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깨80 04월호 20-23면
  • ‘디스코’—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디스코’—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 깨어라!—1980
  • 소제목
  • 비슷한 자료
  • 경고에 대한 감사
  • 위험성을 강조함
  • 모든 ‘디스코’가 나쁜가?
  • 내가 발견한 것들
  • 그리스도인으로서 꾸준히 경계하라
  • ‘디스코’라는 곳
    깨어라!—1979
  • 세계를 휩쓰는 ‘디스코’ 열풍
    깨어라!—1979
  • ‘디스코’의 기원
    깨어라!—1979
  • 그리스도인들은 ‘디스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깨어라!—1979
더 보기
깨어라!—1980
깨80 04월호 20-23면

‘디스코’—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본지에 게재된 ‘디스코’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깨어라!」 1979년 7월호(영문은 3월 22일호)는 독자들에게 ‘디스코’를 경계하도록 경고하였다. ‘디스코’의 본질 즉 정신은 자유롭고 “개방된” 성적 표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디스코’와 그 성적으로 개방된 생활 방식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실제로 있는가? 「깨어라!」 기사를 읽어 본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나는 거듭난 ‘크리스천’입니다. 나는 ‘디스코’가 여러분이 말한 것처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디스코 댄스’ 음악 및 이곳 저곳으로 옮겨 가는 ‘디스코’ 춤은 순수한 오락이지 「깨어라!」지에 인쇄된 너저분한 것과 같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디스코’에 관한 여러분의 잡지를 방금 다 읽었읍니다. 여러분이 말하는 것들은 ·⁠·⁠· 너무 비판적인 것 같습니다. ‘디스코’가 성, 음행, 악습이라고 하다니, 여러분은 미쳤군요! ‘디스코’는 좋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읍니다.”

상당수의 반응은 이상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들의 진상을 올바른 관점에서 명확히 알고 있는가? 첫째로 「깨어라!」지는 ‘디스코’라고 불리우는 모든 것을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둘째로, 우리 중 누구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성서에 따르면 ‘사단’ 마귀가 “이 세상의 통치자”이다. 그는 “이 세상 신”이다. (요한 12:31, 새번역; 고린도 후 4:4) 참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가 사람들을 참 숭배에서 돌아서게 하는 데 세상의 오락도 사용할 것이라고 기대해야 되지 않겠는가?

경고에 대한 감사

편지를 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문제들에 대한 이 성서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그들은 「깨어라!」 기사에 대해 감사를 표명하였다. 그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이구동성으로 ‘디스코’에 자주 드나드는 것과 “토요일 밤의 열기” 같은 ‘디스코’ 영화를 보는 것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경종을 울려 준 것을 감사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실례의 편지들은 다음과 같다.

‘일리노이즈’의 21세된 한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편지하는 것은 ‘디스코’를 다룬 「깨어라!」 3월 22일호에 실려 있는 성서적인 건전한 충고에 대해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토요일 밤의 열기’에 대한 내용은 저에게 충격을 주었읍니다.

“나는, ‘디스코’에 다닐 마음은 조금도 없었지만, 그 춤과 음악을 어느 정도 즐겼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보아라’는 태도를 고무한다는 점에 확실히 동의합니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었읍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태도가 얼마나 퇴폐적일 수 있는가를 깨달았읍니다.”

‘텍사스’ ‘달라스’의 21세된 한 사람은 이렇게 편지하였다.

“‘디스코’에 관한 「깨어라!」지를 읽고 나서 나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 왔을 때 언급한 ‘다른’ 음악에 비교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출애굽 32:17-19, 신세] 그것은 참으로 동물 같은 성향을 들어 내놓습니다. ‘나이든’ 사람들까지도 그 최면적인 박자에 넋을 잃게 될 수 있읍니다.

“그것의 기원과 그것이 어떻게 ‘방탕한’ 사람들에게 스며들게 되었는가를 알려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 젊은이들이 멀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그것을 대단히 싫어하신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바로잡고자 노력하고 있읍니다 ·⁠·⁠·

“우리 젊은 그리스도인 형제 자매들이 이 점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여호와의 새로운 제도에서 모든 음악 중 최상의 것을 즐기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레곤’ ‘포틀랜드’에서는 이러한 편지가 왔다.

