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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고 죽는 일이 어떻게 있게 되었는가?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
    •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경고는 ‘아담’에게 성취되었다. 하나님께서 그 날에 ‘아담’에게 죽음을 선고하셨기 때문이다.—창세 2:17.

      아담은 인류의 조상이기 때문에 그의 불순종은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태어나지 않은 자손에게도 죽음을 가져 왔다. 그 까닭에 성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로마 5:12.

      ‘아담’은 완전성을 상실하였으므로 그것을 자손에게 전해 줄 수 없었다. 그의 자녀는 처음부터 약점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의 몸 안에서 죄가 작용하였기 때문에 그는 제한과 약점이 없는 자손을 낳을 수 없었다. 이 점은 욥기 14:4에 있는 성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따라서 오늘날 인간이 늙고 죽는 문제는 첫째로 ‘아담’으로부터 유전받은 죄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아담’의 자손이므로 죄의 삯인 죽음을 받고 있는 것이다.—로마 6:23.

      그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죽음은 모든 생명 현상의 종말인가, 아니면 사람의 일부분 중에 살아남는 것이 있는가? 몸이 죽은 후에도 의식을 가진 존재가 계속하는가?

  • “영혼”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현 생명이 인생의 전부인가?
    • 제5장

      “영혼”이라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은 사실상 두 개체를 가진 한 사람인가? 즉 당신에게는 뇌, 심장, 눈, 귀, 혀 등을 갖춘 인체와 또한 당신의 육체 기관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영적 개체 곧 “영혼”(soul)이라는 것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죽을 때에는 어떻게 되는가? 몸만 죽고 영혼은 계속 살아있는가? 그 점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거의 모든 종교는, 사람의 경우에 죽음이 모든 존재의 끝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 점은, 남북 ‘아메리카’,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이른바 그리스도교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비그리스도교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전 세계 장례 습관」이라는 책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사람들은 죽을 때에 몸을 떠난 어떤 것이 계속적인 생명을 누린다고 믿고 있다”고 알려 준다.

      영혼의 불멸성(不滅性)에 대한 믿음은 비그리스도교 종교 가운데서 매우 현저하다. 예로서, 가장 귀중한 ‘힌두’교의 경전인 「바가바드 기타」는 영혼을 특히 죽지 않는 것으로 언급한다. 이 경전은 그 점을 들어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몸은 끝을 당하여도

      영원한 화신(영혼)은

      멸할 수 없고 불가해(不可解)하나니,

      그러므로 싸우라. ‘인도’의 아들아!

      그를 살인자라고 믿는 자,

      그를 피살자라고 생각하는 자,

      이들은 다 이해하지 못한 것;

      살인도 피살도 아니니라.

      그는 나지 않았고, 그는 결코 죽지 않으며,

      그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므로, 장차 없어지지도 않으리.

      불생(不生), 영원, 영존한 이 태고의 존재는

      몸이 죽을 때 죽지 않느니라.”

      —「바가바드 기타」 2장 18-20절.

      그러나 여기서 말한 영혼은 무엇인가? ‘힌두’교인들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을 강력하게 믿고 있지만 영혼의 본질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설명한다.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힌두교」라는 간행물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힌두교’인들이 믿기로는, 각 영혼은 원형이며, 그의 둘레는 없다. 그의 중심은 몸 안에 위치해 있으며, 죽음이란 이 중심이 한 몸에서 다른 몸으로 옮기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영혼은 물질의 상태에 구속되어 있지도 않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하며, 구속됨이 없고, 거룩하고, 순결하고, 완전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인지 그것은 물질에 구속되었음을 알게 되며 자체를 물질로 생각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교국의 교인들의 일반적인 믿음은 어떠한가? ‘바젤’ 대학교와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교 신학 교수인 ‘쿨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의 일반 그리스도인들(자기 종교에 대하여 잘 아는 ‘프로테스탄트’ 신도나 ‘가톨릭’ 신도이건 아니건 간에)에게 죽은 후의 인간의 운명에 관해 신약에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를 묻는다면 거의 예외없이 ‘영혼불멸’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영혼”의 본질에 관해 물어본다면 그리스도교국의 교인들 역시 애매한 말로 대답한다. 그들이라고 불멸의 영혼에 대한 개념을 비그리스도교 종교인들보다 더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영혼이 사람의 불멸하는 부분이라고 가르치는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영혼은 불멸인가?

