉 제자들의 질문에 포함된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임재(臨在), 출현)와 시대 혹은 사물의 제도(혹은 상태a)의 결말의 “징조”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유대’인 사물의 상태 혹은 제도의 온전한 끝 혹은 결말이 기원 70년에 이른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예언적 본 혹은 모형이었던 ‘유대’인 제도의 실체인 더 큰 사물의 제도의 결말은 이르지 않았읍니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혹은 출현인 ‘파로우시아’는 그 해에 있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기원 20세기에 살고 있으므로 예언된 “징조”가 우리 세대에 나타났는지의 여부를 알아내기 위하여 현 이십 세기의 역사를 조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12. ‘스데반’이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에 대하여 말한 바에 비추어 볼 때에 왜 우리는 사도들이 예수의 “오심” 혹은 “강림”에 대하여 질문하였는지의 여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까?

      12 우리는 제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에 관하여 질문하였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그의 “오심”에 관하여 즉 일부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강림”에 대하여 질문한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은 제기할 가치가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인 순교자 ‘스데반’은 주 예수의 첫 번 째 “오심”에 대하여 말하면서 ‘예루살렘’의 ‘유대’인 ‘산헤드린’에서 이렇게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 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엘레우시스’, 희랍어]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었느니라].” (사도 7:52) 그리스도의 첫 번 째 오심에 대하여 말할 때에 ‘스데반’은 ‘파로우시아’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희랍어 ‘엘레우시스’를 사용하였음에 유의합시다. 이 두 개의 희랍어는 어형과 어원이 다를 뿐 아니라 의미도 다릅니다.

      13. 어원에 의하면 ‘파로우시아’라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그러나 희랍어의 권위자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설명합니까?

      13 ‘파로우시아’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파라’(“곁”)라는 희랍어 전치사와 ‘오우시아’(“있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입니다. ‘리델’과 ‘스코트’ 공편 「희영 사전」 제 2권 1343면 2단에서 ‘파로우시아’의 첫째 정의를 “임재”(“Presence”)라고 하였고, 그 단어의 둘째 정의는 도착이라고 말한 다음, 이렇게 부언합니다. “특히, 왕가에 속한 혹은 관직에 있는 명사의 방문.” 이와 일치하게, 「신약 성서 신학 사전」 제5권(‘게르하르트 프리드리히’ 저)은 “일반적인 의미”로 “임재”(“Presence”)라는 말을 게재하였읍니다. (859면) 다음에 그 사전은 ‘헬레니즘’ 시대의 희랍어의 “전문적 어법”으로 “1. 통치자의 방문”을 내세웠읍니다. 865면에서 동 사전은 “신약에서 ‘파레이미’(동사)와 ‘파로우시아’의 전문적 용법”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신약에서, 그러한 말들이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지적하는 데 결코 사용되지 않았으며, 파로우시아는 결코 돌아오심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파로우시아’에 한가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사상은 후대의 교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14. (ㄱ) ‘헬레니즘’ 시대의 희랍어의 전문적 용법에 의하면, “임재” 대신에 어떠한 말이 사용될 것입니까? (ㄴ) 어떠한 번역판들에는 ‘파로우시아’가 시종 일관 “임재”(presence)라고 번역되어 있으며, 빌립보 2:12에는 어떠한 대조가 있읍니까?

      14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도착”에 대해서가 아니라 도착 후에 대하여 질문한 것이었읍니다. 그들의 질문은 그분의 “임재”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그리고 “임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헬레니즘’ 시대의 희랍어의 “전문적 어법”에 따르면 제자들이 예수께 이렇게 질문하였다고 이해할 수 있읍니다. “무엇이 당신의 [왕실에 속한 명사로서의 방문]과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방문”에는 “도착” 이상의 뜻이 내포되어 있읍니다. 그것은 “임재”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소위 신약에서 ‘파로우시아’라는 희랍어는 스물 네번 나오며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임재”(Presence)라고 번역한 것은 「신세계역 성경」을 비롯하여, 그외에도 1862년 발행 「‘영’의 직역 성서」, 기원 1857-1863년 발행 ‘윌슨’의 「엠페틱 다이어글롯역」, 1897년 발행 ‘로더햄’의 「강조된 성서」 등입니다. 빌립보 2:12에서 “임재” 즉 ‘같이 있음’과 ‘떠나 있음’이 매우 적절히 대조되어 있음을 유의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해 오던 그대로 내가 같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떠나 있는 지금도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시오.” (새번역)

      열 처녀의 비유

      15. 예수께서 예언하신 “징조”의 여러 가지 면을 고려 할 때에 ‘파로우시아’를 어떻게 번역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예로 어떠한 비유가 있읍니까?

      15 ‘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대한 예수의 예언의 여러 가지 면을 고려할 때에 ‘파로우시아’의 의미는 “임재”일 수 밖에 없읍니다. 예를 들면, 일반적으로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의 비유라고 불리우는 예언의 부분을 고려하여 봅시다. 예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과 “악한 종”에 관하여 예언하신 직후에 자기의 ‘파로우시아’와 관련한 또 다른 면에 대하여 예언하셨읍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느니라].”—마태 25:1-4; 24:45-51.

      16. 비유의 서론에 의하면 그 여자들은 어떠한 의미로 “처녀”입니까?

      16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이 비유가 한 반열의 사람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성취는 개개인의 생사에 적용되는 것이 아님에 유의해야 합니다. 관련된 사람들은 “천국”을 대표하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에서 “처녀”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 때에 천국은 마치 ··· [무엇과 같은가?] 열 처녀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 왕국은 예수께서 이보다 조금 앞서 예언하신 가운데 언급하신 그 왕국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17. (ㄱ) 열명의 “처녀”는 누구를 상징합니까? (ㄴ) 비유는 언제 성취되기 시작하였으며, 왜 그 때부터 성취되었읍니까?

      17 “열”이라는 수자는 성경에서 지적인 사물에 대한 완전함을 나타내는 수자이므로, 열명의 “처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을 상속할 대열에 있는 혹은 그 대열에 있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 전부를 상징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언적 비유는 언제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기원 33년 ‘시완’월 6일 일요일 오순절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왜냐 하면 그 때에 처녀 반열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이 그 날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에 의하여 그분의 영적 아들로 출생하여 ‘하나님의 후사’ 및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가 될 입장에 있게 되었읍니다. (로마 8:17) 그러나 성서에서 후사들이란 일반적으로 아들들입니다. 그런데, 왜 비유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영으로 출생한 회중의 모든 성원들이 결혼식 날 밤에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처녀 즉 여자로 상징되었읍니까? 그리고 이 “신랑”은 누구입니까?

      18. 혼사와 관련하여 침례자 ‘요한’은 자신과 예수를 누구에게 비하였으며,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을 누구에게 인도하였읍니까?

      18 우선, 이 “신랑”은 부활되고 영화롭게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침례자 ‘요한’은 그러한 관점에서 그에 관하여 말하였으며 따라서 자신을 “신랑의 친구”에 비겼읍니다. 그 당시 “신랑의 친구”는 일반적으로 신랑 신부의 결혼을 주선하는 사람이었읍니다. 약혼한 두 사람이 결혼하는 날 밤에는 신랑의 친구에게보다 신랑에게 관심이 집중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은 그들의 비유적인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대비시키고 있던 자기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그분보다 앞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다’라고 내가 전에 한 말을 증거할 사람은 바로 너희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는 옆에 서서 신랑의 음성을 기다리다가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크게 기뻐한다. 나는 지금 그런 기쁨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 (요한 3:28-30, 새번역) 그러므로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께 인도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읍니다.

      19, 20. (ㄱ) 예수께서는 비유와 「계시록」 가운데서 자신을 어떻게 신랑에 비하였읍니까? (ㄴ) 따라서 새 ‘예루살렘’은 무엇이라고 불리웁니까?

      19 한편, 예수께서는 자기가 말씀하신 비유 중에서 자신을 신랑에 비하셨읍니다. 이것은 왕이 아들을 위하여 준비한 “결혼 잔치”의 비유였고 이 아들은 위대하신 영원한 왕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대표하였읍니다. (마태 22:1-14, 새번역)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사도 ‘요한’에게 전달한 계시 가운데서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의 회중과 결혼하는 신랑으로 비유되어 있읍니다.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라. 어린 양의 결혼 날이 이르렀다. 그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내고 빛나고 깨끗한 고운 베옷을 입었다. 이 고운 베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이다’ ··· ‘어린 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기록하라.” 또한 사도 ‘요한’은 자기에게 와서 말한 천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0 “일곱 천사 중의 하나가 내게 와서 말했읍니다. ‘오라, 어린 양의 아내인 신부를 네게 보여 주겠다.’ 그리고 그는 성령으로 나를 이끌어 크고 높은 산위로 데리고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읍니다. 그 도시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둘려 있었읍니다.”—계시 19:7-9; 21:9-11, 새번역.

      21. 에베소 5:23-27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회중과의 관계를 무엇에 비하였읍니까?

      21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공동 후사 144,000명의 회중과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비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 5:23-27.

      22. 결혼은 어디에서 있으며, 왜 예수의 비유에는 신부에 대한 언급이 없읍니까?

      22 물론,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 회중과의 결혼은 하늘에서 있게 됩니다. 하늘에서 그들은 천적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으로 연합될 것입니다. 그러나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에는 신부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생각의 어수선함을 피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신부”가 열 처녀 가운데서 뽑히기 때문에, 즉 선택되기 때문입니다. 선택된 “처녀들”은 “어린 양의 결혼 잔치에 초대를 받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계시 19:9, 새번역) 이와 일치하게, 예수의 비유는 자격이 있는 “처녀들”이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방으로 통하는 문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읍니다. 그들이 어떻게 자격이 있는지를 비유는 설명합니다.

      23. 그리스도의 회중 성원들이 “처녀들”로 비유된 사실은 그들에게 어떠한 요구 조건을 부과합니까?

      23 그리스도의 신부 회중의 성원들은 그들이 동정을 지킨 신랑과 약혼하였다는 이유 외에 다른 이유로도 “처녀들”로 비유되어 있읍니다. 그들은 또 다른 영적 의미로서 “처녀들”입니다. 처녀는 깨끗하고 순결하고 성적으로 접촉된 바 없듯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이들 충실한 성원들은 이 세상의 종교적 정치적 조직과 어떠한 관련도 가지지 않고 이 세상과 분리된 면에서 순수하고 깨끗합니다. 그들은 교회와 국가의 결합에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말려들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영적 처녀성을 유지합니다. (디모데 후 2:3, 4) 이것이 바로, 영적 ‘시온’ 산에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난 144,000명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의 의미입니다. “이 사람들은 여자[종교적인 음녀 큰 ‘바벨론’과 그의 딸들과 같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사실, 그들은 처녀들이다, 신세]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니라].”—계시 14:4; 17:3-5.

      24. 야고보 1:26, 27은 처녀로 비유된 자들에게 요구된 깨끗함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24 요구된 깨끗함에 대하여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숭배 형식, 신세]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숭배 방식]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야고보 1:26, 27.

      “신랑”을 맞으러 나감

      25.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리스도의 회중은 어떻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순결하고 더럽혀지지 않은 종교로 출발하였으며, 그들에게는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25 기원 33년 오순절날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성령의 침례가 베풀어졌는데, 그때에 그리스도인 회중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숭배의 형태로 출발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 형주에 못박게 한 종교 조직으로부터 분리된, 영적 의미의 처녀 반열이었읍니다. (사도 2:1-42) 그들은 메시야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열두 사도의 가르침으로 출발하여, 잘못 안 조상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비성경적 종교 전통에 몰두하던 “패역한 세대”로부터 떠나 있었읍니다. (사도 2:40; 갈라디아 1:13-17; 마태 15:1-9) 성령의 침례와 방언의 선물은 그들이 참 종교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알고 있다는 증거였읍니다. 이제 그들은 그 면에서 “처녀”로 머물러 있어야 하였읍니다.

      26, 27. (ㄱ) 영적인 면으로, 그리스도인 회중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누구와 약혼하였읍니까? (ㄴ) ‘바울’은 “신랑의 친구”와 같이, 고린도 후 11:2-5에서 ‘고린도’인들에게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26 그리스도인 회중이 천적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약혼한 것은 그 날(기원 33년 ‘시완’월 6일)이었읍니다. ‘예루살렘’의 120명으로 구성된 그 원 회중에 그 후에 부가된 사람들 모두는 그 약혼한 반열의 일부가 되었으며 그들은 “처녀”로 머물러 있어야 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 사실을 지적하여, ‘고린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의 약혼을 파하고 거짓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경고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은 “신랑의 친구”와 비슷한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27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내가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줄 생각하노라.”—고린도 후 11:2-5.

      28. 예수와 천사들은 예수께서 ‘유대’인 신랑과 같이 와서 그들을 데려가실 것임을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하였읍니까?

      28 그들이 동정을 지킨 신랑과 하늘에서 결혼하는 것은 미확정적인 장래, 즉 기원 33년 오순절 그 약혼일로부터 상당히 먼 후일에 있을 일이었읍니다. 그 보다 52일 전, 즉 예수께서 불충실한 사도 ‘가룟 유다’에게 배반당하시던 밤에 예수께서는 그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한 14:2-4) 그로부터 42일 후에 여러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여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두 천사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 1:9-11)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전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확약하신 바와 같이, 떠나가신 예수께서 결혼식날 밤의 ‘유대’인 신랑과 같이 와서 그들을 그분의 천적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실 것을 알았읍니다.—요한 14:1-3.

      29. (ㄱ) “처녀” 반열은 언제 신랑을 맞으러 출발하였읍니까? (ㄴ) 이제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두 종류의 처녀들의 수가 같은 사실은 무엇을 나타냅니까?

      29 결혼 행사에 관한 그러한 전망을 가지고, 약혼한 처녀 반열은 신랑을 맞이하고 환영하고 그와 함께 기뻐하기 위하여 나갔읍니다. 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태 25:13) 기원 33년 오순절날 출발한 사람들과 후에 그들과 연합한 수천명 가운데서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비유 중의 “슬기있는” 처녀들과 같고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미련한” 혹은 슬기롭지 못한 처녀들과 같을 것입니까? 비유는 슬기있는 자들의 수와 미련한 자들의 수가 같다고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실제로 출발한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기회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며, 또한 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른 종류의 사람들보다 많을 것임을 나타내려고 하지 않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그 점은 미정에 붙여두었읍니다. 그러나 비유는 “처녀”로 출발하는 모두가 “어린 양의 결혼 잔치”에 들어가 즐기기에 합당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예언하였읍니다.—누가 12:35-38.

      30. (ㄱ) 슬기있는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을 무엇이 구별시켜 주었읍니까? (ㄴ) 모두는 불켜진 등을 가지고 출발하였읍니까? 그러므로 이 점에서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었읍니까?

      30 그러면 슬기있은 혹은 분별있는 처녀와 미련한 혹은 무분별한 처녀를 구별시켜 준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 갔”다는 점입니다. (마태 25:3, 4) 그러나 그들 모두가 환영 행렬 끝까지 그들이 불켜진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들의 신분 증명이 되며 그들이 결혼 잔치에 들어가기에 합당함을 나타내는 증거가 될 것임을 알고 있었읍니다. 이 때문에 결혼 행렬이 신랑의 집에 이를 때까지 등불이 켜져 있게 할 만한 기름이 필요하였읍니다. 비유의 성취에서 기름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그들은 도착한다는 발표가 있기 전에 신랑을 맞으러 나갔으며, 그들이 출발할 때에 그들의 등은 불이 켜져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적어도 그 때에는 그들의 등에 기름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결혼 행렬이 신랑의 집에 들어갈 때까지 그들의 등불을 유지시킬 만한 기름이 있었읍니까?

      31, 32. (ㄱ) 비유의 목적은 그들 상징적 “처녀들”에 관하여 무엇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읍니까? (ㄴ) ‘바울’이 빌립보 3:20, 21에서 표현하였듯이, 그들은 어떠한 기다리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31 기름은 빛을 내는 액체였읍니다. 기름이 없으면 등에 있는 심지는 한결같고 계속적인 빛을 발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결혼 잔치에 불켜진 등을 가지고 가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였읍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목적은 천적 결혼식에 참석하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특정한 신분, 특정한 성품을 지녀야 할 것이며, 결혼 행렬이 언제 시작하여 마침내 “신부”를 위하여 신랑의 집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든지 않든지 간에 그들이 이것을 끝까지 유지해야 할 것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우선 “천국” 반열은 지상, 이 어두운 세상 가운데 있는 동안 영적인 면으로 “처녀”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희망을 천적 신랑에 고정시켰고 이러한 태도로 인하여 그들은 불결한 세상에 자신을 더럽혀지지 않게 하였읍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계시 14:4) 그들은 이렇게 말한 사도 ‘바울’과 같아야 합니다.

      32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립보 3:20, 21.

      33. (ㄱ) 그들은 이 영적 처녀성을 얼마 동안이나 유지해야 하며, 무엇에 합당함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합니까? (ㄴ) 예수께서는 그들이 이 합당한 상태를 반영하는 것에 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읍니까?

      33 그러므로 그들이 영적인 처녀성을 유지하는 것은 천적 신랑이 그들을 “신부”로 받아들이기에 합당함을 증명하려는 그들의 염원과 결의 때문입니다. 그들의 일상 생활은 현 인류 세상의 어두움 가운데서 이것을 반영해야 합니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31년에 산상 수훈 가운데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14-16.

      34. 빌립보 2:14-16에 있는 ‘바울’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빛을 내야 하였읍니까?

      34 사도 ‘바울’은 또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모든 일을 불평과 시비없이 하시오. 여러분은 흠잡힐 데 없는 순진한 사람이 되어 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시오. 그리하면 내가 달음질한 것과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빌립보 2:14-16, 새번역.

      35. 그러면, 처녀들이 등을 들고 있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며 무엇을 기대하고 그렇게 합니까?

      35 “천국” 반열이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발하기 위하여는 천적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착한 행실”을 해야 합니다. 즉 그들은 모든 일을 불평과 시비없이 해야 하고 그리스도인 생활에 관한한 흠잡힐 데 없고 순진한 상태를 유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흠없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들은 신랑이 와서 그들을 그의 천적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갈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처녀들이 불켜진 등을 들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었읍니다. 그것은 세상의 어두운 밤에 신랑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상징적 기름과 담는 그릇

      36. 빛을 내는 액체인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36 그러면 빛을 내는 액체인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그것은 “천국” 반열이 어두운 세상에서 계속 빛을 내게 해 주는 무엇인가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그것은 그들이 “굳게 잡”아야 할 “생명의 말씀”을 상징할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 119:105)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기름”이 상징하는 것 가운데에는 또한 하나님의 성령이 포함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거룩한 보이지 않는 활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요한 16:13) 이 성령은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작용하여 열매 즉,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와 같은 영의 열매를 맺습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러한 영적 “기름”은 빛을 내는 힘이 있읍니다.

      37. 처녀들이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가진 것은 무엇을 상징하며, 왜 그렇습니까?

      37 비유 가운데서, 처녀들은 기름을 그릇에, 그들이 들고 있는 등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그릇에 담고 있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기름을 마시고 다음에 필요에 따라 등에 토해넣어 불이 꺼지지 않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몸을 “그릇”이 되게 할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기름으로 채운 “그릇”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물론 그들 개인의 몸을 그릇으로 삼아 그 속에 기름을 넣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공급할 기름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천국” 반열은 확실히, 그 반열 내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 곧 비축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적절하게도, 비유 가운데서 “그릇”은, 상징적 “기름”을 가진 자들로서의 “처녀” 반열의 성원들을 뜻합니다. 확실히 그들은 신랑을 맞으러 나가 행렬에 가담하기 위하여 그러한 “기름”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38. 그러면 처녀들이 가진 등은 무엇을 상징하며, 어떠한 면으로 빛을 발합니까?

      38 비유 가운데서, 열 처녀는 밤에 주위를 밝히기 위하여 등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러면 오늘날 그 비유의 성취에서 그 등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기름 “그릇”과 동일한 것을 상징합니다. 왜냐 하면 고대의 등에는 기름 “그릇”처럼 빛을 내는 기름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천국 반열”의 성원들 자신이 상징적 등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기름을 배불리 마셨다가 자신의 몸 전체에 뿜고 불을 질러 신랑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순교자들과 같이 행렬 도로에 늘어선 “살아있는 햇불”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은 계몽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성령으로 충만해 있으며, 따라서 영광스러운 천적 신랑을 위하여 영적으로 빛을 발합니다. 영적 특질로 인하여 그들 자신은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영의 영향을 받아 빛을 발하는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분께 영광을 돌립니다.

      39. (ㄱ) “처녀들”은 그들이 신랑을 위하여 얼마 동안이나 기다려야 할 것인지를 왜 알지 못하였읍니까? (ㄴ) 그러므로 슬기있는 처녀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함을 깨달았읍니까?

      39 신랑이 신부를 맞은 집을 밤 어느 시간에 떠나 결혼 생활을 위한 자기 집으로 행렬을 인도할지가 정하여져 있지 않으므로 비유 가운데 처녀들은 신랑이 나타날 때까지 그들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정확히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등을 얼마 동안 켜 두어야 할 것인지를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등에 기름을 채워야 할 뿐 아니라 그릇에 가외의 기름을 채워두는 것이 현명하였을 것입니다. “슬기있는” 혹은 분별있는 처녀들은 이것을 알고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읍니다. “미련한” 혹은 슬기없고 무분별한 처녀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면에서의 그들의 미련함은 시간이 경과하면서 분명하여졌읍니다.

      40. (ㄱ) 비유의 성취에서, “슬기 있는” 처녀 반열은 어떻게 그들의 그릇에 기름을 담아가지고 갑니까? (ㄴ)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신랑과의 약혼 관계에 충실함을 증명하도록 어떻게 도와줍니까?

