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 그리스도—역사적 인물파수대—1975 | 8월 1일
-
-
예수 그리스도—역사적 인물
성서에 기록된 사실들의 확실성과 그 순수성에 의문을 일으킨 책이 많이 있다. 의혹을 품고 있는 비평가들의 특별한 공격 대상은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는 실제로 살았었는가? 그에 관한 「복음서」의 설명은 확실한가?
많은 비평가들의 의견은 고 ‘알버트 슈바이처’가 표명한 의견과 대단히 흡사하다. 그에 따르면 「복음서」에 소개된 예수라는 인물은 ‘메시야’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왕국을 전파했고 자기의 사업에 최종적인 정진을 위해서 죽은 사람으로, 초기 복음주의자들이 “문학적으로 꾸민 이야기”라고 했다. ‘슈바이처’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는 임박한 우주의 멸망을 전파한 종교적 광신자였다고 믿게 하려고 했으며 그러면서도 그를 “구체적인 역사적 인물”로 알게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한 결론에 이르자 ‘슈바이처’는 교직자와 신학 교수로서의 그의 경력을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가서 의학을 공부해서 의사가 되었다.
어떤 비평가들의 회의론은 예수라는 인물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었다고 부인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실제로 살았었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는가?
‘유대’인의 증언
우선, 초기 ‘탈무드’ 기록들의 증언이 있다. 유명한 ‘유대인’ 학자 ‘조셉 클라우스너’는 그들의 고증을 철저히 조사한 후에 예수에 관한 초기 ‘탈무드’의 설명은 예수의 존재와 일반적 성격을 확실한 것으로 증거했다.—「나사렛 예수」, 20면.
제 1세기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퍼스’의 작품 안에 예수에 관한 언급이 두번 나온다. 이것들 중 한 가지는 흔히 의심을 받는데, 그 이유는, 그것은 ‘요세퍼스’가 마치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풍습 제도」, 제 18권, 3장, 3부) 그러나 ‘클라우스너’나 다른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요세퍼스’가 침례자 ‘요한’의 전도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취급했으면서 예수의 그것은 언급하지 않았으리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이치적이 아니다. 그 외에도 후의 언급에서 ‘요세퍼스’는 “‘산헤드린’의 재판관들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의 동생을 그들 앞에 끌어 왔는데 그의 이름은 ‘야고보’였다.”라고 말한다. (「유대인의 풍습 제도」, 제 20권, 9장, 1부) 올바르게도 이 학자들은 이 인용문이 그 전에 예수에 관해 언급이 있었음을 암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알려져 있지 않은 ‘야고보’를 그의 동생이라고 소개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요세퍼스’가 예수의 전도에 관해서도 설명했었으나 후에 누군가가 그 내용에 손질을 했다고 생각한다.
‘로마’ 역사가들의 증언
‘로마’ 역사가들이 멀리 ‘팔레스타인’에서의 분명히 조그만 종교 운동에 대해 많이 말할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기껏해야 빈약한 참고 정도를 발견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러한 것이 다음의 경우이다. 그 첫째가는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로’가 ‘로마’ 화재에 대한 죄를 “민중에 의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운 사람들에게 씌운 것에 관해 얘기한다. 그 이름이 유래한 ‘크리스투스’가 ‘디베료’ 통치 때에 우리의 행정 장관의 하나인 ‘본디오 빌라도’의 손에 극형을 당하였다”고 했다.—「타키투스 작품전집」 ‘에이. 처치’와 ‘비이. 부로드립’ 공역, 380면.
소 ‘플리니’와 ‘세네카’, ‘쥬버널’을 포함한 ‘로마’의 다른 많은 작가들도 예수의 추종자들에 관해 언급한다.
그래서, 정확하게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은 초기 ‘유대’와 이교 작가들의 증언에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이들 독립적인 기술들은 고대에는 심지어 그리스도교의 반대자들까지도 18세기 말과 19세기, 그리고 20세기 초에 몇명의 작가들에 의해 처음으로 또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논란된 예수의 역사성이 결코 의심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1974년판 제 10권, 145면.
