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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은 어떤 오락을 즐기는가?
    깨어라!—1979 | 5월
    • 당신은 어떤 오락을 즐기는가?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멍청한 소년이 된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다. 적당한 오락은 심신에 생기를 준다. 그것은 즐거움을 주며, 인생에 흥미를 더해 줌으로써 따분한 기분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러므로 오락을 “정신에 유쾌한 일”이라고 정의한 것은 이해할 만하다.

      오락은 혼자서 또는 몇명이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도 있고, 또는 좀더 형식을 갖추고 대중성이 있어, 큰 모임이 되거나 극장 또는 구장에서 행해지는 것도 있다.

      사실, 본인이 원한다면, 거의 모든 것이 오락이 될 수 있다. 오락은 매우 개인적인 문제이다. 왜냐 하면, 각자의 기호가 다르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는 즐거운 일이 내게는 따분한 일일 수 있다. 남자들에게는 흥미로운 것이 여자들에게는 싫증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다.

      비용

      오늘날 오락은 대규모 사업으로 발전하였다. 미국에서만도 여가 활동에 소비하는 돈이 연간 무려 200,000,000,000‘달러’에 이른다. 사람들의 소비 규모로 볼 때, 이것은 미국 내에서 으뜸가는 기업이 된다! 일례를 들면, 작년 한해 동안 3억명 이상이 ‘스포오츠’ 행사를 관람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상업적인 오락에는 돈이 많이 든다. 그것이 가계에 영향을 미치는가? 당신은 이따금 영화나 음악회 또는 운동 경기 관람권의 가격을 보고 새삼스레 놀라는 일이 있는가? 오락이 가계를 그처럼 크게 축내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방도를 생각해 보고 싶을 것이다. 값비싼 오락에 못지 않은 보람이 있으며, 주머니 사정에 부담이 덜 되기도 하는 다른 오락을 즐기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오락에 관해 좀 더 생각해 보면, 어떤 면에서는 돈 이상의 대가를 치르는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오락은 심한 폭력, 부도덕 또는 도박이 관련되어 있는데, 성경은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법 또는 행동 원칙과 반대되는 것임을 밝혀 준다.

      오락이 불건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거기에 과도하게 빠지는 문제가 있다. 쾌락 추구에 정신이 지나치게 빠져드는 것이다. 당신이 아는 사람 중에도 아마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오락이 끝난 후에도 잊지 못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쾌락에 대한 이러한 과도한 사랑은 그 사람을 하나님의 승인받는 생활 방식에서 돌아서게 만들고 ‘그 영적인 사람’을 죽게 만들 수도 있다.

      성서 예언의 성취에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일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서는 우리 시대의 특징 한 가지로 사람들이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디모데 후 3:4.

      기타의 함정들

      일부 오락, 특히 상업적인 어떤 오락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그것이 흔히 기분 전환이나 만족감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운동 경기에서 어떤 ‘티임’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은 그 ‘티임’이 지게 되면 낙심하고, 불만을 느끼고 심지어 성을 낸다. 그러한 경기는 그들에게 실제적인 즐거움을 가져다 주지 못한 것이다.

      또, 상업적인 오락은 행동보다는 관람에 더 역점을 둔다. 당신 자신이 참여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인 구경꾼이 된다. 이것은 그 사람의 건강,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의 능력에 해를 미칠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오락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참석한 사람들이 뜻밖의 만행을 저지른다. 일부 ‘로크’ 음악 연주회에 참석한 관중들에 관한 신문 기사나 기타 ‘뉴우스’를 생각해 보라. 어떤 운동 경기에서 격분한 ‘팬’들이 폭도로 변하고, 그 결과 부상이나 심지어 사망자까지 발생하는 점은 어떠한가? 그러한 때에는 구경꾼들이 참여자가 되지만 오락에의 참여가 아니라 폭행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단지 ‘텔레비젼’에서 그러한 경기를 시청함으로써 좋지 못한 사람들 가운데 휩쓸리는 문제를 해결할지 모른다. 그들은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인 난폭한 군중 가운데서 보다는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구경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텔레비젼’ 구경의 한 가지 이점은, 그 오락이 좋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면—그가 그렇게 할 만큼 의지력이 있고 또 도덕적 성실성을 지니고 있을 경우—그러한 ‘프로’를 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얼마의 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텔레비젼’ 시청자는 여전히 구경꾼이지 참여자는 아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상업적 오락에는 물론 그 나름의 역할이 있고 또 적절히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참여자가 될 수 있는 일들로서 특별히 고려해 볼 만한 어떤 다른 오락이 있는가? 매우 즐거움을 얻을 수 있고, 심지어 격려적이면서도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오락으로서 어떠한 것이 있는가?