      40 비유의 성취에서, “슬기있는” 다섯 처녀로 상징된 사람들은, 말하자면, 그들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움으로써, 곧 개인 연구에 의하여 그것을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토론하는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로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의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담아가지고 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을 간구하고 계속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자 노력합니다. (에베소 5:18) 이와 같이 그들이 영적 “기름”으로 충만하여 있기 때문에, 장차 어떠한 긴급 사태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인내력을 새롭게 하고 그들의 천적 신랑과의 약혼 관계에 충실하다는 증거로 “세상의 빛”이 되어 계속 빛을 발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41. (ㄱ) 이방인들은 언제 처음으로 신랑을 맞으러 나간 “정결한 처녀” 반열의 일부가 되었읍니까? (ㄴ) 기원 70년에 ‘유대’인들에게 발생한 일 때문에 “처녀” 반열은 그때에 신랑을 만났읍니까?

      41 기원 36년 가을에, 할례받지 않은 비‘유대’인 즉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숭배 방식인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수 있는 문이 열렸읍니다. 이들 믿는 이방인들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유대’인 신자들이 받은 것과 같은 하나님의 성령과 성령의 선물들을 받았읍니다. (사도 10:1에서 11:18; 15:7-19) 그리하여 이들도 역시 ‘그리스도와 약혼한’ “정결한 처녀” 반열의 일부가 되었읍니다. (고린도 후 11:2) 그 때부터 그들은 “열 처녀”의 비유의 성취에 가담하였으며, 비유의 말을 빌리면, 그들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갔읍니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 시와 그 곳의 호화로운 성전은 ‘로마’ 군단에 의하여 멸망되었읍니다. 그 끔직한 멸망은 믿지 않고 그리스도를 반대한 ‘유대’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표현이었으나 “정결한 처녀” 반열은 그들이 환영하러 나간 천적 신랑을 만나지 못하였읍니다.—누가 21:20-24; 마태 24:15-22; 마가 13:14-20.

      42, 43. (ㄱ) 제 1세기 말에, 어떠한 계시가 “정결한 처녀” 반열과 그들이 가진 희망에 격려가 되었을 것이 분명하며, 그러나 그 계시는 어떻게 끝났읍니까? (ㄴ) ‘요한’은 그 후에 쓴 첫째 편지에서 이미 누구의 임재를 지적하였읍니까?

      42 몇해 후, 기원 제 1세기 말인 기원 96년경에 사도 ‘요한’은 천적 신랑 예수 그리스도와 새 ‘예루살렘’으로 묘사된 그의 “신부”에 대하여 밝혀 주는 놀라운 계시를 보았읍니다. (계시 21:1에서 22:17) 이것은 돌아오는 신랑을 맞이할 희망에 고착한 “정결한 처녀” 반열에게 말할 수 없는 격려가 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천적 신랑은 이러한 말로 그 계시를 끝맺었읍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그러자 연로한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고 응답하고 나서, 끝으로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찌어다. 아멘.” (계시 22:20, 21) 아마 그로부터 2년 후 즉 기원 98년경에 사도 ‘요한’은 자기의 세 개의 편지 중 처음 것을 썼을 것이며, 그 가운데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43 “어린 사람들이여,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온다는 말을 그대들이 들은대로 벌써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타났읍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을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죄 가운데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이 그 사람을 지켜 주시므로 악한 자가 그를 다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 있고 온 세상은 악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요한 1서 2:18; 5:18, 19, 새번역.

      44. (ㄱ) 그 후 ‘요한’이 사망하자 누가 들어오는 길이 열렸읍니까? (ㄴ) 그 때까지는 “열 처녀” 반열의 불 켜진 등이 어느 정도나 비쳤을 것이며, 신랑을 만날 희망은 어떠하였읍니까?

      44 연로한 ‘요한’은 세 개의 편지와 「요한 복음」이라고 알려진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을 남긴 직후, “어린 양의 십이 사도” 중 마지막으로 사망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요한’이 사망하자, ‘요한’이 이미 경고한 바와 같이, 신랑이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들어오는 문이 점차 열리기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 2:7, 8) 다음에 “세상의 빛”은 거의 소멸되었읍니다. “열 처녀”로 상징된 반열의 상징적 “등”은 매우 희미한 빛을 내었읍니다. 사실 참다운 “처녀들”의 수는 매우 적어졌을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돌아오시기를 바라는 염원보다 다른 관심사,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사가 단순히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의 주의를 모았을 것입니다. 상당히 오랜 기간이 경과하였지만 그분은 나타나지 않으셨읍니다.

      4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다는 말이 특히, ‘콘스탄틴’ 시대까지는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45 이 사실은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예언되어 있읍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잤느니라].” (마태 25:5)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회중이라고 공언하는 종교 단체 내에서 성원들이 신랑의 오심을 기다리다가 점점 지쳤읍니다. 사실, ‘콘스탄틴’ 대제가 소위 “개종”을 하고 그리스도교라 칭하는 당시의 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 그리스도의 돌아오심은 필요없는 것 같이 보이게 되었읍니다. 이제 그리스도교국이 확립되어 교회의 종교적 주교 중 다수가 ‘로마’ 정부와 제휴하고 종교적인 의미로 통치를 시작하였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도들이 죽음 가운데 잠자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들 자칭 그리스도인 주교들도 그리스도인 책임과, 인간의 철학과 전통으로부터 그리스도인 회중을 순결하게 보호할 필요성과,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하고 더러움이 없는 숭배 방식에 있어서 절대 순수하고 세상으로부터의 흠이 없는 상태를 유지할 필요성에 대하여 잠들어 있었읍니다.

      46. (ㄱ) “열 처녀” 반열의 이 잠은 예수께서 밀과 가라지의 비유 가운데 예언하신 것과 어떻게 유사합니까? (ㄴ) 영적인 잠은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것이었으며, 그 비유의 마지막 면은 어느 때에 성취될 것이었읍니까?

      46 이 종교적 상태는 밀과 가라지의 예수의 비유로 상징된 것과 유사한 것 같습니다. 그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라].” (마태 13:24, 25) 오랜 성장기가 지난 후에야 추수기가 될 것이며, 그 때에야 비유 가운데 있는 그 “사람”이 추수하러 와서 가라지는 뽑아내고 순수한 “밀”은 모아 자기 창고에 넣으라고 명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비유 전체를 설명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마태복음 24:3에 기록된 질문을 할 때 사용한 것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추수 때는 세상 끝[사물의 제도의 결말, 신세]”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3:39) 세상적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오랜 시간이 남았으며,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 예언된 잠은 긴 잠이었읍니다. 처녀들에 관한 비유의 마지막 면의 성취는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징조”의 일부가 될 것이었읍니다.

      [각주]

      a ‘캠벨’, ‘맥나이트’, ‘다드리지’ 공저 「흔히 신약이라고 불리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복음 전도자들의 거룩한 기록」 기원 1828년판.

  • “보라, 신랑이로다!”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1장

      “보라, 신랑이로다!”

      1. “열 처녀”가 미정의 긴 잠을 자다가 누가 흥분케 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며, 특히 어떠한 종교적 각성이 있은 후에 그러할 것입니까?

      예수의 비유 가운데 예언된 그 미정의 긴 잠을 자다가 상징적인 “처녀들”, 특히 그릇에 여분의 기름을 가지고 간 “슬기있는” 처녀들을 흥분케하는 어떤 일을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기원 16세기 초에 종교적인 각성이 있어 하나님의 진리의 유일한 서적,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위한 참으로 영감받은 지침서인 영감받은 성경으로 돌아가려는 열성적인 노력이 ‘유럽’에서 있은 후에 특히 그러하였읍니다. 다시 오시겠다는 그리스도의 약속은 성서의 성실한 독자들과 연구생들에게 상당한 감명을 주었읍니다. 그들은 이 두번째 오심이 천년기 이전 곧 ‘사단’이 결박되어 “무저갱” 즉 “밑없는 구덩이”에 감금되므로 시작될 약속된 천년기가 시작하기 전에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읍니다.

      2. ‘루터’파 신학자 ‘제이. 에이. 벵겔’은 그러한 종교적으로 흥분을 자아내는 일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였읍니까?

      2 예를 들면, 18세기 상반기에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이라는 ‘루터’파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독일 ‘부에르템베르크’의 ‘비넨덴’에서 기원 1687년에 태어나서 기원 1752년에 사망하였읍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많은 저서를 남겼읍니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11판)은 그의 저서에 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더욱 중요한 저작으로는, 성서 연대에 관한 논문인 「오르도 템포룸」[시대의 질서]이 있다. 여기에서 그는 세상 끝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독일에서 널리 호평을 받은 「묵시록의 해설」이 있는데, 그것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제 3권 737면.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은 ‘벵겔’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짐승의 수”와 “천년기”의 연대[그는 천년기가 1836년에 시작된다고 단정하였다] 등을 결정하려고 노력한 그의 연대학적인 저작들은 판단이 신빙성 있다는 그의 평판을 다소 손상시켰다.—제 1권 749, 750면.

      3. (ㄱ) 출판된 ‘벵겔’의 저서들은 왜 신랑에 대한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까? (ㄴ) 그 외에도 ‘매사추세츠’ 주(미국) ‘피츠필드’의 ‘윌리암 밀러’는 어떻게 사람들을 흥분시켰읍니까?

      3 그러나 18세기 상반기에 발행된 ‘벵겔’의 저서들은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보라, 신랑이 온다. 나와 맞으라”라는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다. (마태 25:6, 개역 한글판; 새번역) ‘벵겔’의 출판물에 따라 그 책들의 내용대로 행동한 사람들은 1836년에 육체를 가지고 눈에 보이게 돌아오시는 천적 신랑을 만나지 못하였읍니다. 얼마 후 “정결한 처녀” 반열이라고 공언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또 다시 흥분케 하는 일이 있었는데, 1781년에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에서 태어난 사람과 관련하여 특히 그러한 흥분이 있었읍니다. 이 사람은 소위 ‘밀러파’ 혹은 ‘재림교도’의 창립자가 된 ‘윌리암 밀러’였읍니다. ‘매클린톡’과 ‘스트롱’ 공편 「백과 사전」 제 6권 271면은 이렇게 말합니다.

      1833년경, 그가 ‘뉴우요오크’ 주 ‘로우 햄튼’에 거주하던 시절에 그는 세상이 1843년에 끝날 것이라는 새로운 교리를 가르치는 주창자로서의 생애를 시작하였다. 그의 신앙의 바탕을 이룬 주된 이론은 다니엘 8:14에 있는 2,300일의 만료에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는 그날 수를 햇수로 간주하였다. 다음에 그는 다니엘 9:24의 70주를 앞장의 2,300일의 연대를 알아내는 관건으로 간주하였다. 페르샤 왕 ‘아닥사스다’가 ‘에스라’를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 ‘예루살렘’에 ‘유대’인 국가를 회복하도록 돌려 보낸(에스라 7장) 주전 457년으로부터 그 기간을 산정하고 일반 주석자들과 같이 그 70주의 끝을 그리스도께서 못박힌 주후 33년으로 계산한 그는 2,300일의 남은 기간인 1810년간이 1843년에 끝날 것으로 알았다. 십년 동안 그는 이러한 취지의 주장에 고착하여, 약속한 날을 고지식하게 기대한 많은 추종자들을 모으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 수는 5만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창자의 가르침과 다른 결과가 있게 되자, 때때로 재림교도들이라고도 불리운 그들은 점차 ‘밀러’를 등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1849년 12월 20일 ‘뉴우요오크’ 주 ‘와싱턴’ 군 ‘로우햄튼’에서 사망하였다.

      4. (ㄱ) ‘밀러’ 운동은 어떻게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까? (ㄴ) 그로부터 30년 후에 독립적인 한 성서 연구 집단은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에 대하여 무엇을 깨닫게 되었읍니까?

      4 그러므로 분명히, ‘밀러’파 운동은 “보라, 신랑이로다!” 하는 한 밤의 외침이 아니었읍니다. 천적 신랑은 1843년에 그 재림교도들의 눈에 보이게 육체로 그들에게 나타나 환희 가운데 그들이 원하는 천적 집으로 그들을 데려가시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성서 연구는 계속되었읍니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재림교도들과 무관한, 그리고 그리스도교국의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은 소규모 집단의 사람들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어그’(‘앨리게이니’)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종파적인 색안경을 쓰고 성서를 보지 않으려고 독립적인 연구를 하였읍니다.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은 20대 초의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었읍니다. 그들은 물론 천적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에 강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서를 연구한 결과, 그리스도께서 물질화한 인간 육체로 눈에 보이게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은 이제 혈과 육을 가진 분이 아니므로 영으로 눈에 보이지 않게 돌아오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도착은 인간들에게 보이지 않을 것이며, 이 도착으로 그분의 보이지 않는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증거로 그의 임재가 분명하여질 것입니다.

      “일곱 때”—“이방인의 때”

      5. 그들은 연구 중 예수께서 언급하신 어떠한 기간에 관하여 고려하였으며, 1876년에 ‘러셀’은 그 기간의 끝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발표하였읍니까?

      5 이들 탐구심이 강한 연구생들은 그들의 성서 연구 중 예수께서 누가 복음 21:24에서 말씀하신 “이방인의 때”에 관하여 고려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그 이방인의 때를 다니엘 4장 16, 23, 25, 32절에 네번 언급된 “일곱 때”와 결부시켰읍니다. 이들 성서 연구생들은 이방인이 땅을 지배하는 그 “일곱 때”가 하나님 앞에서 합법적으로 끝나는 시기를 언제로 결정하였읍니까? 그 당시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에서 ‘조지 스토어스’라는 사람이 발행하는 월간지가 있었는데, 그 잡지 이름은 「사경 (査經)」지였읍니다. 1876년에 24세의 ‘러셀’은 그 문제에 대한 글을 써서 동 잡지에 기고하였읍니다. 그것은 1876년 10월호인 제 21권 1호에 게재되었읍니다. ‘러셀’이 쓴 기사는 그 잡지 27, 28면에 “이방인의 때: 언제 끝나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렸읍니다. 그 기사(27면)에서 ‘러셀’은 “일곱 때가 주후 1914년에 끝날 것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6. (ㄱ) 1877년에 ‘러셀’은 무슨 책을 공동으로 발행하였으며, 그 책은 이방인의 때의 끝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 때 인정된 연대표에 의하면 인간 존재 6천년은 언제 끝났으며, 그러나 일곱 째 천년기는 언제 시작된다고 생각되었읍니까?

      6 이듬해(1877년) ‘러셀’은 ‘뉴우요오크’ 주 ‘로체스터’의 ‘넬슨 에이치. 바아버어’라는 사람과 공동으로 「삼세계와 이 세계의 추수」라는 제목의 책을 발행하였읍니다. 이 책에서는 이방인의 때가 1914년에 끝나기 전에 기원 1874년부터 3년 반 동안의 추수기로 시작되는 40년 기간이 선행한다고 설명하였읍니다. 이 추수는 1874년에 임재 즉 ‘파로우시아’를 시작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에 진행될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 그 직후에, ‘모세’의 율법하에서 ‘유대’인들이 지킨 고대 “희년”이 전영한 인류를 위한 실체적인 큰 희년이 시작할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 (레위 25장) 그 후에 채택한 성서 연대표에 의하면 인간이 지상에 존재한 6,000년은 1872년에 끝났으나, 주 예수께서는 인류 존재의 육천년 끝에 오시지 않고 1874년 10월 실체적 희년이 시작된 때에 오셨다고 하였읍니다. 1874년은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이래 6천년이 끝나는 해로 계산되었읍니다. 1874년부터 인류는 일곱째 천년기에 사는 것으로 이해되었읍니다.—계시 20:4.

      7. (ㄱ) ‘러셀’의 종교 잡지가 1879년에 창간되었을 때에, 왜 그 잡지명 가운데 “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는 말을 포함시켰읍니까? (ㄴ) 그 “임재”가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 이르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되었었읍니까?

      7 그러한 이해를 가지고, “정결한 처녀” 반열은 1874년에 천적 신랑을 맞으러 나가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해에 그분이 도착하여 그때부터 보이지 않게 임재하여 계실 것이라고 그들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미 신랑이 보이지 않게 임재한 때에 살고 있다고 느꼈읍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차알즈 테이즈 러셀’이 1879년 7월에 독자적인 종교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을 때에 그는 그 잡지명을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고 하였읍니다. 그는 마태복음 24:3과 다른 곳에서 희랍어 ‘파로우시아’를 “오심”(coming)이 아니라 “임재”(presence)라고 번역한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역」에 이미 익숙해 있었읍니다. 그 새로운 잡지는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1874년에 시작하였다고 전하고 있었읍니다. 이 임재는 이방인의 때의 끝인 1914년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었읍니다. 그 해에 이방 나라들은 멸망되고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사망했다가 영자의 생명으로 부활되어 하늘에서 그들의 신랑과 함께 영화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읍니다. 그리하여 현명한 다섯 처녀로 상징된 반열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결혼식에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읍니다.

      8. (ㄱ)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무엇을 열렬히 기대하였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 날 아침에 ‘러셀’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들에게 무엇을 발표하였읍니까?

      8 해가 바뀌고 때가 점점 다가옴에 따라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그 중요한 날인 1914년 10월 1일을 강렬해지는 관심을 가지고 기대하였읍니다. 이들은 이 불결한 세상에서 분리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성별된” 그리스도인들로 된 반열이었으며,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별을 물침례로 상징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신랑을 맞을 것으로 기대한 때가 다가오자 그들의 빛을 비추고자 노력하였읍니다. 마침내 1914년 10월 1일 바로 그 날이 되었으며, 그 날 아침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 ‘차알즈 테이즈 러셀’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들에게 “이방인의 때는 끝났고, 이방 왕들의 시대는 막을 내렸읍니다” 하고 발표하였읍니다.

      9. 그러나, ‘러셀’ 자신은 언제 사망하였으며, 이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내려야 합니까?

      9 그러나 그 이방인의 때의 끝에 교회의 남은 자들은 자기들이 기대한 바와 같이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지는 않았읍니다. 1916년 10월 31일에 비로소 ‘러셀’ 자신이 사망하였고 협회장직이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졌읍니다. 무엇인가 잘못 계산되었었음이 분명합니다.

      10. (ㄱ) 1914년 10월 1일에 지상에 있는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에게 무엇이 조성되고 있었읍니까? (ㄴ) 박해는 언제 절정에 달하였으며, 어떠한 편지가 천적 신랑과의 연합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알려 줍니까?

      10 1914년 10월 1일에 그리스도인 교회가 영화롭게 되기는 커녕 천적 신랑을 맞기를 원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어려움이 조성되고 있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이 가공할 형태로 여러 해를 끌음에 따라 “정결한 처녀” 반열에 대한 계속 쌓인 박해는 절정에 달하였읍니다. 이 절정은 1918년 여름에 도래하였읍니다. 그 때에 ‘왙취 타워 협회’의 새 회장 ‘조셉 에프. 러더포오드’와 총무겸 재무 ‘더블류. 이이. 밴 앰버어그’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 본부 봉사자와 관련된 다른 그리스도인 여섯명이 연방 법원에서 부당하게 유죄 선고를 받고 ‘조지아’ 주 ‘애틀란타’ 소재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읍니다. 그 교도소 감방에서 회장 ‘러더포오드’는 교도소 밖에서 박해를 당하고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보냈읍니다. 이 편지의 일부가 1918년 8월 30일에서 9월 2일까지 ‘위스컨신’ 주 ‘밀워어키’에서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의 4일간 대회 ‘프로그램’ 4면에 인쇄되었읍니다.a 이 편지에는 하늘에서 신랑과 일찍 연합하고자 하는 “정결한 처녀” 반열의 간절한 열망이 나타나 있읍니다. 아래에 인용한 그 일부 내용에 특히 그 점이 나타나 있읍니다.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들에게:—

      “교도소 생활은 생소하지만, 모든 경험은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경험을 천적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이제 우리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읍니다.

      ‘지적인 기쁨은 모두 사라지라, 사라지라,

      예수님은 나를 맞으시나니!’

      “사실, 지금은 아무런 지적 기쁨이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집에 모일 것을 기쁨으로 기대합니다. ··· 흔히 우리는, 우리가 떠나는 쪽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가기 전에 한 동안 여러분을 섬기는 쪽을 택할 것인가 하는 두 가지 중 한 길을 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는 느낌을 가집니다. 그분의 뜻대로 되기를 바랍니다!나는 이 모든 경험들이 마지막으로 모아 들이는 일에 대비하여 교회를 성숙한 경지로 이끌어 주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다른 곳에 있는 친애하는 사람들의 편지는 그들이 희생물을 태우는 불에 순응하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

      “양떼의 친애하는 양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십시오. 가까운 장래에 영광 가운데 집으로 간다는 즐거운 약속으로 그들을 위안하십시오. 나는 지금처럼 여러분을 사랑한 적이 결코 없었읍니다. 우리 아버지의 보좌 주위에 모여 영원 무궁토록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한다는 것은 얼마나 유쾌한 일이겠읍니까! ···

      “나는, 선하시게도 일곱명의 형제들을 나와 함께 보내시어 우리가 함께 이러한 특권을 누리게 하신 사랑하는 아버지께 감사합니다. ···

      “우리가 여러분 모두를 크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빕니다.

      “그분의 은혜에 따라 여러분의 형제이며 종인,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

      11. (ㄱ) 그 박해 중에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들은 1874년에 대하여 무엇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까? (ㄴ) 협회의 대표자들은 교도소에서 얼마 동안 복역하였으며, 그들이 석방되자 무엇이 시작되었읍니까?