      성서에는 여러 가지 번역판에 “영혼”(soul)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것은 ‘히브리’어 ‘네페쉬’와 희랍어 ‘프쉬케’를 번역한 것이다. (예로서, 에스겔 18:4와 마태 10:28을 보라.) 이들 동일한 ‘히브리’어와 희랍어 단어들은 또한 “존재”(being), “생물”(creature), “자”(者; person)라고도 번역되어 있다. 당신이 보는 성서에 원어의 그 단어들이 일관성 있게 “영혼”(soul)이라고 번역되어 있든지 않든지 (「신세계역」에는 일관성 있게 “영혼”(soul)이라고 번역되어 있음) ‘네페쉬’와 ‘프쉬케’라는 단어가 나오는 귀절들을 검토해 보면, 이러한 단어들이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신 자신이 영혼의 본질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의 첫째 책에 보면 첫 사람 ‘아담’의 창조에 대하여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면으로부터 취하신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셨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산 영혼(네페쉬; a living soul)이 되었다.” (창세 2:7, 신세계역) 성서에서 ‘사람이 영혼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사람이 산 영혼이 되었다”고 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가르침은 이러한 “영혼” 개념과 달랐는가? 그렇지 않았다. 흔히 “신약”이라고 불리우는 부분에서 ‘아담’의 창조에 관한 기록을 실제 있었던 일로 인정하고 인용하기를, “‘첫 사람 ‘아담’이 산 영혼이 되었다’고 기록된 바와 같”다고 하였다. (고린도 전 15:45, 신세계역) 이 귀절의 원어에는 “영혼”이라는 말 대신 ‘프쉬케’가 나온다. 따라서 이 귀절에 나오는 희랍어 단어 ‘프쉬케’는, ‘히브리’어 ‘네페쉬’와 같이,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성서 번역자들은 창세기 2:7과 고린도 전서 15:45을 번역할 때 올바르게 “존재”, “자”(者), “사람”이라는 단어들을 사용하였다.—새번역, 공동 번역(이상 한글판), 「신 영어 성서」, ‘영’ 씨의 「직역 성서」, 「개역 표준역」, 「현용 영어 성서」(이상 영문판)에서는, 창세기 2:7에서는 “자”(person)라고 번역하였으며, 고린도 전서 15:45에서는 “영혼”(soul)이라고 번역하였다.

      또한 ‘네페쉬’와 ‘프쉬케’라는 단어가 동물에게도 적용되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바다 동물과 육지 동물의 창조에 관하여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물들은 생물[산 영혼들, 신세]로 번성케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산 영혼]을 ··· 창조하시니 ···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산 영혼들]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라].”—창세 1:20-24.

      동물들을 영혼이라고 한 그러한 표현은 성서의 첫째 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성서의 첫째 책으로부터 마지막 책에 이르기까지 동물들을 계속하여 영혼들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싸움에 나갔던 군인들로는 사람이나 소나 나귀나 양떼의 오백분지 일[오백 중의 한 영혼, 신세, 히, 네페쉬]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라].” (민수 31:28)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영혼; 히, 네페쉬]을 돌아보[느니라].” (잠언 12:10)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산 영혼; 히, 네페쉬]이 죽더라.”—계시 16:3.

      동물에 대하여 “영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그것은 ‘네페쉬’라는 ‘히브리’어의 기본 의미로 생각되는 바와도 일치된다. 이 단어는 “호흡하다”라는 원 뜻을 가진 단어에서 기원하였다고 이해된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영혼이란 “호흡하는 자”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동물들은 과연 호흡하는 자들이다. 동물들은 살아있고 호흡하는 피조물들이다.

      ‘네페쉬’와 ‘프쉬케’라는 단어들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에는, 거듭거듭 개인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성서에서 그러한 예들을 보면 이러하다. 인간 영혼이 출생한다. (창세 46:18, 신세) 영혼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고, 금식할 수도 있다. (레위 7:20, 신세; 시 35:13) 영혼은 울 수도 있고, 피곤할 수도 있다. (예레미야 13:17, 신세; 요나 2:7) 영혼은 맹세할 수도 있고, 무엇을 욕망할 수도 있고, 두려워할 수도 있다. (레위 5:4; 신명 12:20; 사도 2:43, 신세) 사람이 영혼을 납치할 수도 있다. (신명 24:7, 신세) 영혼은 추적을 당할 수도 있고, 쇠사슬에 매일 수도 있다. (시 7:5; 105:18, 난외주) 이러한 일들은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는 일 혹은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아닌가? 그러한 성경 귀절들은 인간 영혼이 사람 자체임을 분명히 해 주지 않는가?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유대’교를 막론하고 수많은 20세기 성서 학자들이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자.

      “창세기의 그 유명한 귀절[2:7]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바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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