  • 오락의 필요성을 무시하지 말라
    깨어라!—1979 | 5월
    • 오락의 필요성을 무시하지 말라

      너무 없어도 좋지 않고 너무 많아도 좋지 않다

      일을 중요시하던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락을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하였다. 오늘날에 와서는 쾌락 추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주요 목적이 되었다. 하지만, 일과 오락은 서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올바른 작업은 인생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한다. 합당한 오락은 피곤해진 일꾼들에게 휴식을 주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을 일으켜 주는 환영할 만한 기분 전환의 역할을 한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많이 하면 육체적으로 지치게 되고, 정신적으로도 침체된다. 휴식에 필요한 정도 이상의 긴 휴가는 지루한 감을 일으킨다. 오락을 무시하고 일만하는 것은 좋지 않다.

      우리는 청교도들처럼 모든 오락을 나쁘게 생각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된다. 폭식이 싫다고 먹는 일을 단죄해서는 안된다. 과음이 밉다고 술을 마시는 일을 금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사람들이 오락에 지나치게 몰두한다고 해서 오락을 못마땅한 것으로 봐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락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오락 그리고 올바른 정도의 오락을 분간하도록 해야 한다.

      집 밖에서 오락을 즐기는 일

      많은 사람이 해변, 산 또는 공원으로 몰려들기 때문에 어떤 지역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려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들은 수없이 다양한 여러 가지 오락—걷기, 수영, 서서히 달리기, 배낭을 지고 ‘하이킹’을 가는 일, ‘캠핑’, 야유회, 자연을 관찰하는 일 등등—을 제공해 준다.

      하지만 반드시 멀리 여행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숲 근처에 살고 있다. 뒷뜰에라도 새집과 새 모이 주는 곳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단순히 풀밭에 엎드려 관찰해 보더라도 온갖 벌레들, 개미들, 거미들이 흥미있게 움직이는 것을 구경할 수 있다. 당신은 대도시 ‘아스팔트 정글’ 속에서 살고 있는가? 그러한 곳일지라도 공원이나 동물원에 가 볼 수 있다. 박물관과 식물원에 가 보면 즐거움도 있고 배우는 점도 있다.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들을 위해 그러한 계획을 세워 보라. 그들에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지적해 줌으로써 방향을 제시하고 자극을 주라. 아마 그들에게 나비나 개미의 일생의 과정을 설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호와의 창조물에 관한 자녀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라. 이것은 자녀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피조물들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고, 땅과 그 위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좋은 방법이다. 욥기 12:7-10에서 말한 대로 해 보라.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때로는 일 자체가 오락이 된다. 사무실에서 사무를 보는 사람 또는 일주일 내내 책과 씨름하는 학생은 마당에 나가 일하는 것이 휴식이 되고, 또는 조그마한 밭을 일구는 것이 만족감을 줄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도 조그마한 땅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창가에 놓은 화초 상자에 꽃이나 채소를 가꿀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실내의 화초에 재미를 붙이는데, 이것은 집안을 장식해 주기도 한다. ‘카나리아’나 기타 새들을 집안에서 키울 수도 있다. 금붕어 키우는 일도 재미있는 일이다.