“나는 ‘디스코’에 관한 「깨어라!」 3월 22일호에 실려 있는 내용에 대해 여러분에게 감사를 표하고자 합니다. 그 전까지 나는 영적으로 내리받이 길을 걷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내가 히브리서 11:24-26을 읽었을 때 그것은 내게 생기를 회복시켜 주었으며 인생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읍니다. 죄의 일시적인 향락 중 어떠한 것도 우리가 여호와의 왕국에서 거두게 될 것에 비교할 수 없읍니다. 이러한 흥미있는 점들로 나의 주의를 이끌어 주신 데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다음 내용은 ‘뉴우 멕시코’ ‘알버쿼퀴’에 사는 한 젊은 사람이 보낸 편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내가 나의 오락 활동과 습관을 미심쩍게 생각한 바로 그 때 이 기사가 나왔으며 ‘회색’ 지대를 명확하게 해 주었읍니다. 적어도 내게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젊은이가 바랄 것이 없기나 한 듯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읍니다 ·⁠·⁠·

“하나님을 그분의 방법으로 섬기려는 욕망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읍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너무 극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 기사가 나를 위해 해 준 것은 내가 택하는 오락에 대해 의혹과 망설임을 제거해 준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교훈적인 기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캘리포오니아’의 한 청년으로부터 솔직한 편지를 받았다. 그의 편지 일부는 이러하다.

“나는 열 일곱살이고, ‘여호와의 증인’의 한 사람으로 자라났읍니다. 사촌에 의해서 나는 ‘디스코’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그는 춤을 아주 잘 추었읍니다. 나는 정말로 ‘디스코’를 좋아 했읍니다. 나는 “토요일 밤의 열기”를 보러 갔었고, 얼마 있지 않아 ‘스텝’ 전부를 익혔읍니다. 나는 그것을 ‘트라볼타’ 만큼이나 잘 할 수 있었읍니다. 나는 학교 ‘댄스’ 모임에 몰래 돌아다니기 시작하였으며 ‘디스코’ 춤에서 일등상을 받았읍니다. 어디를 가든지 나는 춤추는 것으로 인기를 독점하였으며 사람들은 나의 춤추는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읍니다. 그것은 나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읍니다. 나는 곧 다른 회중에 있는 증인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아이는 내가 추는 것만큼 춤을 출줄 알았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공통점이란 그것이 전부였읍니다. 곧 그 관계는 끝났고 나는 계속 춤을 추었읍니다.

“그 후에 여러분이 ‘디스코’에 관한 기사를 썼으며 그것은 나를 납작하게 만들었읍니다. 내 말은 내가 성서 진리를 사랑하지만 나의 유일한 취미 생활, 혹은 나를 행복하게 해준 어떤 것을 포기하기 싫었다는 말입니다. 나는 줄이기는 하였지만, 중단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자, 순회 대회가 되어 ‘디스코’가 토론되었으며, 우리 회중 집회에서 한 번은 ‘디스코’에 대한 연설이 있게 되었읍니다. 연사는 말하기를, ‘디스코’에 대한 잡지 기사와 순회 대회 ‘프로’의 이유는 어떤 사람들이 그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나에 대한 것임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나는 ‘디스코’를 정말 바싹 줄였읍니다. 그 후 나는 영화 “허리케인”을 보러 갔었는데, 그 영화에서 어떤 부족의 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것은 내가 하고 있던 것과 똑 같았읍니다. 그것을 보았을 때 나는 괴로왔읍니다. 그래서 나는 ‘디스코’에서 완전히 손을 떼었읍니다.

“나는 춤추는 자리에서 음행을 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며 나 자신이 그 일에 가까이 갔었읍니다. 나는 그러한 생활 행로에서 빠져나오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를 진실로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훌륭한 ‘그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격려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띄우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미시간’의 한 고등 학생은 자기가 이 기사들로부터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유익을 얻었는가를 설명하고 나서 이렇게 설명하였읍니다.

“「깨어라!」지는 또한 학교에서 매우 훌륭한 증거 도구의 역할을 하였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혹은 심지어 오늘날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는 젊은이들을 찾아 보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들은 오늘을 위해서 살며 내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디스코’ 잡지는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였읍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에 대한 한 심리학자의 말의 인용문에 주목하였으며, 적어도 그 말투와 행실에 관한 한 그 영화가 추잡하였다는 점에 동의하였읍니다. 그들은 또한 ‘디스코’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알고는 놀랐으며 또한 신체적인 해를 초래할 수 있는 해로운 조명과 소음을 멀리하는 것이 이치적임을 인식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친애하는 형님들, 나는 우리가 ‘디스코’에 관한 내용을 매우 깊이 감사하였음을 여러분에게 알리고 싶었읍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적절한 시기에 우리를 계속 양육시켜 주시고 우리를 영적으로, 또 육적으로 건강하도록 계속 지켜 주심에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읍니다.