      11 제 1차 세계 대전의 암흑 속에서 이 모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면서 “정결한 처녀” 반열의 고통받는 남은 자들은 당시, 40여년이 지난 1874년이 신랑이 돌아오는 때가 아니었으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발표할 때가 아니었음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다. 한 밤의 외침을 위한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으나 가까왔었읍니다. 회장 ‘러더포오드’가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1918년 6월 21일 법정에서 그가 받은 선고에 따라 20년이 아니라 단지 9개월에 그쳤읍니다. 1919년 3월 25일에 그와 그의 동료 일곱명은 ‘애틀란타’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뉴우요오크’ 주 ‘브루클린’으로 돌아왔으며, 그 곳에서 3월 26일에 그들 모두는 보석을 승인받고 또한 상소가 허락되었읍니다. 그들은 “정결한 처녀” 반열의 남은 자의 다른 모든 성원들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전후(戰後) 사업을 시작하였읍니다. 이 남은 자들은 이 악한 세상의 증가하는 어두움 속에서 그들의 천적 아버지의 보좌로 모아들여지는 일의 경험을 하지 않았읍니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인 봉사의 새로운 기간의 문이 열려지고 있었읍니다!

      12. 그들은 그때에 “열 처녀”에 관한 예수의 비유의 어느 부분을 경험하였읍니까?

      12 바로 이 중대한 때에 그들은 천적 신랑이 “열 처녀”의 비유 가운데서 이러한 말로 예언한 일을 경험하였읍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하니라].”—마태 25:6, 7.

      13, 14. (ㄱ) 비유 가운데서, 누가 신랑의 임재를 발표하였으며, 이 일은 어떻게 성취되었읍니까? (ㄴ) 1914년 이래, 천적 신랑이 참으로 임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13 비유를 보면, 신랑이 온다는 발표를 한 것은 “열 처녀”가 아니었읍니다. 분명히 신랑의 수행원들이 그러한 발표를 하였읍니다. 처녀들은 단순히 그러한 외침을 들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신랑이 와서 그의 아버지의 집 안에서 베풀어지는 영적 결혼 잔치에 그들을 인도할 것을 기다리는 처녀와 같다고 공언한 모든 사람들에게 천적 신랑이 보이지 않게 임재하였다는 사실이 기원 1919년에 제시되었읍니다.

      14 그러므로 1919년은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있는 처녀들 곧 “처녀들”이라고 공언하는 모두에게 감동적인 해였읍니다. 최초의 세계 대전이 끝나고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국제 기구로 국제 연맹이 제창되었읍니다. 1914년에 그 세계 대전이 발발한 이래 예수의 ‘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관한 예수의 예언의 여러 면이 성취되어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그의 천국에 취임하셨음을 알리는 복합적 “징조”를 구성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된 메시야 왕국은 하늘에 건설되었읍니다. 세계 역사와 교회 역사는 이제 그리스도가 임재하셨음을 참으로 증명하였읍니다!

      그들의 “등”을 준비하는 일

      15. (ㄱ) 「파수대」지의 어떠한 부제가 이제 정확한 것이 되었읍니까? (ㄴ) 전세계 「파수대」 독자들은 1919년 4월 15일호의 어떠한 발표를 보고 활기를 얻었읍니까?

      15 이제 마침내 「파수대」지는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이라는 부제를 지니기에 적합하였읍니다. 3월에 연방 교도소에서 석방된 여덟명의 그리스도인 성서 연구생들은 1919년 4월 13일 일요일 밤에 연례 주의 만찬 기념에 참석하는 특권을 누렸읍니다. 그리고 5월 15일호 「파수대」(영문) 151면에 발표된 총 참석자의 보고는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17,961명 이상이 축하식에 참석하였음을 알려 주었읍니다. 1919년 4월 15일호 「파수대」지 117, 118면은 거짓 고발을 당한 여덟명이 각각 10,000불의 보석금을 납부하고 석방되었다는 것과 수백명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브루클린’ ‘벧엘’ 집에서 그들에게 베푼 성대한 환영회를 발표하였읍니다. 전세계에 알려진 이 발표는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독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읍니다.

      16. (ㄱ) 이사야 60:2에 의하면 그 때는 무엇을 할 때였읍니까? (ㄴ) “성별된” 성서 연구생들의 용기가 어떻게 북돋아졌으며, 어떠한 국제적인 모임이 있었읍니까?

      16 이제 영적으로 졸거나 잠 잘 때가 아니었읍니다. 행동할 때였읍니다. 이사야 60:2에서 예언한 바와 같이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날 때였읍니다. 세계 상태는 “성별된” 성서 연구생들 모두가 담대한 행동을 할 것을 요구하였읍니다. 신랑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그리스도인 용기를 북돋는 일이 지체되지 않았읍니다. 1919년 8월 1일호와 15일호 「파수대」(영문)에 “두려움이 없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주제로 두 개의 기사가 실렸고 9월 1-8일의 8일간 국제적인 규모로 열릴 “‘에리’호 ‘시다포인트’ 대회”의 마련이 발표되었읍니다. 영적 졸음을 힘차게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 수천명이 대회장에 모였읍니다. 특히 ‘캐나다’와 미국인들 약 6,000명이 매일 회기에 참석하였읍니다. 그 고무적인 대회는 “성별된” 사람들이 활짝 깨어서 앞에 놓인 하나님의 봉사에 활동적이 될 결의를 새롭게 할 기회가 되었읍니다.

      17, 18. (ㄱ) 그 대회의 “동역자들의 날”에 출판물에 관한 어떠한 발표가 있었으며 어떠한 전망이 제시되었읍니까? (ㄴ) 그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교훈은 어떠한 면으로 격려적이었으며, 그 대회일의 사건은 단순히 일시적인 흥미꺼리에 불과하였읍니까?

      17 9월 5일 금요일 “동역자들의 날”에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가 1919년 10월 1일부터 「황금 시대」라는 명칭으로 새로운 잡지가 발행된다는 것을 발표하였을 때에 참석자들의 열정은 크게 불붙었읍니다. 이 잡지는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을 알리는 「파수대」지의 자매지가 될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성별된” 백성은 매호 발행부수를 4,000,000부로 올릴 때를 기대하면서 그 잡지의 예약을 받는 활동에 참여하라는 격려를 받았읍니다. 후에 이 세계적인 광고 사업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부가적인 교훈이 1919년 9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79-281면에 “왕국 선포”라는 제목의 두 ‘페이지’ 반 기사에 실렸읍니다.

      18 이 기사 끝에서 세째 항에 있는 이러한 내용은 모든 독자에 대한 참으로 강력한 초대였읍니다! “조속히 그 일을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이 사업에 참여할 때에 당신은 이 잡지의 판매인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의 대사로서, 참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세기 동안 바라고 기도하여 온 황금 시대의 도래와 우리 주이신 주인의 영광스러운 왕국의 도래를 이와 같이 품위있는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광고하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왕국 사업의 이 새로운 부면에의 초대에 대하여 즉각적인 반응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오십칠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깨어라!」라는 명칭을 가진 그 동일한 잡지는 매호 9,850,000부가 인쇄되고 있읍니다. 확실히, ‘오하이오’ 주 ‘시더포인트’에 그 6,000명의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일과 그들이 1919년 9월 5일 금요일에 「황금 시대」지의 발표에 대하여 환호한 것은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진정한 ‘파로우시아’ 시대인 오늘날의 하나님의 “정결한 처녀” 반열의 역사에 아무런 중요성이 없는 일시적인 흥미꺼리가 결코 아니었읍니다. 그 처녀 반열은 다시는 잠들지 않았읍니다!

      19. 등을 준비하는 데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하였으며, 왜 이로 말미암아 처녀들이 둘로 갈라졌읍니까?

      19 그 때는 참으로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한 때였읍니다. (마태 25:7) 비유 가운데서, 처녀들은 이 때에 그들의 등에 기름을 다시 채워야 하였읍니다. 그들의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뿔싸! 미련한 처녀들은 즉시 그들의 등에 기름을 채울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슬기있는 처녀들과 달리, 기름이 들어 있는 그릇을 가져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처녀들이 둘로 갈라졌읍니다. 왜? 마태복음 25:8, 9이 설명합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달라 하거늘 슬기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라].”

      20. 슬기있는 처녀가 미련한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주지 않은 것은 이기적인 일이었읍니까? 슬기있는 처녀들의 결의는 무엇이었읍니까?

      20 우리는 밤 그 시간에 문을 닫지 않은 등유 상회 혹은 필요한 기름을 가지고 대비하고 있는 등유 상인을 찾아낸다는 것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얼마나 난관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상상할 수 있읍니다. 그러면 슬기없는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주지 않은 슬기있는 처녀들은 이기적이었읍니까? 아닙니다! 만일 나누어 썼다면 열 처녀 중 아무도 신랑의 집 문에까지 가서 결혼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명이 나누어 가진 기름으로는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등불이 꺼질 것입니다. 슬기있는 처녀들은 비상시에 쓸 기름을 가지고 감으로써 그곳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나타냈읍니다. 이것은 또한 그들 모두가 그곳에 갈 결의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냈으며, 이제 이들 슬기있는 처녀들은 신랑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한 그들의 선한 의지가 좌절되거나 꺾이지 않게 하고 있었읍니다. 더우기, 미련한 처녀들은 아직도 슬기있는 처녀들을 방해하거나 그들의 수고를 저해하지 않고도 다른 곳에서 기름을 구할 수 있었읍니다.

      21. 이것은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성서를 연구하고 신랑에 대하여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을 대하는 면에서 무엇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21 천적 신랑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 기간인 오늘날, 비유의 이 부분은 어떻게 성취되고 있읍니까?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에 대하여 들은 어떤 정직한 사람이, 자기에게 와서 성서 연구를 사회해 주고 자기도 신랑에게 영예를 돌리는 데 가담하게 해 달라고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게 부탁할 때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그렇게 하여 주기를 거절하고 그 사람에게 혼자서 그럭저럭 해 보라고 말하는 것을 의미합니까? 만일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주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비유의 교훈을 범하는 것이 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22. “기름”을 나누는 문제를 고려할 때에, 우리는 불 켜진 등을 높이 드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기름”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22 그런데 성취에서 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미련한” 처녀 반열에게 그들의 “기름”을 나누어주기를 거절합니까? 우리는 그릇에 기름을 담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 속에 상징적 “기름”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불켜진 등을 높이 들고 있는 것은 자기의 빛을 발하는 것과 같으며, 이 어둡고 캄캄한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자신이 등불이 되어 빛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마태 5:14-16; 빌립보 2:15) 빛을 내도록 힘을 주는 것은 상징적 “기름”이며 이 “기름”은 두가지 즉, 하나님의 숭배자에게 등이며 빛인 하나님의 말씀(시 119:105)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추어 주고 성령의 모든 소유자들에게 “영의 열매”라고 불리우는 경건하고 훌륭한 성품을 산출하게 하는 하나님의 성령을 상징합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에베소 5:18-20) 그러면 “슬기있는” 처녀들은 자신들 속에 있는 이 “기름”, 즉 빛을 내는 이 힘을 줄여야 할 것입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빛이 없어지게 해야 할 것입니까?

      23. (ㄱ) “미련한” 처녀 반열은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게 자기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ㄴ) 어떠한 “그리스도인들”이 “미련한” 처녀 반열입니까?

      23 “미련한” 처녀 반열이 “슬기있는” 처녀들에게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있는” 처녀들이 자기들과 타협하기를 바랍니다. 기원 1919년에 천적 신랑이 보이지 않는 임재에 대한 발표는 그 신랑을 맞이하고 그와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바라는 “처녀들”이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었읍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같은 사람들은 단순히 말로만 그리스도교를 믿습니다. 즉 그들은 주로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불과하고 참그리스도교의 요구 조건에 달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서에 대한 약간의 지식, 특히 그러한 성서 지식에 대한 종파적인 이해에 근거한 지식을 약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 지식에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나, “영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강력한 영을 가지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들의 행동은 참 그리스도인의 표본에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종파의 종교적 형식주의를 추종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혹은 자칭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낼 뿐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후에 하늘에 갈 것을 기대합니다!

      24. (ㄱ) “미련한” 처녀 반열의 종교적 발전은 그들로 하여금 신랑의 임재의 증명 가능한 증거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줍니까? (ㄴ) 미련한 자들은 슬기있는 자들이 자기들과 함께 교제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에 있어서 어떠한 수준으로 낮아지기를 바랍니까?

      24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 발전은 그들로 하여금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는 한 밤의 외침이 있을 때에 그 도전에 응할 수 있게 해주지 못합니다. 사실 그들은 1914년 이래 신랑의 임재를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식별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신랑을 믿고 있다고 공언하며 교회가 그의 신부라고 말하지만 자기들에게 좋은 방식으로, 자기들의 종파적인 방식으로 신랑을 만나 그의 기쁨에 참여하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함께 교제하면 타협이 있어야 합니다.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천국의 후사들인 그들 모두를 융합시키는 연합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자기들의 영적 “기름” 중 얼마를 취하여 그들의 그리스도인 발전의 수준을 슬기없는 종교가들의 수준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슬기있는” 자들은 “미련”하고 슬기없고 무분별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계속 교제하기 위하여 종교적으로 미련해져야 할 것입니다.

      25. (ㄱ) 그러면,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대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ㄴ) 최종적으로 요구 조건에 달하기 위하여 그들은 ‘베드로’와 ‘바울’의 어떠한 말을 실행해야 합니까?

      25 쟁점은 명백합니다. 즉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교국내의 사람들과 같이 단순히 종교적 감정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까? 그들은 영적 “기름”을 얼마간 나누어주어서, 끝까지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등을 치켜들고 신랑을 따라 잔치가 베풀어지는 연회장으로 가는 행렬에서 낙오될 것입니까? 그들은 베드로 후서 1:10에서 말하듯이,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지상 생애의 끝이 가까왔을 때의 사도 ‘바울’을 본받을 필요가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내가 ···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 그들이 신랑의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곳으로 통하는 문에 이를 때에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온전한 요구 조건에 달해야 합니다.—디모데 후 4:7, 8.

      26.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떻게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속박을 받았으며, 왜 그 반열은 1919년에 “미련한” 처녀 반열과의 교제를 끊었읍니까?

      26 그러한 이유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밀과 가라지 혹은 독초(독보리)의 비유 가운데 있는 가라지와 같은 단순한 자칭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끊었읍니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들은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과 그 군사적, 정치적, 사법적 애인에 속박되었었읍니다. 그들은 강력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 때문에 속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영창 혹은 기타 장소에 투옥 혹은 감금되어 문자 그대로 갇혀 있었읍니다. 1919년에 그들은 큰 ‘바벨론’에 대한 하늘로부터의 이러한 권고에 따라 행동하였읍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시 18:4) 그들은 그 쟁점에 있어서 “미련한” 처녀 반열과 타협할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과 그의 세상적 애인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큰 ‘바벨론’과 함께 공동 노선을 취하여 큰 ‘바벨론’이 1919년에 올라탄 짐승의 우상 즉 국제 연맹을 숭배할 수 없었읍니다.—계시 13:14, 15; 14:11, 12; 17:1-18.

      27. 1919년 9월 7일 일요일에 있었던 공개적 선언이 증명하듯이, “슬기있는” 처녀 반열의 입장은 어떻게 처음부터 명료하였읍니까?

      27 이 쟁점에 있어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이 취한 입장은 처음부터 명료하였읍니다. 이에 대한 증거로, 1919년 9월 7일 일요일 오후에 ‘시다 포인트’ 대회에서 회장 ‘러더포오드’는 고난받는 인류를 위한 희망”이라는 공개 강연에서 하나님께서 국제 연맹을 승인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였읍니다. 1919년 9월 8일 월요일자 ‘샌더스키’(‘오하이오’ 주) 「스타-저널」지에 게재된 보고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러더포오드’ 회장은 일요일 오후 나무 그늘에 모인 근 7,000명에게 연설하였다. 그는 평화와 풍요를 이룩함으로써 인류 상태를 개선하고자 하는 정치적 경제적 세력이 형성한 국제 연맹이 많은 좋은 일을 달성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그러나, 하나님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가톨릭’ 및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버리고 국제 연맹을 옹호하며 그것이 지상에 있어서의 그리스도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대환영하기 때문에 주께서는 분명히 국제 연맹을 싫어하신다고 역설하였다.—1919년 10월 1일호 「파수대」(영문) 298면 제 1단.

      28, 29.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왜 이러한 입장을 취하였으며, ‘야고보’가 사용한 어떠한 수치스러운 말이 그들에게 적용될 수 없었읍니까?

      28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왕국이 하늘에 설립되었음을 믿었으며, 그들은 그 왕국을 타협하지 않고 지지하였으며, 어떠한 대용물도 인정하거나 숭배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영적 “기름”을 조금도 나누어줄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그들의 전심의 온전한 분량을 줄일 수 없었읍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왕국에 충실히 고착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인기가 없었으며 이 세상에 대하여 친구가 되지 못하였읍니다. 그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더욱 미워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세상으로부터 받는 이러한 미움과 적의는 그들이 천적 왕 겸 신랑과의 관계에 충실히 고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여 주었읍니다. 제자 ‘야고보’가 제 1세기 회중의 일부 성원들에게 “간음하는 여자”라는 수치스러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해서 그러한 표현이 그들에게도 적용될 수는 없었읍니다.

      29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야고보 4:4.

      30, 31. 그리하여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약혼한 처녀의 특질을 누구에게 나타냈으며, 그러한 신부의 아름다움이 ‘이사야’의 예언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읍니까?

      30 그러므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충분한 영적 “기름”을 타협하지 않고 유지하고 그것을 사용하여 “등” 즉 자기들이 계속 밝은 빛을 내게 함으로써, 약혼한 그들의 천적 신랑을 영예롭게 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한 남편”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신부가 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충성스러움, 순결함, 깨끗함, 순수함 등의 성품이 자기 자신들 속에서 빛나게 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그의 “신부”를 자기 집으로 인도해 갈 하나님의 때가 된 것을 그와 함께 기뻐합니다. 그들은 그의 기쁨에 참여합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사야 62:5) 영광 가운데 나타나는 신랑과 어울리게, 그들도 결혼하는 날의 신부와 같이 아름답게 보이기를 원하며 천적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주는 장식품을 받아들입니다. 신랑과 신부 사이의 이러한 유쾌한 아름다움의 균형이 이사야 61:10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읍니다.

      31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32.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떻게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냅니까?

      32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어떠한 일로도, 태양과 같이 눈부시게 빛나는 천적 신랑의 영광을 손상시켜서는 안될 것입니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도다].” (시 19:4, 5) 그러므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그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 및 그의 모든 종교적으로 부도덕한 “딸들”과 구별시켜 주는 그리스도인 성품을 나타냄으로써 발광체와 같이 그들의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내야 합니다. 그와 같이 빛을 낼 때 그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신랑을 인류에게 잘못 인식시키는 일이 없읍니다.

      판매인으로부터 기름을 사다

      33. 예수의 비유에 의하면, “슬기있는” 처녀들은 “미련한” 처녀들에게 고작 무엇이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슬기있는” 자들은 무엇을 나타냈읍니까?

      33 “미련한” 처녀 반열은 영적 “기름”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도착하고 임재하여 결혼 잔치에 임하는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낼 수가 없었읍니다. 그들에게는 “슬기있는” 처녀들이 가져온 기름 즉, 그들이 신랑의 발자취를 따르는 데 필요한 “기름”을 얼마큼 얻어 쓸 권리가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비유에 의하면, “슬기있는” 자들이 “미련한” 자들에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고작 이러한 말이었읍니다.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마태 25:9) “슬기있는” 처녀들은 이러한 입장을 취하여 자기들의 슬기로움을 더욱 나타냈으며, 슬기없고 무분별한 처녀들의 미련함은 그들에게 화가 되었읍니다. 그들은 기름 상인을 찾아가서 그들의 등에 기름을 채우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34, 35. 비유의 성취에서, 기름을 사는 일은 어떻게 이루어 졌으며, 그 비유는 그동안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알려 줍니까?

      34 이와 동일하게, 비유의 성취에서, “미련한” 자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영적 “기름”을 구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적 신조에 따라서, 하늘로 가는 길을 열어줄 “기름”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종교적으로 느끼는 곳으로 갔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여러 종파와 교파로 갈라진 종교 제도에서 판매하는 “기름”을 사기 위하여 그러한 종교 제도를 찾아냈으며, 천적 신랑에 대한 올바른 전심도 없이 그러한 상인들로부터 그들은 기꺼이 값을 치르고 “기름”을 샀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값을 지불하고 상인들로부터 산 그러한 종교적 “기름”은 결혼 잔치에 들어갈 허락을 받는 데 효과적인 기름일 것입니까? 이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35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태 25:10.

      36. 어떠한 처녀들이 신랑과 함께 행렬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어떻게 했기 때문에 “문”에서 검열을 통과하였읍니까?

      36 “슬기있는”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갔읍니다. 즉, “미련한” 처녀는 신랑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갔고 “슬기있는” 처녀들은 도착하는 신랑 쪽으로 갔읍니다. “슬기있는” 처녀들이 신랑을 만난 곳에서부터,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집의 “문”까지는 멀었읍니다. 이 두 지점 사이를 불을 든 행렬이 한 동안 지나갔으며, 그 기간에 “슬기있는”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있었고 신랑은 그들과 함께 있었읍니다. 즐거운 행렬이 목적지에 이르고 신랑의 집의 문으로 들어갔을 때에 “슬기있는” 처녀들의 등은 밝은 빛을 내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기름이 떨어지기 전에 “문”에 이르렀읍니다. 그 때에 “슬기있는” 처녀들은 그들이 신랑의 발자취를 따른 행렬의 일부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결혼 잔치에 들어갈 자격이 있었읍니다. 그들이 검열을 받을 준비를 하는 일의 중요성이 이러한 말로 비유 가운데서 강조되었읍니다.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니라].” 문은 그들의 면전에서 닫힌 것이 아니라 뒤에서 닫혔읍니다!

