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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리를 유린당할 때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깨어라!—1980 | 1월
    • 예수와 ‘바울’이 일부 주장처럼, 사회 문제와 개혁에 투신했어야 하는가? 자, ‘로마’ 제국의 오랜 역사 중에 몇몇 개혁자들이 일어났다. 아마도 그들은 얼마간 좋은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들이 한 일은 대개 그들이 죽은 후 변질되거나 혹은 늦어도 제국 자체가 몰락할 때 일소되었다. 비슷하게, 예수와 ‘바울’이 많은 개혁을 이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늦어도, ‘로마’ 제국 자체가 결국 무너질 때 소멸되었을 것이다. 지나가 버리게 되어 있는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을 쏟을 때 바로 이러한 일이 발생한다.

      사회 개혁에 투신하는 대신 예수께서는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셨다.’ (요한 18:37) 그 결과 그 당시와 오늘날 많은 사람이 그에게 믿음을 두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권리”가 보장될 제도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기회를 획득했다. (요한 3:16) 얼마나 많은 사회 개혁가가 그들의 고된 노력으로 이러한 지속적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박해에 대하여는 어떠한가?

      세계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으며 숭배와, 종교에 관한 자기 의사를 자유로이 표현할 권리를 부정 당하고 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심지어는 살해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학대에 대해 그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가?

      이러한 경우에도 역시 그들은 예수의 본을 따른다. 그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불법 체포 및 점유, 변칙적인 재판 및 선고,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의 적법한 소송 절차의 박탈을 어떻게 겪으셨는지 기억하라. 예수께서는 왜 다수의 ‘유대’인 추종자들에게 이러한 불공평을 그가 모면하도록 도우라고 명하지 않으셨는가? 그분 자신이 이렇게 설명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한 18:36.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그분의 추종자들에게 그분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장 봉기를 일으키라고 청하지 않으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본을 따르고 있다. 물론 숭배의 자유를 옹호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이용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좋은 소식을 옹호하고 법적으로 확립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이사’에게 직접 상소하였다. (사도 25:11; 빌립보 1:7, 신세) 그러나 합법적인 조처를 취할 길이 없다면, 그리스도인은 믿음에 고착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오실 것을 신뢰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셨으며, 이것이 죽음을 초래하기는 했지만 자신과 인류에게 가져 온 놀라운 결과를 생각해 보라.—히브리 2:9, 14, 15.

      그러므로, 어떤 이유로 권리를 유린당하든지 간에,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소위 “인권”이라는 것을 온전히 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참으로, 모두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며, 의가 충만하고 모두의 “권리”가 보장될 새로운 질서가 절실히 필요하다. (베드로 후 3:13) 권리를 얼마간 침해당할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견해를 따를 때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미가 7:7.

  • 동성애와 그리스도 교회
    깨어라!—1980 | 1월
    • 성서의 견해

      동성애와 그리스도 교회

      “성공회 회의가 교회에게 동성애 사제들을 제지하지 말도록 권고하다”라는 표제 아래 1979년 6월 4일자 「뉴우요오크 타임즈」지는 12명으로 구성된 전국 성공회 위원회의 보고서를 실었다. 그 보고서는 “그들에 대한 막대한 교양상의 압력 때문”에 노출되기를 바라지 않는 동성애자들과 “충분히 견디어서 이제 햇빛을 보기 원하는” 다른 동성애자들의 성직 임명을 승인하였다. 그 보고서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모든 성직 후보자에 대한 의문점은, 여자든 남자든, 그리스도의 양 떼에게 본이 되는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교회가 건전한 것으로 간주하는 행실에 기꺼이 순응하려 하거나 순응할 수 있는 동성애자들의 성직 임명에는 장벽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겠지만, 얼마의 동성애자들은, 자기들이 동성애자들임을 인정하면서도 건전한 행실에 순응할 수 있고 또 순응해 왔다.”

      몇 년 전에 어느 좌담 ‘프로’의 여 사회자는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교회를 설립한 한 사람과 대담을 하게 되었다. 일단의 대담자들과 청중은 모두 동성애자들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봉사자들이 되는 문제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의 여 사회자는 성서적인 근거로 이 문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 사회자는 한 시청자로부터, 그가 취한 입장을 지지하는 성귀들이 들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9월 11일 금요일 저녁 좌담회의 사회는 훌륭하였읍니다. 대담자들과 청중의 포위 공격을 받으면서도 당신은 동성애에 대한 당신의 입장을 고수하였읍니다.

      “‘트로이 페리’가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매우 한심한 일입니다. 그는 좌담회에서, 서로 모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히브리서 10:25을 인용하여 정당화하려고 하였읍니다. 그의 추론은 동성애자들도 그 가운데 포함된다는 것이었읍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동성애자들이 하나님 회중 내에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읍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 20:13.

      “신약에도 단죄되어 있읍니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의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로마 1:26, 27.

      “동성애자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우는 것은 살인자들, 강도들, 간음을 행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교회를 세워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악행을 중지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호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안에서 씻음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린도 전 6:9-11.

      “위의 인용문 바로 전 장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에 언급된 부도덕한 죄를 짓는 자들과는, 그들이 아무리 그리스도인 형제들이라고 주장한다 하더라도, 사귀지 말라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회중 밖으로 쫓겨나야 하였읍니다. 이 말이 결코 그들과 함께 모이라는 말로 들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5:9-13.

      “동성애를 ‘소도미’(남색)라고도 하는데 이 단어는 동성애를 행하여 하나님께 멸망받은 ‘소돔’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유행하는 사상입니다. ‘준 로카르트’는 당신을 설교한다고 비난하였읍니다. 오늘날 설교하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 되었읍니다. 동성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싫어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교하는 것은 싫어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도덕이 극도로 붕괴된 사회에 있어서 설교하는 것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란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무슨 짓이든 방임하지 않는다면, 엄격하다 무정하다 이해심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살인을 이해하기 위해 살인을 범해야 할 이유가 없읍니다. 우리는 동성애를 승인하지 않으면서도 동성애에 대하여 약한 사람들에게 동정적일 수 있읍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의무가 있다면 어떠합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저항해야 할 약점이 있고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할 일이 있읍니다. 의로운 사람은 일곱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는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어려운 일, 즉 자신을 억제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억제하는 일도 현대에는 싫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신 도덕을 받아들임으로써 오게 되는 불쾌한 일을 피합니다. 신 도덕이란 옛 부도덕에 ‘승인필’ 딱지를 붙인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에 하나님을 끌어 들여서 그분도 그것을 승인하신다고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매우 불쾌하게 느끼고 계실지 모릅니다. 우리 이전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끼신 일이 있읍니다. 말라기 2:17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 함이니라.’

      “방임적인 사회는 무엇이든 좋다는 현대 사상을 절찬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견해는 전혀 다릅니다. 이사야 5:20에 이렇게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찐저!’

      “‘버어지니아’ 양, 나는 당신의 좌담회를 즐기며 당신의 용기를 칭찬합니다.”

      이 좌담회 여 사회자는 이렇게 답장하였다. “매우 유익한 편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나는 당신의 말에 온전히 동의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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