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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로몬’ 군도가 금지령을 해제하다
    깨어라!—1975 | 11월 8일
    •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였으나,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

      다음에, 여호와의 증인의 법인 단체인 만국 성경 연구회는 ‘런던’에 있는 외무 영연방성에 편지하였다. 대답의 일부는 이러하였다. “최종적인 것은 영령 ‘솔로몬’ 군도 정부의 결정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로 당지 주민들에게 관계된 문제에 대하여 지방적으로 결정한 것을 영국 정부가 권력으로 누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현지 지도자들을 만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다음에 새로운 사태 진전이 있었다. 입법부를 형성하는 수석 장관과 기타 장관의 선거가 있었다. 수석장관과의 회견이 마련되었다. 그는 탄원서를 작성하여 총독에게 보내되 가능한 한 많은 여호와의 증인의 서명을 받으라고 제안하였다. 그대로 하였으며, 1974년 11월 16일 650명이 서명한 탄원서가 총독에게 보내졌다. 수석 장관과 입법부의 모든 다른 장관들 앞으로 사본을 보냈다. 탄원서에는 영령 ‘솔로몬’ 군도 1974년 훈령 제 1장에 보장된 “기본 권리와 자유”의 보호에 관한 적절한 문귀가 포함되어 있었다. 탄원서의 일부는 이러하였다.

      “우리는 1974년 훈령 제 1장 제 10절 제 1항을 삼가 지적하고자 합니다. ‘본인의 동의가 없이는 아무도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을 방해받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전기 자유 가운데는 방해받지 않는 의견의 자유, 방해받지 않고 사상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자유, 방해받지 알고 사상과 지식을 받을수 있는 자유, 통신의 자유를 포함시킨다.’ 여호와의 증인의 그리스도인 단체는 「파수대」와 「깨어라!」잡지 및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의 기타 간행물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사상과 지식을 받을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여 왔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더우기, 우리는 전술한 간행물을 배포할 수 없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사상과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자유’를 온전히 누려보지 못하였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탄원서는 좋은 결과를 얻었는가? 1975년 2월 11일자로 된 총독 관저로부터의 편지, 영령 ‘솔로몬’ 군도의 총독이 서명한 편지의 일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하와 다른 사람들이 서명한 1974년 11월 6일자 탄원서에 답합니다. 아마 귀하가 유의하였을 것이지만, 1974년 12월 30일을 기하여 1956년 포고령 제 1호의 조목에서 다음 말이 삭제 수정되었읍니다,

      “‘정기 간행물 「깨어라!」의 이전 호와 이후 호 일체’

      “‘정기 간행물 「파수대」의 이전 호와 이후 호 일체’

      “이것은 여러분이 그 잡지들을 수입하고 배포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하가 다른 탄원자들에게도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읍니다.”

      ‘솔로몬’ 군도에서의 최근의 정치적 변화는 참으로 사상을 전달하는 더 큰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 격려를 받은 여호와의 증인들은 선교인의 입국 허가와 같은 기타 요청도 멀지 않아 수락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자녀에게 비이기심을 가르치는 일
    깨어라!—1975 | 11월 8일
    • 자녀에게 비이기심을 가르치는 일

      “철수야, 내가 네 동생 장난감을 고치는 데 네가 좀 도와 줄래?” 하고 한 어머니가 어린 아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가족 중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도록 자녀들에게 일을 시키는가?

      물론, 이기적인 행로에서 자녀를 돌아서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이기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 아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자기가 원하는 때에 갖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기를 보아 달라고 때때로 억척스럽게 울어대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듯이, 아기는 조금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가 사랑을 가지고 돌보고 지도해주면 자녀는 차츰 다른 사람에게 유의한다. 점차 이기적인 경향이 감소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부모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결과를 보게 된다.

      부모의 본이 중요하다

      부모가 그것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자녀는 부모를 본받는다. 그러므로 비이기심의 좋은 본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였다. “열살된 우리 아들은 어려서부터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을 보아왔읍니다. 이제 우리가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주면 자기도 주고 싶어 합니다. 시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사소한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는 단순히 우리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아내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였다. “만일 남편이 아내에게 관대하면 자녀는 이것을 보고 아버지가 하는 대로 어머니를 위한 일을 해 줍니다. 우리 아들을 보니까 그렇더군요.”

      이 어머니는 또한 재물에 대한 부모의 태도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흥미있는 관찰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우리 아들은 돈에 대한 언쟁 혹은 ‘돈이 없어서 이것 혹은 저것을 살 수가 없다’는 말을 우리로부터 결코 듣지 못합니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그는 안전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부모가 가정에서 항상 돈에 대하여 언쟁하면 자녀들이 더욱 이기적이 되고 자녀들도 사소한 문제를 놓고 그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아왔읍니다.”

