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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수대—1975 | 6월 15일
    • 여러분은 이 땅에서 사치하고 호화롭게 지냈으며 도살의 날을 위하여 마음을 살찌게 했읍니다.”—야고보 5:1-6, 새번역.

      성서에서 권장하고 있는 생활 방식은 동료 인간의 복지를 위한 비이기적 관심 곧 사랑의 생활이다. 성서는 이렇게 권고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시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하는 계명과 또 그 밖에 다른 어떤 계명이 있다 하더라도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이 한 말씀에 다 들어 있읍니다.”—로마 13:8-10, 새번역.

      만일 당신이 사는 촌락, 읍, 도시 사람들이 이 훌륭한 권고의 말씀을 정성껏 적용한다면, 당신은 분명히 유익을 받을 것이다. 당신은 가정에서도 훨씬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지 않겠는가? 사기나 도둑질, 강도, 파괴 행위 등을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산다면 훨씬 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또한 진정한 이웃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 자신들도 더 행복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탐하는 태도로 인한 시기와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결혼 밖에서 정욕을 충족시키려고 하는 독신자들과 기혼자들이 당하는 고민과 고통을 당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러운 성병, 결혼외 임신, 가정 파탄등을 당하지 않는다.

      성서가 권고하는 종류의 사랑을 나타내면 분명히 유익을 보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 방식을 변경하려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당신도 참으로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며, 당신도 그들의 이기적인 태도를 갖도록 유혹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개선시켜 주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 할 것이다. “내가 성서를 공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는다. 나는 옳은 일을 하려고 한다.”

      아마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그와 비슷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서가 참으로 생애에서 더 큰 즐거움을 얻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지성있는 수많은 남녀들은 성서가 생활에 대한 최선의 지침이 된다는 점을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생각이 옳은가? 성서는 단지 고대 현인들의 소산인가? 아니면, 인간보다 더 높은 근원에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 최선의 생애를 즐기도록 해 주고 우리와 가족에게 확실한 장래를 보장해 줄 수 있는가?

  • 성서는 단순히 인간 지혜의 산물인가?
    파수대—1975 | 6월 15일
    • 성서는 단순히 인간 지혜의 산물인가?

      많은 사람들은 성서를 단순히 고대 현인들이 저술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서 자체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감(靈感)을 받은 책이라고 주장한다. (사무엘 하 23:2; 디모데 후 3:16; 베드로 후 1:20, 21) 만일 그 주장이 참이라면, 우리는 그 책 내용에서 그것이 그 당시 현인들의 산물일 수 없다는 확실한 증거를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증거가 있는가? 성서에 있는 많은 지식은 동일 문제에 대한 다른 고대 문헌의 내용과 비교할 때 더 우월한가? 성서의 여러 부분들이 기록되던 당시에 유행하던 그릇된 견해가 성서에는 없는가? 현 시대의 지식에 비추어 볼 때 성서의 입장은 어떠한가?

      지구에 대한 지식

      오늘날 우리는 지구를 받치고 있는 유형적 지지물이 없음을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나 성서의 오래된 부분이 기록되던 당시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렇게 믿지 않았다. 그 당시 일반적인 견해는, 거대한 바다 거북을 타고 서 있는 네마리의 코끼리가 지구를 받치고 있으며, 지구는 둥글넙적하다는 것이었다.

      성서는 그러한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다. 욥기 26:7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북편 하늘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공간에 다시[니라].” 이 정확한 서술은 오랫 동안 성서 학자들을 감동시켰다. 그중에 ‘에프. 시. 쿠크’라는 사람은 19세기에 이렇게 썼다. “그것은 이교도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미신에 대해 특출하게 강력한 항변이 된다. ··· ‘욥’은 광대한 땅을 받치고 있는 견고한 기초를 말하지 않는다. 땅이 허공에 떠 있다는 천문학으로 실증된 진리를 ‘욥’이 어떻게 알았을 것인가는 성서의 영감성을 부인하는 사람들로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질문이다.”

      지구에 관한 성서의 이 말은 전체적인 내용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말일 뿐이다. 성서의 주 목적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생활을 하도록 건전한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볼 때 성서의 내용은, 성서를 따르지 않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권고한 점들이나 계속 권고하고 있는 점들보다는 훨씬 우월해야 할 것이다.

      의학적으로 건전함

      예로서, 약 3,500년 전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나라에 주어진 율법을 보자. 그 율법의 목적 중 하나는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그 법에 순종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건강면에서 잘 되리라는 약속이 있었다. (출애굽 15:26; 레위 26:14-16 비교) 그것은 근거없는 약속이었는가? 아니면, ‘모세’의 율법에 들어 있는 방침은 건강에 뚜렷한 보탬이 되었는가?

      ‘모세’의 율법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후에도 대문명(大文明)들은 의학면에 별로 발전을 보지 못하였다. ‘프랑스’의 의사이며 학자인 ‘조지 록스’는 이렇게 썼다. “‘메소포타미아’ 지방 의사들의 진단과 예후(豫後)는 미신과 정확한 관찰의 혼합이었다.” ‘이집트’의 의사들과 그들의 치료법에 대하여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고대 ‘파피루스’ 의학 문헌(그중 가장 큰 것은 ‘에베르스 파피루스’이다)을 통하여 보면, 그 의사들의 의학 지식은 순전히 경험적이고 다분히 마술적이고 전적으로 비과학적이었다. 그들은 경험이 많았으면서도 인체 해부학에 대해서는 거의 무식하였다.”—「국제 표준 성서 백과 사전」 4권 2393면.