“만일 여호와의 뜻이라면 여러분이 이 가장 흥미있는 기사들을 더 실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왜냐 하면 그 기사들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를 도와 주고 지침이 되게 할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현재 청결한 생활을 하는 것의 중요성과 그리고 평화로운 가운데 영원히 사는 웅대한 희망을 깨닫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위험성을 강조함

일부 독자들은 편지 속에 여러 ‘디스코’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비 그리스도인 행실을 드러내 주는 경험담들과 신문 보도들을 동봉해 왔다. 예를 들면, ‘캘리포오니아’의 한 독자는 1979년 5월 6일자 「퍼레이드」지에서 오려낸 기사를 함께 보내 주었다. 그것은 “위험한 춤”이라는 제목하에 이렇게 말한다.

“전국의 ‘디스코’를 휩쓸고 있는 ‘프리크’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위험한 새 춤이라고 경찰은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죽음의 춤’ 혹은 ‘성욕의 춤’이라고 부르며, 다른 사람들은 ‘질투심의 춤’ 혹은 ‘골치거리 춤’이라고 부른다.

“‘짐 무어’가 ‘디트로이트’에서 자기 여자 친구와 ‘프리크’를 공연하였을 때 ‘지미 로저스’라는 이름의 골이 난 청년이,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의 가슴에 총을 세발 쏘았다고 한다. ‘로저스’는 1급 살인 혐의로 고발되었다.

“같은 도시에서 ‘오스카 로스’는 자기의 젊은 아내 ‘샤론’이 이웃 집에서 ‘프리크’를 하는 것을 보고서는 아내를 총으로 쏜 일로 기소되었다.

“‘프리크’는 짝을 지어서 무릎을 구부리고, 다리를 벌리고 서로 마주 닿을 때까지 둔부를 흔들며 서로를 향해 전진하면서 추는 춤이다. 이 순간에 어떤 쌍들은 뒤로 물러 가고 어떤 쌍들은 광적으로 춤을 춘다.”

영국의 한 독자는 ‘런던’의 1979년 5월 2일자 「데일리 메일」지에서 오려낸 기사를 동봉해 왔다. “‘중단되어야 할’ ‘디스코’ 사망”이라는 표제 아래 그 신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디스코’ 폭력을 중지시키려는 활동이 지난 주의 한 학생의 사망으로 ‘런던’에서 ‘디스코’ 사망자 수가 넉 달 동안에 7명에 이른 후로 강행되고 있다.

“대 ‘런던’ 의회의 공공 봉사 및 치안 위원회 부위원장인 ‘브라얀 캐시디’는 어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일부 ‘디스코’ 현장에서의 폭력의 결과로 사망자와 중상자의 수가 증가하는 것을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

“17세된 한 청년은 자기들 약혼을 축하하기 위해 ‘디스코’에 약혼녀를 데려 간 후 칼에 찔려 죽임을 당하였다. ·⁠·⁠·

“‘캐시디’는 이렇게 말하였다. ‘디스코’ 사업이 성장해 가는 산업이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그것과 함께 폭력이 증가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읍니다.

“나는 여러 ‘클럽’에서의 폭력이 많은 경우 배후의 성욕과 함께 매우 육감적인 음악의 격렬한 박자가 그 원인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 ‘디스코’는 매우 “순수한 오락”을 즐길 장소가 아니라는, 적어도 참 그리스도인들이 매우 순수한 오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풍부하다.

모든 ‘디스코’가 나쁜가?

