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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라고 불리우는 선물을 인식함파수대—1972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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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라고 불리우는 선물을 인식함
“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찌어다.”—전도 9:10.
1. 일부 사람들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질문들이 일어납니까?
역사의 흐름 속에 있는 오늘날은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도 더 짧은 동안 일하고 노동의 대가를 더 많이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때에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또한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가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검토하여 보는 것은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에서 큰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기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 종업원들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는, 일이라는 것이 가능하면 피해야 할 저주, 형벌 혹은 악운이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높아가고 있읍니다. 그들은 일이라는 것이 정력을 소모하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도록 사람을 너무 지치게 만든다고 불평합니다. 그들은 ‘삶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것이 일인데 일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주장합니다. ‘허다한 사람들은 사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있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종업원들은 흔히, 보수 뿐만 아니라 노동 시간과 노동 조건을 문제삼는 공업 노동자, 사무원, 사회 사업가들 간에 일어나는 많은 항의와 파업을 지적합니다. 이상적인 생활이란 땀흘려 수고할 필요가 없는 사회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읍니다.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 혹은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읍니다. 당신은 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당신은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단지 필요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마땅합니까?
2. (ㄱ) 일에 대한 성경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ㄴ) 성서에서는 게으른 사람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ㄷ) 왜 우리는 게으른 사람과 가까이 사귀어서는 안됩니까?
2 성경에서는 일을 권합니다. 성경에서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모든 수고[일, 신세] 중에서 낙을 누리”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전도 5:18; 3:13, 22) 성서 어디를 보아도 게으름, 나태, 태만을 생활 방식으로 격려하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성서에서는 사람이 ‘정력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근면이 높이 평가되어 있읍니다. 사람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해야’ 합니다. (누가 13:24, 신세 참조; 전도 9:10; 히브리 6:10, 11) 게으른 사람은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는 충고가 있읍니다. (잠언 6:6) 안일은 어리석은 자와 관련되어 있읍니다. ‘미련한 자를 멸망시키는 것은’ 안일입니다. (잠언 1:32)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것은 이상적인 생활 방식이 아니라 사람을 조만간 가난에 빠지게 합니다. 잠자고 졸고 손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행복이 아니라 파멸로 인도됩니다. (잠언 10:4; 18:9; 24:33, 34) 그러므로 참 종교, 성서의 종교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태만하고 게으른 사람들과 가까이 사귀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나태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본받아 활동적이고 활기에 넘치는 생활을 하도록 불리움을 받았읍니다. 진정한 행복을 초래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인 이 활동적이고 생산력있는 생활입니다.—요한 5:17.
하나님과 그의 아들은 일하시는 분들이다
3. 일하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분의 일은 인간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 옵니까?
3 당신의 주위를 눈여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주위에 일하여 만들어진 작품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비길데 없이 아름답고 보기에 훌륭합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하나님의 능한 일’이라는 표현에 포함됩니다. (시 145:4, 5; 148:3-10) 위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하늘이 있으며,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땅과 땅에 있는 실로 다양한 동물과 물고기와 초목을 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감식력이 예리한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시 19:1-4; 104:24) 우주 전체는 실제로 하나님의 작품들로 살아있읍니다. 그 수효가 하도 엄청나서 그 분을 찬양하는 마음이 용솟음칩니다. 그 아름다움은 외경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그 웅장함과 지혜를 보면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겸손하여집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3, 4; 92:5; 150:2) 이 모든 창조물들을 하나님께서는 보살피고 돌보십니다.
4. 하나님의 첫 창조물은 누구였으며, 그 분이 훌륭한 일군이라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4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으며 충실하고 참됩니다. 그 모두가 지혜로 만들어져 있읍니다. 성서 「잠언」을 보면, 의인화한 지혜가 창조의 일을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곁에 “노련한 일군”으로 있었다고 설명되어 있읍니다. (잠언 8:12, 22-31) 사도 ‘요한’은 영감을 받아 노련한 일군이 “말씀” 즉 하나님의 첫 창조물이신 독생자라고 밝혔읍니다. 그는 나중에 이 땅에 오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읍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1:1-3; 골로새 1:17) 하나님의 이 현명한 아들은 지상에서 자신이 노련한 일군임을 보여 주셨읍니다. 그분만큼 많은 일을 하였거나, 인간 역사에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그의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읍니다. 969세에 죽은 ‘무두셀라’는 기억에 남을 가치가 있는 일을 하나도 남기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그의 긴 생애를 전적으로 낭비하였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께서 지상에서 하신 일에 대한 복음의 기록을 정밀히 조사하고 나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 (요한 21:25) 누구의 생활이 더 행복하였읍니까?—예수의 생활이었읍니까, ‘무두셀라’의 생활이었읍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예수께서는 단지 33년 6개월이라는 짧은 인간 생애를 보내셨읍니다. 그 분은 실로 부지런한 일군이었읍니다!