      ‘에베르스 파피루스’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처방법은 무가치할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은 상당히 해롭기도 하다. 이것은 인간 혹은 동물의 배설물을 사용하는 치료법에서 특히 그러하다. 딱지가 떨어진 다음에 남은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인간 특히 서기관의 대변을 신선한 우유에 잘 섞어서 붙이도록 하였다. 골절(骨折) 치료법 한가지는 이러하다. “벌레의 피를 익혀서 기름에 갠다. 두더지를 잡아 익혀서 그 물을 기름에 섞는다. 나귀의 똥을 신선한 우유에 갠다. 환부에 바른다.” 이러한 방법으로 배설물을 사용하면 치료가 되는게 아니라 도리어 파상풍(破傷風) 즉 아관긴급(牙關緊急)이나 기타 심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모세’의 율법의 규정은 ‘에베르스 파피루스’에 들어 있는 그릇된 개념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예로서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인간 배설물은 불결한 것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보이지 않게 땅에 묻어야 하였다. 병영(兵營)에 관한 규정에는 이처럼 자세히 명시되어 있다.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로 나가되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찌니[라].” (신명 23:12, 13) ‘이스라엘’ 사람들의 율법을 받은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모세’의 율법과 ‘이집트’ 사람들의 습관 사이에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사도 7:22.

      근래에 와서도 ‘모세’의 율법 규정에 내포된 우월한 지혜를 인정하였더라면 많은 사람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1세기 전만 해도 ‘유럽’의 의사들에게 건전한 위생 표준이 없었기 때문에 사망률이 놀라울 정도였다. 많은 산실(産室)에서는 약 4명 중 1명이 산욕열(産褥熱)로 죽었다. 왜 그랬는가? 의사들이 수술실에서 시체를 취급한 다음 손을 씻는 정도도 하지 않고 직접 산실에 들어가서 검진을 하곤 하였던 것이다. 시체로부터 산 사람에게 병균이 옮아갔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있는 산과 의원에서 이 사실을 관찰한 ‘세멜바이스’ 박사는 검진을 하는 의사들에게 염소 소독한 석회수에 손을 씻도록 하였다. 산실에서의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하였다. 산모의 사망률이 4명 중 1명이 아니라 80명 중 1명으로 되었다.

      후에, ‘세멜바이스’는 자기의 본국인 ‘헝가리’에서 일을 하였으며, 그의 방법은 정부의 공인을 받았다. 그러나 ‘유럽’의 의학계에서는 전반적으로 손씻는 것을 반대하였다. ‘비엔나’의 의학 잡지 편집인은 ‘소독수에 손을 씻는 이 맹랑한 짓을 중지’할 때가 왔다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1861년에 ‘세멜바이스’는 자기의 발견 사실과 방법들을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후에 저명한 산과 의사들과 의학 협회에 보내었다. 의학계는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독일의 의사 및 자연 과학자 회의에서는 대부분의 연사들이 ‘세멜바이스’의 건전한 견해를 배척하였다.

      19세기 ‘유럽’의 의사들과 과학자들은 스스로 유식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수천년 전에 ‘모세’의 율법의 위생 규정에 밝혀져 있는 우월한 지혜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그 율법에서는, 시체를 만진 사람은 누구든지 불결하게 되며, 청결하게 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하였다. 그 가운데는 목욕과 의복을 빠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청결하게 되는 기간은 7일로 정해 있으며, 그 기간에 불결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직접 접촉하지 않아야 한다. 만일 그가 다른 사람을 만지게 되면 그도 그날 저녁까지 불결하게 된다. 이러한 방침은 죽은 자로부터 산 자에게, 그리고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무서운 병균을 옮기는 일을 예방해 주었다.—민수 19:11-22.

      지난 세기의 의사들이 ‘모세’의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인정하였더라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보존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그 점을 인정하였더라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다룰 때 훨씬 더 조심하였을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는 성서의 말씀에 내포된 지혜를 근년에 와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그중 한 가지는 처음에 ‘아브라함’에게 주어지고 후에 ‘모세’의 율법에서 다시 천명된 할례(割禮)에 관한 명령이다. 거기서는 아들을 낳은 후 8일이 되어서 비로소 할례를 받도록 명하였다. (창세 17:12; 레위 12:2, 3) 그러나 왜 8일인가?

      이제 와서는, 제 8일이 이상적인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건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후 5일 내지 7일이 될 때까지는 신생아의 체내에 “비타민 K”라고 하는 혈액 응고소가 정상적인 분량이 생기지 않는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응고소인 ‘프로트롭빈’은 어린 시절의 어느 때보다도 제 8일에 가장 높은 것같다. 이러한 증거를 기초로 하여 대학교 의사인 ‘에스. 아이. 맥밀렌’은 “할례를 행하기 위한 완전한 날은 제 8일이다”고 결론내렸다.—「이러한 질병은 전무하다」 22, 23면.

      완전한 날짜가 선택된 것은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였는가? 다른 민족도 오랫 동안 할례를 행하였지만 성서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만이 아들을 제 8일에 할례를 행하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니 인간의 창조주께서 그 날을 정해 주셨다는 성서의 설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치적이 아닌가? 자신의 법을 준수하면 사람들의 건강에 유익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으로부터 우리는 그 점을 기대할 만하지 않는가?

      성서가 탁월한 지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성서가 단순한 인간 지혜의 산물일 수 없다는 명백한 증거는 확실하다. 성서는 그것이 기록되던 당시 세상의 현명한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훌륭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성서가 하나님의 책임을 나타내는 그보다 더욱 강력한 증거가 있다. 그 증거는 무엇인가?

      [269면 삽화]

      인간이 지구를 외계에서 바라보기 여러 세기 전에 성서는 ‘땅이 공간에 달려’ 있다고 말하였다

      [270면 삽화]

      의사들이 성서를 믿었더라면, 많은 산모가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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