      여호와의 흥미로운 창조물들을 집안으로 들여와서 관찰하고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이 점에서도 상상력을 사용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하여 부모가 자녀들의 관심을 이끌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취미

      어린 아이들은 흙으로 과자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머니들은 그런 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흙은 그렇게 더러운 것이 아니고 쉽사리 물로 씻어 낼 수 있다.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이러한 놀이가 취미로 변할 수 있다. 흙이 백토로 바뀌고 과자가 도자기로 바뀐다. 도자기 제조는 흥미있는 공예로서, 능란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그 일을 해 왔다. 기타 취미로서 매듭 화분 걸이를 만드는 일, 바느질, 뜨개질, 요리, 무늬를 넣고 꼬는 가죽 세공, 등등의 것들이 있다.

      “윈도우 쇼핑”은 건장한 남자도 떨게 만드는 일이지만, 많은 여자들은 그것을 즐겨 한다. 어머니들은 그것을 통해 교육을 줄 수 있다. 가격, 품질, 흥정하는 일 및 경제 원칙들을 함께 이야기한다. 특히 상점들이 문을 닫은 후에 “윈도우 쇼핑”을 하게 되면 돈안드는 소풍이 된다.

      또 한 가지 흥미있고 교육적인 일은 공장 견학이다. 가족을 데리고 인쇄소, 신문사, 방직 공장, ‘초콜레트’ 공장, 자동차 공장, 탄광 등을 가 보라. 많은 공장들은 견학을 시켜 주며, 매일 얼마의 제품이 생산되는가를 알아 보면, 매우 흥미있고 즐겁다. 예를 들어 제철소를 견학하면 학교에 제출할 보고 자료를 쉽사리 얻을 수 있다.

      흥미 본위

      오락이 항상 교육적이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 역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나이 많은 사람에게나 젊은 사람에게나 심각한 일들을 대처해 나아갈 수 있도록 기분 전환과 휴식을 얻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흥미를 갖는 점이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루할 수 있다. 남녀에 따라서도 흥미의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 연령도 관계가 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젊은이들이 자기들처럼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장기 두는 일을 항상 만족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10대들은 활력이 넘치며, 그것이 발산되어야 한다. 그들은 야구나 배구, ‘배드민튼’, 송구, 농구, 축구, 또는 기타 다른 놀이를 하고 싶어할 것이다.

      아마 두세 가족이 함께 공원으로 가서 야유회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 원하는 사람들은 서로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게임’을 통해서 억제되었던 힘을 발산할 수도 있다. 만일 자연스런 시합을 한다면 해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만을 추구한다면 다툼이 일어나고 재미도 없어진다.

      좀더 어린 자녀들은 그네를 탄다든가 모래 상자에서 놀 수도 있다. 빈 상자, 몇개의 막대기 또는 나무 토막이 아이들의 풍부한 상상력에 따라 집이나 동굴도 되고, 비행기나 자동차 등등이 된다. 많은 경우 값비싼 장난감들은 버려둔 채, 아이들은 온종일 모래더미에서 지내거나 커다란 마분지 상자를 가지고 논다. 그들의 상상에 따라 그것은 순간 순간 그들의 마음에 드는 무엇으로든지 변한다. 20‘달러’짜리 ‘플라스틱’ 불자동차는 언제까지나 불자동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큼직한 마분지 상자는 무엇으로든지 바뀔 수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바라보든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공놀이를 구경하든지, 할 만하다고 생각되면 거기에 함께 어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가족들이 함께 어울리게 되면 가정이 화락해지고 서로가 가까와지며 세대 차가 없어진다. 또 이러한 마련은 나쁜 길에 빠지는 것을 막아 준다. 만일 모두가 창조주를 숭배하는 사람들이라면, 악한 교제로 인해서 선한 습관이 침해되는 일을 피하게 된다. (고린도 전 15:33) 가족들이 함께 공부하고 전도할 뿐 아니라 함께 깨끗한 오락을 즐길 때 회중에는 형제 사랑과 이해가 증진될 것이다.