우리말은 “디스코”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장소들 혹은 물건들이 모두 나쁘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음식, 의복 및 식당 등을 포함하여 많은 것들에, 그 단어의 인기로 인해, “디스코”라는 ‘레테르’가 붙여졌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디스코’ 음악과 춤이 반드시 성욕을 유발시키거나 부도덕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 7월의 「깨어라!」 기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다. “‘디스코’는 간단한 음악과 춤이며 원하는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하여 위의 「깨어라!」지는 이렇게 부언하였다. “일부 ‘디스코’들은 아마 음악과 춤이 가끔 나오거나 또는 보통 저녁 식사 시간에 조차도 나오지 않는 식당일 수도 있다. 그러한 장소들과 그와 비슷한 장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용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악과 춤이 나올 수 있다. 이러한 ‘디스코’들은 참 그리스도교의 가르침과 충돌하는 ‘디스코’ 생활 방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캘리포오니아’ ‘로스앤젤레스’의 ‘여호와의 증인’의 한 회중 장로인 ‘베니 골슨’의 직접적인 경험은 ‘디스코’와 그 부도덕한 생활 방식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여행하는 대표자가 그 회중을 방문하고 있던 주간에 ‘베니’는 ‘디스코’에 관한 「깨어라!」 3월 22일호를 기초로 하는 연설을 하였다. 그는 자기의 연설을 기록으로 준비하였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 본다.

나는 작곡가이면서 음악가입니다. 나는 ‘디지길레스피’, ‘아트 블래키’, ‘리오넬 햄프튼’, ‘베니 굳맨’, 및 ‘어얼 보스틱’ 등과 같은 ‘재즈’ 악단들과 함께 녹음하고 연주했었읍니다. 나는 ‘페기 리’, ‘어어다 키트’, ‘코니 프란시스’, ‘엘라 핏처럴드’, ‘다이아나 로스’ 같은 유명한 예술가들을 위해서, 그리고 ‘미션 임파시블’, ‘패트리지’ 가족, ‘매쉬’ 및 ‘매닉스’ 등과 같은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을 위해서 음악을 지었읍니다. 그래서 금년 초에 「깨어라!」지가 ‘디스코’에 관한 특별 기사를 낼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나오기를 열렬히 기다렸읍니다.

마침내 「깨어라!」 3월 22일호가 나왔을 때 나는 그것을 즉시 읽어 보았읍니다. 그 기사는 나에게 괴로움을 주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나는 그 기사에 동의하지 않았읍니다. 나는 매 ‘페이지’ 가장자리의 공란 전부를 개인적인 평으로 채웠읍니다. 동성애가 ‘디스코’ 배후에 있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터무니 없어 보였읍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왙취 타워’ 협회에 편지를 써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읍니다. 그러나 나는 현명한 길을 택하기로 결정하였읍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얼마나 현명한가를 인식치 못하고서 말입니다. 나는 먼저 내가 속해 있는 사업을 밀접히 살펴보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였을 때, 나는 연속적인 충격을 받았읍니다.

내가 발견한 것들

나의 ‘증인’ 친구 하나가 ‘로스앤젤레스’의 주요한 ‘레코오드’ 회사를 위해서 ‘앨범’ 하나를 막 완성했었읍니다. 그러나 그 의도는 ‘디스코’가 아니었읍니다. 회사 내의 한 동성애자가 “파도”를 일으키기 시작했읍니다. 그는(개개의 ‘트랙’이 ‘믹스’되지 않은) 24‘트랙’ ‘테이프’를 ‘뉴우요오크’로 도로 가지고 가서, 아마 ‘베이스 드럼’, ‘심벌’ 및 전기 ‘베이스’ 소리를 “특출”시켜(그것들을 뛰어나게 만들어) 자극적인 ‘디스코’ 박자로 ‘테이프’들을 재 ‘믹스’하려고 했읍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증인’ 친구의 의향에 반대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적어도 그 사람이 ‘뉴우요오크’로 돌아가는 것을 승락하였읍니다.

그들이 ‘뉴우요오크’의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로스앤젤레스’에서 간 그 동성애자는 두 명의 동성애자들과 만났읍니다. 나의 ‘증인’ 친구는 화를 “폭발”시키지 않기 위해서 재 ‘믹스’하는 도중 ‘스튜디오’에서 수차 나와야 하였읍니다. 그 결과는 ‘디스코 믹스’가 잘 되질 않았기 때문에 그 다음에 그가 본래의 ‘믹스’를 자유롭게 계속하였다는 것입니다.

‘증인’이 아닌 내 친구 한 명은 더 최근에 또 다른 주요 ‘레코오드’ 회사와 꼭 같은 문제를 직면했읍니다. 그는 수년 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 한 ‘보컬 그룹’을 위한 (‘디스코’가 아닌) ‘앨범’을 막 완성했었는데, 그 회사에서는 그 ‘믹스’를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그들 역시 동성애자들이 기다리던 ‘뉴우요오크’로 그가 돌아가기를 바랐읍니다.

