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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라파수대—1977 |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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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큰 무리”가 있읍니다.—계시 7:4-9.
28 여호와 하나님께 의뢰하면서,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영적 빛을 비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계속 합당한 원동력 혹은 영을 나타낼 것이며 그 영은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배양하고, 나타내고자 노력할 것이며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여호와를 섬겨 온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을 기억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참으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오늘날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영과 함께 계속 계실 것이 확실합니다. 당신도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영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있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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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십년 과제—부모로서의 역할파수대—1977 |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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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십년 과제—부모로서의 역할
‘노르만 C. 피어시’의 경험담
많은 젊은 부부들은 그들의 첫 아기가 태어나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부부들은 그것을 착잡한 심정으로 보는데, 왜냐 하면 태어난 아기는 그들의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후자의 입장에 있었으며, 그것은 첫 아기의 출생이 우리의 생활을 크게 변경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하던 일을 우리는 더 계속할 수 없게 되었으며, 아직도 그 시간과 수단을 가족을 부양하고 돌보는 데 사용하고 있다.
처음부터, 우리는 어린 아기의 지도를 단순한 기회에 의존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실감하였다. 수년 전에 우리는 어떤 글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 취지는, 자라나는 아이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다른 영향력들과 경쟁할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 있는가는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의 진정한 척도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내와 내가 돌이켜 볼 때, 그 경쟁이 때때로 꽤 치열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십년 과제가 거의 완성된 지금에 와서—우리 아이들은 열 아홉살, 스무살이다.—우리는 그 결과야말로 노력할 가치가 충분한 것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먼저, 어떻게 우리의 결혼이 맺어졌으며, 우리의 이십년 과제의 시작은 어떠했는지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결혼과 가족
1948년에,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 시간 가르치는 자들을 지칭하는 바 “파이오니아”가 되었다. 2년 후에 나는 ‘뉴우요오크’, ‘브루클린’에 있는 증인들의 본부 가족과 연합하여 성서 출판물을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이듬해인 1951년,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선교인들이 교육받는 ‘길르앗’ 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하였었다. 그 졸업생들 중의 한 사람인 ‘마리안느 버어너’는 임명지로 떠나기 위해 몇 주일간 ‘뉴우요오크’ 시에 머물게 되었고, 그리하여 우리는 아는 사이가 되었다. 그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삼 년간 봉사한 후, 1955년에 ‘뉴우요오크’ 시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돌아왔다. 나는 청혼을 하였으며, ‘마리안느’는 나의 아내이자 일생의 반려자가 되었다.
우리는 순회 봉사를 할 기회를 제공받았는데, 남부 ‘일리노이’ 주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회중을 방문하며 돕는 일이었다. 이 회중들은 우리에게 크나큰 기쁨을 주었으며, 우리의 소원은 생애를 전 시간 봉사에 바치는 것이었다. 마침내 우리는 ‘브루클린’에 있는 본부 가족과의 봉사로 돌아가기를 희망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서 우리는 부모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이 우리의 계획을 완전히 변경시킬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 감격스럽게 보지 않는 전망이었다.
우리의 다음 순회 대회에서 있었던 마지막 연설 중에 나는 내 아내가 “장성(Maturity)으로 나아감”이라는 내 연설을 들었었는데, 내가 “모성(Maternity)으로 나아감”이라고 말한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라고 익살스럽게 말한 일이 있다. 우리의 딸 ‘신티아’가 태어난 곳인 ‘캘리포니아’ 주에 우리는 정착했다. 그 후에 우리의 아들, ‘그레고리’가 태어났다.
목적있는 훈련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 되었으며, 우리는 그들을 교육하는 데 최선을 다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앞으로 이십년 동안 그들을 지도하고 훈계할 것인가? 우리는 아이를 교육하는 데 여호와의 인도를 구하였던 어린 ‘삼손’의 아버지의 본을 기억하였다.—사사 13:8.
매주, 그들이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과 함께 성서를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 일이야말로, 다른 사람들과 연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왜냐 하면 미루게 되기가 가장 쉬운 연구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저녁 식탁에서 그들과 함께 성귀 토론하는 것을 매일의 습관으로 삼았다.
