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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장로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파수대—1975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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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장로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시오.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진해서 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해서 할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하시오.”—베드로 전 5:2, 새번역.
1.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떼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양떼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며, 그들이 임명받은 아랫목자들로부터 특별한 배려를 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자기 “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하나님께서는 매우 관심을 가지셨기 때문에 자기의 아들로 하여금 34년 3개월 동안 하늘을 떠나 인간으로서 지상에서 길 잃은 “양”들이 다시 우리 안으로 들어올 길을 열어 놓게 하셨읍니다.
2. 우리는 여호와와 예수를 목자들로서 신임할 수 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대단히 사랑하시는 “세상” 곧 하나님과의 화해를 필요로 하는 그 “세상” 가운데 우리도 포함됩니다. 외국의 속박 하에 있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 그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신 호소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스가랴 1:3) 사도 ‘베드로’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써 보냈읍니다. (베드로 전 2:25)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보호해 주십니다.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0:11) 하나님께서는 또한 선한 목자 예수 그리스도를 조력자로 임명하셨으며, 예수께서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읍니다.—요한 10:7-15.
3. ‘바울’은 어떻게 함으로써 책임감있는 목자가 되었읍니까?
3 여호와께서는 또한 “양”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진 아랫목자들을 마련하셨읍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그가 어느 정도 자기 목숨을 주려고 하였는가는 ‘고린도’ 회중에 보낸 그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읍니다. “나는 여러분의 영혼을 위해서라면 기쁜 마음으로 비용을 쓰겠고 내 몸까지도 희생하겠읍니다.”—데살로니가 전 2:7, 8; 고린도 후 12:15, 새번역; 11:28.
4. 그러한 목자들을 볼 때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목표를 가져야 하며, 또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4 우리는 그러한 목자들, 곧 위대하신 목자, 선한 목자, 사도 ‘바울’ 등을 본받을 수 있읍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1서 3:16) 그는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을 잘 알았읍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라].”—요한 13:15, 16; 또한 요한 15:12, 13, 비교.
5. 일부 사람들이 아직도 여호와께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성서에서 여호와께 대하여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고 하였는데, 사람들로 여호와를 섬기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모릅니다. 그들을 인도해 줄 자가 없읍니다. 목자라고 하는 인간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길잃게 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인 거짓 목자들을 폭로하셨읍니다. 그 때 사람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였읍니다. 그들에게는 올바른 보살핌이 필요하였으며, 예수께서는 그 일을 하셨읍니다.—시 95:6, 7; 마태 7:15; 9:36.
목자들의 특별한 책임
6, 7. (ㄱ) 보살펴야 할 양떼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ㄴ) 목자들에게는 어떠한 책임이 있읍니까?
6 예수께서는 하늘 거처로 다시 돌아가신 때에 아랫목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양”을 돌보도록 마련하셨읍니다. 오늘날 예수의 “양”을 먹일 특별한 임무는 선한 목자께서 임명하신 자들에게 놓여 있읍니다. 그 일을 하라고 예수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받았던 ‘베드로’(요한 21:15-17 참조)는 그 동일한 명령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감독자들에게 전하였읍니다. “여러분[회중] 중의 장로들[회중 내의 영적 감독자들]에게 ··· 권합니다. 여러분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시오 ··· 자진해서 ··· 기쁜 마음으로 하시오.”—베드로 전 5:1, 2, 새번역.
7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책임이 헌신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지만, 목자들의 특별한 책임은, “하나님의 양떼”, 즉 이미 회중 성원으로 있는 자들을 보살피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하여 그들은 여호와 앞에 책임이 있읍니다.—마태 28:19, 20; 히브리 13:17; 4:13.
8. 하나님의 양떼의 목자로서 누가 택함을 받으며, 누가 택함을 받지 못합니까?
8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가 예수를 메시야로 받아들임으로써 “믿음에 복종”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모세’의 자리에 앉았”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목자로 임명되지 않았읍니다.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들”, 광장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랍비”라고 불리우기를 좋아하던 자들은 불리움을 받지 못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인 회중에는 그런 식의 “지도자”가 없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오직 한 지도자 그리스도만을 인정합니다. 그들은 아첨을 나타내는 어떠한 칭호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사도 6:7; 마태 23장; 고린도 전 1:26-29.
9. 한 회중에는 몇명의 장로가 있어야 하며, 그들은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됩니까?