      37. 검열소에서 현대의 “처녀들”은 자기들이 어떠한 면으로 빛나고 있음을 증명하며, 신랑이 그 “신부” 반열을 입장시키는 것은 그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까?

      37 우리 시대에 비유의 성취에서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끝까지 영광스러운 신랑을 영예롭게 하고 높이는 행렬에 계속 참여합니다. 그들이 “문”에 있는 검열소에 이를 때에 그들은 결혼 축연에 들어가기에 합당함을 증명합니다. 그들의 천적 약혼자로부터 검열을 받을 때 신랑이 자기의 천적 “신부”로 승인하는 그리스도인 성품으로 그들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립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되지 않았읍니다. (고린도 후 11:2, 3) 신랑은 이들 현대 “슬기있는” 처녀들을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읍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읍니다. “티나 주름이나 또 그와 같은 것들이 하나도 없는 거룩하고 흠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에게 나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에베소 5:27, 새번역.

      ‘그리고 문은 닫혔다’

      38. 마침내 몇명이 결혼 축연에 들어갈 것이며, 공식으로 “문”은 언제 닫힐 것입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8 물론, 천적 “신부” 반열의 144,000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문”을 통과하여 들어가 결혼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계시 7:4-8; 14:1-5) 그러나 “문”이 공식으로 닫히는 것은 언제입니까? 그 때는 하나님의 지정하신 때에 “큰 환난”이 돌발하고 그리스도교국과,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 곧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의 나머지 모든 부분에 멸망이 임하기 시작할 때일 것입니다. 그 때에 자칭 그리스도인이 큰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않고 그가 받을 재앙을 면한다는 것은 너무 늦을 것입니다. (계시 18:4) “큰 환난”의 날들이 “택하신 자”를 위하여 “감”하여질 것이므로, “택하신 자”의 온전한 수 즉 144,000명은 “큰 환난”의 돌발시까지 다 채워져 있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문이 닫힙니다.

      39. “열 처녀”의 비유에서 마지막으로 무슨 일이 발생합니까?

      39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읍니까? “열 처녀”의 비유는 그 끝맺음에서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태 25:11, 12.

      40. 신랑이 “미련한” 처녀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고 말한 것은 왜 정당하였읍니까?

      40 “미련한” 다섯 처녀는 밤의 그 시간에 그들이 찾을 수 있었던 등유 상인으로부터 기름을 구하여 불켜진 등을 가지고 문으로 왔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등은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내지 못했읍니다. 그들은 신랑을 위한 즐거움으로 그를 맞이하고 그를 수행하는 행렬에 참여하지 못했읍니다. 그렇다면, 신랑은 그들이 그의 축하객의 일부라고 인정할 무슨 근거가 있었읍니까? 아무 것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그의 결혼 행렬에 조금의 광휘도 더해 주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사실과 일치하게 그분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고 말할 수 있었읍니다. 따라서 그분이 그들의 면전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은 것은 정당하였읍니다.

      41. “큰 환난”이 그리스도교국을 칠 때에 “미련한” 처녀 반열에 속한 자들은 자신들에 대하여 무엇을 알게 될 것입니까?

      41 마찬가지로, 종교적 음녀인 큰 ‘바벨론’의 가장 주요한 부분인 그리스도교국에 “큰 환난”이 시작하면, 사망시에 하늘에 간다는 그들의 희망은 크게 흔들리고 흐려질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정결한 처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구성하는 올바른 종교 조직과 연합해 오지 않았음을 분별할 것입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전서 4:17에 대한 그들의 종교적 교사들의 해석대로 그들의 신체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서 신체적인 환희 가운데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국의 한 교파의 성원으로 빛을 발하여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혹은 자칭 그리스도인이었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읍니다. “큰 환난”이 시작할 때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제 혹은 전도자가 그들에 대하여 생각한 혹은 말한 것이 아니라, 천적 신랑이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42. 중보 역할을 한 그들의 종교 조직이 사라지면,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신랑의 인정을 받고자 호소할 것입니까?

      42 밖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지금까지 기반으로 삼고 있던 종교적 기초가 “큰 환난”에 의해 파멸되기 때문에, 그들에게 닫혀진 문과 같은 상태로 접근하지만 때는 이미 늦습니다. 그들을 위한 중보 역할을 한 그들의 종교 조직이 멸망되면 그들은 참 회중의 신랑인 머리와 정면으로 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의 ‘파로우시아’ 혹은 임재는 보이지 않고 그 분은 닫은 문 뒤에 있는 것처럼 그들의 눈 앞에서 숨겨져 있을 것이므로 그들은 올바른 행실을 하지 않고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고 하늘에 가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그를 큰소리로 부를 것입니다. 그들은 그의 입의 말로 그를 분간하였읍니다. 이제 그는 그들에게 대답하고 그들을 분간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가 들을 것을 기대하고 “주여, 주여” 하고 큰 소리로 부를 것입니다. 이 부름으로 그들에게 문이 열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열려집니까?

      43. (ㄱ) 그 “미련한” 처녀 반열의 성원들은 예수를 “주”라고 부르는 데 관한 산상수훈에서의 그분의 어떠한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읍니까? (ㄴ) 예수께서 마침내 심각하게 그 말씀대로 하실 때에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까?

      43 그들은 천적 신랑이 지상에서 산상 수훈 가운데 이렇게 말씀하신 바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 7:21-23) 그러나 그 때 “큰 환난”에서 그 “미련한” 처녀 반열은 신랑이 지침이 되는 원칙으로 그러한 말씀을 매우 진지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천적 결혼 잔치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그들을 바깥, 즉 이 세상의 가장 깊은 밤의 어두움 속에 버려 두어 다른 모든 “불법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사멸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멸망을 당한 후에 천적 생명으로 부활되지 않을 것입니다.

      44. 예수께서는 “열 처녀”의 비유를 어떠한 말로 끝맺으셨으며, “슬기있는” 자들은 그들의 영적 “기름”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44 따라서, “열 처녀”의 비유의 요점을 강조한 예수의 말씀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라는 말씀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특히 시기적으로 적절합니다. (마태 25:13) 지금은 “슬기있는” 다섯 처녀와 같이 되고자 원하는 사람들이 천적 “신부” 반열의 성원이 되는 데 요구되는 활동적인 그리스도인 성품으로 계속 빛을 발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은 그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의 미련함의 짐을 함께 지게 하도록 꾀하며 그리하여 그들의 영적 “기름”을 다소 빼앗고자 하는 자들과 어떠한 타협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45. “슬기있는” 자들은 누구의 종교적 동무가 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들은 누구를 영예롭게 하는 빛을 계속 발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5 우리는 우리의 빛이 꺼지는 위험에 처하게 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렇게 해서 그들의 종교적 동무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공급할 수 있는 영적 “기름” 전부를 필요로 합니다. 신랑의 도착과 임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항상 밝아야 하며, 우리는 그분이 신부 회중을 집에 완전히 인도할 때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빛을 발하는 행렬에 계속 참여할 필요가 있읍니다. 오래 지체하였던 신랑이 드디어 도착하였읍니다. 그는 와 계시며 영광스러운 ‘파로우시아’중에 계십니다. 졸고 잠잘 때는 지나갔읍니다. 지금은 신랑을 영예롭게 하는 빛을 발하고 천적 아버지께서 신랑 앞에 두신 이 기쁨 즉, 그의 영적 “신부”를 맞아들이고 결혼 잔치로 이것을 축하하는 기쁨에 참여하여 신랑과 함께 즐거워할 때입니다. 지금 계속 깨어 있는 것이 절대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 기회의 “문”이 닫히고 다시는 열리지 않을 그 날과 시간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의 ‘파로우시아’의 “징조”의 일부

      46. (ㄱ) “열 처녀”의 비유는 그의 사도들의 어떠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입니까? (ㄴ) “슬기있는” 반열은 비유의 성취의 절정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어떠한 사실을 확신합니까?

      46 “열 처녀”의 비유는 “무엇이 당신의 임재[‘파로우시아’]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하는 예수의 사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로 주어진 것입니다. (마태 24:3, 신세) 그 비유의 절정은 기원 1914년 이래 성취되어 왔읍니다. 온 세상은 그 비유의 마지막 부면이 오늘날 실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읍니다. 이상에서 자세히 설명한 사건들은 눈에 띄지 않는 한 구석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관찰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 의미를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주목할 수 있는 공개적인 곳에서 발생되어 왔읍니다. 적어도, “슬기있는” 처녀 반열에 속한 사람들은 이러한 의미깊은 사건들을 관찰하고 그러한 것에서 천적 신랑이 기원 1914년에 도착하셨으며,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는 지금 보이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얻었읍니다. 그들은 “열 처녀”의 비유의 성취에서 제공된 증거 때문에 믿음의 눈을 가지고 그의 임재를 분별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기원 1914년에 시작하였음을 확신합니다.

      47. 희랍어 ‘파로우시아’의 올바른 의미는 비유 가운데서의 “슬기있는” 처녀들이 신랑의 도착을 알리는 한밤의 외침이 있은 후에 행한 무슨 일로 증명됩니까?

      47 그렇습니다. 또한 사도 ‘마태’가 자기의 복음서 24장 3절에서 사용한 희랍어는, 많은 번역자들의 번역에 나타났듯이 “오심”이 아니라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비유 가운데 묘사되어 있는 내용으로 증명됩니다. “열 처녀”는 “보라, 신랑이로다!” 하는 한 밤의 외침을 들었을 때에 졸음과 잠에서 일어납니다. 불을 든 신랑의 행렬을 간절히 주시하는 그들은 신랑이 자기들이 있는 곳에 이르는 것을 분별하고 그와 함께 행렬에 가담합니다. 그 지점에서부터, 그들 모두가, 초대받은 합당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결혼 잔치가 베풀어지는 신랑의 집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읍니다. 따라서, 신랑이 도착한 후 신부를 예비된 집으로 인도하기까지 신랑의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의 기간이 있었읍니다.

      그릇된 이해의 시정

      48. (ㄱ) 「시온의 파수대」의 편집 겸 발행인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어느 해에 시작하였다고 계산하였읍니까? (ㄴ) 또한 여러 해 동안 「파수대」의 표지에 발표된 바와 같이 인간 창조 연대는 어느 때였읍니까?

      48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의 편집겸 발행인이 천적 신랑의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가 기원 1874년에 시작하였다고 계산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 첫 인간을 창조하신 해가 기원전 4128년이라고 ‘러셀’과 그의 동료들은 계산하였읍니다. 그것은 지상에 인간이 존재한지 6,000년이 기원 1872년에 끝나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이러한 계산이 1906년 7월 1일로 시작하여 「시온의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 제 1면에 발표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관습은 1928년 9월 15일호까지 계속되어 내려왔읍니다. 예를 들면, 그러한 것을 알리는 첫 호에는 문제의 연대가 “주후 1906년 7월 1일—세계 기원 6034년”으로 게재되었읍니다. 마지막 호에는 “세계 기원 6056년—1928년 9월 15일”로 되었읍니다. “세계 기원” 연대는 통용 기원전 4128년으로 계산되었읍니다.

      49. (ㄱ) 죄는 언제 들어왔다고 계산되었읍니까? (ㄴ) 그러므로, ‘사단’이 밑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리스도가 통치를 하는 천년기는 언제 시작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49 그러나,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에덴’ 동산에서 완전한 인간 남녀는 2년간 무죄하였다고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죄가 들어온 해는 기원전 4126년으로 계산되었읍니다. 이 결과, 죄가 들어온 이후의 6천년은 기원 1874년에 끝나는 것으로 계산되었고, 또한 그 해 가을에 죄의 선동자 ‘사단’ 마귀가 감금되고 밑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리스도가 예언된 천년을 시작하는 일곱째 천년기가 시작하였다고 생각되었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통치 제 1년이 또한 그의 돌아오심과 그의 보이지 않는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시작되는 해임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50. 그 연대는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 역」에 있는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어떠한 각주에 따라 계산된 것입니까?

      50 이상의 연대는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윌슨’의 「엠패틱 다이어글롯역」의 각주에 있는 제안에 따라 계산된 것입니다. 그 귀절은 이러합니다. “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느니라].” 이에 대한 각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서 성서 연대 학자들을 크게 당황하게 하는 문제가 생긴다. 여기에 나타나 있는 연대는 열왕기 상 6:1에 있는 말과 상치된다. 많은 해결책이 제안되었으나, 아주 만족할 만한 해결책은 하나 뿐이다. 즉, 열왕기 상 6:1에 있는 본문은 ‘히브리’글 ‘하이’(5)가 그것과 아주 모양이 비슷한 ‘달렛’(4)로 교체되어 와전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애굽’에서 나온 때로부터 성전 건축시까지는 (480년이 아니라) 580년이 될 것이며, ‘바울’의 연대 설명과 정확히 일치할 것이다.

      51. (ㄱ) 따라서, 저자 ‘시이. 티이. 러셀’은 열왕기 상 6:1에 대하여 「때는 가까왔다」 책 53면에서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그에 의하면, 인간이 언제 창조되었으며, 죄가 들어온 후의 6,000년은 언제 끝났으며, 대희년은 언제 시작하였읍니까?

      51 따라서, 「때는 가까왔다」(영문)라는 책 53면에서 저자 ‘시이. 티이. 러셀’은 열왕기 상 6:1을 지적하여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분명히 그 귀절은 580년 째 해라 해야 옳으며, 그것은 아마도 복사상의 잘못이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솔로몬’의 4년에 ‘다윗’의 40년, ‘사울’의 40년 기간, 그리고 ‘애굽’을 떠날 때부터 그 땅을 분할할 때까지의 46년을 더하면 130년이 되는데, 480년에서 그것을 빼면 사사 기간은, 이상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사사기」에 언급되고 ‘바울’이 언급한 사백 오십년이 아니라, 단지 삼백 오십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히브리 글자 “달렛”(4)은 “하이”(5)라는 글자와 흡사하며, 그리하여 아마 복사자의 잘못으로 오류가 생긴 것 같이 생각된다. 그러므로 열왕기 상 6:1은 오백 팔십년이라야 하며, 그래야 다른 진술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므로, 성서 연대중 사사 기간에 100년을 더하면 인간의 창조는 기원전 4128년까지 소급하며 지상에 인간이 존재한 육천년은 기원 1872년에 끝났읍니다. (「때는 가까왔다」[영문], 42면) 또한 죄가 들어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고 보아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후 육천년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통치에 의하여 죄가 제거되는 일곱째 천년이 시작되는 해는 1874년으로 산출되었읍니다. 그러므로 대희년은 그 때에 시작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52. 가장 오래된 희랍어 사본에 의하면 사도 행전 13:20의 450년은 현대 성서 번역판들이 지적하듯이, 사사 시대 이전 기간에 적용됩니까, 그 기간 중에 적용됩니까?

      52 그러나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에 의하면, 사도 행전 13:20의 내용은 「엠패틱 다이어글롯역」과 「‘제임스’왕 흠정역」에 나와 있는 내용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가장 오래된 사본에 의하면, 사백 육십년은 사사기간에 적용되지 않습니다. 「신 영어 성서」(1970년판)는 이를 확증하여, 사도 행전 13:20을 이렇게 번역하였읍니다. “약 사백 오십년간 ··· 그 후, 예언자 ‘사무엘’ 시대까지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이 임명되었읍니다.” 「예루살렘 성서」(1966년 영문 번역판)에는 이렇게 되어 있읍니다. “약 사백 오십년간 ··· 이 후에 그는 그들에게, 예언자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사사들을 주셨읍니다.” 1952년판 「개역 표준역 성서」는 이와 비슷하며, 기원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도 그와 비슷하게 번역하였읍니다.

      53. 고대 ‘히브리’어 성서 사본은 수자를 대신하는 ‘알파벳’ 글자를 사용하였읍니까?

      53 더우기, 사해 두루마리와 같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사본은 성서의 수자를 또박 또박 정식으로 썼고, 수자를 대신한 ‘알파벳’ 글자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복사자가 열왕기 상 6:1에서 눈에 뚜렷이 보이는 오류를 범했을 리가 없읍니다.b

      54. (ㄱ) 성서 연대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면 지금 토론하는 어떠한 기간의 시작이 영향을 받을 것입니까? (ㄴ) 「파수대」 잡지명에서 “임재”를 뺀 것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더 이상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까?

      54 따라서 성서 연대에서 사사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는 것은 성경적 근거가 없읍니다. 그러므로, 첨가한 햇수를 빼고 연대에 관하여 말하는 성서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가피하게, 이것은 신랑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가 시작되는 연대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1939년 1월 1일호 「파수대」(영문)지로부터 제목이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왕국의 전령」으로, 1939년 3월 1일호부터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로 바뀌었읍니다. 이것은 본 잡지의 발행인들이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당시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더 이상 믿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은 왕국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 하나님의 왕국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여호와의 우주 주권을 입증할 그리스도에 의한 여호와의 왕국이기 때문입니다.

      55. (ㄱ) 사사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는 일은 언제 어떻게 중지되었으며, 그리하여 인간 존재의 6,000년은 언제 끝나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이것은 기원 1874년이라는 연대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으며, 어떠한 질문이 일어났읍니까?

      55 1943년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책(영문)을 발행하였읍니다. 그 책은 제 11장 “때의 계산”에서, 사사들의 기간에 100년을 첨가하지 않고 사도행전 13:20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믿을 만한 본문에 따랐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정식으로 또박 또박 쓴 수자를 받아들였읍니다. 그 결과, 인간 존재의 육천년의 끝은 1970년대로 옮겨졌읍니다. 물론 이와 함께, 기원 1874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돌아오심과 그의 보이지 않는 임재 혹은 ‘파로우시아’가 시작된 해라는 생각은 제거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사단’ 마귀가 결박되어 무저갱에 감금되고 144,000명의 공동 후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 가운데 통치하는 것으로 시작될 천년기는 아직 미래사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임재)는 어떠합니까? 이상에 언급한 책 324면은 단정적으로 “왕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는 1914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1949년 7월 15일호 「파수대」(215면, 22항)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 인자이신 메시야는 주후 1914년에 왕국의 권능을 잡으셨으며, ··· 이것이 그의 두번째 오심과 그의 두번째 ‘파로우시아’ 즉 임재의 시작을 이룬다.”

      56. (ㄱ) 1950년에 어떠한 새로운 성서 번역판이 발행되었으며, 사도 행전 13:20을 어떻게 번역하였읍니까? (ㄴ) 또한 믿을 수 있는 성서 연대에 따라, 그리스도의 임재는 어떻게 설명되었읍니까?

      56 1950년에 사도 행전 13:20에 대한 가장 믿을 만한 본문을 실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신세계역」이 발행되었는데, 이 번역판은 ‘파로우시아’를 매번 “임재”(presence)로 번역하였읍니다. 그 직후에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라는 책이 나왔읍니다. 그 책 제 21장의 제목은 “생명의 수석 대행자의 두번째 임재”였읍니다. 믿을 수 있는 성서 시간표에 따라 그 문제를 논한 장이었읍니다. 220-222면의 내용을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증거는 주후 1914년에 하나님의 왕국이 탄생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철장으로 원수 중에 다스리기 위하여 권능을 잡으시고 즉위하셨다는 것을 증명하여 줍니다. 결국 예수께서는 그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부셔서 하나님의 의로운 주권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든 원수들을 우주 가운데서 없애 버리실 것입니다.—시 2:8, 9.

      그러므로 주후 1914년은 예수께서 영으로 보이지 않게 재림하신 해입니다 ··· 1914년에 예수께서 왕국에 임하심은 그의 두번째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시작입니다. 이 희랍어는 임재라는 뜻입니다.

      ··· 영으로 오시므로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의 두번째 임재는 지상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너무나 중대한 일이기 때문에 결코 비밀에 부쳐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비밀에 부쳐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재[‘파로우시아’]도 그러하리라.”—마태 24:26, 27, 신세.

      1914년 이래 임재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두번째 임재 즉 파로우시아의 징조를 모든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내어 그것을 이해하게 하셨읍니다.

      57. (ㄱ) 그리스도께서는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 전에 그의 원수 가운데서 통치를 시작하셨읍니까? (ㄴ) 신랑은 언제 한 밤의 외침이 들리게 하였으며, 그 때 이래 발생한 일은 어떠한 중요한 사실들의 증거입니까?

      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1914년에 이방인의 때의 끝이 오기 전에 40년간 통치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영감받은 성경과 완전히 조화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께서 그리스도의 발등상으로 되게 하시는 지적 원수 가운데서 통치를 시작하기 위하여 그 때까지 그의 천적 아버지의 우편에서 기다리셨읍니다! (시 110:1, 2; 히브리 10:12, 13) 그러므로, 왕으로서의 그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는 그 해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1919년에, 그는 한 밤의 외침이 땅에 울리게 하셨고 잠자는 “처녀들”을 긴급한 사태에 직면하도록 일깨웠읍니다.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그 외침은 천적 신랑의 임재를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었읍니다. “슬기있는” 처녀 반열은 그 이래 그를 맞으러 나와 있읍니다. 그들은 이 캄캄한 세상에서 발광체로 빛을 발하고 있읍니다. 이것 자체는 그리스도의 약속된 임재가 지금 진행 중이라는 증거입니다.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에 의한 하나님의 천년 왕국이 다가왔다는 증거입니다!

      58. 왜 우리는 왕국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징조”를 고려함에 있어서 “열 처녀”의 비유로 여기에서 중단할 수 없읍니까?

      58 “열 처녀”의 비유에 성취는 그 축복된 천년 왕국의 가까왔음을 알리는 “징조”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유로 중단할 것이 아니라 그 놀라운 “징조”의 다른 면들도 고려해야 합니다.