그 밖에도, 우리는 저녁 식사 시간을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는 기회로 사용하였으며, 이렇게 하여 학교를 위해 준비시켰다. ‘그레고리’는 일 학년 때 읽는 일에 문제가 있었다. 날마다 우리는 한 시간을 그와 함께 보내며, 향상되도록 도왔다. 우리가 선생님들과 밀접히 접촉한 것은 그들에게 우리가 아이들의 발전에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신티아’와 ‘그레고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는 그들을 모든 회중 집회와 대회에 데리고 갔는데, 거기서 그 아이들이 최상의 영향을 받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디모데 후 3:15) 그들이 자라감에 따라, 집회에서 해설하기 위해 준비하도록 그들을 도왔다. 처음에는 단지 몇 마디 밖에 못하곤 하였지만, 그들 자신이 대답한 항의 내용만큼은 이해하였음을 확인하였다. 공개 강연을 듣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곤 하였다.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보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어린 마음에 깊은 인상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레고리’가 네살밖에 안되었을 때, 우리는 ‘아브라함’에 대하여 또 그에 대한 믿음의 시험으로서 그가 어떻게 그의 외아들인 ‘이삭’을 희생으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었는지를 공부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두 사람 다 여호와께 기꺼이 순종하였음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한 예로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알겠니, ‘그레고리’야,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나에게 너를 뒤뜰로 데리고 가서, 너를 희생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과 같단다.” 다음에 나는, “만일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질문하였다. ‘그레고리’는 주저하지 않고 내가 여호와께 순종해야 한다고 대답하였던 것이다.
그 후에 우리는 ‘그레고리’가 기도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는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이고는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었다. “여호와여, 만일 당신이 아빠에게 저를 데리고 뒤뜰로 가서 희생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다고 해도, 저는 괜찮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에 들어갈 자들에게는 어린 아이같은 특성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성서 진리가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은 순종하도록 움직여지고 있었다.
‘신티아’가 일곱살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애가 사람들의 집에서 「파수대」와 「깨어라!」 잡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 날마다, 학교에서 돌아올 때에, 그 애는 뒷문을 두드리고 자기의 제공을 하곤 하였다. 마침내 그 애가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는 그 중요한 날이 왔다. 그런데 심한 반대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울음을 터뜨렸다. 차에 돌아와서, 아내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도 종종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는 것과 또한 그들처럼, 우리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신티아’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1966년에 나의 아내는 파이오니아로서 다시 등록하여, 한 달에 백 시간을 사람들의 집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데 사용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이 중요한 봉사에 참여할 욕망을 가지고 자라가도록 하려면 그들에게 또한, 우리 역시 그것을 매우 가치있게 여긴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 해 여름에 나는, 일시적으로, 우리 구역에서 순회 감독자로서 다시 봉사하도록 초대 받았으며, 우리 가족 전체가 참여할 수 있었다.
토요일에 나는 여덟살된 ‘그레고리’가 자기 나이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호별 방문 전파 사업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그는 바로 몇분 전에 내가 한 것을 본 그대로 내 본을 밀접히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나에게 올바른 본을 세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다.
여러 가지 입장을 다루다
아이들이 자라감에 따라, 몸치장, 의상 ‘스타일’, ‘데이트’와 ‘파아티’와 같은 점들에 대하여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우리는 옆에서 지침을 제시해 줌과 동시에 그들이 훌륭한 분별력을 사용하도록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
‘신티아’가 열 다섯살 쯤 되었을 때,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입고 다니는 일종의 몸에 꼭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싶어했다. 나의 아내는 조용히 이러한 바지를 입는 여자 아이들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알려고 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그는 회중의 다른 소녀들에게 그런 식의 옷을 입는 소녀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들은 그러한 여자 아이들은 흔히 행실이 나쁜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나의 아내는 ‘신티아’에게 자기가 관찰한 점들과, 그가 그런 여자 아이들과 동일하게 간주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우리가 결정한 이유를 말해 주었다. ‘신티아’에게 우리의 결정에 동의하는지 혹은 동의하지 않는지 여부를 표현할 기회를 주었다. 다행하게도, 문제는 이것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또한 이 일은 그 애에게 우리의 의상이 줄 수 있는 영향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다.