9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관심사를 돌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가르치는 자, 감독자, 목자를 포함한 “여러 직분을 두셨”읍니다. 초기 회중에서 성경적으로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그런 위치에서 봉사하였읍니다. 그러한 사람의 수는 한정되지 않았읍니다. ‘에베소’에도 ‘바울’이 그곳 “장로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장로의 임무에 관한 교훈을 받기 위해 자기가 있던 ‘밀레도’로 오라고 한 사실로 보아도 장로가 여러 명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 그리스도인 회중에도 특정 수가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 교회에서와 같이 인간이 만든 어떤 신학교 졸업자일 필요도 없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도 활동에 부지런히 참여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그리고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하고, 두 가지 큰 계명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고린도 전 12:28, 새번역; 마태 22:36-39.
10, 11. “흠잡힐 일이 없”게 행동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왜 그처럼 높은 표준을 정하였읍니까?
10 디모데 전서 3장에 ‘바울’은 감독자의 직책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자격을 제시하였읍니다. 그는 흠잡힐 일이 없어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이것이 가능합니까? 이것은 완전성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비이치적이고 지나치게 엄격한 것입니까? 우리가 그렇게 결론지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바울’은 틀림없이 마태복음 5:48(새번역)에 있는 예수의 말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또한 ‘다윗’ 왕이 흠잡힐 일이 전혀 없게 행동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니] ···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하고 여호와께 탄원한 말을 ‘바울’은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로 인정하였읍니다.—시 26:1; 또한 열왕 하 20:3 비교.
11 사람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한계가 없이, 무한한 정도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것은 분명히 불가능합니다. 만일 그 정도를 요구한다면,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감독자의 직책은 공석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성경적 요구 조건이 그렇게 높이 정해진 것은, 그러한 직책을 바라는 사람들이나 현재 그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그 표준에 도달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흠잡힐 일이 없는 문제에 있어서, 예를 들어, 만일 어떤 장로에게 이 점이 아주 심히 부족하다면, 그는 확실히 자기에게 맡겨진 자들을 보살필 수 없을 것입니다. 감독자는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범사에 [그의]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디도 2:6-8.
12. 결혼한 사람이라야 감독자로서의 자격이 있읍니까? 설명하십시오.
12 감독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홀아비나 총각은 자격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말은, ‘바울’ 당시와 같이, 현재, 일부다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정식 결혼을 하지 않고 여자와 동거 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감독자로 봉사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실상 그러한 사람을 동료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4절(디모데 전서 3장)에 나오는 다른 조건과 함께, 이 말은, 감독자가 되려면 십대 청년이 아니라 가족을 가질 만큼 충분히 나이가 든 사람이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13. 장로들은 왜 이 시대의 극단적인 습관을 멀리 해야 합니까?
13 오늘날의 청소년들, 심지어 나이 많은 사람들까지도 현 사물의 제도의 이질적인 습관에 감염되는 수가 있읍니다.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 그러한 사람들과 접촉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사람들을 따르도록 유혹을 받습니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도 동일한 점에 대해 투쟁해야 하였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바울’은 계속하여 연로자들을 임명하는 데 있어서 “습관이 절도있”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전 3:2, 신세) 낡은 세상의 습관을 따른다면,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없을 것이며, 젊은 사람들을 권면할 직책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가 과거에는 알지 못하고 그러한 습관을 따랐을지 모르나 지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하였읍니다. 그 때문에 이전의 동료들이 이상히 여기고 우리를 욕할지 모르지만, 그 때문에 동요되어서는 안된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요한 15:19; 디모데 전 4:11, 12; 베드로 전 4:3, 4; 로마 12:2.
건전한 생각이 필요함
14. 연로자는 자기의 지위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14 회중의 연로자는 높은 지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장로라고 해서 “분수에 넘치는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새번역)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을, “자신을 과대평가하지 말고 ··· 냉정하게 자기를 판단”하라고 표현하였읍니다. 이렇게 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아첨받기를 좋아하는 그리스도교국의 “목사”들처럼 대우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12:3.
15. ‘질서 있는 것’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읍니까?
15 감독자들은 “질서 있고, 후대”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디모데 전 3:2, 신세) 거짓 목자들은 어느 의미로나 질서가 없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으는 (‘이스라엘’ 내의)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고 그들을 비난하셨읍니다. (예레미야 23:1, 2) 그들이 목자들이라고 주장하였어도 여호와의 심판을 면치 못하였읍니다. 예수께서도 그 당시의 거짓 목자들을 비난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목자들은 질서있어야 하고 회중의 평화를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때때로 그들은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 곧 “규모없는 자들을 권계”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데살로니가 후 3:11) 그들의 권계가 납득이 가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이 진리에 어긋나는 사상을 선전하지 않고 성서의 법과 원칙에 엄격히 고착함으로써 본을 세워야 합니다.—고린도 전 4:6; 14:33; 디도 2:6-8.