5. 예수께서는 누구의 일하는 습관을 따르셨읍니까? 증거를 말씀하십시오.
5 안식일에 예수께서 친절을 베푸는 일을 하시는 것을 사람들이 막으려고 하자 그 분은 여호와께서 요일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계속 활동하신다고 말씀하시면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셨읍니다. (요한 5:17) 안식일이라고 하여 선한 일을 해서는 안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태양이 안식일에는 빛을 내지 않습니까? 강물이 가만히 있읍니까? 풀이 자라지 않습니까? 과일이 익지 않으며 새가 지저귀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창조물의 필요를 돌보시는 데 바쁘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 단순히 안식일이라고 하여 사랑을 베푸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었겠읍니까? 예수께서는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그의 하늘의 아버지를 본받으셨읍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그 분은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4:34) 당신은 일하는 습관에 있어서 누구의 본을 따릅니까? 당신은 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인간은 일하도록 만들어졌음
6. 인간이 일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으며, 일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인간은 하나님에 의하여 일하는 자로 만들어졌읍니다. 성서에서도 이 사실을 가르치고 있지만, 인간의 신체 구조, 근육의 짜임새 및 손발의 설계를 볼 때에, 어떠한 형태이든지 일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복지에 절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읍니다. 무릇 성장이란 활동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읍니다. 노력이 없이는 신체적 성장도 지적인 향상도 있을 수 없으며, 노력한다는 것은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을 할 때 비로소 인생은 의미와 목적을 지닙니다. 사람이 달성한 일은 바로 그 사람의 척도입니다. 인간의 정력을 요하는 일, 인간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고 자기를 표현하게 하는 일은 방탕하고 음탕한 생활을 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줍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일하지 않고 돈이나 기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은 생활에서 큰 행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시장기를 느끼게 되어 식사 시간이 더 즐거워집니다. 일을 하면 갈증이 생기어 물을 마십니다. 피곤하여 단잠을 자게 됩니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서에서는 가르칩니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전도 3:13; 2:24) 당신은 당신의 일이 참 하나님으로부터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일로부터 영속적인 행복과 만족을 얻으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7. (ㄱ) 완전한 환경하에서 산다면 인간에게는 일이 없을 것입니까? (ㄴ) 어떠한 사실이 일을 의미깊게 해 줍니까?
7 첫 사람 ‘아담’은 완전한 환경하에 있었지만 그는 그러한 낙원에서도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읍니다. 뒷짐이나 지고 빈들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어서는 안되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에덴’ 동산을 가꾸고 돌보라고 명령하셨읍니다. (창세 2:15) 이것은 일을 요하였읍니다. 그것은 독창력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요하였읍니다. ‘에덴’의 관리인으로서 ‘아담’은 자신이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상상할 수 있었으며 땅에서 창조주의 뜻과 목적을 이룰 수 있었읍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온 땅을 낙원으로 만들고 완전한 인간들로 채우는 것이었읍니다. (창세 1:28) 이것은 결코 사소한 임명이 아니었읍니다. 이 임무를 달성하는 데는 용기와 근면함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러나 ‘아담’의 생활을 의미깊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일이었읍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 때 만족과 기쁨이 있읍니다. 심지어 오늘날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일은 목적과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렇게 되면 일은 쉽사리 재미없게 되고 진력이 나며 지루하게 되고 영속적인 목표 혹은 목적을 잃어버립니다.
8. ‘아담’은 무엇을 추구하였으며, 그 후의 인류는 무엇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8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택하였읍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과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힘썼읍니다. 그러한 행동은 자신과 그의 후손인 인류 전체에게 재난이 되었읍니다. (로마 5:12) ‘아담’의 시대 이후 대다수의 인류는 ‘아담’이 남긴 좋지 않은 본을 따랐읍니다. 그들은 거의 전적으로 이기적인 일을 추구하는 데 몰두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전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있읍니다. (시 10:4; 14:1) 대체로 그들이 하는 일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없으며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는 아무런 건설적인 의미가 없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허무감에 젖으며 그들이 하는 일에 불만을 품습니다. (전도 2:22, 23) 인류가 하나님의 목적 곧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드는 일을 이루려고 기꺼이 노력하여 왔다면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소가 되었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또한, 지구상 도처에서 사람들은 그처럼 많은 눈물, 그 처럼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았을 것이며,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일을 면하였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특별한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음
9, 10. 왜 ‘노아’는 특별한 일을 하라는 임명을 받았으며, 그 일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었읍니까?
