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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파수대—1978 | 2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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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성경에 들어 있는 교리적인 진리에 있어서 자라야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읽을 때 그들은 또한 각계 각층에 있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는 여러 가지 기록, 표현, 현명한 말씀 등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배우고 있는 좋은 것들을 열심히 전해 줌으로써 그들도 역시 성서를 읽도록 격려하라. 당신이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하신다는 점을 기억하라.—사도 11: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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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성서를 읽는 일파수대—1978 | 2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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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성서를 읽는 일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성서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물로 본다. 또한 그들은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해야 할 임무를 수행할 때 성서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성서의 소식을 전해 주기를 열렬히 원한다. (마태 24:14, 신세; 로마 15:4) 그러나 이러한 일을 효과적으로 하려면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성서 읽기가 가정에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행해지던 때가 있었다. 그 결과로 소년 소녀들이 자라면서 성서 내용을 알고 성경적인 원칙들을 생활에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텔레비젼’이나 다른 주의를 끄는 것들이 많고 신속히 움직이는 현대 세상에서는 대부분의 가족적인 성서 읽기가 과거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가정은 어떠한가? 확실히 당신이 가족과 함께 성서를 읽으면 많은 즐거움과 유익이 있을 것이다.
몇가지 유익
어떤 가족이 매주 하루 저녁의 일부를 함께 성서를 읽는 데 보낸다고 하자: 아마 한 시간 정도를 이러한 즐거운 일에 보낼 것이다. 주일이 지나감에 따라 성서의 인물들이 사실상 ‘살아나게’ 될 것이다. 극적인 사건들이 머리에 새겨질 것이다. 자, 성서를 읽는 가족은 창조의 사건들을 목격할 수 있다. 그들은 인간의 원래 집이었던 낙원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과 같은 족장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홍해와 ‘요단’강을 신을 신은 채로 통과할 수 있다. 목동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무찌를 때 ‘그곳에 있’을 수 있다. 성서를 읽는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건축을 볼 수 있고 ‘바벨론’ 군대에 의해 그것이 황폐되는 것을 “볼” 수 있고 총독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그것이 재건되는 것을 또한 볼 수 있다.
성서를 읽는 가족은 ‘베들레헴’ 근처의 겸손한 목자들과 같이 천사들이 예수의 탄생을 선포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승인의 말을 하신 것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예수와 사도들과 함께 할 수 있으며 예수께서 돌아가시거나 부활되셨을 때 거기에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사도 ‘바울’과 함께 여행할 수 있고, 일세기에 참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고린도’와 다른 곳에 회중들이 설립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도 ‘요한’과 함께 그들은 성서 「계시록」에 나와 있는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를 포함하여 미래에 관한 놀라운 환상을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족들이 성경을 교대로 읽을 때 그들의 읽는 능력은 향상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법과 원칙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분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증가될 것이다. ‘아삽’의 시가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와 같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시 73:28) 이러한 점은 가족들로 하여금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은 ‘모세’와 같이 되게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히브리 11:27.
이미 알고 있는 점과 새로운 점을 연관시킴
분명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대하여 비교적 많이 알지 못한 때가 있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리스도인이 이제는 창조 및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목적을 설명할 수 있고, 이 사물의 제도의 다가오는 멸망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낙원이 이 지구에 어떻게 회복되고 순종하는 인류가 어떻게 완전성을 회복하게 될 것인가를 성서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그렇게 된 것은 주로 성서와 그리스도인 출판물을 연구할 때 그 사람이 자기가 배운 새로운 점들을 이미 이해한 점들과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족 성서 읽기에 있어서 이미 알고 있는 점들을 새로운 점들과 연관시키는 것은 상을 받게 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누가 8:18, 새번역) 가족 성서 읽기 중에 중요한 점을 놓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 어떤 선언, 원칙, 법 혹은 여러 가지 추상적인 개념이 제공될 때는 이러한 사상을 당신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과 연관시키라. 그 내용을 당신이 이해하고 있는 진리의 형태에 맞추라. 사상을 비교하여 우리의 생각을 조정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롭거나 색다른 혹은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 보라.