      [각주]

      a 「그 때에 하나님의 신비가 끝난다」 책(영문) 274면 마지막 항 참조. 또한 ‘밀워어키’ 대회와 ‘러더포오드’의 편지에 관해 1918년 8월 15일호 「파수대」(영문) 249면 참조.

      b 성서 시대 후에, ‘히브리’인들이 수자 대신에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였을 때 0을 나타내는 기호가 없었다. 그들의 기록 방식에는 0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400은 ‘달렛’이라는 글자 다음에 0을 두개 붙여서 나타내지 않았고 500은 ‘헤’라는 글자 다음에 0을 두개 붙여서 나타내지 않았다. 400이라는 수자는 하나의 ‘히브리’ 글자(‘타우’)로 나타내었고, 500이라는 수자는 두 개의 ‘히브리’ 글자(‘타우 코프’)로 나타내었다. 80이라는 수자는 ‘히브리’ 글자 ‘페’로 나타내었고, 열은 한 글자 ‘요드’로 나타내었다. 그러므도 ‘타우 코프 페’(580)와는 뚜렷이 다른 ‘타우 페’(480)를 착각할 가능성이 없었다.

      [175면 삽화]

      시이. 티이. 러셀

  • 왕의 소유를 늘림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2장

      왕의 소유를 늘림

      1. (ㄱ) 아직 우리 사이에 있는 왕국 후사들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ㄴ) 만일 우리가 그러한 일이 그들에게 진행되는 것을 관찰한다면 이것은 무슨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될 것입니까?

      모든 증거로 볼 때에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으므로, 이러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천적 정부에서 하나님의 천년기의 왕과 연합할 사람들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이 우리 사이에 있는 동안, 천적 왕에 속한 것을 그들이 다루는 데 대한 시험과 검열을 받을 때에 우리가 그들을 관찰할 것을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천적 왕과 함께 왕으로 다스리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적 왕이 지상에 가지고 있는 모든 관심사를 어떻게 돌봅니까? 그 왕국의 공동 후사들이 우리 사이에서 시험과 검열을 받는 것을 관찰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이 통치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분은 그의 왕좌에 계십니다!

      2, 3. (ㄱ) 우리에게 보이는 사태 진전은 예수의 무슨 비유의 성취이며, 그것은 사도들의 어떠한 질문에 대한 답의 일부였읍니까? (ㄴ) 그 비유는 어떠한 말로 시작됩니까?

      2 현 이십 세기에 사람들의 눈 앞에서 발생하여 온 이러한 흥미있는 사태 발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원 33년 봄 ‘니산’월 11일에 ‘예루살렘’이 내려다 보이는 감람산에 앉으셨을 때에 자기의 놀라운 예언 가운데 포함시키신 비유 가운데서 묘사되었읍니다. 그분은 아직도 사도들이 한 질문 곧 “언제 이러한 일들이 있을 것이며, 무엇이 당신의 임재[‘파로우시아’, 희랍어]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가 될 것입니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자세히 대답하고 계셨읍니다. (마태 24:3) 그분은 사도들에게 “열 처녀”의 비유를 끝마치시고 거기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신 다음, 이제 그분은 또 다른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그 비유의 성취로, 그분의 보이지 않는 ‘파로우시아’가 시작되어 진행 중이라는 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 비유는 흔히 “‘달란트’의 비유”라고 불리웁니다. 그 비유는 이러한 말로 시작됩니다.

      3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은, 신세]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라].”—마태 25:14, 15.

      4. (ㄱ) 이 비유의 문맥에 의하면, 한 부자가 먼 길을 떠나며 귀중품을 종들에게 맡긴 ‘때와 같다’고 한 그것은 무엇입니까? (ㄴ) 이 “사람”은 누구를 상징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 그러면, 한 부자가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자기의 종들에게 자기의 소유를 맡긴 ‘때와 같다’고 한 그때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해 오신 왕국과 관련된 상황입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 앞의 비유 즉 “열 처녀의 비유”로 볼 때에 분명합니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려 나간 열 처녀와 같다.” (마태 25:1) 그것은 또한 예수께서 “달란트”에 관한 비유 다음에 말씀하신 비유로 보아 분명합니다. (마태 25:31-34) 지금 고려하는 비유 가운데서, 먼 길을 떠나는 부자는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가 받은 질문은 그의 임재의 “징조”에 대한 것이었읍니다.

      5. 이보다 앞선 어떤 비유가 “달란트”의 비유와 비슷하며, 그러나 그 두 가지 비유는 그것이 나타내려는 의도에 있어서 어떻게 다릅니까?

      5 “달란트”의 이 비유는 예수께서 그보다 앞서 말씀하신, 그리고 흔히 “‘므나’의 비유”라고 불리우는 비유와 여러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상하게도, “달란트”의 비유의 의도는, 그 비유의 현대 성취를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으로서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진행 중임을 증명하는 것이었고, 이와 반면에, ‘므나’의 비유는, 주 예수께서, 자기의 말을 듣던 사람들에게 그 당시 메시야 왕국이 아직도 먼 장래사임을 알리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므나’의 비유를 소개하는 말은 이러합니다.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라].” 왜?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누가 19:11-13) 먼 나라로 가는 여행을 떠났다가 그 곳에서 다시 돌아오는 일이 관련되었으며, 이것은 귀인이 왕국의 권능을 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긴 기간이 지날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읍니다.

      6. (ㄱ) 예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기 이틀 전에 무슨 일이 있었으며, 무엇이 그 때에 나타나지 않았읍니까? (ㄴ) 그러므로 이제 무슨 질문이 생깁니까?

      6 마찬가지로, 주 예수께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시던 당시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은 아직 먼 후일의 일이었으며, 즉시 나타나게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이보다 이틀 전인 기원 33년 ‘니산’월 9일 일요일에 예수께서는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셨고 환호하는 군중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고 외쳤읍니다. 그러나 왕국은 그 때에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마가 11:9, 10) 그 왕국은 우리 시대에 나타나고 있읍니까? 그것은 지금 우리에게 중대한 질문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를 가지고 이 땅에 계신 이후로 오랜 시간이 경과하였읍니다.

      7, 8. (ㄱ) “달란트”의 비유가 성취되기 시작한 때를 어떻게 압니까? (ㄴ) 사도 행전 1:2-5은 이것을 어떻게 확증합니까?

      7 “달란트”의 비유의 성취는 예수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와 관계있는데, 그것은 십구 세기 전에 사도 시대에 실현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비유에 나오는 어떤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 자신은 ‘예루살렘’에서 지켜진 오순절이 되기 열흘 전에 승천하시기까지 아직도 그들과 친히 함께 계셨읍니다. 그 비유는 그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의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부활되신 예수께서는 공중으로 올라가 보이지 않게 되신 날까지 “타국”으로 떠나지 않으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사건이 있기 전에 그는 “그 종들” 곧 당시 자기의 충실한 제자들을 불러 그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기셨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그러기 때문에, 그 비유는 그분이 죽은 자로부터 부활된 때와 그 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어전으로 승천하신 때 사이에 시작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와 일치하게 사도 행전 1:2-5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읍니다.

      8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즉, 예수께서 자기 제자들과의 용무를 마치고 승천하셨음]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일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9. (ㄱ) “달란트”의 비유에서 그 사람이 타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목적이 어떻게 지적되었읍니까? (ㄴ) 이와 상응하는 ‘므나’의 비유에서 그 사람이 먼 나라로 가는 목적은 무엇이었으며, 예수께서는 이것을 주의 만찬에서 어떻게 확증하셨읍니까?

      9 비유 가운데의 그 “사람”이 여행하려던 “타국”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자체입니다. 누가복음 19:12은 적절하게도 그것을 “먼 나라”라고 부릅니다.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먼 곳으로 여행하는 목적을 알려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목적이 특별한 “즐거움”을 얻고 자기의 “소유”를 참으로 늘려 훨씬 많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타국으로의 여행의 목적이 실현되었을 때에 그는 두고 온 “종들”의 주로서 그의 “즐거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와 유사한 혹은 상응하는 ‘므나’의 비유는 먼 여행의 목적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러므로 왕국을 소유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이것이 그가 하늘로 떠나가는 목적임을 지적하여, 연례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방법을 설명하시고나서 그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누가 22:29, 30.

      10. 비유에서 “그 종들”은 누구를 상징하였으며, 그들이 이 명칭을 받아들였다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 있읍니까?

      10 비유 가운데서, “그 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침례받은 제자들로서, “천국”에 있는 보좌에 앉을 대열에 속한 사람들이었읍니다. 사도들도 주 예수의 “종들” 즉 노예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읍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의 둘째 편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베드로 후 1:1) 사도 ‘요한’은 성서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의 서두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셨다고 말합니다. (계시 1:1) 제자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하였읍니다. (유다 1) 제자 ‘야고보’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라는 말로 자기의 편지를 시작하였읍니다. (야고보 1:1) 사도 ‘바울’은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에게 편지하노라]”라는 말을 썼읍니다.—빌립보 1:1.

      “자기 소유를 맡김”

      11. 비유 속의 그 “사람”인 예수께서 “종들”에게 남긴 “소유”는 어떠한 종류의 소유물이 아니었읍니까?

      11 천적 왕국의 대열에 있던 제자들은, 떠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을 떠나시기 전에 불러 모으고 “자기 소유를” 맡긴 그 “종들”이었읍니다. (마태 25:14) 이 소유는 무엇이었읍니까? 그분은 집, 토지, 옷, 은행 예금과 같은 물질적 소유물을 제자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읍니다. 그분은 ‘갈보리’에서 형주에 달려 죽으실 때에 자기의 연로한 모친 ‘마리아’와 이부 형제들과 이부 자매들을 뒤에 남겨 두셨으며, 이들에게 ‘모세’의 율법에 따라 이용 가능한 물질적 재산이 남겨졌읍니다. 그리고 삼년 반 동안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하시는 동안 그분은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지 않고 천적 아버지의 왕국을 첫째로 구하셨읍니다. (마태 6:19, 20, 33; 12:46, 47; 24:3-47; 사도 1:14) 그러면 그분은 “종들”에게 맡길 수 있는 무엇을 남기셨읍니까?

      12, 13. (ㄱ) 그러면 예수께서 그의 “소유”로 남긴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것에 관한 이러한 견해는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야곱’의 우물 근처에서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어떻게 입증됩니까?

      12 그것은 그리스도인 사업을 더 진전시키기 위한 기초,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더욱 전파하고 그리스도인 제자를 삼는 일을 계속하여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갈아 놓은 밭이었읍니다. 그것은 그 분의 제자들인 “종들”을 위하여 준비된 길이었읍니다. 이미 기원 30년에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지방을 통과하는 여행 중에 ‘수가’ 근처 “‘야곱’의 우물”에서 한 ‘사마리아’ 여인에게 전파한 후 그분의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3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요한 4:35-38.

      14. (ㄱ) 침례자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직 생활은 어떻게 비교됩니까? (ㄴ) 예수께서는 누구 사이에서 어떠한 방법으로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갈아진 밭을 남기셨읍니까?

      14 대략 6개월 동안 침례자 ‘요한’은 예수의 선구자로 봉사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고 선포하였읍니다. 그리고 기원 30년에 ‘요한’이 투옥된 후 예수께서는 같은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셨읍니다. 다음 3년간 예수께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디에서나 그 소식을 전파하고 사람들을 가르치셨읍니다. 그러므로 침례자 ‘요한’이 자유롭게 공개 활동을 한 것은 매우 짧아서 약 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활동한 기간은 그보다 세배나 길었읍니다. 그 두 사람은 씨 뿌리는 일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뒤를 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거두기 시작하셨으나, 그 분의 활동의 밭에서 거둘 수 있는 모든 제자를 거둔 것은 아닙니다. (마태 4:12-23; 3:1-7) 더구나, 예수께서는 그의 횡사와 부활을 포함한 공직 생활을 통하여, 약속된 메시야에 관한 성서 예언을 성취시키셨고, 이것은 모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읍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시 공적 인물로서 최대의 물의를 일으킨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파문을 일으켰읍니다. 이 결과 그리스도인들을 생산할 수 있는 밭이 갈아졌읍니다.

      15. (ㄱ)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잠재력을 가진 무슨 가치있는 것을 제자들에게 남기셨읍니까? (ㄴ) 그분은 처음에 얼마나 되는 사람들에게 그 “소유”를 남기셨읍니까?

      15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이 일한 밭 즉 사람들의 밭에, 잠재력 즉 제자들을 산출할 수 있는 잠재적인 힘과 능력을 부여하셨으며 예수의 제자들의 미래의 사업에 호의적인 반응 혹은 응답이 있도록 준비된 밭의 상태를 부여하셨읍니다.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재배하고 거둘 수 있는 잠재력(그리스도인 가능성)을 갖춘 이 준비된 밭은 부활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였읍니다. 그분은 제자들 곧 종들에게 바로 이것을 맡기셨읍니다. 그분은 부활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나 그 후 오순절 날에는 단지 약 120명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하늘에서 부어진 성령을 처음으로 받았읍니다. (고린도 전 15:6; 마태 28:16-18; 사도 1:13-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의 천적 아버지께 올라가심으로 타국으로 떠나기 전에 그로부터 소유를 맡은 그리스도인 “종들”은 적어도 백명이 넘었읍니다.

      16. 비유에 나오는 그 사람의 “소유”는 얼마의 돈에 해당되며, 그분은 “종들”에게 이 “재산”을 어떻게 분배하였읍니까?

      16 그분의 “소유”는 어떻게, 그리고 무엇을 기초로 분배되었읍니까? 기록은 이러합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은, 신세]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라].” (마태 25:15) 그러므로 은 여덟(8) ‘달란트’는 그분이 종들에게 분배한 “소유”였읍니다. 이것은 통용 기원 제 1세기 당시에는 상당한 재산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은 한 ‘달란트’는 60‘므나’ 즉 미화 약 850‘달러’와 같았기 때문입니다. 은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만한 양의 돈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보다 두배 되는 돈을 받은 것이며,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보다 다섯배를 받은 것입니다. 종 각자는 그것을 다루고 그것으로 장사할 수 있는 “재능대로” 돈을 받았읍니다. 그 부자는 자기의 종들과 그들의 재능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17. (ㄱ) 비유에 나오는 “종들”은 무슨 재능을 가졌으며, 그러나 비유의 성취에서는 어떠합니까? (ㄴ) 비유에서 누가 최대의 책임을 받았으며, 성취에서는 누가 받았읍니까?

      17 비유에서 재능은 선천적인 재능이거나 아니면 종들이 배양하고 발전시킨 재능이었읍니다. “달란트”의 비유의 성취에서 “재능”은 단순히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재능이 아닙니다. 그러한 재능이 가치있고 유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재능”은 천국의 대열에 있는 그리스도인 종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영적 가능성입니다. 그리스도인 종이 가지고 있는 열심, 자진성, 열망은 자기에게 맡겨진 영적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자기의 가능성에 기여합니다. 자기의 재능에 따라 다섯 ‘달란트’와 유사한 것을 받는 사람은, 물론, 최대의 책임을 집니다. 이와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도들인 종들에게 최대의 책임을 지우셨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2차적인 기초가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대규모로 개척하는 사업을 수행해야 하였읍니다.—계시 21:14; 에베소 2:20-22.

      18. (ㄱ) “종들”이 세명 밖에 안되는 것은 무엇을 대표하였읍니까? (ㄴ) 비유에서 “종들”은 모두 남자들이었지만, 성취에서는 어떠합니까?

      18 물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천국을 위하여 언약을 맺은 영적 “종들”은 셋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비유 속의 세 “종들”은 천국의 후사가 될 세 반열을 대표하였읍니다. 우리는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 회중에 많은 여자 신자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원 33년 오순절날에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그 여자들 중 한 사람이었으며,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 마을의 ‘마리아’와 ‘마르다’는 아마 사도행전 1:14에서 그 주목할 만한 오순절날에 성령을 받았다고 언급한 “여자들” 중에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요한 11:1-45) 또한,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을 때에 복음 전도자 ‘빌립’이 ‘사마리아’로 갔을 때에 그는 ‘사마리아’인 여자 신자를 발견하였읍니다. 기록은 이러합니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침례]를 받으[니라].”—사도 8:12.

      19. (ㄱ) 비유에서 그 “사람”은 종들이 자기의 “소유”를 어떻게 하기를 기대하였읍니까? (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인 “종들”에게 맡긴 “소유”에 대하여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19 비유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자기의 종들이 자기가 없는 동안 그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그것을 늘릴 것으로 기대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이 그 돈을 늘리는 것과 비생산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읍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이 제자들인 “종들”에게 지상에 있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맡기셨을 때에, 그들에게 맡긴 준비되고 갈아진 밭을 더는 돌보지도 않고 확장하지도 않음으로 더 이상의 소출이 없게 방치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셨으며, 사실,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명령하셨읍니다. 그 밭은 또한, 부가되고 퍼지고 확대되지 않고 원래의 크기 그대로 유지되게 해서는 안되었읍니다. 부재중인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대하신 것은 늘리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증가시키는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자기의 책임을 따라 살지 않은 대가로 처벌이 오게 되어 있었읍니다.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함

      20. 그 “사람”은 ‘달란트’를 받은 종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였으며, 그러한 기대에 응하고자 한 종들은 어떻게 성과를 얻었읍니까?

      20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비유에 나오는 종들은 자기들에게서 늘리는 것이 기대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비유는 이 점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다].” (마태 25:16, 17) 분명히 이들 두 종은 돈을 은행에 예금하여 은행이 이자를 늘리게 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기술과 분별력과 기민함으로 투기적인 사업을 하였읍니다. 그들의 노력은 성과가 있었읍니다. 그들은 각기 자기의 돈을 두배의 늘렸기 때문입니다. 각자는 자기의 주인에 대한 충성과 전념으로, 그리고 주인의 승인을 얻고자 하는 욕망으로 자기의 “재능”을 활용하였읍니다.

      21, 22.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는 어떻게 양에 있어서 늘게 되어 있었으며, 어느 정도로 늘게 되어 있었으며 어느 지역을 망라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21 이제 비유의 성취에서, 왕국의 후사가 될 사람들에게 맡겨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 그 몫은 어떻게 양에 있어서 두배가 되었읍니까? 주 예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될 것인지를 말씀하셨으며, 성서 기록은 그 일이 십구세기 전에 어떻게 수행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주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며칠 전에 물질화하여 ‘갈릴리’ 도에 있는 한 산의 미리 지정한 곳에서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읍니다. 그 곳에서 그분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 28:16-20) 그러나 그분은 승천하시던 날에 자기의 “소유”를 늘리는 사업의 경로에 대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읍니다.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22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 1:6-8.

      23. (ㄱ) 예수께서는 자기의 전파와 가르침을 어느 지역에 제한하셨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읍니까? (ㄴ) 그러면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소유”를 어디에서 발견하였으며, 누가 지정하신 때까지 그것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까?

      23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왕국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을 하시던 동안에 그분의 노력을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유다’(‘사마리아’를 포함하여)의 여러 도와 ‘요단’ 강 동편의 ‘베리아’에 제한하셨읍니다. 그러한 지역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중에서 더 많은 제자를 삼을 수 있는 준비되고 갈아진 상태를 조성하셨읍니다. 그러한 지역에서의 이러한 상태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이용해야 할 상태였읍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주 예수께서 “종들”인 그들에게 맡기신 “소유”였읍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그들은 그 천적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내에 두신 시기 혹은 계절까지 그 준비된 지역에서 일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셨음을 기억하고 바로 그 일을 해야 합니다.—로마 15:8.

      24. (ㄱ) 성령을 받은 후, 제자들은 즉시 어떻게 그들의 주의 “소유”를 활용하였으며, 그 결과 얼마큼의 성과를 거두었읍니까? (ㄴ) ‘유대’인 신자들은 오순절 후 집으로 돌아와서 생산적인 어떠한 밭을 발견하였읍니까?

      24 이와 일치하게 제자들인 당신의 “종들”은, 주 예수께서 “소유”—예수께서는 이 소유를 위하여 일하셨음—로 그들에게 맡기신 준비되고 갈아진 토지를 자본으로 삼았으며, 제자들을 늘리기 위하여 그 영적 토지를 활용하였읍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기원 33년 오순절날 즉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즉시 약 3천명의 침례받은 자를 생산하였읍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침례를 받음으로 왕국의 대열에 들어오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육적 ‘유대’인이건 ‘유대’교 신앙으로 개종한 사람들이건 모두 할례받은 사람들이었읍니다. 제자들에게 맡겨진 주 예수의 소유는 더욱 사용되고, 이 “소유”로 그리스도인 사업이 수행되어 얼마 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약 오천”으로 늘었읍니다. (사도 4:4) 의심할 여지 없이, 오순절 후에 ‘예루살렘’을 떠나 땅의 여러 지역에 있는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온 수백명의 그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은 자기들이 사는 지방의 ‘유대’인들에게서 그리스도교를 위한 활동의 밭을 발견하였읍니다.

      25. (ㄱ) 어떻게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의 축제에 참석하는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의 경우에 이미 얼마의 “소유”를 위하여 일하셨읍니까? (ㄴ) 어떻게 박해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이 멀리 떨어진 ‘유대’인 사회에까지 파급되었읍니까?

      25 아마도, 돌아가는 ‘유대’인들과 개종자들 중 다수는 모든 축제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전에 여러 번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접촉하고 그의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방문하는 그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의 경우에 준비되고 갈아진 상태를 조성하시기까지 하셨으며,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동료 제자들은 예수의 소유의 이 부분을 이용하였고 그 “소유”를 활용하였읍니다. (요한 12:20-29; 사도 2:5-11)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이태리’ ‘로마’에 가기 전에 그 곳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회중이 있었읍니다. (로마 1:1-7; 15:22-24)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대하여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나 그리스도인 신앙은 그 결과 ‘유다’ 구역 밖에 있는 많은 ‘유대’인들에게 파급되었읍니다. 사도행전 11:19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읍니다].”—새번역.