잊지 못할 기록
예수의 역사성이 그러한 “독립적”인 기술로 확립되었을 뿐 아니라 「복음서」에 기록된 그 내용 자체도 똑같은 일을 한다. 어떻게 그러한가? 유명한 19세기의 영국의 경제 학자이며 철학자인 ‘존 슈트어트 밀’은 다음과 같이 관찰했다. “그의 추종자 중에 혹은 그들의 개종자들 가운데 누가 예수의 한 말을 고안해 낼 수 있거나 「복음서」에 나타난 그 생애와 성품을 꾸며댈 능력이 있었는가? 분명히 ‘갈릴리’의 어부들은 아니다.” 똑같은 점을 지적하는 사람은 미국의 ‘데오돌 파커’인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한 사람이 결코 살았던 적이 없으며, 그 이야기 전체는 거짓말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플라톤’과 ‘뉴우톤’이 살았던 적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누가 그들이 한 일을 했고 그들의 사상을 생각해 냈는가? ‘뉴우톤’같은 사람을 고안해 내려면 ‘뉴우톤’같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누가 예수같은 인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예수같은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고 영국의 철학자 ‘데이빗 하틀리’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요점잡힌 말을 하였다. “만약 우리가 이 인물(예수)의 탁월한 위대성과 그것이 전달된 간접적인 방법을 비교해 본다면, ··· 그들이 그것을 위조한다는 것은—그들에게 실제적 인물이 없이는—불가능하게 보일 것이다. ··· 천하고 학문 없는 사람들이 하나의 인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어떻게 고대와 현대에서 가장 위대한 천재를 능가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들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그 인물을 그리게 되었겠는가? 이것이 참으로 순수성과 참이라는 강력한 증거인 것이다.”
그의 독특한 성품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에 관한 더 강력한 증거는 그의 영향력이 그가 육체로 지상에 존재했을 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느브갓네살’이나 ‘알렉산더’ 대왕, ‘줄리어스 시이저’와 같은 강력한 통치자들의 영향력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가 역사에 끼친 영향은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날 아직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
‘나폴레옹’은 그 당시엔 강력한 사람이었지만 예수가 한 인간으로서 끼친 영향력의 독특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들을 명령할 수 있는 특별한 권력이 ‘알렉산더’와 ‘샬레마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하기 위하여 현존해야 한다. ··· 반면 예수 그리스도는 1800년 동안이나 몸소 현존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신민에게 영향을 주어 왔고 명령해 왔다.” 그리고 다시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알렉산더’, ‘시이저’, ‘샬레마뉴’와 나 자신은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 위에 우리의 천재적 창조물을 세워 놓았는가? 힘 위에다 그렇게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의 왕국을 사랑 위에 건설하였다.”
유명한 18세기의 ‘프랑스’ 철학자 ‘루소’는 예수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의 격언들은 참으로 고귀하다. 그의 연설 안에는 참으로 깊은 지혜가 들어 있다! 그의 답변은 참으로 침착하며 참으로 정묘하며 참으로 적절한 것이다! 그의 정열을 지배하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다! 약함도 없고 허식도 없이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철인이 어디 있는가?”
현대에 와서, 인도의 ‘힌두’ ‘국부’인 ‘마하트마 간디’는 전 인도 총독 ‘어윈’ 경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당신의 나라와 우리 나라가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함께 따른다면 우리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에 대해 미국의 노련한 정신과 의사인 ‘제이. 티이. 피셔’도 자기의 매우 성공적인 생애의 끝에 이르러 산상수훈이야말로 전세계의 철학자, 심리학자, 그리고 시인들이 제공했던 최상의 것보다 능가하는 것이라고 그와 같은 증언을 한 일이 있다.
예수의 기적에 대해선 어떠한가?