내가 알고 있는 녹음 기술자의 ‘매니저’는 말하기를 요사이 ‘뉴우요오크’에는 약간의 ‘디스코’ 문제가 있다고 했읍니다. 이것은 이제 함께 단결한 동성애자들이 ‘디스크 자키’들에게 압력을 가하여 동성애자들이 선택한 음악으로 ‘프로그램’을 진행시키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디스크 자키’들은 이에 분개하여 어느 정도 저항하고 있읍니다. 물론, 대중은 ‘디스코’를 열렬히 갈망하고 있읍니다.

나는 ‘디스코’의 도덕적 분위기가 얼마나 나쁜 것인가를 정말 인식하지 못했었읍니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에는 모두가 잠자리 복장을 하고 오는 “‘파자마 디스코’의 밤”이 있는 ‘클럽’이 하나 있읍니다. 여자들은 경쟁적으로 얇고 환히 비치는, 축 늘어진 형의 ‘네글리제’를 입습니다. 그 ‘클럽’은 그러한 밤이면 만원을 이룹니다.

‘디스코’는 참으로 음악과 춤 이상을 뜻하게 되었읍니다. “그건 일종의 생활 방식일세.”라고 최근에 한 친구는 평하였읍니다. 그의 말이 옳습니다. ‘디스코’ 유행물들 즉 ‘T-셔츠’, 꼭 끼고 윤택나는 달라 붙는 바지, 푹 패이고 환히 비치는 ‘블라우스’, ‘비키니’ 같은 속옷을 비춰 주는 ‘플레어 스커어트’ 및 가장 무도회 복장 같은 의상 등 이 모든 종류가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읍니다. 우리는 ‘디스코’의 조명 혹은 사람으로 정신을 잃게 하는 “히프”식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꾸준히 경계하라

어떤 종류의 춤들이 그 자체가 나쁠 것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춤과 음악이 여러 가지 의문스러운 “무대 배경”들과 관련된다면 그 관념은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성서는 “음행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고린도 전 6:18) 우리는 이러한 종류의 것이 우리 정신 속에 없다고 생각하고 싶어할 것이며, 아마 없을 수 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종류의 욕망에 희생이 되었읍니다. 어찌된 일입니까? 그들은 그것을 위한 “준비를 갖”추게 자신들을 맡겨 버립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종류의 욕망의 결과를 향하여 한 발작 한 발작 다가가게 하였고 결국 음행을 범하였읍니다.

사람들에게는 이상한 점이 있읍니다. 사람들은 보통 불행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만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들에게 닥치면 당황해서 이렇게 소리치는 것을 들을 수 있읍니다. “나는 그것이 나에게 일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럴 수 있읍니다. 그것은 심지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읍니다. 우리의 생각 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어떤 “‘디스코’ 비극”에 희생이 되었읍니다. (진행되고 있는 일의 필수적 부분이 되고자 하는) “깊이 들어가”보고자 하는 그 욕망은, 많은 사람을 파멸로 이끌고 말았읍니다. 그 이유는 단지 그것이 처음에는 해로와 보이지 않고 대단히 재미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오락을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이 행복하고 인생을 즐기며 어떤 만족을 누리기를 바라시지만 우리는 분별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이 춤을 추기 전에 여러분은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인가, 아니면 자극을 받기 위한 음악인가? 그 음악과 춤은 우리를 어떤 ‘쾌락’—예비적인 춤의 서곡의 부속물이 되는 쾌락, 즉 어두운 곳에서의 성적 표현으로 인도하기 위해 준비시키고 있는가?”

나는 ‘왙취 타워’ 협회에 그 편지를 쓰지 않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읍니다! 내 직업의 깊숙한 내부에서 어떠한 일이 진행되는가를 밀접히 살펴보고 나서 내가 어딘가 고지식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디스코’에 관한 「깨어라!」 기사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춤은 문화가 산출하는 태도들 중 가장 명료한 표지이다. 우리는 우리가 움직이는 방향을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나아가겠읍니까? 여호와와 함께 하는 길입니까? 아니면 그분과 반대로 가는 길입니까?—기고.

[21면 삽입]

‘‘런던’에서 ‘디스코’ 사망자 수가 넉달 동안에 일곱명에 이르렀다.’

[22면 삽입]

“처음에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23면 삽입]

‘나는 그것이 나에게 일어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5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