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 안전파수대—1981 | 1월
-
-
현재와 미래의 영원한 안전
모든 사물의 가치를 아시는 창조주께서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이러한 조언을 하게 하셨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리라].” “많은 군대로 구원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함에 말은 헛 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잠언 11:28; 시 33:16, 17)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러한 진실한 말씀을 하셨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그의 재산이 그의 목숨을 늘여 주지는 못한다.”—누가 12:15, 새번역.
물론, 악화되는 범죄 환경 속에서 우리는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실제적인 조처들을 취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수단들이 기껏해야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고 우리의 안전을 조금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참으로 바라는 것은 외적 환경의 어떠한 변화도 우리에게 항구적인 해를 입히지 않는 그러한 보장이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가능한가? 우리의 생활의 길을 현재와 미래에 영원히 안전하게 해 줄 만큼 강력하고 권위 있는 근원이 있는가? 우리는 폭력, 식량 부족 및 경제난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안전한 가운데 살 수 있는가?
진정한 안전을 식별함
다음과 같은 점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그들이 적대 국가들에게 둘러 싸여있는 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기들의 집과 마을을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 둔 채 종교적인 축제들을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여행할 수 있었는가? 강력한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위협하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지지 않았는데 어떻게 185,000의 적군들은 몰사당하였는가? (열왕 하 19:32-35) 남녀 노소로 된 약 3백만에 이르는 한 민족이 어떻게 40년간이나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에서 살 수 있었는가?—신명 8:15.
만물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안전하게 해 주신 것이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 ‘다윗’이 다음과 같이 외친 바와 같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시 4:8.
당신은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서 현 20세기에도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신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돌보고 계심을 의심하는가? 당신 마을의 은행장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 염려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이 필요한지만 알려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돌봐 드리겠읍니다.” 이러한 약속은 안전에 대한 당신의 염려를 덜어 주는가? 물론, 은행장이 이러한 보장을 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종들의 필요를 돌보겠노라고 보증해 오셨다. (마태 6:31-33) 우리는 이 점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존자께서 과거와 현재의 실례에서 보여 주신 바와 같이, 항상 자신의 말씀을 이행하시기 때문이다.—여호수아 21:45.
현명한 왕 ‘솔로몬’은 물질적인 것들의 가치가 제한되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누렸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그로 하여금 안전한 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술하였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잠언 18:11) “여기느니라”는 말은 얼마나 참된가! 부한 사람은 이러한 값진 물건들이 재난이 닥칠 때 자기를 보호해 줄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경험들은 그러한 “높은 성벽”이 경제 난국, 치솟는 물가고, 정치적 격변 혹은 죽음의 병이 닥칠 때 쓸모가 없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자주 보여 주었다.
잠언 18:10에서 ‘솔로몬’은 이러한 대조적인 말을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아무리 큰 위험이라 할지라도 혹은 어떠한 환경의 변천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종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막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로 여기에 진정한 안전의 근원이 있는 것이다. 즉 사랑 많으신 우리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관계가 바로 그것이다.—시 59:16, 17; 62:5-8.
어떻게 보호를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러한 확신은 하룻밤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치 수목이 해가 바뀌면서 점점 강해지고, 폭풍우를 견디면서 점점 튼튼해지는 것처럼,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믿음은 그분의 의로운 행로가 우리의 생활에서 최선의 길임을 이해함에 따라 강화된다. 매일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고,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데 시간을 바치고 정기적으로 그분께 기도로 간구하는 이 모든 일들은 이러한 개인적인 유대 관계에 기여한다.
‘이사야’는 우리가 바라는 종류의 안전을 이러한 말로 묘사하였다.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견고한 바위가 그 보장이 되며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33:16) 그러나 이러한 안전은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기여하는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이사야’는 또한 이렇게 말하였다. “오직 의롭게[계속 의롭게, 신세]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이사야 33:15)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데 있어서 요구되는 이러한 요구 조건이 현대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계속 의롭게”라는 말은 매일 의와 정직에 대한 여호와의 표준을 따라야 함을 시사한다.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긴다는 말은 일확 천금의 세상적 생활 방식을 따르지 말아야 함을 상기시켜 준다. 뇌물을 받지 않고 왜곡된 재판을 위해 특혜나 물질적 이득을 용납치 않는 것에 더하여 여호와의 승인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예언자는 20세기의 영화, 서적, 잡지들을 볼 수 없었지만 여호와와의 친밀한 우정을 바라는 사람은 오늘날 폭력과 부도덕한 오락을 피해야 할 것이다.