      26. (ㄱ) 제자를 삼는 일을 단지 ‘유대’인 밭에만 제한한 것은 언제까지, 어느 사건까지였읍니까? (ㄴ) 그 새로 개방된 지역에서의 사업은 영적 “달란트”의 증가에 어떠한 결과를 초래하였읍니까?

      26 부재중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를 증가시키는 일을 이와 같이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에게만 제한한 것은 기원 36년 가을까지였읍니다. 다음에 다른 지역에서 그리스도인 제자들의 수를 늘릴 때가 되었읍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이렇게 명령하신 바와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침례]를 주[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마태 28:19, 20; 사도 1:8) 그때는, 예수로부터 영적 “‘달란트’”를 맡은 ‘유대’인 제자들이 영적 “달란트”를 늘리기 위하여 그의 “소유”를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때였읍니다. 이 일은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개종시키도록 ‘유다’의 ‘로마’ 본거지, ‘가이사랴’로 보냄을 받았을 때에 다섯 ‘달란트’ 반열의 활동으로 시작되었읍니다. (사도 10:1에서 11:18) 이로써, 인류 가운데 전 이방인 즉 비‘유대’인 세계가 제자가 될 수 있는 문이 열렸읍니다. 이 지역은, 씨를 뿌리고 거두고 제자를 삼는 임명을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그의 소유가 된 지역이 아니었읍니다.—마태 15:24.

      27. 이와 같이 생산을 위한 세계적인 지역이 개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요구되었읍니까?

      27 이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사람들을 조절하지 않은, 즉 개척자로서의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리스도인 회중을 늘리기 위하여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지 않고 갈아지지 않은 상태의 광대한 지역이 있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련해 주신 원래의 경작지에 의하여 유익과 혜택과 자극을 받고 이제 경험과 자격을 갖춘 일군이 되어 씨를 뿌리고 성장의 가능성을 촉진하고 그리하여 메시야 예수의 제자를 생산할 수 있는 다른 밭을 부가할 수 있었읍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개척자적인 노력을 해야 하였으며, 용기와 성실한 노력과 신중한 주의와 끈기를 나타내어 조금의 손실도 없게 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들은 더는 다른 사람의 기초 위에 세우지 않고 전혀 새로운 지역에서 제자를 삼기 위한 모든 준비를 스스로 하였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주에 대한 순종이었읍니다.—로마 15:17-21.

      28, 29. (ㄱ) 제 1세기의 제자들이 세운 본을 따라 그 후의 그리스도의 제자들 즉 “종들”은 그들의 재능에 따라 어떻게 하였읍니까? (ㄴ) 증가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무엇이었읍니까?

      28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제 1세기의 다른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상징적 “달란트”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데 관한 본을 세웠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주의 ‘달란트’를 백 ‘퍼센트’ 늘렸읍니다. 주의 “소유” 중 “다섯 ‘달란트’”를 맡은 그리스도인 종 반열은 다섯 ‘달란트’를 더 늘렸읍니다. 그들의 주의 소유 중 두 ‘달란트’를 맡은 그리스도의 “종” 반열은 두 ‘달란트’를 늘렸읍니다. 각 반열은 비율로 말하면 백 ‘퍼센트’씩을 늘렸으며, 따라서 각 반열은 힘껏 증가시켰으며 어느 한 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낫지 않았읍니다. 각자 기대를 충족시켰읍니다. 각자 “재능”에 따라 최선을 다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들의 주의 소유를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종” 각자가 자기 “재능”을 사용하였기 때문만이 아니었읍니다. 그 증가에는 또 다른 요인이 있었읍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요인이었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봉사와 능변과 제자 ‘아볼로’의 봉사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때 이 요인을 지적하였읍니다.

      29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 전 3:5-9.

      30. (ㄱ) 그러면 주로 누가 증가에 대한 영예를 받아야 합니까? (ㄴ) 제 1세기에 제자들이 갈아놓은 밭에서 증가가 있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30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늘리게 하신 분으로 영예를 받으셔야 하며, 그리스도의 “종들”은 증가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용하시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분은 “종들”이 그들의 책임을 이행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분은 “종들”에게 그들이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여행을 떠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그의 충실한 제자들에게 남겨주신, 제자를 산출하는 준비되고 갈아진 지역은 확장됩니다. 왜냐 하면, 그리스도의 “종들”이 그의 명령에 순종하고 그의 본을 받아 일함에 따라 이러한 종류의 또 다른 지역이 전세계에 존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통용 기원 제 1세기에 이에 대한 어떠한 증거가 있었읍니까? 천국의 후사들인 제자들로 구성된 회중들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이외의 지역에서 생겨났읍니다.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 및 지중해의 여러 섬에 회중들이 설립되었읍니다.

      31. 이상의 예에서 ‘베드로’의 첫째 편지의 발신지는 그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31 예로서 사도 ‘베드로’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의 장엄한 성전의 멸망을 예수께서 예언하셨을 때에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 네명의 사도 중 한 사람이었읍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가 13:1-4) 약 30년 후인 기원 62-64년경 즉 “이런 일”이 ‘예루살렘’ 및 성전의 포위 및 멸망과 함께 발생하기 여러 해 전에 사도 ‘베드로’는 ‘로마’ 제국 밖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로마’ 제국 안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첫째 편지를 쓴 곳은 ‘메소포타미아’의 ‘유브라데’ 강변의 ‘바벨론’ 시였읍니다. 그는 이 편지 끝에서 그 곳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언급하여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하였읍니다.—베드로 전 5:13.

      32-34. (ㄱ) ‘바울’은 대략 언제, 그리고 어디에서 ‘골로새’인들에게 편지를 썼읍니까? (ㄴ) ‘바울’은 그 가운데서 제자들에게 맡겨진 “달란트”의 전세계적인 증가를 어떻게 지적하였읍니까?

      32 또한 사도 ‘바울’이 있읍니다. 그는 마침내 ‘로마’ 제국의 수도에 도착하였으나, 그 때 그는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한 수인(囚人)의 신분이었읍니다. ‘로마’에 연금되어 있는 동안 그는 기원 약 60-61년에 소‘아시아’의 ‘골로새’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 편지를 썼읍니다.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이런 일”이 발생하기 보다 거의 10년 전이었으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유대’ 사물의 제도의 끝이 아직 멀었던 그 때에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그의 “종들”에게 맡겼던 상징적 “달란트”를 전세계적으로 증가시키는 일에 대하여 말하였읍니다. ‘‘바울’은 좋은 소식을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언급하여 이렇게 썼읍니다.

      33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들을 향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희망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희망에 대하여는 여러분이 복음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듣지 않았읍니까? 이 복음은 여러분 가운데 전파되어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을 듣고 참으로 깨달은 그 날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고 있읍니다. 이 복음은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여러분이 배운 그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일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군이며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한 사람입니다.

      34 “여러분도 전에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으로 그의 원수가 되어 악한 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육체의 죽음을 통하여 여러분을 자기와 화해시키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서게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의 터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을 지켜가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에서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복음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된 것이며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읍니다.”—골로새 1:4-8, 21-23, 새번역.

      35. 제 1세기 제자들의 열심에 대한 이 증거는 어느 제한된 기간에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예수의 무슨 예언의 성취였읍니까?

      35 사도 ‘바울’의 영감받은 그 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기신 “달란트”를 가지고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그의 제 1세기의 그 “종들”이 나타낸 열심에 대한 참으로 훌륭한 증거였읍니다! 그들은 그 짧은 기간에 참으로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읍니다! 좋은 소식이 “온 세계에서 열매를 맺고 있”었으며, 좋은 소식이 이미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원 29-33년에 “단번에 ··· 세상 끝[사물의 제도의 결말, 신세]에 나타나셨”읍니다. 그러나 ‘유대’인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 그들의 종교 중심지의 멸망으로 기원 70년에 종결되기 전에, 당시 알려진 전세계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증거를 받았읍니다. 참으로, 모든 이방 나라도 그러한 증거를 받았읍니다. 그리하여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예언이 모형적으로 성취되었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마태 24:14, 신세; 히브리 9:26.

      비유의 현대 성취의 최절정

      36. 제자들 곧 “종들”의 주께서는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해서 다시 오셨읍니까? ‘요한’이 「계시록」 끝에서 한 말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36 전쟁, 온역, 기근, 지진 및 박해 가운데서도 그처럼 전세계적인 법위로 고귀한 “달란트”를 늘린 제 1세기의 “종들”은 모두 죽었지만, 떠나가신 그들의 주이신 소유자는 ‘로마’ 군단에 의한 ‘예루살렘’ 멸망을 전후한 그들의 시대에 돌아오시지 않았읍니다. 그 끔찍한 사건이 ‘유대’인 종교 세계에 충격을 준지 약 26년 후에 ‘밧모’ 섬에서 복역하고 있던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기쁨을 누렸는데, 그 가운데서 그는 미래를 지적하여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요한’은 「계시록」 끝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읍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찌어다.” (계시 1:7; 22:20, 21) 주께서 오시기를 바라는 그 열렬한 기도가 응답되기까지는 18세기 이상이 경과하였읍니다.

      37. (ㄱ) 어떠한 기대와 달리, 언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셨읍니까? (ㄴ) 그때 이후로 왕국 전파는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7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고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달란트”의 비유의 성취는 최절정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십구세기 후반에는, 주께서 기원 1874년에 돌아오시고 그 해에 영으로 임하신 그의 보이지 않는 임재가 시작되었다고 생각되었읍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징조”는 다음 사십년 동안에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1914년 10월 4/5일 경 즉 ‘유대’ 음력으로 ‘티쉬리’월 중순에 이방인의 때가 끝나기까지 나타나지 않았읍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다가오는 메시야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파는 하나님의 설립된 왕국의 좋은 소식의 전파로 바뀌었읍니다. 그 후에 발생한 세계 상태는 앞에서 말한 그 중대한 해에 그의 메시야 즉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께서 왕으로 즉위하고 왕관을 쓰심으로 하나님의 천국이 탄생하였다는 증거를 축적하였읍니다. (마태 1:1) 왕국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를 가진 분이 오신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돌아오셨읍니다!—에스겔 21:25-27.

      38. “달란트”의 비유는 어느 예언의 일부였으며,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어떻게 그 비유의 성취가 최절정에 달해야 합니까?

      3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파로우시아’ 즉 ‘임재’의 사실을 알리는 단면적인 “징조”의 일부로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그 비유의 성취가 절정에 이르는 것은, 그분이 영으로 돌아오셨으며 그의 임재가 현재 진행 중임을 알리는 부가적인 증거가 될 것입니다. 왕으로서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1914년 이방인의 때의 끝에 시작하였다면, 확실히, 그 비유의 성취가 우리 시대에 그 최절정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실이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사실이 있읍니까?

      39. 한 ‘달란트’를 가진 종은 어떻게 하였으며, 종들과 회계하는 일은 언제 시작되었읍니까?

      39 우선, 그 비유가 어떻게 진전되었는지 알아봅시다. 예수의 비유를 더 읽어보면 이러합니다.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하니라].”—마태 25:18, 19.

      40. (ㄱ) 비유 가운데서, “그 종들의 주인”은 무엇을 가지고 돌아왔읍니까? (ㄴ) 기원 1914년은 특히 어느 “왕권”과 관계가 있었으며,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40 “주인”이 왔을 때에 그는 먼 여행에서 얻으려던 것을 가지고 돌아왔읍니다. 그 주인이 나중에 한 말을 보면, 그는 그의 충실한 종들과 나눌 “즐거움”을 얻었읍니다. 그는 그가 은 여덟 ‘달란트’를 그들에게 맡길 때에 가지고 있지 않았던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왔읍니다. 이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즉 “열 ‘므나’”의 비유는 그가 가지고 돌아온 것이 “왕권”이라고 명시합니다. (누가 19:12-15) 이방인의 때 즉 “열국의 지정된 때”는 “왕권”, 특히, ‘예루살렘’의 ‘다윗’ 왕가의 “왕권”,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전복시킨 ‘다윗’ 왕가의 왕권과 관계가 있읍니다. 재난이 임한 그 해는, 1914년까지 이르는 이방인의 때인 2,520년이 계산되기 시작한 해였읍니다. 그러므로 1914년 10월 4/5일 경에 그 이방인의 때가 끝났을 때에 그러한 오래 계속된 상태가 역전되는 것이 논리적입니다. 따라서, 1914년 10월 4/5일 현재로 이방 여러 나라가 이미 두 달 동안 인류 사상 최초의 세계 대전에 휘말려 들어가 고통을 받은 것은 의미없는 일이 아니었읍니다.

      41. (ㄱ) 제 1차 세계 대전은 당시 지상에 있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소수의 “종들”을 멸절하였읍니까? (ㄴ) 나라들은 그들이 더욱 증거하는 일과 관련하여 그들에게 무슨 일을 하려고 시도하였읍니까?

      41 그러나, 천적 주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가치있는 “달란트”를 맡은 그리스도인 “종들”은 어떠하였읍니까? 그 주목할 만한 때에 지상에 있었고 성경으로부터 제 1차 세계 대전의 의미를 분별한 그 충실한 “종들” 중 소수가 오늘날까지 아직 있읍니다. 마침내 스물 여덟개 나라와 제국을 전면 전쟁으로 이끌어들인 이 국제적인 투쟁에서 새로 즉위한 천적 왕의 그 충성스러운 “종들”은 멸절되지 않았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땅의 왕으로 다스리는 것을 원하지 않은 지적 원수들은 이들 “종들”을 멸절하고자 시도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하였읍니다. 사실 원수들은 그들의 천적 주인인 소유자로부터 받은 상징적 “달란트”를 그들에게서 빼앗으려고 시도하였읍니다. 그들은 이들 “종들”이 새로 즉위한 천적 왕을 위하여 이룩한 훌륭한 공적과 영적 수익을 제거하고자 시도하였읍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은 이들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말살시키려 하였읍니다. 그들은 미래의 왕국 증거를 위한 이들의 준비되고 갈아진 기초를 침해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였읍니다.

      42, 43. (ㄱ) 1918년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천적 주인의 “종들”은 어떠한 상태에 있었읍니까? (ㄴ) 표면상으로는 그들에게 맡겨진 “달란트”가 어떻게 되었읍니까?

      42 1918년 11월 11일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통치하는 천적 왕의 “종들”은 그리스도교국 안팎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얻는 좋은 평판에 있어서 사실상 죽었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호의는 국가주의적인 애국자들과 전쟁에 열을 올리는 광신자들에 의하여 그릇 인식되고 비방을 받았기 때문에 죽은 바와 다름없었읍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폭도들의 습격을 받았읍니다. 그들의 성서 서적이 금지되었거나 그들 자신이 금지령 하에 들어갔읍니다. 그들 중 다수는 투옥되었고, 이들 중 가장 탁월한 사람은 거짓 고발을 받은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과 동 협회의 총무겸 재무 및 다른 여섯명의 저명한 동료들이었는데, 전쟁의 광란이 끝난 후에야 그들의 무죄가 밝혀질 수 있었읍니다.

      43 이 지구의 정당한 통치자의 이들 “종들”이 표면상으로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 것같이 보였읍니다. 그들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일소된 것같이 보였읍니다. 그들의 원수들은 그들 “종들”이 천적 주인에 대한 봉사를 영원히 중단시킨 것을 보고 즐거워하였읍니다. 이들이 모든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능력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44. (ㄱ) 언제 상태의 역전이 있었으며, 어떻게 있었읍니까? (ㄴ) 이제 생존한 “종들”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기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44 전쟁이 끝나고 4개월 이상이 지난 후에야 원수들은 사태가 역전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읍니다. 이 때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여덟명의 대표자들이 1919년 3월 25일 ‘애틀란타’(‘조지아’ 주) 연방 교도소에서 석방되어 이튿날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에서 보석이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합당한 절차에 따라 얼마 후에, 매우 그릇된 고발을 받은 이들의 무죄가 판명되었읍니다. 그러나 전쟁 선전과 전쟁 열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에 대하여 편벽되고 왜곡된 견해를 가진,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것은 얼마나 중요성이 있었읍니까? “종들”은 그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험악한 환경하에서도 기운을 회복하고 전진할 수 있었읍니까? 그들은 그렇게 하기 위한 용기와 천적 주인에 대한 확신이 있었읍니까? 그 때는 참으로 그리스도인 종들에게 시험의 때였읍니다.

      45. (ㄱ) 비유에 의하면 “주인”은 무슨 일을 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ㄴ) 그들이 “달란트”를 소유하는 점에 관하여는, 그들 그리스도인 종들을 위하여 무슨 일이 필요하였읍니까?

      45 “달란트”의 비유는 여행자가 먼 길에서 돌아와서 그들과 회계할 것이라고 묘사하였읍니다. 이것은 그들에 대한 검열을 의미하였읍니다. 1919년 봄에 사태가 그처럼 바뀌었기 때문에 그 때가 천적 “주인”이 그들을 검열할 합당한 때라는 것이 매우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종 반열에게 맡겨진 “달란트”와 관련하여 어떠한 설명을 할 수 있었읍니까? 그들이 1918년 전시의 박해가 최고조에 달하기 전에 그들이 얼마간 늘렸다면, 그 늘린 것이 일소된 것처럼 보였읍니다. 그들은 마치 상징적 “달란트”를 전혀 소유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읍니다. 이제 만일 그들이 그들의 주인의 “달란트”를 늘리고자 한다면, 그들은 전후 기간에 그러한 증가를 가져오고 그와 같이 증가시킨 그분의 재산을 장래에 그분께 양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그의 고귀한 “달란트”로 ‘사업을 할’ 차후의 새로운 기회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의 천적 주인의 자비로운 배려로 인하여, 바로 그와 같이 역사가 전개되었읍니다.

      46. (ㄱ) 그 때는 그들의 무엇을 일소할 때였으며,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재조직할 필요가 있었읍니까? (ㄴ) 그들의 천적 주인이 “왕권”을 소유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 때는 무엇을 하기에 절호한 시기였으며, 좋은 때였읍니까?

      46 최초의 세계 대전의 광포와 병적 흥분 기간 중에 종 반열 사이에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조성되었었고 그로 인하여 종 반열은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신뢰할 수 있는 종으로서의 사업에서 상당히 손을 떼었기 때문에, 1919년은 그러한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일소할 중대한 시기였읍니다. 그 때는, 그들이 이제 왕권을 소유하신 그들의 주인을 섬기는 생활에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하여 흐트러지고 무력해진 자기들의 대열을 재조직할 절호의 시기였읍니다. 이제, 과거 어느 때와도 달리, 그들의 주인은 천적 왕국의 희망을 허락받은 더 많은 제자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온 땅을 밭으로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지셨읍니다. 그는 이 적절한 상태를, 자기를 섬기는 ‘사업을 하도록’ 그들에게 맡기셨읍니다. 그 때는 제자들로 이루어진 “종” 반열이, 다섯 “달란트”를 위탁받은 종으로 상징된 반열과 두 ‘달란트’를 위탁받은 종으로 상징된 반열로서 일어나야 할 좋은 때였읍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읍니다. 사실 “달란트”의 비유는, 특히 그 비유의 최절정은, 성취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47. 1919년에 그들은 두려움없이 전후 사업에 자신을 바치도록 어떻게 힘을 얻었읍니까?

      47 그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읍니다. 1919년에 그들 두 “종” 반열은 일을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두려움이 없는 자들은 복되도다”라는 주제의 1919년 8일 1일호와 15일호 「파수대」(영문) 기사에서 강력한 확신을 다시 얻었읍니다. 그들은 1919년 9월 1-8일에 ‘오하이오’ 주 ‘시다 포인트’에서 열릴 8일간의 대회에 대한 발표를 열렬히 환영하였읍니다. 그들은 또 다시 박해를 받으며 커다란 정력과 용기를 가지고 수행해야 할 전후(戰後) 사업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그 대회에 참석하는 것을 주저하는 일이 없었읍니다.

      48. (ㄱ) 「파수대」의 자매지로 새 잡지가 발행된다는 발표가 있자 ‘시다 포인트’ 대회 참석자들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읍니까? (ㄴ) 이 부가적인 잡지는 지금까지 어떻게 사용되어 왔읍니까?

      48 특히 ‘캐나다’와 미국에서 참석한 6천명은, 자기들 앞에 놓인 사업을 자기들이 수행하도록 여호와께서 어떻게 목적하셨는지를 알고자 하는 간절한 태도로, ‘만국 성경 연구회’의 이 대회 회기에 매일 참석하였읍니다. 1919년 10월 1일호부터,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의 자매지로 「황금시대」라는 새 잡지가 발행된다는 발표가 있자 그들은 놀라움과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나타냈읍니다. 이 새 잡지는 설립된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을 선포하는 부가적인 잡지로 의도되었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더 많은 제자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새로운 구역에 심고 물주고 가꾸는 일을 하는 데 사용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었읍니다. 「파수대」와 나란히, 그 새로운 잡지(현재의 「깨어라!」)는 지금까지 발행 부수가 증가되어 왔으며, 정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더 깊은 것들을 이해하도록 준비시켜 주었읍니다. 그것은 준비시키는 일을 훌륭히 수행하였읍니다.

      49. ‘왙취 타워 협회’의 지부와 관련하여 무슨 일이 있었으며, 그 결과 가꾸어지는 지역이 어느 정도로 증가되었읍니까?