‘그레고리’는 열 네살 가량되자 “소년”이라는 말을 싫어하기 시작하고, “젊은이”로서 인정받기를 원하였다. 그는 열 아홉살 된 훌륭한 젊은 증인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이 교제는 ‘그레고리’로 하여금 나이가 위인 그 소년과 똑같은 독립을 원하게 만들었다. 그는 초연하고 독립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 교제를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그레고리’는 “왜요? 그가 나쁜 친구라고 생각하시나요?” 하고 질문하였다.
우리는 그 교제는 나쁘지 않지만, 그 입장이 그에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자신이 표현할 기회를 주었다. “만일 네가 동의하지 않거나, 혹은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거나, 우리가 올바른 견지에서 본 것이 아니라면, 그렇다고 말하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잠시 묵묵히 있다가, ‘그레고리’는 “아니어요, 동의하고 있어요, 단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을 뿐이예요”라고 말하였다.
한번은 우리가 차로 여행하고 있을 때에, ‘신티아’는 고속 도로상에서 지나가는 소년에게 천진난만하게도 미소로 답하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소년은 우리 집까지 따라왔으며,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신티아’의 이름을 알아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사이에, 교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소년이 ‘신티아’의 복지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단지 육체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상당한 시간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직면하는 문제들에 대한 「파수대」에 실린 훌륭한 기사들의 마련을 대단히 감사하고 있다. 이것들 중의 얼마를 우리는 자녀들과 함께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읽으면서, 어떠한 행위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였다. 그리고 나서, 부모로서, 우리는 확고하게 결정을 내렸으며, 우리의 젊은이들 앞에 여호와와 그분의 기록된 말씀에 대한 존경의 본을 세웠다.
실용적 기술을 가르치다
나는 작은 생계 수단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레고리’가 열 세살 되었을 때 그는 학교에 가기 전에, 오전 5시부터 8시까지, 나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였다. ‘신티아’는 열 다섯살 때 우리의 증인 친구의 지도 아래 부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한 요리, 바느질과 다른 실용적인 기술들 역시 강조하였다. ‘그레고리’도 요리를 배웠으며, 나는 양탄자 까는 기술을 그에게 가르쳤다.
이 모든 일은 아주 힘겨운 시간표를 갖게 하였으며,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의 학교 교육을 통신 학과 과정을 통해서 끝마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필요한 세속 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직업을 위하여 배울 시간도 갖게 하였다. ‘그레고리’를 자극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가 학교를 완전히 마칠 때까지 운전 면허를 받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4년제 고등학교 과정을 2년 내에 끝마쳤으며, 그리하여 내 아내, ‘신티아’ 및 나에 합세하여 전 시간 파이오니아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훈련의 중요한 면목
‘그레고리’가 열 네살이 되고 ‘신티아’가 열 다섯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원대한 가족 목표에 일치하게, 그 때야말로 그들이 ‘뉴우요오크’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의 세계 본부를 구경할 때라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그 곳은 5,00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며, 우리의 자금은 제한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문제를 가족적으로 토론한 결과, 비록 우리의 집을 저당잡히는 한이 있더라도 가기로 확정하였다. 그러나 또 한번, 우리는 여호와의 손이 짧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 친구가 찾아 와서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 도와 주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석유 회사 신용 구입권을 우리에게 넘겨 주면서, 여행에 필요한 ‘가솔린’ 전부를 그것으로 사용하라고 말하였다.
우리의 아이들은 ‘벧엘’로부터, 그리고 영적 간행물과 교훈을 우리에게 마련해 주는 일에 자신들의 시간을 자진해 바치고 있는 훌륭하고 사랑에 찬 사람들로부터 대단히 감명을 받았다. 여러 해 동안 여호와께 대한 봉사에서 그렇게도 부지런히 일해 온 이러한 충성스러운 사람들 중의 많은 분들과 옛 우정을 새로이 하는 것은 나의 아내와 나에게 크나큰 기쁨이었다.