사람의 행실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어떤 원칙이 적용되는지 알아내도록 노력하라. 또한 그 점에 대해서 묵상해 볼 수 있고 비슷한 환경하에서 당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 결론을 내리고 결정을 해볼 수 있다. 그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야곱’의 아들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라고 반문하면서 끝까지 ‘보디발’의 아내와 성적인 부도덕에 빠지는 일을 피하였다. (창세 39:7-9) 감동적인 이러한 실화를 읽을 때 읽는 사람은 한 가지 중요한 원칙 즉 정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다른 명령과 연관시킬 수 있고 부도덕의 유혹이 있을 때 기억해야 할 원칙을 발견하게 된다.
성서 사건을 그려 봄
어떤 성서 기록을 읽을 때 가족들은 그 사건을 다시 살아나게 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그 재료를 따뜻함, 감정, 열정을 가지고 읽는다면 가족들은 발생되고 있는 사건들을 정신에 그려 볼 수 있다. 어떤 사건을 정신적으로 그려 보는 것은 오래 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가족이 사사기 7장의 내용을 읽는다고 하자.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려 보도록 노력하라. 예를 들어 19절에서 22절까지를 고려해 보자. ‘기드온’과 삼백명의 용사들이 ‘미디안’ 진의 끝에 자리를 잡았다. 때는 “이경” 초인 저녁 10시경이다. 파수꾼들이 방금 교대하였다. 어두움이 적군들이 유숙하는 진을 덮고 있다. ‘기드온’과 그 부하들은 나팔을 가졌고 왼손에 횃불을 가린 커다란 물항아리들을 지니고 있다. 갑자기 그 삼백명은 나팔을 불며 커다란 물항아리들을 깬다. 당신은 그 나팔 소리와 항아리 깨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백명씩으로 나누어진 세 부대는 나팔을 불고, 커다란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힘차게 들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외치기 시작한다. 당신은 그것을 “보”고 “듣”게 된다. 이제 ‘미디안’ 진을 보라! 자, ‘기드온’과 그의 삼백명은 그들의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데 적은 모두가 달려가고 아우성치며 도망치고 있다. 그 삼백명은 계속 나팔을 불고 여호와께서는 ‘미디안’인들 각자의 칼이 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치게 하셨다. ‘미디안’은 도망하였다.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셨다.
이제 가족이 「룻기」를 읽고 있다고 하자. 당신은 ‘모압’ 여인 ‘룻’이 과부가 된 자기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룻’이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룻 1:16) 얼마 있지 않아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추수꾼들의 뒤를 따라 열심히 이삭을 줍는 것을 보게 된다. 후에 ‘보아스’는 “네가 현숙한 여자인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고 말로 ‘룻’을 칭찬한다. (룻 3:11) ‘보아스’는 ‘룻’과 결혼하였고 시동생과의 결혼의 마련에 따라 ‘룻’은 “나오미”를 위해서 ‘보아스’를 통해 아들을 낳게 되었고 ‘다윗’의 조상 그리고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다.—룻 4:17-22; 마태 1:1, 5, 6.
가족 중 청소년들은 충실한 세 ‘히브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이야기에 많은 흥미를 느낄 것이다. 그러나 아마 아버지가 그 기사를 읽으면서 발생하고 있는 일을 마음에 그려 보도록 모두를 격려할 때 그 내용을 살아있게 할 수 있다. ‘두라’ 평지에는 우뚝 솟은 거대한 금신상이 있다. 지방 관리, 지방 장관, 총독, 모사 등의 관리들이 운집해 있다. 각종 악기 소리를 통해 신호가 주어지고 모든 사람들이 엎드려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신상을 경배한다.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렇게 한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정중하나 단호한 태도로 그 왕에게 나아가 자기들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금신상에게도 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젊은 세 ‘히브리’인들은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진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느부갓네살’은 그 풀무 속에서 건장한 네 사람을 보게 되는데 그 중 하나는 “신들의 아들”과도 같다. (다니엘 3:25) 즉시 그 세 ‘히브리’인들은 풀무불에서 나오게 되고 ‘느부갓네살’은 그들의 하나님을 찬송한다.
생기와 흥미를 더함
이와 같은 성서 기사는 참으로 흥미를 끈다. 그러한 기록은 교훈적이고 격려적이다. 또한 가족이 성서를 읽는 동안 여러 가지 면으로 생기와 흥미를 더 할 수 있다.