아마 「복음서」의 어떤 다른 면보다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는 돌로 증명된 것은 기적에 대한 기록일 것이다. 만약 기적이 보통 있는 일처럼 소개되었다면 사람들이 반대할 근거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복음서」는 그 기적들을 예수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특별한 사건으로 소개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을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 20:30, 31) 확실히 예수께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단순히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렇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면 이 일을 위해 기적을 행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기적이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고 하는 논쟁은 어떠한가? 이 점에 관해서 우주선의 발견자인 ‘빅터 헤스’는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자연의 ‘법칙’의 ‘필연성’은 ··· 기적과 모순된다는 말을 때때로 듣는다. 그것은 그렇지 않다. ··· 우리의 물리 법칙 중 많은 것들은 사실상 단지 통계상의 설명일 뿐이다. 그들은 수많은 경우의 평균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들은 개개의 경우를 의미하지 않는다. ··· 과학자는 기적의 실재성을 의심해야 하는가? 나는 과학자로서 단연코 아니라고 대답한다. 나는 우리와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연 곧 일상사의 평균적인 현상을 일시 정지시키거나 변경시키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렇게 하지 못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대 과학자들의 믿음」, ‘더불류. 호위’편 10면.
또한 예수의 기적의 순수성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들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준 영향이다. ‘더불류. 펠리’ 박사는 그 점을 지적하였다. “그들이 전달했던, 그리고 전적으로 그러한 사항들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 사실들을 증명하기 위해서 노고와 위험과 고통을 자진적으로 겪는 생애를 보냈다. 그리고 ··· 그들은 그 똑같은 동기에서 행동의 새로운 규칙에 복종했다.”—「윌리암 팰리 작품집」, 300면.
우리는 이 사실을 피할 수 없다. 즉 전술한 증거들은 객관적이고 이성있는 사람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단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사렛’ 예수가 실제로 살았었을 뿐 아니라 성서에 묘사된 그의 생애의 기록은 우리에게 역사적인 예수를 알려 준다는 사실이다.
-
-
기억하십니까?파수대—1975 | 8월 1일
-
-
기억하십니까?
당신은 「파수대」 최근호들을 주의깊이 읽어보았읍니까? 그렇게 하였다면, 다음과 같은 중요한 점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시려’고 “시행”하신다는 에베소 1:9, 10(새번역)의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 “시행”은, 하늘에 갈 제자들을 머리인 그리스도 아래 연합시키고, 또 지상에 있는 나머지 인류를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하나님과 조화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문제를 관리하는 것, 즉 처리하는 것이다.—7, 8, 12면.
● 현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의 어떤 경험이 시편 91:7에 있는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라는 말에 일치합니까?
그리스도교국과 ‘유대’교의 교인들은 영적 죽음에 엎드러지고, 물질주의, 국가주의, 과학의 우상화 등등에 빠졌지만, 하나님의 종들은 영적 안전 장소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67, 68, 81-83면.
●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마태 22:14, 새번역.
율법 언약 하의 전체 ‘이스라엘’ 민족은 청함을 받은 ‘다수’이며, 그들 중 ‘소수’, 곧 ‘유대’인의 남은 자만이 “천국”에 합당한 자로 택함을 받았다.—162면.
●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모두가 그를 숭배해야 합니까?
여호와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며, 예수의 수중에 메시야 왕국을 맡기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 왕국 통치로부터 유익을 받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주 주권자이며 우리의 창조주인 그분을 숭배해야 한다.—186면.
● 어떠한 느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용서받을 수 없는 정도의 죄를 범한 것이 아닙니까?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올바른 일을 하고자 하는 진실한 욕망이 있는 것.—187면.
● 사람들이 몸은 죽일 수 있지만, 그들이 멸할 수 없는 “영혼”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산 자가 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멸할 수 없다.—199면.
● “경건”에 관한 무엇이 ‘신성한 비밀’이었읍니까?—디모데 전 3:16.
‘아담’이 반역한 후에 어떤 사람이 경건을 완전히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질문이 생겼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나타날 때까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로 남아 있었다.—250, 251면.
● 인류 역사 초기에는 근친 결혼에 관한 법이 왜 필요 없었읍니까?
완전성에 매우 가까왔기 때문에 근친 결혼으로 인해 뚜렷한 기형아를 낳을 위험성이 거의 없었다.—259면.
● 왜 성서는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 즉 소식입니까?
성서 내의 모든 점은 하나님의 영의 지도 하에 기록되었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며, 문제들을 사실대로 제시하고 있다.—279면.
* 모든 내용은 1975년 「파수대」에 나온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