9 ‘아담’의 창조로부터 ‘노아’가 600세 될 때까지의 1,656년간 인류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를 추구하였으며, 따라서 그들은 비참한 결과를 당하였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창세 6:11, 12) 이러한 진술은 오늘날 지상 사물의 상태를 상기시켜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에 관하여 예언하시면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읍니다. 그 분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4:37-39) 땅에서의 그러한 위기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 분을 위하여 특별한 일을 하도록 부르십니다. ‘노아’는 그러한 임명을 받은 사람이었읍니다.
10 이 하나님의 사람 ‘노아’는 자신과 가족과 모든 동물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방주를 건축하라는 명령을 받았읍니다. 방주를 짓는 데는 특별한 노력과 결심이 필요하였읍니다. 많은 재목과 건축 자재를 모아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후에 방주에 들어간 많은 동물들을 집합시키는 데도 계획과 질서있는 일이 요구되었읍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재료, 동물의 습관, 식품, 건축술, 목공, 방수(防水)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였읍니다. ‘노아’가 받은 임명에는 또한 의를 전파하고 실천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그리고 이 근면한 일군 ‘노아’가 방주를 건축하기 시작한 것은 500세가 넘었을 때였읍니다.—창세 6:9-22; 7:6; 베드로 후 2:5.
11. ‘노아’가 한 일이 그의 구원을 의미하였으며, 단순히 그의 믿음의 증거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만반의 준비를 한 후에 ‘노아’는 자신을 가장으로 하는 조직된 사회와 함께 기원전 2370년에 방주로 들어 갔읍니다. 그가 방주 안에 있었던 일년 열흘(태음 년) 동안에도 그는 일하였읍니다. 그는 틀림없이 숭배를 위한 토론을 사회하였을 것이며, 감사의 기도를 인도하였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었고, 쓰레기를 치웠으며, 시간을 쟀읍니다. 이것은 의미깊은 일이었읍니다. 그것은 그의 구원을 의미하였읍니다.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야고보 2:24) ‘노아’의 일은 그의 믿음을 증명하였읍니다. 당신의 일은 무엇을 증명합니까? ‘노아’가 남긴 본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이 합당하고 어떠한 일이 부당한지를 결정하실 분이심을 우리에게 확증하여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하고 경고하십니다. (전도 12:13, 14) ‘노아’는 그 당시의 도전을 감당하였읍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당신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읍니까?
하나님과 함께 일한 나라
12. 어떻게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나라가 되었읍니까?
12 한 나라를 형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사람들은 여호와로부터 독특한 일을 임명받았읍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그들이 믿음으로 한 일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끝으로, 기원전 1513년에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는 그의 특유의 목적을 위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조직하셨읍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러한 말씀에 대하여 백성들은 일제히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하고 대답하였읍니다. (출애굽 19:5, 6, 8) 그 율법 언약의 목적은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여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바울’은 말하였읍니다.—갈라디아 3:23-25.
13. (ㄱ) 제사장들의 의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들은 그들이 받은 임명에 있어서 어떻게 뛰어나게 되었읍니까? (ㄴ) 이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어떠한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 줍니까?
13 ‘이스라엘’이라는 독특한 나라 안에서 각 지파는 특별한 일을 할 의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예를 들어, 제사장의 의무는 ‘아론’ 계통의 남자들에게만 제한되어 있었고 ‘레위’ 지파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보조하였읍니다. (민수 3:3, 6-10) 장막을 세우고 뜯고 운반하는 것은 제사장 아닌 ‘레위’인들이 하는 일이었읍니다. 그들의 일은 ‘다윗’ 왕의 지시 하에 치밀하게 조직되었었읍니다. 그는 감독, 사관, 재판관, 문지기 및 재무관을 임명하였읍니다. 후에, ‘솔로몬’의 전을 건축한 후에 허다한 사람들이 제물, 희생, 정화하는 일, 무게다는 일, 측정하는 일, 그리고 여러 가지 경비 임무들과 관련하여 뜰과 식당에서 제사장들을 도왔읍니다. 이러한 일은 대개 힘들고 매력없는 일이었읍니다. 한 때에 제사장들의 총수는 1,760명에 달하였는 데, 모두가 “하나님의 전의 일에 수종들 재능이 있는 자”였읍니다. (역대 상 9:10-13) 이들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제사장들이었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사장들은 날 때부터 자격이 훌륭하였거나 재능이 많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명되는 어떠한 일이든지 숙달하는 데 매우 쉬웠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각자는 그들의 일을 익히는 데 부지런하였고 임명된 의무에 전념하였기 때문에 마침내 여호와의 일에 매우 유능한 사람들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읍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나 싫어하는 일이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줍니다. 전심전력하면 어떠한 일도 사람이 그 일의 품위를 높일 수 없을 만큼 유치하거나 천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그 일에 사람이 생기를 불어 넣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거나 시시하지 않습니다. 전심 전력하기만 하면, 어떠한 일도 사람의 구상력으로 그 일을 활기띠게 할 수 없을 만큼 따분하지 않습니다.