      음악과 ‘댄스’

      어떤 가족은 음악을 좋아할지 모른다. 악기 연주법을 배우는 일은 도전이면서도 만족감을 주며, 듣는 사람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만일 그리스도인 가족 중 몇명이 악기를 다룰 줄 알면, 그들은 함께 연주하여 자신들도 즐기고 남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자 할지 모른다.

      음악(성악이든 기악이든)이나 춤은 하등 나쁜 것이 없다. ‘이스라엘’에서의 여호와의 숭배에는 기악과 성악이 사용되었다. 노소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으며,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집단적으로 춤을 추었다. (출애굽 15:20; 시 87:7; 149:3; 150:4; 사사 11:34; 예레미야 31:13; 마태 11:17; 누가 15:25) 한번은 심하게 춤을 춘다고 불평한 사람도 있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싫어하지 않으셨다.—사무엘 하 6:20.

      하지만, 춤을 추는 일은 앞서 말한 바 먹고 마시는 일과 같다. 그것은 절도 여부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 음악은 감미롭고 부드럽게 흘러나올 수도 있고 강한 박자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소리가 지나치게 소란스럽고 커서 듣는 사람의 청각에 불쾌감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방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춤의 경우는 속도 여부에 따라 그 춤의 양불량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춤이 성적인 암시나 자극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합당한 오락이 될 수 없다!

      경험에 의하면 그러한 경우에 적절한 감독이 필요하다. 이것은 물론 깨끗하고 순결한 즐거움을 방해하기 위함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도덕을 위태롭게 만드는 극단적 행동을 막기 위함이다. 어떤 분위기 하에서는 심지어 ‘월츠’도 부도덕하게 될 수 있다. ‘포크 댄스’, ‘스퀘어 댄스’ 및 대부분의 현대 ‘댄스’는 적절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좋지 못한 분위기에서는 그러한 춤도 타락할 수 있다.

      독서와 대화

      좋은 책들과 잡지 기사들 가운데는 즐거움을 주는 것도 있고 도덕을 해치는 것도 있다. 후자에 속하는 것들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불러서는’ 안된다. 참되고, 덕이 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에베소 5:3; 빌립보 4:8.

      이러한 원칙은 영화와 ‘텔레비젼’에도 적용된다. 아직도 깨끗하고 온당한 오락이 되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나 그러한 영화는 보편적이 아니라 예외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다. 많은 ‘텔레비젼 프로그램’들은 기분을 전환시켜 주며, 교육적인 가치가 있다. 여러 기록 영화들은 과학, 자연의 역사, 우리 시대의 사건 기타 흥미있는 분야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한 것들은 좋은 독서물들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재미있는 대화 거리를 제공해 준다.

      대화? 그렇다. 대화는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대화를 원한다는 사실은 인기있는 ‘텔레비젼’ 이야기 ‘쇼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흥미있게 대화를 해 나아갈 줄 모르는 것같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기는 하지만 고무적인 사상이나 생각을 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서도 흥미있는 사실들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들의 어린 시절, 그들의 처음 직업, 그들이 현재의 직업을 갖게 된 경위, 어떻게 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등—그러한 화제를 이끌어 내는 질문을 하면 놀랍게도 흥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진다.

      만일 우리가 지각이 있고, 예의바르며, 재치있고, 진지하게 사의를 표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말이 없는 사람들도 대화에 잘 응하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흥미를 가지면 그들도 당신에게 흥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곧 두 사람 사이에, 네 사람 또는 여섯 사람 사이에 대화가 오가게 되고, 모든 참여자가 즐기게 될 것이다. 통용 기원 제1세기에 희랍 사람들과 그들의 방문객들은 이야기하기를 무척 좋아하였다.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일로만 세월을 보내고 있었읍니다.”—사도 17:21, 새번역.

      읽고, 관찰하고, 듣고 생각하라. 그러면 재미있는 대화의 소재가 될 만한 참신한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논쟁적이 되거나 독선적이 되는 일을 피하라. 그것은 대화를 중단하게 만든다. 격려적이고 재치있으며 즐거운 대화자가 되도록 하라.—잠언 15:1; 16:21-24; 25:11; 전도 12:10; 골로새 4:6.