한가지 방법은 성서를 따뜻함, 감정, 깊은 열정을 가지고 명료하게 낭독하는 것이다. 사실상 성경의 어떤 부분을 읽을 때 가족 성원 중 하나—아마 아버지—가 일반적인 내용을 낭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성서 인물의 부분을 맡을 수 있다. 각 인물의 부분은 미리 임명할 수 있다. 아버지는 특정한 성서 인물의 말이 나올 때까지 일반적인 기사를 읽을 수 있다. 그 다음에 그 인물을 묘사하도록 임명된 가족은 자기 부분을 의미있게 낭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룻기」에서 한 가족은 ‘나오미’의 역을 또 다른 사람은 ‘룻’의 역을 맡을 수 있다. 또 다른 사람은 ‘보아스’를 맡을 수 있다. 노소가 다같이 이렇게 하는 것은 특히 흥미있게 생각될지 모른다. 또한 그들이 이러한 감동적인 성서 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어떤 부분을 낭독한 후 가족이 그 부분을 복습하고,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을 한다면 흥미가 더 있을 것이다. 한 단어가 어떤 특정한 구가 잘 이해되지 않거나 어떤 부분이 좀더 설명을 필요로 할지 모른다. 「왙취 타워 출판물 색인」 혹은 자기가 아는 언어로 된 어떠한 색인이 이러한 성서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또한 「보조서」도 참조할 수 있는데 특별히 흥미를 가진 문제들의 토론을 위하여 적절한 항목을 가족이 찾아 볼 수 있다. 단어의 뜻을 아이들이 이해하게 하는 데 사전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성서 읽기를 통해서 가족의 성서 지식을 더해 주는 가치있는 연구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적인 유익
가족 성원 모두가 성서를 정기적으로 읽는 데서 즐거움과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일을 가족적으로 하게 될 때 하나님의 법과 원칙이 연로한 분이나 어린이들을 포함한 모두의 정신에 깊이 새겨질 수 있다. 그리고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실화로부터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를 읽을 때 탐구적인 태도를 가지고 사고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 지식이 교리적인 것이든, 예언적인 것이든 혹은 어떤 다른 형태이건 그것을 읽을 때 정신을 집중시키라.
한 부분을 읽은 후에 가족의 머리는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 있다: 이 내용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 이러한 지식에 따라 우리의 생활에서 어떠한 조정을 할 필요가 있는가? 이것은 우리가 이미 배운 다른 성서 지식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데 이러한 점들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끌어낼 만한 많은 점들이 있다. ‘기드온’과 삼백명과 관련된 기사는 담대하게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가르친다. 부지런하고 충실한 ‘룻’의 훌륭한 본은 그와 같이 “현숙한 여인”이 되도록 모든 그리스도인 여자들을 격려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성실성에 대한 시험을 직면하는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충실한 세 ‘히브리’인들의 굳건한 태도를 생각함으로써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과 같이 경건한 젊은이들은 계속 여호와께 구원을 돌리며 그들의 천적 아버지를 불쾌하게 할 숭배적인 행동을 피할 것이다.—시 3:8.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그리스도인 가족이라면 성서를 정기적으로 읽으라. 성서 기사를 다시 살아 나게 하라. 정신에 성경의 법과 원칙을 깊이 새기라. 시간을 내어 가족과 함께 성서를 읽음으로써 즐거움과 유익을 얻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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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병의 명절을 지키라’파수대—1978 | 2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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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병의 명절을 지키라’
◼ 성경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순결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부패케 하는 영향력은 제거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그의 첫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충고하였다. “너희는 누룩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린도 전 5:7, 8.
‘모세’ 율법 언약하에서는 매년 유월절 희생을 바쳤으며, 뒤따라 7일간의 무교병의 명절을 지켰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단번에 바치셨다. (히브리 9:25-28)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전체 생활 행로는 모든 불법과 악으로부터 벗어난, 계속되는 무교병의 명절과 같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는 개인적인 그리고 회중적인 순결성을 유지하고자 하며, 믿음과 도덕을 부패시키는 모든 것을 제거하고자 하는 자진성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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