14. 제사장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보았으며, 사도 ‘바울’이 말한 어떠한 태도가 우리의 일에 도움을 줍니까?
14 여호와의 제사장들은 그들이 하는 일에 있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생각하였읍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이 받은 임명을 특권으로 생각하였지, 해야 할 평범한 일로 생각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임명받은 일은 천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사도 ‘바울’이 권한 바와 같은 선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또한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영혼, 신세]을 다하여 주[여호와]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0:31; 골로새 3:23)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들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생각할 때에도 그들은 전심전력하여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동료 일군으로 자신을 다 바쳐 정력적이고 근면하게 일하여야 마침내 성취감과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당신은 일에 대하여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까?
15. ‘히브리’인들은 일을 어떻게 보았으며, 근면과 능숙함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15 제사장들과 같은 고대 ‘히브리’인들은 일의 중요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일을 가장 고귀하게 생각하였고, 신성한 의무,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로 생각하였읍니다. ‘탈무드’에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었읍니다. “아들에게 기술을 가르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도적으로 키우는 것과 같다.” “노동은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를 향상시켜 주고 부양하여 주기 때문이다.” 성서에서는 근면과 일의 능숙함을 이러한 말로 예찬합니다. “네가 자기 사업[일]에 근실한[능숙한, 신세]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언 22:29) 근면은 부와 비슷한 말이었읍니다. (잠언 10:4; 12:27)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도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데살로니가 후 3:10.
16. ‘히브리’ 여인들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였으며, 잠언에서는 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6 ‘히브리’ 여자들도 근면을 높이 평가하였읍니다. 손을 움직여 기꺼이 일하는 여자는 “현숙한 여인”으로 칭송을 받았읍니다. “그는 ··· 손으로 일하[느니라].”—잠언 31:10, 13, 31.
17. 왜 ‘유대’인 포로들은 가치가 있었읍니까?
17 노동을 그렇게 높이 평가하였으므로 ‘히브리’인 나라가 번영한 이유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을 정복한 나라들이 ‘히브리’인 포로들을 가치있게 여긴 이유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두로’ 왕 같이 ‘느부갓네살’도 틀림없이 그가 포로로 잡아온 수천명의 ‘유대’인 가운데서 각 분야의 기술자들 즉 연마공, 금속 세공인, 목수, 석수, 조선 기사, 모직물과 ‘린네르’ 방직공, 제화공, 재단사, 도장공을 발견하였을 것입니다.—역대 하 2:13, 14.
일과 휴식의 가치
18, 19. 우리는 휴식에 대하여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밤의 목적을 왜 곡해해서는 안됩니까?
18 인생에는 아름다운 율동이 있읍니다. 일할 때가 있고 휴식할 때가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안식일 율법에는 사람의 노동 시간의 7분의 1은 휴식 시간이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읍니다. 그 목적은 신체에 휴식을 주고 정신을 향상시켜 사람을 강화하고 원기를 돋구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안식일에 사람은 휴식하고 숭배하게 되어 있었읍니다. 신체에는 휴식이 필요하였고 정신과 마음은 숭배로부터, 하나님의 생각을 섭취함으로써 힘을 얻었읍니다. (마태 4:4) 인간은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숭배하여야 하므로 그러한 숭배가 등한히 여겨져서는 안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이치적입니다. 일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자신의 노력을 평가하여 보고 그러한 평가로부터 삶의 보람과 성취감을 얻기 위하여 조용히 회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대낮에 몽상을 하며 멍하니 시간을 보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날이 저문 후에 어느 때에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밤 시간은 그렇게 하는 데 이상적입니다.
19 밤의 목적을 남용하거나 곡해하여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밤에 ‘로큰롤’ 음악을 듣고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데 시간을 바치기 때문에 낮의 일하는 시간보다 더욱 지치고 기진맥진하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밤을 마련하신 이유는 신체와 정신을 진정으로 회복시키는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였읍니다. 순수한 일과 같이 순수한 휴식은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20. 사람들은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왜 자문해 보아야 하며, 절망할 이유가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사람이 매일 하는 일만큼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여 주는 것은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활동하도록 손과 근육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각자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실 것입니다. (계시 20:12)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자문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무엇을 하였는가?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증명하여 줄 어떠한 일을 하였는가? 혹은 지적할 수 있는가? 당신이 땅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에 이렇다 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하였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너무 늦지 않았으니 기뻐하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치있는 일을 하여 영원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이 아직도 있읍니다. 이 위험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일을 가지고 계시며 그 일에 당신도 참여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될 수 있읍니다. 그 일에 대하여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그 일에 참여하여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다음 기사에서 논하겠읍니다.