보람있는 특권
비록 우리가 처음에는 장래의 부모 역할에 대해서 열정이 없었지만, 우리는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감사를 느끼는 특권이었음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이교적인 습관으로 가득찬 이 세상에서 아이들을 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교에 기원을 둔 이러한 축제들 중 어떤 것들은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결코 무엇인가 좋은 것을 놓치고 있다고 느끼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그들을 도와 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크리스머스’를 축하할 때면, 우리는 학교에 안 가는 그 기회를 이용해서 산속의 오두막집에 가서는 눈을 즐기며 지냈다. 나는 때때로 ‘그레고리’를 데리고 낚시질을 가곤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인 대회들로 여행하면서 대회 준비 작업을 위하여 함께 자진 봉사를 하였다. 이 일은 우리 아이들로 하여금 훌륭하고 건전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은 어떠한 것도 놓친 것이 없었으며, 놓친 것이 있다면, 성병과 혼외 임신, 낙태, 마약 중독 그리고 오늘날 부모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올바른 지도를 해 주지 않은 젊은이들 사이에 그렇게도 보편화된 이와 같은 또 다른 것들이 있을 뿐이다.
우리 아이들은 감정적으로 잘 적응하고 있는데, 나는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그렇게 많은 일들을 그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예를 들면, 매년 우리 결혼 기념일에는 우리 네 사람 모두를 위한 선물을 갖춘 큰 ‘파아티’를 연다. 선물들은 며칠 전에 ‘피아노’ 위에 쌓아 놓으며, 우리는 특별한 식사를 함께 즐긴다. 그 날은 단지 우리만의 기념일이 아니라,—아이들이 있게 된 것은 바로 우리의 결혼 때문이므로—또한 그들의 ‘파아티’인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남들이 즐기지 못하는 많은 활동, 이를 테면 성서 연설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일과 같은 활동에서 즐거움을 누려 왔다. ‘신티아’는 열살쯤 되었을 때 우리 순회 대회의 많은 청중 앞에서 학생 연설을 하였다. 아내는 ‘신티아’에게 고대 의상 차림을 해 주었으며, ‘신티아’는 마치 1세기에 사는 어린 소녀가 동 시대의 어린 소녀에게 성서 요점을 설명하는 것처럼 연설 내용을 제공하였다. 이 두 아이들은 또한 더 큰 우리 지역 대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감격스러운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만족스럽고 풍부한 생을 즐겨왔다고 느낀다. 아이들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바, 성서 진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젊은이로서 그들의 재능이 자라가는 것에 대해 기쁨을 누려 왔다. 이제 우리 가족 안에 여호와를 섬기는 유능한 성인을 두 명 더 맞이한 지금,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봉사에서 앞으로 더해질 기쁨과 특권을 즐거움으로 기대하고 있다.
[426면 삽화]
나는 ‘그레고리’에게 양탄자 까는 일을 가르쳤다
[427면 삽화]
나의 아내는 ‘신티아’에게 바느질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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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성경 본문—얼마나 정확한가?파수대—1977 |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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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성경 본문—얼마나 정확한가?
이 간행물의 독자들은 아마 보통 “신약전서”라고 불리우는 ‘그리스도인 성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성경’을 구성하는 27권의 책은 약 1,879년 전에 완성되었다. 당신의 성서는 원래의 성서 필자들이 기록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 점을 좀 의심스럽게 생각할지 모른다. 그들은 거의 2천년 동안 기록이 전달되어 오면서 원래의 기록과 달라졌을 것이라고 추리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정반대이다. 성서 원문의 권위자인 ‘프레데릭 G. 케년’은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상 성서 본문은 확실하다고 아무리 강력하게 주장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신약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 성경’이 원래의 기록과 사실상 같다고 확신하게 되었는가? ‘그리스도인 성경’의 책들을 손으로 복사한 수천개의 문헌을 조사해 봄으로써 이다. “사본”으로 알려진 손으로 복사한 그 문헌들을 통해 ‘그리스도인 성경’이 놀랄 만큼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라운 대조
일반적으로 고대 문헌의 경우 사본들이 별로 많지 않다. 예를 들어 ‘로마’ 필자 소 ‘플리니’(61-11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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