      결론적으로, 못마땅한 오락을 단지 거절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오락으로 대치하라. 만일 당신의 종교가 무조건 모든 오락을 단죄한다면, 당신의 자녀들은 당신과 그 종교를 떠나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오락이 없는 공백 상태를 방치하지 말라. (마태 12:43-45) 다음 기사에서는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오락을 더 알려 준다.

  • 집안에서 즐기는 놀이들
    깨어라!—1979 | 5월
    • 집안에서 즐기는 놀이들

      저녁에, 특히 겨울철에는 옥외 활동이 제한을 받는다.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으로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텔레비젼’을 보는 것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한 가지 오락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화를 저해하고 사람들 사이의 진정한 교제를 방해한다. 그러면 어떻게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가?

      일부 옥외 ‘스포오츠’는 그 규모를 축소시키고 방법을 수정하면 집안에서도 할 수 있다. ‘테니스’가 그 한 예이다. 많은 가정에서는 탁구가 인기가 있다. 어떤 가정에서는 지하실이나 빈 방에 탁구대를 설치해 놓는데, 온 가족과 손님들에게 좋은 오락거리가 된다.

      ‘보울링’도 그 규모를 축소시키고 조정을 하면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오츠’이다. 좀더 작은, 아마 ‘플라스틱’제 ‘핀’을 사용하고 ‘보울링’ 공 역시 비슷한 재료로 만든 것을 이용할 수 있다. ‘핀’들이 아주 가볍다면 ‘테니스’ 공을 이용할 수도 있다.

      당구는 역사깊은 옥내 인기 오락이다. 그러나 일반 당구장은 보통 환경이 좋지 않다. 그러므로 어떤 가정에서는 자기 집에 당구대를 설치해 두고 가족들끼리 또는 벗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 ‘카아드’ 놀이를 즐긴다.

      가정 오락 기구 생산은 대규모 사업이다. 미국의 장난감 및 오락 기구 판매고가 최근에 30‘퍼센트’ 이상 증가한 사실이 이 점을 알려 준다. 특히 인기있는 것은 ‘텔레비젼’ 장치를 이용한 ‘놀이’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텔레비젼’ 수상기에 부착시키는 원격 조정 오락 기구를 구입하였다. 이것을 가지면 전자식 ‘테니스’ 경기, 야구 경기, 장기 등등의 놀이를 할 수 있다.

      판을 이용하는 놀이

      판을 이용하는 놀이 기구가 오락 기구 생산업자들의 판매고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토지와 철도를 사고 파는 ‘놀이’인 ‘모노폴리’는 오랫동안 가장 인기를 누려왔다. 그 놀이 기구가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1934년 이래, 그것은 전세계에 8,000만벌 이상이 팔려 나갔다. 미국에서만도 1975년 한 해 동안 ‘모노폴리’ 화폐가 400억 ‘달러’가량 인쇄되었는데, 이것은 그 해에 미국 조폐국에서 인쇄한 실제 화폐의 근 두배나 되는 액수였다. ‘모노폴리’ 놀이는 약 46개국에서 행해지는데, 나라에 따라서 돈은 ‘달러’, ‘프랑’, ‘마르크’, ‘페세타’, ‘엔’ 등으로 바뀐다.

      아마도 가장 오래된 판놀이 가운데 하나인 주사위 놀이가 그 인기를 되찾고 있다. 고대 ‘갈대아’ 지방 ‘우르’의 폐허에서 고고학자들은 지금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주사위 한벌을 발굴해 냈다. 고대 ‘이집트’인들과 ‘로마’인들도 주사위 놀이를 하였다. 주사위 놀이가 인기를 얻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배우기 쉽다는 점인데, 그러나 그것을 완전히 습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장기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즐겨온 판놀이이다.