[516면 삽화]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가 건축한 방주 안에 들어간 후에 동물들을 돌보았고, 다른 일을 하였다. 당신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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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상을 위하여 열심히 일함파수대—1972 |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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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상을 위하여 열심히 일함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 전 15:58.
1, 2. (ㄱ) 젊은이들은 흔히 어떠한 질문을 제기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일부 사람들은 그들의 지난 생활에 대하여 무엇을 인정합니까? (ㄷ) 시편 필자와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에 대하여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오늘 당신에게 삶의 완전한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면 당신은 그 기회를 받아들이겠읍니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현재 하고 있는 일과 영위하고 있는 삶에 만족하겠읍니까? 젊은 사람들은 흔히 어른들에게 ‘만일 당신이 다시 한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당신은 지금 하는 일을 또 하겠는가? 아들 딸들에게 당신이 하고 있는 같은 일을 하게 하겠는가?’ 하고 질문합니다. 이처럼 예리한 질문을 던져 청소년들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이 보람 있으며 그들이 따를 가치있는 행로인지를 판단하려 합니다.
2 그러나 지나간 생활이 아무리 보람없는 생활이었다 할지라도 소수만이 자신의 삶을 무가치한 일에 낭비하였다는 것을 시인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으로서 재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앤드루 카네기’가 있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자인하였읍니다. “내가 젊음과 건강을 다시 얻을 수만 있다면 내 재산을 전부 바치겠다. 살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다시 한 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기꺼이 팔겠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영원한 생명은 재산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젊음과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읍니다. 인류 가운데서 재산이 만병 통치나 되는 양 재산을 모으는 데 급급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들의 인생은 참으로 일장 춘몽이기 때문입니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 39:6) 인생의 가장 큰 관심사 혹은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바로 이 문제를 예리하게 파 헤치면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상가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자극적인 질문으로 대답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읍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태 16:26)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하면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고 영속적으로 필요한 것은 명예나 부, 쾌락이나 재산이 아니라 생명 자체입니다. 바로 영원한 생명의 상을 위하여 현재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일해야 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하고 있읍니까?
3, 4. (ㄱ) 수천명의 사람들은 오늘날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목표로 삼고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며, 상은 무엇입니까?
3 실제로 오늘날 세계 각처에서 수십 만명의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예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새로운 생활의 길을 받아들임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상을 위하여 현재 열심히 일하고 있읍니다. (베드로 전 2:21) 단지 지난 삼년 동안 즉 1969년, 1970년, 그리고 1971년에 총 434,906명은 207개 나라에서 그들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읍니다. 즉 그들은 영원한 생명의 상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변화하였읍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생명을 바쳤고 그 헌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물에서 침례를 받았읍니다. 그들은 물질을 추구하던 일을 중지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호소를 마음에 간직하였읍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라].” (요한 6:27) 물론 그들은 생활 필수품을 그들 스스로 마련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더는 그들의 주된 목표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뢰할 때 그분께서 그들에게 생활 필수품을 마련하여 주실 것임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첫째로 구하며 하나님의 약속대로 필요한 이 모든 것들을 받고 있읍니다.—마태 6:25-33.
4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는 이 생활은 믿음을 요합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며 근면과 기술을 요합니다. 자기 희생과 자기의 것을 기꺼이 나누려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모든 나라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이 일은 인내를 요합니다. 그러나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시편 필자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하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시 40:8)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던 사람들에게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13:17) 그리스도인이 되는 힘든 일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은 궁극적인 빛나는 상 즉 영원한 생명을 받을 대열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마태 16:24, 25.
열심히 일하는 여호와의 조직으로 들어오는 것을 환영함
5. 1971년에 열린 ‘뉴욕’ 대회에서 침례식 연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로 지망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말로 인사하였으며, 그들이 어떠한 회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그는 환영하였읍니까?
5 그리스도인 일군들에게 1971년에 큰 관심을 모은 즐거운 행사는 그 훌륭했던 일련의 “하나님의 이름” 지역 대회였읍니다. 그 대회는 전세계적으로 열렸읍니다. 이러한 대회에서 가장 감동적인 광경 중의 하나는 수백명, 아니 수천명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결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힘든 일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공개적으로 증거하는 광경이었읍니다. 이 일련의 대회 중의 하나였던 ‘뉴욕’ 대회에서 침례식 연사는 이러한 말로 침례 지망자들에게 인사하였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늘 아침에 이 자리에 오신 것을 보게 되어 우리는 참으로 감개무량하고 행복합니다! 지난 여러 달 동안 여러분은 성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여 오셨읍니다. 여러분은 성서가 인간 피조물을 위한 하나님의 지침서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읍니다. 여러분은 성서의 기본적 가르침을 배우셨읍니다. 여러분은 지존하신 하나님의 종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되었읍니다. 여러분은 성서를 연구한 결과 선한 열매를 맺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 연구는 여러분의 마음에 강력한 욕망, 하나님의 지성있는 모든 피조물이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여러분의 생명을 하나님께 바쳐 영원히 그 분의 자진적인 종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열매로 맺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참으로 여러분에 대하여 기뻐하며 여러분이 행복하고 열심히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인 그의 증인들의 회중으로 들어오는 것을 충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6, 7. (ㄱ) 침례받은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을 변화시켰으며, 그들은 어떠한 종류의 일에 참여하고 있읍니까? (ㄴ) 이들 새로운 일군들이 바쁜 조직에 들어 왔다는 것을 어떠한 사실이 증명합니까?