의로운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우리가 안전을 누리는 데 기여한다. 현명한 왕 ‘솔로몬’은 그 점을 이러한 간단한 말로 요약한다.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리라].”—잠언 10:9.
때때로 일부 ‘여호와의 증인’들은 하나님의 보호라고 간주되는 일들을 체험한 적이 있다. 한 형제의 예를 살펴보자. 어느 날 그가 자기 차 안에서 「파수대」를 읽고 있는데 누군가가 갑자기 그의 목을 졸랐다. 그는 여호와께 열심히 기도하였다. 공격해온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목조른 힘은 풀렸다. 이 형제는 차를 몰기 시작하고 안녕을 고하고는 길 한가운데 형상처럼 서 있는 그 사람을 남겨두고는 떠났다.
또 ‘케냐’에서 온 한 선교인이 있었다. 그 자매의 부모들은 그가 여호와를 섬기기 시작했을 때 극심한 반대를 하였다. 아버지는 그 자매가 ‘증인’ 즉 그가 붙인 별명으로 “하얀 원숭이들”을 떠나지 않는다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는 자객들을 고용하여 그 자매를 해치려 하였다. 그 자매는 이렇게 보고한다. “여호와의 보호로 그들의 손에 한번도 걸리는 일이 없었읍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예시해 주듯이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대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께 대한 전적인 믿음으로 우리는 결코 우리에게 항구적인 해를 입힐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우리의 천적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약속해 오셨다.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안전에 대한 어떠한 위협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임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주[여호와]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히브리 13:5, 6.
조만간 이제, 전 인류 가족은 부, 군사력 및 정치적 세력이 제공하는 외관상 안전해 보이는 성벽들이 붕괴되는 위기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오직 보이지 않지만 여호와의 능하신 손에 의지해 온 사람들만이 살아 남아 하나님의 왕국의 의로운 다스림하에서 영원한 안전을 누리게 될 것이다. (계시 21:1, 4) 이것이 당신이 지존자와의 친밀한 개인적인 유대를 발전시켜 온 데 대한 행복한 대가이기를 바란다.
-
-
성서 진리가 안전으로 인도하는 길을 알려 준다파수대—1981 | 1월
-
-
성서 진리가 안전으로 인도하는 길을 알려 준다
—‘도미니카’ 공화국으로부터의 보고
‘플로리다’에서 동쪽으로 약 960‘킬로미터’ 지점에, ‘쿠바’와 ‘포르토리코’ 사이에 ‘카리브’의 ‘이스타니올라’ 섬이 있다. 이 섬의 3분의 2나 되는 동쪽 부분이 ‘도미니카’ 공화국 영토이다. 이 땅은 관개가 잘되어 있어서 농사가 잘된다. 산물로서는 사탕수수, ‘코오피’ 및 ‘코코아’가 있고 열매로서는 ‘파파이아’, ‘바나나’, ‘망고’ 및 ‘파인애플’ 등이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은 친절하며 활기찬 대화에 끼어 들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손, 얼굴 그리고 온 몸으로까지 몸짓을 한다. 다수의 ‘도미니카’ 사람들이 ‘프로레스탄트’교인들이지만, 대부분은, 15세기에 ‘스페인’에서 ‘이스타니올라’ 섬에 왔던 ‘유럽’인 이주자들처럼 ‘로마 가톨릭’교인들이다.
이 ‘카리브’ 나라의 친절하고 겸손한 사람들은 성서 진리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었는가? 1945년 4월 1일 ‘왙취 타워 길르앗’ 성서 학교에서 온 선교인들이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산토 도밍고’의 중심부에 있는 ‘호텔’에 여장을 풀고 성서 연구에 관심을 나타낸 한 의사를 바로 그날 찾아 나섰다. 그의 주소는 그들이 ‘뉴우요오크’에 살 때 받았었다. 곧 의사를 찾게 되었으며 성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한 이웃 사람이 이 토론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후앙 페드로그린’과 ‘모이세스 롤린스’가 ‘도미니카’인으로서는 최초로 ‘여호와의 증인’이 되었다.
‘도미니카’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전하는 일은 ‘산토도밍고’에만 국한되지 않고 곧 내륙 지방으로 퍼져 나갔다. 선교인들은 북쪽으로 그 공화국 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산티아고’까지 봉사하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더 북쪽으로 전진하여
-