      49 또한,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두절되었던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본부와 전세계의 지부 조직 사이의 통신은 회복되고 강화되었으며, 때와 환경이 필요성을 나타냄에 따라 새로운 지부가 여러 나라에 설립되었읍니다. 그 결과로, 천적 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의 더욱 면밀한 감독을 받게된 지역이 증가하였고 모든 나라 사람들 가운데서 더 많은 제자를 모으기 위하여 그러한 지역을 가꾸는 사업이 크게 강화되었읍니다. 그 때에는 소수의 지부가 존재하였지만, 오늘날은 그 수가 증가하여 96개 지부가 있읍니다. 이러한 지부는 210개 나라와 바다의 섬에서 수행되고 있는 씨뿌리고 가꾸는 활동을 감독하고 있읍니다.

      50. (ㄱ) 1922년 ‘시다 포인트’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성전에 있던 이사야’의 입장과 같음을 깨달았읍니까? (ㄴ) 여호와의 초대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은 그들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을 일으켰읍니까?

      50 1922년 9월에, 천국의 대열에 있는 이들 그리스도인 종들은 자기들이 참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통치하는 주 예수의 검열을 받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읍니다. 말라기 3:1의 성취로,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영으로 출생한 그의 “종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영적 성전에 오셨읍니다. 미국 ‘오하이오’ 주 ‘시다 포인트’에서 열린 ‘만국 성경 연구회’의 두번째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 대회의 네째 날인 1922년 9월 8일 즉 “중요한 날”이라고 명명된 날에, 그들 자신이 예언자 ‘이사야’가 성전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환상을 보았을 때의 ‘이사야’와 같은 입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영적으로 깨끗해질 필요성을 느꼈으며, 자비롭게도 그는 그 필요한 깨끗함을 입었읍니다. 이리하여 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고 열렬히 외치면서 여호와의 초대에 응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있게 되었읍니다. (이사야 6:1-8) 그러므로 문제는 ‘만국 성경 연구회’ 대회 참석자들이 당시 그들에게 제시된 여호와의 초대에 동일하게 응답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51. 협회 회장은 “중요한 날”의 연설을 끝맺으면서 대회 참석자들에게 어떠한 연속적인 질문을 하였으며, 그는 끝으로 그들에게 무엇을 권고하였읍니까?

      51 ‘이사야’의 환상을 다룬 연설의 끝으로부터 둘째 항에서 ‘왙취 타워 협회’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는 대회 참석자들에게 연속적으로 질문을 던졌는데, 그 마지막 질문들은 이러하였읍니다. “여러분은 주께서 지금 성전에 계시며, 땅의 나라들을 심판하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영광의 왕께서 통치를 시작하셨음을 믿으십니까?” 수 천명의 대회 참석자들은 고조된 열정을 가지고 ‘예’ 하고 외쳤읍니다. 그러자 연사는 이러한 말로 강연을 절정으로 이끌어 갔읍니다. “그렇다면 지존하신 하나님의 아들들이신 여러분, 야외로 돌아가십시오! 여러분의 갑옷을 두르십시오! 근신하고 경계하며 활동적이 되고 용감하십시오. 주를 위하여 충실하고 참된 증인이 되십시오. ‘바벨론’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나아가 싸우십시오. 소식을 널리 전하십시오. 여호와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심을 세상은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참으로 중요한 날입니다. 보십시오, 왕이 통치하십니다! 여러분은 그의 전파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왕과 그의 왕국을 광고하십시오, 광고하십시오, 광고하십시오.”—1922년 11월 1일호 「파수대」(영문) 332-337면.

      52. (ㄱ) 1920년에 협회는 성서 서적 배부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하였읍니까? (ㄴ) 1924년에 협회는 왕국을 광고하는 어떠한 다른 수단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후에 어떠한 다른 선전 수단으로 확대되었읍니까?

      52 돌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이전보다도 더 큰 열심과 노력으로 통치하는 왕을 광고하였으며, 집집에서 그리고 공개 연단에서 공개적으로 전파하였읍니다. 1920년 이래 그들은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에서 그들 소유의 인쇄 시설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그들은 더 많은 양의 성서 서적, 잡지, 소책자, 전도지, 서책, 그리고 마침내는 성서를 더욱 경제적으로 입수하여, 메시야 왕과 그의 왕국을 광고하는 데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1924년 2월 24일 일요일부터 이들 “종들”의 법인체들의 방송국들이 ‘라디오’ 수신기를 가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청취자들에게 왕국 소식을 방송하는 데 사용되었읍니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많은 나라에서 수십개의 방송국을 이용하여 유료 혹은 무료 시간에 땅 끝까지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였읍니다. 이러한 선전 수단에 부가하여, 몇 해 후에는, 확성기를 단 선전차가 이용되었고, 그리스도의 “종들”이 호별 방문에서 휴대용 축음기를 가지고 다니며 집주인에게 왕국을 광고하였읍니다.

      53. 독자들은 1925년 3월 1일호 「파수대」(영문)의 주요 기사를 읽고 왜 감동을 받았읍니까?

      53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지 독자들은 1925년 3월 1일호를 받고 “나라의 탄생”이라는 주요 기사를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왜냐 하면 그 기사에서 그들은 계시록 12장을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영적 분별력의 눈이 열려져, 그들에게 오랫 동안 신비로 남았던 그 장(章)의 매우 감동적인 설명 즉 남아의 상징적 탄생이 이방인의 때의 끝인 1914년에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탄생을 상징한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그 기사는 74면에서 이러한 말로 결론을 맺었읍니다. “하늘 왕국은 임하였읍니다. 구출의 날은 가까왔읍니다. 이 좋은 소식을 땅의 사람들에게 포고해야 합니다. 승리는 우리의 왕편에 있읍니다. 전쟁의 끝까지 충실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히 충만한 곳에서 쏟아지는 햇빛과 같은 그 분의 사랑을 영원히 받을 것입니다.”

      54, 55. 1925년에 주의 만찬 기념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활동 지역에서의 증가를 어떻게 나타내 주었읍니까?

      54 다음, 1925년 4월 8일 수요일 주의 만찬의 연례 기념식으로 격려적인 사실이 드러났읍니다. 부가된 활동 지역에서 그때까지 심고 물주고 가꾸는 일이 수행되었고 왕국을 선전하기 위한 새로이 공급된 도구가 사용되었기 때문에, 천적 희망을 가진 제자들의 회중 수가 증가하였읍니다. 회중 성원 수가 증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의 이 축하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이러한 성장과 산출을 나타냈읍니다. 그러면 그 해에 몇명이 참여하였읍니까? 1925년 9월 1일호 「파수대」(영문) 263면의 “기념식 보고”에서는 이렇게 알려 주었읍니다.

      55 “우리는 기념식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가 매우 많은 것을 기뻐합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모든 곳에서 진리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총계는 1년 전에 보고된 수보다 25,329명이 많은 90,434명입니다.”

      56. 이것은 “달란트”를 맡은 제자들 곧 “종들”의 “사업”과 관련하여 무엇을 알려 주었읍니까?

      56 참으로, 그리스도의 “종들” 곧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으로 상징된 반열과 두 ‘달란트’를 맡은 종으로 상징된 반열은 민첩하고 신속하게 ‘사업을 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더 많이 산출할 다른 지역을 부가하였읍니다. 발표된 사실들은 이들 “종들”의 노력이 축복을 받고 있었고 증가를 상으로 받고 있었음을 증명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더욱 노력하게 하는 격려가 되었읍니다.

      즐거움

      57. (ㄱ) 비유 가운데 부자는 왜 타국으로 떠났읍니까? (ㄴ) 그러므로 비유의 성취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떠한 질문들이 생깁니까?

      57 그러나, 지금 역사적으로 또 다른 요인이 문제에 뚜렷이 보이게 되었읍니다. 예수의 비유 가운데서, 은 여덟 ‘달란트’와 세명의 종을 가진 그 사람은 관광 여행과 같이 단순히 심심풀이로 먼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먼 여행을 떠날 심각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는 귀중한 것을 얻기를 원하였읍니다. 비유에서 알려 주듯이 그가 먼 여행을 떠난 목적은 어떤 “즐거움” 및 ‘많은 것’을 얻기 위함이었읍니다. 따라서, 그는 자기에 그 특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이에게 가기 위하여, 오래 걸리는 먼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명백히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그 점이 예수의 비유에 함축되어 있읍니다. 비유 속의 부자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므로, 그 사람이 타국으로 떠나는 것은 주 예수께서 그가 바라는 특별한 즐거움의 근원에게 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러면 그는 누구에게 갔읍니까? 그 즐거움의 근원은 누구였읍니까?

      58, 59. (ㄱ)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누구에게 가셨읍니까? (ㄴ) 로마서 15:13에 암시되어 있듯이 그분은 또한 누구에게 즐거움의 근원이 되십니까?

      58 이 점이 히브리 12:2에 암시되어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59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즐거움”의 근원이십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상에 있는 충실한 제자들에게 “재산” 즉 “달란트”를 맡기시고 다른 분이 아닌 바로 그분께로 가셨읍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예수께서 “즐거워”하실 특별한 이유의 근원이 되셨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제자들에게도 즐거움의 근원이 되십니다. 따라서 그 제자들 중 한 사람은 ‘로마’에 있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희망의 하나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안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의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로마 15:13,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그 합당한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었읍니다.

      60.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즐거움”을 가지고 돌아오셨으므로 누구를 합당하게 높이는 것이 시기적으로 적절하였읍니까? (ㄴ) 이것은 그분의 이름과 관련하여 어떻게 그분을 합당하게 탁월한 위치로 높이는 것이었읍니까?

      60 지금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하늘에 탄생하였으므로, 사물의 당연한 과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즐거움을 가지고 돌아오신 후 그분의 “종들”이 즐거움의 천적 근원이신 하나님을 합당하게 탁월한 위치로 높이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합니다. 즐거움의 근원이신 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실 때가 되었으며, 이렇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이 알려져야 하였읍니다. 그 이름은 합당하게 알려졌읍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지상에 있는 그분의 경건한 숭배자들간에 정기적으로 사용되게 되었고 이전 어느 때보다도 온 땅에 널리 공표되어 왔읍니다. 1926년이 시작되었을 때에 「파수대」(영문)의 첫 호는 “누가 여호와를 영화롭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주요 기사를 게재하였읍니다. 그때부터 성서의 ‘히브리’어 원문에 수천번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아들의 “종들” 사이에서 적절히 높여졌읍니다. 그들은 우선적으로 그분을 위한 증인들이 되기 시작하였지만,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증거를 감소시킨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지니신 유일한 분을 위한 증인이 될 의무에 따라 사랑을 가지고 행동하였읍니다.

      61. (ㄱ)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종들은 1931년에 결의문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이름들로 불리우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을 선언하였읍니까? (ㄴ) 그들은 그 때 이후로 어떠한 명칭으로 불리우기를 원하였읍니까?

      61 그 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그러한 증거 활동이 5년 반 동안 있었읍니다. 다음에 그리스도인 “종들”이 자기들의 신분을 밝혀 자기들을 종교적 그리스도교국의 모든 자칭 그리스도인들과 구별시킬 때가 되었읍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은 1931년 7월 26일 일요일 오후 미국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행동을 취하였읍니다. 오후 4:00에 수천명의 대회 참석자들에게 결의문이 제시되었고 낭독되었는데, 그 결의문의 제 4, 5, 6항을 여기에 인용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참다운 입장을 알리기 위하여,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표명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결의하는 바이다. 즉:

      우리는 ‘차알즈 티이. 러셀’ 형제가 수행한 사업으로 인하여 그 형제에 대한 커다란 사랑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주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으며 그의 사업을 크게 축복하셨음을 기쁘게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러셀파”라는 명칭으로 불리우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그 명칭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다.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와 ‘만국 성경 연구회’와 ‘만인의 설교단 회’는 그리스도교 단체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하여 유지하고 관리하고 사용하는 법인체의 명칭에 불과하다. 이러한 명칭 중 어느 것도, 우리의 주이며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르는 그리스도인 단체인 우리에게 적절히 붙여지거나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성경 연구생들이지만 한 연합체를 형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단체로서 주님 앞에서의 우리의 적절한 입장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성경 연구생” 혹은 그와 비슷한 명칭을 지니는 일 혹은 그러한 명칭으로 불리우는 일을 거절한다. 우리는 어떠한 인간의 이름을 지니거나 그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을 배척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주이시며 속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우리를 사시고 의화하시고 출생시키시고 그분의 왕국으로 부르셨으므로,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왕국에 대한 우리의 전적인 충절과 전념을 선언한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분의 명령에 따라, 일을 행하도록,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또한 사람들에게 여호와가 참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리도록 위임받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하나님의 입으로 명명한 이름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름 즉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고 불리워지기를 원하는 바이다.—이사야 43:10-12; 62:2; 계시 12:17.

      62. 결의문의 마지막 항은 어떠한 초대를 제시하였읍니까?

      62 결의문 제 8항이자 마지막 항은 이러하였읍니다.

      우리는 여호와와 그분의 왕국에 전념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에 가담하도록 겸손히 초대하는 바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의로운 표준이 높임을 받기를 기원하며 세상 사람들이 구제를 위한 진리와 희망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지를 알기를 기원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고 거룩한 이름이 입증되고 높여지기를 기원한다.

      63. (ㄱ) 그 새로운 명칭에 대한 결의문은 누구 전부에 의하여 채택되었읍니까? (ㄴ) 그 후로 그 결의문은 어떻게 선포되었으며 그리하여 온 세계에 통고되었읍니까?

      63 이 결의문은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채택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에 전세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의 회중들이 채택하였읍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진적으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받아들였읍니다. 그 명칭에 관한 이 결의문은 또한 “왕국, 세상의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대회에서 발표된 소책자에 게재되었읍니다. 그 제목은 또한 협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가 열두시 정오부터 보이는 대회 청중과, 광범위한 방송망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청취자에게 행한 공개 강연의 제목이기도 하였읍니다. 그 후로 이 소책자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직자들의 손에 개인적으로 직접 전하여졌으며 그 후에 탁월한 정치인들과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읍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에게 더 널리 배부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들 의화되고 영으로 출생한 숭배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만을 인정할 것이라는 사실이 온 세계에 통고되었읍니다.—미가 4:5.

      64. 그들은 왜 자기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라고 인정하고 있읍니까?

      6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오시기 전에도 살아계시고 유일하신 참 하나님의 증인들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자기들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임을 인정하고 있읍니다.—이사야 43:10-12; 44:8; 히브리 11:1에서 12:1. 또한 「파수대」(영문) 1931년 9월 15일호 278, 279면 참조.

  • 오늘날의 종들과 회계함
    하나님의 천년 왕국은 다가왔다
    • 제13장

      오늘날의 종들과 회계함

      1, 2. (ㄱ)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게 되어 그리스도의 “종들”의 남은 자들에게 무엇이 부가되었으며, 누가 그것의 근원이었읍니까? (ㄴ) 이 즐거움은 “달란트”의 비유 가운데서 어떻게 지적되어 있읍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 중 아직 지상에 있는 남은 자들은 1931년 이후로 하나님의 이름을 지니게 되어, 새로운 즐거움이 그들에게 부가되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주 곧 소유자가 즐거움을 얻은 근원인 동일한 근원 즉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었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달란트”의 비유의 성취로 자기의 종들과 회계할 때에 이러한 자기의 즐거움을 지적하였읍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20-23에서 이 점에 유의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2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니라].”

      3, 4. (ㄱ) 세명의 “종들”은 개인들을 상징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상징합니까? (ㄴ) “종들”로 상징된 것과 회계하는 것은 비유의 성취에 있어서 ‘파로우시아’의 합당한 의미를 어떻게 입증합니까?

      3 이와 같이 종들과 회계하는 것은 확실히 시간과 주의를 요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비유의 마지막 특징의 성취로 천적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 기간을 상징할 것입니다. (마태 24:3) 비유에 나오는 세명의 종들이 반열들을 대표하였고 이들 반열들이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한 개인을 다루는 것보다 한 반열 혹은 집단을 다루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주의가 필요합니다. 한 반열 혹은 집단의 경우에는 소속된 각 성원들이 다루어져야 합니다. 로마서 14:9, 10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4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5. (ㄱ)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때에 누구를 대신하여 심판하십니까? (ㄴ)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전에 죽은 “종들”로 상징된 반열에 속한 사람들은 그들의 상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5 “달란트”의 비유의 성취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여 심판하십니다. “달란트”를 맡은 “종들” 모두가 현 이십세기에 이 지상에 육체로 살아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계시를 받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열두 사도의 시대에 제 1세기의 그 사람들은 오래 전에 사망하여 죽음 가운데 잠자고 있었으며, 그들의 천적 주이며 주인이신 분의 ‘파로우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분의 임재시에 그들은 의로운 심판관이신 그분으로부터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당하기 직전에 그의 선교인 동료 ‘디모데’에게 이렇게 편지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 후 4:7, 8) 참으로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날” 즉 주의 ‘파로우시아’의 날을 기대하였으며, 그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어 불멸의 천적 생명의 상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그분의 ‘파로우시아’ 이전에 죽는 모든 사람은 기다려야 하였읍니다.

      6. 죽음 가운데 잠자는 “종들”은 언제 부활되며, 이들은 부활에 있어서 누구보다 앞섭니까?

      6 죽음 가운데 잠자고 있던 충실한 “종들” 모두는 그분이 영으로 보이지 않게 임재하여 계시는 동안 심판이 시작되는 때에 깨어났으며 영계에 있는 천적 생명을 얻었읍니다. 그리하여 살아있는 “종들”이 상을 받는 일은 잠자는 충실한 “종들”이 상을 받는 때보다 앞서지 않았읍니다. 이것은 우리의 상상이 아닙니다. 왜냐 하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이렇게 편지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죽음 가운데]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죽음 가운데]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 전 4:14-17.

      7. 잠자는 사람들이 얻는 부활은 어떠한 종류의 부활입니까?

      7 이것은 주의 ‘파로우시아’중에, 심판이 시작될 때에 잠자는 충실한 “종들”이 보이지 않게 부활되어 영으로 누릴 천적 생명을 얻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일은 아직 지상에 생존한 “종들”에게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읍니다. 보이지 않게 임재하신 주 예수의 “종들”이 아닌 세상 사람들에게 그 일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8, 9. (ㄱ) “종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는 것이 육체가 대기권으로 올리우는 것을 의미하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증거는 무엇을 알려 줍니까? (ㄴ) 고린도 전서 15:50-54에 지적되어 있듯이, 무엇이 이 문제와 관련되어 있읍니까?

      8 부활된 “종들”이 ‘공중에서 주’를 만나는 일은 또한 지상에 있는 아무의 육안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지상에 있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시대의 징후에 의하지 않고는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죽음 가운데 잠자던 그 “종들”은 모두 동시에 함께 부활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였읍니다. 그러나, 심판할 혹은 회계할 때가 시작되기까지 생존한 지상의 그 “종들”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보이는 육체를 가지고 지구상의 대기권으로 올리워 공중에서 보이는 주를 영접하지 않았읍니다. 현대 역사는 그러한 식의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지 않습니다. 생존한 이 “종들”의 집단의 성원들은 지금까지 50여년이 경과한 기간 중에 수시로 죽었지만 성서의 약속에 의하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의 영으로 누릴 생명으로 즉시 부활되었읍니다. 주의 ‘파로우시아’는 이미 시작하였으므로, 그들은 그분의 도착을 기다리며 죽음 가운데 잠 잘 필요가 없었읍니다. ‘바울’의 말은 그들에게 적용되었읍니다.

      9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죽음 가운데]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린도 전 15:50-54; 이사야 25:8.

      10. 계시록 14:13에 지적된 그 “종들”은 어떤 면으로 “복이 있”읍니까?

      10 주의 ‘파로우시아’ 혹은 임재까지 그리고 그 임재 중에 지상에 생존한, 그리고 주 안에서 그 때 이후로 충실을 지킨 기름부음받은 그 종들에게 계시록 14:13의 이러한 약속이 적용됩니다.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그들은 그들의 육체가 사망할 때에 그들이 즉각적으로 썩어짐에서 썩지 아니함으로, 멸성에서 불멸성으로, 인간에서 영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죽음 가운데 잠자지 않고 그들의 지적 노동을 그치고 그들의 주의 공동 후사로 주와 함께 천적 사업을 곧장 시작하기 때문에 “복이 있”읍니다.

      11. 전술한 내용의 예로 든 이 ‘알. 제이. 마아틴’은 누구였읍니까?

      11 예로써, ‘로버트 제이. 마아틴’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그는 1918년 7월 5일부터 1919년 3월 25일까지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 있는 연방 교도소에 부당하게 투옥되어 약 아홉달 동안 고통을 받은, 협회 회장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를 포함한 여덟명의 성별된 그리스도인 중 한 사람이었읍니다. 이 “종”이 1919년 3월 26일 수요일에 보석으로 ‘뉴우요오크’ 시 ‘브루클린’에서 석방되었을 때 그는 그의 천적 주로부터 받은 “달란트”에 관한 한 사실상 전혀 가진 것이 없었읍니다. 주의 “종들”에게 박해를 불러온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이제 4개월 이상이 경과하였으며, ‘알. 제이. 마아틴’은 사실상 새로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그는 아직도 주 예수와 충실히 연합하여 있었으며, 그는 그의 천적 주를 위하여 ‘장사를 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산출하는 데 생산적이 될 밭을 확장하기 위하여 기쁘게 “달란트”를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그의 천적 주를 위하여 ‘장사를 하’였읍니다. 그는 석방된 이듬해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를 위하여 ‘브루클린’에 새로 설립된 인쇄 공장의 감독이 되었읍니다. 1926년 11월 1일에 그는 이 협회의 한 이사가 되었으며, 그는 지상 생애의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읍니다.

      12. ‘마아틴’은 언제 사망하였으며, 「파수대」지는 그에 관하여 어떻게 논평하였읍니까?