6 이어서 연사는 매우 분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에 그들의 주의를 이끌었읍니다. 연사는 이렇게 말을 이었읍니다. “과거에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인생은 목표가 없으며 마침내 큰 사고인 사망으로 종결되는 연속적인 우발 사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였을지 모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또한 ··· 인생이 불공평과 욕구 불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 온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달라졌읍니다. 여러분은 삶의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여러분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온 땅에서 위대한 일이 행하여지도록 하시며, 더우기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들과 함께 생명을 주는 사업, 생활을 변화시키는 사업에 참여하여 일할 기회를 열어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 이것은 나태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말로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7 예를 들면 1971년에 여호와의 증인의 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데 291,952,375시간을 사용하였읍니다. 그들은 133,785,116건의 재방문을 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들은 사람들의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관심가진 사람들과 가정 성서 연구를 마련하여 평균 1,257,904건의 연구를 사회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제자가 되었고 모두들 예수께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주신 다음과 같은 사명에 순종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 침례를 주[십시오].”—마태 28:19, 20, 신세.
8. 왜 하나님의 백성들은 열심히 일합니까?
8 왜 하나님의 헌신한 백성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합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헌신은 진지합니다. 그들이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첫째로 두기로 결정하였을 때 그들은 진정으로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제시하는 값진 상 곧 영원한 생명의 상을 염두에 간직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얼마나 강력한 자극제가 됩니까!
9.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여호와의 증인의 대열에 가담해야 합니까?
9 생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의 대열에 들어오고자 원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은 더욱 그러합니다. 왜냐 하면 감사하게도 우리는 일군이 가장 많이 필요한 때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마태 9:36-38) 우리는 지금 모아들이는 또 다른 거대한 사업의 끝 부분에 살고 있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사업에 참여하고자 원해야 하며 그들의 충실한 노동의 웅대한 상 곧 영원한 생명을 거두고자 원해야 합니다.
10. 왜 긴급한 태도를 배양해야 하며, 앞에 놓인 일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0 당신이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면 당신을 하나님께 대한 충성스러운 봉사의 행로로부터 이탈시키려고 위협할지도 모르는 위험 즉 방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읍니다. 당신은 현재와 “큰 환난” 사이에, “큰 환난”에서 악한 사물의 제도가 종결되기 전에 행하여져야 하고 빨리 행하여져야 하는 사업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하며 그 올바른 견해를 유지해야 합니다. (마태 24:21)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 올바른 견해를 유지할 수 있으며 세상 사람들 혹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의 게으르거나 냉담한 태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읍니까?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데 대하여 항상 올바른 견해를 가지라
11. (ㄱ) 그리스도인 일군들은 누구의 승인을 얻고자 해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일에 대한 어떠한 태도가 참 그리스도인의 표입니까? (ㄷ) ‘바울’은 어떠한 충고를 하였읍니까?
11 참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종들이며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바쳤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들 혹은 그들의 사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 무슨 문제가 됩니까? 그들이 열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승인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요한 1서 5:3) 왕국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는 사업에 대한 시들한 태도는 하나님의 진정하고 헌신한 종의 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대한 증거 조직의 힘든 일에 참여하는 열심과 열렬함이야 말로 참 그리스도인의 표입니다. (계시 3:16; 누가 13:24) 우리는 더욱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원해야 하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 우리가 택한 천직에서 계속 진보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 1:24) 그 지칠줄 모르고 일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올바른 충고를 하였읍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라].” (골로새 3:23, 24) 요점을 놓치지 마십시오! 상 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 분의 봉사의 표준에 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습니까?
12.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떠한 일을 하도록 자극할 것입니까?
12 그리스도인은 가능한 한 적게 일하고 대가를 많이 받으려는 세상 사람들을 본 받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훨씬 높은 수준에 놓고 훨씬 더 안정된 기초 위에 놓아 계속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빌립보 3:16) 그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4)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과 같이 그는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일을 하는 데 계속 힘쓸 것입니다.—요한 8:29; 사도 20:31.