16. 후대하는 것은 새로운 사람들을 왕국회관에서 환영하는 것으로 국한됩니까?
16 ‘솔로몬’ 왕은 ‘예루살렘’ 성전 봉헌식에서 번영을 위해 기도할 때에, 그곳에 숭배하러 올 비‘이스라엘’인 곧 외국인들에 관해 언급하였읍니다. 그는 틀림없이 외국인들을 위해 대책을 세웠을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어 ‘외국인들’ 곧 이전에 여호와의 숭배자가 아니었던 사람들을 많이 증가시켜 주셨읍니다. 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적절한 대책이 서 있어야 합니다. 감독자들은 왕국회관에서 그들에게 단순히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인의 길에 발전하도록 돕는 점에 있어서도 책임이 있읍니다. 그렇게 돕는 것이 참다운 후대(厚待)이며, 감독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요건입니다.—열왕 상 8:41-43; 미가 4:1, 2; 마태 9:37; 히브리 13:1, 2; 요한 3서 5.
17, 18. (ㄱ) 가르치는 일은 연단에서만 합니까? (ㄴ) 가르치는 자[선생]로서의 감독자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17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여호와]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읍니다. (요한 6:45; 이사야 54:13) 이 일은, 낡은 사물의 제도의 종말이 가까와지고 기름부음받은 왕이며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새 사물의 제도의 도래가 임박해지므로 더욱 더 중요해집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최고의 선생님이십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자기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이는 사도들로, 어떤 이는 예언자들로, 어떤 이는 복음 전도자들로, 어떤 이는 목자들과 가르치는 자들로 주셨읍니다. [이유는?] 그것은 거룩한 자들을 바로잡아 봉사의 일을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에베소 4:11, 12, 신세.
18 그러므로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들은 회중의 귀를 간지럽게 하는 자들이 아니라 양과 같은 회중 성원의 정신과 마음에 이르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들이 “교수”나 “신학 박사”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장로들의 가르침은 반드시 연단에서만이 아니라 좀더 개인적인 입장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그것은 성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19. 무슨 “육체의 일”이 있으면 감독자로 임명받을 수 없읍니까?
19 장로는 “주정군”일 수가 없읍니다. 술을 과도하게 마시면 감각이 둔해져서 판단력이 저해되고 정신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장로는 신체적으로나 말로나 “구타하는 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장로는 호전적이 아니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비이치적이 아니어야 합니다. 그러한 습성이 있다면,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인도하는 사람으로서의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육체의 일”이 있으면, 큰 ‘바벨론’의 교회에서 직책을 갖는 데는 지장이 없을지 모르나 여호와의 증인의 회중에서는 봉사할 수 없읍니다.—디모데 전 3:3, 신세; 6:10.
20. (ㄱ) 장로 임명을 고려하는 데 있어서 왜 자기 집안을 관리하는 문제가 개재됩니까? (ㄴ) 그러나 무엇을 또한 고려해야 합니까?
20 장로는 자기 집을 훌륭한 방법으로 관리해야 하고 자녀들을 복종시키는 자여야 한다고 말한 다음, ‘바울’은 “사실이지 어느 사람이든지 자기 집안을 관리할 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의 회중을 돌볼 수 있읍니까?” 하고 질문을 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3:5, 신세) 하나님의 집안에는 한 개인의 집안보다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음을 ‘바울’은 인정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감독자는 자기 집안 문제를 모든 사람에게 유익하도록 잘 처리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집안이 모든 면으로 이상적인 모범이 되어야 합니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그가 이치적으로 최선을 다해도 가족 중 어떤 사람이 그의 원대로 호응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의 아내가 매우 반항적이며 여호와와 그분의 말씀을 반대할지도 모릅니다. (마태 10:36)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아내의 반항에 대해 그 집의 남편은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며, 그 가정의 분열이 남편의 태만 때문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 입장에 대한 회중의 견해도 고려되어야 합니다.
21. “새로 개종한 자”를 감독자로 지명하지 않는 것이 왜 지혜롭습니까?