      12 그러므로 ‘알. 제이. 마아틴’은 여러 해가 지나도록 제자를 삼는 밭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달란트”를 늘리는 사업을 충실히 수행하였읍니다. 그는 1932년 9월 23일에 54세로 사망하였읍니다. (1878년 3월 30일 출생) “주 안에서”의 그의 사망은 「파수대와 그리스도의 임재의 전령」(영문) 1932년 10월 1일호 304면에 발표되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이러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조직의 병사 ‘로버트 제이. 마아틴’이 그의 지상의 장막을 거두고 평화롭게 떠난 것은 1932년 9월 23일 오전 영시를 조금 넘은 때였다. 이 선하고 충실한 증인은 지상에서 그의 행로를 마쳤다. 그가 즉시 왕국에 들어가 지금 여호와의 수도 조직에 있는 주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 ‘마아틴’ 형제의 충실한 벗들의 희망은 그들도 영광과 아름다움을 지닌 주를 보고 그 후로 여호와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위한 ‘마아틴’ 형제의 전심은 남은 자들이 끝까지 계속 싸우도록 격려하여 준다. ···

      13. ‘마아틴’의 동료 수감자인 ‘러더포오드’는 언제 사망하였으며, 그의 사망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이루었읍니까?

      13 그의 동료 수감자인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는 1942년 1월 8일 목요일에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72세에 지상에서의 생애를 마쳤읍니다. “충실한 증인”이라는 표제하에, 그의 사망은 「파수대, 여호와의 천국 선포」(영문) 1942년 2월 1일호 45면에 발표되었읍니다. 그 때 이후의 삼십여년의 역사는 그의 사망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의 현대 활동에서 한 시대의 끝을 이루었음을 증명해 줍니다.

      14. (ㄱ) 그리스도의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한 데 대하여 그들이 받은 상에 있어서 그 두 “종들”에 관하여 무엇을 믿을 수 있는 성경적 이유가 있읍니까? (ㄴ) 아직 지상에 살아 있는 “종들”은 어떠한 즐거움을 얻었으며, 통치권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합니까?

      14 이상에 언급한 두 사람과 같은 그리스도인 “종들”의 생애는 확실히 그들이 자기들에게 위탁된 주의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였으며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더 많은 제자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활동의 지적 밭을 증가시켰음을 나타내 줍니다.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날 때에 주로부터 이러한 칭찬의 말을 들었다고 믿을 만한 성경적 이유가 있읍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마태 25:21, 23) 그러나 이제 여러 해 후인 지금도 그들의 천적 주인의 “달란트”를 늘리고자 사랑으로 노력하는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 “종들” 중 소수의 남은 자가 아직 지상에 있읍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그들의 지적 생애를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천적 심판대 앞에 나타나 행복하게도 같은 칭찬의 말을 들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지상에서, 그들의 천적 소유자의 “달란트”를 늘리고 있는 그 정도로도 그들은 이미 그들의 주인의 즐거움의 상당한 분량을 얻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통치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늘에서 그의 천년 통치에 참여할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

      15, 16. (ㄱ) 한 ‘달란트’를 가진 종은 어떻게 자기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였으며,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ㄴ) 그는 단지 그가 받은 것만을 반환하면서 어떠한 변명을 하였읍니까?

      15 우리는 이제 예수의 비유 가운데서 한 ‘달란트’만을 받은 종에게 발생하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 종에 관한 기록은 이러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라].” (마태 25:15, 18)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처럼 노력하지 않고 ‘장사 할’ 용기를 나타내지 않은 이 세째 종은 자기 주인의 은 ‘달란트’를 늘릴 것을 기대할 수 없었읍니다. 그는 그 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그것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적절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의 재능을 나타내지 않았읍니다. 그는 자기 주인이 올 때에 그리고 그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중 회계할 때에 제시할 늘린 실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전혀 늘리지 않았다고 주인에게 말할 때에 어떠한 변명을 할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비유 가운데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16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태 25:24, 25.

      17. (ㄱ) 이 종은 주인이 자기가 묘사한 농사짓는 지주와 같다는 것을 좋아하였읍니까? (ㄴ) 그 종은 자기가 늘리지 않은 것에 대하여 왜 주인이 불평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였읍니까?

      17 이 종은 자기가 늘릴 것이 기대되었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은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함’으로써 모험을 무릅쓸 용기가 부족하였읍니다. 그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할만큼 모험을 무릅쓰고 주인의 “재산”을 늘리려고 노력할 만큼 주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는 그의 주인을 농사짓는 지주, 즉 자기의 토지에서 농작물을 거둘 뿐 아니라 자기가 소유하지 않고 갈지 않은 토지에서 산물을 수확하고 자기가 까부르지 않은 곡식을 모으는 지주에 비하였읍니다. 종은 자기 주인이 그러한 식으로 늘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적어도 그는 그러한 식으로 주인이 늘리는 것에 대하여 비난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공언하는 믿음 및 태도와 일치하게 그는 주인이 그에게 맡긴 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반환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으로는, 그의 주인이 아무 손해도 보지 않았으므로 불평할 이유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읍니다. 주인은 자신의 것을 다시 받은 것입니다. 종은 그 돈을 유통시켜 이자를 남기는 방법으로 그 돈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았읍니다.

      18. 주인은 어떠한 논리에 따라 종에게 대답하였으며, 따라서 그는 왜 그 종을 그러한 식으로 불렀읍니까?

      18 종의 주인은 자기의 논법에 따라 종에게 대답하였읍니다.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니라].”—마태 25:26, 27.

      19. 그 종은 왜 “악”하다고 불리우기에 합당하였으며, 그는 어떻게 주인의 요구에 응하기 위하여 “안일한 길”을 취할 수도 있었읍니까?

      19 이 무익한 종은, 계획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주인에 대하여 증가를 보이지 않은 점에서 “악”하였읍니다. 그는 주인의 재산을 늘리는 데 관심이 없었읍니다. 그의 주인이 늘릴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모른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그는 그것을 알았으며, 안일한 길을 취하고 그 은 ‘달란트’를 은행가에게 예치할 수도 있었읍니다. 그러면 은행가는 그 돈을 투자하여 이익을 남기고 예치된 돈에 대한 이자를 지불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종의 주인은 돌아와서 은 ‘달란트’만이 아니라 은행가에게 예치하여 지불받은 이자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을 본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과 협조하지도 않았읍니다. 그 종은 자기에게 맡겨진 원래의 은 ‘달란트’를 반환하였지만 사실 그는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것입니다. 그는 일부러 주인에게 그러한 손해를 끼쳤기 때문에 “악”하였읍니다.

      20. 어떠한 면에서 이 종은 ‘게을렀’으며, 이 때문에 그에게 어떠한 결과가 왔읍니까?

      20 그 무익한 종은 또한 ‘게을렀’읍니다. 그는 나태하여, 동료 종들이 행한 바와 같이, 기민하게 ‘장사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일을 하여 이익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주인은 그에게 적어도 한 ‘달란트’를 맡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한 ‘달란트’를 받았으므로 세 명의 종 가운데 가장 책임이 적었지만, 이 가장 적은 금액은 그의 “재능”에 벅찬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능력을 이익을 남기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고 땅을 파서 주인의 ‘달란트’를 감추고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읍니다. 그는 너무나 게을러서 그의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주인이 없는 오랜 기간 고귀한 ‘달란트’를 가지고 일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그 종에게는 기회가 많았읍니다. 그가 늘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비참한 결과가 왔읍니다.

      21. 비유의 성취의 현대 절정에서 그 종의 대용물은 무엇입니까?

      21 이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는 그 비유의 성취가 절정에 이르는 우리 시대에 현대적인 대용물이 있읍니다. 두 동료 종의 경우에서와 같이 비생산적인 종도 하늘의 주인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섬기는 혹은 그분의 봉사의 임무를 맡은 그리스도인 종들의 반열 혹은 집단을 대표합니다. 이 무익한 반열은 종전 후 첫해인 기원 1919년에 회계하는 일이 시작된 후에 나타났읍니다.

      22. 그 외에 누가 천적 주인을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러나 그들은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어떻게 그의 “재산”을 무시하였읍니까?

      22 물론,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교파의 사람들은 자기들이 천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고 주장하였읍니다. 그러면 그들은 1918년 11월 11일에 제 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에 그들 앞에 크게 열려진 밭을 갈아서 지금 ‘파로우시아’중에 계신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제자들을 산출하였읍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정치인들과 군국주의자들과 함께 타협의 길을 택하였읍니다. 그들은 군왕으로서의 통치가 끝없이 증대할 왕의 왕국 “재산”을 무시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관심과 주의를 제창된 국제 연맹에 돌렸읍니다. 미국 그리스도교회 연방 협의회는 이 연맹을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왕국의 정치적 표현”이라고 불렀읍니다. (이사야 9:6, 7) 그들은 세계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인간이 만든 그 국제적 기구의 지지자들과 숭배자들을 증가시키고자 노력하였읍니다. 현재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종파와 교파는 그 연맹의 후신인 국제 연합을 옹호하고 있읍니다.

      23. 그들이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유익을 위하여 세상의 밭을 갈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결과가 왔읍니까?

      23 돌아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검사가 진행되는 오늘날 회계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교국의 자칭 “종들”은 그리스도께 그의 재산을 늘렸다고 제시할 수가 없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의 유익을 위하여 세상의 밭을 갈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들은 왕국에 등을 돌리고 여호와의 설립된 메시야 왕국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읍니다.

      24. “새로운 명칭”이라는 결의문 제 3항에 설명된 사람들은 어떻게 “게으른 종”의 묘사에 부합됩니까?

      24 그러나, 돌아오신, 통치하는 왕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종들”과 접촉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악하고 게으른 종”의 묘사에 부합되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의 한 반열이 출현하였읍니다. 분명히 이 반열은 1931년 7월 26일 일요일 오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주최하에 ‘오하이오’ 주 ‘컬럼버스’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채택된 “새 명칭”이라는 제목의 결의문 제 3항에 지적되어 있읍니다. 그 항을 인용하면 이러합니다.

      “한편, ‘차알즈 티이. 러셀’이 사망한 직후에 그와 함께 그러한 사업에 가담한 사람들 간에 분열이 일어났다. 그 결과 얼마의 사람들이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에서 탈퇴하고 그 이후 그들은 위에 말한 협회 및 그 사업에 협조하기를 거절하였고 「파수대」 및 상기 법인체의 기타 최근 출판물에서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가 발표하는 진리에 동의하기를 거절하였고, 하나님의 왕국 및 ‘사단’의 조직의 모든 부분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에 관한 현재의 소식을 선포하는 점에서 상기 협회의 사업을 반대하여 왔고 지금 분명히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상기 반대자들은 여러 가지 단체를 조직하여, “성경 연구생”, “연합 성경 연구생”, “‘러셀’이 해설한 진리를 가르치는 ‘러셀’ 신봉자”, “확고한 자들” 등등의 명칭을 택하였고 지금도 그러한 명칭을 지니고 있어 혼란과 오해를 야기시키고 있다. ···”

      25. 따라서, 상술한 사람들은 “새로운 명칭”을 지닌 사람들의 어떠한 경험과 업적에 가담하지 않았읍니까?

      25 사실, 비협조적이고 반대까지 하는 상술한 사람들은 그 “새로운 명칭” 곧 ‘여호와의 증인’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 알려지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새로운 명칭”을 지닌 사람들이 그 때 이후로 당한 무서운 고통에도, 메시야의 수중에 있는 여호와의 설립된 왕국을 땅의 모든 곳에서 선포하는 일에도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은, 현재 210개 나라와 섬 혹은 군도를 포함하고 있고, 160여개 언어로 왕국 소식을 실은 간행물을 발행하는 것을 요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육성하고 산출하기 위한 밭을 확장하는 놀라운 일에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여러 나라에서 심한 박해가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더 많은 제자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밭(즉 인류 세상)을 가는 이 일은 최절정을 향하여 전진하고 있읍니다! 그 일은 현재 ‘펜실베이니아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96개 지부의 감독하에 수행되고 있읍니다.

      26. 기름부음받은 “종들”의 남은 자가 세상의 밭을 갈아 주인의 “달란트”를 사용하는 면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26 그러므로, 메시야 왕의 “소유” 즉 “달란트”를 늘리는 이 일은 지존하신 하나님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승인과 축복을 받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왕의 “달란트”를 사용하고 있는 기름부음받은 “종들”은 그것이 즐거운 책임임을 깨닫고 있으며, 그들은 그들의 천적 주인의 관점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자격을 구비하고자 노력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악하고 게으른 종” 반열에 속한 어떠한 사람이 그들과 연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성경적 자격에 달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생산적인 봉사자가 되도록 돕고자 노력합니다. 사랑에 입각한 그들의 노력을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증거로 지난 1972 봉사년도에 가르침을 받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물침례를 받은 사람이 163,123명이었읍니다. 지난 5년간 즉 1968-1972 봉사년도 중에 온 땅의 여러 나라에서 침례를 받은 사람은 50만이 넘는 680,871명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주의 “소유”를 늘리는 기름부음받은 “종들”의 남은 자는 그분이 지상에 친히 계실 때에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는 부당한 분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사용되지 않은 “한 달란트”를 빼앗음

      27. 주인은 그 무익한 종에 대하여 어떠한 결정을 내렸읍니까?

      27 비유에서, 주인은 주인의 소유를 “변리”와 함께 주인에게 바치지 않은 종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결정합니까? 분개한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인 그 무익한 사람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태 25:28-30.

      28. 유익한 종들에게 부여된 어떠한 보수가 이 종에게는 없었으며, 그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추방된 것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읍니까?

      28 이 종은 그의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초대되지 않습니다. 그는 작은 것에 대하여 충실한 자들에게처럼 많은 것에 대한 통치자로 임명되지 않습니다. 그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리우지 않고 “무익한 종”이라고 불리웁니다. 그는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 그 집에 머물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분명히 돌아오신 주인은 밤에 그의 종들과 회계하였으며 따라서 그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곳, 밖에서 그 종은 그의 주인의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추방된 상태로 인하여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29. 왜 이것은 더욱 어두워지는 세상 상태 하에 있는 현재의 기름부음받은 충실한 “종들”에게 엄숙한 교훈이 됩니까?

      29 이것은 오늘날 기름부음받은 “종들”의 남은 자들에게 엄숙한 교훈이 됩니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그들의 주인의 “재산”을 늘리기 위하여 계속 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들의 주인이 그들에게 맡기신 그 값진 것을 빼앗길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서 그 곳에서 “악하고 게으른 종” 반열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1914년에 이방인의 때가 끝난 이후로 하늘에 계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불켜진 집 밖에 있는 인류 세상은 야간에 처하여 있으며, 심지어 그리스도교국도 그러한 야간의 어두움 속에 싸여 있읍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은 이 세대의 인류에게 갑자기 “큰 환난”이 밀어닥칠 하나님의 예정된 때가 올 때에 더욱 칠흑같을 것입니다. (마태 24:21, 22; 누가 21:34-36) 이 “악하고 게으른 종”은 그 죽음에 이르는 어두움으로 쫓겨나서, 그들이 멸망될 때까지 그곳에서 종교적 위선자들과 함께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30. 어떻게 “게으른 종” 반열은 “한 ‘달란트’”를 빼앗기며, 그것은 누구에게 주어지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0 주인의 ‘파로우시아’가 시작되었고, 그 주인이 죽는 개인들과 혹은 아직 지상에 있는 각 종 반열과 회계하는 오늘날, 한 가지 사실이 이미 뚜렷합니다. 즉 “악하고 게으른 종”은 그들의 “한 ‘달란트’”로 장사를 하고 있지 않으며 주인의 “돈”에 대하여 이자를 가져오지도 않고 있읍니다. 따라서 그는 지금까지 한 반열로 생존하여 있는 이 불충실한 반열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이미 빼앗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더 많은 제자를 육성하고 산출할 구역 면에서 그들에게 어떠한 임명도 허락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더는 그의 종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주인은 그들의 종교적 활동을 인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들이 그의 집의 기쁨을 주는 빛에 가담하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들의 “한 ‘달란트’”는 빼앗기고, 그들에게 할당되었던 제자를 삼을 수 있는 밭은, 제자를 삼는 밭에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왕의 재산을 “열 ‘달란트’”로 늘린 혹은 늘리고 있는 “착하고 충성된 종” 반열에게 주어집니다.—마태 28:19, 20; 시 2:8.

      31. (ㄱ) 그러므로 주인의 어떠한 처리 규칙이 예시되고 있읍니까? (ㄴ) “게으른 종”은 “능력” 이외에, 가외의 어떠한 것을 가지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31 그러므로 오늘날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하나님의 원칙 혹은 처리 규칙이 예시되고 있읍니다. (마태 25:29) 비유 가운데서 “악하고 게으른 종”은 “한 ‘달란트’”를 가졌지만, 그는 이 “한 ‘달란트’”를 소유하게 되었을 때에 분발하고 표명되어야 할 태도를 가지지 않았읍니다. 그 가외의 태도는 주인을 위한 충성스러운 열심, 자기에게 맡겨진 위탁물에 대한 인식, 활용력 혹은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힘을 가진 “한 ‘달란트’”로 늘린 소유를 주인이 가지는 것이 합당하다는 데 대한 믿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회계할 때에, 늘린 소유를 종이 바치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의 변명에 부가하여, 자기가 그 가외의 것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웅변적으로 증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무익한 종”이었기 때문에 “한 ‘달란트’”를 빼앗겼읍니다. 그는 자기에 대한 주인의 신임을 저버렸읍니다. 그는 주인에 대한 봉사에서 해임되었고 그 집에서 단절되었읍니다.

      32. “게으른 종” 반열이 1919년 이래 가지지 않은 가외의 것은 무엇이며, 따라서 그들은 무엇을 빼앗겼읍니까?

      32 동일한 원칙이 현대 “악하고 게으른 종” 반열에게도 적용됩니다. 이 반열의 사람들에게 “한 ‘달란트’”와 상응하는 것이 맡겨졌읍니다. 이것은 그들의 천적 주인으로부터, 특히 종전 후 첫 해인 1919년부터 맡겨졌읍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 “한 ‘달란트’”를 보충할 혹은 적절히 공존할 어떤 것이 있어야 하였읍니다. “한 ‘달란트’”를 소유하게 되어 그들에게 분기되어야 할 그 보충적인 것은 여호와의 메시야 왕국에 대한 열심과 전념, 그들의 천적 주인이 제자를 산출하는 밭에서 얻은 증가를 받기에 합당하다는 믿음, 하나님의 설립된 메시야 왕국을 선포하고 모든 나라 사람들을—지상에 계실 때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적, 사적 봉사를 단지 ‘유대’ 민족에게 제한하였지만—제자로 삼는 일에 가능한 한 많이 참여하고자 하는 용기있고 사랑있는 동기였읍니다. 그들은 주인의 “한 ‘달란트’”를 사용하는 데 가졌어야 할 그것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이 “한 ‘달란트’”를 빼앗겼음을 현대의 제반 사실이 알려 줍니다.

      33. (ㄱ) 그러므로, “착하고 충성된 종” 반열에 속한 사람들은 누가 희생되는 대신 “풍족”을 얻습니까? (ㄴ) 그들은 어떠한 즐거움을 경험하며, 그들은 어떠한 통치권을 기대합니까?

      33 반면에, “착하고 충성된 종” 반열들에게는 그들의 하늘에 계신 주인의 “달란트”를 맡은 자신들을 보충할 것이 분명히 있읍니다. 그 비유의 묘사와 같이, 그들에게는, “악하고 게으른 종” 반열을 희생하여 더 많은 것이 주어지고 있으며 책임감있고 신뢰성있고 유익한 “종들”인 그들에게 기회와 특권이 더해지고 있읍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제자를 삼는 증가된 밭에서 참으로 “풍족”해졌읍니다. 그들이 그들의 주인의 마음을 즐거웁게 함에 따라 그들의 즐거움은 넘치며 그들은 주인이 지금 설립된 왕국에서 느끼는 즐거움을 미리 맛봅니다. 이 즐거움은 그들을 강화하여 그들이 지적 생애 끝까지 그분께 대한 봉사에서 매진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애가 지상에서 끝날 때에 그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되어 주인의 온전한 기쁨에 참여하며 천년 왕국에서 많은 것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될 것을 기대합니다. 그들은 그때에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종들”의 행복을 온전히 알 것입니다.—계시 20:6.

      34. 예수의 비유의 절정을 이루는 이 부분이 성취되어 모두가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4 지금까지 설명한 바와 같이 “달란트”의 비유의 절정을 이루는 부분은 기원 1919년 이래 진전되어 왔읍니다.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의 사람들과 나라들은 이것을 관찰하여 왔읍니다. 특히 “착하고 충성된 종” 반열은 이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 모든 것은 왕 예수 그리스도의 ‘파로우시아’ 즉 보이지 않는 임재가 이방인의 때가 끝난 1914년 이래 진행되어 왔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대한 웅대한 “징조”의 일부입니다. “달란트”의 비유는 그 “징조”에 관하여 그분이 자세히 말씀하신 예언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마태 24:3, 신세.

      35.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계속 더 고려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떠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것입니까?

      35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영으로서의 임재의 “징조”에는 우리가 이미 고려한 “열 처녀”와 “달란트”의 비유 외에도 또 있읍니다. 다른 하나의 비유는 “징조”에 관한 그의 예언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며, 놀라운 시대인 현대에 그것이 성취되고 있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즉 ‘파로우시아’가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경이로운 결과에 이를 것이라는 부가적인 증거입니다. 이제 우리 주의 위대한 예언을 더 고려하여 봅시다.

      [228면 삽화]

      알. 제이. 마아틴

      [229면 삽화]

      제이. 에프. 러더포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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