13. 왜 그리스도인의 모아들이는 사업은 특히 현재 긴급합니까?
13 또한 하나님의 모아들이는 사업이 긴급히 완성될 필요가 있읍니다. 왜냐 하면 현 악한 사물의 제도와 아직도 그것에 부속된 모든 것이 조금 있으면 종말을 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 하나님과 평화하고 그의 편에 굳게 서서 이 낡은 제도와 이 제도의 신인 ‘사단’ 마귀를 반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기회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즉 구원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읍니까? 그것은 외면할 수 없는 진정한 도전입니다.—에베소 5:15-17.
소극적이고 좌절케하는 세력을 경계하라
14. 그리스도인 일군은 어떠한 일을 기대할 수 있으며, 갈라디아 6장에는 어떠한 방비적인 충고가 있읍니까?
14 하나님의 사업과 그의 일군들은 ‘사단’과 그의 조직의 분노와 증오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며 그 결과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갖은 노력으로 압력을 가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성실을 꺾고자 할 것임을 당연히 기대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사단’이 심지어 믿지 않는 배우자나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당신을 방해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더라도 하나님께 대한 당신의 헌신한 관계에서 이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회중 내에 있는 동료 일군들이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필요한 때에 위로와 도움을 주지 못할지라도 그것이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주신 영예롭고 의미깊은 일을 중지할 건전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전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에 의뢰하고 그의 약속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십시오. 영을 위하여 심는 사람들은, 그들이 지쳐서 주저앉지 않는 한 영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 입니다.—갈라디아 6:8-10.
15. 의심이 생길 때 우리는 누구의 대답을 구해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의 본을 받을 수 있읍니까?
15 ‘이것은 모두 소용이 없는 일이 아닌가? 나는 과연 뜻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압력과 비평과 조롱을 받아 가면서까지도 나는 이 모든 일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의심스러운 생각으로 마귀가 사람의 정신을 교란시킨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단지 여호와께서만이 올바른 대답, 믿을 수 있는 대답을 알려 주실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그의 종들에게 이 제자를 삼는 사업을 하라고 사명을 주신 분은 그 분이기 때문입니다. 의문이 일어날 때에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의 대답입니다. 즉시 그 분에게 가서 대답을 구하십시오. (잠언 3:5, 6; 마태 7:7) 예언자 ‘욥’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그의 믿음의 격렬한 시련을 당하면서도 입술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을 중지하지 않았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그를 축복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유익을 얻으십시오. 제자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라].”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야고보 5:11; 1:12.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지낸 과거를 변상함
16. (ㄱ) 어떠한 회상이 유익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사도 ‘베드로’의 어떠한 말을 우리는 마음에 간직할 수 있읍니까? (ㄷ) ‘요나’의 본은 어떻게 유익합니까?
16 때때로 과거를 돌이켜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 되기 이전에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그리고 소망 없이 살던 때의 입장을 기억하여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한 회상을 하여 보면 과거에 우리가 하나님을 전혀 생각지 않던 과거의 무지를 변상해야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우리 속에서 솟아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무시하고 과거에 하나님과 그의 뜻을 무시한 것에 대하여 변상할 수 있읍니까? 여호와의 봉사에 전력을 다하고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대하여 회개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됩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러한 올바른 태도를 강력히 권하면서 “[우리가]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우리의]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방종, 신세][을] ···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4:2-11) 예언자 ‘요나’는 좋은 본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책임을 회피하였다는 것을 인식하였을 때에 그는 돌이켰으며, 그는 이렇게 큰 소리로 부르짖었읍니다. “나는 ···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또 그는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나이다.” (요나 1:9; 2:9) 그는 과거의 무지를 변상하려고 노력하였읍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17. (ㄱ) 바쁜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ㄴ) ‘바울’은 어떻게 동일한 염려를 나타냈읍니까?
17 또한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게도 바쁜 왕국 사업에 가담하도록 은혜를 베푸시지만 그분은 또한 매일의 생활에서 선한 행실을 유지할 것을 기대하십니다. 분주하게 전파 활동은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도덕 표준을 낮춘다면 그것은 우리의 활동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님을 증명할 것입니다. 바로 이 점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염려하였읍니다. 그는 매우 충실한 일군이었지만 이렇게 선언하였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케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 전 9:27.
18. 하나님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무엇이 우리를 보호해 줄 수 있읍니까?
18 성서에서 말하는 새로운 인간성을 옷입음으로써 승인받는 입장에서 흘러가지 않도록 하십시오. (에베소 4:22-24; 골로새 3:9, 10) 하나님의 영이 자유로이 흘러 당신의 생활 모든 면을 인도하게 하여 영의 열매가 분명히 나타나게 하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기쁨, 평화 및 기타 영의 열매가 우리의 상호 관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양심적이고 결단력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은 올바른 동기와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증거입니다.—갈라디아 5:16-25.
