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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전한 눈”이 필요하다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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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4
파74 5/15 219-220면

“순전한 눈”이 필요하다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것, 우리의 눈이 보는 것은 우리의 행동과 관계가 있다. 좋은 시력은 우리가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에 결함이 있는 시력은 우리가 사물을 잘못 판단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져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눈”을 “등불”이라고 부르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순전하면, 난외주] 온 몸이 밝을 것이[니라.]”—마태 6:22.

문자적인 의미로 “순전한” 눈은 초점을 맞춘 명백한 영상을 정신에 전달하는 눈일 것이다. 명백한 시각을 기초로, 전체 몸에 유익한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만일 눈이 목표를 잃고 주의를 어떤 특정한 물체에 고정시키지 않는다면 혼란되고 희미한 영상이 정신에 전달될 것이다. 이러한 일의 영향은 캄캄한 밤에 걷는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자적으로 참된 것은 영적으로도 참되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순전한” 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이 점을 염두에 두셨다. 그리고 영적 시각은 마음과 정신과 양심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 게 훈련 받았는가의 여부에 달려 있다. 만일 그러한 훈련을 받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어두움”에 있다. 그는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자기의 책임에 대하여 소경이며 따라서 유해한 방법으로 행동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의로운 원칙의 인도를 받지 않을 때 사람은 사물을 불순한 방법으로 혹은 악한 의도를 가지고 보게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는 “악한 눈”, ‘시기하는 눈’, “음심이 가득한 눈”을 언급한다. (신명 15:9; 잠언 28:22, 신세; 베드로 후 2:14) 어떻게 사람의 눈이 “악”할 수 있는가? ‘악한 눈’은 동정심이 없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에 고의적으로 눈을 감는다. 이기심과,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시력을 가린다. 마찬가지로 시기심이 있는 사람들은 ‘시기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된다. 그리고 정욕을 일으키기 위하여 자기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계속 바라보는 기혼 남자는 자신이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진 사람임을 드러낸다.

그릇된 것을 갈망하거나 바라보지 않는 “순전한” 눈을 유지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속에는 죄의 경향이 있으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러한 것을 제어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우리가 나쁜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보기 시작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시편 필자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표현한 이러한 말과 일치할 것이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시 119:37.

“순전한” 눈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또 다른 요인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다. 이러한 관계가 사람의 생활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사람은 여호와 앞에서 승인받는 입장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된다. 그는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빗나가지 않게 된다.

“순전한” 눈을 가진 사람은 소멸할 수 있는 재물을 인생의 주된 목표로 삼지 않고 상실되거나 도난당하거나 파괴될 수 없는 보물을 ‘하늘에 쌓는 것’을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 (마태 6:19-21) 선한 일에 대한 기록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맡기는 재산과 같다. 그 분은 자기의 종들의 충실한 행적을 잊지 않으시고 웅대한 축복으로 상주신다. (히브리 6:10) 이러한 훌륭한 행동에는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도록 돕는 일에 뿐 아니라 가족의 책임을 돌보고, 직장이나 학교 등지에서 본을 보이고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약한 동료 신자를 돕는 일에 깨어 있는 것이 포함된다. (갈라디아 6:10; 에베소 4:25; 디모데 전 5:8; 디도 2:1-10) 그렇다, “순전한”눈을 가진 사람은 덧없는 재산을 신뢰하지 않고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려고 이기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며 참 숭배를 증진시키고 진정으로 궁핍한 사람을 돕는 데 소유물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눈이 참으로 창조주께 고정될 때 그는 ‘살림 걱정’을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예수의 충고의 지혜를 인식한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태 6:25, 26.

이것은 하나님의 종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거나 역경과 원수의 반대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인가? 잠언 24:16은 이렇게 말한다. “대저 의인은 일곱번 넘어[지느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러한 역경에 처하였을 때에 아무런 도움이 없이 버려지거나 완전히 버림을 받을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잠언」은 계속 이렇게 말한다. “[의인은] 다시 일어나[느니라.]” 문제를 극복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따라서 항상 여호와를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굳굳한 확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 (히브리 13:5) 그는 자기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부정직한 수단을 써야겠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다른 헌신한 종들과 같이 용기를 가지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호와]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브리 13:6.

참으로 “순전한”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진정한 보호가 된다. “순전한” 눈은 재산을 획득하고자하는 욕망에서 그리고 생계에 대한 부당한 염려에서 시선을 돌리므로 몸의 기능은 더욱 가치있는 영적 재산을 얻는 데 계속 사용된다. 또한 하나님의 견지에서 모든 사물을 보는 사람은 타락한 육체의 일—‘더러움, 방종, 우상 숭배, 영매술, 적의, 투쟁, 질투, 분노, 다툼, 분열, 분파, 시기, 주정, 방탕함 등’—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 (갈라디아 5:19-21) 그것은 갈라디아서 5:16에서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당신은 “순전한” 눈,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주시하는 눈, 사물을 순결한 방법으로 보는 눈을 유지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당신의 복지와 생명이 그것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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