21 감독자들은 중요한 결정도 할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한 결정은 사람들의 생명이 관련될 수도 있고 또는 좋은 소식 전파라는 중차대한 일이 관련될 수도 있읍니다. 금지령이 내려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훌륭하고 장성된 판단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따라서 감독자는 “새로 개종한 자”가 아니어야 합니다. (디모데 전 3:6, 신세) 그가 믿음에서 오래된 사람들처럼 모든 열심과 열정은 있을지 모르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할 세련된 지각”은 없을 것입니다. (히브리 5:13, 14, 새번역) 새로 연합한 사람들은 “길들여질” 필요가 있읍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에게 이르고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히브리 13:7.
“다른 양”을 돌봄
22. 유행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의 본을 따라야 합니까?
22 여호와의 증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사회에 반항하는 자들처럼 보이게 하는 유행을 모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회중 내의 젊은 형제들은 하나님의 양떼의 목자들이 합당한 본을 보여야 한다고 한 ‘베드로’의 권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매우 훌륭한 본이었읍니다. 그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하였읍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리스도인 행실, 특히 감독자들의 행실은 “외부 사람들로부터 선한 증거”를 받을 만한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고린도 전 11:1; 디모데 전 3:7, 신세; 요한 17:16; 베드로 전 5:2, 3.
23. 감독자들은 또 어떤 점들을 갖추어야 합니까?
23 디도서 제1장에서 ‘바울’은 장로들에게 어떠한 점들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충고를 하였읍니다. 그는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의심스러운 습성이 있다고 손가락질을 할 수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자기 고집대로” 즉 위압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며, 성미가 급하거나 “쉽게 성내지 않”아야 하며, “부정한 이득을 탐하지 않고”, 회중 안팎에서 두드러지게 정직해야 합니다.—디도 1:6, 7, 신세; 또한 베드로 전 5:2, 3 참조.
24. 감독자의 충성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24 감독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충성”스러운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올바른 원칙에 대한 그의 충성 때문에 “거스리는 자들”을 책망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디도 1:9, 신세) 이것이 유쾌한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필요한 경우에 책망을 하지 않는다면 범죄자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며, 그리하여 동조자가 되는 것입니다. (잠언 29:24) 책망을 해 주는 것은, 잘 모르고 그릇된 길을 간 사람에게 친절의 표현입니다. (갈라디아 6:1) 어떤 부당한 행동은 쉽게 잊어버릴 수 있고 묵과할 수 있고 눈감을 수 있지만, 회중 내에 분열과 분파를 일으킴으로써 성령을 근심케 하는 행동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경우에 따라서는 충성심에 입각하여 책망을 해야 합니다.—누가 17:3, 4; 에베소 4:30.
25, 26. (ㄱ) 목자들이 자신들과 하나님의 회중에 유의하는 것이 왜 특히 필요합니까? (ㄴ) 새로운 사람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회중에서 훌륭한 보살핌을 기대할 수 있읍니까?
25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할 때에 그들에게 ‘그들 자신과 온 양 떼에 유의하고 하나님의 회중을 치’라고 호소하였으며, 그것은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읍니다. (사도 20:28, 29, 신세 참조) 그 “이리”들은 사실상 양떼를 해치고 그들에게서 그리스도인 신분의 의복을 찢어벗기려고 할 것입니다. 이 위급한 시기에는 그 권고가 더욱 적절합니다. 어느 감독자도 자기의 태만으로 인해 하나님의 “양”을 상실하는 경우를 당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26 「연감」을 보면 예수의 “다른 양”이 얼마나 많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연합하였는가가 나타나 있읍니다. 예수께서 “인도하여야 할” 다른 자들이 있읍니다. 그들도 예수의 음성을 들을 것이기 때문에 인도를 받을 것입니다. 낡은 사물의 제도의 이 “말일”에 한 목자의 한 양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길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양치는 일을 위임받은 자들에게서 인자하고 부드러운 보살핌을 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요한 10:16; 누가 12:32; 미가 4:1-4; 이사야 32: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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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게 주재하는 장로들파수대—1975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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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게 주재하는 장로들
“여러분 자신과 온 양떼에 유의하십시오. 그들 가운데서 성령이 여러분을 감독자로 임명하여 하나님의 회중[을] ··· 치게 하였읍니다.”—사도 20:28, 신세.
1. 어떠한 상황으로 보아 장로 제도는 시기에 적절합니까?
이처럼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옹호하고 나서는 이 시대에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 반열이 회중 내의 장로들에 대한 성경적 마련을 확립한 데 대해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읍니다. 지난 5년 동안에 75만명 이상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으로서 침례를 받았으며, 그 중 90,519명은 1974년 “하나님의 목적” 대회에서 침례를 받았읍니다. 보살핌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돌보는 데 있어서 회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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