상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유익한 자극제
19. 왜 상에 대한 적절한 견해가 또한 있어야 합니까?
19 전파 사업에 대한 올바른 견해도 필요하지만 상에 대한 올바른 견해도 필요합니다. 상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일하는 것과 참으로 조화된다는 점에 오해가 없도록 하십시오. 어떻게 그러합니까? 상을 제시하시며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라고 권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디도 1:2은 이러합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 바로 그러한 약속된 생명의 선물을 염두에 두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셨읍니다. 즉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주셨읍니다. (요한 3:14-16, 36) 하나님께서 그러한 고귀한 선물을 마련하셨으므로 확실히 그 분은 그 선물을 얻고자 부지런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실 수 없읍니다. 또한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고 확언하고 있읍니다. (히브리 11:6) 그러면 그 상이란 무엇입니까? 그 상은 하나님의 새 질서의 의로운 환경 하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상을 얻기 위하여, 상을 받을 자격을 구비하기 위하여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노력하십시오.
20, 21. (ㄱ)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활은 어떠할 것입니까? (ㄴ) 사람들은 온 땅에서 무엇을 즐길 것이며, 이 땅을 무엇으로 만들 것입니까?
20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활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활과 크게 다를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사용하여 집을 짓고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지만 갑자기 사망하여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그러나 약속된 새 질서에서는 사람이 여러 해 동안 일한 상을 끝없이 즐길 것입니다. 하늘과 바다와 땅의 모든 경이를 생각하여 보십시오! 가장 진보한 과학자들도 우주의 기초가 되는 지혜와 법칙을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겨우 겉만 핥았을 뿐입니다. 성실을 유지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그 때에 즐길 영원한 생명의 상은 그들이 이 모든 창조물의 경이를 연구할 충분한 기회를 줄 것입니다. 그 때에는 시간이 얼마든지 있으므로 지구 각처로 여행하여 모든 인종의 동료 인간들을 직접 사귀고 동물들을 구경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 무엇보다도 온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지적 자녀로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 낡은 사물의 제도를 어둡게 하는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서 여호와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의미 깊은 일을 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결코 짐을 지우거나 자신의 생명 혹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복구시키고 이 땅을 아름다운 낙원으로 만드는 일과 관련된 일입니다.
22. 미래의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상상력을 마구 사용하는 것이 왜 현명하지 않습니까?
22 물론, 새 질서의 상태를 생각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인 성서 가운데 약속하시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상상력을 마구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면, 그 영광스러운 시대에 하고 싶은 어떤 활동을 위하여 지금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는 없읍니다. 그 때에 그러한 훈련을 하고 경험을 쌓을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왕국이 다스릴 때에 사람들은 시간을 다투어 일하는 일이 없는 제도에서 살 것입니다. 그 때에도 날과 해를 시간으로 구분할 것이지만 그 때에는 영원한 생활을 즐길 것이므로 불필요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23. 그리스도인 일군들은 왜 상을 확신하며, 그들은 누구의 본을 따르라는 권고를 받습니까?
23 열심히 일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라는 상은 확실합니다. 왜냐 하면 그 상은 창조주 자신이 보증하셨으며, 그 분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확신을 가지고 선언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 잊어 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당신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그러한 방법으로 그의 거룩하신 이름 여호와를 광고하는 일을 열심히 수행한다면 틀림없이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확신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굴의 마음을 유지한 ‘아브라함’을 본받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창세 15:1) 또한 자신에게 열려진 놀라운 전망을 온전한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압’ 여인 ‘룻’을 본받으십시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 2:12) 당신도 여호와의 동역자로서 그 분의 넓게 펼쳐진 날개 아래에서 보호를 얻기 위하여 힘과 용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24. 그리스도인의 사업은 왜 최고의 명분이며,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24 당신이 일에 대하여 올바른 태도를 나타낸다면 당신은 당신의 노력을 늦추지 않을 것이며 항상 주의 일에 바쁘며 가능한 한 더욱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정신을 바짝 차릴 것입니다. (고린도 전 15:58)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봉사는 인간이 전념할 수 있는 최고 형태의 일입니다. 그것은 가장 위대한 대의명분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하나님이신 창조주의 이름 곧 여호와와 관련되어 있으며 확실히 그것은 실패할 리 없는 명분입니다. 그것은 승리하는 명분이며, 그것은 그것을 열심히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풍요하고 만족한 생활을 약속하여 주며 매우 임박한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끝없는 생명의 전망을 약속해 주는 명분입니다. 당신도 자격을 구비하여 우리와 함께 현재 가장 긴급한 이 대의명분에 참여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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