      관찰에 의하면, 흔히 이기적인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는 자녀가 아니라 너무 적게 받는 자녀이다. 자녀가 필요할 때에 부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을 때에, 그 자녀는 일반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잘 베푼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 그 자녀는 사랑을 잘 나타내게 된다. 그렇다. 주로 자녀가 어려서 받는 교육이 그가 장차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교육 방법

      초기의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하다. 어렸을 때에 자녀에게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생각하도록 적절히 교육시키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일과 돕는 일이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최근에 한 어머니는 이 원칙을 행동으로 옮졌다. 그는 자기의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네가 동전 두개를 얻었으니까 하나는 네 저금통에 넣고 또 하나는 동생 저금통에 넣을래?”

      “네” 하고 아들은 쾌히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고 적절히 물을 주면, 그것은 장차 사랑을 나타내는 행동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가족 문제에 관한 토론에 자녀들을 포함시키는 부모들이 있다. 아버지가 최종 결정을 하지만 자녀들은 자기들의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하며 그것을 아버지는 고려한다. 열 세살 된 딸을 둔 아버지는 자녀들이 가족의 활동과 결정을 내리는 데 기여한다는 느낌을 갖게 하면 자녀들은 사랑과 비이기심의 정신을 배양한다고 말하였다. 그 예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최근에 나는 딸과 함께 구두를 사러 갔읍니다. 그는 자기 마음에 드는 구두를 보았지만, 값을 물어 보고는 ‘아빠, 그렇게 비싼 구두는 신지 않을래요. 저기 있는 싼 것이 좋아요’ 하고 말하였다. 그 아이가 특별하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이상합니까?”

      또 다른 아버지는 자기와 자기의 아내가 자녀들로 하여금 현명한 결정을 내리도록 어떻게 돕는지를 비슷하게 설명하였다. “자녀들이 우리와 함께 있을 때에 우리는 그들의 생각에 있는 결함을 탐지하고 도와 줄 수 있읍니다” 하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최근의 점심 시간 중의 토론을 예로 들어 설명하였다.

      “자동차가 화제에 올랐읍니다. 요즈음 자동차에 열심인 우리 큰 아들이 ‘메이커’를 지적하면서 돈만 있으면 소형 ‘스포오츠 카아’를 사겠다고 말하였읍니다. ‘자동차를 갖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소형 ‘스포오츠 카아’에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울 수가 없지 않니?’ 하고 내가 말하였읍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아내와 아이들”이라뇨, 아빠?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요.’

      “‘그렇지, 하지만, 언젠가 너도 결혼을 하게 될 것이니까 그것을 계산에 넣어야지. 장래를 계획하는 것은 좋지만 그 계획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될지 해가 될지 고려해야지. 그렇게 생각지 않니?’

      “‘네, 그렇겠죠. ‘스포오츠 카아’에 여러 사람이 탈 수는 없지요. 하지만 참 멋있거든요.’

      “‘그리고 네가 원하는 그 차는 아주 비싸단 말이야. 너는 멋진 차를 타고 다니며 즐길 수 있지만, 네 가족은 굶주린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라. 너는 그것을 원하지는 않겠지?’

      “‘물론, 그러한 것을 원하지는 않지요.’

      “‘너에게 그러한 의도가 있지 않다는 것은 내가 알지. 그러나 가족이야 굶든 말든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들을 너도 이웃에서 많이 보았을거야.’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버지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좋아요. 가족용 차를 사겠어요. 사게 되면 말이예요. 그러나 그 때는 아직 멀었지요?’

      “‘그렇지. 하지만 지금 너의 생각이 네 장래 계획을 틀잡는거야. 그러니까 지금도 생각을 옳게 해야지.’”

      당신도 그러한 식으로 당신의 자녀의 생각을 지도하는가? 당신은 느긋한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고 사랑을 보이는 방법으로 그렇게 하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준엄한 명령조로 교육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당신이 감정이입을 사용한다면, 당신의 자녀는 자기들의 감정을 참작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충고를 더 잘 받아들일 것이다.

      노소에 대한 비이기심

      조부모와 노인들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하도록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다. 자녀들은 시력이 나쁜 노인들을 위하여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들은 가족의 오락이나 활동에 노인들을 포함시킬 수 있다. 신체적으로 둔화되었다고 하여 그들의 정신도 둔화된 것은 아니다.

      가정 밖, 공개 장소에서도, 자녀들이 노인들을 살피고 도움을 베풀도록 격려할 수 있다. ‘버스’나 기차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도록 격려할 수 있다. 자녀들은 그들의 대화에 참견하지 않고 대화를 독점하지 않음으로 존경을 보일 수 있다. 그렇다. 오늘날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의 관습과 같이, 단순히 노인들에게 관용을 베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인들이 흔히 가지고 있는 지혜와 경험으로부터 유익을 얻도록 자녀들을 가르칠 수 있다.