      단어 놀이 역시 매우 흥미있고, 자신의 어휘를 증가시켜 주는 매우 훌륭한 놀이이다. 재미있는 단어 놀이 한 가지는 글자 맞추기인데, 이것은 ‘크로스 워어드 퍼즐’에서 생겨났다. 이 놀이는 1930년대에 시작되었지만 1953년에 와서야 인기를 얻게 되었다. 현재는 이 놀이 기구가 매년 수백만개씩 팔리고 있다.

      자기 나름의 놀이를 창안함

      그러나 반드시 다른 사람들이 창안해 낸 놀이만을 즐기라는 법은 없다. 당신 자신이 놀이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게임’은 아니지만, 한 중년 신사는 매우 재미있었던 어떤 가족적인 오락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10살부터 15살 사이인 네명의 조카들이 다음날 저녁 우리를 위해 자기들이 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겠다고 귀뜸해 주었다. 그들은 실제로 노래와 춤으로 엮어진 ‘프로그램’을 짰으며, 10살짜리 조카가 그 놀이의 주역을 맡았다. 그들은 한 시간 이상 우리를 매우 즐겁게 해 주었다.”

      독일 북부의 한 부부는 자녀들에게 다른 나라 사람들에 관해 가르치는 놀이를 하나 만들기로 하였다. 그들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것처럼 꾸몄다. 그 중 아주 흥미있는 점 한 가지는, 그들이 미리 선정한 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먹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 나라에 관해 토론하며, 그 나라에 관한 사진을 보며, 그 나라 특징과 습관들에 관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며 그 날 저녁을 보내곤 하였다.

      어느날 저녁 이 가족은 “‘제트’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자녀들에게 일본 사람들 식으로 마루에 앉는 방법, 젓가락을 사용하여 식사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물론 젓가락을 사용해서 식사를 해 보지 않은, 또는 젓가락을 사용하여 식사를 해 보려고 조차도 하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처음 해 보는 젓가락질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드디어 네살짜리 꼬마 ‘안드레아’는 “아빠, 비행기 타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 하고 졸라댔다. 대부분의 가족들은 그러한 오락을 무시해 버리겠지만, 당신은 그것이 재미있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많은 나라에서는, 성서 이야기를 무언극으로 보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이 누구 또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 맞추도록 하는 놀이가 인기있다. 방주를 짓는 ‘노아’, ‘골리앗’을 무찌르는 ‘다윗’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는 ‘룻’ 기타 여러 가지 유명한 이야기들은 쉽사리 그리고 간단하게 무언극으로 나타내질 수 있다. 정답을 맞힌 사람은 다음번 무언극 문제를 낼 수 있으며, 모두 한번의 차례가 돌아갈 때까지 한 사람이 두번 하지 않는다.

      또 한 가지 가능성있는 놀이는 부엌, 직장, 또는 기타 여러 장소에서 소리들을 녹음했다가 그 소리들을 그 모인 사람들에게 틀어 주고 알아 맞추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휘장 뒤에서 사람이 소리를 내고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알아맞추도록 하는 ‘게임’도 있다. 종이를 찢는 것, 병마개를 따는 것, 견과를 깨는 것 등등의 소리를 가지고도 할 수 있다.

      ‘그룹’을 지어 노래하는 것도 훌륭한 오락이다. ‘멜로디’를 익히고 노래를 부르는 정도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한 노래의 다른 ‘파트’ 즉 ‘앨토’, ‘테너’, ‘베이스’ 등을 배우는 것도 좋다. 네 ‘파트’의 화음을 맞춰 노래부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즐겁고 유익할 것이다.

      자신이 만든 “‘카아드’ 놀이”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놀이를 재미있게 즐겼다. 먼저, 판지 또는 두꺼운 종이를 잘라서 20개 또는 그 이상의 ‘카아드’를 만든다. 그 다음 짝이 되게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약 10쌍의 ‘카아드’가 만들어지게 된다. 경험이 많아지면 더 많은 쌍의 ‘카아드’를 만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카아드’를 전부 섞은 다음 그것들을 뒤집어 놓으라. 각자는 차례로 두개씩 집는다. 만일 그가 동일한 그림을 두개 집었다면 그것들을 자기가 갖는다.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는 집었던 ‘카아드’를 제 자리에 돌려 놓는다. 만일 그 사람이 짝이 맞는 ‘카아드’를 집어내지 못했으면, 차례가 다음 사람으로 넘어간다. 목표는 누가 짝맞는 ‘카아드’를 가장 많이 집는가를 알아 보는 것이다. 도전이 되는 점은 당신이 본 어떤 그림이 어디에 있는가를 기억하는 점이다.

