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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
    깨어라!—1972 | 1월 8일
    •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은 행복하다’

      예수와 그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을 것을 여러 차례 경고하였다.a 그리고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 가운데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마태 5:10, 새번역) 그 연설에 대하여, “해박하고 자극적이고 강력함에 있어서, 시대를 초월하여 가장 위대한 하나의 연설”이라고 논평한 것은 대단히 적절하다.—‘로버트슨’ 저, Word Pictures in the New Testament.

      예수께서 아무 박해나 다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다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만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박해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였다.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같이 그런 지나친 방종에 끼어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겨 여러분을 비난합니다.”—베드로 전 4:4, 새번역.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종들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김으로써 의로운 일을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말은 그들이 마음과 영혼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들은 사람보다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인간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하라고 요구할 때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러한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는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 결과 하나님의 종들은 박해를 받는다. 여하한 형태의 황제 숭배도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그렇게 하기 때문에 온갖 잔인한 박해를 당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경우이다. 그러한 경우가 진정으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경우이다!

      예수의 발자취를 충실하게 따르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정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리스도인 중립을 범하고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도록 하기 위하여, 정당에 가입하고, 우상 숭배 행동에 참여하고 인간과 인간이 만든 제도에 무한한 봉사를 하도록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를 들어 주게 되면, 오로지 여호와께만 속한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되며,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마태 6:24; 26:52; 요한 18:36; 마가 12:17.

      이들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그러한 것을 거절하고 그들의 충성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잔인 무도하게 박해를 당하였다. 근년에 와서 특히 그러하였으며, ‘아프리카’의 몇몇 신생국에서는 지금까지도 그러한 박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한 지방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무의식 상태에 빠질 때까지 구타를 당하고, 고문을 당해 죽기도 하고, 여자들은 연속적으로 강간을 당하기도 하였다. 그런 일을 당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문제에 있어서 타협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러한 모든 것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에게 “피를 멀리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의로운 명령을 따르기 때문에, 어떤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빼았겨 억지로 아이들에게 수혈을 받게 하는 일을 당하였고, 어떤 이들은 수혈에 대한 입장 때문에, 병원 치료를 완전히 거절당하기도 하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피에 대해 성경적 입장을 취한다고 하여 욕을 먹고, 위협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고, 비웃음을 당하였다. 이들이 당한 그러한 모든 학대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당한 것이다.—사도 15:19, 20, 28, 29.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예를 들 수 있으나, 이 정도만으로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충분하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행복한가? 어떤 의미로 그러한가? 한가지 면으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신체적 고통 그 자체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점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왕국 편에 선다는 이유로, 수많은 아내들과 남편들이 배우자들로부터 심한 박해를 견디었으나, 그것을 충실히 인내한 결과 박해하던 배우자가 박해를 중지하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즐거움을 보게 되었다.

      박해를 면하고자 타협한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여러 가지로 후회하게 된다. 그러나 타협하거나 항복하지 않고 기꺼이 박해를 받은 자들은 진정으로 행복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충고를 받은 그대로 양심이 깨끗하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베드로 전 3:16.

      그들은 박해를 충실하게 인내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의 창조물로부터 전적 헌신을 받을 자격이 있는, 정당하고 인자하신 주권자임을 입증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으로 행복하다. 그리고 동시에, 마귀가 모든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이탈시키겠다고 뽐낸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대한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무한히 큰 특권이 있다.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잠언 27:11.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욥기」라는 책을 보면, 마귀가 행하는 모든 것을 견디면서 하나님께 충성을 지킬 만한 사람은 지상에 없을 것이라고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뽐낸 것이 분명하다. ‘욥’은 마귀가 그릇되었고, 거짓말을 하였음을 증명하였다. 그 결과 ‘욥’은 행복하다고 기술되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여호와]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여호와]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야고보 5:11) 마찬가지로 충실히 인내하여 마귀가 거짓말장이임을 증명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행복하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견디는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또한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5:10, 새번역) 기름부음을 받는 예수의 추종자들에게는 이 말이 사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예수께서는 기본적으로 그들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은 그를 위하여 박해를 인내하게 되면, 천적 보상을 받게 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하늘에서] 왕노릇” 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행복할 것이다.—계시 20:6.

      의를 위하여 박해를 충실히 인내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이 하늘 왕국에 참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왕국의 지적 영역을 상속받을 것이다. 천적 통치자들로부터 위임을 받는 것이다.—마태 25:34; 5:5.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두 가지 면으로, 즉 현재 행복을 누리게 되며, 미래에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 불충실하는 것보다 지금 의를 위하여 박해를 인내하는 자들은 참으로 현명하다!

      [각주]

      a 참조. 마태 10:16-23; 24:9-13; 요한 15:18-21; 16:2; 사도 14:22; 디모데 후 3:12; 히브리 10:32-36; 계시 2:10.

  • 그것은 참인가, 아닌가?
    깨어라!—1972 | 1월 8일
    • 그것은 참인가, 아닌가?

      ● 영국 ‘랑카쉬어’에 사는 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였다.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무엇인가 가치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내 아내는 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어느날 이 지방의 ‘가톨릭’ 사제가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나의 아내는 그가 나를 바로 잡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나는 그에게 예수께서 12월 25일에 탄생하시지 않았는데 왜 그날을 ‘크리스마스’로 지키느냐고 물었다. 그는 예수께서 그날 탄생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즉시 인정하였다. 그때 나는 ‘가톨릭’ 요리문답에 ‘우리 구주는 언제 탄생하셨는가?’라는 질문에 ‘우리 구주는 크리스마스날 탄생하셨다’라는 대답이 있고, 각주에는 ‘크리스마스 날은 12월 25일’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참이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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