      또한 부모들은 자녀들이 동생들을 사랑으로 돌보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동생이 태어나서 어머니의 시간을 빼앗을 때에 시기할 수 있다. 여섯살된 아들을 둔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내가 딸을 임신하였을 때부터 딸의 이름을 불렀읍니다. 그래서 우리 아들에게 딸이 매우 친숙하게 되었읍니다. 딸을 낳았을 때에 아들은 그를 잘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나에게 도움이 되었읍니다. 여러 해 후에, 아들은 동생이 태어났을 때에 매우 기뻤다고 우리에게 말하였읍니다.”

      부모가 아기의 출생에 대하여 자녀들을 기술적으로 준비시키면 걱정할 것이 없다. 일곱살된 자녀의 경우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아기인 동생을 좋아하는가를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 좋아요. 엄마가 아기에게 옷을 입힐 때는 내가 도와 주어요. 그런데, 아기가 울 때는 싫어요. 버릇이 나빠질 것 같아요.” 아기에 대한 계획을 질문받고 그는 “말을 알아들으면 같이 이야기하고 놀거예요” 하고 말하였다.

      자녀들끼리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편애를 피하고 그들의 행동을 설명함으로 부모는 이러한 문제를 방지할 수 있다. 세 자녀를 둔 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였다.

      “자녀들이 자라면서 아래로 두 아이는 큰 아들이 옷이나 선물을 약간 더 받는 것을 보고 좀 싫어하였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이를 더 먹은 사람은 필요한 것이 더 많다고 설명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 나이가 되면 같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시켜 주었읍니다. 이제 우리 딸이 그 나이가 되었으므로, 우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유익하다

      당신이 당신의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 중 한가지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는 욕망, 곤경에 처한 사람을 위하여 시간과 동정심과 관심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교훈을 배운 열 두살 된 소년의 말을 고려하여 보라.

      “우리 이웃에 사는 한 소년이 최근에 아버지를 여의었읍니다. 나는 그 아이가 참 불쌍하였읍니다. 나는 그를 돕고 싶었기 때문에 아빠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빠는 우리의 가족 활동에 그를 포함시키자고 말씀하셨읍니다. 나는 그를 우리 집에 초대하였지만 그는 지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는 계속 권할 생각입니다.”

      당신의 자녀는 그와 같이 적극적인가? 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염려하는가? 그들은 격려를 받으면 그렇게 될 것이다.

      참으로, 자녀에게 비이기심을 가르치면 많은 유익이 있다. 자녀들은 복지감과 안전감을 가지게 된다. 그들은 더욱 균형잡히게 된다. 그들은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그리고 마침내 부모로서의 장래의 역할에 더 잘 대비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과 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참으로 옳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 20:35.

  • 그림을 사고 싶은가?
    깨어라!—1975 | 11월 8일
    • 그림을 사고 싶은가?

      ‘이탈리아’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근년에 ‘이탈리아’에서 그림의 수효가 참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증가와 더불어, 때때로 신문에는 극적인 절도 사건, 즉 유명한 그림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미술관에서 도난당했다는 ‘뉴우스’가 보도된다. 종종 도난당한 그림들은 해외로 팔려가서 어떤 예술품 애호가의 벽에 장식된다. 오늘날 각종 그림을 사는 것은 비단 ‘이탈리아’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관심거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였는가? 벽이 너무 허전한가? 거실을 단장하여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기를 원하는가? 예술품에 돈을 투자하고자 하는가? 어떠한 경우이든, 일부 사람들은 좋은 그림이 자기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안성마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선택 방법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만일 당신이 몇가지 좋은 충고를 환영한다면 삼십년간 그림에 시간을 바친 한 미술가를 소개하겠다. 그의 작품 중 얼마는 세계의 여러 미술관에 있다.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와 함께 그를 만나볼 수 있다.

      다행히 그는 자기 화실에 있으며 지금 바쁘지 않다. 흔히 있는 인사 소개가 끝난 뒤 우리는 몇가지 그림을 사기를 원하는 데 이에 대한 그의 충고를 듣고 싶다고 말한다.

      “얼마나 지출하기를 원하십니까? 시장에 있는 그림은 값이 여러 가지이지요.” 하고 그가 묻는다.

      그는 ‘세느’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집어들고, 화실의 조명에 맞는 곳에 그것을 놓는다. 다음에 그는 웃으면서 이렇게 계속 말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택한 쉬운 방법입니다. 인쇄된 안내서를 구하십시오. 보통 거기에는 추천의 말과 여러 가지 기타 정보를 제공하는 호감이 가는 설명이 있고, 크기, 가격, 작가에 대한 관련된 자료와 함께 그림의 사진들이 나와 있읍니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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