      또 한 가지 놀이를 소개한다. ‘카아드’에다 어떤 성서 인물의 직업, 그 사람의 특성이나 특징, 그리고 그가 관련된 사건들을 기재한다. 문제의 실마리들 중 어떤 것은 쉽고 또 어떤 것은 좀더 어려울 것이다. 놀이를 하는 각자는 다른 사람이 그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맞출 때까지 자기 ‘카아드’에서 실마리를 한 가지씩 읽어 준다.

      또 다른 놀이는 “성귀 찾아내기”이다. 각 ‘카아드’에 다음과 같은 경우를 한 가지씩 기재하여 그 ‘카아드’들을 돌린다. 직장 동료가 높은 생활비에 대해 불평을 한다. 어머니가 버릇없는 아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학교 친구가 마약을 시험해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각자가 자기 ‘카아드’에 적혀 있는 경우를 읽으면, 모든 사람은 그 경우에 해당되는 적절한 성귀를 하나씩 찾아낸다. 시간을 끌지 못하도록 시간 제한을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제안된 성귀들을 토론한다.

      많은 사교 모임에서 행해지는 인기있는 ‘게임’ 한 가지는 “나는 누구일까요?”일 것이다. 커다란 ‘카아드’나 종이에 성서 인물의 이름을 적은 다음, 그 역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의 등에 붙인다. 그 사람은 자기 등뒤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모른다. 그 사람은 “나는 예수가 탄생되기 이전에 살았읍니까?”, “나는 왕이었읍니까?”, “나는 충실한 왕이었읍니까?” 등등의 질문을 해서 자기 등에 붙여진 인물의 이름을 알아내야 한다. 대답은 단지 “예”, 또는 “아니요” 그리고 “모릅니다”라고만 할 수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집주인은 손님들이 편안감을 느끼게 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게임’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그냥 구경하기를 좋아할 것이며, 그렇게 구경하는 것이 그들에게 더 즐거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전원이 참여하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또, 참석한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놀이를 선택해야 한다. ‘게임’이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어려워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만큼 할 수 없기 때문에 난처한 기분 또는 속상한 기분을 갖게 되지 않도록 경쟁심을 일으키지 않아야 할 것이다.—갈라디아 5:26.

      글자 놀이

      성서 인물의 이름을 제시하여 간단한 글자 놀이를 할 수 있다. 다음 사람은 앞의 사람이 댄 이름의 마지막 글자의 끝 자음이나 모음으로 시작하는 이름의 성서 인물 하나를 대야 한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사람이 ‘아담’이라고 하면, 다음 사람은 ‘모세’라고 할 수 있고, 다음 사람은 ‘엘리야’, 이런 식으로 이름을 대 나아갈 수 있다. 동일한 이름을 두번 댈 수 없게 하면 좀 더 어렵게 된다. 이와 비슷한 놀이로서, 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가나다 순을 따르는 것인데, 각자는 성서 인물의 이름을 가나다 순으로 댄다.

      하루 저녁을 즐겁게 보내며 대화 거리를 마련하는 데는 한 두가지 놀이로 충분할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놀거나 한 가지 놀이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손님들을 질리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저녁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는 것처럼 따분하고 피곤하게 될 수도 있다.

      참으로 많은 오락들이 있다. 적당한 오락은 심신을 새롭게 해 주고, 즐거움을 가져다 주며, 따분한 기분을 없애 준다. 그러므로 오락의 필요성을 무시하지 말라.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디모데 후 3:4) 오락을 합당한 위치에 두도록 하라.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8-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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